개선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5
에리히 레마르크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품절


육체라는 것은 집게와 클립에 의해 여러 겹으로 덮였던 장막처럼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했던 기관이 노출되는 것이다. 밀림 속의 사냥꾼처럼 발자국을 더듬어 가노라면 파괴된 조직이나 응어리진 종기나 종양의 틈바구니에서 별안간 거대한 맹수인 <죽음>이라는 것과 부딪치게 된다. 거기서부터 싸움은 시작된다. 침묵의 미친 듯한 투쟁이, 그 싸움에는 오직 가냘픈 메스와 한 개의 바늘과, 그리고 무한히 정확한 솜씨만이 무기일 뿐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극도로 긴장한, 눈이 부시게 흰 육체를 통해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핏속에 어릴 때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메스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바늘을 흐트러뜨리며, 손을 지치게 하는 당당한 비웃음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불가사의하고 맥박치는 것, 생명이 인간의 무력한 손에서 홀연히 물러나 부서져서 걷잡을 수 없는 무서운 암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때를. 바로 조금 전만 해도 숨을 쉬고 자기라는 존재를 지니고,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얼굴이 딱딱하고 이름 없는 마스크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을. 그런 의미도 없는, 걷잡을 수 없는 무력함들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설명될 수가 있을까?-26쪽

"제가 천박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들의 저주받은 생활 속에는 천박한 점이 너무나도 적었어요! 전쟁, 굶주림과 파괴를 지긋지긋하리만큼 체험했지요. 혁명이니 인플레이션이니 해서 말예요. 그렇지만 한번이라도 조그만 안정이라든가, 홀가븐한 기분이나 휴식, 또는 여유 같은 건 조금도 맛본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신까지도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시니, 정말 우리들의 부모는 우리들보다 훨씬 평온하게 산 것 같아요, 라비크." "그렇소." "우리들 인생에겐 오직 하나의 찰나적인 짤막한 인생이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그대로 지나가 버린다니...." (...) "저는 하잘것없는 무가치한 여자예요, 라비크. 제가 ž…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뽐내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다만 행복하고 싶어요. 그리고 세상만사가 이렇게 난해하고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겐 오직 그것뿐예요."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조앙"-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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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내 심정이 그러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소설 전에 읽었던 소설이 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이었기 때문이지, 은희경의 신작을 읽는내내, 고독, 우울, 허무라는 세 단어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집은 발표순서의 역순으로 단편을 게재하였다. 독자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녀의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나아간다. 그녀가 지금 왜 그러한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계속 소급해간다. "박하사탕"...

가장 먼저 실린 단편 "의심을 찬양함"은 정작 작가가 가장 최근에 잡지에 게재한 소설. 이 소설은 기차에서 시작해서 기차에서 끝난다. A-> B -> A의 구조로, 기차 안에서 과거를 회상한 후,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형태이다. 아니면 이 B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암시도 있다. B자체는 말그대로 '의심'에 관한 내용.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이 의문을 던지는 과정도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든 견고한 의미들이 흩어져 있다. 기차의 몽롱한 리듬에 맞추어 꾸는 꿈인냥... 의심은 결국 '진실' 또는 '순수'에 대한 탐구로, 이데아로의 길일 터이다. 이러한 의심은 다음 소설로 넘어간다..

이 소설집의 첫 단편을 넘기면, 이제 나타나는 '고독의 발견'..  딱히 하는 일도 없고, 고시생인 듯 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 화자가, 문득 자신이 대학생때 하숙했던 집 주인이 했던 여관을 관리해주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 그리고 그 길 끝에서 펑펑 울면서, '미안해, 나는 쓸모없는 놈이야'라고 운다... 의심 후에 오는 것은 고독.

그 다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표제작. 뚱뚱한 사내가 다이어트를 한다.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 처절한 다이어트의 계기는, 그의 아버지가 암투병 중이기 때문. 소설의 문맥상 그의 아버지는 불륜을 통해서 사내를 낳고, 그 후에는 남남처럼 지내며 일년에 한번 씩만 사내에게 식사를 사준다. 처절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서 쌀밥과 육게장을 먹는다는 것. 고독의 다른 형태로서의 추, 그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추구.

'날씨와 생활'. 공상 속에 빠져있는 소녀 B의 이야기... '평범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가 읽었던 수많은 동화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삶 속에도 언젠가 실현될꺼라는 공상을 하는 소녀. 어느날 그 동화책 할부금을 학교에 받으러 온 수금원 때문에, 공상 속에서 소녀 B는 자신을 매우 가난한 집 아이로 상상하고, 수금원을 따돌리려다 실패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태연하게 돈을 냈다는 것.

'지도 중독' 안온한 일상에 안주하기 좋아하던 학원 국어강사가 어느날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로키산맥에 다녀왔다는 것. 곰을 보았다는 것.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운동권 후일담 비슷하게 전개되면서, 유리 가가린의 귀환처럼 삶의 귀환을 꿈꾸는 이야기..

결국 현재 일상의 고독, 우울, 허무를 거슬러 올라가면, 등장하는 유리 가가린. 별이 빛나던 시대. 또는 그렇게 80년대를 낭만화하여, 현재를 허무화하는 시각.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하고, 때문에 고독하고 우울하고 허무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과거를, 우리들의 과거로, 나아가는 이유는?

"삶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라서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지나간 이야기는 다시 쓰일 수 있는 것일까." (208)

우리는 다시 살 수 없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시 쓰일 수 있다. 이것이 고독, 우울, 허무를 살아가는 방식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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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운동은 다르다”
[진보논쟁 그 후①] ‘진보의 진보’를 위해 논쟁하자

이른바 ‘진보논쟁’이 한 차례 지나갔다.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2007년 대선에서 민주, 개혁, 진보 세력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등 정체성과 대선 전략이라는 실천적 문제를 놓고 진행된 논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비록 논쟁의 전개과정에서 일정한 문제점도 있었지만, 서로 다른 시각과 세계관이 공개적으로 노출됐다는 점에서 지난 1차 진보 논쟁은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의견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수 있다. 올해 대선 국면에서 진보진영과 민주노동당이 선택할 주요 노선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진보진영 단일 후보 문제, 단일 후보의 선출 방식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레디앙>은 1차 ‘진보논쟁’의 의미와 성과를 되돌아보고, 진보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와 함께 대선 국면의 실천적 합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소장 학자와 현장 활동가들의 관련 논의를 이어간다.

이번 기획은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부소장. 정치학)의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1차 논쟁 역시 조희연, 조현연 두 교수의 도움이 컸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진보논쟁이 벌어지기 얼마 전, 한 자리에서 필자가 한반도 평화과정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자 한 분이, “진보세력은 누군가 말을 하고 나면 그걸 비판하려 하는 군요,” 라고 말을 던졌다. 일순 약간 당황하면서, “진보세력은 비판을 하면서 ‘동시에’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길을 제시하려 한다.”는 답변을 했던 것 같다.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약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두 가지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하나는 새로운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누구나 심리적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새로운 길이 여러 개 제시된다면, 심리적 불안과 더불어 선택의 혼란까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판과 대안이 분리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진보세력 스스로가 둘을 다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라는 문제제기였다. 대안을 담고 있지 않은 비판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투정이다. 현상 변경을 지향하는 진보의 길이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보수의 길보다 근본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새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의 길이 보수의 길보다 근본적으로 어려운 이유

민주정부 하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최장집 교수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진보논쟁은 백가쟁명으로 이어졌다. 이 논쟁은 지금 여기에서 진보의 목표와 거기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개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진보세력이 사회운동의 형태로 등장한 이래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민주화라는 대의가 ‘자폭의 논쟁’으로 가는 길을 막았을 뿐,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드러나듯, 한국사회의 성격과 변화의 방향을 둘러싸고 여러 운동세력이 대립을 거듭해 왔고, 지금도 그 흔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진보적 정치세력을 자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웹 사이트 게시판에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정치·사회세력들이 거듭해 왔던 오래된 그들만의 논쟁구도인 ‘자주 대 평등’의 대립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최장집 교수의 문제제기에 대한 다양한 대응에 ‘진보논쟁’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일까. 진보를 자임해 왔던 세력들이 그 동안 서로 몰랐던 새로운 차이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진보진영의 '뒷북 논쟁'

논쟁의 초기 참여자인 최장집-조희연-손호철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든, 노무현 정부가 진정한 진보 정부인가 아닌가가 논쟁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회세력의 일부가 참여하고 있는 현 정부가 지지층의 요구와는 달리, 마치 스스로가 보수정부인 것처럼 시장만능적 경제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즉 그들 모두 민주화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서 진보란 양극화의 해소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는 장단기 방법에 있어서는 세 분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차이가 세 분의 논쟁을 진보논쟁으로 부를 수 있는 적극적 이유이기도 하다.

논쟁의 핵심은, 첫째 진보라는 목표의 실현을 위해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둘 가운데 어느 것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둘째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세력의 목표는 무엇인가, ‘상대적’ 진보정부의 창출에 기여할 것인가 아닌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논쟁이 세계화 운운하던 1990년대 초중반이나 늦었더라도 1997년 IMF 위기 직후에 벌어졌다면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논쟁은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 이후에 진보세력이 벌이고 있는 ‘뒷북논쟁’이다.

이 논쟁은 1987년 이후 선거로 집권한 민주정부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노무현 정부의 임기를 1년여 정도 남겨 놓고 완전히 좌절된 상황에서 터져 나온 진보세력의 ‘위기논쟁’이다.

   
  ▲ 사진=연합뉴스
 

진보의 진보를 위한 근본적인 질문들

현실정치의 시각에서 이야기한다면 보수세력인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을 수 있는가 없는가, 또는 막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반보수논쟁’이다. 자칫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깊은 천착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진보논쟁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초기 논쟁을 심화하기 위해 2007년 2월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가 개최한 민주진보진영의 2007년 대선전략 회의의 제목은 <위기의 진보진영, 대반전 가능한가>였다. ‘집권전략’이나 ‘대반전’이라는 말이, 지체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진보세력의 성찰과 혁신의 의지를 담고 있는 표현인지 의심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회의에서 ‘진보의 다원주의’를 인정하면서 ‘진보의 진보’를 위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진보의 진보를 위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서구와 달리 민주화 이후에 정치경제적 자유주의가 등장했고 따라서 역사적 시각에서 본다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었던 자유주의적 가치의 확산이 평등과 연대의 가치와 충돌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분단체제라는 한반도 특수적 현상이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는 한반도 차원에서, 진보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발견하기 위한 진보논쟁이 필요하다.

한 철학자의 말처럼 저항과 형성이 하나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김상봉, 『서로주체성의 이념』), 진보의 담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질문들이지만 진보의 생존과 진보논쟁의 진보를 이제는 피해갈 수 없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피해갈 수 없는 몇 가지 질문들

첫째, 지금 여기에서 진보란 무엇이고 진보세력은 누구인가? 둘째,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 진보세력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보세력의 두 축인 진보적 사회세력과 정치세력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다수는 왜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진보적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고 있는가? 셋째, 민주주의와 진보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순서대로 이 질문을 둘러싼 논쟁점을 정리해 본다.

첫째, 진보라는 개념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서구적 근대의 산물인 진보개념이 발전개념과 등치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 이유뿐만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의 해소와 분단체제의 극복과 한국사회의 선진화 등등의 다양한 진보의 목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 진보의 개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윤해동, “진보라는 ‘욕’에 대하여”; 김기봉,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서”).

사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진보를 자처했기도 했고 언론에 의해 진보로 규정되기도 했던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정치·사회세력을 규정하는 개념으로서 진보개념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골프를 치는 노무현 정부의 아류인 자칭 진보 때문에 그 말 자체가 싫고 자신은 원래 좌파라는 규정을 선호했다는 생태주의자의 목소리가 있다(우석훈, “극우와 자칭 진보들의 ‘19홀 골프’). 진보가 비교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시각 차이를 지칭하는 좌우파가 진보와 보수보다 적절한 개념화라는 주장도 제기된다(김기원, “노무현 비난하면 면죄 되는가”).

그러나 필자는 비교를 전제로 하고 있고 따라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진보가 지금 여기에서 저항과 형성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진보개념의 유용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진보의 개념은 아직도 유용하다

또한 진보는 전통적인 좌파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좌파는 진보일 수 있지만, 진보는 좌파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진보라는 이름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진보의 내용이다.

한미 FTA에 대한 반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항의 진보’는 현실에서 쉽게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에 대한 반대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해소의 방법에 대해 다른 생각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反) FTA 전선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 ‘안’의 미국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국가의 몰락과 지금도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회주의적 대안을 더욱 부정하게 만드는 북한의 존재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형성의 진보’를 상상하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우리의 질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진보의 미래가 설계도를 따라 가는 길이 아님은 분명하다. 자유의지에 기반한 윤리적 실천이 없이 진보적 미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야한 결정론과 다를 바가 없다. 물으면서 길을 갈 수밖에 없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만으로 진보의 내용이 채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한반도적 맥락에서 사회민주주의조차 대안적 의제로 설정하기 힘들게 만드는 ‘분단체제’(백낙청, “최근 진보논쟁서 정치·민생과 직결된 남북문제 누락”)를 고려할 때, 한국사회에서 진보의 내용 채우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저항의 진보가 형성의 진보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드는 작업인 분단체제 허물기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분단체제 허물기가 저항의 진보를 형성의 진보로 만들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한국적 진보의 내용을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들

그러나 분단체제 허물기가 자본의 주도로 이루어질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당성이 강화될 수도 있다. 즉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남한의 미래 형태가 북한의 미래가 되고, 북한의 미래의 형태가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남한의 미래가 되는 형국이다.

한국적 진보의 내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는 진보세력의 결집체인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연대’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 연대에는 생산의 영역에서 진보를 추구하는 사회운동과 소비의 영역에서 진보를 추구하는 사회운동 그리고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사회운동이 결합되어 있다.

