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한의사 친구에게 추천해준 적 있었다. 가끔 국문학도들 끼리는 모여서, '우리'가 재미있는 것이 '그들'(문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도 재미있을까라는 이야기도 한다.

천정환 선생님의 최근 연구에서도 드러난 사실이지만, 요즘 국문학도들은 별로 요즘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다. '자료'로 식민지 시기를 읽고, '인문학'을 공부할 뿐... 흠.

평론을 쓰는 분들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어쨌든 별로 안 읽은 한국소설이지만, 재미있었던 것을 추천해본다.

 

   박민규의 등단작. 너무 뻔하지만, 나름 읽으면서 키득댈 수 있다.

 

 

 

 

  한국소설의 폭이랄까... 한국 소설도 이런 소설이 있다구! 라고 보여주고 싶은 소설.

  읽는재미도 꽤 있다?

 

 

 

  가능성있는 작가 심윤경. 80년대 광주를 새롭게 재해석.

 

 

 

 

  이 둘이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다. 나는 재미있었는데... 이른바 현대한국 '리얼리즘' 소설들의 확장..

 

 

 

   국문학도들이 사랑하는 김연수. 김연수가 사랑한 국문학. 그 꿈의 표정.

 

 

 

우선은 여기까지.. 외국소설로 정말 감명깊게 읽은 것은

 

   문학도로서.. 가끔 이 정도는 되어야 '명작'이지 않을까 하는 작품이 있다.. 단어도 문장도 별반 어렵지 않음으로, 영어 공부한다는 셈 치고, 꾸준히 읽으면 분명 와 닿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고민하던 '주체' '자유의지'관련 문제에 대한 소설적 답이기도 해서, 그 진정성 있는 서사가 와 닿았다..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

 

 

아 ps. 깜빡 잊었다.

 

 김애란의 문장들과 이미지가 넘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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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4-2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kklpower 2007-05-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 추천 고마워! 한권씩 잘 읽어볼께..
 
 전출처 : 물만두 > 2007 에드거상 발표!

BEST NOVEL
THE PALE BLUE EYE by Louis Bayard (HarperCollins)
THE JANISSARY TREE by Jason Goodwin (Farrar, Straus and Giroux)
GENTLEMEN AND PLAYERS by Joanne Harris (William Morrow/HarperCollins)
THE DEAD HOUR by Denise Mina (Hachette Book Group)
THE VIRGIN OF THE SMALL PLAINS by Nancy Pickard (Ballantine/Random House)
THE LIBERATION MOVEMENTS by Olen Steinhauer (St. Martin's Minotaur)

BEST FIRST NOVEL BY AN AMERICAN AUTHOR

THE FAITHFUL SPY by Alex Berenson (Random House)
SHARP OBJECTS by Gillian Flynn (Shaye Areheart/Crown)
KING OF LIES by John Hart (THomas Dunne Books/St. Martin's Minotaur)
HOLMES ON THE RANGE by Steve Hockensmith (St. Martin's Minotaur)
A FIELD OF DARKNESS by Cornelia Read (Mysterious Press/Warner Books)

BEST PAPERBACK ORIGINAL

THE GOODBYE KISS by Massimo Carlotto (Europa Editions)
THE OPEN CURTAIN by Brian Evenson (Coffee House Press)
SNAKESKIN SHAMISEN by Naomi Hirahara (Delta Books/Bantam Dell Publishing)
THE DEEP BLUE ALIBI by Paul Levine (Bantam Books/Bantam Dell Publishing)
CITY OF TINY LIGHTS by Patrick Neate (Riverhead Books/Penguin Group)

BEST CRITICAL/BIOGRAPHICAL

UNLESS THE THREAT OF DEATH IS BEHIND THEM: HARD-BOILED FICTION AND FILM NOIR by John T. Irwin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THE SCIENCE OF SHERLOCK HOLMES: FROM BASKERVILLE HALL TO THE VALLEY OF FEAR by E. J. Wagner (John Wiley & Sons)

BEST FACT CRIME

STRANGE PLACE OF PARADISE by Terri Jentz (Farrar, Straus & Giroux)
A DEATH IN BELMONT by Sebastian Junger (W. W. Norton and Co.)
FINDING AMY: A TRUE STORY OF MURDER IN MAINE by Capt. Joseph K. Loughlin and Kate Clark Flora (University Press of New England)
RIPPEROLOGY: A STUDY OF THE WORLD'S FIRST SERIAL KILLER by Robin Odell (The Kent State University Press)
THE BEAUTIFUL CIGAR GIRL: MARY ROGERS, EDGAR ALLAN POE AND THE INVENTION OF MURDER by Daniel Stashower (Dutton)
MANHUNT: THE 12-DAY CHASE FOR LINCOLN'S KILLER by James L. Swanson (William Morrow/HarperCollins)

