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조조로 보았다. 봉준호 감독에 대해서는 '친근감'이 있다. 그의 형은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인 봉준수 선생님(감독과 정말 많이 닮으셨다 ㅎㅎ)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가 한국 근대소설의 '기교파'인 박태원. 그의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을 좋게 본 나로서는, 왠지 '아는 사람'의 영화인 듯 해서 개봉일날 봐 버리고 말았다.

정말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로서 대단히 웃기면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미국에 대한 풍자가 미군기지 폐수 방류사건, FTA 문제, 이라크 세균 문제 등을 짬뽕하면서 이야기의 큰 틀을 이룬다.

그 와중에 데모 꽤나 한 박해일의 화염병과 과거 운동의 '동지들'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압권은 역시 미국에 대한 조롱.

앞에서는 '인권단체, 경찰' 등등을 운위하지만, 지네 맘대로 날뛰는 것에 대한 풍자가 재미있다.

우리사회에 '괴물'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미국과 그의 꼬붕 한국인들이 만들어내서, 한강 밑바닥에 스물대고 있는 것. 괴물이 몇마리 한강 속에 더 있을지 모른다. 엔딩에서 송강호가 흠칫 놀라는 장면. 그리고 TV 뉴스속 'misinformation'으로 세균이 한국에 있었다고 '오해' 했었다는 미국측 공식발표, 그리고 아이와 따뜻한 밥을 먹는 송강호.

전혀 할리우드 '괴물' 영화랑 닮지 않았으면서 (E.T.를 뒤집어 놓은 설정정도 ^^) 사실적이지만, 또한 너무 영화적이라서 심각하지 않은, 재미있는 오락 영화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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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수정을 약간 닮은 어린 소녀의 모성애도 와 닿는다. :)
 
 전출처 : 바람구두 > 사나운 일진, 사나운 바람구두

사나운 일진, 사나운 바람구두

내일모레 휴가 시작이라 마음이 벌써부터 물러진 걸까? 아침 출근하는데 조금 늦었다싶어 서두르다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차들이 길게 줄을 선 아침 출근길, 앞차 흰색 세피아가 그 앞 차와 15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시속 20km로 운전한다. 차간 폭이 넓다보니 중간중간에 차들이 두서없이 끼어든다. 짜증이 화악 치밀어 올랐다. 경고등을 두어 차례 깜박깜박했지만 요지부동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차선 변경을 해서 다시 앞 차를 추월했다. 바로 내 앞에서 사거리 신호등이 초록색에서 주황색 경고등으로 바꼈다. 내 앞에 있던 세피아가 역시 아까처럼 나와 널직한 거리를 두고 내 뒤에 와서 섰다. 그 차가 남들 정도의 차간폭만 유지했어도 신호에 걸리지 않고 넘어섰을 사거리다. 사이드 브레이크 올리고 내려서 세피아 운전자에게 달려가 싫은소리라도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룸미러로 뒷차 운전자를 바라본다. 물끄러미...

초로(初老)의 사내가 뒷차에 앉아있다.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담배 한 개비를 꺼내물고 마음을 달렌다. 인천의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인천 장수동 초입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해야만 한다. 이곳은 외곽순환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인천제2경인고속도로가 합류하는 곳이라 늘 병목현상이 빚어지고 교통사고도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차선을 바꿔 인천 방향으로 올라서는데 갑자기 무쏘 스포츠가 라이트도 켜지 않고 급하게 끼어든다.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했다. 그리고 인천 방향으로 진입하기 위해 4차선에서 3차선으로 변경하려고 신호를 켜고 옮기는데 이번에도 무쏘스포츠가 내 앞에서 함께 차선 변경을 시도했다. 이번엔 브레이크 대신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약간 위험하긴 했지만 큰 무리없이 추월해서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운전을 배우고 첫 차는 수동 기어 방식이었다.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다행히도 내가 어딘가를 들이박아 사고를 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운전 자체가 별로란 생각과 환경을 생각하면 나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지 생각했기 때문에 거리로 나서는 일이 마음 편하지 않았다. 차가 있어도 되도록 차를 두고 다니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었다. 그러다 2년쯤 전이던가 첫차를 폐차할 정도의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신호대기를 위해 정차해 있었는데 뒤에서 달려온 차가 내 차를 들이받았다. 그런 뒤에 자동기어가 달린 차를 주변 친척 분에게 얻어서 타고 다닌다. 수동기어 만큼의 빠른 조작감은 없었지만 내가 운전을 그리 즐기는 사람이 아닌지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일단 편하니까 이전보다 자주 차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나름대로 드라이브를 즐길 정도가 되었던가 보다.

처음 차를 구입하게 되었을 때, 주변에서 차가 생기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은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오늘 문득 나를 돌아보니 내 대답은 "아니다." 물론 차가 생겨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보다 편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로인해 할 수 없게 된 일이 내게는 더욱 많다. 무엇보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그런 경험들을 매일매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 부대낌이 사람을 정말 피곤하게 만든다. 예전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근할 때 불편함은 그런 거였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다시 오지 않는 환승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 나의 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느낌이 답답했다. 하지만 직접 운전을 한다고 해도 그 시간이 내 것이 되어주지는 않더라는 거다. 도리어 아침 지하철 출근 시간 열차 내에서 귀에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던 즐거움 같은 것은 절대로 누릴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오늘 내 앞차 운전자와 내 옆차 운전자를 곁눈질 하며 그들의 느린 속도와 예의없는 폭주를 저주하고, 그들을 추월한 뒤 오는 순간의 스릴과 만족감 그런 뒤 다시 그들이 나를 추월하면 어쩌지 하는 약간의 두려움 속에서 나도 모르게 속도를 높인다.