흔히 민중운동, 녹색운동, 시민운동으로 부르는 사회운동체의 연대다. 여기에 민주노동당은 물론 열린우리당의 일부세력까지 참여하고 있을 정도다. 다양한 정치·사회세력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사회의 현실이 고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밥나라’, ‘김밥천국’이 되어 가고 있는 한국적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결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이 그렇게 간단한 것도 아니다. 김밥나라, 김밥천국이지만, 세계 어느 지역보다 IT가 대중의 삶에 스며들어 있어 최고의 테스트베드로 간주되고 있는 곳이 한국이기도 하다. 한미 FTA 반대에도 복잡한 한국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대부분의 진보세력이 FTA가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공감하지만, 그 이유와 더불어 여러 이유 때문에 FTA에 반대하고 있다.

   
  ▲ 사진=참세상 이정원 기자
 

FTA를 반대하는 여러가지 이유들

첫째 경제통합협정과 다를 바 없는 FTA 그 자체에 반대다. 이 세력은 크게 둘로 분화된다. 하나는 FTA에는 반대하지만 경제성장의 담론을 수용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로 FTA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이 삶의 넉넉함을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둘째, 개방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FTA 추진전략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국제협상의 불공정이나 국내협상이 거의 없었던 협상과정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반대다. 두 번째 반대자의 경우 대부분이 경제성장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즉 FTA에 반대하는 진보세력 내부에는, 평등지향적인 사회정책이 담겨 있지 않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반대가 공유되고 있지만, 성장담론 대 녹색담론의 대립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대립은 진보의 궁극적 목표가 평등인가 자유인가로 비화될 수 있다.

길게 본다면 불평등의 해소가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삶의 기초가 되겠지만, 생산영역에 기초하고 있는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사회운동과 소비영역에 주목하는 아름답고 자율적인 삶을 추구하는 (탈자본주의적) 사회운동이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세력이 모두 한 길을 갈 수도 없고 갈 필요도 없다. 진보의 길은 여러 갈래 길이다. 그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연대의 가치는 중요하다. 서로의 문제와 문제의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연대야말로 평등과 자유와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진보를 묶어주는 끈, 사회경제적 불평등 비판과 분단체제 허물기

지금 여기서 저항의 진보를 묶어주는 연대의 힘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생산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다. 분단체제 허물기에도 연대의 원칙이 관철되어야 한다. 한반도적 수준에서 반전·반핵·평화를 지향하는 분단체제 허물기는 그 비판이 저항의 진보를 넘어 다양한 형성의 진보로 나아가게 하는 필요조건이다.

이제 두 번째 질문들로 가 보자.

임박한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저항운동을 통해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에서 진보정당이 10% 내외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진보가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하는가를 논하기 이전에 지금 여기에서 진보정당이 시민·민중의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한 이유가 설명되어야 한다. 이 설명이 없이, 반보수연합이나 진보대연합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소수의 생존전략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앞서 간략히 언급한 것처럼, 북한의 존재야말로 진보정당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에게 북한비판은 금기였고 지금도 그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입장표명을 주저했던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진보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서 북한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어간다는 대의에 진보세력의 누구도 반대를 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그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진보세력은 적극적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 일을 해야 하지만, 정치권력을 둘러싼 경쟁에 참여하는 진보정당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의 북한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기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미래에 대한 진보정당의 정책을 시민·민중은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진보정당의 정책으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저발전을 낳은 또 다른 원인은, 한국의 민주화를 추동했던 사회세력의 보수정당을 통한 정치사회 진입이었다. 민주화세력이 곧 진보세력으로 인식되던 시절에 자주 발생하곤 했던 이 영입사건들은 시민·민중이 보수정당을 진보정당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진보세력이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선택인 이른바 비판적 지지로 인해 진보정당의 저발전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이후 진보세력의 비판적 지지론은 정치적 연합이나 정책연합이 아닌 투항과도 같은 것이었다.

민주화 추동 세력의 보수진영 진입

비판적 지지의 결과로 민주화세력의 일부가 정치권력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현실정치의 논리를 앞세우면서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 혼란이 언론과 정부 자신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다. 노무현 정부와 진보가 동일시되면서 집권도 해보지 못한 진보세력이 무능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개되고 있는 진보논쟁에서도 비판적 지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반보수연합론은 비판적 지지의 변종이다. 진보세력이 분열하면서 각축하지만 막판에는 정치적 연합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주장(조희연, “연합에 앞서 분열하면서 각축하라”)도 시민·민중에게는 비판적 지지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진보적 정치세력의 중심이 되어야 할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진보적 사회세력의 전선체 조직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제도정치와 운동정치 또는 정치와 운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로, 진보적 정치세력의 지지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이 정당이라면, 정치권력을 잡게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청사진과 그 청사진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 및 정책수단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정치적 연합이나 정책연합은 그 다음의 일이다. 다른 어떤 정당보다도 민주노동당은 정책정당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제까지의 한국정당이 정책정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민주노동당의 정책정당화는 제도정치 내에서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정치와 운동은 존재형태와 목표가 다른 실천행위

이 지점에서, 운동정치의 활성화가 제도정치에서 진보적 정치세력의 지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검토해 보자. 민주노동당이 제도정치에 진입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분명 사회운동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강한 사회운동이 없었더라도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이었다면, 진보적 정치세력에 대한 요구는 증대했을 것이다. 오히려 강한 사회운동의 전통과 지금 여기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민주노동당의 지지도는 초라한 수준이다. 이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적 정치세력은 정치와 운동이 같은 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와 운동은 존재형태와 지향하는 목표가 분명 다른 실천행위다.

사회운동은 차별을 받거나 차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동기나 또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실현을 막고 있는 장벽을 없애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운동의 정당성은 ‘자임’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 정당성은 ‘다수’를 획득하는 경우에만 얻어질 수 있다. 정치세계에서 활동하고자 한다면 다수를 지향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 존재론적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의 게임규칙을 바꾸기 위해서도 정치세계에서 활동하는 정당은 다수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와 반국가적 실천행위인 운동

운동은 진지전이다. 운동은 삶의 양식을 바꾸고자 하는 실천행위다. 운동은 정치세계에서 권력을 잡고자 하는 실천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진보를 위한 권력일지라도 권력이 권력으로서 자립하게 되면 자유로운 삶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은, 손호철, “반신자유주의 단일 전선으로” 참조).

운동은 본질적으로 반국가적 실천행위다. 정치는 권력을 잡고자 하는 실천행위다. 즉 운동과 정치는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질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정치의 활성화가 진보정당이 권력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 자신의 우리사회에 대한 총체적 전망과 미시적 정책이다. 더더욱 강한 사회운동이 ‘불가피한’ 이익집단운동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운동정치에 기대는 것은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다양한 사회운동이 반드시 민주노동당의 지지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들은 정책에는 주목하지만 정치에는 무관심할 수도 있다. 만약 운동과 정치가 적절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홍성과 같은 ‘지역’에서 일 것이다. 현재 진행되는 진보논쟁에는 지역이 누락되어 있다.

진보논쟁에서 누락돼 있는 지역 문제

또 하나. 진보세력의 저발전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대중의 의식과 존재의 괴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홍세화, “의식 수정 없으면 대안도 없다”). 대중이 더 고생을 해보아야 진보정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주장도 맥락을 같이하는 자조적 목소리다.

전형적인 정치경제학 비판의 사고다. (근대 이후 이른바 의식과 존재가 괴리를 보이지는 않은 적이 있는가. 이 지면에서는 다루기 힘든 주제라 일단 비켜간다.) 사회경제적 상태와 정치적 지지가 조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매개하는 관념과 실천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의 형태를 띠는 ‘근대화된 빈곤’으로 인식될 때(김종철, “지금,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무엇인가”), 대중은 그 문제의 근원을 제도보다는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경제학 비판과 더불어 ‘심리학 비판’과 ‘윤리학 비판’이 필요한 이유다. 진보세력은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진보적 문학세력이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작가인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신파지만, 정치적 건강성과 공공성을 가지고 있고(김명인, “문화를 읽어주는 남자: 공지영 신드롬”), 대중은 그것을 보고 감동을 느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착하게  살자"는 보수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는 것일까. 진보세력은 그만큼의 감동을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진보가 일상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진보의 ‘몸’은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진보의 윤리학에 대한 문제제기다. 예를 들어 진보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100가지를 만들어 보자. 연대의 삶 속에서 정신을, 이념을 일구어내야 한다.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가보자.

노무현 정부와 민주주의 그리고 진보의 관계

노무현 정부의 부침은 민주주의와 진보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이미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한다. 올 것이 온 셈이다. 보수와 진보의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은 분명 갈린다.

보수가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의 틀 속에 가두려 한다면, 진보는 삶의 모든 영역에 민주주의를 심고자 한다.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대는 진보의 과정이자 ‘목표’다.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대가 목표라고 이야기하면, 좋다 그렇게 살면 좋긴 하는데, 그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느냐는 반응을 만나게 된다.

민주주의와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 원론적 이야기를 할 지면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있다, 없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유동하는 다양한 대답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험을 돌이켜 보자. 1997년 IMF 위기나 한미 FTA 협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민주주의의 부재는 삶을 어렵게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민주화의 동력이었으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의 기초였음을 증명할 수는 없을까.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의 경험을 보면서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같은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실현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삶의 넉넉함을 제공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 가치 폄하되면 반동의 시대 올 수도

노무현 정부는 우리에게 민주정부 하에서 삶의 넉넉함이 실현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역설적 결과는, 보수세력이 지적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빈곤 때문에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조차 쓰레기더미에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도 있다(박석운, “지금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할 때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폄하될 때, 정말로 원하지 않는 반동의 시대가 올 것이다.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국적 민주주의’의 불가능이다. 국가 밖의 적을 상정하는 국가안보담론이, 국가 밖의 변화에 대한 강조인 지구화담론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진보세력의 국제관계론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세력도 국제관계를 국가들의 게임으로 보고 그 게임의 규칙이 힘의 정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그것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힘의 정치에 입각하여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진보가 비난하곤 하는 미국 부시정부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북한 김정일 정부의 행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구적 수준에서, 동아시아 수준에서 시민사회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국제정치경제의 민주화를 진전시켜 나갈 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원하는 평화의 기초를 닦을 수 있다.

이제 진보논쟁의 막이 올랐다. 더 이상 금기는 없다. 차이를 드러내고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이를 절대화하지는 말자. 진보세력 내부의 민주적 논쟁을 통해 연대의 가치를 만들어 가자. 임박한 대선으로 촉발된 논쟁이지만 논쟁의 시공간적 지평을 확대하자. 삶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원칙에 합의하면서 여러 갈래로 놓여 있는 진보의 길을 가자.

2007년 04월 16일 (월) 01:22:21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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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milla Elliott, Rethinking the NOVEL/FILM DEBAT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pp 133~156

5. 문예 영화와 형식/내용 논쟁(Literary Cinema and the Form/Content Debate)

예술간 각색 연구는 19세기부터 지금에까지 항상 비평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비난받아왔다. 이는 비단 예술의 범주들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20세기 미학과 의미론의 중심에 대해 이단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어와 이미지가 번역가능하고 형식과 내용이 분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물, 플롯, 주제, 그리고 수사학이, 소설의 형식에서 빠져나와서 영화의 형식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신비평에서 구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단호하게 형식은 내용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후기구조주의적 의미론은 내용의 정체를 폭로하고 환영으로 만듦으로서, 형식/내용 이분법을 폭발시켰다. 이들에게는 내용이 형식 간에 각색된다는 것이 더 이단적인 주장이 되었다. 사실 후기구조주의적 의미론은 형식과 내용을 혼합시켜서, 내용이 순수한 형식 속으로 증발된다.

따라서 단어/이미지, 형식/내용 도그마는 각색을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각색이, 문화적으로는 어디에나 있다. 각색의 유행이 의미론과 미학 이론을 어디에서나 맞선다. 그래서 학자들은 각색이 일어나지 않았고, 단지 그것의 환영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내용이 형식과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론적 이단을 주장하게 된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움베르토 에코인데, 그러한 입장은 소수이다. 그러나 어떠한 학자도 옛날 형식 내용/이론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이 이단에서 한발 물러나서 이론적 정확함에 반하는 수사로 나아갈 뿐이다. 이 장에서는 각색 과정에 관해, 내용과 형식의 분리를 말하는 비공식적인 여섯 개의 개념들을 탐사할 것이다. 이 개념들은 비평 이론과 영화감독들과 각색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에서 비롯한 수사들이 합쳐진 것으로, 형식/내용 도그마 자체에 압력을 가한다. 이들은 여기서 이상적이고, 기술적이고, 경험적으로 ‘사실’인 것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영화제작과 비평에서 작동되는 개념이다. 소설이 영화적 기표로 충실하게 재현되는 것으로 바라보던지, 소설이 영화적 기호들로 더 완전하게 재현되어야만 하는 불완전한 기호로 간주되던지, 또는 소설과 영화가 서로 재현하여 더 객관적인 의미를 공유하던지, 이 각색의 문제가 어떠한 다른 소설/영화의 논쟁보다도 경쟁적 관계를 형성한다. 담론에서 수많은 형태로 들어났기에, ‘형식’과 ‘내용’은 이 논의에서 다양하게 이해되어야만 한다. 전체적 예술 형식과 그들의 “주제”(내용)에서부터 기표와 기의에 이르기까지. (*이 장에서는 󰡔폭풍의 언덕󰡕을 이중의 방법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나는 개념 유비들을 드러내주는 대상으로서, 또 하나는 영화 속 대사나 상황과 유비를 대응시키면서. 문학적인 문학 이론서.)

5.1 각색의 영혼적 개념(The Psychic Concept of Adaptation)

20세기에 내용을 비평적으로 환영화하는 것은, 소설에서 영화로 전달되는 것이 “텍스트의 영혼”으로 이해하는 각색에 대한 영혼적 개념에 큰 책임이 있다. 이 텍스트의 영혼은 일반적으로 저자의 영혼이나 개성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20세기 비평가들은 이러한 작가적 영혼을 덜 신비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작가적인 영혼이나 개성은 작가의 의도, 상상, 스타일로 변화된다. 보다 확실한 문학적 징후를 찾는 비평가들은 텍스트의 영혼을 작가적 스타일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적 스타일 또한 신비적 경향을 남긴다. 이는 항상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요소를 항상 간직하고 있다.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단지 영화 형식과 작가의 문학적 영혼을 혼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는 텍스트의 영혼이 저자에게서 소설로, 소설에서 독자-영화감독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관객으로 전달되는 영혼적 연결의 과정을 가정한다. 형식은 변화하지만 영혼은 똑같이 남아있다. 텍스트의 영혼은 형식을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이러한 영혼은 형식에 속박되지도 의존하지도 않는다.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다음과 같이 보여질 수 있다. 괄호는 없어도되는 형식이다.

