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와서, 논문의 결론을 다시 수정 보완하였다. 생각을 한참 하다가, 다시 썼던 글들을 지웠다. 결국 오늘 저녁 한 일이란, 논문을 고쳤다가 다시 예전으로 되돌려 놓은 것. 2년 동안, 학부까지 합하면 6년동안의 공부가 물질화해서 나오는 것인 만큼 생각보다 초라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장점이 커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최선을 다 했으니 후회는 없다'라는 말은 결과론적 이야기이고, 나는 누구도 '최선을 다 했으니' 따위의 말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나는 후회를 안 하는 타입의 인간이다...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면에 너무 욕심을 안 부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제도의 힘이라는 것은 역시 무서운 것이라서, 논문이 나의 연구, 나의 글이라는 생각에 앞서, 이 제도를 통과하는 시험으로서의 논문에 익숙해져 버리고 만다. 정해진 논문의 틀과, 심사과정, 문장의 모범, 교수들의 이론과 이데올로기들.

논문을 쓰면서 많이 지치기도 했는데, 마무리를 하면서는 다시 의욕도 생긴다. 다시 제도에 도전을 하고, 이번에는 더 치열하게 더욱 반성적으로, 더 생각하고 덜 회의하며, 더 노력하되 더 즐겁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글' '나의 연구'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심지어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능할 것 같은 분야인 '국문과'에서도 말이다. 아니면 오히려 '국문과'라는 것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독자들을 설득시키는 일. 그것. 어찌보면 쉬운 일. 그 와중에 교수들, 선배들, 동기 및 심지어 후배들 눈치를 보고. 참고문헌의 길이와 각주의 양으로 논문을 치장하고. 쓸 필요도 없는 당연한 주장을 반복하는 일은. 정말 생명을 쓸데 없이 죽이는 일이다. 나의 생명도 그렇고, 나무들의 생명도.

다음 학위논문을 쓰기 전까지는 긴 시간이 될 것이다. 그 때는 이러한 반성을 보고,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7~8년 후나 되어야 하겠지.  의욕적으로 '나의 글'을 쓰고 있을 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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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8-0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힘든 일 해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처음 뵙죠? 꽤 오래된 눈팅독자랍니다.^^

기인 2006-08-03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깊고 고요한 밤에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

프레이야 2006-08-03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길고 힘든 작업이셨을텐데 마무리하신다니 축하드려요.^^ 저도 '나의 글'을 쓰고 계실 '그'를 기대합니다. 홧팅^^

기인 2006-08-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맙습니다. :) ㅎㅎ

Mephistopheles 2006-08-03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욕적으로 '나의 글'을 쓰고 있을 그를 기대해본다.-
같이 기대해도 되겠죠..??^^

기인 2006-08-0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유쾌한 글 쓰시는 메피스토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