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정검 칠살도 1 칠정검 칠살도 시리즈 1
조진행 지음 / 자음과모음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1류 무협과 2류 무협의 차이는 무엇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까. 1,2,3류라는 것을 분류한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무협지에서 매일 하는 짓이 바로 '초고수' '고수' '2류' '3류'를 나누는 일이기에, 그 분류를 무협지에도 적용시켜 보자.

나는 무협지를 보고 감동과 전율을 느끼기도 하는 열혈(?)독자이지만, 딴에 보는 눈은 제법 까다롭다. 그도 그럴것이 국문과 밥을 먹은지 어언 6년, 나름 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으니 소위 '문학'이라 하는 것들을 제법 읽었겠으니 말이다. 물론 내 주위에서 '무협'을 문학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적고, 이의 즐거움, 이의 감동을 아는이 적으니 오호 통재라!

무협이라 해서 어찌 감동이 없고, 어찌 민중의 애환이 담기지 않으며, 어찌 양성평등,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아름다운 문체와 절묘한 비유, 파격적인 스토리-라인과 개성적인 캐릭터가 없을소냐 말이다!

그런데 사실, 대다수의 무협이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기에, 대다수의 문학비평가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팔 걷고 나서서 1류, 2류, 3류 무협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해보기로 한다... 라기 보다는 이 조진행의 <칠정검 칠살도>에 대한 서평을 쓰는 와중에 그런 이야기를 쫌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기존 무협들은 아래와 같은 세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느냐에 따라서 1류로 분류될 수 있다. 물론 이 세 기준 중에 하나만이라도 특출라게 뛰어나다면 1류에 족하다고 할 수 있다.

1. 등장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있는가의 문제 -예) 김용. 한백림.

대부분의 무협지는 주인공에 대한 서술에만 집중하고, 주인공을 '나름' 개성적 인물로 만드려는데에 너무 큰 공을 쓰는 반면, 조연급들은 그야말로 '전형적 인물'로 나온다. 이들은 주인공의 개성을 살려주기 위한 엑스트라에 불과해서, 스토리 자체가 와닿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물론 무협의 기본 스토리-라인은 고전 소설의 영웅담을 모방한 것이다.

영웅의 탄생(비범한 태생 또는 기이한 연에 의해서 비범해지는 영웅) - 영웅의 좌절 (부모/사문의 몰락 또는 무공을 쉽게 익히지 못하는 신체적/심적 변형) -영웅의 또 다른 기연을 통해 무공의 급상승 - 적과의 대치 후 승리 - 또는 다시 좌절로 돌아가서 다시 기연으로 반복하는 루트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승리.

이런 스토리-라인을 거부할 수 없다 해도, 그 와중에 만나는 친구/동문/스승/적들이 '천편일률'이라면 이것은 절대 1류 무협이 되지 못한다. 김용과 한백림의 무협은 이런 점에서 뛰어난 무협의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김용이야 워낙 유명하니 두말할 필요 없지만, 한백림의 무협은 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의 무협 한 시리즈 한 시리즈만 보면 '천편일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지만, 그의 무협의 특이성은 이 시리즈들이 하나의 거대한 시리즈를 이루며 각 시리즈 마다의 주인공이 다른 시리즈에 조금씩 등장한다는 것이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 버금가는 <무협영웅담>이 되겠다. 이런 한백림의 거대 시도에는 칭찬을 보내는 바이며, 그의 시리즈 면면도 점차 나아지다가, 마침내는 각 시리즈의 인물들이 한데 모여서 천하무림대회 비슷한 것을 열면 이는 우리 한국 무협사에 있어서 기리 기억될만한 작품이 될 것이다.

2. 주인공 외에 캐릭터가 너무도 뻔한 전형적 인물이라 정이 안 가더라도, 독특한 무공, 분위기, 스토리-라인을 형성하고 있는가. (좌백, <비뢰도>, <묵향>, 이 저자의 <기문둔갑> 등)

1번과 같은 무협은 정말 힘이 들 수 있다. 기실 김용의 <영웅문>과 한백림의 시리즈의 특성은 각 등장인물들이 다음 시리즈에도 부분적으로 등장하면서 각 등장인물을 만드는데 드는 작가의 노력이 무협지의 권수와 쪽수로 보상을 받는다는데에 있다. 우리가 무협지 작가들의 물적 조건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리 많은 노력을 들이겠는가. 사실 무협지에서 캐릭터 창조가 거진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라인이나 소재의 특이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무협계에 특출난 작가는 좌백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간결하고 힘있는 문체,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자료를 통한 무공의 깊이와 리얼리티, 창의적인 스토리 등에서 좌백의 가능성과 재능은 현 집필작가 중 한국 무협계에 '본좌'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좌백의 무협들이 나오는 속도가 너무 뜸해져서 혹 슬럼프를 격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게임계 쪽으로 아예 몸을 돌린 것인지 걱정이 된다. 그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다!