나는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어서 세상에 왔지. 빠르게 살고 싶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닌데도, 문명의 패러독스는 실제로는 단축시켜주는 시간도,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콘트롤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아니면서 모두에게 문명의 이기와 혜택을 누리라고 한다. 결국 다국적 정유회사와 자동차 회사, 그리고 좀더 많은 것들을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매트릭스 속에 갇힌 것임을 잘 알겠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머리로는 그것을 알겠는데, 몸이 그것을 거부한다. 아니 몸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나의 이 깨우침이 그만큼 얄팍하다는 증거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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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어느 결혼식

지난 일요일, 아는 선생님의 자제분 결혼식날이었다.

그런데 양가의 협의하에 각자의 집안에서 50명씩의 가족들만 모여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이다.

외부의 어느 누구에게도, 장소도 시간도, 알리지 않고 말이다.

물론 그 소식도 뒤에 들었다.

정말 신선한 소식이었다.

그 선생님이 다시 보인다

우리의 결혼문화도 좀더 다른 양식을 보여야하지 않을까.

17년 전 나의 결혼식은 시내 어느 호텔에서 치뤘다. 양가에 모두 장남 장녀로서 첫 결혼식이어서

친척들이 많이 모였다. 그리고 축의금도 상당했던 것 같다. 우리쪽보다 시댁쪽이 그랬다.

휴일이면 결혼식장이 모여있는 곳은 교통이 복잡하기까지 하고 휴일날 결혼식이 한 두 건 있으면

모처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축의금으로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고, 아예 어떤 경우는 계좌번호를 알려주며 온라인으로 보내라는

경우도 있다하니, 결혼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자는 의미이긴 하지만 형식적이고 부담스럽기까지 하다면,

그리고 결혼당사자에게의 축복이라기보다 그 어른들에게 하는 의례적인 인사일 경우가 많다면?

결혼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살아가며 어떻게 가꾸어가느냐가 중요하다. 하객을 많이 끌어들이고 축의금을 많이 받고 뜸했던

친구에게까지 우인으로 참석해달라고 하여 겉으로 왁자지껄한 결혼식을 올린들,

사는 모습이 그리 행복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그때 시간을 내어서 축의금까지 내며 자리를 빛내준

사람들은 무엇일까?

지금은 이혼을 두 번 하고 혼자 자기 일에 매달려 살고 있는 친구가 생각난다.

두번째 결혼식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첫번째 결혼식에 나는 늦게 가게 되어 우인 사진도 못 찍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무척 미안한데, 이상하게도 난 발길이 그렇게 당기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내가 그때 제대로 축하해주고 그랬다면 잘 살았을까?

뜬금없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또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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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7-2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조용한 결혼식 원하는데, 양가 친척 어르신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주위 사람들 중 상당수는 김애란의 이 소설집에 대해서 시큰둥한 태도였다. 그래서 나도 '박민규 아류'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따분한 논문쓰기에 유쾌한 소설집 한 권이 도움 될 것 같아서 비자림님 이벤트로 선물 받았다.

막상 받아서 읽을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최고의 소설'은 아닐지라도, 이 정도면 꽤나 좋은 소설이다. 시적인 문장과 상상력은 시를 전공하는 나에게 더욱 매력적이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아무것도 없던 시절. 아무것도 없지만 낮과 밤이 있어서 가로등이 필요했던 때. 가로등은 지구와 함께 돌다 깜빡, 꺼지고 다시 한바퀴 돌다 깜빡, 켜졌다. 나는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지구보다 더 큰 둘레를 그리며 돌고 있는 가로등의 운동을 상상했다. 지구의 원주와 가로등이 손끝으로 그려내는 원의 너비. 그리고 그 두 원의 너비 차가 만드는 사이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61면)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지구보다 더 큰 둘레를 그리며 돌고 있는 가로등의 운동'과 '지구의 원주와 가로등이 손끝으로 그려내는 원의 너비' 사이에 살아고 있는 사람들이라니! 그리고 다음과 같이 신선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이는 문장들.

당신이 떠난 후, 나는 몹시 우울한 나머지 한밤중 길에서 외계인을 만난대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135면)

이렇게 아름다운 상상력 뿐만 아니라 거대하지는 않지만 예리함이 빛나는 통찰들.

나는 동창들의 미니홈피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서로가 오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혹은 서로가 슬며시 왔다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더 열심히 자기 삶을 전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윤택한 사진 아래로는 온갖 사교적인 답글이 달리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온라인상에서 우리는 날마다 동창회를 열고 있었다. (127면)

그리고 단편 <종이 물고기>에서 포스트잇을 사면에 붙인 방에 바람이 불때 이것을 물고기에 비유하는 아름다움이나, 근대화되고 규격화된 삶이라는 어찌보면 다소 식상한 주제를 긴장을 놓지 않게 풀어나간 대학생 때의 등단작 <노크하지 않는 집> 또 수작이다.

80년생 소설가. 기대된다. 박민규처럼 자기반복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 힘들겠지만. (애매한 문장인데, 박민규가 자기 반복한다는 소리다.)

ps. 지금 제주도에서 휴가(?)를 만끽하고 있을 비자림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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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매지 > 1만 2천 개의 녹차









출처 : http://blog.naver.com/2x5/14002430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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