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에로이카 > [레디앙] 우석훈, "최교수,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아"

노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한 생태주의자 우석훈의 시각... 그 글에서 이것저것 문제 많은 지점에 다 자기 시각을 드러내며 개입했던 대통령이 농업과 생태의 문제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그래서 이 땅의 생태주의자들은 반성해야 한다는 얘기... 가볍게 읽어볼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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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교수,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알아"
[노대통령 진보비판] '최장집의 힘' 대통령의 '명문' 탄생시키다
2007년 02월 18일 (일) 08:59:12 우석훈 / 성공회대 외래교수

노무현 대통령이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을 보고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겠지만, 나는 그래도 대통령의 최측근이 아니라면 접하기 어려운 귀한 자료를 보는 것이라서 상당히 좋았다.

쉬운 기회는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그렇게 정성스럽게 쓴 글을 읽을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다음 대통령이 와도 한참 임기 중에 있는 대통령이 이렇게 진솔하게 쓴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같지는 않다.

아주 귀한 글, 귀하게 대접해야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자료로 치면 정말 귀한 자료다. 인터넷에 올라간 글이라서 사람들은 그냥 아무 때나 있는 수많은 글 중에 하나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처음 생긴 일이고 역사적으로 대통령이 쓴 이 글은 귀한 자료로 남을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주위 참모들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쓴 정말 귀한 자료이다. 생각이 같거나 다르거나 사료로서의 가치가 대단히 높은 글이다. 보기 싫다고 덮으면 분석가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예전에 유신전집을 아주 꼼꼼하게 읽은 적이 있다. 불어로 된 김일성 선집도 아주 꼼꼼하게 읽었었고, 김영삼이 했던 수많은 연설집들도 꼼꼼하게 읽은 적이 있다.

사료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 번 글은 아주 귀한 글이다. 귀한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 글을 가만히 보면 어린 시절의 삶은 몰라도 최소한 87년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각 시기에 어떤 판단을 했었는지를 조금은 알게 된다. 전민련에 많은 것을 기대했었다는 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아주 귀한 자료다.

정책적으로도 이 글의 가치는 높다. 각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전부 모아서 어떻게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아니라고 한 것은 더더군다나 가치가 높은 생각이다. 결과와 성과에 대해서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 몇 개의 문장이 알려준다.

   
 
정말 글 잘 쓰는 대통령

보통 이런 글들은 새로운 정보가 없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글은 새로운 정보도 많이 있다.

대통령은 글을 정말 잘 쓴다. 그건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이만큼 글 쓰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 가지 압박과 자신도 대통령으로서의 압박감이 많았을텐데도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렇게 매끄럽고 강한 신념을 담아서 글을 쓰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더 많은 것을 살피고, 나중에 도망갈 길을 생각하는데,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삼국지의 한 장면을 연상하자면 조자룡이 유비의 어린 아이를 팔에 앉고 파죽지세로 대군을 뚫고 나가는 장면과 비슷하다. 글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잘 쓴 글이다.

최소한 종속이론을 믿던 남미의 지도자들에 비해서 대통령은 자신이 더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글이 최장집과 조희연 등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글은 훨씬 쉽게 읽힌다. '책임감 있는 진보'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 같고, 중남미 국가의 과거사와 우리나라의 진보 논쟁사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글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그 시대마다의 판단들을 같이 엮고 있다. 글로 치면 아주 잘 쓴 글이다.

생태주의자들이 반성해야 할 이유

이 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점은 생태주의자들이 더 반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만금이나 골프장과 같이 진행 중인 사건과 같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무의식 속에서도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

자신이 아팠던 사실에 대해서 하나하나 "그거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는 이 글에서 생태적 질문은 없다.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그만큼 생태주의자들의 말이나 주장이 현재 노무현의 생각에 전혀 존재감이 없다는 것인데, 이건 환경진영의 문제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농업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생태적인 질문이 존재감이 없던 것과 비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산업주의적 신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포디즘 세대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농업 얘기는 피하고 싶은 대통령

이제 농경사회에서 완전히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는 중이라서, 존재감은 있어도 농업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거나 지우고 싶은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부문이 바로 농업인데, 지나가는 말로라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말 한 마디 정도 예의상 할 수 있지만, 이걸 안 한다.

모종의 신념과 비슷한데, 농업에 대한 일각의 주장은 중남미의 종속이론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종속이론에서는 인디오들과 농업에 대한 언급이 상당히 강하고, 커피 산업의 메카니즘이 주로 분석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결국 멕시코에서는 무장항쟁 세력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종속이론은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그와 연관된 연장선으로 현대 경제에서 농업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짜로 세계화 국면의 탈포드주의에 대한 개념이 아직 대통령의 머리 속에는 없는 것 같다. 만약 있었다면 과학기술이나 혹은 관련된 단어들이 등장할 것이고, 역시 예의상으로라도 황우석 사태에 대한 약간의 언급 정도는 자신의 재임기간에 생겨난 가장 큰 사건이니까 굵직굵직한 얘기 중의 하나로 조금은 언급이 있었을 법한데, 이것도 언급이 없다.

이런 것들이 대통령의 글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정보이다.

