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2
칼 마르크스 외 지음, 박종철출판사 편집부 엮음, 김세균 감수 / 박종철출판사 / 1997년 5월
품절


부르주아 사회의 생산력들이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적 관계들 내부에서 가능한 한도 안에서 왕성하게 발전하는 이러한 전반적 호황의 시기에는, 진정한 혁명이라는 것은 언급조차 할 수 없다. 진정한 혁명은 이 두 요인들, 요컨대 현대적 생산력들과 부르주아적 생산 형태들이 서로 모순에 빠지는 시기에만 가능할 뿐이다. 지금 대륙의 질서파 각 분파들의 대표자들은 각종의 다툼들에 탐닉해 있으며 그리하여 서로의 체면을 깎아 내리고 있지만, 그러한 다툼들은 새로운 혁명에 동기를 제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그러한 다툼들이 가능한 것은, 관계들의 기초라는 것이 현재 극히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반동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극히 부르주아적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적 발전을 억제하려는 모든 반동적 시도들은, 민주주의자들의 온갖 도덕적 분노 및 온갖 열광적 선언들과 마찬가지로 이 기초들에 부딪혀 튀어 돌아올 것이다. 새로운 혁명은 새로운 공황의 결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또한 새로운 혁명은 새로운 공황만큼이나 확실하다.-102-103쪽

시대와 함께하는 맑스. 진정 혁명가, 진정 맑시스트라면 불황을 기뻐하고, 지난 탄핵을 환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기회이기 때문. 지배 이데올로기가 순간 걷히고 적나라한 적대들이 들어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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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잘코군 > iamX의 중복 리뷰 비판에 대해(실시간 논쟁글 주소 첨부)

 하필 그 시간에 깨어있어서, 알라딘에 접속해있어서,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는 새벽시간에 올라온 글들에 대해 댓글을 달게 되어 여기까지 왔는데, 아주 오래전 이런 짓 하다가 내가 화가 나서 안면마비 결린 적이 있으므로, 다시 걸리면 회복불가 할지도 모른다고 했으므로, 내 건강을 위해 최대한 얌전히 말하련다. 그리고 아무래도 정신,신체건강에 안좋겠다 싶으면 중간에 빠지련다. 비단 안면마비에 걸린 적 있는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자신의 건강을 염려할 것이니 그들도 최대한 완곡어조로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램이다. 거친 언어와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 냉소 등은 삼가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iamX의 첫 비판 글은 매우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자신의 불만사항을 혼자 배설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글을 읽는 이들을 배려해줘야 할 것이다. 관련 댓글을 다는 이와 함께 토론에 참여하는 이뿐 아니라 수백명의 알라디너들이 글을 보게 될 것이므로.

아래는 iamX의 '왜 자기 자신에게는 그토록 관대한가?'에 대한 내 생각이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31)

첫째, "좋은 책을 나누고 싶어서 서평을 쓴다"는 주장에 대해서."에 대해서

 제도의 헛점을 이용하며 상금을 타가는 사람들을 비판해야지, 중복리뷰를 비판해서는 안된다. 중복리뷰를 올리는  사람들 모두가 제도의 헛점을 이용하며 상금을 타가는 사람들과 동일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비판의 대상은 중복리뷰어가 아니라 '중복리뷰로 반복해서 상금을 타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땡스투를 받기 위해 제대로 된 리뷰가 아니라 한줄에서 다섯줄짜리 리뷰를 부지기수로 올리는 리뷰어가 있는데, 이 분은 아마도 알라딘에만 거주하는 듯 싶다. 그렇다면 알라딘에서만 활동하는 이런 불량리뷰어들은 훌륭하고, 두곳이상에 거주하며 그래도 꽤나 '성실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잘못되었다고 봐야하는건가? 너무나 단순한 분류방식이 아닌가.

