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milla Elliott, Rethinking the NOVEL/FILM DEBAT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pp 133~156

5. 문예 영화와 형식/내용 논쟁(Literary Cinema and the Form/Content Debate)

예술간 각색 연구는 19세기부터 지금에까지 항상 비평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비난받아왔다. 이는 비단 예술의 범주들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20세기 미학과 의미론의 중심에 대해 이단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어와 이미지가 번역가능하고 형식과 내용이 분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물, 플롯, 주제, 그리고 수사학이, 소설의 형식에서 빠져나와서 영화의 형식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신비평에서 구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단호하게 형식은 내용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후기구조주의적 의미론은 내용의 정체를 폭로하고 환영으로 만듦으로서, 형식/내용 이분법을 폭발시켰다. 이들에게는 내용이 형식 간에 각색된다는 것이 더 이단적인 주장이 되었다. 사실 후기구조주의적 의미론은 형식과 내용을 혼합시켜서, 내용이 순수한 형식 속으로 증발된다.

따라서 단어/이미지, 형식/내용 도그마는 각색을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각색이, 문화적으로는 어디에나 있다. 각색의 유행이 의미론과 미학 이론을 어디에서나 맞선다. 그래서 학자들은 각색이 일어나지 않았고, 단지 그것의 환영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거나, 내용이 형식과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론적 이단을 주장하게 된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움베르토 에코인데, 그러한 입장은 소수이다. 그러나 어떠한 학자도 옛날 형식 내용/이론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이 이단에서 한발 물러나서 이론적 정확함에 반하는 수사로 나아갈 뿐이다. 이 장에서는 각색 과정에 관해, 내용과 형식의 분리를 말하는 비공식적인 여섯 개의 개념들을 탐사할 것이다. 이 개념들은 비평 이론과 영화감독들과 각색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에서 비롯한 수사들이 합쳐진 것으로, 형식/내용 도그마 자체에 압력을 가한다. 이들은 여기서 이상적이고, 기술적이고, 경험적으로 ‘사실’인 것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영화제작과 비평에서 작동되는 개념이다. 소설이 영화적 기표로 충실하게 재현되는 것으로 바라보던지, 소설이 영화적 기호들로 더 완전하게 재현되어야만 하는 불완전한 기호로 간주되던지, 또는 소설과 영화가 서로 재현하여 더 객관적인 의미를 공유하던지, 이 각색의 문제가 어떠한 다른 소설/영화의 논쟁보다도 경쟁적 관계를 형성한다. 담론에서 수많은 형태로 들어났기에, ‘형식’과 ‘내용’은 이 논의에서 다양하게 이해되어야만 한다. 전체적 예술 형식과 그들의 “주제”(내용)에서부터 기표와 기의에 이르기까지. (*이 장에서는 󰡔폭풍의 언덕󰡕을 이중의 방법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하나는 개념 유비들을 드러내주는 대상으로서, 또 하나는 영화 속 대사나 상황과 유비를 대응시키면서. 문학적인 문학 이론서.)

5.1 각색의 영혼적 개념(The Psychic Concept of Adaptation)

20세기에 내용을 비평적으로 환영화하는 것은, 소설에서 영화로 전달되는 것이 “텍스트의 영혼”으로 이해하는 각색에 대한 영혼적 개념에 큰 책임이 있다. 이 텍스트의 영혼은 일반적으로 저자의 영혼이나 개성과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 20세기 비평가들은 이러한 작가적 영혼을 덜 신비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작가적인 영혼이나 개성은 작가의 의도, 상상, 스타일로 변화된다. 보다 확실한 문학적 징후를 찾는 비평가들은 텍스트의 영혼을 작가적 스타일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적 스타일 또한 신비적 경향을 남긴다. 이는 항상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요소를 항상 간직하고 있다.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단지 영화 형식과 작가의 문학적 영혼을 혼합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는 텍스트의 영혼이 저자에게서 소설로, 소설에서 독자-영화감독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관객으로 전달되는 영혼적 연결의 과정을 가정한다. 형식은 변화하지만 영혼은 똑같이 남아있다. 텍스트의 영혼은 형식을 넘어서 생명을 유지하고, 이러한 영혼은 형식에 속박되지도 의존하지도 않는다.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다음과 같이 보여질 수 있다. 괄호는 없어도되는 형식이다.

