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프리지어를 베란다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꽃병을 물에 부셨다. 프리지어를 줄기만 씻어서 다시 꽃병에 꽂아놓을까 잠시 생각을 했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아랫도리가 상한 꽃들을 가지고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더 누리려는 것은 잔인하고 이기적인 착취의 행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항아리에 넣어져서 평생 목만 밖으로 내어놓은 채 살아가는 형을 받은 중국 궁녀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242)

 꽃=여인의 비유는 상투적이고, 매우 폭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꽃의 속성 중 '아름답다'가 여인의 '아름답다'와 겹치기 때문에 비유가 성립하기도 하지만, 꽃이 식물의 생식기임을 염두에 둘 때,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것은 여성의 성만을 부각시키는 남성에 의한 타자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충격적이다. '항아리에 넣어져서 평생 목만 밖으로 내어놓은 채 살아가는 형을 받은 중국 궁녀들'과 '아랫도리가 상한' '프리지어' 사이의 은유. 끔찍하다. 이렇게 은유는 기존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할 때 효력이 있다. 꽃을 꺽지 말지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 형벌이 있을까?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남에게 고통을 주는 방향으로도 엄청나게 발달한다.)


*왠지 '항아리 속 여인' 하니까,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떠오른다. 목이 긴 여인과 화병이 같이 그려져 있는.

 

흠. 작은 그림 밖에 검색이 안되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없다. 저렇게 목이 긴 여인 옆에 목이 긴 화병이 있는. 어쩌면 내 착각일 지도 모른다. 저 여인의 생김새가 화병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저 소설의 '항아리 속 여인' 구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그런 이미지를 느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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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6-2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이 그림을 연상하신 건 아닌지요?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아니고, 그에게 바쳐진 그림이지요.


기인 2006-06-27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조선인님 고맙습니다 :) ㅎㅎ 그런데 아닌 것 같아요. 호오~ 이런 그림도 있다니! 이 사람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한 것 아닐까요? ^^;

비자림 2006-06-2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 읽고 싶네요. 앗, 안돼! 지금도 쌓아놓은 책이 많은데...

기인 2006-06-2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지금 읽고 있는데, 아직 추천할 만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