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영미문학학회 학술대회 특집 리뷰 #2- 홍준기 박사

* 담론비평(2007. 6. 10) / 알튀세르가 죽음보다 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뒤

 

알튀세르 맑시즘에 관한 새로운 정치-윤리적 독해의 시도

 

홍준기 한국정신분석상담연구소 master@dambee.net

 

▲ 알튀세르는 잠에서 깨어 맑스로 되돌아가는 귀향길에서 정신분석과 헤겔이라는 우회로를 거쳤다. 둘이 어딘가 닮은 듯하다.

만족과 결여의 변증법을 보지 못하고 만족만을 강조하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정신분열증, 망상증, 도착증, 신경증 등 인간 주체가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실존 방식 중에서 ‘오직’ 정신분열증만을 특권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사실 라깡 정신분석에 따르면 정신분열증은 주체와 타자의 분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따라서 ‘결여 없는 만족’만이 존재하는 주체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열증에 대한 라깡의 견해는 사실 들뢰즈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그리고 어떻게 들뢰즈는 이러한 병리적 정신분열증 상태를 ‘특권화’할 수 있었는가? 이제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들뢰즈는 자신이 말하는 정신분열증이란 임상적 의미에서의 정신분열증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정신분열증자가 누리는 결여 없는 만족이란 사실 ‘치명적인 향유’이며, 따라서 들뢰즈가 이렇듯 파멸과 죽음의 불안을 체험하는 임상적 의미의 정신분열증자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최고의 모델’로 간주할 수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들뢰즈가 말하는 해방된 분열증자는 임상적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에서의 분열증자이다. 바로 이러한 들뢰즈의 논의는 난점에 부딪치며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한편으로는 임상적 의미의 분열증자를 소외로부터 벗어난 해방된 주체로 간주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인은 임상적 의미의 분열증자가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들뢰즈는 『반오이디푸스』에서 슈레버를 정신분열증자로 해석하면서 그를 자신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슈레버는 사실 임상적 의미의 정신분열증자 아닌가? 왜 한때의 영웅이 다시 소외된 인물로 폄하되어야 하는가?

사실 들뢰즈가 말하는 ‘비임상적’ 분열증자는 라깡이 철저히 탐구한 바 있는 오이디푸스의 너머에 도달한 사람, 즉 소외로부터 벗어난 진정한 자유인, 즉 분석의 끝에 도달한 사람이 아닌가? 물론 들뢰즈는 이러한 라깡적 결론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라깡의 견해에 동조할 수도 있을 들뢰즈 이론이 외관상으로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 정치적 상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특정한 존재론적 입장을 특권화한 것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떤 특정한 철학적 존재론을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독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동지를 ‘주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적 오류는 물론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기능할 수 있다.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은 그러한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함께 할 때에만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과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알튀세르가 ‘죽음보다 더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 맑스로 되돌아가는 설레이는 귀향길(Heimweg)에서, 정신분석과 헤겔을 경유하는 우회로(Umweg)을 거치며 다시 발견한 자신의 ‘새로운 맑시즘’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위의 글은 홍준기 박사가 영미연 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알튀세르 맑시즘에 관한 새로운 정치`윤리적 독해의 시도: 라깡/들뢰즈, 헤겔/스피노자 논쟁 구도의 맥락에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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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병역거부 ‘양심’을 위한 진지한 변명(김두식 인터뷰)

2007. 6. 9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14783.html

병역거부 ‘양심’을 위한 진지한 변명
‘양심’에 대한 정의 분석으로
“군대 가면 비양심이냐”는 질문에 대답
치밀한 자료 토대로 일반인 알기 쉽게
“지원병제가 문제 해결 열쇠”
한겨레 한승동 기자  탁기형 기자
» <평화의 얼굴>
인터뷰 / ‘평화의 얼굴’ 펴낸 김두식 교수

“군에 가지 않는 게 양심적이라면 군에 복무한 우리는 비양심적이란 얘기냐?” “만약 강도가 네 여동생을 강간하고 죽이려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

