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 식민지 근대성론과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이중비판
김흥규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근대성'이라는 말은 삶 전체를 걸게 만들기도 하는 말이다. 60~70년대 '독립운동'을 하듯이 연구를 했다고 했던 선학들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조선이 일본에 의해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해서,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했다. 즉 조선후기에 근대의 '맹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어도 '우리'도 발전가능성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90~2000년대는 이를 비판하면서 김흥규 선생이 '단층적 근대성'론이라고 불리는 논의들이 앞선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했다. '민족'은 근대의 구성물이라는 것, '연애'는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 등으로 '근대'라는 시대의 새로운 '탄생'을 조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도 서구 근대는 보편이며, 세계사가 도달해야될 단계라는 단선적 진보적 역사관을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흥규 선생은, 이는 '근대의 특권화'가 아닌지 되묻고 있다.


내가 문제 삼은 것은 그가 한국의 근대역사학을 식민주의가 생산한 지식의 차용이나 전용이라는 계보적 파생성 '속에서만' 보는 매몰되었으며, 한국 역사학자들이 자국의 전근대 역사서, 자료, 기억과 대화하고 해방적 이해의 창출을 위해 고투하기도 바를 무시하거나 왜곡했다는 것이다. 식민주의를 가치론적으로 합리화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이 다른 생산의 원천으로서 독점적 위상을 지니는 듯이 가정함으로써 '발생론적으로 특권화'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그는 한국사의 근대를 식민주의에 포획된 시간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위의 특권화는 근대의 특권화와 표리관계를 이룬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전근대와 근대를 단절적으로 구획했다. () 단선적 진보사관의 믿음과 달리 역사는 다중적 시간성의 얽힘으로 형성되며, 과거 시간의 가닥들은 신기루처럼 일거에 사라지지 않고 그것들이 폭력적으로 접혀 들어간 시공간에서 복잡한 작용의 역사에 관여한다. (190~191)


이러한 '근대'문학 연구자들은 현 분과학문체제와 대응되는 면이 있다. 국문과 내의 고전문학/현대문학의 분절은 거의 과 수준으로 분절된다. 고전문학은 '근대' 이후를 공부하지 않고, 현대문학은 고전문학을 모른다. 그러니, 근대가 특권화되며 '과거가 몰수'되는 것은 이러한 시스템에서 도출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시스템은 돌파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근대에서 연애의 '탄생'을 묻기 위해서는 그럼 이것이 '중세'와 어떻게 달랐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을 영미의 근대와 중세 비교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당연한 작업을, 우리는 지금껏 눈가리는 식으로 덮어두었다.

  이에 대한 김흥규 선생의 지적은, 국학도라면 누구라도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