  또 내가 문제제기자와 달리 고정적인 월급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몇십원, 몇백원 안들어와도 상관없다. 단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그 책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 기쁠 뿐이다. 대부분의 알라디너들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지난 밤의 누군가로부터 땡스투를 받아 '50원'이 들어왔다면, 사람들은 50원을 벌어서 기뻐하는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선택을 해줬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땡스투 많이 받는 자를 인기인이라고 칭한다면, 그들은 나름대로의 책서평가로서의 명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터다. 인기와 명예를 얻는 것이 나쁜가. 몇십원가지고 너무 까칠하게 바라보지 말 길 바란다. 그걸 돈으로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

 둘째,  "중복 서평은 문제다."에 대해서

 "개인은 책을 읽고 난 소감, 비판을 위해 서평을 쓸지 모르지만, 그것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그 서평은 곧 올린 인터넷 서점과 그 책을 낸 출판사의 홍보도구가 된다. 그깟 몇 십원, 몇 백원 혹은 많아야 몇 만원 정도의 혜택 갖고 저렇게까지 중복 서평을 올리겠냐라고 누군가 반문해오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

  일단, 아이엠엑스님은 중복 리뷰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다른 문제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예 그동안에 쌓여있던 인터넷 서점 업계와 출판업계, 리뷰어들에 대한 불만을 다 털어놓으실 셈인 듯 하다. 다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코멘트 달자면,

  인정한다. 내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의 홍보도구가 된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업계 매출 하위순위를 달리고 있는 알라딘의 리뷰는 인터넷 서점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예스24보다 월등히 많다. 그리고 어떤 다른 인터넷 서점보다 인문/사회 분야의 리뷰가 많고, 리뷰의 질 또한 높다. 고로 이러한 수많은 리뷰어들이 만들어낸 알라딘의 리뷰들은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서점에겐 좋은 이미지 홍보 효과로 둔갑할 수 있다. 또한, 잘 쓴 한 편의 자발적인 독자리뷰는 출판사가 갓 낸 책에 대한 좋은 홍보거리가 되고 있고, 고로 출판사는 더 돈들이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공짜책을 나눠줌으로써 최대의 홍보효과를 노린다.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 홍보를 위해 공짜 책을 베풂으로써 많은 이들이 돈안들이고 책을 읽게 된다. 그들은 또 공짜 책을 받은 만큼의 최소한 의무감(리뷰작성하기)을 행하고 있다. 이게 문제가 되는가. 오히려 문제가 되기는커녕 더 좋은 것 아닌가 모르겠다. 공짜 책을 마음대로 베풀지 못하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흐름은 많은 이들이 돈안들이고 책을 받아 읽게 되고, 책을 읽고 리뷰까지 쓰게 되는 좋은 습관을 길러주고 있으며,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게 하지 않나 생각한다.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더라도, 책 홍보를 위해서 직업으로서의 서평가들, 출판전문가들에게 서평과 리뷰를 의뢰하지 않고, 다양한 독자들의 리뷰에 의존하게 되니, 우리는 맨날 봤던 사람들의 글로 책을 안내받지 않고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통해 책을 안내받으니 더 좋은 것이 아닌가. 다양성 면에서 말이다. 중복리뷰어가 여기저기 활동함으로써 같은 리뷰를 여러곳에 올리게 되면 결국 우리는 똑같은 글을 보며 책을 안내 받는 것이 아니냐는 말은 하지 말자.

  아이엠엑스님같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분들은 이곳저것 돌아다니며 같은 글 없나 검색해보실지 모르겠지만 대개의 책 구매자들은 한 곳에 있는 리뷰만 본다. 그들은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고, 책 하나 사기 위해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올라온 모든 리뷰를 꼼꼼히 읽어볼 필요도 못 느낀다. 나름 부지런하다고 자처하는 나부터도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만 한번 쭉 훑어보게 되지 예스24 리뷰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땡스투 제도는 책을 구입함에 있어 타인의 리뷰를 읽어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해당 도서에 대해 수십건의 리뷰가 올라왔다면 그 중에 내 머리와 가슴을 가장 울리는 리뷰가 무엇인지 찾아 읽어보게 되고, 기왕이면 그에게 단돈 몇십원을 하사하고자 한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그런 소소한 이익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떳떳하게 밝혀라. "이 글은 원래 어느 인터넷 서점에 올린 글이었으며, 소통의 가능성을 위해 이 서점에도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어떤 혜택도 바라지 않습니다." 라고"

