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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내 심정이 그러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소설 전에 읽었던 소설이 스타인백의 "에덴의 동쪽"이었기 때문이지, 은희경의 신작을 읽는내내, 고독, 우울, 허무라는 세 단어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집은 발표순서의 역순으로 단편을 게재하였다. 독자는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녀의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나아간다. 그녀가 지금 왜 그러한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계속 소급해간다. "박하사탕"...
가장 먼저 실린 단편 "의심을 찬양함"은 정작 작가가 가장 최근에 잡지에 게재한 소설. 이 소설은 기차에서 시작해서 기차에서 끝난다. A-> B -> A의 구조로, 기차 안에서 과거를 회상한 후,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형태이다. 아니면 이 B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암시도 있다. B자체는 말그대로 '의심'에 관한 내용.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이 의문을 던지는 과정도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든 견고한 의미들이 흩어져 있다. 기차의 몽롱한 리듬에 맞추어 꾸는 꿈인냥... 의심은 결국 '진실' 또는 '순수'에 대한 탐구로, 이데아로의 길일 터이다. 이러한 의심은 다음 소설로 넘어간다..
이 소설집의 첫 단편을 넘기면, 이제 나타나는 '고독의 발견'.. 딱히 하는 일도 없고, 고시생인 듯 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 화자가, 문득 자신이 대학생때 하숙했던 집 주인이 했던 여관을 관리해주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 그리고 그 길 끝에서 펑펑 울면서, '미안해, 나는 쓸모없는 놈이야'라고 운다... 의심 후에 오는 것은 고독.
그 다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표제작. 뚱뚱한 사내가 다이어트를 한다.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 처절한 다이어트의 계기는, 그의 아버지가 암투병 중이기 때문. 소설의 문맥상 그의 아버지는 불륜을 통해서 사내를 낳고, 그 후에는 남남처럼 지내며 일년에 한번 씩만 사내에게 식사를 사준다. 처절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서 쌀밥과 육게장을 먹는다는 것. 고독의 다른 형태로서의 추, 그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추구.
'날씨와 생활'. 공상 속에 빠져있는 소녀 B의 이야기... '평범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가 읽었던 수많은 동화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삶 속에도 언젠가 실현될꺼라는 공상을 하는 소녀. 어느날 그 동화책 할부금을 학교에 받으러 온 수금원 때문에, 공상 속에서 소녀 B는 자신을 매우 가난한 집 아이로 상상하고, 수금원을 따돌리려다 실패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태연하게 돈을 냈다는 것.
'지도 중독' 안온한 일상에 안주하기 좋아하던 학원 국어강사가 어느날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로키산맥에 다녀왔다는 것. 곰을 보았다는 것.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운동권 후일담 비슷하게 전개되면서, 유리 가가린의 귀환처럼 삶의 귀환을 꿈꾸는 이야기..
결국 현재 일상의 고독, 우울, 허무를 거슬러 올라가면, 등장하는 유리 가가린. 별이 빛나던 시대. 또는 그렇게 80년대를 낭만화하여, 현재를 허무화하는 시각.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하고, 때문에 고독하고 우울하고 허무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과거를, 우리들의 과거로, 나아가는 이유는?
"삶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라서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지나간 이야기는 다시 쓰일 수 있는 것일까." (208)
우리는 다시 살 수 없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시 쓰일 수 있다. 이것이 고독, 우울, 허무를 살아가는 방식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