BEST SHORT STORY

"The Home Front" from DEATH DO US PART by Charles Ardai (Hachette Book Group)
"Rain" from MANHATTAN NOIR by Thomas H. Cook (Akashhic Books)
"Cranked" from DAMN NEAR DEAD by Bill Brider (Busted Flush Press)
"White Trash Noir" from MURDER AT THE FOUL LINE by Michael Malone (Mysterious Press/Hachette Book Group)
"Building" from MANHATTAN NOIR by S. J. Rozam (Akashic Books)

BEST YOUNG ADULT

THE ROAD OF THE DEAD by Kevin Brooks (The Chicken House/Scholastic)
THE CHRISTOPHER KILLER by Alane Ferguson (Sleuth/Viking/Penguin Young Readers)
CRUNCH TIME by Mariah Fredericks (Atheneum/Richard Jackson Books/Simon & Schuster)
BURIED by Robin Merrow MacCready (Dutton Children's Books/Penguin Young Readers)
THE NIGHT MY SISTER WENT MISSING by Carol Plum-Ucci (Harcourt Children's Books)

BEST JUVENILE

GILDA JOYCE: THE LADIES OF THE LAKE by Jennifer Allison (Dutton Juvenile/Penguin Young Readers)
THE STOLEN SAPPHIRE: A SAMANTHA MYSTERY by Sarah Masters Buckey (American Girl Publishing )
ROOM ONE: A MYSTERY OR TWO by Andrew Clements (Simon & Schuster Books For Young Readers)
THE BLOODWATER MYSTERIES: SNATCHED by Pete Hautman & Mary Logue (Putnam Juvenile/Penguin Young Readers)
THE CASE OF THE MISSING MARQUESS: AN ENOLA HOLMES MYSTERY by Nancy Springer (Philomel/Penguin Young Readers)

BEST PLAY

Sherlock Holmes: The Final Adventure by Steven Dietz (Arizona Theater Company)
Curtains by Rupert Holmes (Ahmanson Theatre)
Ghosts of Ocean House by Michael Kimball (The Players' Ring)

BEST TELEVISION EPISODE TELEPLAY

The Closer - "Blue Blood", Teleplay by James Duff & Mike Berchem (Turner Network Television)
Dexter - "Crocodile", Teleplay by Clyde Phillips (Showtime)
House - "Clueless", Teleplay by Thomas L. Moran (Fox/NBC Universal)
Life on Mars - Episode 1, Teleplay by Matthew Graham (BBC America)
Monk - "Mr. Monk Gets A New Shrink", Teleplay by Hy Conrad (USA Network/NBC Universal) 

BEST MOTION PICTURE SCREENPLAY

Casino Royale, Screenplay by Neal Purvis, Robert Wade & Paul Haggis, based on the novel by Ian Fleming (MGM)
Children of Men, Screenplay by Alfonso Cuarón, Timothy Sexton, David Arata, Mark Fergus & Hawk Ostby, based on a novel by P. D. James (Universal Pictures)
The Departed, Screenplay by William Monohan (Warner Bros. Pictures)
The Good Shepherd, Teleplay by Eric Roth, based on a novel by Joseph Kanon (Universal Pictures)
Notes on a Scandal, Screenplay by Patrick Marber (Scott Rudin Productions)

ROBERT L. FISH MEMORIAL AWARD

William Dylan Powell
"Evening Gold" - EQMM November 2006 (Dell Magazines)

GRAND MASTER

Stephen King

RAVEN AWARDS
Books & Books (Mutchell Kaplan, owner)
Mystery Loves Company Bookstore (Kathy & Tom Harig, owners)

THE SIMON & SCHUSTER - MARY HIGGINS CLARK AWARD
BLOODLINE by Fiona Mountain (St. Martin's Minotaur)

http://www.theedgars.com/nominees.html#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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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 쿠바의 비밀과 저력
[민주-진보의련 쿠바연수보고] "또다른 세계는 있다"

