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멍청이들 - 일이 힘든가? 사람이 힘들지! 꼴통들 때문에 회사 가기 싫은 당신에게!
켄 로이드 지음, 임지은 옮김 / 길벗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이렇게나 짜증나는 인간을 직장에서 본다면 홧병이 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간 유형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이 익다. 이 모든 이들이 전부 우리들의 사무실에 있지는 않겠지만, 이 모든 이들이 단 한 명도 없는 사무실은 단연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나의 신경을 긁는 이들, 어쩌다 마주친 그대라면 가볍게 '쌩까면' 그만이지만, 좋으나 싫으나 이들과 늘 동고동락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학생 때가 좋았다. 아무리 싫은 친구라도, 그 친구가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서로 소 닭 보듯 생활할 수 있었는데,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상대가 아무리 싫어도 없는 듯 취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 이런 책들은 꽤 많은 편이다. 그 많은 책들 중 단연 이 책만의 장점을 꼽자면, 구체적이라는 것. 이른바 사무실의 멍청이들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묘사하였는데 너무 자세한 나머지 마치 실체를 가지고 내 앞에서 근무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가상의 상대로 인해 열이 받을 정도이다. 해결 또한 두리뭉실하지 않고, 정확하게 그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말을 제시한다.

 

한 때 출판계를 흔들었던 힐링, "괜찮아, 잘 될거야. 너의 진심을 알아줄거야. 너는 그저 묵묵히 열심히 너의 일을 하면 돼"와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도 아니고, 그 뒤를 이어 출판계를 휩쓸고 있는 독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니? 너 자신을 돌아보지? 누군가 너를 만만하게 대할 여지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니?"라고 일갈하는, 상황도 짜증나 죽겠는데 돈과 시간을 들여서 왜 내가 훈계를 들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런 류의 책도 아니여서 마음에 든다.

 

다만, 별 한 개를 아쉽게 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눈이 금방 피로해진다는 것. 사무실의 온갖 진상들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기에 읽는 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읽는 독자를 위해서 편집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책 표지는 시선을 집중시키기는 하지만, 계속 보고 싶은 표지는 아니다. 표지를 넘겨 본문으로 들어가면, 왜 이렇게 노란색이 많은지. 하이라이트를 주고 싶은 의미는 알겠는데, 오히려 본문 내용에 집중하기는 힘들게 만들었다.

 

 

1부 오! 나의 미친 상사!
멀티태스킹을 가장한 주의력결핍장애 “어디서 불이 났다고?”

▶"지금 바쁘신가 본데, 나중에 다시 올까요?"

★그리고 이 주의력결핍장애자들이 당신의 보고를 제대로 접수했다는 증거를 메일 등으로 확실하게 받아둬라.
침묵애호증 “……”

▶"어떠셨어요?"
보고서난독증 “보고서는 됐고, 말로 설명해봐요”

▶지피지기 백전백승! 일대일 맞춤형 보고서를 작성하라

★물론 상사가 업무상 얼마나 저능한지에 따라 그가 이해할 때까지 보고서 풀이를 도와줘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설픈 편집자 지망생 “내가 수정한 문서만이 진리!”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줄여드리겠습니다"

★단, 중요한 문서는 상사가 꼭 체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멍청이들이 슬픈 이유는 중요한 보고에는 침묵하고, 사소한 보고에는 목숨을 건다는 것임을 잊지 말자. 
프락치 양성형 “나의 스파이가 돼주게”

▶"소규모 점심 회식 어떨까요?"
어설픈 궁예질 “옴마니반메홈, 니 속마음이 보인다네!”

▶"그런 제안은 관심도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한 번도 이직을 제안받은 바 없다는 상사의 발언은 상사의 리더십, 대인관계, 업무능력 등에 진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상사가 그런 전화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까닭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상사가 그날 이후 당신을 탐탁지 않게 대한다면 헤드헌터들과 새로운 대화를 가져보는 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아주 가끔 지킬이 되는 하이드 “내가 언제 변하는지 나도 몰라”

▶이럴 때는 그냥 닥치고 감사하자
모욕과 돌직구 혼동형 “그런 바보 같은 제안을 왜 하는 겁니까?”

▶때로는 그냥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쩌면 당신이 회의에서 제안한, 상사가 '바보 같다'고 한 그 제안을 활용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특히 그 제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나, 해결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말이다. 상사가 생각을 바꿔서 당신의 '바보 같은 제안'을 시도해보기로 결정하고 그 아이디어가 효력을 보인다면 최후의 승자는 당신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넘겨짚지는 마라. 아, 또 하나 고민해봐야 할 점! 혹시 당신, 진짜 바보 같은 제안을 한 것은 아닌가?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고성방가형 “나보다 목소리 큰 놈 나와!”

▶상사를 진정시키려고 하지 마라
업무폭탄 투하자 “업무가 많아야 성장하는 거라네!”

▶"업무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주세요" 
무식한 업무방관자 “알아서 하세요”

▶'예스'라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연속해서 던져라
약점사냥꾼 “약점이 드러날 때까지 후벼판다”

▶멍청이일수록 예측 가능한 법, 머릿속에서 예상 플레이를!
적반하장형 “내 잘못은 다 당신 탓이야!”

▶분노는 감추고, 눈을 똑바로 보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타인에 대한 불만이 자신의 미심쩍은 행동을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다. 상사가 당신의 책상 앞에 나타나면 그가 화를 냈던 이유를 염두에 두고 처신하라. 상사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서류를 훔쳐보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당신도 그랬으리라 짐작하면서 화를 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상사가 당신의 책상으로 다가온다면 당신의 서류를 훔쳐보려 할지도 모른다.
특정인 무시형 “내 눈에는 네가 안 보여”

▶"이번 주 안에 회의를 한 번 더 할까요?"
회의와 자기자랑 혼동 “내 얘기만 들어도 여러분은 영광”

▶이럴 때일수록 칭찬을 아끼지 마라 
잘 듣고 있어도 트집 “회의에서 왜 한마디도 안 하죠?”