난 책임지는 진보다, 좌파는 아니고

나머지 얘기들은 그냥 하는 말에 가깝다. 노무현 대통령의 틀에 집어넣으면 YS야말로 훌륭한 대통령이다. 하나회를 없앴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한 자신의 성과는 대부분의 사안이 논쟁거리이기는 한데, YS가 했던 일들은 이견의 여지가 없이 정말 잘 한 일들이다. 그렇지 않나?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묻혀버리게 된데에 역사의 안타까움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정보값은 '좌파'는 아니라는 말이다. 확실히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대신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원래도 진보라는 말을 잘 안 쓰지만, 이 글이 미칠 가장 큰 영향력은...

"너 진보야?" "아니, 나 진보 아냐..."

이런 효과는 확실하게 발생시킬 것 같다. 진보와 보수라는 틀은 좀 퇴행적이다. 그래서 꼴통보수라는 용어를 나는 잘 안 쓰는데, 그 대신에 진보라는 말도 잘 안쓴다. 대통령은 이런 프레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난 진보이지, 좌파는 아니다... 이 말은 책임감 없는 좌파가 아니라 자신은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진보이다... 이런 정도의 얘기가 될 것 같다.

노대통령 글의 가장 긍정적 효과

이에 대해서 사회가 반응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다. 진보라는 말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 전략이 생겨날 것이고, 이미 그 본래의 의미값을 잃어버린 진보라는 단어가 역사적으로 사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진보라는 말이 좋은 단어이기는 하지만, 진보라는 개념을 가지고 따져본 결과가 이런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된 셈인데, 생태진영과 농민들 그리고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진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된 셈이다.

이건 좋은 일이다. 소위 명망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진보라고 말하면, 보기 좋게 한 방 먹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정말 좋은 일이고, 대통령이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긍정적 효과이다.

경제학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글은 정신분석학에서는 나중에라도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후기에 프로이드가 분석했던 사람들은 다빈치나 모세와 같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는데, 10년쯤 지나 모든 것이 명확해진 이후에 누군가 분석을 할 때 이 글은 좋은 분석자료가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신경증 분류로는 파라노이아 계열의 신경증이라고 분석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파라노이아와 메갈라매니아를 종종 착각하는데, 내 지식으로는 이 경우는 파라노이아에 가깝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데, 나르시시즘은 신경증의 종류가 아니고 에너지의 종류를 얘기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노대통령의 글과 정신분석학

나르시시즘을 치료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이런 에너지가 밖으로 나갈 것인가 안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물에 붙을 것인가 집착현상을 보일 것인가에 따라서 신경증을 다르게 분류하게 될 뿐이다. 이론적으로는 지나친 소명의식이 파라노이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라노이아가 소명의식을 만들어내게 된다고 교과서에는 기술되어 있다. 내 분석 영역은 아니지만, 누군가에는 좋은 분석대상이 될 것이다.

어쨌든 여러모로 좋은 텍스트이고, 두고두고 분석할 거리가 많은 글이다. 우리나라 학문 특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발전에는 중요한 계기 하나가 된 셈이다.

이 글에 대해서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가, 아니면 너무 생각이 짧다, 아니면 지나친 일반화와 자가당착이라고 반응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좋은 방식도 아닐 것 같다. 87년 체계의 약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 좌파들이 무엇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고 있지 못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약간 다른 방식이 반성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 많은 생태주의, 더 많은 농업에 대한 고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접근방식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첫 번째 느낌이다. 두번째 종류의 교훈들은 더 시간을 가지고 분석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최장집 교수가 쎄기는 쎄다. 이렇게 솔직한 글을 유도해내다니... 그저 그 영향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놀랄 뿐이다.

길었던 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최장집, 너보다는 내가 많이 알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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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통령' 개인이 썼다기보다는 노무현 정부가 쓴 글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열린 사회주의 닫힌 사회주의 - 역비의책 29
안토니 라이트 지음 / 역사비평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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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안토니 라이트, 현 영국 노동당 소속의 하원의원(2007년 2월 현재)이다. (똑같은 이름의 의원이 2명 있는데, Dr Tony Wright가 바로 지은이) 정작 이 의원의 홈페이지(www.tonywright.labour.co.uk/)에 가보면 이 책의 원저 Socialisms: Theories and Practices는 나오지도 않는다. 물론 실제 쓴 것은 사실인데, 그 만큼 '주저'는 아니라는 것.

그래도 그럭저럭 읽을만하다. 한국어 문장도 안되는 문장도 많고, 오타도 수두룩하지만...;;

어쨌든 저자는 '맑스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주의도 많다는 것을 다양한 흐름을 좇으면서 보여준다. 각각에 대해서 심오한 분석과 접근을 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다른 사회주의가 어떤 논점 때문에 분리되었는지 (혁명이냐 개량이냐, 조직이냐 자율이냐 등)를 살펴본다.

서구 사회주의 입장에서, 특히 '민주사회주의'라는 책을 끝까지 읽어도 결국 그것의 구체적인 특성을 잡아낼 수는 없는 그 입장에서 서술하였기는 했지만, 이는 책의 말미에 가서야 조금 등장 할 뿐이다. 소련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서술하면서,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사회주의'의 길로!라고 주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민주사회주의'라는 입장에서의 비판이기는 하지만, 새겨두어야 할 대목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맑스주의자들은 왜 pt가 혁명적이면서도, 왜 그들은 지금 혁명적이 아닌지, 왜 자본주의는 망할 것이면서도, 왜 망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맑스의 사유 곳곳에 드러나는 헤겔적 사유와 결별해야 한다고 이미 주장된 바이지만, 이를 통해 '진정한 맑스'를 정제하는 일이 아니라, 맑스 또한 정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실천적 입장을 견지하였고, 그 시대의 사상가/활동가 였음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시대의 정세에 대한 대응과 새로운 이론적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현재 모든 이론가/활동가들은 이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해 한번 더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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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지인 1
조진행 지음 / 청어람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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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썼지만, 조진행의 <기문둔갑>은 정말 대단한 무협이다. '획시기적'이다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획시기적이라는 것은 파급력의 문제일 것이다.) 한 해 최고의, 5년의 무협 BEST에 뽑힐 수 있을 정도의 수작이었다.

