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생이라는 인물보다, 최씨가 더 흥미롭다. 외간남자를 선뜻 집 안으로 들이며, 이생이 부모님께 들키면 혼날 수 있다고 걱정하자, 그를 꾸짖으며 정을 통한다. 

강간 당할 위험에 처하자, 정조를 지키며 죽음을 택하는 면도 있지만, 저승에서 혼자 의지로 살아 돌아와 남편과 다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그리스 신화의 수동적인 여성들 보다 백배는 진취적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남성적 판타지로도 독해 가능하다. 처녀 때는 유혹하고, 아내가 되니 정절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며, 심지어 집안도 부자인.


강간을 거부하다 죽는 장면은 이인직의 혈의 누에서, 옥련의 어머니가 겁탈 당할 뻔한 장면이 연상된다. 중국 소설들과의 비교 연구를 읽어봐야 얼마나 '새로운' 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한시가 중심이고, 소설은 이를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 식민지 근대성론과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이중비판
김흥규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근대성'이라는 말은 삶 전체를 걸게 만들기도 하는 말이다. 60~70년대 '독립운동'을 하듯이 연구를 했다고 했던 선학들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조선이 일본에 의해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해서,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했다. 즉 조선후기에 근대의 '맹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어도 '우리'도 발전가능성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90~2000년대는 이를 비판하면서 김흥규 선생이 '단층적 근대성'론이라고 불리는 논의들이 앞선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했다. '민족'은 근대의 구성물이라는 것, '연애'는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 등으로 '근대'라는 시대의 새로운 '탄생'을 조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도 서구 근대는 보편이며, 세계사가 도달해야될 단계라는 단선적 진보적 역사관을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흥규 선생은, 이는 '근대의 특권화'가 아닌지 되묻고 있다.


내가 문제 삼은 것은 그가 한국의 근대역사학을 식민주의가 생산한 지식의 차용이나 전용이라는 계보적 파생성 '속에서만' 보는 매몰되었으며, 한국 역사학자들이 자국의 전근대 역사서, 자료, 기억과 대화하고 해방적 이해의 창출을 위해 고투하기도 바를 무시하거나 왜곡했다는 것이다. 식민주의를 가치론적으로 합리화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이 다른 생산의 원천으로서 독점적 위상을 지니는 듯이 가정함으로써 '발생론적으로 특권화'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그는 한국사의 근대를 식민주의에 포획된 시간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위의 특권화는 근대의 특권화와 표리관계를 이룬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전근대와 근대를 단절적으로 구획했다. () 단선적 진보사관의 믿음과 달리 역사는 다중적 시간성의 얽힘으로 형성되며, 과거 시간의 가닥들은 신기루처럼 일거에 사라지지 않고 그것들이 폭력적으로 접혀 들어간 시공간에서 복잡한 작용의 역사에 관여한다. (190~191)


이러한 '근대'문학 연구자들은 현 분과학문체제와 대응되는 면이 있다. 국문과 내의 고전문학/현대문학의 분절은 거의 과 수준으로 분절된다. 고전문학은 '근대' 이후를 공부하지 않고, 현대문학은 고전문학을 모른다. 그러니, 근대가 특권화되며 '과거가 몰수'되는 것은 이러한 시스템에서 도출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시스템은 돌파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근대에서 연애의 '탄생'을 묻기 위해서는 그럼 이것이 '중세'와 어떻게 달랐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을 영미의 근대와 중세 비교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당연한 작업을, 우리는 지금껏 눈가리는 식으로 덮어두었다.

  이에 대한 김흥규 선생의 지적은, 국학도라면 누구라도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862857

기사는 연합뉴스 소개입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동시 출간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웰컴 투 뉴스비즈니스 - 저널리즘 쇼 비즈니스를 뒤집는 아랍 특파원 표류기
요리스 루옌데이크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안중근이 테러리스트인지 의사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으로, 우익화되고 있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국에서는 많은 반발이 있었다. 테러는 "폭력을 써서 적이나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라고 정의되고 있고, 의거는 "정의를 위하여 개인이나 집단이 의로운 일을 도모함."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면 당연히 이 둘은 모순관계가 아니다. 정의를 위하여 개인이나 집단이 폭력을 써서 적이나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로서 의로운 일을 도모한다면, 그 행위는 테러이면서 의거일 수가 있는 것이다. 즉, 테러리스트이면서 의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테러리스트'라는 명명에 반발을 했을까? 이는 혹시 우리가 9.11 이후의 '테러리즘'에 대해서 미국에 의해 편향된 정보를 바탕으로, '테러'는 무조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의거'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은 이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많은 미국인들, 그리고 이런 미국의 정보로 세상을 판단하게 되는 한국인들은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의 연관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둘 다 '나쁜 놈'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오사마 빈 라덴이 아랍세계에서 내쫓고 싶어했던 것이 바로 후세인 같이 세속화되고 부패한 정치가들이었다. 우리는 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집단이 '테러'를 했는지 묻지 않는다. 테러는 나쁜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은 거의 악마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중근이나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도 당시 '평범한'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또한 '테러리스트'이면서, '의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너무 쉽게 고려되지도 못한다.