▶모욕인지 장난인지, 속뜻이 뭔지부터 파악하자

★대부분 사람들은 회의에서 자기 이야기만 내뱉는 사람보다는 조용히 듣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멍청한 관리자가 회의가 끝난 후 내뱉는 비정상적인 모욕적인 말도 마찬가지다.
전임자 험담형 “이건 모두 전임자의 잘못입니다”

▶자질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를 계속 뿌리게 냅둬라
독배를 남기고 떠난 상사 “떠나면서 저격의 화살을!”

▶우는소리 대신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라 
공개재판애호증 “네 실수를 모두에게 알려주마!”

▶역지사지해보세요, 좀! 
키보드워리어들 “이메일은 나의 전투장”

▶드디어 그 위 상사나 인사부장을 찾아가야 할 때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앉아 있을 때 분노나 폭발, 적대감을 덜 느낀다. 그렇지만 상사가 그저 앉아만 있거나 사과가 아니라 다른 말을 한다면, 더이상 욕설이 적힌 이메일은 받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라.
상습 불쾌감 유발자 “그렇게 예민해서 무슨 일을 하겠어?”

▶메일을 출력해서 직접 찾아가라 
난독증 유발자 “괴발개발도 이 정도면 예술이야”

▶계속 보면 상사의 옹알이를 알아들을 수 있다 
1순위집착증 “왜 내가 제일 먼저가 아니야?”

[CASE1]수신인 목록 상위에 내 이름이 없다고?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줘라

[CASE2]좋은 건 내가 먼저! 

▶사소한 일로 상사에게 덤비지는 말자
팀워크 신봉자 “팀플레이면 못할 일이 없다니깐!”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다각도로 제안을 한다 

★상사가 제안한 팀은 세 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룹 역동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팀원이 세 명인 경우 팀원 간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크다. 기본적으로 세 명의 그룹은 2대1 시나리오로 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의 상사가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팀이 조직에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팀은 반사작용(reflex)이 아니라 현실(reality)에 기반을 두고 결정해야 한다.
죄책감 유발자 “당신을 믿었는데, 이게 당신의 최선인가요?”

▶동료들과 함께 상사를 만나라
자동비판기계 “어떤 보고서든, 내 대답은 무조건 ‘노’예요”

▶"감명을 준 사례를 알려주세요!" 
마음냉증 환자 “당신이 뭘 해도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

▶증거로 뒷받침된 문서를 지참하라 
냅둬 신봉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놔둬요”

▶시험기간, 혹은 브레인스토밍 시간을 제안하라 
귀 얇은 찌질이 “누가 그러던데?”

▶자료를 준비해 재미팅을 요구한다
그놈의 마무리 “제발, 마무리는 내 꺼야”

▶상사가 신뢰하는 이의 주장으로 마무리한다 
시간약속 파괴자 “내 회의의 시간은 내가 정한다”

▶시계를 10분 당겨두자 
낭독애호증 “글자란 글자는 다 읽어버릴 거야”

▶"교육 자료를 미리 보내주세요"
막무가내 인정집착증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니 그렇게 합시다”

▶상사에게 인정(認定)을 베푸는 인정(人情)을 발휘하라!

★직원을 인정해줄 수 있는 가장 쉽고 합리적인 타이밍 중 하나는 직원의 입사일이다. 입사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크다.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보다 직장에서 더 오랜 시간 활동하기 떄문이다. 수면시간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물론 수면과 직장생활을 병합하는 능력 있는 멍청이도 있지만, 여기서 다루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쩄건 직원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덩어리를 생각해본다면, 직원의 입사 기념일을 알아주는 작은 노력은 큰 동기부여 요소가 될 수 있다.
선별적 기억상실증 “내가 그런 약속을 했다고요?”

▶향후 기회를 보장받고, 그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둬라

★동시에, 이 멍청이의 행동을 좀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상사가 승진에 관해 어떤 식으로든 약속을 하고는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오늘날 관리자들이 직원의 향후 고용상 처우에 관해 직원에게 극도의 행복감을 선사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일종의 계약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는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기겠지만, 계속해서 이런 행동을 보일 경우 상사는 다른 종류의 주장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적 주장 말이다.
실수 떠넘기기 “내 잘못이지만, 공식적으로는 당신 잘못이에요”

[CASE1]마감이 늦어진 원인을 제공한 상사

▶프로젝트를 함께 복기하라! 상사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CASE2]잘못을 덮어씌우는 것도 모자라 징계까지

▶시말서는 함부로 작성하면 안된다
부자과시증 “니네들은 이런 거 없지?”

▶쇼가 시작되면 업무를 핑계 대고 도망친다

2부 저 웬수 같은 동료
척척박사증후군 “내가 다 아는데, 내가 다 해봤는데…”

▶이 구역의 리더에게 척척박사로 인한 손실을 알려라!

★그런데 만약 상사 본인이 저런 척척박사라면? 최악이다. 부디 상사가 상사들끼리 하는 회의에서도 척척박사 짓을 지속해서 조직의 눈 밖에 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떄로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도 있는 법이다.
사무실의 고성방가도 처벌되나요? “와글와글 @#$!()#)K$)JDN<WWO#($HK!!!”

▶진정 이 회사에 계속 머물고 싶은가?
회사에 놀러오는 불청객들 “바쁘세요?”

▶해답1: "무슨 일이시죠?"

▶해답2: "이따가 제가 당신 자리로 갈게요" 
가십집착증 “내가 누구 얘길 들었는데 말이죠”

▶'반응'이라는 보상을 주지 마라 
뉴비를 저격하는 올드보이 “새로 온 친구, 여긴 끔찍한 곳이야”

▶정말 끔찍한 존재가 직원인지 회사인지, 좀더 기다려보자 
악명이 무성한 이직자 “전 직장에서 이랬다더라”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
상습 회의 지각생 “회의는 늦게 가야 제맛이지”

▶시간이 됐으면 회의를 시작하라, 그리고 멈추지 마라 
언어폭력자 “당신의 실수는 나의 즐거움!”