소설의 영혼 -> (소설의 형식) -> (독자-영화감독 반응) -> (영화) -> viewer 반응

텍스트의 영혼은 형식이 없는 의식인 전텍스트적 영혼에서 기원하고 영화 관객의 반응이라는 후텍스트적인 반응으로 끝난다. 이 전텍스트적 영혼은 일반적으로 작가의 의도, 개성, 상상으로 파악된다. Orr은 작가 의도에서 시작하고 독자 반응으로 끝나는 모델은, 비록 커뮤니케이션 연쇄의 양쪽에 작가 의도와 독자 반응이 나타난다고 해도, 둘 다를 무시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즉, 음성적 또는 영화 텍스트의 영혼은 이 담론(화자가 독자나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과 서사성(독자/관객이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의 기능 둘 다이다. 저자의 영혼은 시의 그림에 관한 논의에서 종종 등장했었다.

텍스트의 영혼에 대한 충실성은 전형적으로 소설의 문자나 형식에 대한 반충실의 요구와 함께 간다.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텍스트의 영혼에 진실하기 위해서는, 각색은 반드시 문학적 시체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의 소설 각색에 관한 영혼적 환영은 개인적인, 영화적인, 문화적인 의제(agenda)를 소설에 투사하여 이를 영혼이라고 규정하게 한다. 문학 작가의 권위가 이러한 아젠다와 투사의 정당함을 인정하는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다른 담론들에서는 붕괴된 저자가 각색 비평과 상업 광고에서는 그 영향력을 상실하는데 오래 걸렸다. 20세기 대부분에서 영혼 이론은 각색 비평을 영화 학위보다는 문학의 보호 하에 두었다. 문학 학자들이 영화가 작가의 영혼을 획득했는지 여부를 판단했다. 가끔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 각색이 문학 비평의 에러를 바로잡는다는 주장도 했다. 심지어는 영화가 저자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작가적 의도를 충족시켰다는 주장도 있었다. Branagh의 프랑켄슈타인이 그러한데, 그녀는 패미니스트적 비평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에피소드를 짜르고 붙여서 페미니스트적인 것으로 묶고, 문학 비평가들이 페미니스트적인 비평 코멘트를 붙이는 곳들에다 페미니스트적인 씬을 첨가했다. 이처럼, 각색의 영혼적 개념은 작가의 영혼이나 의도라는 이름하에 새로운 영혼이나 의도가 들어올 수 있는 재현 공간을 열어놓는다.

5.2 각색의 복화술적 개념

각색의 복화술적 개념은 소설의 기호를 비우고, 이를 영화적 영혼으로 채워 넣는다. 영화가 소설을 각색할 때는 살아있는 영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시체를 받는다. 복화술사처럼 죽은 소설을 기대놓고, 침묵의 시체 속으로 음성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각색 비평가들은 텍스트의 영혼은 그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합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복화술적 각색은 롤랑 바르트의 메타언어에 관한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의미 체계는 텅빈 형식으로 간주되고, 계속해서 두 번째 체계의 내용으로 채워진다. 첫 번째 체계에서 기호인 것이, 두 번째에서 단지 기표가 된다는 것이다. 전달되는 기호가 순수한 형식이 될 때, 의미는 그 우발성을 뒤에 남긴다. 기호는 스스로를 비우고, 그것은 불모지가 되고, 역사는 증발되고, 오직 문자만이 남는다. 이와 같은 복화술적 개념은 바르트의 이 이론을 따라 다음과 같이 된다.