무협에 있어서만큼은, 좋은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찾아서 보게 된다. 특히 오늘날처럼 재미있는 무협이 드문 경우는 그러하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좋은 작가의 작품은 처음부터 좋다!

그러나, 조진행은 아니다. 그는 분명 진화하고 있는 작가였다. 그러니 내가 그의 최근작으로부터 옛날작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불만이 늘 수 밖에! 그의 <칠정검 칠정도>나 <선인지로>모두 비슷한 세계관, 유사한 주인공을 바탕으로, 전형적인 무협의 스토리-라인, 즉 영웅의 탄생담을 좇는다.

그럼에도 그의 무협이 의의가 있다면, 그의 무협이 진화하여 <기문둔갑>으로 나타났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천사지인 2부가 발간되고 있는데 살펴봐야 하겠지만, '기문둔갑'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무협은 도가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아마추어적인 알레고리즘으로 기본 토대를 짜고 있다. 무림맹의 맹주의 이름은 '경재학', 그의 아버지는 '경영학'이고, 주인공의 이름은 '장염'이다. 결국 착한 놈인줄 알았던, 그리고 인간이 만든 좋은 제도였던 '무림맹'의 맹주인 '경재학'이 알고 보니 세상을 지맘대로 조작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민 것이었고, 이에 '장염'이 맞선다는 것이다.

장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질병이요 신체. 그것과 경재학과 그의 음모와의 대결. 그 밖에도 우스꽝스러운 이름들로 피식거리게 하지만, 이 무협 자체가 유머와는 거리가 있으니 이름만 웃겨서 기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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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자부심을 기르다

올초 출간한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로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 윤대녕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작가의 근황과 함께 새로 구상중인 작품 얘기도 살짝 엿들을 수 있다. 인터뷰 내용 중 "작가는 독자에게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에요.”라는 말에 전폭적으로 동감한다(간혹 껌파는 작가들이 없지 않아서이다). 적어도 작가라면 독자보다는 반걸음쯤 앞서 가야 하지 않을까. 그만한 줏대와 고집과 여유, 그런 걸 동시대 작가들에게서 더 많이 보고 싶다. 요컨대, 작가들이여 자부심을 기르라...  

북데일리(07. 02. 15) [인터뷰]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 펴낸 작가 윤대녕

“작가가 독자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돼요. 독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쓴 작품을 문학에 포함시키기는 힘들죠. 문학은 항상 뭔가를 견인해야 해요.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3년 만에 신작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를 발표한 작가 윤대녕(45). 그가 문학을 하는 작가의 태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최근 일산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에서 만난 그는 “문체나 구성 면에서 기본적으로 품격을 유지하는 작품을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타인보다는 스스로를 향한 조언이자 격려다. 윤대녕은 데뷔작 <은어낚시통신>(문학동네. 1994)으로 우리 문단에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독자의 뇌리에 박힌 강렬한 첫 인상은 이내 그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나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오해가 너무 오래가는 것 같아요. 데뷔작이 나오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처음의 이미지가 아직도 새 소설에 적용되고 있어요. 실제로 중간에 발표한 책들은 이전과 비슷할 거라고 짐작하곤 안 읽은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독자가 많지 않은 건지도 모르죠. (웃음)”

독자의 소리를 무조건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다. 요즘은 문학계에 불어 닥친 일류열풍과 관련, 일본소설을 정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다. 작가로서의 신념도 독자와의 공감과 소통이 유지되는 선에서 지켜나가야 한단다. <제비를 기르다>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는 작품. 현실감 있는 캐릭터, 구체적인 상황 묘사, 수식어를 배제한 문체로 전작들이 지녀온 모호함을 덜어냈다.

“제가 2003년에 제주도에 가서 2005년에 돌아왔는데, 내려가기 1년 전부터 딜레마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어요. 문학에 대한 요구가 치환되지 않았던 거죠. 기관지 때문에 몸도 안 좋았고요. 삶의 터전이 옮겨지니까 조금씩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세밀하게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생기고, 그 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됐어요.”

