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간다
김억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2001)라는 영화가 있었다. 행복한 시간은, 청춘은, 사랑은, 지나간다는 의미이다. 김억의 이 시 또한 비슷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각운을 비롯하여 동일한 음절, 음운을 반복함으로써 독특한 운율적 효과를 얻고 있다. 이는 김억이 각운이 구현된 많은 수의 프랑스 시들을 번역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어로 근대적인 자유시를 쓰는 최초의 사람 중 하나였던 김억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한국어로 시를 쓸 수 있는지, 시란 무엇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험해보는 방법 중 하나는, 당대 외국시들을 한국어로 번역해보는 일이었다. 즉 보고 배울 ‘선생님’이나 ‘선배’가 없었던 그는 외국 작품에 구현된 운율과 이를 이루는 각운이야말로 시를 결정짓는 요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어떻게 시 속에 구현되었는지 살펴보자.
1연부터 ‘밤이도다/봄이다’라는 대구를 보여주고 있다. ‘밤’과 ‘봄’은 초성을 둘 다 ‘ㅂ’으로 시작하고 종성을 둘 다 ‘ㅁ’으로 끝내며 이 둘이 각각 양성모음 ‘ㅏ’와 ‘ㅗ’로 연결되어 있다. 이 짧은 1연은 시적 상황을 나타내며 동시에 시적 정조를 보여주고 있다. 밤이라는 시간은 일상의 낮과는 다른 시간이며 낭만적인 시공간이다. 봄 또한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이며 낭만적인 사랑의 시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봄밤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서가 어울릴 수 있지만, 시인은 곧 이어 ‘밤만도 애달픈데/봄만도 생각인데’라고 하여 애달픈 밤과 생각이 많아진 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왜 일까? 2연은 ‘~인데’로 끝나고 다음연에서 ‘~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밤만도 애달픈데/봄만도 생각인데//날은 빠르다/봄은 간다’라는 것이다. 밤이라는 시간 자체도 애달프고, 봄이라는 시간 자체도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데, 이 봄밤은 빠르게 지나가니, 더욱 애달프고 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 깊은 생각에 ‘아득이는’ 화자에게 슬피우는 새 소리와 종소리가 들리고, 검은 안개도 보인다. 그 외에는 조용하고 고요한 봄 밤. 화자에게 밤은 서러운 시간이지만 말이 없고 고요하다. 말이 없고 고요하니 더욱 서럽다. 이 때 꽃이 떨어진다. 꽃은 봄의 상징이자, 봄을 대표할 수 있는 대유이기도 하다. 이는 ‘봄은 간다’라는 내용과 같은 의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지막에 ‘님은 탄식한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마지막은 일종의 반전과 같다. 지금껏 우리는 화자가 홀로 있는 줄만 알았고, 그저 봄밤에 취해 우울해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화자의 곁에는 ‘님’이 있었고, 그는 탄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화자가 그렇게 ‘봄밤’에 우울해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봄’이라는 청춘, 사랑의 상징적 계절 속에서 그리고 ‘밤’이라는 연인들의 시간 속에 함께 있는 ‘화자’와 ‘님’이지만 ‘님’은 꽃이 지는 것을 보고 고요히 말없이 탄식만 하고 있다. 이별을 짐작할 수 있다. ‘봄은 간다’라고 시인은 제목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