소설의 영혼 -> (소설의 형식) -> (독자-영화감독 반응) -> (영화) -> viewer 반응

텍스트의 영혼은 형식이 없는 의식인 전텍스트적 영혼에서 기원하고 영화 관객의 반응이라는 후텍스트적인 반응으로 끝난다. 이 전텍스트적 영혼은 일반적으로 작가의 의도, 개성, 상상으로 파악된다. Orr은 작가 의도에서 시작하고 독자 반응으로 끝나는 모델은, 비록 커뮤니케이션 연쇄의 양쪽에 작가 의도와 독자 반응이 나타난다고 해도, 둘 다를 무시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즉, 음성적 또는 영화 텍스트의 영혼은 이 담론(화자가 독자나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과 서사성(독자/관객이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의 기능 둘 다이다. 저자의 영혼은 시의 그림에 관한 논의에서 종종 등장했었다.

텍스트의 영혼에 대한 충실성은 전형적으로 소설의 문자나 형식에 대한 반충실의 요구와 함께 간다.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텍스트의 영혼에 진실하기 위해서는, 각색은 반드시 문학적 시체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소설 각색에 관한 영혼적 환영은 개인적인, 영화적인, 문화적인 의제(agenda)를 소설에 투사하여 이를 영혼이라고 규정하게 한다. 문학 작가의 권위가 이러한 아젠다와 투사의 정당함을 인정하는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다른 담론들에서는 붕괴된 저자가 각색 비평과 상업 광고에서는 그 영향력을 상실하는데 오래 걸렸다. 20세기 대부분에서 영혼 이론은 각색 비평을 영화 학위보다는 문학의 보호 하에 두었다. 문학 학자들이 영화가 작가의 영혼을 획득했는지 여부를 판단했다. 가끔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 각색이 문학 비평의 에러를 바로잡는다는 주장도 했다. 심지어는 영화가 저자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작가적 의도를 충족시켰다는 주장도 있었다. Branagh의 프랑켄슈타인이 그러한데, 그녀는 패미니스트적 비평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에피소드를 짜르고 붙여서 페미니스트적인 것으로 묶고, 문학 비평가들이 페미니스트적인 비평 코멘트를 붙이는 곳들에다 페미니스트적인 씬을 첨가했다. 이처럼,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작가의 영혼이나 의도라는 이름하에 새로운 영혼이나 의도가 들어올 수 있는 재현 공간을 열어놓는다.

5.2 각색의 복화술적 개념

각색의 복화술적 개념은 소설의 기호를 비우고, 이를 영화적 영혼으로 채워 넣는다. 영화가 소설을 각색할 때는 살아있는 영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시체를 받는다. 복화술사처럼 죽은 소설을 기대놓고, 침묵의 시체 속으로 음성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각색 비평가들은 텍스트의 영혼은 그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합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복화술적 각색은 롤랑 바르트의 메타언어에 관한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의미 체계는 텅빈 형식으로 간주되고, 계속해서 두 번째 체계의 내용으로 채워진다. 첫 번째 체계에서 기호인 것이, 두 번째에서 단지 기표가 된다는 것이다. 전달되는 기호가 순수한 형식이 될 때, 의미는 그 우발성을 뒤에 남긴다. 기호는 스스로를 비우고, 그것은 불모지가 되고, 역사는 증발되고, 오직 문자만이 남는다. 이와 같은 복화술적 개념은 바르트의 이 이론을 따라 다음과 같이 된다.

소설의 기호 - 소설의 기의 = 소설의 기표 (소설의 체계)

소설의 기표 + 영화의 기의 = 각색된 것의 기호 (영화 각색 체계)

이러한 등식은 ‘영화’와 ‘각색’을 구별한다. 각색은 순수한 영화가 아니라 소설과 영화의 복합물이다. 대부분이 문학각색 영화에 대해 소설의 풍부함을 재현하지 못하는 것에 영화에 책임을 묻는다면, 이러한 독해는 소설의 의미가 비워진 곳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가 덧붙인 의미에 주의를 기울인다.

종종 각색은 영화와 소설 공동의 투사, 공동의 현현이 맞물리면서 기묘한 이데올로기적 혼합을 발생시킨다. 바르트는 기의가 두 번째 체계에서 완전히 비워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형식은 의미를 억압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의미를 불모지처럼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는 거리를 만든다. 내용은 추상적이고 정화된 본질이 아니다. 이것은 형식이 없고,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응축물이다. 개념에는 고정성이 없다. 그들은 생성되고, 변하고, 붕괴되고,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이처럼, 복화술적 모델은 완전히 텅 빈 시체가 완전히 새로운 영혼에 의해 움직인다는 주장이지만, 언제나 이는 그렇지 않다. 각색에 대한 복화술적 개념이 처음에는 영혼적 관점에 정반대인 것처럼 나타나지만, 찌꺼기인 의미가 텅 빈 형식 안에 남아있다는 것은, 영혼이 소설에서 영화로 각색과정에서 전달된다는 생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둘 다 의미가 애매한 영혼이 형식으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개념은 같은 동전의 분리될 수 없는 양면으로 나타난다.

5.3 각색의 유전적 개념

각색의 유전적 개념은 각색에 대한 서사학적 접근에서 잘 나타나있다. 서사학자들은 문학에서 영화로 이전되는 것은 유전 구조와 유사한 심층 서사 구조라고 한다. 문학 영화 각색의 서사학적 연구자인 Brian McFarlane은 ‘서사’를 사건과정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는 인물들 수반하는, 우연히 연결된 사건들의 연쇄로 규정한다. 서사의 주요한 기능이 심층 구조를 형성하고, 이러한 요소들은 소설에서 영화로 직접적으로 이전될 수 있다. 물론 소설에 대응하는 영화적 기호를 발견하는 ‘적확한 각색’이 필요하다. 소설과 영화는 같은 스토리, 같은 원료를 공유할 수 있으며, 다른 플롯 전략에 따라서 구별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각색에 대한 서사학적 접근은 내용과 형식의 분리라는 문제를 회피하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서사 이론의 중심적 개념들은 형식과 내용을 보다 높은 범주에서 나누고 있다. 채트먼의 histoire, discours 나 statement와 utterance, syuzhet 와 fabula 등. 각각의 사례에서 첫 번째 개념은 내용(무엇이 말해지는가)이고 두 번째는 형식(어떻게 말해지는가)이다.

서사학적 접근은 소설과 영화 둘 다 가지고 있는 서사의 더 높은 범주에서 형식과 내용을 나누는 접근을 하며, 기본 범주인 개별 기호들 수준에서의 형식과 내용 분리를 미리 제외한다. 그러나 때때로 기호의 변화가 심층 서사 구조를 해체하기도 한다. (* 그예를 󰡔폭풍의 언덕󰡕을 통해 분석하고 있음) 명백하게, 심층 구조는 완전하게 그것이 현시하는 물질과 분리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서사학적 적용은 영혼적이고 복화술적인 개념의 오염에서 면제된 것이 아니다. 서사학적 독해는 텍스트성과 구조성이라는 객관성에 입각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인(주관적인) 선택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서사의 주요한 핵심 기능을 선택하는 것만해도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 제거할 수 없는 주체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제거가 각색에 대한 더 분명한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암시가 문제다. 독자 반응 이론에 기반한 다음 각색이론은, 서사학자들이 피하는 그 주체성을 강조하고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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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저격수를 인터뷰하다.

* 다음(2007. 4. 20)  / [인터뷰] '반FTA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

 

 

한미 FTA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나이가 몇 있다. 체결 책임자인 김현종, 김종훈 수석은 열흘 동안 집에도 못 갔다고 한다. 그러나 월급도 안 나오는 곳에서 그에 못지 않게 바쁜 남자가 있으니, 정태인 씨다. 청와대 내에서 비서관으로 3년간 근무하면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일선에서 관여한 이력 때문에, 참여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한미 FTA  저격수로 나서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인물.

 

탄탄한 전문적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정부 내에서의 FTA 실무 경험으로 인해 그의 논리는 빈틈없이 예리하다. 100분 토론에서 송영길이 기피할 정도로 찬성론자들에게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를 나오기 전 그의 직책은 국민경제비서관이었다. 현재 공식적인 직책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요즘 그의 활동을 보면 ‘반 FTA 국민경제비서관’이라는 직함을 명실상부하게 수행하는 듯하다. 바로 그를 이너뷰했다. 본지에서는 논설우원 직빵맨과 신짱이 출동했으며, 이너뷰는 광화문의 모 카페에서 약 2시간 가량 이루어졌다.


 

한미 FTA 추진 배경 


 


직빵맨(이하 논): 그간 반 FTA  최일선에서 활약하시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시겠습니다

정태인(이하 정): 하하..뭐 예상하신대로..

 논: 이전부터도 바쁘셨겠지만, FTA 타결 직후라서 인터뷰, 강연, 토론 등이 쇄도하실 텐데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정: 20일전부터 술을 끊었습니다.

 논: 유일한 건강 대책인가보군요..하하.

 정: 허허..

 논: 노무현 당선 직후 인수위에서부터 참여하셨죠?

 정: 네. 처음 당선된 다음 날, 그러니까 벌써 5년전 이니까 ‘젊었을 때’라고 할 수 있겠네요..하하..그 당시 40대 초반의 학자들을 7명 불렀어요. 기분 되게 좋았죠. 

 논: 누구였죠?

 정: 유시민, 나, 유종일, 장하원, 서동만, 정해구 등이었습니다. 거기서 바로 한 얘기가 뭐였냐면, "여러분이 인수위 구성하셔야 됩니다..."

 논: 노 대통령께서?

 정: 네. 근데 실제 구성은 당선 직후와 비교하면 확 달라졌죠. 인수위 자체부터가... 그 자리에서 나하고 유시민은 안 간다고 그랬죠. 우린 방송으로 돌아간다고 그랬고... 나머지 학자들은 갈 뜻은 있던 걸로 보이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서동만과 나하고만 들어가게 된거죠. 아마 당료들의 견제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유종일, 장하원과 같이 강경파로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배제를 하다 보니까, 경제 파트가 없어졌잖아요. 경제가 3명이었는데... 유시민까지 치면 4명이고요. 근데 둘(유종일, 장하원)을 배제하다 보니까, 사람이 없잖아요. 교수들은 대충 채우는데, 그래서 나를 거기다가 끼워 넣은 거예요.

 논: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에도 이른바, 개혁적 인선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거군요.

 정: 거기서부터, 처음부터 잘 못됐지만... 하여튼 인수위 들어갔고, 그 다음에 청와대로 갔죠.

 논: 그 때 이제 막 들어갔을 때 어떤 포부랄까, 조선 건국할 때 정도전처럼 어떤 개혁적 이상을 가진 포부는 좀 있지 않았습니까?

 정: 하하 난 그렇게 정도전처럼 야심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논: 정치적 야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 하는 그런 포부나 기대 정도는 있지 않았나요?

 정: 이미 그 인수위 구성됐을 때, 사림파가 패배했다 당료들한테... 뭐 이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미 패배를 가볍게 한번 하고, 그래서 쉽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청와대로 가는 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한 달 이상 늦게 들어가게 됐어요. 재경부 반대가 심했기 때문에... 하여튼 뭐 제가 그 때는 ‘동북아 위원회’ 비서관으로 갔으니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한미 FTA와 정 반대에 있는 그림)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국내는 뭐 이정우 선생이나, 이동걸 박사가 담당이었던 거였고, 기억은 안 나는데, 뭐 다 쓸어버리고 새롭게 어떻게 해보겠다.. 이런 거창한 계획이나 구상을 야심차게 갖고 있지는 않았죠. 재경부나, 조중동의 견제도 굉장히 심하게도 받고 있었고..

 논: 근데 그 직전인 김대중 정부 시절에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 궤도에 많이 올려 있었잖아요. 아무래도 이런 정책 전반에 대한 궤도수정이랄지, 그런 문제의식은 강하게 갖고 있지 않았었나요?

 정: 이정우 선생이 그때는 가장 막강한 자리에 있긴 했죠. 정책실장 위치에 있었으니... 이정우 선생이랑 저는 북구 유럽형 모델을 추구하고 있었어요. 저는 사실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경제 정책에 관여할 위치는 아니었고요. 동북아 위원회라고 해서 청와대 내부에 있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문제는 이정우 선생이 정책 입안이나 추진하기에도 좀 곤란한 여건이었어요. 사람이 가면 자기 사람을 옆에 두어야 하는데, 정책실 라인에는 이미 재경부 관료나 당료들이 쫙 포진해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 이정우 선생만 툭 떨어진 꼴이 되어버린 거죠. 그러다보니 제가 위원회에서 뜻 맞는 박사들 열 명 정도와 같이 일하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는 저한테 시켰어요. 그러니까 청와대 밖에 있는 위원회에 시킨거죠. 그러다보니까, 동북아 위원회 일 절반, 정책실 일 절반 이렇게 나눠서 하다시피 했던거죠. 아무튼 이정우 선생이랑 저는 네덜란드나 스웨덴 쪽 모형을 여기다가 접합시켜 한다. 그런 의견을 이야기했죠.

 신짱(이하 신): 시계를 좀 빨리 돌려서 좀 급하게 얘기하자면, 그런 인수위 초기 시절의 경제 개혁 모델이 이렇게 느닷없이 FTA로 급변했는데, 그렇다면 일종의 파워게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건가요?

 정: 그렇죠 밀린거죠. 또 한편으로 초기에 개혁적인 것들을 빨리 처리하지 못하는 조건이 있었어요. 카드문제라든가, 소비자 신용 문제 때문에 경제 위기가 눈앞에 닥친 상황이었거든요. 이동걸 박사는 그걸 처리하는데 바쁠 수밖에 없었고... 초기에 그렇게 못하고 나서 경제위기론이 조중동에서 강화되니까 권오규, 이광재, 정만호 등의 각료 관료 386의 결합이 느닷없이 ‘2만불론’을 들고 나온거에요.  한 일년쯤 지나면서 우리하고 대립이 됐죠, 흐지부지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 때부터는 본격적인 대립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탄핵 사건 일어났고, 그러나 그게 한번 꺽이니까 이게 걷잡을 수 없이 저 짤리고, 이정우 선생 그만 두고 그 다음에 대연정 왔고, 그리고 한미 FTA...