[CASE1]회의에서 인신공격

▶'진실'이라는 덫을 놓아라

[CASE2]꼬투리 하나 잡으면 죽도록 놀려대는 멍청이

▶"이젠 지겨울 때도 됐는데요, 안 그래요?"
상사인 줄 착각하는 돌아이 “이 구역의 상사가 나인가 하노라”

▶"제안 감사요! 그런데 저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애정표현을 가장한 성희롱 “자기,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문제를 공론화하기 전에 불쾌감 표시와 증인을 확보하라 
뒤통수치기 달인 “당신의 실수는 널리널리 알려드릴게요”

▶"실수를 지적해붜서 고마워요!"
뇌물요구자 “맨입으로 그 일을 해달라고요?”

▶"사실 난 조금 걱정되는걸요"
퇴직자 짓밟기 “난 책임 없어, 모든 잘못은 퇴직자의 몫”

▶중견간부를 만나 상의한다

★이전 직원을 모욕하는 멍텅구리는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 자신 역시 똑같은 경멸의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멍청이에 대한 경멸이 부정확하거나 부당하다고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업무처리 공유형 “내가 지름길을 알려줄게요”

▶먼저 동료의 의중을 파악하고, 상사와 의논한다

내 책상의 비품 강탈자들 “비품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에요”

▶이럴 때는 상사에게 알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3부 혈압 올리는 부하직원
질문성애자 “이것도 저것도 다 대답해주세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정보를 줄 수 없어요"

★사실 부하직원은 상사와 동료에 비해 처리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하고 싶은 말과 개선방안에 대해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멍청한 부하직원들의 멍청한 짓거리는 직접적인 피드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타들어가는 당신 속에 위로를!
네버엔딩 답변 중독자 “그것에 대한 답은 이러이러하고요, 또…”

▶진짜 물어볼 직원이 그 사람밖에 없나?
정보은폐형 “걱정 마세요”

▶부하직원이 제공하는 정보의 양은 상사가 정하는 것!

★그렇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자동으로 빨간 경고깃발을 들어올릴 필요는 없다. 수년간 함께 일한 직원과 상사의 관계라면, 지금껏 그랬듯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함께 지낸 시간을 반추해보았을 때, 믿을 수 있는 직원이라면 이런 말로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코스프레 “기준이 높은 부장님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직원을 만나서 엄중한 경고 조치를 취한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직원이 당신과 당신의 업무를 비하하게 내버려둔다면, 다른 직원들에게 그런 말을 허용하고 심지어 격려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그 직원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이런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면 그 직원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일하는 직원은 당신의 부하직원으로서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꼭 짚어주어야 한다.
칭찬구걸형 “제가 잘했죠, 네? 칭찬해주세요, 네?”

▶칭찬을 구걸하지 않을 때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다 
비판을 가장한 불복종 “에이, 과장님, 그게 아니죠”

▶묵과할 수 없는 행동이 발생한 바로 그 순간 피드백을!
등에 비수를 꽂는 배신자 “권력만 얻을 수 있다면 그쯤이야”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공식적인 제재가 있을 겁니다" 
권력게임을 노린 업무 강탈자 “팀장님 일을 돕고 싶었을 뿐이에요”

▶"추가 업무에 관심이 있다면 내 승인을 받아요" 
염불보다 잿밥 관심형 뉴비 “이것도 불만이고, 저것도 별로고, 그것도 싫고”

▶"회사에서 신뢰를 얻고 좋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가요?" 
혜안을 가졌다 착각하는 오지라퍼 “이 문제는 말이죠”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은 상사가 지시하는 것이다
구구절절한 이메일러 “나는 메일을 끝도 없이 길게, 자주 보낼 수 있어요”

▶"메일을 소리내서 읽어보세요" 
오리발 장착형 “이건 제가 한 거 아니고, 그건 제 탓 아니고…”

▶'예스'나 '노'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은 피하라

★무개념의 굴레에서 직원을 구출하려는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실수와 남 탓으로 직장을 진흙탕으로 만든다면, 마지막 제안만이 남았다. 아마도 진정한 실수는 직원을 이곳에서 계속 근무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종결론을 이렇게 내렸다면 이제 직원이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가족기업의 어리광쟁이 “여기 사장님이 우리 삼촌이에요”

▶"학교가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인턴이 아니라 직원으로 입사한 후에도 이런 식으로 어리광을 부리고 업무를 떠넘기려고 한다면? 대응방식은 똑같다. "다른 직원들이 사장님 조카 분의 업무방식을 사장님이 용인한 것으로 오해할까 걱정됩니다. 스스로 해낸다면 조카 분의 성장에 큰 경험이 될 텐데 말이죠."

4부 면접장의 머저리들
네버엔딩 면접관 “5차 면접이 잡혔습니다”

[CASE1]다섯 번째 인터뷰가 과연 끝일까?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CASE2]세 번이나 인터뷰하고 '다른 대책 간구 중'?

▶차라리 운이 좋았다, 다른 회사를 찾아보라
번갯불에 콩 볶거나, 아예 안 볶는 면접관 “인터뷰는 10분도 길죠”

[CASE1]인사 몇 마디 나누고 인터뷰 끝?

▶인사부장, 혹은 사장에게 메일을 보내라

[CASE2]기다리라고만 하고 안 나타난 면접관

▶이걸 SNS에서 확 까발려?
선입견 맹신형 “자주 이직했다면 문제 있는 사람이야”

▶팩트로만 말하자고 설득하라 
추천서 맹신형 “추천서가 이렇게 완벽한데, 뭘 더 보나?”

▶"평판조회는 필수과정인데요"
함량미달 지인 들이밀기 “내 친구가 그 자리에 딱이에요”

▶상사에게 이력서를 직접 살펴봐달라고 부탁한다 
도를 넘은 사전조사 “개인적인 걸 묻는 게 왜 문제야?”

▶입사 전 질문은 직무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면접관 스토커 “저는 면접관님의 모든 것을 압니다”

▶"뒤로 돌아 나가세요" 
과도한 눈싸움 집착형 “내가 적임자예요, 내 눈을 보시라니까요!”