  굳이 이렇게까지 까칠하게 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외박을 안하던 녀석이 외박을 밥먹듯이 한다고 어머니가 너 이제부터 외박할거면 여자랑 있지 않겠다고 각서써.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꼭 무슨 대단한 잘못을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가슴에 써붙이고 돌아다니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건 도가 지나치다.  왜 이렇게 까칠하게 나오시는지 이해가 안된다.

"인터넷 서점의 가장 강력한 홍보도구는 바로 인터넷 서점 이용자들의 서평이다. 인터넷 서점의 차별화는 독자 서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서평이 여기저기 중복되어 올라오고 있다면? 결국 남는 것은 "가격 차이" 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인터넷 서점의 경영을 힘겹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복 서평은 인터넷 서점이 나서서 막아야 할 문제다. 이렇게 썼는데도 위기의식을 갖지 못하시겠다면,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지금 나는 굉장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Yes24와 알라딘의 차이가 TTB 밖에 없다면 믿으시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그렇다. 나를 포함해서 책 꽤나 읽는다는 분들은 시장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인터넷 서점들, 알라딘과 예스24의 차별성을 위해 리뷰어들이 중복리뷰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거 같은데, 내가 알라딘이나 예스24 사원도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그들 서점들이 차별성을 갖는데 기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예스24와 알라딘은 책을 파는 똑같은 서점인데 왜 우리가 서로 다른 분위기와 이미지를 갖도록 해줘야 하는가. 가격차이만 난다고 해도 하등 문제 될 바가 없다. 억지로 각각의 문화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말자, 중복리뷰가 난무하는 이 시점에도 알라딘과 예스24는 분명히 다르다. 해당 서점의 블로그와 서재에 거주하는 이들에 따라서, 또 블로그와 서재의 운영방식에 따라서만도 충분히 서로 차이점을 보인다.

"자신의 서평이 너무 좋아서 다른 이들이 자신의 서평을 보면 책을 사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딴 생각은 그만두라고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싶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책이 좋으냐 나쁘냐를 다른 예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서평이다. 그러나, 그 서평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면? 효과는 반감, 아니 확실히 줄어든다. 역효과만 날 뿐이다."

  글쓴이는 아직 감정이 격해져있는 듯 하다. 글을 좀 더 온건하게 썼으면 좋겠는데 ' 그 딴 생각'은 '그런 생각'쯤으로, 그리고 문장은 좀 더 부드럽게 해줄수는 없는지. 보는 사람들도 생각해줘야지. 서평이 여기저기 널려있어도 - 기껏해야 두 군데 이상 활동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있더라도 상관없고) - 책 구매자는 한 군데서만 본다.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피곤한 짓 하지 않는다. 해당 도서에 대한 중복리뷰를 쓴다해도 그 리뷰가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도서 쯤이 이에 속할텐데,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책이라면 또 리뷰가 그만큼 없을 것이고, 리뷰가 아예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구매자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중복리뷰 인정하자. 효과 난다.

 아휴 힘들다. 아침부터 이게 뭐야. 힘들어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분들의 생각도 좀 들어보고 싶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하여 아래 관련글을 묶어놨습니다.

 

2007.1.13 아침 첨언

 만일, 동일리뷰로 상금을 받게 되는 이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각 인터넷 서점이 재차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상금을 받은 리뷰어의 잘못은 아니다. 고로 소통을 위해 중복리뷰를 올리는 나같은 이들은 상금을 주건 안주건 관심없다. 소통을 위해 블로그를 활용하고 리뷰란은 채우지 말라는 의견이 있는데, 리뷰란을 활용하는 이유는, 소통을 넘어서서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가벼운 공감, 지지, 딴지를 해주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은 이 혹은 같은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가  먼저 들르는 곳은 리뷰란이며 해당 블로거의 블로그가 아니다. 타인의 의견을 읽고 듣고 피드백하여 자기발전을 이루려는 목적, 그리고 타인과 공감을 얻고픈 목적, 못 쓴 글이지만 타인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픈 목적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블로그 게시판보다는 리뷰란을 활용하는 것이다.