 나중에 알게 됐지만, 대연정 직후에 한미 FTA 결심이 된 거잖아요, 2005년 9월에. 그 흐름은, 전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초기에 시도하려고 했지만, 뭐 경제 위기설이라던가 또는 초기 화물연대 이런 것들, 사실 기대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폭발한 이런 사건들이 잘 처리가 안 되면서 실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스웨덴 모델이든 뭐든, 사회적 대타협 모델이 기본 조건이었거든요. 그런 정책이 어느 정도 완성된게 2004년 말이었어요. 대통령이 양극화에 초점을 맞추었던 때였죠. 그 당시 양극화 문제와 관련해서 두 개의 보고서가 올라왔죠. 재경부 KDI팀이 만들고, 저와 이정우 선생님이랑 두개의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근데 결국은 대통령이 KDI쪽, 즉 성장론에 입각한 양극화 해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그걸 받아들인 것이죠. 제가 5월달에 짤리고 이정우 선생이 7월달에 그만두었으니까. 초기에 성장론 갖고 한번 대립했고, 양극화 해법으로 또 한 번 대립했고, 그리고 5월, 7월 이렇게 되면서 사실상 제거 됐죠. 그런 다음에 대통령이 대연정론을 내세웠던 거죠.

 대연정은 어떻게 이야기하면, 뭔가 하려고 할 때 마다 다 발목이 잡히니까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하고자 할 수 있는 것 중에 좀 개혁적인 걸 해보자라는 뜻이었다고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게 여지없이 무너져버리니까 실망이 굉장히 큰 상태에서 받아들인 게 ‘외부쇼크’에 의한 내부개혁론이거든요. 한미 FTA는요. (나중에 확인했지만) 이광재의원이 이미 2004년 12월에 주장을 했고요. 그런 생각이 안에 있다가, 김현종이 ‘한미 FTA 다 됐다. 몇 가지만 들어주면 된다’ 이렇게 하니까 덜컥 그 쪽으로 옮겨 갔던 거 같습니다. 최근까지의 상황을 보면 점점 그거에 대해서 반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노대통령) 자기의 신념이 더 강화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찬성하는 논리를 가져다주는 시장 만능론으로 스스로 무장해 버리는 것 같아요.

 최근에 (노대통령이) 발언하는 거를 보면, 속류시장 만능론이죠. 가장 위험한... 내용을 잘 모르면서 시장이 다 해결할거란 거라던가, 또는 노동자, 농민들의 이기주의가 문제다. 그거에 대해서 온정주의적 태도는 객관이 아니다. 라는 식의 발언을 막 하게 되고...

 신: 그 말씀 하시니까 생각나는 게, 그 속에서 정태인 선생님 같은 경우는 인수위 초기부터 지금까지 소위 말하는 성장론에 제동을 걸고 다른 쪽의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일관성이 있으신 건데, 그러면 청와대에 있을 당시에 구체적인 역할이랄까요. 정태인 선생님의 약력을 볼 때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라고 나오는데요. 그 직책에서 실제로 역할이 무엇인지.. 일반인들로서는 좀 궁금해지는데요.

 논: 동북아 위원회를 거친 후에 국민경제 비서관으로 옮기셨죠?

 정:  ‘동북아’란 것은 굉장히 먼 미래고 따라서 이 정부 임기 내에서 성과를 얻는 건 불가능하죠. 대체로 이론이나 인력 개발하고 이렇게 가게 되는데 대통령은 아무래도 뭔가 사업을 원했지만... 그러나 실제로 동북아 위원회나, 국민경제비서관에 있을 때의 역할에서는 별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은 동북아위원회에 있을 때도 제가 새만금도 했고, 스크린쿼터도 봤고, 이정우 선생한테 떨어지는 중요한 일은 제가 손발이었기 때문에 제가 동북아위에 있는 박사들이랑 함께 같이 처리를 했거든요. 다르지는 않지만, 국민경제비서관이라는 직책자체는 좀 미묘한 면이 있어요. 사실은 청와대나 행정부에서 자기 영역 밖을 건드리면 굉장히 문제가 됩니다. 근데 ‘국민경제’ 그 이름자체는 우리가 경제에 다 개입할 수 있게 되어 있거든요. 초기에 내가 너무 많이 건드려서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긴 했는데... 굳이 그걸 세력문제로 보자면은, 밀어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저 쪽 입장(김병준 정책실장 등)에서 보면, 더 위험해 진거죠. 제가 바로 옆으로 가버렸으니까...하하..

 논: 포지션으로 비유하자면, 리베로같이 전천후 역할을 했다는 거네요?

 정: 그러니까 모든 정책을 내가 다 건드릴 수 있는 발언권을 일단 가질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에(물론 보좌관이 자기 마음대로 했지만) 어쨌든 그거는 껄끄러운 거죠. 처음에 제가 국민경제 비서관으로 그러니까, 헌법기관인 자문회의로 갈 때 김병준 쪽에서는 비서관 신분을 떼버리고 사무차장, 그냥 관료로서 지내게 하려고 했어요.  물론 대통령한테 얘기해 가지고 비서관으로 간 건데, 근데 뭐 기간이 2월에서 5월까지 이렇게 석 달 밖에 안됐거든요. 당시 한일 FTA를 대통령이 지시를 했고 한일 FTA를 재개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걸 검토하는 게 삼개월동안 할 수 있었던 일의 다였어요.

 신: 노대통령에게 일종의 개인 경제가정교사, 그런 역할 하신적은 없습니까?

 정: 아니에요. 그러니까 후보도 아닌 시절에는 그런 것도 했죠. 아무도 없었으니까. 근데 대통령 당선 이후 초기의 생각은 이랬던 것 같습니다. 그 분은 내각을 두 개 갖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재경부 쪽 내각, 이정우 선생 쪽으로 있는 동북아위원회... 이렇게 두 개의 균형을 맞춘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양쪽을 계속 대립시키면서 양쪽 의견을 들었다라는 점에서는 형식적인 균형을 취했죠. 그것도 사실은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에요. 대통령이 전문가가 아닌 한 어떻게 그걸 판단하겠어요? 근데 아시다시피 나중에  저하고 이정우 선생이 나가면서 균형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 자리를 완전히 재경부가 채웠죠. 2005년 9월 이후에는 청와대 내 경제비서관은 전부 재경부 출신이었어요. 지금 아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한명도 없으니까 완벽하게 재경부 논리대로 가고 있는 거죠.

 

 

논: 평소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유시민 장관하고는 지금도 막역한 사이지요?

 정: 네

 논: 그리고 어떻게 뭐 경제적 관점이라든지 이런 것도 예전부터 같이 공유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정: 다르죠.

 논: 아 달랐나요?

 정: 대통령 후보 시절에 노대통령이 그랬어요, ‘유시민씨는 자유주의자고 정태인씨는 좌파죠?’ 그러더라구요, 하하...그 정도 차이가 있어요.

 논: 그래요?

 정: 시민이가 훨씬 저보다 자유주의죠. 그래도 유시민이 추구했던 건 독일식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유럽형에 대한 거는 강했죠.

 논: 유시민 장관이야 워낙 유명한 노무현과 정치적 한 몸이긴 하지만...어쨌든 예전의 언행이나 저술 등을 보면, 분명 한미 FTA의 위험성이랄까, 이런 것에 대한 기본적인 분별력은 갖추었을 것이라 짐작은 하거든요? 재경부같은 무대뽀 친미주의자는 아닌거 같은데요. 그런 점에서 내각에서 나름 한미 FTA에 대해 제어하는 역할 같은 건 하지 않았을까요?

 정: (곤혹스러운듯) 시민이 이야긴 하지 맙시다. 시민이는 이라크 파병도 자기 소신은 반대지만 결국 뭐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으로 갔으니까. 자기의 사명이 대통령과 끝까지 가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한미 FTA의 문제를 알아도 얘길 안했을 거예요. 실지로 보건복지부장관이 되서 한 일을 보면은 상당히 신자유주의적인 거예요.

 논: 저도 사실 유시민 장관의 대중적인 경제학 저서들을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요. 최근에 들어와서 대통령의 행적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보면, 이걸 뭘로 봐야겠습니까? 변절이라 이름붙일 수 있나요?

 정: 유시민 이야기는 이 이야기만 할게요. 이념과 정책 사이에는 거리가 먼데, 이념을 정책화 하는 노력을, 정말 집요하게 그 이론을 파고들고, 정책화 할 능력도 있고, 집요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기존의 정부에 있었던 그런 정책들에 많이 따라갑니다. 시행하기 편하고, 많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성과를 낼 수 그런 정책들이죠. 유시민 장관이 제가 보기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어서 한 일은, 국민연금을 자기가 원래 생각했던 대로 끌고 가려고 노력했던 게 자기 생각이고 나머지는 그냥 이제 추진해왔던 대로 가도록 그만그만 체크만 하는, 그랬을 거에요. 국민 연금에 생명을 다 거니까, 실제로 중요한 일이고... 내가 보기에 유시민장관이 추진한 국민연금은 그렇게 썩 나쁜 안은 아니에요.  나머지는 그냥 정부가 해 왔던 대로 추진해 왔던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이죠.

 세계화, 신자유주의 한미FTA

 

 

논: 본격적으로 한미 FTA와 관련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거의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정: 굳이 이야기하자면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거는 뭐 자본주의 역사와 같이 했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건 80년대 이후의 정책기조를 나타내는 거니까 구분은 되지만, 지금은 같이 쓰죠. 신자유주의라는 게 민영화, 규제완화라는 건데 그것이 금융국제화와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에 두 개의 현상을 다 포함하는 겁니다 

논: 그게 이제 신자유주의가 미국에서 발원을 해서 전 세계적으로 갔는데, 유럽도...

 정: 영향을 받았죠.

 논: 네. 물론 남미의 다른 움직임도 있고 그렇긴 하지만. 이렇듯 신자유주의는 대세처럼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확산은 정말 어떤 대안은 없는지, 신자유주의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 이외에는 근본적 대안은 없습니까? 

정: 금융국제화라고 하는 거는 지금 대세죠. 이미 주식시장이라는 직접 금융시장을 중요한 자본조달, 자본의 흐름이라고 인정을 했기 때문에 대센데... 이제 그러면 그것에 대한 전 세계적 통제, 전 세계 시민의 삶과 연결되는... 그런 규제 장치가 거기에 따라야 하는데..... 과거의 국민국가시대의 가령 포드주의라던가 이런 식의 안정된 체제처럼 만들어져야 할 텐데 지금 그런게 없잖아요. IMF라는 건 금융을 통제하는 기관이라기 보단 그걸 밀어주는 기관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인 금융자본의 우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데, 당분간은 그렇게 갈 것 같습니다. 왜냐면 세계적인 규제라고 하는 게 기껏해야 토빈세정도의 정책 아이디어 수준에서 나오고 있는 정도입니다.  

어쨌든 금융국제화가 전 세계적으로 관철되고 있지만 문제는 그 때문에 여러 가지로 삶의 질이 악화되기 때문에 결국은 어떤 식으로라도 규제가 필요하긴 합니다. (지역주의의)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서 EU나 중남미 움직임도 그 하나의 예로 볼 수 있죠. 또 아시아에서의 지역주의도 그런 맥락일겁니다. 그러니까 세계정부 이전의 과도적 형태라고 볼 수 있죠. 단선적으로 세계정부를 추진할 수는 없으니까... 그 보완적 형태로서의 지역주의라는 건 당연히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한미 FTA는 그런 맥락에서 보면은 미국이 아시아에서의 지역주의를 가로막고 미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죠. 아미티지 보고서에 바로 나타났고 그 미국 전략의 교두보가 한미 FTA죠. 우리 쪽에서 한미 FTA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점들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 거 같고 그냥 즉흥적으로 한 거죠.

 논: 한미 FTA 추진하는 사람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작년인가요, 시사저널에서 노대통령이 한미FTA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 글이 있습니다. 노대통령이 여러 기회를 통해 극찬을 했다는 배기찬씨의 저서 [코리아 다시 생존에 기로에 서다]라는 책인데요. 중국과 미국의 국력이 비슷해지는 30년 후에는 우리가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텐데 그때까지 미국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서 신뢰를 쌓고 실력을 길러야 한다. 대략 이런 논리의 일환으로 노대통령이 급속히 ‘친미’로 선회하고 한미 FTA를 체결하려 한다고 하던데 어떻게 보십니까? 

정: 그건 대통령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 한 것뿐이지... 난 그 논리가 그렇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 않습니다. 일단 먼저 결정을 했어요. 이건 해야 되겠다. 이건 아마도 제일 큰 내 업적으로 만든다였어요. 굉장히 큰 정책이었기 때문에...

논: 근데 배기찬씨의 그 책을 보면요 전반적 기조가 아까 정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아시아 '지역주의'를 오히려 더 강조하고있는 듯한데.. 한미 FTA는 그 지역주의를 해체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고 했잖습니까?

 정: 그 친구의 논리는 대체로 미국 편승론이죠.

 논: 그러니까 오히려 편승을 해서, 다시 말해 요즘 송영길 의원이 입버릇처럼 얘기한 원교근공 그런 논리로 지역 내에서의 힘의 균형을 이루자는...

 정: 허허.. 지금이 봉건시댄가 원교근공이라는 얘긴데...  

논: 어쨌든 그런 맥락에서인데 한미 FTA가 아시아 지역주의를 해체한다면 그건 좀 모순된 거 아닙니까?

 정: 네. 그러니까 그 과정은 내가 짐작하기론 대통령이 먼저 정책적인 결정을 했지만, 이론적 명분이나 합리화 부분이 아직 덜 나왔을 때 배기찬씨가 그걸 내니까 그것으로 포장된 거죠. 해양 세력 대 대륙세력이라는 대립구도 그런 내용은 배기찬이 옛날부터 이야기했던 지론이거든요. 사실 일본에서 베껴온 그런 얘긴 거예요. 일본 애들이 그거 만들어 가지고 자기들이 올라가야 된다는 논리였다구요. 그니까 아직은 중국이 약하니까, 그리고 앞으로 중국이 세지면 그걸 견제해야 된다고 하는... 