6년 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 문제가 격렬한 논전을 거쳐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공론화된 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병역거부자들을 몰아붙일 때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활용해온 질문들이다. 지난 70여년 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이 땅에서는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과자가 됐고 지금도 늘 9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그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그때 보수 주류 기독교단은 특정 종파 중심의 그들을 이단으로 몰며 ‘절대 불가’ 쪽에 앞장섰다. 그때 ‘그게 아니다’며 보수 교단 논리를 정연하게 비판한 〈칼을 쳐서 보습을〉이란 책으로 기성관념에 충격을 준 사람이 독실한 기독교도 김두식(40) 경북대(그때는 한동대 재직) 교수다.

“처벌만 놓고 본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혹하게, 가장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둬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하는 그가 이번에 다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 〈평화의 얼굴〉(교양인)을 냈다.

〈칼을 쳐서 보습을〉이 “운동가를 위한 팸플릿에 가까운” 책이어서 한번 제대로 써 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5년 만에 뜻을 이뤘다. 그 사이에 “괴물로 변하기 쉬운 국가와 그 국가를 통제해야 하는 법의 사명을 설명한” 〈헌법의 풍경〉도 썼다.

“한국 상황, 일제 시대 얘기 들을 넣는 등 많이 보완했다. 거의 새로 쓴다고 생각하고 작업했다. 5년 전에는 주로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했으나 이번에는 일반인을 상대로 재미있게 쓰려고 애썼다.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칼을 쳐서 보습을〉의 완성판인 셈이다. 치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논리를 한층 더 탄탄하게 가다듬어 새로운 내용이 절반 이상 추가됐다.

〈평화의 얼굴〉에서 김 교수는 위의 두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았나? 첫 번째 질문은 먼저 그럴 경우의 ‘양심적’이란 게 뭔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헌법학자들이 정의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파멸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다. 이건 우리가 흔히 “그 사람 참 양심적인 사람이야”라든가 “그 사람 정말 비양심적이야” 할 때의 ‘양심’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그러니까 누구는 양심에 따라 군에 못 가겠다고 할 수 있고, 또 누구는 양심에 따라 군에 가겠다고 할 수 있다. 그 둘은 모순관계가 아니다. “군에 가는 게 비양심적이냐?”는 문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에 김 교수가 내놓은 답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 하나는 “전쟁은 당신이 물어보는 그런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는 것이다.

» 김두식 교수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일본이 조선과 아시아를 침략할 때 꼭 그렇게 주장했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강도)이 우리 국가와 국민(여동생)을 유린할 터이니 우리가 살기 위해선 부득이 조선을 식민화하고 중국과 동남아를 쳐서 대항해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미국을 공격해올 조짐이 보이는 상대를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것도 꼭 같은 논리다. 그건 전형적인 제국주의 범죄논리다. 전쟁과 개인의 윤리는 전혀 다른 것이다.

“병역거부는 이단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 “예수님이 병역거부라도 했다는 건가?” “전쟁 중에 어떻게 병역거부냐?” 〈평화의 얼굴〉은 이런 무서운 항변들에 대해서도, 왜 흥분할 일이 아닌지 구체적인 국내외 사례들을 들이대며 편지글투의 경어체로 조근조근 대답한다.

주류 기독교가 이단으로 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 병역거부 문제도 깊이 다뤘다. 김 교수는 “사실은 그들이 굉장히 고맙다”고 했다. 이 부분은 ‘자신부터 돌아보고 반성하는 삶의 자세, 자신이 직접 겪고 느끼지 않은 것은 결코 말하지 않는 정직함’이라는, 그가 지닌 미덕과도 관련이 깊다.

