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사회의 생산력들이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적 관계들 내부에서 가능한 한도 안에서 왕성하게 발전하는 이러한 전반적 호황의 시기에는, 진정한 혁명이라는 것은 언급조차 할 수 없다. 진정한 혁명은 이 두 요인들, 요컨대 현대적 생산력들과 부르주아적 생산 형태들이 서로 모순에 빠지는 시기에만 가능할 뿐이다. 지금 대륙의 질서파 각 분파들의 대표자들은 각종의 다툼들에 탐닉해 있으며 그리하여 서로의 체면을 깎아 내리고 있지만, 그러한 다툼들은 새로운 혁명에 동기를 제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그러한 다툼들이 가능한 것은, 관계들의 기초라는 것이 현재 극히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반동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극히 부르주아적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적 발전을 억제하려는 모든 반동적 시도들은, 민주주의자들의 온갖 도덕적 분노 및 온갖 열광적 선언들과 마찬가지로 이 기초들에 부딪혀 튀어 돌아올 것이다. 새로운 혁명은 새로운 공황의 결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또한 새로운 혁명은 새로운 공황만큼이나 확실하다.-102-103쪽
시대와 함께하는 맑스. 진정 혁명가, 진정 맑시스트라면 불황을 기뻐하고, 지난 탄핵을 환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기회이기 때문. 지배 이데올로기가 순간 걷히고 적나라한 적대들이 들어나는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