▶다중면접을 한 번 더 진행해보자 
분노조절장애자 “저도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분노를 유발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거짓말쟁이 지원자 “속이긴 했지만, 진심은 알아주세요”

[CASE1]유령 직업 기재하기

▶이력서에 쓰고 싶은 그 사람이 되어라

[CASE2]대학 졸업장이 있다는 거짓말

▶속임수를 쓴 직원과 같이 일하기는 힘들다
★학력을 속여서 회사 문턱을 넘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탈락보다 더 쓴 결과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라. 졸업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이미 학위를 받은 듯 착각하는 지원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우선 졸업부터 하라는 것이다. 거짓말로 얻어낸 직장은 결코 천국이 될 수 없다.
심난한 못난이 지원자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몰라요”

[CASE1]구구절절 길디긴 커버레터

▶커버레터가 이력서보다 길어서는 안된다

[CASE2]과다한 정보 제공자

▶무조건 던져버리지는 말고, 핵심만 훑어보자

[CASE3]정보를 너무 제공 안 하는 지원자

▶이력서는 반드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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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미국 소도시 여행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난 저자가 영국으로 건너간 뒤, 중년이 되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일주한 후에 쓴 글이다.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책일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도 2년 전에 먼저 나온 책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보다 1년 늦게 출판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우리 나라에 8종이 번역되었다.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미국의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넘어간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태어난 미국이라는 나라를 전부 돌아다니며 쓴 책이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횡단기>이며, 이후에 20년 전 고교 동장 가츠와 다녀온 유럽을 20년만에 혼자 다녀오는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이다. 그리고 20년간의 영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영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한 후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을 썼고, 미국으로 돌아온 후 바로 그 카츠와 함께 애팔래치아 일주를 하고 나서 <나를 부르는 숲>을 썼다. 그 후 20년만에 돌아온 미국이 자신이 떠날 때와 너무나 달라져 있는 것으로 인해 당황해하며, 미국 특유의 문화에 대해 날카롭게 묘사한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을 썼고, 이후 호주를 여행하며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국제구호단체 CARE의 제안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빌 브라이슨의 아프리카 다이어리>를 썼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책을 썼고, 그 책은 우리 나라에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으로 출판되었다가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산책>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책 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이며, 내가 읽는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저렇게 죽 늘어놓고 보니, 빌 브라이슨도 나이가 먹는 탓인지, 젊었을 때의 책의 경우에는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글감을 비틀어대는 반면,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고 나서 쓴 책들에서는 비틀기보다는 간질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어떤 여행책을 읽든 이 책이 빌 브라이슨의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빌 브라이슨의 글 특유의 촌철살인과 유머는 여전하다.

 

I. 동부로 가다

 

1. 나는 아이오와 주 디모인 출신이다. 누군가는 그래야 했으니까. 디모인 출신이라면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름이 대충 바비쯤 되는 디모인 아가씨와 같이 디모인에 자리를 잡고 파이어스톤 타이어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디모인에서 살든지, 아니면 청소년기 내내 무슨 이런 쓰레기 하치장 같은 촌이 다 있냐고 동네를 뜨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노라 투덜댄 다음에 바비라는 디모인 아가씨와 같이 디모인에 자리를 잡고 파이서스톤 타이어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평생을 죽을 때까지 디모인에서 살든지.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땅으로 돌아가 과장하기 좋아하는 작가들이 '재발견 여행'이라고 부르길 좋아하는 그런 걸 하고 싶었던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 데는 이런 괴롭고 별난 배경이 작용했다. 거의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다른 대륙에서 중년을 맞이했고, 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시면서 나의 한 부분까지 같이 가져가셨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에, 나는 조용히 나를 압도하는 향수에 사로잡혔다. 나는 어린 시절의 마술 같은 곳에, 매키낙 섬, 로키 산맥, 게티즈버그 등지에 다시 가 보고 싶었고, 이들이 내 기억처럼 지금도 근사하게 남아 있는지 보고 싶었다. 반딧불이도 보고, 강렬한 매미 소리도 듣고 싶었다. 저 뜨겁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무더위 속에 몰입하고 싶었다. 줄줄 흐르는 땀은 당신의 속옷을 온몸의 구멍과 틈 속으로(이를테면 엉덩이랄지) 쑤셔 넣은 다음 쫙 달라붙은 쫄쫄이로 만들어 버리고, 온화한 성품의 사내들마저도 술집에서 권총을 꺼내 총성으로 밤을 밝히게 만드는 8월의 날씨 속에 대책 없이 몰입하고 싶었다. 니하이 콜라와 버마 셰이브 면도 크림이 그려진 광고 표지판을 찾아보고, 야구 경기장에 가고, 대리석 상판을 깐 탄산 음료수대에 앉아보고, 영화 속에서 디애나 더빈과 미키 루니(각각 북미의 유명 여자배우와 남자배우)가 살았을 것 같은 작은 마을들을 차로 다녀보고 싶었다. 여행하고 싶었다. 미국을 보고 싶었다. 집에 오고 싶었다.

 

2. 나는 오스카루사, 프레몬트, 헤드릭, 마틴스버그를 지나 동쪽으로 계속 갔다. 이름들은 친숙했지만 그 타운들에 얽힌 어린 추억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엔 여기까지 오면 나는 대개 너무 지루해서 거의 기절 상태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선 15초 간격으로 소릴 질러댔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언제 도착해요? 심심해요. 토할 거 같아요. 얼마나 더 가야 돼요? 언제 도착해요?" 캐폭 부근 도로의 커브가 희미하게 기억났다. 우리는 거기서 폭설을 만나 네 시간 동안 발이 묶인 채 제설차량이 오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토하고 싶다고 해서 차를 세웠던 곳들도 눈에 들어왔다. 누나는 마틴스버그의 주유소에서는 그야말로 차에서 굴러 떨어져서 주유원의 발목을 향해 아낌없이 먹은 걸 확인해주었다.(갑작스러운 토사물 세례에 화들짝 놀란 그 주유소 직원이 어찌나 춤을 추던지!)

 

3. 그리고 이제 나는 벌써 일리노이에 들어섰다. 어딜 봐도 옥수수뿐이며 지루한 광경이다. 머릿속에서 어린애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도착해? 심심해. 집에 가자. 언제 도착한다고?"