 

관련글 모음

* 가급적 논의가 진행된 순서대로 모아놨습니다. 뒤늦게 글을 보고 궁금하신 분들은 이 모음글이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현재 2007년 1월 12일 새벽부터 2007년 1월 15일 오전 12시 40분까지의 글들을 모아놨습니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8878 (인터넷 서점의 중복서평을 고발한다1 - iamX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8995 (중복서평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정군님)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083 (매너놈이중복서평안쓰는이유,그리고첨언-매너리스트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075 (알라딘에 거주하고 있는 박쥐로서 한마디 - 아프락사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011 (차이를 인정하고 살자 - antitheme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8923 (관련댓글들 - 반딧불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26 (인터넷 서점의 중복서평을 고발한다2 - iamX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31 (왜 자신에게는 그토록 관대한가? - - iamX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58 (iamX의 중복 리뷰 비판에 대해 - 아프락사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13 (매너리스트 글의 위서가님 댓글에 대한 반딧불님 댓글)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23 (공개사과드립니다 - iamX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36 (반딧불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39 (지지, 공감, 감동 - 아프락사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47 (iamx님께, 그리고 매너님께 - 마태우스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16 (노벨문학상과 리뷰 - 자유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06 (박쥐 - 메피스토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88 (사각의 링 - 메피스토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12 (중복리뷰가 안되는 이유? 난 되는 이유 - 자유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13 (정군님의 서평은 어디에 실리는가? - iamx 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14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된장녀일까? - 블루마린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32 (중복리뷰보다 더 중요한 문제 - 마태우스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64 (나와 알라딘 - 딸기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65 (우린 왜 작은 일에 서로를 상처주는가? - antitheme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63 (1인 미디어 시대의 서평권 - 맑음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24 (서평의 범람 - 중복서평 논란을 보며 - 낡은구두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28 (요즘 알라딘 마을이 들썩인다 - 스위트피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32 (자체 검열 - 마노아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37 (박쥐라... - 아름다운 단비양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85 (다시 이야기를 해볼까 - 정군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05 (저는 리뷰를 두곳 이상에 쓴 적은 없지만 - 불멸의 나애리)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06 (치졸한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 불멸의 나애리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57 (위서가님께 - 클리오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68 (착한 나라 사람으로서 - 클리오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59 (중복 리뷰 논란에 대해,iamx님,매너님,위서가님 - 기인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71 (웹 2.0과 블로그... 그리고 책에 대한 리뷰 - 쿼크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09 (중복리뷰가 뭐 그리 문제인가요? - 아름다운 단비양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30 (알라딘 마을이 들썩이고 있는데 - 카프리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71 (사람이 떠났습니다 - 매너리스트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74 (자기 글  링크 문제에 대하여 - 자명한산책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83 (나는 왜?(1) - iamx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91 (중복리뷰 - 이유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717 (나는 왜?(2) - iamx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730 (언어 이전의 우주와 언어 이후의 우주 - 승주나무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757 (다시 중복리뷰가 무슨무슨문제냐는분들께-매너리스트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20 ([코멘트] 사람이 떠났습니다 - 반딧불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32 (나는 왜?(3) - iamx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86 (위서가님에게 - 조선인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97 (매너님의 중복모델에 대한 다른 입장 - 승주나무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930 (iamx님께 - 정군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036 (iamx님께(2) - 정군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159 (iamx님의 나는 왜? 에 부쳐 - antitheme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163 (논리적이라는 말의 재수없음에 대하여 - 치카님)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205 (정보차단을 획책하는거 아닐까요? - 치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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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젝에 대한 두 가지 의견에 부쳐