“국가와 교회, 그리고 평화는 청년 시절부터 나를 붙잡은 고통스런 화두였다”는 그는 원래 인문학 쪽 책벌레였으나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5년 2월부터 군 사령부 검찰관 보직을 맡았고 그때 국선변호인 자격으로 집총 거부로 재판에 회부된 여호와의 증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만남은 “국가권력의 이름 아래 수백만, 수천만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 고민하면서도 안락한 연구실과 가정을 떠나지 못했던 그가 그 한계를 돌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 김두식 교수
〈평화의 얼굴〉은 “일종의 신앙적 결단”이자 그가 꿈꾸는 “평화교회”에 관한 사유다. 자신을 “군대를 가는 평화주의자” 쪽에 자리매김하는 김 교수는 지원병제를 문제 해결의 열쇠로 본다. “지원병제로 가는 과도 조처로 민간 대체복무뿐만 아니라 비전투 복무에도 논의의 초점을 맞추자”고 촉구한다.

큰일 했다는 공치사에 “법학 제대로 공부했다면 누구나 도달하는 곳이고 그걸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한 것뿐”이라며 손을 내젓고는 심각한 불이익을 감수한 병역거부자들과 이를 알리고 그들을 도운 사람들에게 공을 돌렸다.

책이 나오자 “보수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가 정말 잘 썼다, 도움이 됐다”고 했다. 팔순이 가까운 아버지도 기뻐하셨는데, 다만 “혹시 자식이 다칠라” 걱정했다. 장애인 문제를 전공한 아내는 처음부터 ‘내 편’이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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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1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6-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은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 우선 그날로 잡으세요 저도 조정해보도록 할께요. 세미나가 토 아니면 일에 있는데, 그 주는 사람들이 어떤 요일로 정할지 ^^;;
 
 전출처 : 나귀님 > 고병려, 바울, 고위공, 하인리히 뵐...

날도 덥고 해서, 내 방을 물리치고 집사람 방에 내려와 노는데 (내 방은 옥탑방, 집사람 방은 구석방) 며칠 전부터 책상 앞에 딱 앉아서 오른쪽을 흘끗 보면 계속 내 눈에 들어와 꽂히는 책이 하나 있는 거다. 제목은 <바울서간>인데, 사실은 그 저자의 이름이 더욱 인상적인 거다. "고병려"라고... 글쎄, 지금 와서 봐도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니다 싶다.(문득 오늘 무슨 인터넷 만화에서 본 "연보흠" 기자가 생각나네.) 이 사람... 예전에 집사람 책장에 그 책이 있는 걸 봤어도, 그냥저냥 이런저런 신학자 아니면 목사 아니면 뭐 비스무리한 양반이겠지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그 책이 "뎀비는" 바람에 수고롭게도 책장에서 꺼내 뒤적뒤적해 봤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은 이른바 신약성서의 "바울서간"(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의 번역, 그러니까 사역(私譯)인 거다. 예전에 집사람이 좋아라 하며 헌책방에서 집어들던 무교회 쪽 사람인가 싶어 맨 앞장 저자 약력을 보니 의외로 당시(1987년) "서울대학교 희랍어 강사"라고 나오는 거다.

오호. 얼마 전에 피천득 선생 에세이집에도 희랍어를 통달했던 친구 모 교수의 죽음을 애통해 하던 이야기가 나와 흥미롭더니, 이 양반은 또 누구신가 싶어 인터넷을 뒤적뒤적해 보았더니, 이런, 2006년 4월 23일에 별세하셨다고 한다. 덕분에 한 가지 얻게 된 또 다른 정보는 그의 아들이 바로 독문학자 "고위공" 선생이라는 것. 어째 집안 내력인지 이름들이 결코 평범하진 않은데(병려, 위공), 하긴 내가 "고위공"이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것도 그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주 예전, 그러니까 울 엄마가 <주부생활> 열혈 독자일 때에 하루는 "별책부록"으로 날아온 책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책이 있었는데, 그 번역자가 바로 "고위공"이었다. 알고 보니 학원사, 아니, 주부생활사에서 나오던 주우 세계문학 가운데 한 권을 재가공(뭐냐면... 안 팔리는 책을 절단기로 이래저래 "짤라"서 표지갈이 한 책)해서 내놓은 물건 같았다. 생각해 보면 하인리히 뵐의 소설을 읽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누런 이로 소시지를 베어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표제작보다도 그 뒤에 실린 <아담, 너는 어디 있었느냐?>가 무척 인상적이었다.(지금도 그 제목은 외운다니까. Wo warst du, Adam.) 하긴 뒤의 작품이 좀 더 비극인 이유도 없지 않고...