서울로 돌아온 후 변화는 더욱 구체화됐다. 소설에 있어 서사적 구조, 타인의 내면에 대한 묘사에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는 곧 작품으로 형상화됐다.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윤대녕의 이번 소설집에는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표현이 도처에 보인다”며 “세월의 나이테를 천천히 펼쳐 보이는 이러한 서사적 조망 속에서 짧은 시간의 단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 운명의 유장함과 곡진함이 드러난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사의 진실을 좀더 긴 호흡으로 살피게 만든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윤대녕은 “그동안 써왔던 것들에 대한 회의나 부정은 아니”라며 “다만 삶을 살아가고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방법론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윤대녕은 자부심이 대단한 작가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꼿꼿함과 자존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명심해 왔다. 문인은 가난하고 술을 많이 마시고 사생활이 불안정하다는 선입견은 그야말로 개탄할 노릇. 그는 얼마 전 보도된 신춘문예 당선자의 생활이 어렵다는 기사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은 도리어 부작용을 가져오기 쉽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쓴 글을 독자가 좋아하지 않는 시대가 왔어요. 그리고 어떤 분야든 데뷔만 했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매년 신춘문예로 2.30명이 등단하는데 그 중에 살아남는다고 할까, 계속 작품을 쓰는 작가는 1.2명에 불과해요. 늘 그래왔죠.” 가난과 고통에 대한 각오 없이 무작정 뛰어든 작가에게 가하는 따끔한 충고인 셈이다. 1988년 단편 ‘원’으로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당장의 밥벌이를 위해 7년간 각종 직장을 전전한 그이기에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저는 글을 잃지 않으려고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 때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지금도 하루에 8시간은 자료조사, 독서 등 집필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글을 쓰며 보낸다고. 2.3일 정도 일을 못하면 우울증이 온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열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에 대한 오해가 굉장히 많아요. 문단이나 언론까지 제가 독자가 많고 책이 잘 팔리는 걸로 생각하죠.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전업 작가로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지만 누추한 이야기는 절대로 안 해요. 혼자 견뎌낼 몫이잖아요. 작가는 독자에게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에요.”

전업 작가로 들어선 후에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윤대녕의 고정 독자 수는 1만 명 안팎. 작가는 그의 독자가 곧 문학 독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가 문예지 팔리는 숫자가 문학 독자 수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1만 부가 안 되거든요. 제 독자가 대략 1만 여명인데 주로 문학 공부하는 학생들, 문창과 학생들에 집중돼 있어요. 문학 독자가 바로 제 독자인 것 같아요.”

작가가 지녀야할 품위를 중시하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권위만 내세우는 건 아니다. 윤대녕은 발로 뛰는 작가로 유명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는 일일이 답사한다.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는 바람을 쐬러 간 강화에서 우연히 작부집을 발견하고 떠올린 이야기. 구체적인 내용 구상을 위해 작품엔 잠깐 등장하는 태국 취재까지 감행했다. ‘마루 밑 이야기’에 나오는 대관령 휴게소 역시 직접 방문해서 현장을 살폈다. “여행 정보를 보고 쓰는 건 표시가 나요. 저 같은 경우엔 직접 가보지 않으면 문장 자체가 안 나오더라고요. 소설의 구조나 생생한 표현을 위해서는 취재를 다녀오는 게 좋죠. 작가한테는 의무라고 생각해요.”

직접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 그래서 작가는 인터넷 자료도 신뢰하지 않는다. 표피적인 정보만 얻기에 글을 쓰는데도 별 도움이 안 된단다. 작업실에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다. “인터넷만 사용 안하지 집필은 노트북으로 해요. 원고가 완성되면 프린트해서 퇴고를 하죠. 요즘도 등단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3.4번은 고쳐 써요. 그래서 단편 하나만 쓰더라도 굉장히 지쳐요. 편집자는 좋아하더라고요. 손 볼 데가 별로 없다고.”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 기껏해야 한 달에 1.2번 정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어울린단다. “사소한 흐트러짐 때문에 생활 패턴이 바뀌거나 시스템에 에러가 나는 걸 경계합니다. 재미없게 사는 거죠. 매일 매일 운동, 독서, 집필만 반복하고 있어요.” 작가의 삶이 재미없을수록 독자는 신이 난다. ‘자발적 유배’ 속에 깊어진 상념을 선사받기 때문이다.

윤대녕은 차기작으로 “근력이 있을 때 한 번 타 넘어가고 싶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고려 중”이라고 한다. 자신의 공력으로 가능한 작품인가를 엄밀히 계산하고 있다. “아마 독자에게 굉장히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 신작을 내놓을 때 까지 만이라도 단조로운 삶이 계속됐으면, 그래서 작품이 빛을 볼 수 있으면, 이란 ‘불순한’ 바람을 품은 이가 기자 하나만은 아니지 싶다.(고아라 기자) 

07.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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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라 > 알튀세르를 위하여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루이 알튀세르 지음, 권은미 옮김 / 돌베개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돌베게, 1993

(괄호 속 숫자는 쪽수이고 강조는 원문, [] 표시는 인용자가 한 것.)

 

오랜만에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고 싶어졌다. 가능한 독서목록에서, 그저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온갖 철학자들의 사변도 아니고, 언젠가부터 좀처럼 잘 읽히지 않는 문학 작품들을 제하고 나니 떠오른 것이 자서전이라는 장르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들었던 “소설의 이해”라는 교양 과목에서 가르쳤던 교수의 주장도 결국 모든 소설 역시 자서전이라는 큰 틀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그때의 교재가 <꽃을 잃고 나는 쓴다>라는 한국단편소설을 엮은 책이었다.) 그래서 동네 도서관의 전기 코너에서 얼쩡거리다가 결국 잡은 책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이다. 프랑스의 철학자가 쓴 자서전이라니, 철학책도 잡히지 않고, 그렇다고 문학에 몰두하지도 못하는 그런 와중에 꽤 그럴 듯한 절충이지 않은가? 라고 위로하면서.