1. 안타까움, 분노, 감동의 첫 방문

지난 2006년 여름, 멕시코시티, 상파울루, 아바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멕시코시티와 상파울루의 그 악명 높은 대기오염을 2주간 몸소 체험하면서 얼굴에는 뾰루지들이 화려한 군무를 펼쳤지만 그건 아무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나에겐 ‘생태도시’ 아바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맑은 공기와 푸른 바다, 초록색 도심 농장이라면 그깟 뾰루지쯤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밤늦은 비행기로 아바나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로뻬즈 선생님을 따라 아바나 구도심에 진출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찜통 같은 무더위 속에서 50년도 넘은 고물차들이 내뿜는 시커먼 매연은 멕시코시티와 상파울루를 잇는 완벽한 공해 3종 세트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요, 여기가 생태 도시?” 이어진 일주일 동안의 아바나 체류는 무척이나 복잡한 심경을 자아냈다.

훌리아의 하숙집에서 만난 한인 3세 루드밀라는 아바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 더운 여름,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사흘째 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남편, 세 살 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다섯 평 남짓의 단칸 아파트에 말이다. 그녀는 체념한 듯,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고 했다.

   
  ▲ 서점과 기념품 가게에 넘쳐나는 체 게바라
 
생태시스템 연구소는 혁명 전 대통령 관저를 개조해 만든 곳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그곳 보존실에는 쿠바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주요 생태표본들을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건물은 심하게 낡았고 항온/항습 장치는 고장난 지 오래라, 라틴 아메리카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파충류 표본은 ‘그냥’ 알코올 표본병에 담겨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혁명박물관에는 혁명 이전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여러 장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길거리 성매매 여성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이날 동행한 엘리자베쓰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아마도 혁명 이후, 지금이 성매매가 가장 많을 거예요. 저도 길을 지나다가 외국 남자들한테 성매매 제안을 받고 거절한 적이 여러 번 있어요.” 그녀는 아바나 대학에서 생태학 과정으로 석사까지 마친 재원이다.

브라질의 아이들이 호나우두를 꿈꾸며 축구에 빠져든다면, 쿠바의 아이들은 춤에 빠져든다. 춤을 즐기는 문화 탓이기도 하지만 춤꾼이 되어 유명 무대에 서고 해외 공연을 하거나 외국 관광객에게 춤을 가르치는 것은 답답한 삶을 탈출하는 확실한 지름길 중 하나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춤꾼들 목에 걸린 MP3 플레이어나 최신 기종의 노키아 휴대전화가 이를 증명한다.

이러한 광경들은 나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냈다. 이러한 물질적 어려움을 야기한 미국의 무자비한 금수조치에 화가 났고, 이제 한낱 낭만주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체 게바라를 열심히 팔아먹는 쿠바인들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인구 수백 명의 작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진료소와 마을 도서관, 그리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안과의사 마리셀의 바리오 아덴뜨로 이야기는 분명 또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침 휴가차 왔다가, 내일 다시 베네수엘라 진료소로 돌아가는 길이라면서, 그 곳에서는 몰려드는 환자 진료와 방문 진료, 마을 주민 교육과 자료 정리, 의대생 실습 교육까지, 매일 새벽 한 두시까지 일한다는 마리셀의 이야기는 도무지 불평인지 자랑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처음 방문한 내게, 쿠바는 정말 이상한(?) 나라였다.

 

 

2. 다시 찾게 된 쿠바

지난 2월, 남들 평생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은 쿠바를 두 번째 찾게 되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의료연구회가 기획한 캐나다와 쿠바의 보건의료 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의 방문이 개인 여행으로 쿠바 사람들의 실생활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공식 프로그램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는 그동안 민주노동당에서 고민해오던 ‘무상의료’ 의제를 좀 더 발전시키고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과 대안들을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즉, 조세를 통해 건강보장 재원을 마련하지만 서비스 제공은 비영리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캐나다, 재원과 서비스 전달을 모두 국가에서 맡은 쿠바의 체계를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에 적합한 개혁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이 글은 그 유명한 쿠바의 보건의료 체계와 현지 상황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할 뿐 아니라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며, 한편으로 그 성공과 실패, 역경의 경험들 속에서 한국사회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 Sierra del Rosario 산골 마을회관에 위치한 공공도서관

 

 

3. 건강 올림픽, 쿠바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국가별 순위를 나타내는 ‘건강 올림픽’ 결과는 발표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미국과 쿠바의 순위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는 했다. 다소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세계 최고 부국 미국과, 바로 미국의 코앞에서 금수조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쿠바가 순위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

