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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요일에는 종종 당고개역을 지나게 되는데 여유시간이 있으면 근처 헌 책방에 들린다. 헌책방은 규모가 작지만 내용은 제법 알찬 편이다. 사장님은 한 켠에 있는 방에서 사는데 갈 때마다 불콰하게 술이 오른 얼굴로 또 술을 마신다. 누구를 불러놓고 마시기도 하고, 혼자 마시기도 한다. 지난번에는 전화로 수다를 떨면서 잔을 기울이다가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나한테 그런다.

“총각, 같이 한잔 할까?”

들어가서 일 해야 한다니까 또 그런다.

“에이, 책 냄새 나는데서 한잔 하면 좋지 뭘 그래!”

일이 산더민데 하마터면 거의 소주잔 쥘 뻔 했다. 

이 아저씨 술 실력에 비해서 장사실력은 형편없다. 처음 거래를 트던 날 내가 고른 책은 서너 권 정도.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 김예림의 ‘문학 풍경, 문화 환경’, 김영호의 사진집 ‘도시 그리고 여자’. 사장님, 자기가 붙여놓 가격표도 안 보고 대충 제목만 훑어보더니 그런다.

“팔천 원.”

책 뒤에 견출지로 붙어 있는 가격표도 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도 훨씬 싼 가격을 부르는게 아닌가. 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은 네셔널 지오그래픽이 잔뜩 쌓여 있길래 몇 권 집었다.

“삼천원”

세상에, 무려 권당 천원씩이다.

“미안, 깍아주고 싶은데 이거 권당 팔백원씩 산 거라서.”

이러지 마시라고, 권당 이천원씩 받으시면 안되겠냐고 통사정을 해도 막무가내다. 천원이란다. 물건 싸게 사고 기분 나쁜 적은 처음이다. 알콜의 과다섭취로 인한 뉴런계통의 이상일까? 아니면 단순한 경영 마인드의 부실일까? 

#. 2

헌책방의 매력은 단지 책을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책을 구입하게 되는 즐거운 불확실성과 간혹 절판되었거나 속표지에 저자 싸인이 들어간 레어 아이템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내게 있어서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 현대문학은 헌책방이 열어준 신 세계였다. 뿐만인가, 박찬욱의 오마주가 출간되기 전 헌터들의 수배목록 1호 였던 ‘비디오 드롬’도 헌책방에서 구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스들이 언제나 무한한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책 한권 못 고르고 그냥 나올 때도 있다. 사실 그런 헛발질보다 더 난감한건 오래 있기 무안해서 괜히 아무 책이나 한권 집어 나올 때다. 그렇게 해서 얻은 로빈쿡의 ‘바이러스’같은 책들은 정말 처치 곤란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헌 책방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책 못 고르는 날 한 두 권씩 사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고르는 날에 안 사들였다는 건 아니지만. 




처음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고른 날 사장님 그러셨다.

“아, 그 책 좋은 책이지. 그 왜 독수리 사진 한 장 찍을 라고 한 삼년씩 숨어서 기다리고 그러는거라고 그게!”

끄덕끄덕. 내 생각에도 내셔널 지오그래픽 만큼 사진이 좋은 잡지가 없다. 아무 호나 들어도 웬만한 작가의 사진집이나 화보집보다 훨씬 퀄리티가 높다. 오래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왔던 남자 주인공도 직업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였다. 

 

그게 아니라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내게 호감도가 높은 잡지다. 내 사진 스승님께서는 아직 디카 시장이 채 개척되기도 전 일찍이 300만 화소 똑딱이로 한국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표지를 장식하신 일이 있었다. 저화소 카메라의 쾌거이기도 했지만 더 경탄할만한 건 화소에 구애됨이 없는 내셔널측의 안목이었다.

내게 처음 그 잡지를 보여준 건 그로부터도 한참 전, 카이스트에서 석사 공부하던 어느 녀석이었다. 녀석은 가끔 사진이 멋있고 외국말이 잔뜩 쓰여있는 잡지를 들고 오곤 했는데 어느 날은 그게 탐이 났더랬다.

“그거 놓고 가.”

“왜.”

“읽게.”

풋. 하고 비웃던 고 싸가지가 얄미워서 그날 밤은 사전을 찾아가며 잡지를 읽었었다. 오랑캐 말이라고 늘 저급한 건 아니었다.

#. 4

그런데 어느 날.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헌책방에 수북히 쌓여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종적이 묘연해진 것. 어질어질한게 간만에 모닝시거 한대 피워 문 느낌. 요즘 이런 잡지 볼 사람 없다고 생각한 건 순진한 판단이었던 건가.
 