 

 그럼 알튀세르는 어떤 사람이었나?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는 한 사람의 철학자였고, 또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페리 앤더슨 같은 사람은 그를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계보라기보다는 소련의 전통에 위치시키기도 한다는데, 그는 아마 맑스주의 역사상 누구보다도 ‘비교조적인’ 맑스주의자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사르트르가 했던 것처럼 맑스주의를 우리 시대의 넘어설 수 없는 철학이라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쓴다. 마키아벨리, 스피노자를 우회하는 이론은 그야말로 Dia-Mat 즉,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끔찍한 철학을 넘어서, 오히려 맑스주의의 공백과 한계를 가장 극단까지 몰고 간 노력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62세 되던 해에 자기 아내를 정신착란 상태에서 교살했으며, 그 이후 프랑스에서 그 이름은 엄청난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고, 그 이론까지도 금기시되었다.(언뜻 들은 얘기로는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그의 제자 발리바르는 프랑스에서 국가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고 네덜란드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력을 잠시만 보아도 왠만한 소설 주인공 뺨치는 굴곡 많은 인생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책의 첫 번째 장은 바로 자신이 아내 엘렌느를 죽였던 바로 그 날의 기억을 기록하는 데에 할애된다. 그리고 그는 법원으로부터 면소판결(형법에서 구분하는 바처럼 정신착란 또는 강제에 의해 행위를 저지른 경우 범인의 무책임 상태를 이유로)을 받는데, 이로 인해 그는 ‘죽은 목숨’(lebenstodt), 즉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고 아직 매장되지는 않았으나, 광기를 지적하기에 매우 적절한 푸코의 표현대로 ‘저술이 없는’ 자”이자 실종자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 철학자, 역시 정신분석에 관한 여러 글들을 남겼던 이 인물에게는 어떤 어린 시절이 있었을까.


 역시 가족 얘기를 해야만 한다. 모계 쪽의 베르제 일가와 부계 쪽의 알튀세르 일가는 알제리의 어느 삼림 지방에서 서로 알게 된다. 베르제 일가에는 알튀세르의 어머니가 될 뤼시엔느와 여동생 줄리에트가 있고, 알튀세르 일가에는 역시 아버지가 될 맏아들 샤를르와 루이가 있었다. 뤼시엔느는 조용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루이와 함께 어울려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집안에서는 뤼시엔느와 루이를 약혼시켰다. 그러다가 1차 대전에 각각 포병대와 공군으로 징집된 이들 형제 중 루이가 전사한다. 그리고 아버지 샤를르는  뤼시엔느에게 자신이 루이의 자리를 대신하겠다며 청혼한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이는 후에 알튀세르에게 “상처처럼 피 흘리며 수난받는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사후에 형성했다고 한다.(49) 그녀를 그녀의 수난과 남편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어린 알튀세르는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이름은 바로 그녀가 사랑했던 원래의 인물 ‘루이’로 지어졌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 이름을 무척 혐오했다고 밝히는데 그 이름 Louis는 동일한 발음의 oui(‘예’라는 긍정의 표현)를 연상시키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어머니의 욕망에 대한 oui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이름은 lui(그 남자라는 표현)라는 익명의 제삼자를 암시하기도 하며, 물론 그의 어머니가 사랑했던 죽은 삼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인격이 박탈당했음을 느끼게 된다.

 

 이후에는 어린 시절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쭉 서술된다. 사업 수완은 좋았지만 매우 엄격하고, 아들에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말뚝과 쇠꼬챙이에 찔려 서서히 죽어가는 것에 관한 그의 ‘환상들’, 자살에 대한 갑작스런 충동, 영원한 아이나 다름없던 어머니. 누이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감... 특히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에 강조점이 주어진다. “어머니가 지닌 병적인 공포는 내 육체와 자유를 지배했고 억눌렀다....아이들과 그토록 어울리고 싶어했던 나에게...모든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64) 그리고 청소년기에 그는 쟈끄(jacques)라는 이름을 가졌으면 하고 꿈꿨다고 말한다. 이 ㅈ 발음은 jet(정자의 사출)을 연상시켰으며, 깊은 아 발음은 ‘아버지의 이름’인 샤를르의 아와 같으며, 끄는 끄(queue 꼬리라는 뜻으로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기도 함)를 의미하고, 외할아버지가 들려준 농민봉기의 이름도 쟈끄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죽은 자의 이름(67)을 갖게 되었고, 어떤 ‘아버지의 이름’을 갖기를 원했던 것 같다.(이런 점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그 자신 역시 남성적인 ‘힘’을 원했던 니체와 닮은 점이 아닐까? 문외한이라서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알튀세르의 후기의 생각들은 명시적으로 준거하지는 않지만 어떤 니체적 영감과 깊은 관련을 갖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를 둘러싼 양면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며, 어머니를 유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나는 어머니의 욕망을 실현시킴으로써 어머니를 유혹해야 했다.”(69) 그리고 그가 간절히 원한 것 또한 “죽음의 영역 안이나 죽음의 환상 속에서 살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욕망”이었다.(가령 나중에 그는 어떤 명철한 여자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내가 당신에게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어떡해서든 스스로를 파괴하길 원한다는 거예요.”) 그는 자기 분석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삶에서 단지 하나의 인위적 존재였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며, 또 내가 그들을 유혹함으로써 사랑하고자 했고 또 동시에 그들의 사랑을 받고자 한 사람들, 그로부터 차용한 인위적 수단과 사기라는 우회적 방법을 통해서만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죽은 자였다.”(105) “나는 과장의 의지, 말하자면 편집증적인 의지와 자멸적인 의지가 하나의 동일한 의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113)