   
  ▲ 건강 올림픽 2004 결과표
 

쿠바의 건강성과를 몇 가지만 들여다보자. 쿠바는 1962년에 세계 최초로 소아마비를, 1996년에는 홍역을 퇴치한 나라이며, 세계보건기구에서 인정한 고혈압 관리와 치료가 가장 잘 되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쿠바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미국의 1/10도 채 안 되는 수준이며 한국의 1/6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 1인당 보건의료에 지출하는 총 비용은 251달러로 미국의 6,102달러에 비하면 4% 남짓.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은 미국과 거의 비슷하며, 심지어 영아사망률은 미국보다 낮다.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가진 라틴 아메리카 이웃 에콰도르의 영아사망률은 23에 가깝고,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OECD에 가입된 멕시코의 영아사망률이 19.7이나 된다는 점은 쿠바의 성적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말해준다. 

   
  ▲ * 자료원: 1) MEDICC. Cuba Health Profile 2007, 2) OECD. OECD Health Data 2006, 3) CIA. The World Facts Book 2006
 
그렇다면 쿠바인들의 건강수준이 이렇게 높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타고난 체력? 아니면 쿠바에만 서식하는 신비의 약초 때문에?

1959년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전, 대부분의 피식민 독재국가가 그렇듯이 그렇듯 쿠바인들의 삶은 처참했다. 특히 농촌지역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서, 먹을 것이 부족하고 글을 배울 학교가 없었으며, 아프면 찾아갈 병원이 없었다.

혁명이 일어난 후에도 고통은 지속되었다. 1959~1967년 사이 전체 의사 6,300명 중 3천명이 쿠바를 떠났으며, 인구 6백만의 섬나라에 단 한 개의 의과대학, 16명의 교수들만이 남아 있었다.

혁명의 적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도망갔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것은 높은 실업률과 문맹률, 파괴된 자연, 식민지형 사탕수수 농장들뿐이었다. 게릴라 전투에서 성공한 쿠바 민중들에게 이제 더 어려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4. 쿠바 보건의료체계의 발전

혁명전쟁 중에도 임시 막사에서 학교와 병원을 열었던 전통을 이어, 쿠바는 처음부터 교육과 보건의료를 국민들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이자 국가의 책임이라고 규정하였다. 1960년대에 쿠바는 농촌 지역에 50개의 병원을 세우고 도시 지역에 160 여개의 지역사회 클리닉을 개설했으며 처음으로 어린이 국가예방접종 사업을 실시했다.

물론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의사를 양성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70년대에 들어 종합병원 설립과 제약 산업 투자가 늘어나는 한편, 포괄적인 일차의료를 강조하는 지역사회 클리닉 기능도 강화되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하여 국제적인 관심을 얻게 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3차 전문 의료기관과 생명공학 연구에 중점을 두게 된다.

1986년에는 의사-간호사가 팀을 이루어 지역사회에 함께 살면서 지역사회 건강을 책임지는 가정의 프로그램이 도입되었고,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95% 이상의 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주치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가정의들은 약 150 가구 (600~800명)를 맡아 돌보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의 80% 이상을 해결하고 있다. 이들이 전형적인 의사의 역할인 질병 치료는 물론 질병 예방과 건강증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 진료소(consultorio)에서 가정의가 진료하는 모습

   
  ▲ 아바나 골목에 자리한 허름한 외관의 진료소 입구
 

한편, 쿠바의 제약/생명공학 연구 기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약제의 80%는 자체 생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1981년 이후 인터페론을 자체 생산하여 세계 2위의 생산국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또한 항체를 이용한 각종 진단 키트와 백신 개발에도 성공을 거두어 쿠바 어린이들은 13종의 백신을 기본 접종으로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웃의 가난한 남미국과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국가기본예방접종조차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생명공학을 21세기 노다지쯤으로 여기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5. 보건의료, 그 이상의 무엇?

하지만, 쿠바인들의 높은 건강수준은 보건의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허름한 치과진료소 벽면과 나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역시 허름한 도표가 보여주듯 건강 결정요인 (determinantes de salud)은 생활습관과 사회적 요인들까지 보다 광범위한 조건들을 포괄하고 있다.

   
▲ 치과진료소, 관할구역의 지도와 손으로 그린 ‘건강 결정요인 (determinantes de salud)’ 도표가 붙어있다.
 
