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릴 정도로 분석적이고, 체계적인데... 별 감동은 없었다.


  자연법론(비실증주의) 대 법실증주의 논쟁을 접할 때마다, 그래서 '무슨 쓸모?' 하는 생각이 앞선다. 서로의 논리적 궁지에 변태적 쾌감을 느끼며 결국은 상대의 약점을 가장 큰 논거로 삼는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렇게 '우리 편 아니면 적군' 식의 경직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나 싶다.

  특히 비실증주의는, 법실증주의를 지극히 좁게 규정하여, 법체계의 자족성, 완결성을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없을 것이라면 절대로 실증주의 편에 서서는 안 되고 우리 편에 서야 하고 설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강변한다는 느낌이 든다(자신의 입장은 좁은 실증주의 아닌 모두를 포괄하는 '非'실증주의로 넓게 잡아 예외를 폭넓게 허용한 뒤에...).

  나치에 부역하거나 유신정권에 협력했던 자들 일부가 '법'을 '법률'과 동일시하여 더 이상의 사고를 애써 멈추어 버렸다는 것도 맞지만(이른바 '법률적 불법'의 용인), '정의', '역사적 사명', '시대적 과제'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제한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버린 결과가 인류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 것 아닌가. 대표적인 법실증주의자 한스 켈젠은 오히려 나치의 박해를 받아 해직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자유주의,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과제로 삼은 카를 슈미트야말로 '황제법학자'로 불리며 반유대주의의 선봉에 서지 않았던가. 더 위험한 쪽은 이성과 군중을 마비시키는 이론의 낭만화 아닐까. 정의는 과연 투명한 개념인가.


* 심헌섭, <서평> Hans Kelsen: Leben-Werk-Wirksamkeit (R. Walter, W. Ogris, Th. Olechowski 공편 Wien 2009, 395면), 서울대학교 법학 제51권 제3호 (2010)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71030/1/0x702004.pdf

* 심헌섭, <서평> Matthias Jestaedt, Hans Kelsen-Institut, 『Hans Kelsen im Selbstzeugnis (Mohr Siebeck, 2006, 126쪽), 서울대학교 법학 제48권 제3호 (2007)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10175/1/law_v48n3_278.pdf

* 박은정, 한인섭 엮음, 『5.18 법적 책임과 역사적 책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5), 279-280쪽 등


  비실증주의가 중요한 논거로 드는 것이, 법의 외피를 띤 '극단적 불의'를 단호하게 불법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참여자(특히 법관)들이 그러한 예외상황에서 언제라도 정의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평시에 전선의 우위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 이를 떠나 어쨌든 법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인데...

  '무엇을 극단적 불의라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러한 판단의 정확성 내지 타당성을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더군다나 그러한 자세를 평소에도 준비시켜 놓는다고 한다면, 어떤 가치에 복무하겠다는 의욕의 과잉이 오늘날과 같은 진영주의, 종파주의, 인민주의와 결합할 때, 상대편을 말살하기 위한 이념전쟁에서 법관들조차 홍위병 노릇 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법의 빈틈을 섣부른 신념으로 채우려다 사실까지 왜곡하게 되는 결과와(프레임이 강할수록 사실을 그에 끼워 맞추어 보게 될 우려가 당연히 커진다), 실제 사실에 집중하여,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다듬어져 대박은 못 쳐도 크게 잘못될 위험도 적은 '있는 법'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바뀌기 전까지는 충실하게 적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해악이고 치명적일까. 입법에 이르는 정서가 열정, 바람, 분노보다 후회에 기초하는 것이 반드시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일까.

  질문을 바꾸어, 자신이 주관적으로 어떻게 믿는지와는 무관하게 개인적 가치관을 잠시 접어 두고 꼬장꼬장하게 증거와 절차부터 따지는 법관과, 대의를 위해 약간의 억울함은 희생될 수 있고 구체적 사건의 세부가 큰 틀에서는 무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법관(즉, '누구 편을 들고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가 사건을 직접 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 속에 어느 정도 서있는 법관) 중, 내가 재판 받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때 어느 쪽의 재판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은 꽤 분명하지 않은가. 내가 지더라도 승복할 수 있는 쪽은 전자의 재판 아닐까. 매사에 입장이 분명하고 강하게 서있는 심판자가 공정하고 공평할 수 있을까. 어느 한 쪽 입장이 언제나 빈틈 없이 선(善)이고 정의라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 아닐까. 욕망덩어리인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인가. 인간세상이 전래동화나 마블 유니버스처럼 선악이 분명하기만 한가.


  바야흐로 진실이 흔들리고 가치가 혼란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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