하인리히 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십중팔구는 "귄터 그라스가 받아 마땅한 상을 얍삽하게 뺏은" 인물로 인식되는지 모르겠는데, 글쎄, 그거야 뭐, 나중에 그라스도 일종의 체면치레는 했으니 더 이상은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겠지. 무슨 뜻이냐면 귄터 그라스가 문학성은 더 뛰어난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인의 반성이랄까, 그런 분위기를 좀 더 잘 드러낸 것은 하인리히 뵐이기 때문에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 쪽에서도 그라스 대신 뵐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소문이 없지 않았던 거다.(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이 보통 "한 수 위"로 여겨졌던 다니자키 준이치로 대신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돌아갔을 때의 충격과도 비슷했다고나 할까. 물론 다니자키는 그보다 몇 년 전에 사망했지만, 후보로는 종종 거론되었다고 들은 바 있다.) 그래서인지 하인리히 뵐의 소설은 어딘가 우울한, 그러니까 잿빛의 소설이라고 인식되었는데, 의외로 단편이나 방송극은 재미있었다.(가령 "나의 슬픈 얼굴"이라든가, "어린 왕의 수기" 같은 풍자적인 단편,그리고 <결산>이라는 방송극집에 나온 그의 몇몇 작품이 지금도 기억난다.) 독문학계의 "불독"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조차도 그를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했다. 폴란드 출신의 라이히-라니츠키 부부가 독일로 망명한 직후, 그를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 중 하나였던 하인리히 뵐이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 그의 부인을 즐겁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사로잡힌 영혼>이란 자서전에서 하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라이히-라니츠키의 독설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그래도 수년만에 다시 만났을 때 먼저 그를 끌어안고 "이제 다시 친구가 된 거지?" 하고 유쾌하게 물어본 사람 역시 하인리히 뵐이었다고 한다.(뭐야, 불독 영감. 쪼잔하게시리.)

다시 고병려의 <바울 서간>으로 돌아가자. 성서의 "사역"으로 내가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최민순 신부의 "시편" 번역이다. 이건 손바닥 만한 작은 판형의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는데, 아쉽게도 최 신부는 희랍어를 몰랐기 때문에 (이 양반의 본령은 라틴어였던가, 이탈리아어였던가 그랬지.) 이런저런 다른 번역본을 참고해서 일종의 "중역"을 시도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뭐, 원래부터 시인인가 그랬고, 이 양반 번역의 <신곡>을 보면 지금 봐도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독특한 우리말 구사가 일품이기 때문에, 나름 중역이라도 "시편"의 뉘앙스에는 오히려 걸맞은 번역자가 아닐까 싶다. 하여간 고병려의 <바울 서간>은 전5권으로 구상된 "약주 신약성서 시리즈" 가운데 4권으로 나오는데, 이 시리즈가 완간된 것은 아닌 모양인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중 <마가복음>, <요한문학>이 더 출간된 듯하지만 5권이 완간되지는 못한 모양이다. 집사람이 갖고 있는 책에는 특이하게도 종종 틀린 부분에 "스티커"를 붙이고 화이트로 지운 부분이 있다. 아마도 그리스어 원본의 직역에 충실하려 한 까닭일까, 기존의 여러 성서에 비하면 약간 뻣뻣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해석이랄까, 이해의 여지를 남겨준다는 점에서는 소중한 자료가 아닐까 싶다. 가령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로마서 13장, 이른바 "세속 권력에 대한 복종" 대목을 보자.

