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오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오

새 노래는 공으로 드르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이 시는 보통 안분지족의 삶의 태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가 보다 주목할 수 있는 것은 화자의 어조이다. 화자는 독백이 아니라 청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겠소’ ‘~지오’ ‘~있오’라는 표현을 살펴보면 지금 화자가 남으로 창을 낸 작은 초가집에서 살면서 안분지족한 삶을 살면서 자연에 동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것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화자는 갑자기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고 자신의 소망을 표출하게 된 것일까. 화자는 계속 자신의 상상을 이어가면서, “밭은 조그마한 ‘한참갈이(새참 한 번 먹을 동안이면 갈아 버릴 수 있는 작은 밭)’이면 되겠고, 구름이 꼬이든 말든 새 노래를 들으면서 살거야. 강냉이가 익었을 때 자네가 놀러오면 함께 먹자고. 그런데 이런 내 삶에 어떤 목적이 있냐고? 왜 사냐고? 왜 사냐고 물으면 난 웃겠지...”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상상 속에서의 삶은 안분지족한 삶이며 자연친화적인 삶이다. 그리고 이것을 꿈꾸며 상상하고 있는 화자는 지금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상상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서 꼭 이에 대한 ‘정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 속에서 화자가 상상하는 내용을 ‘안분지족, 자연친화’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이 화자, 또는 왜 이 시인이 이런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따져보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시인 김상용은 이 시가 발표된 당시 33살의 나이로 이화여전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때는 1934년. 당시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신간회가 해소되고, 만주사변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죽은지도 2년여가 흘렀다. 점차 식민지 시기 지식인들은 해방에 대한 전망과 자신감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1936년에는 일본을 파시즘 국가로 만드려는 쿠데타도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화자는 갑갑한 현실에서부터 벗어나서 ‘남으로 창을’ 내고 밭으로 ‘한참갈이’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로운 이상향은 단지 시속에서만 가능한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화자는 ‘남으로 창을 내고’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남으로 창을 내겠소’하는 소망만을 시로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암담한 상황 속에서 쓰인 시였기에 이처럼 담담하고 소박한 화자의 소망이 더 진솔하게 표현되어 70년 후의 우리가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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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1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하는 십니다. 퍼가요^^

기인 2006-08-1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