논: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 쪽으로 관성적으로 기울어지니까 그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으로 실력을 키우고 중국으로 휩쓸리는 방향을 나름대로 견제를 해야 한다....그런 내용인거죠. 

정: 네. 그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중국위협론과 배기찬 이야기(해양국가론)가 결합이 된 거에요. 그래서 더 신념을 갖게 됐고,  그 이후에 더 극단적으로 가서 진보를 때리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본인의 신념이 미화됐고, 지금은 약간 좀 이상하죠. 누구랑 논쟁해도 이길 수 있다, 이런 정도까지 자기 신념이 강화됐기 때문에...

 

논: 중국 얘기가 나와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사실 한미 FTA 추친 동기 중에 가장 강력한 근거가 이른바 중국-일본 사이의 '샌드위치 이론' 아닙니까? 그 얘기 들으면 살짝 긴장되긴 하거든요? 하하..

 

정: 하하...사실 샌드위치가 아닌 나라가 어딨습니까? 가령 5위면은 4위와 6위 사이의 샌드위치고 10위면 9위와 11위 사이의 샌드위치죠. 물론 지금 우리 상황에 보면 중국이 워낙 빨리 전 부분에서 성장하고 큰 나라이기 때문에 좀 특징적인 경우가 있긴 하지만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후진국 중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여태까지 일본밖에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 그만큼 올라가는 게 어렵다는 얘기거든요.

 

중국은 지금 경제성장은 많이 됐지만 사회와 경제 성장 사이의 마찰이 아직 터지지 않은 상태에요. 은폐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터져나오면 성장률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제조업에서 이렇게 빨리 따라가도 끝에 가서는 확 이렇게 뚫고 나가기, 즉 추월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논: 어떤 점에서?

 

정: 내가 자주 예를 드는 게 있어요. 94년 내가 버클리에 가 있을 때, 실리콘 밸리에는 상설 전시관이 있어요. 거기에는 물론 가전도 있는데, 그 때 소니하고 삼성이 나란히 있었어요. TV로요. 근데 보기로는 전혀 차이가 없어요. 그리고 제가 볼 때도 그 때 이미 품질 차이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나 그 때 삼성 가격은 소니의 반이었어요. 삼성 TV가격이 소니 가격이 되는데 10년 걸렸어요. 그게 인지도... 그러니까 싸구려라고 하는 인식이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이거든요. 중국산은 뭐 누구나 싸구려라고 생각하고 '싼 맛에 산다'라는 건데, 그것이 고급으로 인정받는 데는 굉장한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대통령한테 2월 26일날 들어가서 한미 FTA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대통령의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는데 얼마나 걸리냐," 이건 중국 위협론이 굉장히 대통령을 사로잡고, ‘난 그것 때문에 한미 FTA를 한다’라고 적어도 그 때는 확신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내가 "최소한 10년 걸립니다" 했더니, '아니다 훨씬 빠르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니까 어떤 과정에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입력이 되어 있더군요. 나중에 배기찬이 만났더니, 아 청와대에서 3년이라고 본 다라고 하더라구요. 하하... 진짜 말도 안 되는 무식한 놈들이라 내가 그랬어요. 3년이면 이제 다 됐어요. 2005년 2월에 한 얘기니까

 

논: 하기야 뭐 50점 짜리가 70~80점되기는 금방인데 90점 이상에서 올라가기는 참 어렵긴 하죠...하하....

 

정: 우린 아직도 일본 제품을 못 따라 가고 있어요. 가격까지 집어넣은 품질 경쟁력이라고 하면은 제조업에서 중국이 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품질만 놓고서 보면 아직까지 기술수준에서 많이 떨어져 있거든요. 물론 빨리 쫓아갑니다. 우리가 일본 쫓아간 것보다 빨리 쫓아가는 걸 인정을 해야되요. 왜냐면 중국에 초국적 기업이 들어가서 막 기술이 전파되고 있거든요. 근데 내가 보기엔 이것도 끝났어요. 시장과 기술을 바꾼다는 이 중국 전략은 이제 거의 끝이 났어요. 요소비용이 올라갔고 중국 스스로도 그런 방식으로 더 이상 못 간다라고 판단을 하고 있는 거 같고...

 

신: 결론적으로 보면 샌드위치 이론, 중국 위협론이 지나치게 과장됐다 이렇게 보시는 거군요.

 

정: 네, 일단 2010년 2011년경에는 중국이 위기가 오고, 그건 우리의 위기도 될 거에요. 중국이 성장하는 게 우리한테 그렇게 위협이 아니에요. 오히려 중국의 위기가 우리의 위기지 그러니까 시각이 거꾸로 되어있는 거예요. 허허..

 

경쟁력 강화론의 허와 실

 

 

 

논: 국민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어필하는 시장개방논자들의 논리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시장개방은 불가피하다라는 얘기입니다. 또 '이마트, 코끼리 밥통같은 거 봐라, 그 경쟁과 도전에서 우리는 많이 이겨왔다' 등등... 대통령 담화문이나, 찬성론자들의 광고에서 보면 이런 '승리론적 관점'으로 우리에게 근사한 자신감을 막 불러일으켜주거든요. 이런 어필이 얼마나 근거가 있습니까?

 

정: 우리가 가진 신화 중의 하나가 중국이 따라온다는 것도 있지만 제조업이 우리가 미국보다 강하다고 하는 신화도 또 엉터립니다. 제조업 역시 미국이 최고에요. 평균노동, 물적노동 생산성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가 40퍼센트 밖에 안 됩니다, 일본이 한 80퍼센트. 근데 우린 이상하게 일본이 우리보다 제조업이 강하다는 건 다 인정해요, 근데 우리가 미국보다 제조업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잘못이에요. 특히 우리나라의 취약 지구가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기계 부품, 석유 화학, 정밀 화학 이런 데거든요. 그건 뭐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하다고 이야기하는 있는 섬유나 자동차나 반도체에서도 고급제품은 다 미국이에요, 철강도. 근데 철강 같은 취약 지구는 우리가 그럴만한 대표적인 대기업과 연관된 생산체계라던가 R&D(연구 개발)체계가 없기 때문에 한미 FTA로 인해서 훨씬 더 타격을 받을 거거든요. 오히려 더 그 제조업 쪽은 범용으로 특화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요. 그러니까 최종재는 우리가 고급품을 생산하지만 중간 부분에서 범용으로 특화를 해버릴 가능성이 높고, 그거는 바로 중국과 경쟁하게 되는 부분이죠. 찬성론자들의 얘기가 미국은 서비스, 우리는 제조업이 비교우위 특화 부분인데 제조업쪽을 좀 더 따지고 보면, 미국은 첨단분야 특화이고, 우리는 범용 분야 특화입니다. 근데 이 범용 부분은 중국이 무섭게 따라오고 있는 분야거든요. 그러니까 중국 추격 따돌리자는 한미 FTA가 오히려 중국과의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드는 꼴로 되어버린거죠.

 

논: 그런데 언론에서 보면 자동차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 같은 지역의 몰락 장면도 나오고 그런 모습들 보면 이제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이제 자동차 산업이 막 무너진 거 아니냐 그런 생각도 들거든요. 또 무역적자가 또 엄청나지 않습니까? 미국은 이제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아니다. 서비스나 금융 이런 걸로 먹고 사는 나라다 이렇게 해서...

 

정: 물론 비교우위로 보면 서비스, R&D 그리고 고급 제조업 이렇게 돼 있죠. 그러니까 고용의 문제가 당연히 발생하는 시스템이다.

 

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 최고다... 이런거죠?

 

정: 네. 여전히 R&D(연구개발 체계)가 살아있기 때문에 첨단 분야는 절대로 안놔요.

 

논: 그러면은 솔직히 이런 의문이 들어요. 경제적 약자층이나, 시민단체 등이 주로 한미 FTA를 격렬하게 반대합니다. 또 그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한미 FTA가 체결하게 되면 농업은 물론이거니와 특화되지 않는 분야의 제조업 쪽 업체 예컨대 제약 같은 분야 말이죠..

 

정: 제약도 정밀화학이거든요. 그쪽 화학계통하고 기계계통...

 

논: 그러니까 지난번에 한미 FTA 찬성 단체들의 통 광고 보셨죠? 사용자 단체들이 다 이름 올려져 있거든요?

 

정: 찬성하죠.

 

논: 네 전부 그 단체들은 한미 FTA 전부 다 환영하거든요. 근데 어떻게 보면은 내가 제약 산업의 사장이라면 택시 기사분보다 더 격렬하게 항의하고 결사반대로 나갈 것 같거든요. 근데 어떻게 그 사람들은 다 조용하고 오히려 찬성 쪽에 이름을 걸고 있죠?

 

정: 하하하.. 여전히 우리나라의 국가 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거죠. 내가 현대 같으면 한미 FTA에 대해서 별로 뭐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걔들이 걱정하는 거는 혼다나 도요타가 수입되는 거에요. 근데 지금은 괜찮은 것이, 혼다나 도요타가 미국에서 팔기도 바쁘거든요. 워낙 인기가 있어서, 지금 미국에서 소나타 굉장히 고전합니다. 그래서 내가 한미 FTA에서 그야말로 안정적 시장을 확보하면 관세 8퍼센트 이것저것 빠지면 10퍼센트 가격 인하의 요인이 생기거든요. 그럼 서부지역에 혼다가 라인 깔아가지고 수출하면 어떡할거냐, 그건 아직 시간이 걸린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가장 특혜를 볼 업종인 현대자동차마저도 별로 얻을 건 없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정부 엉터리 추진, 졸속 추진의 예가 픽업을 수출하면 된다라는 말을 한 거였어요. 초기에 그랬죠. 근데 픽업은 우리가 생산 한대도 안한다. 그게 알려졌어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 한미 FTA 맺으면 픽업 라인을 깔 것이다 그랬거든요. 현대가 그랬다고 그리고 지금 신문에도 나요, 중장기적으로 깔 수도 있다라고..

 

논: 어떤 전경련 간부는 5년 안에 깔 기업이 있다, 이렇게 말하던데요?

 

정: 기아가 아마 뭐 그런 이야기를 했나 모양인데 그래서 물어봤더니 '아 이건 정부가 하라는 거 하는데 뭐 얘기하는 거야 뭘 못 하냐' 이러더라구요. 근데 문제가 뭐냐면 우리나라는 수요가 없어요. 픽업은 미국에서 승용차처럼 타고 다니잖아요. 근데 우리는 그 수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생산을 오랫동안 안 했고, 그래서 그 기술이 없어요. 근데 자동차는 대표적인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 : 생산을 늘리면서 학습에 의해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산업이거든요. 일단 라인깔고 초기 나온 거 가지고 좀 저가로 국내 수요를 맞추면서 생산이 양산 체제로  바뀌면서 기술이 올라가고 품질이 올라가면 그 때 수출을 할 수 있는 이런 거거든요.

 

논: 그럼 그 픽업 같은 경우에는 미국 시장에만 있습니까 아니면 중국에나 다른 데는 없나요?

 

정: 다른 데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미국이 픽업과 대형 SUV를 특화를 했어요. 그게 미국 자동차가 다시 위기에 빠진 원인이에요. 대형차들이거든요. 일본차와의 경쟁에서 우위가 있는 부분에 특화를 한거죠. 근데 오일 쇼크가 왔잖아요. 80년대 자동차 산업 위기와 모양이 똑같아요. 오일쇼크에 의해서 위기에 빠져버렸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픽업을 생산해서 경쟁력을 가지는데 최소 10년 걸린다는 게 내 판단이고, 현대는 지금 하이브리드카에 투자를 해야되요. 그 다음에 렉서스급을 빨리 만들어서 소나타가 세계에서 인정받을 만큼 올려 놓는게 지금 초미의 과제에요. 현대가... 근데 최소한 10년 걸릴 장기 투자를 픽업라인에 한다? 허허.. 이건 말이 안되요.

 

신: 국내시장에서는 미국이랑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픽업 생산은..

 

정: 안 팔리니까…

 

신: 그러면 생산한다면 국내 시장은 포기하고 완전 수출용으로만 만드는 거네요? 

 

정: 픽업을 깐다면 미국에 가야죠. 픽업부품이 발달된 데는 미국이지 한국이 아닙니다.

 

농업생존의 길

 

논: 우석훈씨 블로그를 읽다보니 좀 인상적인 구절이 있던데요.. 거기 보니까 이번 한미 FTA를 바라보는 대중적 심리 중에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다'라는 이기적인 심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꼬집더라구요. 예를 들자면 '농업이 죽어야 우리가 산다'라는 식 인거죠. 어차피 죽어가는 농업이고 그걸 희생해서 비교 우위에 있는 공업을 특화하면 다 좋지 않냐 하는 속류적 비교우위론인거 말이죠. 인터넷 글 보면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농업에 퍼붓는 돈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이참에 경쟁력 있는 것만 남기고 정리하자 이런 식의 이데올로기가 퍼져있더라구요. 또 그러면서 비싼 농산물에 대한 원망도 양념으로 치고요.

 

정: 소비자와 생산자를 가르는 전술을 지금 정부가 사용하고 있죠.

 

논: 그게 어느 정도 상당히 어필을 하고 있는 거죠.

 

정: 네 주부들 입장에서 보면 한우가 너무 비싸거든요. 이게 딱 같이 진열 돼 있는데 호주산의 세배거든요 한우가.

 

논: 아니 그러니까 소비적 후생 문제가 아니라 농업이라고 하는 산업을 우리가 버리고 좀 더 고부가가치의 그런 산업으로 나가야지만 우리나라가 비전이 있다... 뭐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그건 정부가 농업정책을 지금도 한미 FTA 대책으로 내세운 게 역시 규모화, 기계화거든요. 이게 30년 전부터 그랬어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그런 전략도 고집하고 있어요. 근데 미국 경작지가 우리가 100배입니다. 그리고 땅 비옥도도 높아요. 그러니까 농업은 뭐 그런 전략이라면 없어져요, 아무리 돈을 때려 부어도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전략 자체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전략을 완전히 바꿔서 농업을 살릴 생각을 해야 되는데, 그 전략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중국제가 우릴 따라오니까 우리 임금 낮춰서 경쟁해야 된다는 논리와 똑같습니다.