“미안, 어느 젊은 여자가 한꺼번에 다 사가더라구.”

뽀드득, 하고 이를 갈다가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세상에 철 지난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잡지 나부랭이에 관심 있는 젊은 여자가 흔한 건 아니니라.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이건, 필시 알라디너일 것이다.’

하긴, 알라디너가 아니고서야 이런 상도의를 한참 벗어난 짓을 저지를 인간들이 또 있을까? 이 무법자들. 머릿속에 몽타주가 촤르륵 넘어간다. 웬디양? 아치스트랄? 아니면 도로도? 심증은 확실하다. 현장에 떨어진 두발 DNA분석과 지문 분석, 철저한 탐문수사. 이젠 증거를 밝혀내는 일만 남았다.

그래, 이 긴 글을 쓴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내 내셔널 지오그래픽 몽땅 집어간 인간 자수해라. 교양있는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다. 매점매석에 사재기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  

과학적 수사를 통한 수사망은 이 시각에도 끊임없이 좁혀 들어가고 있음을 밝히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빰- 빰- 빰- 빠라바라바라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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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3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여장했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1-03 00:48   좋아요 0 | URL
으음.. 미인이라던데요?

Mephistopheles 2009-01-03 00:55   좋아요 0 | URL
책방 아저씨 과음중이셨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1-03 01:27   좋아요 0 | URL
일단 용의자 명단에 올립니다. 조만간 알라딘 상도의를 지키는 어둠의 모임에 출두하셔야 할 겁니다.

마노아 2009-01-03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일라이트가 너무 늦게 나왔어요! 얼른 자수하세요!

뷰리풀말미잘 2009-01-03 01:26   좋아요 0 | URL
자수하라! 자수하라!

푸하 2009-01-03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멋진 멀티미디어 페이퍼를...ㅋ~
배경음악이 정말 짱이에요.ㅎ~

언제 시간되실 때 저랑 헌책방 같이 가실까요?^^;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3:53   좋아요 0 | URL
영화 죠스의 등장음악 이후로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없었죠. ^^ 헌책방 좋습니다. 책 좀 고를만한 헌책방 아세요?

하이드 2009-01-03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정기구독자 -_-v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3:55   좋아요 0 | URL
좋습니다. 그럼 하이드님은 일단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땡땡 2009-01-03 14:56   좋아요 0 | URL
그렇지만, 언제부터 정기구독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닌가효? --;
하이드님이 구독하기 이전에 나온 잡지들이었다면 오히려 용의자일 확률이 더 높아진다눈... =3=3=3

하이드 2009-01-03 15:39   좋아요 0 | URL
저는 막 책 쌀때 에어쿠션 없으면, 내셔널 지오그래피 북북 찢어서 완충제로 쓴다는.. 아마, 제 천원시장에서 책 받아보신분들은 완충제로 찢겨져 동그랗게 구겨진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신 분도 계실듯 ^^

전 용의선상 확실히 제욉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7:13   좋아요 0 | URL
하, 하이드님. 그러면 안됩니다. 완충재라뇨. ㅠ_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Mephistopheles 2009-01-03 17:37   좋아요 0 | URL
교묘한 위장술입니다. 분명 A4로 출력한 걸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겁니다.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7:40   좋아요 0 | URL
오, 이런 메피님. 불신과 불신이 오고가는 알라딘 마을의 진면목을 새삼 확인하게 되어서 저는 기쁨니다. 후후.. 이게 사람 사는 맛이죠.

마늘빵 2009-01-0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저도 용의선상에... ( '') 그러나, 메피님이 확실합니다. 저도 책방 아저씨 옆에서 과음 중이었습니다. ('' )( '')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3:55   좋아요 0 | URL
음.. 메피님이라.. 알겠습니다.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치니 2009-01-03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연초에 처음으로 재미있어서 웃는거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3:58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May humor be with you!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구절입니다. 명랑한 새해 되시기를!

땡땡 2009-01-0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번째 용의자로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제 '두발'은 빗자루털이나 사자털, 그냥 긴 털 따위와 구분되지 않습니다. 고로 '머리카락'을 발견하셨다면 전 아뉩니다 -_-V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4:06   좋아요 0 | URL
그 정도로는 알리바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두발'의 존재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위한 범인의 트릭일 가능성도 존재하니까요. 중요한 건, 수사망은 좁혀지고 있고,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겁니다.

