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대 역 벤치에 앉아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무가지 신문을 읽고 있는데 다리께에 뭔가 야릇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처음엔 가방끈이나 파리 혹은 그에 준하는 쓸데없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신문 읽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점점 느낌이 진해진다. 읽던 신문을 살짝 들어서 확인해보니 웬 낮 모르는 손이 내 허벅지께를 마음껏 주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지조와 절개로 버텨온 한평생이 아니던가! 그 찬란한 금자탑에 빠직 금가는 소리를 어찌 그냥 듣고만 있을 수 있으랴.. 결심했다. 얇은 종이 하이얀 신문 고이 접어 네놈 콧구멍에 쑤셔 드릴레라.. 그리고 신문을 확 접어드는 순간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시츄에이션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아니, 최소한 환갑은 훌쩍 넘겼을 것 같은 쪼글쪼글 할머니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젊은 총각 다리를 더듬고 있는 거냔 말이다. 그것도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손가락을 푸욱 넣어서.. 혹시 로리타 컴플렉스 변태 할머닌가? 관상을 보아하니 별로 색을 탐할 것 같지도 않게 생겼다. 그래서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할머니?"
할머니 왈
"거, 참 시원하게도 뚫어놨수"
"아니, 할머니! 그게 뚫렸든 말았든 저도 순결은 지키고 살아야지요. 멀쩡한 총각 다리를 그렇게 함부로 더듬으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할머니, 호호 웃는다.
"아니.. 그런게 아니고 왜 이렇게 멀쩡한 옷에 구멍을 뚫어놨나 궁금해서 그랬지"
그제서야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단지 '궁금'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아, 그거야 폼나잖아요. 시원하기도 하고"
할머니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마침 지나가는 처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그게 폼이야? 그럼 총각은 저기 저 훌렁 벗고 댕기는 처녀 보면 어떤 생각 들어?"
탱크탑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자다.
"시원해 보이는데요?"
"아무 생각 안 들어?"
"다들 그러니까요. 저런 차림새를 볼 때마다 생각을 하면 골치아파서 어떻게 살게요?"
"그래도 어른들이 보기엔 그게 아닌거야. 천박해 보이고"
"음.. 그거야 할머니도 마찬가지죠. 할머니가 옛날에 한복에 두루마기 입던 시절로 돌아가서 그 옷차림으로 돌아다니시면 어른신네들한테 욕 깨나 얻어먹을걸요? 그때야 한복에 두루마기 입는게 보통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지금 할머니 옷차림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서로 피해주는 거 아니면 조금씩 이해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그, 그런가?"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선언하듯 대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요, 또 제가 나이를 먹으면 제 또래의 사람들은 다 찢어진 청바지에 짧은 치마 입고 앉아서 우주복 같은 옷 입고 다니는 꼬마들한테 예의없다고 말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 바닥이 다 그런거 아니겠어요?"
양아치의 요설에 변태 로리컴 할머니는 지하철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