지젝에 대한 비판에는 어떤 것들이 있냐고 에바님이 물어오셔서 몇 군데 검색을 해봤다. 몇 편의 글들에 대한 서지 정도를 확인해두었는데, 영문 서지인지라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띈 건 다름아닌 내가 3년전에 쓴 것이다. 다시 읽으며 약간의 '시간차'를 느끼게 되지만, '자료'로 치면 무난할 것도 같아서 그냥 옮겨놓는다(지젝에 관해 쓴 자료들을 다 옮겨놓은 줄 알았는데 창고에 없다!).  

인터넷 검색(산책)을 하다가 작년(*2003년) 10월 6일자 이대학보에 실린 '지젝 특집'을 읽게 되었다. 당시 각 대학 학보마다 지젝의 방한을 맞이하여 학술면 특집을 마련했더랬는데, "욕망과 실재로 현대사회를 본다"라는 이 특집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특집은 "사회를 구하는 환상,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지젝의 작업을 개관하는 기사와 함께, 각각 그의 행동적 지식인으로서의 실천에 대한 지지와 이론적 작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짧은 기고문 두 편으로 구성돼 있다. 내가 제목에서 '두 가지 의견'이라고 한 것은 이 두 기고문을 말한다.

먼저 허윤(국문4)은 자신이 지젝을 좋아하는 이유를 열거한다: "그는 학문이 삶과 괴리되지 않음을, 사상이 현실을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활동가다. 이것이 내가 지젝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학자는 상아탑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젝은 상아탑의 높은 벽을 부수고 두 발을 땅에 붙인 채로 자신의 사상을 펼친다. 개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여겨졌던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을 현실사회와 연결시키고 현실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짧은 기고문의 마무리인데, 여기에 그대로 옮긴 이유는 내가 지젝을 좋아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근래에 나는 그보다 열정적인 목소리로 우리의 전지구적/인간적 현실에 대해서 발언/비판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내가 작년에 읽은 가장 감동적인 책이다). 지난번 방한 강연회에서의 그의 거친 목소리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복장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바이지만, 그는 이론적/사회비판적 저작들을 계속 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즘의 인물은 아니다. 요컨대 '교수'나 '학자' 타입이 아니라, '활동가'이다.

사실 그가 슬로베이나의 류블랴나 대학에서 맡고 있는 지위도 우리식의 '연구교수' 같은 것이어서 강의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그는 강의로부터 면제돼 있다). 그것은 슬로베니아 당국 혹은 대학권력과의 마찰/불화의 결과이지만, 그는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삼는다. 우연찮게(우연은 아니다. 그는 대담에서 영화에 대한 관심/열정은 철학보다도 앞선 것이었다고 말하니까) 대중적인 영화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으로 '뜨게' 되었지만, 그의 그러한 '전술'은 사실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건 충분히 훌륭한 '미끼' 역할을 해준 것이니까. 사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부터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친-지젝파들은 애초에 라캉을 읽어보겠다는 욕심을 갖지 못했거나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라캉 이해는 전적으로 자크-알랭 밀레에 기대고 있다. 밀레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지젝도 가능하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그가 이론가이자 해석가로서 밀레와 구별되는 지점은 이미 언급되었다시피, 그가 '활동가'라는 점에 있다. 물론 그가 활동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라캉의 이론과 독일 관념론 같이 아주 난삽한 '이론'이긴 하지만. 물론 이때의 이론은 이미 실천으로서의 이론이다. "정신이 뼈"라는 헤겔의 문구를 반복하자면, 그에게는 "이론이 곧 실천"이다(반면에 '실천적 이론'이라거나 '이론적 실천'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이론/실천의 이분법적 도식안에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와 작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열정은 '연구'에 바빠서 미처 사회적 '활동'을 할 만한 여가가 없는 책상물림들에겐 충분히 자극적이며 모범이 될 만하다. 그러한 모범에 따른다는 것은 무사안일하게 'mere life'나 'mere study'에 함몰돼 있는 '왜소한' 자신의 삶/학문을 더이상 방치하지 않는 것이며, 지금까지의 습관/관행을 "이건 아니지!"라고 거부하는 것이다.