  • 모든 사람은 상부의 직권에 복종하라. 하느님에게서 유래하지 아니한 권위가 없으니, 현존하는 모든 집권자는 하느님에 의하여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고병려 옮김)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바라. (개역개정판)
  •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동개정판)

어디서 읽었더라? 누군가가 "신학"을 공부한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요즘 신앙이 잘 서지 않는 모양이군" 하고 비아냥 조로 이야길 하는데, 하긴 그렇다. 단적으로 말해 예수처럼 살 수만 있다면 신학이나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 이름 팔아 먹고 사는 일종의 "사업체", 또는 "관료조직"이 되고 말았으니, 신학이란 것도 이들에게 뭔가 올바른 지침으로서 필요하다고는 본다. 문제는 신학과 신앙, 또는 이론과 실천, 아니면 강단과 현장이 상호침투적이지 못하게 다 제멋대로 따로따로 논다는 것이겠지만. 하긴 기독교 신학만큼이나 그 두 가지가 완전 등을 돌린 분야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강단에서 언급되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도 그 수많은 "영빨" 두둑한 집사, 권사, 장로들은 야단법석을 떨 텐데... 그렇게 보면 그것 참 문제다. 그런 "영빨" 우선론자들은 그렇다면 과연 자신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기독교의 진리는 "모순되기 때문에 믿는다"는 어느 교부의 말, 더 나아가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는 이상야릇한 "궤변"으로 귀결되게 마련인데, 솔직히 사람이 뭔가를 "믿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자신이 이걸 믿으면 뭔가 "이득"이 있을 것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믿고 말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거다. 나 역시 일찍이 기독교란 것을 접하며 "믿음"을 갈구했으나, 그에 앞서 뭔가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결국 기독교란 것도 허상 중의 허상이구나 싶어서 실망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오늘날의 기독교, 또는 신학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자뻑"에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뭔가를 "지키기 위해" 또는 "옹호하기 위해" 내놓는 논리란 구차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기독교만큼 그 근거가 되는 문헌 자체가 모순적인 난리뻐거지인 다음에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근거 하나만큼은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에 온갖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 올바른 비판이나 지적까지도 외면하고 마는 셈이다. 기독교의 문제는 바로 그거다.  물론 세계 모든 종교의 문제가 바로 그것, 박약한 근거를 지키기 위해 내세우는 "권위"이겠지만.

하여간, 정확히 자기가 뭘 믿는지 알고 싶다면 일단은 그놈의 "권위," 그러니까 성서가 도대체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톨스토이가 말년에 가서 웬 변덕으로 열혈 기독교인이 되어 성서를 읽기 위해 히브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거나, 또는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어느 일본서적을 전재한 "희랍어 문법"을 연재하면서까지 "원전 강독"을 시도했던 것 역시 그런 맥락일 것이다. 어쩌면 고병려라는 양반, 성서 희랍어뿐만 아니라 고전 희랍어를 읽을 능력이 있는 양반이 굳이 그런 "사역"을 시도한 것도 그런 맥락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참으로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믿음"이란 것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믿는" 것일까? 기껏해야 그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란 어느 편집, 가공된 고대 문헌의 "번역"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다. 그들은 과연 예수의 수많은 비유 가운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가령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해도 울지 않았느니라" 같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일까?(어쩌면 이것은 그 당시의 관용적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니 기독교의 믿음이란 것,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홍어를 밟는 것마냥 발밑이 흔들리는 체험일 수밖에 없다. 그런 박약한 근거 위에 나름대로 "신앙"과 "믿음"을 확고히 세워 불신자에 대한 갖가지 파상공세를 펼치다못해 광신적인 수준으로까지 나아가는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정말 좀비들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왜 의심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인 것인데.

뭐, 돌아가신 양반 붙잡고 이런저런 넋두리를 할 필요는 없겠지. 그 역시 당시로선 희귀했던 원문 해독능력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던 인물이었는지는 몰라도, 결과만 놓고 보면 아주 성공한 쪽은 아닌 듯하다.(일단 완간이 안 되었으니까.) 그 아들인 "고박사"만 해도 특별히 대중적인 연구 성과는 내놓지 않은 듯, 하인리히 뵐의 소설 번역 하나, 파울 첼란의 시집 두어 권, 그리고 게오르크 트라클 연구서 한 권 정도를 내놓았을 뿐이다.(오호, 트라클. 비트겐슈타인이 부친으로부터 받은 재산을 희사한 세 명의 시인 가운데 한 사람. 마야코프스키와 쌍벽을 이룰 만한 "빠박" 시인으로 기억하는.) 어쩌면 그냥저냥 나름 조용히 묻혀 사는 것 역시 이들 "고박사"들의 전통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우연히, 그리고 뜻밖에 생각나고 알게 된 김에 끄적끄적해 본다. 역시나 이곳에 적어두면 훗날 망각은 피할 수 있을 것이기에.