 

4. 나는 아침에 퀸시에서 미시시피 강을 건넜다. 강은 내 기억만큼 크거나 장엄하지는 않았다. 다소 웅장하고 위압적이긴 했다. 강을 건너는 데는 몇 분이 걸렸다. 그런데 어쩐지 무미건조하고 밋밋했다. 날씨도 구질구질했으니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주리는 일리노이와 똑같았고, 일리노이는 아이오와하고 똑같았다. 유일한 차이라면 차량 번호판의 색깔뿐.

 

5. 켄터키는 남부 일리노이와 비슷했다. 산이 많고 햇살이 좋고 매혹적이었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집들은 북부만큼 단정하거나 풍요로워 보이지 않았다. 숲이 우거진 계곡들과 굽이치는 개울을 가로지른 철교들, 그리고 노면에 붙어 떡이 된 짐승들이 많았다. 계곡마다 작고 하얀 침례교회가 있고 도로변에는 이제 '예수쟁이' 지대에 들어섰다는 걸 알리는 표지판이 즐비했다. "예수가 구원이다. 주를 찬양하라. 그리스도는 왕이시니."

켄터키 주를 빠져나오면서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켄터키 주는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 주 경계 쪽은 폭이 고작 60여 킬로미터에 불과했다. 미국식 여행 시간을 기준으로 보자면 진정 눈 깜짝할 새에 나는 테네시 주에 들어와 있었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주를 하나 떨어내는 일은 흔치 않은데, 그나마 테네시 주마저 머지않아 작별이다. 테네시는 모양이 묘하게 생겨서, 가로로 길쭉한 콘크리트 블록 같다고나 할까. 동서로는 길이가 800킬로미터나 되는데 남북으로는 160킬로미터가 고작이다. 경치는 켄터키나 일리노이와 거의 비슷해서 강과 산, 종교적인 열성이 찬란한 부정형(不定形)의 농장지대였는데, 잭슨에서 버거킹에 들렀을 때는 날이 너무 더워서 놀랐다. 길 건너편에 있는 드라이브인 은행의 간판에 따르면 기온이 28도가 넘었다. 그날 아침 카본데일의 기온과 거의 10도 차이가 나는 셈이다. 나는 여전히 '예수쟁이' 지대의 심장부에 있었다. 옆에 있는 교회 마당의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나님(아무래도 뒤에 '맙소사'가 빠진 게 분명하다)이 답이다."(답이라, 그렇다면 질문은 물론 이거겠다. '망치질 하다가 엄지를 찧었을 때 하는 말은?') 버거킹에 들어갔다. 여종업원이 물었다. "어뜨케 돠 드리까이?" 나는 다른 나라에 와 있었다.

 

6. 나는 테네시 주 그랜드 교차로 바로 남쪽에서 미시시피와 이어지는 주경계선을 넘었다. 고속도로변의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시시피에 오신 것을 환영하빈다. 우리는 아무나 쏴죽입니다."아, 당연히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최남부지방(Deep South, 조지아, 앨러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주 등)에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들어설 때부터 예감이 불길했다. <이지 라이더><밤의 열기 속으로><폭력 탈옥><도전><서바이벌 게임>등 남부를 배경으로 한 그 모든 영화들이 그들을 살인자에 근친상간을 일삼는 촌무지렁이 극우 보수로 묘사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곳은 진정 다른 나라다.

 

7. 콜럼버스는 주 경계선 바로 안쪽에 있어 그곳을 떠난 지 20분 만에 앨라배마 주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이설스빌과 코랄파이어와 리폼을 거쳐 더스컬루사로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곁의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앨라배마를 아름답게 가꿉디다."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좋았어, 그럽디다."

 

8. 사바나는 매혹적인 도시여서 나도 모르게 몇 시간이나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유서 깊은 건축물이 천여 개나 되고, 그중 상당수가 아직도 가옥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내가 가본 도시 중에 뉴욕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도시에서 실제로 '사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길에서 공놀이를 하고 제 집 현관에서 줄넘기를 하는 광경은 도시에 얼마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가. 나는 오글소프 애비뉴의 조약돌이 깔린 인도를 따라 콜로니얼 공원묘지까지 산보를 나갔다. 묘지에는 허물어져가는 기념비들과 조지아 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유명인사들의 묘비가 가득이었다. 조지아 주 최초의 주 의회 의장 아치벌드 블록, '선도적 사업가' 제임스 하버섐, 독립선언문의 서명자 중 한 사람으로 미국에서 유명한 버튼 귀네트 등. 버튼 귀네트는 또한 식민 역사에서 가장 우스운 이름을 가진 인물로도 유명하다. 사바나 주민들은 잠시 부주의하던 순간에 옛 버튼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설명에 따르면 그는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묻혀 있을 수도 있고, 모퉁이 어딘가에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뚱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까 종일 돌아다니면서 버튼을 밟더라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9.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지루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26번 주간고속도로를 탔다. 이 도로는 나른한 담배밭과 연어색 토양뿐인 단조로운 풍경을 사이로 300킬로미터가 넘는 긴 대각선으로 주를 가로지른다. 《자동차 여행 가이드》에 따르면 이제부터는 최남부가 아니라 중부 대서양 지역의 주들이란다. 그런데 더위와 눈부신 햇살은 남부의 것이며 주유소며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억양도 남부 말씨였다. 라디오의 아나운서들조차 억양은 물론 태도까지 남부인의 색채가 완연했다. 한 뉴스에 따르면 스파르탄버그의 경찰이 '백인 여자'를 강간한 두 흑인 남자를 찾고 있었다. 남부가 아닌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노스캐롤라이나와의 경계선에 가까워지자 마치 무슨 포고령이라도 내린 듯이 밋밋한 경치가 갑자기 끝났다. 갑자기 시골 풍경이 나타나더니 장엄한 곡선을 그리며 월계수와 철쭉과 종려나무 따위 낮은 덤불이 잔뜩 펼쳐졌다. 산등성마루마다 블루리지(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이다)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풍경이 펼쳐졌다. 애팔래치아는 앨라배마에서 캐나다까지 3360여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데, 히말라야보다 더 높았던 적이 있었다가(이 말은 언젠가 성냥갑 껍데기에서 읽었는데 언제고 써먹으리라, 몇 년 동안 벼르던 참이다) 지금은 작고 둥글둥글해졌다. 극적이라기보다는 어딘지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그 기나긴 능선을 지나는 동안 애팔래치아는 애더론대크스, 포코노스, 캣스킬스, 앨러게이니즈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바뀐다.