마법천자문 2009-01-0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값에 파는 걸로 봐서 잠복근무중인 노원경찰서 형사가 아닐까 싶군요. 죄송하지만 그 헌책방 정확한 위치 좀 가르쳐주셔요.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7:25   좋아요 0 | URL
http://cafe.naver.com/oldbook119 네이버 카페입니다. 책방 전화번호는 02-932-1130 사장님 폰 번호는 016-892-4975. 위치는 당고개역 1번 출구에서 길 건너서 화장품가게 쪽으로 30m정도 올라가다가 화장품 가게 끼고 우회전 60m. 솥뚜껑 삼겹살 옆집입니다. 지하에요. 여는 시간이 짧아서 아무때나 가시면 공치기 좋고 평일 오후는 6:30~9:30, 토요일은 5:00~9:30, 일요일은 2:00~9:30분 입니다. 사장님 본업이 노가다꾼이라서 그렇다더라구요.

Arch 2009-01-0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다니 제가 산게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니 얼굴 다 알거든! 어, 그래) 하지만 도로도님 말씀처럼 제 털도 인간스럽지 않고 아스트랄계에서 추출한 제 전생 이력상 DNA분석도 어렵습니다. 자수 아니라 미안.
대신 신촌쪽에 있는 큰길가에 뭔가를 많이 쌓아놓고 파는 헌책방을 알긴해요.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이 할아버지세요. 이벤트 참여를 해서 그거 소원빌면 되겠네요.(정말 여기서도 구걸^^)

뷰리풀말미잘 2009-01-03 17:27   좋아요 0 | URL
좋습니다. 아치님의 진술로 점점 수사망은 좁혀지고 있습니다. 구걸 안 하셔도 참여할 생각이었습니다. 으흐흐.

Arch 2009-01-03 18:51   좋아요 0 | URL
으흐흐... 야릇한 웃음^^ 뭐 그럼 웬디양님인가? 기한 넘기시지 말고, 뜸들이지 말고! 어디서 이 오만방자한 협박이란 말인고~ 히. 미모가 무기라 제가 좀 그래요.(얼굴 봤다고! 어 그래)

뷰리풀말미잘 2009-01-05 02:13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이벤트 참여했습니다. 메피님 사다리타기 이벤트 이후 머리털 나고 두번짼데요. 생각보다 즐겁군요.
 
표지디자인에 대한 명상

난, 간만의 황금같은 휴식기를 맞았을 뿐이고! 

배 깔고 이불 뒤집어 쓰고 귤 까먹으면서 책 읽고 싶었을 뿐이고!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생각났을 뿐이고!   

 

 

 

 

 

   

 

구판 절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고! 

기대감에 개정판을 검색해 봤을 뿐이고!  

다운 그레이드된 좌절스러운 표지디자인에 경악했을 뿐이고! 

   

...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고! 

 

 

 

  

 

아아.. 까치...

 

  

 

 

 

 

 

 

느그들의 미감은 평생 여호와의 증인 수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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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8-12-27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으로 보는' 이 붙은 이유는 멀까요. 우리에게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재능이 없을뿐 괴롭게도 더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능력은 있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듯..............

뷰리풀말미잘 2008-12-27 13:07   좋아요 0 | URL
'그림으로..'가 붙은 이유는 도판이 추가됐기 때문인거 같아요. 전 말이죠, 정말 해달라고만 하면 까치 출판사 표지 디자인 무료로 해 줄 생각까지 있어요..

지나가다 2008-12-2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댓글 남겨 봅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구판절판이 아닙니다. 이번에 '그림으로 보는'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에디션이고요, 따라서 기존 책을 축약 하며 도판과 함께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이지요. 아마 알라딘 쪽에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판매중이라고 나오네요~

뷰리풀말미잘 2008-12-27 15:50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군요. 분명히 어제 밤에는 절판이라고 나왔는데 오늘은 절판이 아니네요. ^^ 지나가다님 자세한 정보 고맙습니다. 근데 좀 수상한데.. 혹시 까치 출판사 관계자 아니에요? 혹시 그렇다면 저를 표지 디자이너로 고용하라고 사장님께 말씀좀 전해 주세요.

마노아 2008-12-2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애도를 금할 수가 없어요. 주르륵!

뷰리풀말미잘 2008-12-27 17:27   좋아요 0 | URL
그렇다니까요.. ㅠ_ㅠ

조선인 2008-12-2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치... 좀 안타깝긴 하죠... 그래도... 책은 좋잖아요... ㅠ.ㅠ

뷰리풀말미잘 2008-12-27 21:34   좋아요 0 | URL
까치글방의 책은 정말 필요한 것만 사고 있어요. 제가 맘 놓고(?) 까치글방의 책들을 사게 될 날은 까치글방 디자이너가 바뀌는 날이거나 예술장정을 배운 날 부터 일 겁니다.