 

 

***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전기를 뒤적이며 트라클에 대한 대목을 찾아본다. 비트겐슈타인은 트라클을 자신의 후원 대상자로 선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시의 어조는 마음에 든다. 물론 무슨 뜻인지는 이해되지 않지만 말이다." 오호라...

*** 인터넷에서 "고위공"을 치면 "고위공직자" 관련 내용만 주루룩 뜨는 상황이다. 반면 알라딘에서 "고병려"를 치면 무려 2528건의 상품이 떠 버린다. 이게 웬일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병려"라는 저자의 책은 한 권도 없고, 그 각각의 음절, 그러니까 "고", "병", "려"에 해당되는 온갖 물건들이 "윤구병"부터 "박병철"과 "황병하"까지 망라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사오정 검색이지, 뭐.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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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한국 소설의 위기는 비평가들에게도 있다?

* 뉴스메이커(2007. 6. 6)

[커버스토리]‘주례사비평’이 한국소설 죽인다

총애하는 작가 띄워주는 수단… 단편장르 집중현상도 한 요인

우리 문학, 또는 우리 소설에 활력이 사라진 이유로는 작가 못지않게 비평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인간적으로 친해진 호의적인 안목이 작품에까지 연장되어 이른바 끼리끼리 잘 봐주기의 행태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독자의 반응은 시큰둥한데 평론가들의 비평은 종종 호들갑이다. 중견 평론가 구룡모씨는 “비평가가 시인·작가를 경배하고 그들이 생산한 작품을 무조건 예찬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의 문학적 장이 활력을 잃어가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비평권력’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한국소설의 이미지. (정지윤 기자)


한 조사에서 중앙대 문창과 학생의 37%가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15%가 게임시나리오와 장르문학을 교과목에 포함해주기를 희망했다. 학생들의 대중문화에의 쏠림 현상이 커지고 있어 문단의 대응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구씨는 비평가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필요악’이라면서, 문제는 비평권력 자체가 아니라 권력의 바르지 못한 사용이라고 말했다.

“한국 작가들 자의식 너무 강해”

비평은 대상을 교육시키려는 태도가 아니라 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에 대해 시비를 가려 작품의 진가를 밝히려는 태도다. 그러나 한국의 소설 비평은 비록 전부는 아니라 해도 종종 자기가 총애하는 작가를 띄워주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작가에게 영합하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은 출판사의 매출 전략과 맞물려 한국 소설을 죽이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이다.

출판평론가 한기호씨 역시 한국 소설의 위기를 ‘비평의 신뢰성 상실’로 꼽고 있다. 그간의 한국 소설 비평이 작품에 대한 나침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덕담과 주례사로 일관하고 있는 비평가들의 발언을 신뢰했던 독자들이, 오히려 지금 한국 소설에 대한 불신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소설의 단편장르 집중현상도 위기의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우선 각종 문학상제도가 단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양대 문학월간지 ‘현대문학’과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현대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이 수상대상을 단편 내지 중편으로 제한하고 있다. 역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황순원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역시 대상을 중·단편으로 한정하고 있다.

물론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상도 적지 않다. 문학동네소설상, 한겨레문학상, 세계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삼성문학상 등 장편공모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상은 대체로 출간된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행본 출판’을 목표로 한 신인급 작가에 대한 공모의 성격이 강하다.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씨는 그 서글픈 결과를 이렇게 지적한다.