 이어서 고등사범을 다니기 이전의 학교 생활이 다루어진다. 신체가 입을 상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몸의 여러 근육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회고, 그리고 역시 그 근육을 다루는 것의 일종으로 외국어에 대한 재능, 친밀하게 지냈던 친구와 자신이 동일시했던 선생님 이야기 등등. 그리고 그는 당시의 카톨릭학생운동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결과 육체노동, 그리고 침묵에 바쳐진 수도승들의 삶”을 동경했으며, 그럼으로써 익명성 속으로 사라지길 바랬다고 쓴다. 10장에서는 포로 생활의 일화들이 나오는데, 이러한 바람은 이 생활 가운데서 어느 정도는 채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노동을 하는 것이 무척 마음 편했으며 농부들인 내 동료들과 우애를 나누며 함께 지내는 것이 특히 행복했다.”(118) 그는 포로 생활들을 통해 “인위적 술수 및 기만적 술책”이 그것을 사용하는 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죄의식을 다스리는 경우, 즉 그가 자유로울 경우 그것은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후에 알튀세르가 정신분석을 통해 알게 된 것을 깨달았다고 술회한다. “프로이트의 발견을 상당히 앞지른 유일한 인물, 즉 마키아벨리가 규정지었던 규칙들에 나는 다가갔던 것이다.”(120) 또한 그 경험은 가족, 그에 말에 따르면 “모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중 가장 끔직하고 가장 지독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그 가족”(121)의 세계로부터 떨어짐으로써 느끼는 행복을 가르쳐주었다. 로베르 포새르와 그람시, 레닌 이후 확립된 ‘기계’로서의 국가(그렇기 때문에 국가‘장치’이다. 아다시피 기계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성’이다)의 관념. 이 가족이라는 장치는 무엇을 하는가. 바로 “어린아이에게 그가 사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든 높은 가치들, 즉 절대적인 모든 권력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튀세르 말마따나 인류의 3대 나르시스트적 상처(갈릴레이의 상처, 다윈의 상처, 무의식의 상처) 이후 더 치명적인 네 번째 상처는 성스러움, 권력과 종교의 장소 자체인 가족이 된다. 물론 교훈만 있었던 생활은 아니었다. 그는 여기서 “언제나 [모든 종류의] 예비품을 마련해 두고자 하는 강박관념...모든 지출은 깎아 내리고 반면에 저축에 저축을 더해 가는 그 강박관념”(123)을 추가로 얻게 된다. 아마 그의 생애 내내 계속되었고, 또한 혼자 있지 않기 위해 친구들, 심지어 여자들도 예비하게 된 습관이 여기서 나오게 된 것이다. 아마 글을 쓰던 당시에는 자신이 예전과 다름을 느끼고 의식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지금 나는 지출과 위험이 없는, 즉 돌발사건이 없는 삶이란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돌발사건과 지출(매매되는 것이 아니라 무상의 지출: 그것은 공산주의에 대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정의다)은 삶 전체의 일부분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삶의 그 궁극적 진리에서, 그리고 하이데거가 너무나 잘 표현했듯이 삶이라는 그 ‘사건’Ereignis에서, 즉 삶의 출현과 그 귀결에 있어서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이제는 확실한 근거를 갖고 내가 깨닫게 된 것 같다.”(124)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바로 포로생활의 탈출을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이다.(여기서 어떤 이들은 김기덕의 영화 <빈집>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포로가 탈출한 것을 확인하면 독일군은 상당히 넓은 지역의 군대와 헌병대에 경보를 울려 거의 확실하게 체포에 성공했기에 그가 생각한 탈출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자신이 수용소에서 사라져버려 탈출했다고 믿게 한 다음, 3~4주의 경계태세 후에 진짜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탈출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 즉 숨어버리는 것 그 안에 머무르면서 탈출하는 방법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는 의미심장하게도 후에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의 교훈>같은 책에서 그가 공산당에 계속 남아있는 일을 비판한 예를 들면서 랑시에르가 이 일을 알았더라면 여러 생각을 했으리라고 말한다.


 그는 입학하고 수용소 생활로 인해 6년만에 다시 고등사범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에 그는 거의 평생동안 고등사범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는 이 곳을 “어머니의 품과 같은 진짜 둥지”(187)라고 표현하는데, 거기서 그는 철학에 관한 작업을 지속함과 동시에 엘렌느와 첫 만남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알튀세르를 만날 당시에 이미 뛰어난 공산당의 투사였다. 엘렌느는 특별히 이론적으로 정통하지 않았지만 정치적 경험에 관해서라면 매우 뛰어났고(지나가는 길에 잠시 라캉이 등장하는데, 그는 언젠가 엘렌느에게 “당신은 매우 훌륭한 정신분석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경험들은 알튀세르에게 현실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엘렌느의 관계는 흔히 이야기하는 바처럼 ‘평탄한’ 것은 아니었으며,(그는 엘렌느의 묵인 아래 계속해서 다른 여자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우울증과 과대망상증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완전히 무능하지 않나 하는 두려움(가령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를 출간한 뒤에 찾아왔던 심각한 우울증)과, 전능을 갖고자 하는 욕망인 과대망상증이 동시에 존재한 것이다.(그가 지적하듯이 스피노자와 프로이트가 강조한 정서의 양가성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이론적 확인이다) 알튀세르의 기벽과 잦은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엘렌느의 고통에 관해서는 다음의 통렬한 구절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너무나 자랑스럽게, 그리고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 엘렌느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폐쇄된 고독에서 진정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녀가 침대에서건 어디서건 뭐든지 얘기 좀 해요! 라고 내게 되풀이할 때 그녀의 고통에 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얘기 좀 하라는 것은 곧 자신이 고독하게 혼자 버려진 채 영원히 끔찍하고 고약한 여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달라는 것이었다.