- 2008-12-2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울며겨자먹기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샀지요. 도대체 북디자이너가 누군지 얼굴을 좀 보고 싶습니다ㅠㅠ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만 아니었던들 그런 디자인의 책을 왜 샀겠습니까ㅠㅠ

뷰리풀말미잘 2008-12-29 02:17   좋아요 0 | URL
윤민연우맘님.. 그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심정같아서는 '까치 표지 디자인 반대위원회'라도 조직하고 싶습니다. 제가 훗날 까치에 표지디자이너로 취직한다면 윤민연우맘님께 무상 A/S제공해 드리겠습니다.

DK 2012-04-0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몰랐었는 데, 글 보니까, 정말 까치의 디자인 센스 영 아니네요.
괴델에셔바흐같은 걸작을 저렇게 디자인하시다니.. 헐...

뷰리풀말미잘 2012-04-14 20:09   좋아요 0 | URL
요즘은 좀 나아졌나 모르겠어요.
 

책을 고를 때 종종 난관에 부딪힌다. 자본은 한정적인데 소비해야 할 품목이 많을 때 어쩔 수 없이 책은 가치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일차적인 판단기준은 필요성의 유무이고 이차적으로는 선호도에 따라 선택이 갈음되겠지만, 문제는 이런 논리회로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여전히, 소비해야 할 상품의 가지수는 한정적인 자본력을 상회한다는 점이다.

 

바로 어제저녁의 내 상황이 그랬다. 알라딘 장바구니를 앞에두고 한숨만 쉬기를 수차례. 그도 그럴것이 20000원이라는 한정적인 자본에 비해 장바구니에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헬레나 노리의 '오래된 미래'까지 무려 세권의 책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합계 24350원. 입으로는 중얼중얼 "질러버리자, 질러버리자, 질러버리자"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마우스 커서는 거래승인버튼 근처에서 멈칫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께 잃어버린 지갑의 압빡이 큰 탓이다.

 

다행이 어제는 논리회로의 필터를 더 조밀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지만 간간히 그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물이 새는 배가 있다고 하자. 하지만 배 밖으로 무엇인가를 던져 70Kg정도의 무게를 감소시킨다면 배는 침몰의 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때, 더 이상 배 밖으로 던질 것이 박민규와 김영하 두 사람 밖에 없다고 한다면 과연 누구를 택하겠는가.

 

1. 박민규   2. 김영하   3. 둘 다   4. 차라리 내가   5. 함께 빠져 죽는다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박민규와 김영하를 옆에 묶어 두고 갑판에 머리를 짖찧으며 생각할 것이다. 과연 누구를 버릴 것인가. 우선 찬찬히 (시간이 허락한다면) 두 사람의 문학세계를 돌이켜 볼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들이 쓴 대부분의 저작을 읽었다). 그러나 결론은 용호상박. 누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들의 문학에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머리를 짖찧으며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미모지상주의자답게 두 사람의 미모를 비교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개중에 특별히 '우'랄게 뭐 있겠나.) 결국 생각다 못한 탐미주의자는 아픈 머리를 감싸쥐고 두 사람의 패션을 비교할게다.

 

책에서 '패션'에 상응하는 것은 응당 표지디자인일 터. 그렇다. 도서구입에 있어서 나의 최종적인 판단기준은 바로 표지디자인이다. 옆구리에 끼고 다닐 때 나는 간지의 정도와 표지디자인의 점수는 비례한다. 책장에 꽃아놓았을 때 얼마만큼 포스를 발산하는가와 표지디자인의 점수는 역시 비례한다. 이 것을 수학식으로 나타냈을때... 으음.. 여하튼 표지디자인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표지디자인은 출판사마다 특색이 있는데 역시 압권은 '열린책들' 출판사의 디자인이다.


 

 

 

 

 

 

 

 

 

심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튼튼하고 깔끔한 양장본에, 껍질 안쪽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써 주시는 굿 디자인.

내 책장에서 열린책들 출판사의 도서 총수는 35권. 꽤 비중있는 위치에 있다. 이것은 어느정도는 표지디자인의 힘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숨쉬기가 귀찮아질 정도로 심심해지면 통계로 검증해 볼 예정이다.) 

 

열린책들과 더불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출판사로는 휴머니스트, 문학동네, 문학세계사의 표지디자인이 하이퀄리티를 자랑한다.

 

 


 

                                

    

 

 

 

문학동네- 히라노 게이치로, 일식/ 김영하, 빛의 제국

 

역시 뷰리풀하다.