“작가들은 막상 장편소설을 쓰려다가도 잡지에서 단편 청탁이 오면 거절하기 어렵다. 문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잡지 편집위원들의 심경을 거슬렀다가는 그나마의 청탁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한다. 한편으론 중·단편에 주어지는 주요 문학상의 상금과 명예가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한다. ”

한국 문단과 문학상제도가 단편소설에 편중됨으로써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장편소설의 미학적 혁신과 문학성이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소설 독자층의 변화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견해도 존재한다. 문학평론가 천정환씨는 현재 한국의 소설 독자층은 대단히 협소한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지망생 그룹과 20~30대의 여성 독자들은 여전히 한국 소설의 유력한 독자층이지만, 1970∼80년대의 소설시장의 활황을 가능하게 했던 30대 이상의 남성 독자들과 소설에서 ‘재미’ 이상의 것을 추구했던 계몽독자 또는 지식인 독자들이 대거 소설시장에서 이탈해버렸다는 것이다. 소설보다는 역사 전기물과 인물평전류가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폭넓게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씨(71)는 작년 여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호되게 비판하며 한국 대학생들의 독서 성향을 질타했다. 유씨는 ‘현대문학’ 2006년 6월호에 기고한 ‘문학의 전락-무라카미 현상을 놓고’라는 글에서 대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노르웨이의 숲’(한국어판 제목은 ‘상실의 시대’)을 가리켜 “감상적인 허무주의를 깔고 읽기 쉽게 씌어진, 성적 일탈자와 괴짜들의 교제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 지적했다. “무라카미의 소설은 작가가 이미 사회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상실했거나 예술적 포부를 가질 수가 없는 시대의 언어상품”이라는 것이다.

유씨의 이런 단호한 지적은 “지난 10년간 대학 초년생의 문학독서 성향을 조사”해 온 결과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맞닿아 있다. 인구 대비 대학생 수 전 세계 1위(1997년)라는 통계와 젊은이들의 문학적 교양의 결여 사이의 불일치를 겨냥해 그는 “그들(=젊은이들)이 매우 부실한 문학교육의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계간지 ‘문학수첩’ 2006년 여름호의 특집 ‘대학에서 문학은 살아남을 것인가?’도 유씨의 비판적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특집에서 다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김원일·조정래 최근 장편 긍정적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학생들의 대중문화에의 쏠림 현상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의 경우 응답자의 37%인 24명이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교과목에 포함시켜주기를 바랐고, 게임시나리오와 장르문학을 원하는 학생도 15.4%인 10명에 이르렀다. 젊은이들이 자아를 확립하고 사회의 책임감 있는 일원으로 성숙해가는 교양 형성의 장으로서 대학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유종호씨의 지적과 통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지적하는 한국 소설관도 음미해볼 만하다. 한국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인지 작가의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작은 얘기부터 풀어나갈 줄 몰라 무겁고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작가들이 ‘내가 작가요’ 하고 잘난 척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일본 소설의 ‘미덕’을 이렇게 지적한다.

“가볍고 밝고 유쾌하다. 한 장르에 치우치지 않으며 적당한 생각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삶의 본질이라는 무거운 주제보다 가족과 청춘, 성장기의 진통 등을 그려내는 테크닉이 뛰어나다. 전반적으로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서 양쪽 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

평론가 정호웅씨는 그러나 우리 소설이 길을 잃고 골짜기에 빠져 있다는 ‘소문’에 대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 소설의 자기갱신과 창조의 생명력이 여전히 활기차게 살아 약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진작가들이 최근 쏟아낸 장편들의 가능성에 높은 평점을 매긴다. 김원일의 ‘전갈’, 조정래의 ‘인간연습’과 ‘오 하느님’, 이문열의 ‘호모 엑세쿠탄스’, 한승원의 ‘소설 원효’ 등이 그것들이다.

이들 작품은 ‘역사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내걸고 추상화된 관념의 규정성을 해체하며 과거 진실의 포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 속에는 ‘현실 공간의 가상 공간화’라는 새로운 형식 실험도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주제와 형식 탐구, 중견작가들이 새롭게 포착해내는 역사의 진실과 삶의 본질 탐구가 아직 한국 소설계의 희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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