 

논: 그럼 규모의 영농이 대안이 아니라고 하면 어떤 게 있겠습니까?

 

정: 우리 소득에서 먹는 거에 쓰는 돈이 굉장히 적어요. 외식비가 들어가는, 남자들 술 뭐 이런 거에서 왕창 나가는 거 빼고 하하... 그걸 제외하면 식비로 들어가는 게 굉장히 적거든요. 두 배를 지불한다고 해도 '안전하다'라는 거만 믿을 수 있다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미국산 농산물의 특징은 카길이나 타이슨푸드가 대량생산하는 거고, 유전자 변형도 하고, 이런 것들이기 때문에 안전성 면에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 말대로 과학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불안한 식품들인 건 틀림없거든요.

 

논: 지난 번 토론 때 보니까 송영길 의원이 미국소의 광우병이 사람들이 먹으면 당장 탈 날 정도로 위해한 거라면 그 몇 억의 미국 인구가 자국산 소고기를 어떻게 먹느냐. 이런 말을 하던데요.

 

정: 그거야 말로 웃기는 얘긴데, 영국에서도 그랬어요. 영국에서 광우병 발생 했을 때, 영국농림부 장관이 딸 데리고 나와서 시식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광우병 또 발생했어요. 그리고 자꾸 인간 광우병이 늘어나면서 결국은 막은 건데, 현재 발생 안 한 상태에서는 규제할 길이 없어요. 타이슨 푸드 같은 기업들이 너무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로비를 해서 의회를 장악하고 계속 미디어에서는 문제없다고 나가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거죠.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저거 먹고 나 죽을 수 있다면, 그리고 이건 약도 없다면 누가 그걸 먹겠어요? 근데 광우병은 잠복기가 10년에서 20년이잖아요. 20년이에요. 지금 안 나타난 게 당연해요.

 

신: 예전에 뭐 DDT나 고엽제도 당시에는 당시 지식수준으로는 위험한지 아닌지 잘 몰랐죠. 몇 십 년 후에나 뭐...

 

정: 미국에도 광우병 발생한 지 얼마 안됐어요. 소의 광우병이 아니라 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는 거는 20년이 걸려요.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다 하는 거지, 그거는 책임질 수 없는 얘기죠. 그건 유전자 변형 농산물도 마찬가지죠. 아까 얘기 계속 하면은, 그런 안전성을 보장해 주는 게 된다면 비싸도 사먹을 거예요. 그게 가능한 것이 농협이 그 역할을 할 수가 있어요. 농협이 전국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전산망이 다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농협이 지금처럼 고리대금업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품질 인증기관이 되고 도농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되어야 해요. 전산망이 다 되어 있으면 이건 분명히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품질 인증에서 농협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 도시민들이 믿고 그 다음에 신선도, 안정성 등에 대해 농협이 품질인증을 할 정도로 통계 등을 통해 품질 관리를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리고 농촌을 관광 쪽으로 돌린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농업이 없는 농촌관광이란 불가능 합니다. 사람이 안 살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해요. 정주 공간으로써 농촌을 만들려면 일단 농업을 살려야 돼요.

 

신: 다른 맥락인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농업을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얼만큼 팔고 비싸게 먹고 그런 개념보다도 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령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식량 안보니 뭐 그런 얘기도 하지만은, 실질적인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진보 진영 쪽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주장을 이야기한다면은...

 

정: 식량안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는 맞는데, 지금은 논쟁의 구도라는게  경제에 갇혀 있거든요. 근데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신: 경제적으로 가능하다는 겁니까?

 

정: 네. 충분해요.

 

논: 식량 안보론 얘기 나오면 산업론자들은 코웃음 치던데...

 

정: 네. 코웃음 치죠... 코웃음 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거죠. 농업, 건강에 대한 거는 예방 조치를 취해야 되는 거고, 가장 위험할 때를 대비해야 되는 거거든요. 에너지하고 식량이 그래요. 그걸 시장에서 언제나 공급할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시장이 움직일 거라고 하는 믿음 속에서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가령 우리가 신선도나 안전성 측면으로 접근해서 농업을 개편했을 때, 곡물이 문제가 된다면 그러면 저기 예컨대 하바로브스크나 중앙아시아 쪽에서 이동한 한국인들이 많은 데,(러시아는 우리가 들어오길 바래요, 중국이 자꾸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거기 땅 많고  대규모 농장을 건설하면 되요. 곡물은. 우리가 이미 생산하지  않게 된 곡물은.

 

논: 말씀하신 농업의 개선방향으로 본다면 일본 쪽에서는 어떻습니까?

 

정: 일본은 원예농 비슷합니다. 농가의 소득에서 농업소득 거의 없고, 원예농과 비슷하고, 그냥 지키는 거죠. 우리한테도 개방 안 하려고 그러죠. 개방하면 한국에 의해서도 눌린다라고...

 

논: 한국 생산비가 훨씬 싸니까.

 

정: 네 땅값이나 임금이 더 싸니까. 기술은 아마 비슷할거고.

 

소비자 후생론의 허와 실

 

 

 

논: 아까도 잠깐 얘기 나오다 말았지만...또 한편으로 찬성론자의 이야기 중에 어필하는 것은 소비자 후생이거든요. 조선일보 보니까 웃기는 칼럼 하나 있던데 국민의 소원이 소고기를 마음껏 먹는 것이라고 선동하던데요. 어쨌든 관세 안 물리면 가격은 싸지니까..

 

정: 그러니까 처음에는 수출해서 이익을 본다고 하다가 그게 아닌 걸로 드러나니까 그게 소비자후생으로 바뀐 건데, 소비자후생이 정말로 중요한 거라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다 개방해버리면 소비자 후생이 갑자기 높아집니다. 제일 싼 물건이 다 들어올 거 아니에요.

 

논: 하긴 관세 문제는 아니지만 IMF 때 물건 엄청 쌌죠. 하하하..

 

정: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일본을 본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시절이 가장 좋았어요. 하하... 디플레이션 계속 일어났고 가격이 굉장히 다운 됐으니까... 문제는 소비자 후생이 소득으로 연결되는 거에 달려있다는 거죠. 소득이란 건 생산에서 옵니다 분명히. 생산이 소비되고, 투자와 생산이 소비로 연결되어 오는 건데, 우리나라의 생산과 투자가 없어지면 소비가 떨어져서 소비자 후생이... 가격이 떨어져서 소비자후생이 늘어날 조건은 됐는데, 소득이 떨어져서 오히려 그 소비자 후생도 이용 못하게 돼 버리는 결과가 오죠.

 

논: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립되는 이론도 사실 문제 아닙니까?

 

정: 소비자 후생이 생산에 어떤 영향을 미쳐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소득이 있어야 소비를 하는 거니까, 그 이야기를 생략해버리는 거죠. 거시적인 어떤 관점을 생략하고 하는 얘기에요. 두 번째는 경쟁효과를 이야기합니다. 수입품이 들어오거나 외국 기업이 들어와서 경쟁을 하면 좋아질 거다, 근데 경쟁 역효과라는 것도 있거든요. 경쟁할 수 있으면 좋아지는데 분명히, 경쟁을 못하는 부분은 독점이 되어버려요. 그럼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 소비자 후생이 떨어지죠.

 

의약품을 개방했으니 약값이 올라간다는 거는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제약기업하고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거든요, 오히려 미국 기업의 독점을 강화시켜 주는 거거든요. 개방이 경쟁강화 뿐만 아니라 독점 강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거거든요. 생산성 격차가 크면 독점 강화로 연결되요. 그럼 독점가격이니까 올라가고 소비자 후생의 저하로 연결되요. 그러면 꼼꼼하게 산업산업마다 일일이 따져가지고 독점 강화로 가는 부분하고 경쟁강화로 가는 부분이 어떻게 다를까, 어떻게 낮아지냐를 보고나서 이야기 해야지, 전체를 이야기하려면. 근데 경쟁강화로 갈 부분이라는 것이 우리 대기업들이 하는 부분일 거예요. 나머지는 독점 강화로 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그러면 양극화죠. 소득이 정체되거나, 제가 보기엔 약간... 한미 FTA가 소득에는 그렇게 영향을 못 미쳐요. 그러니까 (CGE 모델은 별로 믿을 게 못되지만) 하여튼 민주노동당 우리 팀에서 CGE 돌려보니까 0.22퍼센트 나왔어요. 10년내지 20년동안 GDP 0.22퍼센트, 그러니까 일 년당 0.02퍼센트 증가한다. 한미 FTA 효과가 그렇다는 거죠. 아무 효과가 없고 그건, 세계은행이나 OECD 보고서도 마일드(mild)한 영향을 미친다. FTA라고 하는 것이 '미미한' 또는 '온건한'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결론이 난 이야기에요.

 

논: 소득이나 생산적인 면에서 그렇게 미미한 영향을 얻는 대신에 거기에 따른 피해랄까 그런 것은 어떻습니까? 

 

정: GDP라는 것은 생산인 동시에 소득이니까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문제는 그 미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양극화 돼서 분배는 악화될 거다라는 거죠.

 

논: 양극화는 산업 구조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면도 있지 않습니까?

 

정: 물론 과거부터 일어났죠. 적어도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대체로 94년, 95년부터입니다. 그 시점이라고 하는 거는 김영삼씨가 자본시장 본격적으로 개방하면서, 그 이전에도 이데올로기적으로 개방의 이데올로기가 있었지만, 실제로 경제자체가 전면적 개방, 즉 선택적 개방이 아니라 전면적 개방으로 바뀐 건 94년부터예요. 그 때부터 심화됐고, 외환위기 때 극단적으로 벌어졌고, 한미 FTA는 그 양극화를 제도화 하는 거예요. 반영구적으로 제도화 하는 거죠.

 

논: 근데 거기서 이야기하는 거는, 양극화를 중국시장이 우리 같이 저부가가치 산업을 이제 먹고 들어가니까...

 

정: 이거죠, 중국과 FTA를 하면 양극화가 진행되지만 미국과 FTA를 하면 양극화가 진행되지 않는다. 그거죠? 그 논리적인 기초는 헥셔-오린 정리예요, 비교우위론이에요. 헥셔-오린 정리에 의해서 우리나라가 저부가가치 산업을 특화를 하면, 저부가가치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저부가가치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양극화는 해소된다, 이거잖아요.

 

 

일단 단순하게 비교우위론이 관철되는 것은 아니고, 현실에서. 그리고 그거를 그대로 받아들인 다면은 정부정책하고 완전히 반대로 가는 거에요. 우리나라가 범용제품, 저부가가치 특화화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에요. 그러면 원래 목표는 뭐에요, 한미 FTA를 통해서 첨단화하고 경제를 선진화 한다는 거죠. 근데 거꾸로 우리는 자기모순에 빠진거죠. 범용에 빠져서 중국하고 경쟁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런데 실제론 그렇게 되진 않아요. 부분마다 달라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살아남는 분야는 계속 커질 것이고, 밑에 부분은 사실상 없어지는 거죠.

 

이미 비교우위론이 여러 가지로 반박이 됐잖아요. 경쟁 우위이론이라던가 전략적 무역이론으로 반박이 됐는데, 비교이론이 그런 힘으로는 작용이 되는데, 실제 현실은 안 그렇거든요. 현실에서 실제로 안 그렇게 되는 이론이 뭘까가 경쟁 우위 이론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 전략적 무역이론이에요. 이런 이론적 발전을 완전히 무시하고 리카도로 돌아가가지고 양극화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건... 허허허.. 리카도는 비교 이론 그거잖아요, 전 세계가 다 똑같아진다는 거.... 임금도 수렴하고 말이죠. 하하.. 그걸 가지고 양극화를 부인하면은 정말 천박한 거지. 시장이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이야기 동어반복 한거죠. 그걸 한덕수? 하버드 대학교 박사가 이야기한 걸 보면 정말 한심해서... 허허허.. 그걸 대통령이 또 다시 반복하고... 우리 경제학 수준은 정말 천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금..

 

신: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강자들의 보호무역이다. 이런 말도 그런 맥락인가요?

 

정: 그건 뭐 스티글리츠.. 같은 사람의 저서에서, 정확히 나오는 거죠.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평등한가?

 

논: 이번에 한미 FTA에서 또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인데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지 않습니까? 

 

정: 아까 내가 맨 처음 이야기한게 금융 국제화를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정부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관철은 된다. 그러나 지역주의로 갈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게 뭐냐면, 그런 국제화가 되면서 초국적 기업의 이익이 관철이 되는데... 그걸 유일하게 통제하는 것이 국민국가에요. 그 국민국가의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투자자-국가소송제에요. 그러니까 국민국가의 사법체계 를 무시하는 거죠.

 

논: 그런데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기업도 그것으로 인해서 보호가 되고 예컨대 송영길 의원이 그 사안 나오면 자동응답기처럼 중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호텔업자가 쫓겨난 예를 들던데요..

 

정: 그 자체가 아주 단순한 사고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근대 경제학의 세계이기도 한데, 모든 건 평등하다, 교환은 평등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가 싫으면 교환 안 하면 되는 거니까, 평등하다, 시장은 평등하다는 그 논린데, 실제로 세상은 평등합니까? 불평등합니다. 권력관계가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형식적으론 평등한 계약을 맺었어도, 사실은 불평등, 이게 노자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에요. 나라와 나라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형식적으론 평등해요. 투자자-국가소송제는 미국기업도 이용하고 우리기업도 이용할 수 있어요. 그러나 권력 관계가 있어요. 힘이 달라요. 한국 기업이 미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을까요?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느냐라는 건 권력관계입니다. 여태까지 미국 정부는 한 번도 안 졌어요.

 

가령 이런 게 있을 수 있어요. 삼성의 반도체 산업이 오염물질을 굉장히 많이 쓰는 공해산업이에요. 반도체를 계속 세척해야하기 때문에 화학 물질을 많이 써요.(그것을 문제 삼아 이천에 못간 것도 그것 때문인데) 미국이 환경규제가 약한 나라인데, 환경규제를 강화시켰다, 이건 투자자-국가소송제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정부정책에 의해서 이윤이 침해됐기 때문에. 근데 삼성이 미국 정부에 대해서 소송을 한다? 나는 안 할 거라고 봐요. 현명하다면.