 

반면에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출판사임에도 표지디자인이 대략 누추한 출판사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동문선, 문학사상사, 그리고 까치글방을 꼽을 수 있겠다.

 


 


 

 

 

 

문학사상사의 누추한 디자인.

 

 

 

 

 

 

 

 

 

 

동문선의 빈곤한 디자인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개중에서도 특히 까치글방의 표지디자인은 매우 안타까운 수준이다. 까치글방은 어떻게 저렇게 훌륭한 책에 저따위 껍데기를 씌워놨을까 싶은 출판 리스트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타 출판사에 비해 값이 싼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싸다! 이것은 심혈을 기울여 마빡이를 열연하는 장동건과 같은 것이다.

 

 

 

 

 

 

 

 

까치글방의 괴델, 에셔, 마빡이 ㅠ

 

 

내가 발과 그림판만으로 그려도 저것보단 낫겠다 싶다. 내가 이제껏 괴델, 에셔, 바흐를 완독하지 못한 이유는 모두가 저따위 표지디자인 때문이다.

 

그리고 주목할만한 출판사로는 민음사가 있다. 한국 연 매출액이 300억원이 넘는다는 한국 최대의 출판사. 고 퀄리티의 출판목록을 자랑하는 출판의 명가. 내 책장에서도 단일 출판사로써 최대 권수를 자랑하는 민음사는 디자인은 환쟁이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출판계에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출판의 질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찬란한 과거가 있다. 아직도 가끔은 심심하지만 그런대로 무난한 디자인을 채택, 중간 정도 점수를 줄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가끔 삽질을 한다는 거.

 


 정말 발과 그림판을 활용한 디자인을 해 버리는 것이다.

 

 

 


 

 

 

아.. 안습이다. 보르헤스 전집.

 

표지디자인 하신 박상순씨, 김황씨.

밥은 먹고 다니시나요?

 

이 두 사람 이 표지디자인 하고 일당 받았겠지?

설마 요따우 디자인에 돈을 받았다면 그건... 인간의 탈을 쓴 식충이다.

 

나는 탐미주의자이고 또 탐서주의자다. 읽지않은 책이라도 책장에 꽃혀있기만 하면 배가 부르다. 돈을 빌려줄땐 망설이지 않아도 책을 빌려줄 땐 망설인다. 이왕 더불어 살 책이면 오래 봐도 잘 망가지지 않는 장정이면 좋겠다. 그리고 예뻤음 좋겠다. 혹자는 열린책들의 양장본이 불편하며 문학동네의 책들이 디자인에 너무 많은 값을 할애한다고 한다. 하지만 해외 오래된 도서관의 고서들을 보며 나는 책이란 무조건 튼튼하고 예쁘기부터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 정이 가는것이 오래 남는 것이니까. 책은 오래 남을 것이니까. 또 오래 남아야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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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굿 바이! 빌
    from What a wonderful world! 2008-12-27 00:28 
    난, 간만의 황금같은 휴식기를 맞았을 뿐이고!  배 깔고 이불 뒤집어 쓰고 귤 까먹으면서 책 읽고 싶었을 뿐이고!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생각났을 뿐이고!                    구판 절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고!  기대감에 개정판을 검색해 봤을 뿐이고!
 
 
치니 2006-11-0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어디나 어김없이 등장하는 최악의 표지, 문학사상사 책들, 이젠 친근하네요.
그나저나 김영하 냐 박민규 냐 저더러 고르라고 하믄, 저는 박민규 고릅니다.
김영하는 어느 한 지점부터 식상해졌어요. 박민규도 안 그럴거란 보장이 없지만.

이매지 2006-11-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사상사는 정말 -_-;;
전 김영하 고르렵니다.
전 박민규에 이제 좀 식상해졌어요. 김영하도 살짝 그렇지만

뷰리풀말미잘 2006-11-0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제가 대부분의 하루키 책을 다 읽었는데 '태엽감는 새'는 아직 못 읽었어요 도저히 사 읽을 엄두가 안 나더라구요. 몇 년째 개정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웬만하면 문학사상사에서 판권을 포기했으면 좋겠어요. ㅠ_ㅠ
박민규씨 한표 나왔군요.. 후후.. 슬슬 김영하씨 표정이 굳어갑니다. ^^ 하긴 김영하는 이번 '빛의 제국'이 인간적으로 너무 별로였어요. 그래도 아랑은 왜랑 검은 꽃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한번쯤은 사면해줄까 생각중입니다.