이어서 진태원(서울대 철학과 강사)은 지젝의 세계적인 유명세("동유럽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주류 철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진단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론'(이건 비교문학쪽 소관이다)과 '철학'(분석철학이나 현상학)을 구분하는 미국 학계의 제도적 특성 때문인데, "더 나아가 이는 지젝의 논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즉, "지젝은 정교한 논변을 제시하는 전통적인 철학자들과는 달리 다양한 대중문화의 사례들의 제시를 통해 자신의 이론, 곧 라캉의 정신분석을 예증하는 논의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이론의 타당성을 따지기 어렵게 만든다." 이것은 같은과 김상환 교수의 "지젝은 여러 이론들의 활로를 찾는 공을 세웠지만 독자적인 이론가는 아니"라는 평가와도 맥을 같이 한다.

사실, 이러한 평가/비판은 니체의 철학을 무체계적이라고 하여 '문학류'로 취급하거나, 데리다의 철학을 지나치게 수사적(동시에 수행적)이라고 하여 '비철학'으로 간주해버리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데리다의 <에코그라피>를 번역하기도 한 이에게서 이러한 태도를 다시 확인하는 것은 다소 의외이다. 국내 '유일의' 데리다 전문가 김상환 교수의 평 또한 그간에 '데리다'에게 쏟아졌던 단골 비판이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다. 문제는 지젝의 실재가 아니라 지젝의 대가적 명성을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함'이 아닐까?

진태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또한 지젝의 급진적인 사회적 변혁에 관한 주장은 경험과학적 지식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어 논증적 효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데, 이 또한 비판을 위한 비판밖에는 되지 못한다. 최근에 바울이나 레닌에 경도되어 있는 지젝에 따르면, 진정한 행위(act)는 어떤 계획이나 고안에 의해서 성취/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겪어낸다거나 통과한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다. 경험과학적 지식에 의해 뒷받침된 사회변혁의 사례가 과연 있었던가? 지젝의 말대로, '지식'은 사후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의미화하기 위해서 마련되는 것이다. 지젝도 인용하고 있는 영국 사회철학자 존 엘스터에 따르면, 새로운 것은 항상 "본질적으로 부산물인 상태"이지, 결코 선행 계획의 결과가 아니다. 지젝이 강조하고 있는 행위에의 결단에 대해서,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증거)를 제시하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내보여라, 그럼 신을 믿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신앙은 도약의 문제이다).

평자는 당부의 말로 덧붙인바, "앞으로 '이론가' 지젝의 핵심과제는 라캉 사유의 약점이기도 한 '진리와 경험적 지식 사이의 괴리'를 해결하는 것인 듯하다"라고 했는데, 평자가 과연 "진리와 경험적 지식 사이의 일치'(이건 상당히 프래그머티스틱한 주장인데)야말로 이론의 목적이자 철학의 지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좀 의식스럽다. 평자가 전공한 스피노자가 과연 그러한 철학자이며, 헤겔이 그러한 철학자이며, 알튀세르가 그러한 철학자인가?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는 양자역학의 진리(이론)는 전부 넌센스가 될 것이고, 무의식의 진리(앎)를 말하는 정신분석학 또한 잠꼬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사실 지젝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내 경우에, 상당히 역설적이고 급진적인 그의 주장들이 매우 실감있다는 점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아주 리얼한 것이다. 책속의 진리야 말로 지젝이 혐오해 마지 않을 만한 것인데, 지젝의 '이론'을 책속의 진리로만 치부하는 것은 비판으로서도 좀 고약하다...

04. 01. 07/ 07.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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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위서가님에게

근본적인 가치관

거시적인 정치적 의사와 미시적인 개인적 입장 표명은 일치해야 한다.