 

근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투기자본은, 예컨대 론스타는 지금 한미 FTA에서 맺어지면 분명히 소송제기하고 론스타가 이깁니다. 이거는 멕시코의 메탈클래드 사건이랑 같아요. 이건 정부가 약속을 했거든요. 메탈클래드건이 이거에요, 사실상 법적 권리를 갖고 있는 지방정부에요, 근데 중앙정부, 연방정부에서 약속을 해 줬거든요.

 

논: 매탈클래드사건이라면 멕시코 분지에서 매탈클래드 미국 회사의 폐기물 때문에 암 발생 같은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그 때문에 지방정부가 허가를 취소했다가 거액의 배상을 물어준 사건이죠?

 

정: 네. 쓰레기, 암발생... 근데 시 정부에서 허가를 안 내준거거든요. 근데 연방정부는 약속하고 시 정부가 안 맺어 준거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해서 메탈클래드가  이긴 겁니다.

 

논: 근데 우리 정부는 그것을 바로 멕시코가 질만해서 졌던 예로 들던데요.

 

정: 그러니까 연방정부가 약속하고 시 정부가 거부했기 때문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 라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그 기준으로 본다면) 다 걸려요. 내가 외자 유치를 2년동안 총괄하면서 담당해서 압니다.  론스타 마찬가지에요. 분명히 정부가 외환은행 처리하기 위해서 막 끌어들였거든요. 약속했다고. 근데 지금 약속한 걸 잘 들여다보니까 불법이에요.(근데 지금 적당히 덮으려고 하지만.) 근데 이 불법이라는 걸로 뭐 어떻게 하기 힘드니까 세금을 때리는 걸로 간 거 아니에요. 이건 적법이에요. 근데 이걸 투자자국가소송제로 하면 어떨지 몰라요. 특혜 준다고 약속한 걸 어긴 게 됐거든요. 메탈클래드랑 똑같아요, 구조가.

 

 

그런 힘의 불균등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기업도 보호하는 거니까 똑같은 거다, 심지어 미국 투자한 우리 기업의 양과 한국이 투자한 미국 투자기업을 GDP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더 많이 투자했으니까 우리가 더 유리하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미국이라고 하는 미국 정부나 미국 기업의 힘을 무시한 처사고, 특히 한국에 들어온 미국 자본의 성격이 투기 자본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국내 제도하고 마찰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무시한 처사고..

 

송영길이 요새 들고 나오는 중국 문제는, 아니 중국하고 미국하고 똑같은 걸 맺어야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안돼요. 중국도 안 원할 거고, 그리고 우리도 일반적 원칙을 정할 때는 이런 초국적 기업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투자자-국가소송제는 우리는 포기해야 돼요. 다른 나라와 협력을 하려면.

 

논: 근데 우리는 정부가 먼저 그 안을 들고 나왔잖습니까?

 

정: 그러니까 바보 같은 놈들이죠. 미국 거는 글로벌 스탠다드고 우리가 그걸 하면은 우리나라가 선진화 되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막연하게.

 

논: 근데 다른 나라와 FTA를 맺었을 때도 다 그런 조항은 있다라고 얘기하잖아요.

 

정: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조항이 달라요 일단,

 

논: 미국과 맺는 조항과 다른 나라의 조항이 다르다고요?

 

정: 네. 일단 다른 나라와 맺은 조항에는 국내법 소진절차가 들어 있어요. 국내에서 먼저 소송을 하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그쪽으로 가는... 그래도 독소조항은 독소조항인데.

 

논: 그럼 국내법은 삼심제니까 사심제나 마찬가지네요?

 

정: 그렇죠. 사심제죠. 근데 지금 미국과 맺은 건 단심제에요. 우리 법은 하나도 관여 못하는 단심제에요. 그 다음에 또 하나의 문제는 여태까지 맺은 나라는 아까 얘기한 세력관계에서 큰 문제가 없어요. 칠레가 우리나라에 와서 소송 얼마나 하겠어요. 싱가폴이 와서 또 소송을 얼마나 하겠어요. 그러나 미국은 달라요. 그리고 중국하고 할 때 그게 그렇게 필요한지. 그러니까 EU형으로 충분해요, G-to-G(정부 대 정부)거든요. 일단 문제가 있다면은 정부끼리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훨씬 중국하고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지.

 

송영길이 예로 든 그 우리나라 호텔이 있잖아요. 호텔이 감히 중국정부를 상대로 투자소송을 제기해? 물론 철수를 할 마음을 먹으면 할 수도 있죠, 그게 얼마나 큰 호텔들인지 모르겠는데 지면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죠, 10억원 가까이 들거든요. 그걸 하면서 한다? 그러니까 힘의 불평등, 나라마다의 특수성을 반영해서 FTA를 맺는 거지 미국형이 글로벌 스탠다드이기 때문에 이걸 다 발전시켜야 된다, 이건 미국 입장입니다.

 

논: 지금 그러니까.. 우리나라 관료들은 다 꿈속에서 살고있다는거나 마찬가지네요?

 

정: 이거에요, 한미 FTA 가장 강한 걸 맺었으니까 우린 이걸 들고 다른 나라를 공략한다. 황당하게도 자기가 미국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논: 근데 이제 ISD 거기서 지금 공중보건, 환경, 안전, 부동산 가격 정책 이런 것들, 공공정책 같은 경우는 많이 제외를 시켜서 무너질 일은 없을 거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잖습니까?

 

정: 그러니까 정부가 현재까지 밝혀진 ISD의 판결문을 보고 이야기하는 건데 판결문에는 환경이란 단어가 하나도 안 나와요. 그건 당연해요. 판결문은 투자챕터의 몇 가지 원칙을, 네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 원칙을 어겼는지 안 어겼는지만 보는 거거든요. 메탈클래드 그 판결문을 보면 우리는 그 멕시코의 환경정책에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 정책이 왜 세워졌는지는, 그거와 관계없이 그냥 정책이 있었다. 그 정책이 투자챕터의 원칙을 어겼는지 안 어겼는지. 때로는 다른 챕터도 봅니다. 다른 챕터에 있는 것들도, 정부조달이라던가 이런 것도 봐요. 그러니까 환경에 대한 언급도 안 나오지만 실지로 1/3이 환경 관련된 판결이었어요. 그러니까 내국민대우 위반이라던가 극단적으로 '최소 기준' 위반이라던가 이런 게 환경정책에 나타나면은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런 거만 안 하면 된다라는 건 맞아요.

 

그러나 '최소 기준'이라는 게 뭐냐면,(이게 앞으로 굉장히 문제가 될 텐데) 내국민 대우를 해서 국내 기업과 차별을 안 했다고 쳐요. 근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 보다 더 강한 규제를 하면 문제가 되요. 근데 미국 기업한테 국제적 기준이라고 하면 그건 미국 기준이에요. 미국은 환경규제가 굉장히 약한 나라에요. 문제가 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정부가 자꾸 미국이 한 것은 다 옳다고 이야기하고 미국 정부가 하나도 안 진거는 미국이 그만큼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 실제로 판결을 보면, 서로 판결이 어긋나는 것들이 많아요. 미국은 거의 비슷한 사안으로 승소했는데 캐나다 정부나 멕시코 정부는 진 것들도 있고 이 제도 자체가 법적 안정성이 없어요. 같은 제도를 양쪽에서 제소한 적도 있습니다. 같은 정책에 대해서. 근데 이게 투자자-국가소송제이기 때문에 가능해요. 기업도 가능하지만 거기 투자를 한 사람도 소송이 가능해요. 각각 따로 제소를 했어요.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거에요. 그래도 아무 문제없어요, 이 제도 하에서.

 

논: 그래서 이게 위헌문제가 제기 되잖아요.

 

정: 위헌이죠. 사법권 침해, 평등권 침해, 사회권 침해죠.

 

논: 만약에 이게 타결이 됐는데, 이걸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소송 제기를?

 

정: 할거에요.

 

논: 만약 거기서 위헌 판결이 나면은 어떻게 됩니까?

 

정: 위헌 판결이 나면은 이제 골치 아파지죠. 왜냐하면, 법적으로는 형식적으로는 헌법이 더 상위에 있기 때문에 이거를 폐기를 하던가 수정을 해야 되는데, 실질적으로는 FTA가 헌법 위에 있는 상황이거든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그래요. 캐나다도 캐나다 학자들이 'superior constitutional' 이란 표현을 쓰거든요. 초헌법적 상황이다 이런 말이죠. 그런데 한국 헌법재판소가 미국 편향이 있기 때문에.. 허허.. 또 어떻게 판결 내릴지 모르죠.

 

논: 캐나다에서 연방법원인가 거기서 합헌 판결이 났다고 그러던데요?

 

정: UPS 건이 어떻게 해결 되냐에 따라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논: 캐나다 법원에서도 제도를 인정했다 이렇게 보는데?

 

정: 뭐 했다면 할 수 있죠, 뭐. 그러나 그게 맞는 판결이라고는 볼 수 없죠.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거 위헌 소송해 봐야 진다고 생각해요. 이거 겁나잖아요. 그리고 한미 FTA 전체를 뜯어 고치라는 이야기인데, 언제나 헌법 재판소는 정치적인 판단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

 

논: 투자자-국가소송제(ISD)로 인해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훼손이 일어날까요?

 

정: 그러니까 부동산을 건교부가 갑자기 2006년 8월이 되서야 다시 들여다보고 부동산을 빼야된다 강력히 이야기하는 건, 조닝(zoning)이라는 게 다 문제가 되기 때문이에요. 투기지역설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되요, 거기에 미국기업이 있었는데, 그들이 땅과 건물을 갖고 있었다, 투기지역설정을 안 했을 땐 가격이 올라갔을 텐데, 그것으로 인해서 재산상의 이익을 포기해야 되잖아요, 이건 투자자-국가소송제 대상이 됩니다. 그럼 그 정책을 아예 안 쓰게 되요. 그걸 chilling effect(의기소침 효과) 라고 해요. 이걸 의식하게 되면, 정당한 규제 정책을 못 쓰게 되요, 자꾸 축소가 되게 되요.

 

새로운 물질이 나타나면 장래의 위험 때문에 이것에 대한 사용 규제를 시켜야 되는데, 이걸 미국 기업이 하고 있다. 그러면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미적미적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러니까 예방조치는 불가능해 지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과학적으로’가 중요해요, 미국에서는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느냐 가지고  모든 소송이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가 지금 잘 알지 못하는 물질의 위험성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개성공단은 쾌거?

 

 

 

논: 국가 소송제 들을 때마다 느끼지만 참 섬뜩한 제도네요. 개성공단 문제로 넘어가 볼까요? 역외가공무역이라는 표현으로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이 점이 북한개방과 남북관계 진전에 결정적인 구실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기도 하고요. 또 이것 때문인지 이른바 일부 햇볕론자들이 한미 FTA를 찬성하는 명분이 되고 있죠. 물론 개성이라고 딱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역외가공무역이라고 하는데, 싱가포르나 다른 FTA 맺은 곳에서도 개성이라고 하지 않고 '역외가공무역'이라는 표현만 씁니까?

 

정: 아닙니다. 싱가포르는 분명히 '개성'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개성 등 북한 전역에서 생산된 물건이 한국을 통해서 수출될 경우 한국 산으로 인정한다. 이렇게요.

 

논: 아, 그렇군요. 근데 개성공단 문제가 한미 FTA로 들어가면서 남북관계의 질적인 발전에 돌파구의 역할을 한다는 일부 전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문제 틀이 완전히 잘 못 됐어요, 왜냐면은 한-싱가폴 FTA에 분명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전역을 다 한국산으로 인정한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개성공단이 처음에 FTA에 들어간 것은 제가 주장을 해서 김현종 본부장이 그걸 집어넣었고, 내가 싱가폴 대사를 만나 설득을 했어요. 그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성공단을 한미FTA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안 거는 싱가폴 때부터예요. 그 다음에 EFTA(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과의 FTA)때도 관철됐어요. 지금 문안은 완전히 축소된 거에요. 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조건이 많이 붙었잖아요.

 

위원회를 만들어서 북핵문제가 해결이 되고, 노동 문제 이런 걸 다 보겠다는 거 아니에요. 과거에는 그냥 한국산으로 인정되는 건데 이게 완전히 축소 됐고, 사실은 북미관계가 완전히 풀려버리기 전까지는 인정 안 해 주겠다 이 이야기거든요. 이건 축소에요, 성과가 아니라 기존성과를 축소시킨 거예요. 사실상 곤란하게 만든 거예요. 이게 어떻게 되나 봅시다. 다른 나라와 우리가 FTA를 맺을 때 개성 공단을 넣고 싶다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 아마 미국이 없었으면, 사례가 적고, EFTA하고 싱가폴이 완벽하게 열어줬기 때문에, 그게 사례니까 그걸 조금 줄이거나 어떻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제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이게 규준이 됩니다, 미국 규정이. 미국을 따라간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가 초기에 개성을 아예 빼버려라 의제에서, 그게 차라리 우리에게 남는 일이다, 이랬어요. 빼버리면 한미FTA에는 규정이 없으니까 여전히 싱가폴이나 EFTA가 레퍼런스(reference), 즉 참조가 되는데, 이제는 미국이 참조가 됩니다. 기준이 되요. 굉장히 불리한 일을 해 놓고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떠드는 것은 정말 적반하장입니다. 심지어 이 문안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을 거에요. 거기까지 의심이 가요, 지금 떠드는 걸 보면.

 

신: 정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한-미 FTA 때 개성공단이 들어간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정: 그러니까 미국 입장에서는 먹잇감이었어요. 다른 나라한테는 개성에서 생산되는게 어느 정도나 된다고, 이런 정도만 따지겠지만, 미국은 이건 먹이감이죠. 이걸 가지고 뭐든지 얻어낼 수 있는, 즉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얻어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맨 처음부터 제기 안 하는 게 더 옳았다고 전 생각해요. 결과를 보더라도 우리가 얻어왔던 성과를 대폭 축소시켰고 미래에도 축소시킬 얘기이기 때문에 완전히 실패한 협상이에요.