그 중에서도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영아사망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혁명 전 성인의 1/4이 문맹이었지만, 혁명 직후 광범위한 문맹퇴치 운동은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현재 12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의과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그 대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2년 동안 사회 서비스를 해야 한다. 지난 여행 때 생태연구소 방문을 도와준 엘리자베쓰도 그 연구소에서 ‘의무 복무’를 하는 중이었으며, 끝난 후에도 그 곳에 계속 남아서 연구 활동을 하고 싶어 했다. 의대생 같은 경우, 성적이 가장 좋고 뛰어난 학생일수록 산간 오지에 파견을 보내고,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교수들의 추가 지도가 가능하도록 학교 인근 지역에 배치한다고 했다.

쿠바 사회의 저력은 90년대 이후 오히려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80년대 후반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 때마침 이루어진 미국의 비인간적 금수조치는 쿠바인들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다 주었다. 2년 동안 교역의 85%가 감소했고 경제규모는 35% 감소했으며 의약품과 장비 구입에 필요한 통화는 70%나 감소했다.

연료가 없어 대중교통이 멈추고 그 열대 기후에 16시간씩 전기 공급이 중단되거나 급수가 중단되는 사태가 이어졌다. 미국의 금수제한 조치는 그야말로 ‘인종학살(genocide)’ 수준이어서, 식량과 의약품 원조마저 심각한 제한을 받았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건강 수준은 그리 나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은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했다. 보건 관련 예산의 절대 액수가 2/3나 감소하기는 했지만, 이는 군사비와 다른 행정비용을 희생시켜 얻은 것이었으며 이 어려운 시기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

소련으로부터의 물자 지원이 끊기면서 농약과 비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이전부터 준비해온 유기농업 방식을 도시 생태농업으로 정착시키면서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범을 창출하기도 했고, 의약품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제약/생명공학 산업에 더욱 집중했다.

IMF 방식대로라면 공적 투자를 대폭 축소시키고 보건의료를 사유화시키며, 시장을 완전 개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쿠바의 대응 방식은 달랐고, 이는 또 다른 사회적 가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6. ‘노동자의 낙원’은 없다.

쿠바가 ‘노동자의 낙원’이라는 표현에는, 한편으로 환상,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는 비아냥이 숨어 있다. 하지만 40년 넘게 쿠바의 생태, 농업 프로그램에 자문을 해온 하버드 대학의 레빈스 교수는 이를 두고 따끔하게 지적한 적이 있다.

쿠바에서의 사회변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쿠바인들이 자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좌절과 갈등을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감히 ‘낙원’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쿠바가 그동안 놀라운 성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의 상황이 위태롭고 어렵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훌리아가 가정의한테 받아왔다는 처방전은 부조화 그 자체였다. 종이가 부족해서 따로 처방전 용지를 만들지 못하는지라, 의사는 이면지를 접어 침을 발라 찢은 후에 볼펜으로 약 이름을 적어주었다.

거기 적힌 약 이름만 본다면 21세기 진료실 풍경을 연상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가 진료실을 나설 때마다 의사가 종이 접어 침 바르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노라면, 요즘 말로 ‘안습’이 아닐 수 없다.

그 뿐이랴? 의료용품 공급이 원활치 않아서 당뇨 환자들이 비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주사기를 개인적으로 조달하는 경우들도 드물지 않단다. 제약 산업의 자생성이 높다고 하지만 원 물질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하고, 이는 미국의 금수조치 때문에 심각한 제한을 받고 있다.

50년 된 자동차들과 싸구려 기름에서 발생하는 매연 덕분에 생태도시의 이름은 무색해지고 있다. 이중 통화 경제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업을 해야 하고, 적지 않은 이들은 비합법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아이들에게 물건을 파는 교사가 생겨나는가 하면, 관광객에게 가짜 시가, 가짜 럼주를 팔기도 한다. 론리플래닛의 여행 안내서에는 경제적 보상을 노린 쿠바인들의 성적인 접근을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친절한 설명이 달려있기도 하다. 외국 관광객을 접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쿠바의 혁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지금까지 극복해온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 오리엘비스 부모님의 부업, 돼지 키우기
 

 

7.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할 뿐 아니라 현존하고 있다.