 

10. 미국에서 백인들이 가난하기란 진짜 힘든 일이다. 물론 여기서 가난이란 미국인의 가난이며 백인들의 가난이니 다른 곳의 가난과는 다르다. 터스키지의 가난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린든 존슨(미국의 36대 대통령)이 1964년에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그 초점이 애팔래치아였던 것도 이곳이 너무 가난해서가 아니라 너무 백인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냉소 섞인 지적도 있엇다.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시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 중 40퍼센트는 차가 있고, 그 가운데 3분의 1은 새 차였다. 1964년이면 잉글랜드에 살던 내 미래의 장인에겐 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아직도 첫 차 장만이 요원한 일이었고, 장인은 지금까지도 새 차는 한번도 사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가난하다고 하거나 크리스마스에 뜨개실이나 공짜 밀가루를 보내준 일은 없다. 그렇다 해도 미국의 기준으로 볼 때 지금 내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판잣집들이 단연코 허름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마당에 위성 안테나도 웨버 바비큐 그릴도 없고, 진입로에 스테이션왜건도 없었다. 감히 말하자면 가련한 그들의 부엌에는 전자레인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미국인 기준으로는 대단히 가난한 것이다.

 

11. 기다란 젤리 모양의 언덕들과 구불구불한 도로, 단정한 농가의 풍경을 가르며 운전을 했다. 하늘엔 바다 그림에서 늘 볼 수 있는 복슬복슬한 큰 구름이 가득이었고, 스노플레이크, 팬시갭, 호스패스춰, 메도우스오브댄, 채리티 등 여러 타운의 이름도 흥미로웠다(각각 눈송이, 화려한 계곡, 말 방목장, 댄의 초원, 자선의 뜻). 버지니아 주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버지니아는 폭이 640킬로미터쯤 되는데, 도로가 하도 구불구불해서 체감 거리는 거기에 적어도 150여 킬로미터는 더해야 했다. 어쨌든 지도를 볼 때마다 티도 안 나는 거리밖에는 오지 못했다.

 

12. 워싱턴은 작은 도시처럼 느껴진다. 광역도시로 치면 워싱턴은 인구 300만 명의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고 바로 곁에 있는 볼티모어를 합하면 인구는 500만이 되지만, 워싱턴 시 자체는 인구가 63만 7000명에 불과하니 인디애나폴리스나 샌안토니오보다 더 적다. 워싱턴은 쾌적한 지방도시 느낌이 나다가도, 모퉁이만 돌면 FBI나 세계은행, IMF(국제금융기구) 등의 본부가 떡하니 눈에 들어오니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깨닫게 된다. 그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것은 백악관이다.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백화점 쇼윈도의 고급 넥타이나 속옷 따위를 구경하다가 모퉁이를 돌면 바로 그 자리에, 시내 한복판에 백악관이 있는 것이다. 쇼핑하기엔 정말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워싱턴은 예상보다 훨씬 작다.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

 

워싱턴에서 301번 고속도로를 타고 애나폴리스와 해군사관학교를 지나친 다음, 체사피크 만과 동부 메릴랜드 주를 잇는 길고 낮은 다리 위로 지나갔다. 다리가 건설된 1952년 전에만 해도 만의 동부는 수백 년 동안 고립을 즐겼다. 그 후로 사람들을 외지인들이 물밀 듯이 흘러들어와 반도를 망쳐 놓을 거라고 말해왔지만, 내 눈에 이 일대는 별로 망가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렇게 유지해준 것도 외지인들인 것 같다. 지역 주민들이 단순하고 순진무구한 믿음으로 편리할 거라 생각하는 쇼핑몰과 볼링장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것도 언제나 외지인들이다.

 

나는 체사피크 만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높은 하늘, 점점이 흩어진 농장과 이름 모를 작은 타운들에 매료된 채 낮고 습지가 많은 평지를 통과했다. 늦은 아침에는 필라델피아로 가는 길에 있던 델라웨어 주에 들어섰는데, 델라웨어는 미국의 여러 주 가운데 제일 애매한 곳이다. 한번은 델라웨어 출신의 아가씨를 만났는데 할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궁색하게 물었다. "음, 그러니까 델라웨어에서 왔다고요? 오, 대단하네요. 와우." 그러자 그녀는 얼른 언변이 더 뛰어난(그리고 얼굴도 잘생긴) 다른 남자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국에서 이십 년이나 살고 비싼 교육까지 받았으면서 당시 48개 주 중 하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에서 델라웨어가 언급되는 걸 보거나 신문에서 그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델라웨어가 배경이 된 소설을 읽어봤는지 물었고, 사람들은 대답하곤 했다. "글쎄, 한번도 없는 거 같아." 그렇게 대답하는 그들도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진 듯 보였다.

나는 델라웨어에 관해 독서를 좀 하기로 작정했다. 다음번에 델라웨어 출신 아가씨를 다시 만나며 재미있고 적절한 말을 할 수 있겠지. 혹시 알아, 그럼 그녀가 나랑 자줄지. 하지만 델라웨어에 관한 글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찾아봐도 고작 두 문단이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문장 중간에 끝났던 거 같다. 델라웨어를 지나쳐 운전하는 지금, 차가 지나가면서 우습게도 델라웨어가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투명한 비닐을 걷을수록 그림이 지워지는 아이들의 그림판에서처럼. 내 차가 지나가면서 내 뒤쪽의 거대한 투명 비닐이 걷히듯이 서서히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풍경이 펼쳐질수록 지나쳐온 경험을 지워버리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반(半) 공업지대였던 풍경과 월밍턴 표지판 몇 개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자 이미 실베스터 스탤론과 레지오넬라 병(레지오넬라균에 의한 악성 폐렴의 일종)을 배출한 필라델피아 외곽이었고, 그것이 유발한 불편한 생각 때문에 델라웨어에 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었다.