그리고 특출난 스토리-라인으로 인기를 모은 <묵향>이나 초절정 강하거나 특이한 주인공으로 인기를 모은 <비뢰도>, <극악서생> 등을 들 수 있다. <묵향>은 수많은 그의 아류작들을 생성해낸 무림계 태풍의 핵이다. 환무지, 무환지라는 신종 개념을 양성해내면서 환타지의 인물이 무협지로 '뿅'하니 건너가서 마법으로 무공을 상대한다던지, 무공으로 마법을 상대한다든지 같은 동도서기론인지 치즈김치인지 비스무리한 것이 초유행을 하게 된 것도, 이 <묵향>의 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몇년째 연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로보트를 타고 다니면서 마법을 쓰는 '파이브스타-스토리'와 '건담'과 '에바'를 합쳐놓은 듯한 환타지편이 끝나고, 용을 아빠로 둔 무협계 최강자를 주인공으로 한 무협지 편이 연재되고 있다.

이러한 <묵향>의 매력 중 하나는,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무소불위'의 주인공에 있다. 기존 '정통'무협이 인의예지를 중시하며 고강하기는 하지만 최강자가 되기까지 뼈를 깎는 수련과 자기와 대등한 상대들과의 피터지고 긴장되는 대결을 보여주었는데, 이제 <묵향>의 주인공은 막나간다. 마교의 교주이니 인의예지 따위는 개에게 줄래도 없고, 무공도 남들은 따라오지 못할 만큼 강하니 지 맘대로다 완전히. 이러한 교주의 좌충우돌 남들 개무시를 통해서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러한 '초강함'과 막무가네의 주인공은 <비뢰도>에도 이어져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극악서생>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무공은 못하는데 머리는 천재고, 또 '현재'에서 와서 '과거이자 다른세계'인 무협으로 떨어진 주인공이라는 개념을 히트시키며 이 또한 인기를 끌었다.

이것의 인기는 이를테면,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이 K-2소총을 과거 세계에 만들어서 무공에 대항해서 쏜다던가, 시를 논할 때 GOD의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로 뭍 여인들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든가하는 지꺼리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데에 있다.

어쨌든 이런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문장은 되어 있고, 나름의 세계관은 있는가.

가 마지막으로 정말 '쓰레기 무협'과 그래도 쓴 사람을 생각해서 울며 겨자먹는 무협으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까지 길게 이야기했는데, 나는 이 '조진행'이라는 작가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의 <기문둔갑>은 3번째와 2번째 항목에 해당되며, 특히 2번째 항목에서 정말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야말로 '기문둔갑'으로 무공의 최고수가 된 문사가 주인공인 것이다. 이 얼마나 '무협'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하는 '무협지'인가!

이 <기문둔갑>안에 들어있는 도가적, 불가적 사상의 심오함도 기대이상이었다. 그래서 이 <기문둔갑>의 전작인 <칠살검 칠살도>를 집어들었는데....

역시 이 작가는 작품마다 크게 '진화'하고 있는 작가라는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이 작품은 <기문둔갑>을 위한 맹아라고 밖에는 평가할 수 없다. 주인공의 성격도 비슷하고,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천편일률적이며 등장하는 도가적, 불가적 사상 또한 유사하다. 주인공이 무공이 없지만 '영기선검'을 통해 초절정 고수로 되고 마침내는 무공을 초월하게 되는 것도 <기문둔갑>과 유사하지만 훨씬 덜 특이해 평범하다.

아으. 그래도 계속 좋아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제 <칠정검 칠살도>의 전작인 <천사지인>을 읽고 있는데 또 비슷한 주인공인 것 같아서 살짝쿵 실망이 된다.

조진행 선생, 캐릭터 줌 개발해 보세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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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12-1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사지인은 처음 보고 반해버렸던 작품이였는데...

기인 2006-12-1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다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근데 쫌 식상하기는 해요.
같은 작가의 <기문둔갑> 강추에요. ㅎ

가넷 2006-12-1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문둔갑도 좋았어요. 두번째로 낸 이 칠정검은 별로 였었는데..근데 생각보다 무협도 많이 읽으시는 것 같네요.^^ 묵향은... 제가 중학교1학년때 쯤에 9권인가 10권이가 나왔던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10년은 넘은것 같네요. 앞에 무협편4권 은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느낌인데. 그리고 좌백 다음에 <비뢰도>를 적어 놓아서 어라? 비뢰도라는 제목의 책도 내셨던가? 싶었네요 ^^; 그러고 보니 무협을 처음 보았던게 와룡강(--;) 작품이였는데... 보고 충격을(?) 받았더랬죠.ㅎㅎ;; 그런걸 빌려주다니; 참.ㅋㅋ; 아니 잘 나간다고 추천해주는 건 또 뭔가 싶더라구요.ㅋㅋ;

가넷 2006-12-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천사지인이 2부가 나왔었네요. 어쩐지 2부를 낼것 같이 끝내더라니...- -; 당장에 대여점에 가보아야겠어요.ㅎㅎ;;

기인 2006-12-1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 칠정검칠살도도 2부가 나올 것처럼 끝냈는데,
작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느니만큼, 발전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ㅎ

가넷 2006-12-1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선인지로요? 그거 1권만 나오고 그 이후로는 깜깜무소식..- -;

기인 2006-12-1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게 선인지로에요? ㅎ 작가가 이것저것 바쁘나보네요. 몇개 벌려놓고 인기 좋고 잘 써지는거 쓰나봐요. 저도 언젠가는 무협다운 무협을 한번 써보고 싶어요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