이라크처럼 석유가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이란이나 북한처럼 핵을 두고 대립하는 것도 아닌데, 미국은 그 작은 나라 쿠바에 대해 왜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류 세계와는 다른, 미국적 질서가 강요하는 방식과는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쿠바가 현실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쿠바의 상황을 전할 때면, 상황을 지나치게 미화했다거나 혹은 한국과는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별로 도움될 것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특히 이미 자기 돈으로 교육 문제니 의료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쿠바의 제도가 절실하게 다가올 이유가 없으며 그저 실현 불가능한 포퓰리스트적 발상이거나, 현실화된다면 질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불합리한 체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는 절박한 꿈일 수 있으며, 쿠바 의료서비스의 질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국민소득이 한국의 1/6 밖에 안 되고, 미국의 앞마당에서 허덕이는 쿠바가 하는 일을 우리가 ‘절대’ 하지 못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라면 무상의료를 최종 목표로 두기보다, 이를 기본으로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지역사회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한다는 좀더 원대한 구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원대한 구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냉철한 분석과 구체적인 대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노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다수의 의식 변화가 아닐까 싶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2007년 04월 26일 (목) 15:00:00 김명희 / 을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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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편지 ①]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인권오름> 창간 1년, “인권오름과 나” - 여미숙

여미숙
<편집인주> 1993년 출발해 2006년 2월 3천호를 끝으로 마감한 <인권하루소식>에 이어, 인권운동사랑방은 지난해 4월 26일 새로운 주간 인권소식지 <인권오름>을 창간했습니다. “가려진 인권현장, 민중들의 삶과 소통하는 인권매체, 어깨 힘 빼고 살아있는 고민을 전하는 매체”를 고민하며 창간한 <인권오름>이 이제 1년을 맞이했습니다. 1년 전 이맘 때, 모래바람에 점령당한 하늘처럼 흙빛으로 가리워졌던 우리 인권의 현주소는 지금도 여전히 어둡기만 합니다. 그 속에서 ‘갇힌 인권’의 경계를 넘어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다른 인권’을 이야기하겠다던 1년 전의 ‘포부’가 수줍게 떠오릅니다. 인권의 가치가 삶의 한가운데로 녹아들 수 있도록 삶살이 가까이, 나지막이 인권이야기를 전하겠다던 창간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게만 보입니다. 이리저리 휘청이듯 중심을 잡은 듯 헤치면서 걸어온 1년, <인권오름>의 지난 1년을 <인권오름>과 함께 해준 독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봅니다.


얼마 전 아버지의 유해를 화장했다. 고향 마을이 신행정수도지라서, 이즘엔 묘지를 한창 없애고 있다. 나고 자란 곳을 한번도 떠나본 적 없는 어떤 사람들의 살아온 흔적이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지워지는 중이다.

20년 된 무덤을 파헤치자 잘 삭은 흑갈색 유골이 드러났다. 아버지 친구 분이 뼈들을 추려 고무통에 얼기설기 담았다. 수의를 탈탈 털지 않았다면, 이빨 한두 개쯤은 쌓인 흙더미에 휩쓸려갔으리라. 고무통에 담긴 뼈들은 가운데를 도려낸 LPG 가스통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가스통 옆에 놓인 또 다른 LPG 가스로 20여분 동안 태워졌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불길에 손을 쬐었다. 잠시 뒤 재와 잔해가 쇠절구로 옮겨졌다. 아버지의 또 다른 친구가 쿵덕쿵덕, 절구질을 했다. 간간이 뼛조각이 튀었다. 거친 뼛가루가 절구째 막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설익어 거무스름한 뼛가루일지언정 훨훨 날려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때마침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뼛가루는 뿌리자마자 빗줄기에 눌려 곧 가라앉았다. ‘겨우 존재하던 자’의 마지막다웠다.

<인권하루소식>을 처음 안 건 5년 전쯤인 것 같다. 갓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 하월곡동 사람들을 취재한 기사를 우연히 접하곤 책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가 한 선배가 “그건 야간비행이 할 일이지!” 딱 잘라 말하는 통에 무안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땐 인터넷으로만 기사를 읽었는데, ‘인권’이란 개념은 접어두고 수감자나 달동네 사람들 얘기가 실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읽어 내려가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사진설명'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때나 지금이나 <인권오름>을 받아보는 건 ‘겨우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다. 특히 [삶_세상]이 그러한데, 이 꼭지를 읽노라면 여러 얼굴이 스친다. 모욕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체화돼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모르는 어머니 얼굴이 설핏 떠오르기도 하고, 공부해서 이 곳을 꼭 벗어나라며 학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나를 위해 저녁을 꼬박꼬박 챙겨 놓았던, 공장을 떠난 후 잊어버린 미싱사 김 언니, 회사에서 병원에 보내주지 않아 기계에 꺾인 제 손이 부어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던 남동생과, 동생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어느 날의 나,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회사 잔일을 도맡아 하는, 나 역시도 ‘교묘하게’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회사 후배, 제 할 것 다 하면서 학습지 값은 미루는 회원 어머니의 막 대하는 태도에 마음 다쳐 새벽에 울먹이며 전화하던 집 근처 사는 후배, 빚 독촉 때문인지 일요일 아침마다 온 가족이 사라졌다 밤 늦게야 돌아오는 옆집 사람들, 그리고 개봉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에 촘촘히 걸리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내가 알고 있거나 잊었거나 알아야 할 사람들의 삶이 [삶_세상]에, <인권오름>에 있다. 소식지에 등장한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 그건 일주일에 한번쯤, 가슴을 흥건히 적시라는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진보는 기회주의적이고 기만적이며 허약하고 위선적이지 않느냐는 불편한 물음이었다.
덧붙이는글
여미숙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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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젝과 지저거리며 함께 머물기