 

13.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공공 미술에 더 많은 예산(시 정부 총 예산의 1퍼센트)을 쓴다. 그런 반면 문맹률은 40퍼센트나 된다. 그는 페어마운트 공원 한가운데 있는 호화로운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가리켰다. 이곳은 도시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유는 50만 점의 소장 회화 때문이 아니라 미술관 계단이 영화 <록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전력 질주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계단만 한번 쓱 보고, 미술관 안에 들어가 그림 구경은 하지도 않고 가버린다고 한다.

 

14. 미국에서 장거리 버스란 비행기를 탈 돈이 없거나, 미국 기준으로는 바닥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을 핥을 만큼 차를 쓸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만 타는 것이다. 미국에서 차를 쓸 수 없을 정도란 플라스틱 헛간살이 바로 직전의 가난함이다. 그러므로 장거리 버스를 타는 이들은 다음 중 하나다. 정신적 결함이 있거나 정신분열이 고속으로 진행 중이거나 마약에 취한 채 무기를 소지한 위험인물이거나 갓 출소했거나 수녀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뉴욕이 무서웟다. 타임스퀘어로 걸어가는데 이런 위협이 느껴졌다. 뉴욕이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살인사건과 거리의 범죄에 대해 너무 많이 읽어서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나를 죽이지 않아줘서 고마워요"라고 쓴 카드라도 돌리고 싶었다.

 

타임스퀘어는 대단한 곳이다. 그렇게 많은 불빛과 번잡함은 독자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건물의 벽면들이 모조리 광고로 번쩍이며 물결치고 흔들린다. 전자의 바다에 폭풍이 이는 것만 같다. 돈 좀 쓰라고 유인하는 이런 거대한 전광판이 40개쯤 되는 것 같은데, 그중 둘만 빼고는 다 마이타 복사기, 캐논, 파나소닉, 소니와 같은 일본 기업이었다. 강대한 나의 고국을 대표하는 건 코닥과 펩시콜라뿐이었다. 이봐 양키들, 전쟁은 끝났어. 처량한 마음으로 나는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신나고 자극적인 도시 뉴욕에서의 하루도 그렇게 끝났다. 나는 20층 아래 스트립쇼 클럽의 외로운 인생들보다 더 나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들만큼이나 외로웠다. 아니, 이 거대하고 비정한 도시에는 나만큼이나 친구도 없고 외로운 이들이 수만 명은 될 것이었다. 얼마나 감상적인 생각인가.

"하지만 이거 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 나는 두 손과 두 발을 쫙 뻗어 사방의 벽을 한꺼번에 빡 때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15. 콜럼버스의 날 연휴가 낀 주말이어서 도로가 번잡했다. 나는 미국만큼 성공을 높이 사는 나라에서 콜럼버스를 공휴일로 경축하는 걸 늘 좀 의아하게 여겼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네 번이나 긴 여행을 하면서도, 단 한번도 그곳이 아시아가 아니라는 걸 꺠닫지도 못하고 값어치 있는 것도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탐험가들은 모두 감자랄지 담배, 나일론 스타킹처럼 흥미진진한 새 특산물을 가져왔는데 콜럼버스가 데려온 건 어리둥절해 보이는 인디언 몇 명이 전부였고, 게다가 그는 이들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이봐 친구들. 스모 한번만 해보라니까.")

하지만 콜럼버스의 최대 약점은 나중에 미국이 될 땅을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플로리다 땅을 밟은 그가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오호라, 여기는 리조트에 딱이야." 하지만 그의 여행은 전부 카리브 해와 벌레가 드글드글한 중앙아메리카 해안에서 그쳤다. 내게 묻는다면 차라리 바이킹이 미국에 훨씬 어울리는 영웅이 되었을 것 같다. 우선, 그들은 미국 땅을 진짜로 발견했다. 게다가 바이킹은 남성답고 해골바가지를 잔 삼아 술을 마시며 그 누구의 헛소리도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에 딱 어울린다.

 

나는 단풍 구경을 하고 싶어 뉴잉글랜드 지역에 빨리 들어가고 싶었다. 게다가 뉴잉글랜드의 주들은 작고 다양해서, 아름다운 주들을 포함해 다른 주들을 지날 때처럼 그렇게 지겨워 죽을 맛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뉴잉글랜드의 주들이 너무 작은 것은 맞지만(코네티컷은 횡단해봐야 128킬로미터가 고작이었고 로드아일랜드 주는 런던보다도 더 작다) 이 주들은 자동차와 사람들, 도시들로 붐볐다. 코네티컷은 그냥 작은 교외 지역 같았다. US 202번 도로를 타고 리치필드까지 갔는데, 이 길은 지도에 "절경 코스"라고 표시되어 있었지만 교외보다 조금 더 경치가 낫다뿐이지 절경은 아니었다.

 

케이프코드는 매사추세츠 주 아래쪽에 튀어나온 길고 가느다란 반도로, 바다로 30여 킬로미터를 뻗어나갔다가 다시 말려들어온다. 반도는 알통을 만들려고 뻗은 팔처럼 생겼다.(정확히 말하면 근육이 없어서 알통이 안 만들어지는 내 팔처럼 생겼다.)

 

16. 하늘 전체에 분홍빛 새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얼른 옷을 주워 입고 리틀턴이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차를 타고 달아났다. 타운 밖으로 몇 킬로미터를 가서 주 경계선을 건넜다. 버몬트에서는 뉴햄프셔보다 훨씬 더 푸르고 정갈한 풍광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산들은 잠자는 짐승처럼 통통하고 폭신했다. 흩어져 있는 농장들은 풍요로워 보였고, 초원이 구불구불한 산허리까지 올라가 있어 계곡들은 고산지대 같은 느낌이 났다. 태양이 곧 높이 떠오르고 햇살이 따스하게 퍼졌다.