이매지님/ 듀스포인트입니다. ^^ 그럼 요즘은 어떤 작가가 대세인가요? 요즘은 문학을 읽을 기회가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

프레이야 2006-11-0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좋아요. 고전적이며 품위있어 뵈요...

뷰리풀말미잘 2006-11-0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쵸? 책장 분위기가 산다니까요? (이러다 저 열린책들에 알바비 청구해야겠어요ㅋㅋ)

paviana 2006-11-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말미잘님 (__)
웃다가 추천 안하고 갈뻔 했습니다.
삼실에서 혼자 끼득끼득 웃었어요.
그럼요 표지 정말 중요하지요.
저도 까치에는 안습입니다.까치야 워낙 표지에 무관심하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민음사의 저 보르헤스 전집은 정말 버럭이군요.
마빡이를 연기하는 장동건이라니..생각만 해도 슬픕니다.

urblue 2006-11-0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랑 김영하 둘 다 버리고 혼자 잘 살테야요. ㅋㅋ

뷰리풀말미잘 2006-11-09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viana님/ 안녕하세요! 까치의 책들 중 몇 권은 제가 무보수로 표지디자인을 해 줄 용의가 있을 정도입니다. ^^ 그리고 또 궁금한 건 도대체 누가 저 표지'디자인'을 하는 걸까요. 어쩔땐 혹시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세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urblue/ 그래도 없는거 보단 하나라도 있는게 낫지 않을까요? ^^; 박민규씨나 김영하씨가 이 페이퍼 보면 오늘저녁에 만나서 한잔 걸치실지도 모르겠네요. -민규야 우리 다 때려치우고 술집이나 할까?

깍두기 2006-11-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워낙 실용주의적인 사람이라서
박민규와 김영하 중 택하라면 개중 힘세고 섹시한 사람으로 고르겠습니다.
혹시 무인도에라도 불시착하면 생존에 유리해야 하며(힘세고) 그리고....ㅎㅎㅎ
(김영하씨, 박민규씨 죄송합니다)

보르헤스 전집은, 나름대로 포스트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blowup 2006-11-0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상순 씨 디자인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느낌이 달라서. 저렇게까지 구박하시면 맘이 좀 아픈데요. 흑.
저는 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의 디자인이 좋아요.
그리고 정병규 씨가 디자인했던 옛날 민음사 책들.
타이포그라피와 라인만 살아 있는, '이것이 책이다' 하는 느낌.

마노아 2006-11-0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푸풋, 우울한 하루에 하하 웃을 일을 주십니다^^

뷰리풀말미잘 2006-11-09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1. 황희의 누렁소 검은소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이보게, 저기 저 농군 보시게. 검은소와 누렁소중에 어느놈이 더 일을 잘 하오?" ^^
2. 그렇다면 문제는 왜 '그림판과 발로써 포스트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는가' 정도로 귀착되겠군요.. 음..

나무님/ 나무님 말씀 듣고 검색해 보니까 박상순씨의 이전 디자인은 썩 괜찮은게 많더군요! 하지만 보르헤스전집의 그 디자인은 개인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겠습니다. ^^ 말씀하신 작가정신소설향 시리즈 디자인은 정말 훌륭하지요.

마노아/ 제 글을 읽고 웃어주셨다니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

마노아 2006-11-0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번에 가네시로 카즈키 책들 표지 디자인 다 바꿨는데, 하나같이 맘에 안 들어요ㅡ.ㅡ;;;;

뷰리풀말미잘 2006-11-0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뭐랄까.. 뭔가 대중적인 컨셉트로 가 볼까 했으나 실패한듯한 인상이에요. ^^ 가네시로 카즈키 책이라곤 달랑 GO하나 밖에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여기서 뜬금없는 질문. 마노아님 혹시 '플라이 대디 플라이' 읽어보셨어요? 볼 만 하든가요?

페일레스 2006-11-10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치는 그런 디자인이 아예 전통이 돼 버려서 오히려 어떤 '포쓰'가 풍겨나오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싫어하진 않습니다. 뭐 열린책들 좋구요. 민음사 보르헤스 전집은 처음 봤을 때 '어? 이게 뭐지? -_-' 했는데 은근히 볼수록 정드는 표지더라구요. 낄낄. 가네시로 가즈키 책들은 일본 원서 표지와 똑같이 디자인을 바꿨는데, 저는 좋아합니다. 좀 그런 맛이 있어야죠. 김영하와 박민규 문제는... 둘 다 던져버리겠습니다 -_-;