 

컬쳐뉴스(07. 04. 24) 지젝과 지저거리며 함께 머물기

현대사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이름이 있다. 프로이트와 라캉을 뒤이어 정신분석학의 힘을 가장 야심차게 (재)확장해놓은 슬라보예 지젝(1949~  )이 바로 그 이름이다. 따라서 그의 이력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젝을 읽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선입견이 있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된다. 그의 글은 이해하기 쉽다는 선입견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이 선입견은 “대중문화로 철학을 더럽히는 철학자”라는 강단 철학자들의 비아냥거림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젝이 자신의 논의를 설명하기 위해 대중문화의 예(특히 할리우드 영화, 심지어는 <타이타닉> 같은 블록버스트까지!)를 많이 들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른 현대사상가들에 ‘비해’, 즉 ‘상대적으로’ 그러한 뿐이다.

이 점은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부제가 달린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도서출판b, 2007)를 읽을 때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이 책에서도 지젝은 <토탈 리콜>, <엔젤 하트>, <블레이드 러너>, <더티 해리> 같은 할리우드 영화 얘기를 곳곳에서 하지만, 그보다 백배는 더 많은 지면을 칸트와 헤겔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한정된 지면에 이 책의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는 없고, 이 책의 결론부에 해당하는 6장 「당신의 민족을 당신 자신처럼 즐겨라!」를 중심으로 몇 마디 하고자 한다.

6장의 핵심 테마는 “어떤 주어진 공동체를 묶는 요소는 상징적 동일화의 지점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 구성원들을 한데 연결하는 끈은 언제나 어떤 사물을 향한, 체화된 향유를 향한 공유된 관계를 함축한다”이다. 이 테마는 이 책의 부제에도 포함된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압축해 놓고 있으며, “기존의 지배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모든 비판이론의 궁극적 테마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지젝은 통상적인 이데올로기론, 즉 “이데올로기는 거짓 의식”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이론은 철저히 ‘재현적’이라고 비판한다. 즉, 통상적인 이데올로기론은 어떤 사회적 내용(가령 현실의 지배구조)을 왜곡하여 잘못 재현한 것이 곧 이데올로기라고 본다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이데올로기가 정의되면, 우리가 기존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어떤 사회적 내용을 왜곡하지 않고 제대로 재현하는 것이 된다(한때 우리는 이 과정을 ‘의식화’로, 그 결과물을 ‘대항-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젝에 따르면 “어떤 정치적 견지는 그 객관적 내용과 관련해서 아주 정확한(‘참된’) 것이면서도 철저하게 이데올로기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역도 참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재현의 문제틀로서는 이데올로기의 힘을 이해할 수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없다. “어떤 주어진 공동체를 묶는 요소는 상징적 동일화(곧 이데올로기)의 지점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지젝의 말은 이를 뜻한다.

그렇다면 어떤 주어진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한데 연결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지젝은 ‘체화된 향유’로서의 ‘어떤 사물’이 바로 그런 요소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이데올로기의 작동원리를 의식의 차원에서 무의식의 차원으로 끌고 내려가 설명하는데, 이때 그가 기대는 것이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다(아니, 오히려 지젝 식으로 해석된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라고 해야 정확할 듯하다).