근본적인 인간관

성악설 지지


인터넷 서점 서평의 문제점

- 일단 서평을 쓰는 사람들은 '쓰는' 것만 생각하지 다른 고객이 그 서평을 읽고 불량서적을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을 못 한다는게 근본적인 문제
- 엉뚱한 탑셀러들의 홍보 광고로 전락
- 서평을 읽는 것보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중복서평의 문제점

- 주장1:서평에 대한 '당첨제도'가 존재하는 마당에 중복서평을 올리면 멋드러진 서평을 쓰는 사람으로 인해 타인이 서평을 통해 대가를 받을 기회와 서평이 읽힐 기회가 줄어든다. 나아가 일부 인간이 서평을 독과점하게 되면서 이 사람의 발언에 따라 판매량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는 권력이 생긴다.
- 주장2: 쓸데없는 정보를 중복시킬 수 있다.
- 주장3: 개인의 금전적 이익, 명예, 인기욕 충족의 수단이며, 그렇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 주장4: 인터넷 서점 간의 서평 차별화가 없으며, 독자적인 서평을 육성하려는 노력을 인터넷 서점이 안 하게 된다. 혹은 인터넷 서점은 고유한 주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 서평의 차별화가 없을 경우 남는 것은 가격의 차별화인데, 이는 출판계와 알라딘에 타격을 준다.
- 주장5: 자본이나 마케팅 술수, 특정 개인의 선호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서평을 보고 책 구매를 결정하는 (현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출판사에게도 피해를 준다.
- 비약1: 인터넷 서점의 경계를 뛰어넘는 중복서평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FTA와 같다. 따라서 FTA를 반대하는 사람은 중복리뷰도 반대해야 한다.
- 비약2: 서평으로 금전적 이익, 명예, 인기를 추구하면서, 좋은 책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한국의 기득권층의 행위처럼 위선적이다.
- 비약3: 아무리 푼돈이라도 중복리뷰로 이득이 생겼다면 공무원이 1년에 천원이라도 뇌물을 받는 것과 같다.
- 비약4: 도용리뷰는 신고하면 되므로, 자신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중복리뷰를 올리는 것은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혼을 한다는 논리와 같다.
- 비약5: 좋은 책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자기 블로그에 올려놓고 자기 블로그를 홍보하면 된다.


중복리뷰를 찬성하는 의견의 문제점

- 판단: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얘기만 하는 경향이 있다
- 비약: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찬성논리는 분양가 공개 안 하고 부풀려먹는 건설업자나, FTA를 강행하는 정부관료나, 심지어 성추행한 모 정당의 정치인들도 '정당화'시킬 수 있다.


고의적으로 비약을 하고 독설을 한 이유

폭로를 해봤자 상대방이 대거리를 안 하면 무의미하므로 중복서평을 논쟁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대안

- 중복리뷰에 대한 시비를 공론화 하자
- 중복리뷰를 모두 삭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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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2
칼 마르크스 외 지음, 박종철출판사 편집부 엮음, 김세균 감수 / 박종철출판사 / 1997년 5월
품절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점 더 혁명적 사회주의의 주변에, 즉 부르주아지 자신이 블랑끼라는 이름을 고안해서 붙여 준 공산주의의 주변에 집결하고 있다. 이 사회주의는 혁명의 영속 선언이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재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재는 계급 차별 일반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계급 차별이 근거하고 있는 전체 생산 관계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생산 관계들에 조응하는 전체 사회적 연관들의 철폐로 가기 위한, 이 사회적 연관들로부터 기인하는 전체 이념의 변혁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 경과점이다.-94쪽

'공산주의'란 무엇일까. 플라톤의 <국가>처럼 치밀하게 계획된 사회일까. 맑스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말한,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점심에는 양을 치고 저녁에는 비평을 하는, 전인의 탄생. 결국 '혁명의 영속 선언!' 끝나지 않는, 끝날수 없는 혁명. '전체 생산 관계들의 철폐', '전체 사회적 연관들의 철폐'.
최종심급과도 같은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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