소설의 기호 - 소설의 기의 = 소설의 기표 (소설의 체계)

소설의 기표 + 영화의 기의 = 각색된 것의 기호 (영화 각색 체계)

이러한 등식은 ‘영화’와 ‘각색’을 구별한다. 각색은 순수한 영화가 아니라 소설과 영화의 복합물이다. 대부분이 문학각색 영화에 대해 소설의 풍부함을 재현하지 못하는 것에 영화에 책임을 묻는다면, 이러한 독해는 소설의 의미가 비워진 곳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가 덧붙인 의미에 주의를 기울인다.

종종 각색은 영화와 소설 공동의 투사, 공동의 현현이 맞물리면서 기묘한 이데올로기적 혼합을 발생시킨다. 바르트는 기의가 두 번째 체계에서 완전히 비워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형식은 의미를 억압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의미를 불모지처럼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처리하게 하는 거리를 만든다. 내용은 추상적이고 정화된 본질이 아니다. 이것은 형식이 없고,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응축물이다. 개념에는 고정성이 없다. 그들은 생성되고, 변하고, 붕괴되고,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이처럼, 복화술적 모델은 완전히 텅 빈 시체가 완전히 새로운 영혼에 의해 움직인다는 주장이지만, 언제나 이는 그렇지 않다. 각색에 대한 복화술적 개념이 처음에는 영혼적 관점에 정반대인 것처럼 나타나지만, 찌꺼기인 의미가 텅 빈 형식 안에 남아있다는 것은, 영혼이 소설에서 영화로 각색과정에서 전달된다는 생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둘 다 의미가 애매한 영혼이 형식으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개념은 같은 동전의 분리될 수 없는 양면으로 나타난다.

5.3 각색의 유전적 개념

각색의 유전적 개념은 각색에 대한 서사학적 접근에서 잘 나타나있다. 서사학자들은 문학에서 영화로 이전되는 것은 유전 구조와 유사한 심층 서사 구조라고 한다. 문학 영화 각색의 서사학적 연구자인 Brian McFarlane은 ‘서사’를 사건과정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는 인물들 수반하는, 우연히 연결된 사건들의 연쇄로 규정한다. 서사의 주요한 기능이 심층 구조를 형성하고, 이러한 요소들은 소설에서 영화로 직접적으로 이전될 수 있다. 물론 소설에 대응하는 영화적 기호를 발견하는 ‘적확한 각색’이 필요하다. 소설과 영화는 같은 스토리, 같은 원료를 공유할 수 있으며, 다른 플롯 전략에 따라서 구별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각색에 대한 서사학적 접근은 내용과 형식의 분리라는 문제를 회피하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서사 이론의 중심적 개념들은 형식과 내용을 보다 높은 범주에서 나누고 있다. 채트먼의 histoire, discours 나 statement와 utterance, syuzhet 와 fabula 등. 각각의 사례에서 첫 번째 개념은 내용(무엇이 말해지는가)이고 두 번째는 형식(어떻게 말해지는가)이다.

서사학적 접근은 소설과 영화 둘 다 가지고 있는 서사의 더 높은 범주에서 형식과 내용을 나누는 접근을 하며, 기본 범주인 개별 기호들 수준에서의 형식과 내용 분리를 미리 제외한다. 그러나 때때로 기호의 변화가 심층 서사 구조를 해체하기도 한다. (* 그예를 󰡔폭풍의 언덕󰡕을 통해 분석하고 있음) 명백하게, 심층 구조는 완전하게 그것이 현시하는 물질과 분리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서사학적 적용은 영혼적이고 복화술적인 개념의 오염에서 면제된 것이 아니다. 서사학적 독해는 텍스트성과 구조성이라는 객관성에 입각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인(주관적인) 선택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서사의 주요한 핵심 기능을 선택하는 것만해도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 제거할 수 없는 주체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제거가 각색에 대한 더 분명한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암시가 문제다. 독자 반응 이론에 기반한 다음 각색이론은, 서사학자들이 피하는 그 주체성을 강조하고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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