마노아 2006-11-1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이 대디 플라이 재밌었어요. 스피드보다 나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제일 처음에 접한 레벌루션 넘버 쓰리가 가장 좋았고, 그 다음에 플라이, 그 다음에 고우~ 순서예요^^ 번역된 것은 다 본 것 같아요. ^^
페일레스님, 일본 원서 표지가 그래요? 그쪽 취향인가? 하핫, 페일레스님의 취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어요^^

조선인 2006-11-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차라리 디자인 없이 제목만 쓰던 때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해요. *^^*

뷰리풀말미잘 2006-11-1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님의 취향은 너무나도 자비로우십니다. ^^ 가네시로 카즈키책이 원서 표지와 디자인을 같게 바꾼것이군요. 어쩐지 니뽄삘이지 싶었습니다. 간만에 뵙네요. 어째 기체후일향만강하신지요. ^^

마노아님/ 왜 이준기나오는 영화로도 개봉했었잖아요 보고싶었는데 너무 일찍 내리는 바람에 아직 못 봤다죠. 저는 GO요거 무척 재미있게 봤는데 등수가 많이 밀리네요! 기대가 마구 밀려옵니다. 후후..

조선인/ 아, 저도 말씀하신 스타일 좋아합니다. 그것도 디자인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위에 보르헤스 전집 디자인 하신 박상순씨가 종종 활자와 아주 기본적인 내용들로 디자인을 하기도 하는데 제법 심플한 맛이 있더라구요. 아마 마음에 드실거에요.

이를테면 요런거 말이죠. ^^


조선인 2006-11-1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말미잘님, 제가 좋아하는 책을 딱 짚으셨네요. *^^*

뷰리풀말미잘 2006-11-1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

bee 2006-11-1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시로 가즈키 표지는 <레볼루션 No.3> 한 권만 빼고는 다 북폴리오에서 새로 한 디자인일걸요. 책날개에 일러스트레이터 이름도 나와 있습니다. 지나가다 괜히 훈수. ^^;;

뷰리풀말미잘 2006-11-12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nboil님/ 반갑습니다. ^^ 북폴리오 디자인이었군요. 자주 훈수 좀 둬 주세요.

LAYLA 2006-11-1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열린책들 전집 중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도 이뻤지요. 그리고 지금 판 말고 예전 69나 GO 도 ..^^ 근데 바뀐건 제맘에 썩 들지 않더라구요.

뷰리풀말미잘 2006-11-1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말씀하신 책들 모두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네요. ^^ 표지는 물론이고 내용도 정말 멋지구리한 것들이지요.

별빛속에 2007-01-2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너무 잼나서 한참을 웃었네요. 대략난감 표지들은 정말;;;
저도 추천 누르고 갑니당. ^ ^
앗, 이제보니 이 글.. 제 생일에 쓰신 거군요! 괜시리 친근감이;; 쿨럭;; ㅎㅎㅎ

뷰리풀말미잘 2007-09-20 15:34   좋아요 0 | URL
^^

산책 2008-07-22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책 구입할때 표지디자인 중요하게 고려하는 편이어서요. 디자인이 많이 허접하면 책 읽는 재미가 조금은 반감되는 것 같기도... 디자인자체가 조악한건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데 어떤책은 표지디자이너가 책을 읽고서 디자인을 한건지 의심될 정도로 책 내용과 완전 딴판인 경우가 있어요. 그럼 진짜 표지디자이너 이름을 한번 찾아보고 밥은 먹고다니나?생각하게 될때가 있어요ㅋㅋㅋ

뷰리풀말미잘 2008-07-31 13:0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책의 내용과 표지디자인이 조화로우면 금상첨화겠지요. 표지디자인의 중요한 요소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표지디자인을 보고 참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화랑대 역 벤치에 앉아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무가지 신문을 읽고 있는데 다리께에 뭔가 야릇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처음엔 가방끈이나 파리 혹은 그에 준하는 쓸데없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하고 신문 읽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점점 느낌이 진해진다. 읽던 신문을 살짝 들어서 확인해보니 웬 낮 모르는 손이 내 허벅지께를 마음껏 주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지조와 절개로 버텨온 한평생이 아니던가! 그 찬란한 금자탑에 빠직 금가는 소리를 어찌 그냥 듣고만 있을 수 있으랴.. 결심했다. 얇은 종이 하이얀 신문 고이 접어 네놈 콧구멍에 쑤셔 드릴레라.. 그리고 신문을 확 접어드는 순간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시츄에이션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아니, 최소한 환갑은 훌쩍 넘겼을 것 같은 쪼글쪼글 할머니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젊은 총각 다리를 더듬고 있는 거냔 말이다. 그것도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손가락을 푸욱 넣어서.. 혹시 로리타 컴플렉스 변태 할머닌가? 관상을 보아하니 별로 색을 탐할 것 같지도 않게 생겼다. 그래서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할머니?"