   이러한 인식들은 모두 뉴스에서 비롯한 것이다. 거대한 '지구촌'에서 우리는 지구 반대편 소식도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뉴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만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뉴스' 또한 '비즈니스'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장치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있는데, 1부에서는 아랍 특파원들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서술한다. 아랍 특파원들은 일반 중동인들과는 격리된 그들만의 '특급' 호텔이나 거주지에서 살고, 사실 아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본국보다 늦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국의 편집국에서 어떠한 일이 터졌으니 그 근방으로 가보거나 알아보라고 지령이 내려지면 그 쪽에 가서, 이미 친숙한 정보원들을 통해서 사건을 보도하게 된다. 현지에서 직접 탐사해서 무언가를 알아내서 보도한다는 것은 중동의 특성상 불가능에 가깝다. 비밀경찰과 스파이들이 가득한 독재사회에서 보도를 전제로 하면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뉴스'라는 것이 새로운 것을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이나 사건 사고과 과다 대표되고 과다 재현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폭탄 공격 등을 보며, 어떻게 저기에서 사람이 살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그런 일은 '뉴스'화 될 정도로 '드문'일이고 그 곳에서는 또 일상이 진행된다. 마치 연평도 포격 때문에 미국 관광객들이 한국 관광을 꺼려할 때, 그곳에 사는 '우리'들은 '뭐 별 상관 없어'라면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관계에 대한 혜안도 보여준다. 저자는 직접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집을 얻어서, 어떻게 이스라엘이 '일상적인 공포'를 팔레스타인에게 가져다 주는지를 목격한다. 일상적으로 잘 다니던 도로가 검문검열을 핑계로 막히고, 밤늦은 새벽에는 돌연 전화벨이 울리고, 일상적인 '모욕감'을 팔레스타인에게 주는 식으로 '지배'는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신형 전투기와 무기를 가진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러한 팔레스타인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행하는 것을, 우리는 '의거'라고는 부를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인 지배는 뉴스화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상'은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이 일상적으로 감수해야만 했던 치욕은 '뉴스'가 아니고, 안중근이나 윤봉길 의사의 '테러'만이 뉴스가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뉴스를 편안한 안방에서 시청하고 있는 세계인들은 그러한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만을 비난하게 되고 만다. 마찬가지 상황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언론에 관심이 있거나, 중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민주사회에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는 언론에 관심이 없어서는 안되니, 결국 모두에게 권하는 바이다. 손석춘의 '신문읽기의 혁명'과 함께, '뉴스 읽기의 혁명'적인 전환이 될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ynard 2014-04-1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의 아랍테러리스트들과 안중근,윤봉길,이봉창 열사들의 행동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아랍의 테러리스트들은 민간인들에게도 테러를 가하지만 구한말과 일제시기의 우리 항일열사들은 일본의 對韓침략에 책임있는 거물정치인이나 왕족,장성들을 주테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근대의 정치체제와 현대의 정치체제가 다르기에 아랍테러리스트이 서구의 정치인들을 선출하는 일반시민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기위해 실행한 테러행위엔 그들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는 견해도 있고 일제침략시기일본의 일반시민들은 대외침략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라고 인식될 수 없기에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의 독립지사들은 민간에 대한 테러행위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의 테러리스트들과는 다른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정치적 책임이 있든 없든)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아랍테러리스트들의 이미지(조작된 것이든 아니든)를 강하게 내포하는 테러리스트라는 명칭을 우리나라 항일의사들에게 쓰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분개심을 우리 국민들이 갖는 것일 겁니다.
뉴라이트들은 이를 태연히 거리낌없이 쓰면서 일반시민들과 다른 세계시민(?-일본시민?)과 같은 열린 마인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기인 2014-04-14 05: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네 그런면도 있네요.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ㅎㅎ
 
의료 세계화, 자본은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아주 특별한 상식 NN 11
셰린 우스딘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2년 8월
장바구니담기


남반구에서는 먹을거리를 재배할 귀중한 땅을 빼앗아 담배 농사를 짓는데도 대부분의 이익은 담배 업체가 가져간다. 형편없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담배 농장 노동자들은 살충제에 중독되거나 생담배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담배는 땅의 영양분을 엄청나게 빨아들이기 때문에 토양의 질이 떨어지고 해충이 활개를 치게 된다. 토양의 힘이 고갈되면 비료도 그만큼 많이 사용하게 된다. 또 담뱃잎을 말리고 처리할 장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숲을 대량으로 불태우는 개간이 이뤄져 기후변화에도 한 몫 하며 담배 생산에 필요한 다량의 살충제는 토양과 수질 오염의 주범이다.-181-182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14-03-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 뿐일까요..커피도 마찬가지일껄요.

기인 2014-03-19 23:17   좋아요 0 | URL
아 오랜만이네요! 네 ㅎㅎ 착한 소비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