 

한미 FTA의 미래와 대안

 

논: 한미 FTA로 우리나라 노동환경 문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 노동문제, 환경문제는 그냥 받아들여도 돼요. 다만 그 기준을 제대로 ILO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노동환경이라는 게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ILO수준으로 높이고 그걸 양쪽 국가가 철저하게 통제를 한다면 그건 좋다고 생각해요. 원래 그게 어떻게 들어가 있냐면, 부시가 나프타를 추진하다가 클린턴으로 바뀌었어요. 사인한 사람은 클린턴이에요. 클린턴이 사인하는 조건으로 노동환경 챕터를 추가할 것을 요구했어요. 캐나다와 특히 멕시코의 노동환경 운동가들은 참 환영했죠. 그랬는데 그 GAO라고 그걸 통제하고 감시하는 기구가 일 년 만에 무력화 되어가지고 이건 있으나 없으나 마나한 제도가 되었어요. 이 노동환경은 양날의 칼인데 미국입장에서 미국 제조업 입장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어요, 노동환경이라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은 아동노동이나 이런 걸 못하게 해서 상대방 임금을 상당수준 높여서 미국 제조업을 보호하려고 하는 그런 측면도 있는 거죠. 근데 우리나라는 그런 거하고는 관계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노동환경은 더 강화시키고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하자,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없어요.

 

논: 지금 우리나라 경제체제를 볼때, 대략 70~80% 정도?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급속도로 경제체제의 미국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 한미 FTA를 체결하면 그런 경제체제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빠져나올 방법은 없어지는 겁니까?

 

정: 네 없죠. 한미 FTA를 파기하지 않는 한. 점점 미국 제도를 더 많이 받아들이고, 아마 이렇게 될 거에요. 초기에 몇 개 받아들인 게 아마 미스매치(miss match)가 될 거에요. 불일치가 되어 가지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거예요. 김영삼이 세계화 했을 때 우리가 자본시장 개방해서 단기자본을 들여와서 장기 투자를 하면서 미스매치가 일어나 가지고 외환위기가 빠졌잖아요. 상황이 좋을 때야 계속 대출 연장을 해주겠지만, 상황이, 가령 말레이시아나 이런 데 막 나빠지니까 이제 대출 연장을 안 해주고 그런 것이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잖아요. 그런 미스매치가 많이 일어날 거예요.

 

미스매치가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이제 정부의 논리도 확실해요.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 더욱더 미국형으로 바꿔야 된다. 뭐 재경부의 신념입니다. 이미 다 공공서비스 민영화계획 다 갖고 있어요. 그 때 제도가 완전히 미국화 될 것이고 점점 강화가 되지 그게 역전될 가능성은 없고, 역전시키는 것은 바로 걸려요. 그것이 만약 투자자의 권리를 건드리면 투자자-국가소송제에 걸릴 것이고, 서비스도 마찬가지로 제도를 돌려놓을 수 없어요. 렛칫 조항에 의해서 개방화, 민영화 쪽으로만 가게 되어있지, 거꾸로 공공성의 강화 이런 건 불가능해요.

 

논: 근데 노대통령 담화문에서 보면은, 농업, 제약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서 도대체 어떤 피해가 있는지 반FTA론자들 중에 제대로 말해준 사람 없다고 하던데요?

 

정: 그러니까 정말 큰 문제이죠. 대통령한테 아무 보고도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죠. 아까도 이야기한 제조업에...

 

논: 아니, 노대통령 본인이 직접 반대론자들에게 물어봐도 뚜렷하게 답해준다는 사람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정: 그러니까 인터넷 신문 기자들한테 물어봤죠.

 

논: 네? 하하하하... 정말 그럴까요?

 

정: 그럼 누구한테 물어봤겠어요? 아니면 찬성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봤겠죠. 반대하는 사람이 노대통령하고 토론한 적이 있어요? 경제학자하고? 아무도 없어요.

 

논: 청와대에서 정말 없었을까요?

 

정: 아무도 없어요. 그런 이야기도 했어요, 옛날에 PD수첩 이런 데에서 정치인하고 일대일 토론해서 좋다고 이런 이야기도 했대요, PD수첩에 따르면. 그러나 이정우 선생한테 질문한 적도 없고, 저한테 질문한 적도 없고...

 

논: 지금 보수언론들은 모두 미친듯이 FTA를 환호하고 있습니다. 뭐,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선호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데, 이데올로기적인 측면 말고... 이번 한미 FTA가 그런 보수언론들에게 어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이득은 있습니까?

 

정: 일단은 뭐 신념이겠죠. '시장이 바뀌면 잘 될 것이다 미국하고...' 뭐 이런.. 또 우리가 (미국과) 긴밀해 져야 된다는 생각도 원래부터 그들의 신념이고.. 그리고 직접적인 이익은 중앙이나 조선은 방송을 생각할 수 있겠죠. 언젠가 방송 민영화가 되면 방송을 먹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겠죠.

 

논: 지금은 방송과 신문의 겸업은 불가능하죠?

 

정: 근데 미국이 진출하려고 하면은 예컨대, 조선-워너 MBC, 또는 조선-워너 KBS2 이런게 생길 수 있겠죠. 이렇게 되는데, 그거 분명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한미 FTA는 삼성 등 재벌과 조중동, 그리고 재경부라고 하는 우리나라 지배세력을 강화시켜주는, 돌이킬 수 없는 지배세력으로 만드는 그런 국제 협정이에요. 찬성을 할 수 밖에 없죠.

 

논: 요즘 몇 해 전부터 소장학자 중에 주목받는 분이 있잖습니까. 영국에 있는 장하준 교수요. 며칠 전 한겨레21에서도 새삼 그의 주장을 논쟁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북구 스웨덴형 모델이라는 진보적 체제를 지향하면서도, 그동안 우리가 비판적으로 여겨왔던 재벌체제의 긍정성을 인정하자...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그러니까 장하준 교수의 얘기 대부분 동의하는데, 몇 가지는 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중앙 은행이라던가 재벌에 관한 이런 것들입니다. 유럽의 논쟁 구도가 그렇기 때문에 그래요. 바로 한국에 대입할 수는 없어요.

 

논: 그럼 산업정책과 재벌 체제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을 했고, 또 앞으로 상당기간은 그 전략은 유효하다.... 이런 내용은 어떻게 보시는지? 물론 그 분도 그런 관점에서 이번 한미 FTA도 상당히 비판하긴 하는데요.

 

정: 그러니까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라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고, IMF다, 세계화다, 한미 FTA다 이런 거에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잘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장교수 주장대로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는 그런 역사, 이론을 가리킨 거지 한국적 계급 구도 속에서의 선택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정책, 이런 거는 할 수가 없죠. 이미 영국 간지 20년이 넘었는데, 그런 분야에서 좀 차이를 둘 수 있죠.

 

논: 국내에 있는 같은 입장인 정승일 교수도 그런 주장을 많이 하는데요...

 

정: 예컨대 스웨덴 형을 지금 꿈꿀 수 있어요. 삼성에서 발렌베리를 연구했잖아요, 근데 삼성하고 발렌베리? 하하하.. 너무나 다르죠, 그 차이를 인정을 해야지..

 

논: 근데 노자 대타협을 하자, 재벌의 세습체제 인정하는 대신에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식으로...

 

정: 타협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죠.

 

논: 그러면은 산업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70년대 같은 경우는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라던가, 80년대 같은 경우에는 정밀 기계, 전자-정보통신같은 고부가가치 공업 육성 등과 같은 산업정책이 있었잖아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산업정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 지금 국제 규범 속에서 가능한 정책 중에 미국, WTO에서 인정하는 정책은 산업클러스터 정책이에요. 참여정부가 처음으로 클러스터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 클러스터 정책을 국가 균형정책으로 생각하고 한 것이 문제죠. 그리고 위에서 동시에 한꺼번에 여러 개의 클러스터를 형성시키려 하는 정책이... 뭐 그래도 저는 평가는 하지만 그다지 성공할 거 같지는 않아요.

 

산업클러스터: 비슷한 업종이면서도 다른 기능을 하는 기업과 기관들이 일정지역에 모여 있는 것을 말한다. 대학과 연구소·기업·기관 등이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여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곳으로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이다.

 

 

논: 김대중 정권 때 벤처 육성 정책이 있잖습니까? 물론 IT 거품같은 부작용도 있긴 했지만, 그런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정: 그거는 벤처가 잘 클 수 있는 금융환경이라던가 이런 걸 조성하고 벤처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 제공은 그건 뭐 산업 정책이라기보다는 뭐 국가가 언제나 할 일이니까, 해야 될 일이고, 그건 뭐 지금도 진행이 되고 있고....

 

신: FTA 타결되고서, 찬성론자들의 담론은 국민들에게 아주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오는거 같거든요. 가령, 개방으로 먹고산다, 3만불 선진국이다, 경쟁력 강화다...근데 반대의 논리는 이런 담론 싸움에서 좀 밀리는거 같아요. 너무 많은 설명이 따라붙으니까 국민들에게 머리에 딱 꽂히는 그런 논리가 아직 개발이 안된거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 비준이 진행되어도 그 저지하기가 만만치 않을거 같은데요...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 허허...가능성 모르죠. 그러나 막아야죠. 국민이 알면 100퍼센트 막을 수 있습니다. 내용을 알면. 아니 땅덩어리가 적으니까 한미 FTA 해야 된다라고 하면 어이가 없어요. 땅덩어리 적은 나라 중에 중남미 국가 빼고 미국하고 FTA 맺은 나라가 어딨어요. 한 나라도 없어요. 개방한다는 것도... 이미 개방이 많이 되어 있는데, 그게 한미 FTA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신: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맞는 말씀인데, 피부적으로 와 닿는 그런 단순 명쾌한 논리개발이 좀 더 개발될 수는 없냐는 거죠.

 

정:  한미 FTA는 논리는 진짜 비약이 확 일어난 거거든요. 선진국 중에 미국이랑 FTA 맺은 나라? 그건 캐나다가 미국이랑 워낙 가까운 나라라 그런거고, 호주 하나 밖에 없어요. 호주는 농업이 굉장히 강한 나라에요.

 

신: 어쨌든 논리적으로 얘기를 들으면 설득이 되는데, 보통 국민이 시사 현안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며 살지는 않잖아요. 그냥 막연하게 소고기 싸진다, 수출 잘 된다.. 이런 식으로만 머릿속에 입력되고...

 

정: 뭐 쉽게는 우리도 얘기할 수 있어요. 보도가 안 되고 언론을 못타니까 문제죠.

 

 

 

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캠프에 들어가셨죠? 민노당 당원이 되신 건가요?

 

정: 하하.. 저 당원 아닙니다.

 

논: 이번 한미 FTA로 대선정국이랄까, 정치 지형이 어떻게 바뀌겠습니까? 

 

정: 예, 이제는 중도라는 건 성립하지 않아요. 한미 FTA에 의해서 둘로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제일 많게 된다고 하더라도 네 개가 될 겁니다. 한나라, 한미 FTA찬성하는 이른바 중도, 그리고 한미 FTA반대하는 중도, 민노당.... 이런 식이거나, 제일 적게는 두 개로 되겠죠. 진보 대 보수.

 

논: 이번에 대선은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하하.. 좀 막연한 질문인데..

 

정: 분명히 우리가 이긴다고 이야기 해야지 뭐라고 얘기해....하하..

 

신: 대선 정국에서 과연 한미 FTA가 최대 이슈로 등장한다고 보십니까?

 

정: 제일 큰 변수에요, 그리고 좀 더 이슈가 뜨거워지면, 표심 때문에라도 서로간에 '이건 막겠다', '저건 막겠다' 이런 식의 경쟁이 붙을 거에요. 그러면서 미국을 건드리겠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경쟁이 그런 식으로 갈 수 밖에 없어요.

 

논: 앞으로 싸움의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 그러니까 근거 없는 낙관론자가 제 별명입니다. 대학교 때부터 별명이에요. 하하하... 그리고 심상정 대통령 됩니다!

 

논: 하하하... 여담인데... 청와대에서 그래도 한 솥밥을 먹은 사람들, 또는 노대통령하고 인간적인 부분도 있을 텐데.. 요즘 한미 FTA 때문에 좀 인간적으로 갈등이 일어나거나, 불편한 적은 없습니까? 예전에 레디앙에서 인터뷰했던 것이 연일 기사화되었잖아요. 386이나 재경부 관료 비판한 내용이 부각이 되서 좀 곤혹스러워 했던거 같은데요..

 

정: 별로 없었습니다. 대체로 사실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자꾸 불거지는 게 부담이었겠지요. 시민이는 친구로서 "인터뷰보다는 글로 해라"" 그 정도 전화를 했을 뿐이에요.

 

논: 송영길 의원이 '100분 토론'때 정 선생님을 기피했다고 하던 것은 사실입니까? 또 찬성론자들 중에는 토론때 선생님을 많이 기피하지 않나요?

 

정: 방송사에서 "정태인 나오면 안 나간다" 이런 소리를 했다는 얘긴 들었어요. 한미 FTA 체결지원단에서도 그런 소리를 했다는 얘길 들었구요. 아무래도 정부 얘기를 많이 아니까, 그렇겠죠.

 

김종훈만 고생 시킬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사람, 즉 김현종 본부장이나 한덕수 총리가 나서서 설득을 해야 합니다. 저야 물론 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 분들이 뭐가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  사실을 훨씬 많이 알고, 토론 나간다면 전 부처가 다 동원돼서 답 써주고, 제가 한 말 분석해서 공격 포인트까지 다 정리해 줄텐데...

 

그런데도 만일 토론을 회피한다면 그건 숨기는 게 많아서입니다.  언제든지 공개 토론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대환영입니다.

 

논: 이 시간 이후 스케줄은 뭐가 있습니까?

 

정: 대학 강연이 있어요. 고려대하고 동국대로 가야합니다. 내일은 오전부터 지방에 내려가야 되고요. 대학생들이 지금에서야 좀 움직이네요. 하하하...

 

논: 진짜 불철주야로 뛰는 국민의 경제 비서관 역할을 하시는군요.  바쁘신 스케줄 중에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딴지 논설우원 직빵맨(freechhb@naver.com)
딴지 편집국 신짱(redp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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