 

할머니 왈

 

"거, 참 시원하게도 뚫어놨수" 

 

"아니, 할머니! 그게 뚫렸든 말았든 저도 순결은 지키고 살아야지요. 멀쩡한 총각 다리를 그렇게 함부로 더듬으시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할머니, 호호 웃는다.

 

"아니.. 그런게 아니고 왜 이렇게 멀쩡한 옷에 구멍을 뚫어놨나 궁금해서 그랬지"

 

그제서야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단지 '궁금'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아, 그거야 폼나잖아요. 시원하기도 하고"

 

할머니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마침 지나가는 처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그게 폼이야? 그럼 총각은 저기 저 훌렁 벗고 댕기는 처녀 보면 어떤 생각 들어?"

 

탱크탑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자다.

 

"시원해 보이는데요?"

 

"아무 생각 안 들어?"

 

"다들 그러니까요. 저런 차림새를 볼 때마다 생각을 하면 골치아파서 어떻게 살게요?"

 

"그래도 어른들이 보기엔 그게 아닌거야. 천박해 보이고"

 

"음.. 그거야 할머니도 마찬가지죠. 할머니가 옛날에 한복에 두루마기 입던 시절로 돌아가서 그 옷차림으로 돌아다니시면 어른신네들한테 욕 깨나 얻어먹을걸요? 그때야 한복에 두루마기 입는게 보통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지금 할머니 옷차림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서로 피해주는 거 아니면 조금씩 이해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그, 그런가?"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선언하듯 대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럼요, 또 제가 나이를 먹으면 제 또래의 사람들은 다 찢어진 청바지에 짧은 치마 입고 앉아서 우주복 같은 옷 입고 다니는 꼬마들한테 예의없다고 말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이 바닥이 다 그런거 아니겠어요?"

 

양아치의 요설에 변태 로리컴 할머니는 지하철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눈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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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0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전드라마나 한뼘 드라마 같아요^^

LAYLA 2006-09-07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상황에서 할머니께 또박또박 자기 생각 말씀하시는 님의 모습...^^ 호호호
전 상대방이랑 저랑 다르면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고 거기다가 상대방이 저보다 높은계급, 연장자일 경우 더더욱 조용히 있는 편이거든요. 약간의 배려(당신을 민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말 섞어서 더 귀찮아지기 싫은 마음...^^
얼마전에 영어회화 교재를 들고 다녔더니 식당에서 아저씨가 "자손이 누구냐?"
'JASON'S TEXTBOOK'이거 보고요........제가 좋아하는 달콤한 발음의 제이슨이 자손이 되어버렸어요. 그냥 웃으며 넘어갔죠. 아저씨는 저에게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시며 인터넷으로 영어공부를 하라고 당부해주셨답니다...(왜 이야기가 여기까지..-.-;;)

치니 2006-09-0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티풀말미잘님은 , 말만 양아치지, 너무 자상한 청년이시네요 ~

Mephistopheles 2006-09-0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혹시 모릅니다...그 할머니 쇼타콘 할머니로써 말마질님 전철 타고 사라지신
후 품에서 종이 꺼네 바를 정자로 표시하면서 오늘도 한x~! 하면서 체크할지도..^^

건우와 연우 2006-09-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두분다 쿨하세요..^^

페일레스 2006-09-0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느므느므 재미있으셔요 낄낄 -_-)b

뷰리풀말미잘 2006-09-07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한뼘' 드라마가 뭐에요? 호호.. 무식해서리..
layla/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피 먹다 키보드에 쏱을 뻔 했습니다. 정말이지 "자손이 누구"일까요.
제가 좀 병이 있어요. 중병이라죠. APDS 후천적싸가지결핍증(Acquired Polite Deficiency Syndrome)이라구요.. 말대꾸를 안 하면 혓바닥에 가시가 돋치는 증상이 발생을 한답니다.^^;;
치니/ 49, 49, 49, 이제 또 한명만 속여 넘기면 50명이군..
메피스토/ 헉! 저 당한.. 건가요? ㅠ_ㅠ
건우와 연우/ 50!
페일레스/ 마음껏 섹시함을 뽐내지도 못하게 하는 이 땅의 변태들이 저는 너무너무 미워요. 흑흑.

- 2017-05-1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헹 재미있ㄷ

뷰리풀말미잘 2017-05-18 21:13   좋아요 0 | URL
헉, 이 깊숙한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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