내게 뭐든지 얘기 좀 하라는 것, 그 말이 단순히 내게 모든 것을 달라는 것일 때, 즉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당신의 시선과 삶 속에서 진정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 불안을 막아낼 만한 것을 달라, 우리 사랑이 그저 지나가는 한순간일 뿐 온전한 사랑을 이루기에는 이미 이 손상된 이 사랑으로는 부족하리라는 그 불안을 막아낼 만한 것을 달라는 의미일 때, 이 고통에 찬 요구에 이 세상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160)


 그 다음 얘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울텐데, 그의 철학에 관한 이력, 당시에 철학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선 다시 복귀한 학업에서 알튀세르는 바슐라르의 지도 하에 헤겔에서의 내용 개념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한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철학에 관한 자신의 독서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모습이 나온다.

“철학 서적에 대한 나의 지식은 오히려 한정되어 있었다. 나는 데카르트와 말레브랑슈는 잘 알고 있었으나, 스피노자는 조금 알고 있었을 뿐이며, 아리스토텔레스, 소피스트들,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전혀 몰랐다. 또한 플라톤과 파스칼은 상당히 잘 알고 있었으나, 칸트는 전혀, 헤겔은 약간, 그리고 마르크스는 몇몇 부분만을 상세히 읽었을 뿐이다.”(190)

그는 많은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음으로써 배웠다고 말한다.(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에 나오는 표현대로라면 耳學이 될 것이다) 그는 또한 그것을 하나의 시추작업에 비유한다.(이 비유를 따온 책도 있다. 문성원의 <철학의 시추>) 그러나 아마 이러한 언급에서의 ‘약간’, ‘조금’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가령 그는 당시 프랑스에 헤겔을 알린 알렉산드르 코제브(라캉 역시 이 헤겔 세미나에 참석했으며 그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지젝의 헤겔 이해 역시 코제브의 헤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을런지?)의 글을 모두 읽어 보았으며 그가 헤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임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고 일축한다. 대신 <정신현상학>을 번역한 장 이폴리트를 높이 평가한다. 좀 길지만 알튀세르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이러하다.

“그[코제브]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죽음에 이르는 투쟁과 역사의 종말을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그 역사에 대해 그는 어이없게도 관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역사, 즉 계급투쟁의 역사는 끝났으나 역사는 계속 진행되는데 단지 거기서는 일상적인 사물의 관리(administration)(생-시몽 만세!)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철학자로서의 자기 욕망과 고위 관료라는 직업적 조건[코제브는 재무부 고위직을 맡고 있던 러시아 출신 망명자였다]을 결합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헤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완벽한 무지는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해서 코제브가 이 정도로 자신의 청중들, 즉 라캉과 바타이유, 크노 및 다른 수많은 이들을 현혹시킬 수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헤겔 자신의 책을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202)

또한 당시에 활동했던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가 이어지는데, 이를테면 사르트르는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후설, 하이데거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철학소설가”일뿐이고, 사르트르와 더불어 프랑스에 현상학을 소개한(여기서 레비나스의 몫이 빠져있다는 것은 이채로운데) 메를로 퐁티는 그와는 전혀 다른 깊이를 지닌 철학자였지만, 결국 유심론이라는 프랑스적 전통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서술된다. “메를로는 진짜 위대한 철학자로, 데리다라는 거인이 나오기 전 프랑스의 마지막 철학자였으나, 헤겔이나 마르크스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주는 바가 없었다.”(204) 아마 이 현상학자들, 또한 현상학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인간주의적 맑스주의자들)이 평가절하된 것은 알튀세르의 맑스주의가 구조주의와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론적 반인간주의(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실천적 인간주의)의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그리 이해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강단철학자들의 이름도 언급된다. 라베송, 베르그송, 르키에, 그리고 최근에 페르디낭 알키에, 마르시알 게루 등 숱한 유심론적 주석가들. 요컨대, <맑스를 위하여>의 서문에서 그가 쓴 것처럼 철학에서도 정치에서도 스승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그의 친구 자크 마르탱을 통해 알게된 두명의 사상가 쟝 카바이예스, 조르주 캉길렘 같은 비범한 인물도 있었지만 말이다.