 

 

 

 

 

 

 

 

 

 

라캉에 따르면 ‘향유’(juissance/enjoyment)란 쾌락(plaisir/pleasure)이 아니다. 향유와 쾌락을 동의어로 쓰곤 했던 프로이트와 달리(가령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라캉은 욕구(besoin/need)와 요구(demande/demand)를 구분하며 각각의 개념에 쾌락과 향유를 대입한다. 가령 어머니의 젖을 빠는 아기의 경우 배고픔이라는 생체적 욕구가 충족되면 더 이상 ‘식욕의 빨기’(succion)가 아니라 ‘쾌감의 빨기’(suçotement)를 한다. 이렇듯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도 추구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향유는 쾌락의 초과, 위반, 잉여이다. 또한 과도한 쾌락은 불쾌(고통)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쾌락 이상을 추구하는 향유는 도착적이기도 하다.

쾌감의 빨기는 아기가 어머니와 일체감을 느끼곤 하는 행위이기도 한데 이 행위는 곧 중단된다. 즉 젓 떼기를 하는 것이다. 아기는 잃어버린 일체감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쾌감의 빨기’를 반복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고, 이제 어머니의 젖꼭지는 “기다려 보지만 항상 결핍된 것”, 즉 충족되지 않은 욕망의 대상이 된다. 라캉은 이를 ‘대상 a’(objet petit a/object little-a)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지젝이 말하는 바의 ‘사물’(La Chose/the Thing)이다.

따라서 “어떤 사물을 향한, 체화된 향유를 향한 공유된 관계”가 어떤 주어진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한데 연결한다는 지젝의 말은 “잃어버린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 반복의 고통 속에서 느끼는 쾌락”(즉 향유)이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시켜 준다는 말인데, 그에 따라 지젝에게서는 이데올로기의 위상 자체도 변한다. 즉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어떤 사회적 내용을 왜곡하여 잘못 재현한” 담론구성체가 아니라 우리가 왜 그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서도 ‘사물’(대상 a)을 얻지 못하는가를 설명해 주는 상상적 답변이다. 그래서 지젝의 이데올로기는 환상(fantasy)의 구성물에 가깝다.

지젝은 프로이트와 라캉을 경유한 이런 정신분석학의 설명틀을 확장해 정신분석학을 정치학으로 탈바꿈시킨다. 가령 한 사회는 그만의 ‘대상 a’(사물)를 갖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일수도, 민족일수도, 계급일수도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들, 요컨대 영국이나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보통선거권이 인정받은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와서라는 사실을 너무나 자주 잊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족이나 계급의 경계가 생각보다 그리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자주 잊고 있다. 즉 민주주의, 민족, 계급은 아직 우리가 결코 완벽하게 소유한 적이 없는 ‘대상 a’(사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난 20세기 동안 결코 완벽히 소유한 적 없는 민주주의, 민족, 계급의 이름으로 대규모 전쟁(내전이든 국제전이든)을 해오지 않았는가? 지젝이 “향유의 도둑질”의 역설, 즉 우리의 사물이 타자에게 접근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간주(왜냐하면 우리의 사물은 타자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와 타자를 구분해 주는 것이므로)되는 동시에, 타자에 의해 위협당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된다(우리도 갖고 있지 않은 사물을 타자가 위협한다)는 역설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염두에 둔다면, 의식화나 대항-이데올로기의 창출을 통해 기존의 지배질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젝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대상 a’(사물)라는 것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혹은 절대 충족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거나, 향유가 충족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상상적인 환상(판타지)을 찢어발기거나. 파시즘의 반유대주의에 맞서 건국의 아버지 모세가 이집트인임을, 즉 유대인의 기원이 잡종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던 프로이트의 시도(「인간 모세와 유일신교」)가 전자의 경우라면, 지젝의 작업이 바로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것은 “예외된 한 사람”(homme moins un)이 되는 것일 게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거세 신화를 설명한 「토템과 터부」를 다시 읽으면서, 거세 위협에 복종한 아들들로 구성된 집단이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논리적으로 복종하지 않은 아들이 ‘적어도 한 사람’(au moins un)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라캉은 발음상의 유사성에 착안해 “이 적어도 한 사람”을 “예외된 한 사람”(오모엥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오모엥젱들이 연대할 때 기존의 지배질서는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이 오모엥젱들을 묶어줄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지젝은 아직 이 질문에 답을 해주진 않고 있으나 여하튼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지젝의 최근 작업은 혁명가들을 다시 읽는 ‘혁명’ 시리즈, 그리고 “모든 이데올로기가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포스트모던한 오늘날, 동시대의 이론이 저지르고 있는 오류와 대결하며 기발한 해결책을 제안한다”고 예고된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이다). 우리가 아직 지젝과 지저거리며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이재원_그린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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