다소 산발적인 서술이 계속되지만 흥미있는 에피소드는 “편지는 언제나 제자리에 도착한다”라는 라캉의 테제에 대한 알튀세르의 반대에 관한 얘기다. 즉 그는 “편지는 제자리에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유물론적 테제를 제시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라캉은 족히 10분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그리고 라캉은 “알튀세르는 이론가이지 실천가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알튀세르는 시인한다.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은 마르크스주의의 제일원리와 마찬가지로 ‘실천’ 그 자체이기 때문에 분석 과정에서 어떠한 미세한 효과들일지라도 무의식과의 관련 하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라캉도 옳았지만 자신도 옳았다고 덧붙인다. 그 논쟁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으로 자신은 철학적 입장에서, 그리고 라캉은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발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사실 그가 좀더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인데, 철학과 정신분석 간의 쟁점에 관한 어떤 것을 암시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분석에 관한 한 알튀세르의 태도는 미묘하다. 본인이 오랜 시간 정신분석을 받았으며, 라캉 등의 이론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피분석자(요즘 식으로 말하면 분석주체, 이 책에서는 역전이가 반대-전위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다)의 한 사람으로서 정신분석에 관한 비판적인 태도가 책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그의 유고집 중 <정신분석 논집>이 번역된다면 그 사정을 파악하기 용이하겠지만 이는 국역된 알튀세르의 글들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프로이트와 라캉’의 논문(<아미엥서의 주장>에 수록)에서의 정신분석에 관한 긍정적 태도와는 달리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나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 같은 논문(<알튀세르와 라캉>에 수록)에서는 정신분석, 특히 라캉에 관한 강한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사실 이것에 관해 다루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할 것인데, 아마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지젝이 말한 것처럼 하버마스-푸코의 모더니티 논쟁의 배후에는 훨씬 더 심오한 논쟁, 바로 알튀세르와 라캉의 논쟁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런지? (관심있는 독자들은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진태원씨와 홍준기씨의 논쟁들(<라깡의 재탄생>과 <철학사상> 16집에 수록)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진태원씨의 논문은 연작 논문이므로 조만간 ‘알튀세르의 유령들2를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자신의 입장과 정치에 관한 입장들이 전개된다. 육체에 대한 열광(그가 각각 이론적, 실천적 측면에서 그것을 찾은 것은 바로 스피노자-“누구도 아직 신체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규정하지 못했다”-와 맑스였다)을 통한 맑스주의에의 입문, 철학을 뒤흔들어놓고 배후에서 공격하는 것으로서 기원, 목적, 진리보다 더욱 근본적인 ‘실천’이라는 범주, 그리고 자신이 근 30년간 보존해오고 있는 사유 즉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간략한 설명, 공산당의 많은 과오들과 광범위한 대중운동에 관한 희망-그 유명한 의지에 대한 지성의 우위, 지성에 대한 대중운동의 우위의 정식으로 요약되는-등등.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들이고, 내가 당장 쓸 역량도 되지 않아 여기서 다루기는 어렵고 만약 가능하다면 다른 기회를 빌려야 할 것 같다. 이 부분은 그의 다른 책 <철학에 대하여>의 내용과 상당히 겹치기에, 가능하면 <철학과 맑스주의> 등과 읽으면 우발성의 유물론에 대한 스케치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의 막바지에 가면 다시 엘렌느에 관한 회상으로 돌아간다. 거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우발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한 ‘과잉결정’이 존재했다. 며칠 전부터 급격히 심해진 그의 우울증, 상태의 악화 때문에 그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엘렌느가 그것을 만류한 점, 몇 주간 계속되었던 이 부부의 두문불출, 엘렌느가 계속해서 자살 충동을 내비쳤으며 알튀세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던 점,... 어느 날 침대 위에서 엘렌느의 목을 마사지하고 있던 도중 그는 불현듯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쩌면 그가 그녀의 자살을 도왔던 것일까? 아니면 평생을 정신병에 시달렸던 그의 불안, 여성에 관한 두려움-이런 표현이 감히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탓이었을까? 아니 일단 그것이 교살이기는 했을까? 어떤 의사의 말처럼 목에는 급소가 많기에, 어쩌면 교살이 아니라 마사지 도중의 사고였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송기형 교수가 쓴 한국어판 해설에서처럼 그의 생애를 단순히 하나의 스캔들로 바라본다거나, 잡담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 그리고 발리바르가 말한 것처럼 알튀세르의 책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단지 자서전의 단편적인 사실들로 그를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프랑스 국내외의 언론들은 그 엄청난 사건 이후 온갖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그를 아내를 죽인 미치광이 공산주의자 철학자로 매장한 일이 있다. 거기에는 이미 철학=광기, 공산주의=범죄 등의 등식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 자서전을 하나의 자기 해명으로서 내놓는다. 물론 이것은 구차한 자기변명의 차원은 아니다. (“자기변명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유물론에 대한 유일한 정의이다.”) 이 책은 자신의 고통받은 삶에 대한 드문 고백이며, 하나의 비극적 문학작품일 것이고, 현대를 가로지르는 온갖 역사적 정세에 대한 비평이자 자신이 몸담았던 그 격렬한 운동과 철학에 대한 애도이자 해체, 희망의 표현이다.

글쎄, 그렇다고 해도 죽은지는 15년이 지났고 그가 사고했던 맑스주의는 한물 간 것처럼 보이고, 그가 밥벌이했던 철학, 이론에서의 계급 투쟁이자 과학에 대해서는 정치를, 정치에 대해서는 과학을 표상했던 바로 그 '철학' 역시 마찬가지로 찬밥 신세로 보이는 때에 알튀세르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내용을 갖춰 답하긴 이른 것 같아도 그의 유령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고,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피칠갑을 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재촉하고 있는 현실은 그에 대한 그야말로 공정한 애도와 극복으로서의 계승을 요구한다. 자율주의와 라캉주의라는 여러가지 좌익적 운동의 난립과 유행 속에서 알튀세르주의는 수상쩍게 억압된 것, 하나의 증상. 계속해서 회귀하는 어떤 것으로 남는다. 하나의 대중운동이라는 영원히 낡지 않는 표상으로서. 이 유령은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l'avenir dure longte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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