 

서쪽으로 버몬트를 횡단했다. 산들은 짙고 둥글고 계곡들은 풍요로웠다. 이곳에서는 빛이 더 부드럽고 더 나른하고 더 가을빛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가을빛이 완연했다. 겨자 색과 불그스름한 녹 색깔의 나무들, 황금색과 녹색의 초원, 거대한 하얀 축사들, 푸른 호수들. 고속도로 여기저기에 서 있는 농산물 가판대에는 둥글고 길쭉한 호박과 다른 가을 과일들이 넘쳤다. 천국으로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샛길들을 돌아다녔다. 오두막을 간신히 면한 집들이 놀랍도록 많았다. 버몬트 같은 곳에는 일자리가 별로 없겠지 싶었다. 이 주에는 타운도 산업도 거의 없다. 제일 큰 도시 벌링턴도 인구가 고작 3만 7000명이다.

 

17. 위층에서는 낯익은 야구 카드들을 발견하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우리 형과 내가 그토록 정성들여 모으고 분류했던(그러나 우리 부모님이 때아닌 노망이 들어 1981년 봄 대청소 때 다락에서 찾아내 내다 버린!) 바로 그 카드들이었다. 우리는 1959년 야구 카드 세트를 한 장도 빠지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구비하고 있었는데 그 세트의 현 시가는 1500달러나 된다는 슬픈 얘기다. 미키 맨틀, 요기 베라의 신인 시절, 테드 윌리엄스가 400호를 쳤던 마지막 해의 카드,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매년 뉴욕 양키스 팀 선수 전원의 카드를 보유했건만! 전체 컬렉션은 시가가 모르긴 해도 8000달러는 될 테니 우리 엄마 아버지를 치매 클리닉 단기 치료 과정에는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래도 괜찮다. 인간은 다 실수를 하고 살지 않는가. 이런 것들을 내다 버리는 부모들이 있으니 은퇴 후 여생을 일하던 시절에 쌓인 것들을 내다버리는 데 보내지 않는 부모를 둔 행운아들의 컬렉션이 가치가 높아지지 않는가. 어쨌든 옛날 카드들을 다시 보니 기분이 좋았다. 입원한 옛 친구를 문병 온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찍 깨자 가라앉는 늒미이 들었다. 눈을 뜬 순간, 이따금씩 보람을 느끼는 정상적인 하루 대신에 최소한의 기쁨도 없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느낌 말이다. 오늘은 오하이오 주를 가로질러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18. 나는 헨리 포드와 수집가로서 그의 안목에 대해 불현듯 깊은 존경심을 느끼며 박물관 안을 걸어 다녔다. 그는 깡패 기질이 다분하고 반유대주의자였지만 분명 매력적인 박물관을 만드는 안목이 있었다. 지난 시대의 기념물들만 살펴보며 몇 시간이고 보낼 수도 있었지만 격납고는 박물관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밖에는 유명 미국인 80인의 집들을 모아놓은 온전한 촌락, 아니 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집들은 모형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살았던 집이다. 포드가 전국을 누비며, 토머스 에디슨, 하비 파이어스톤, 루터 버뱅크, 라이트 형제, 그리고 물론 그 자신을 포함하여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들의 주택과 작업장을 직접 조달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포장해서 디어본으로 가져와 250에이커에 달하는 환상의 땅을 건설한 것이다. 이곳은 미국의 전형적인 스몰 타운으로, 그림처럼 아름답고 시간을 초월한 곳이며, 가구마다 천재성이 빛나는 남성(거의 예외 없이 중서부 출신의 천재적인 백인이자 기독교인 남자)들을 모셔다 놓았다. 녹지가 광활하고, 깜찍한 상점들과 교회가 완벽한 이 마을 주민들을 참 복도 많지. 자전거 바퀴가 고장 나면 라이트 형제를 찾아가고, 우유와 계란이 궁하면 파이어스톤 농장에 가며(하지만 타이어는 아직 아니다. 하비 파이어스톤(파이어스톤 타이어의 창업주)이 아직 업계에 진출을 안 했거든!), 웹스터 사전의 노아 웹스터에게 책을 빌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링컨이 찰스 스타인메츠(독일 태생 미국의 전기공학자로 에디슨에 버금가는 발명가)의 특허 출원을 신청하거나, 길 건너 조그만 오두막에 사는 조지 워싱턴 카버(흑인 노예 출신의 유명 과학자)를 해방시키느라 너무 바쁘지 않을 때 얘기지만.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에디슨의 작업실이나 그의 직원들이 묵었던 기숙사도 세심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집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니 그 편리함은 사실 부정할 수가 없다. 누가 하비 파이어스톤의 생가를 보러 오하이오 주 컬럼비아나까지 갈 것이며, 라이트 형제가 살았던 데이튼까지 갈 것 인가? 나라면 거기까지 안 간다. 무엇보다도, 이런 집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니 당시 미국에 발명의 정신이 얼마나 충천했는지, 실용적인 상업적 혁신을 그리고 엄청난 풍요를 가져다 줄 천재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현대 생활의 얼마나 많은 편리와 기쁨이 미국 중서부 소도시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절로 깨닫게 된다. 자랑스러웠다.

 

포드 박물관에서 느낀 기쁨의 따스한 여파를 간직한 채 미시건 주를 가로질러 북쪽, 그리고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랜싱, 그랜드래피즈를 지나자 어느새 160여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매니스티 국유림 지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시건 주는 오븐 장갑처럼 생겼는데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적이 많다. 매니스티 삼림은 울창하고 지루했고(천편일률적인 소나무 숲이 끝도 없다) 주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똑바르고 평평했다. 가끔 숲 속 통나무집이나 작은 호수가 보이기도 했는데 나무들 틈으로 언뜻 보이는 정도였고 대개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19. "북 위스콘신 종합병원에서는 여러분의 순조로운 출산을 돕겠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이런, 세상에. 이것은 내가 미국을 떠난 뒤로 새로 생긴 또 하나의 현상이었다. 병원 광고 시대의 도래랄까. 가는 곳마다 병원 광고다. 누구를 위한 광고란 말인가? 한 남자가 버스에 치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빨리요, 미시건 종합병원으로 데려다 주세요. 거기 MRI가 있던가요?"라고 말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미국 보건의료체계 전체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 무상으로 치료를 받는 것은 사실 상당히 쉽다. 카운티 병원에 가면 된다. 별로 유쾌한 곳은 아니지만, 아니, 실은 상당히 우울한 곳이지만 NHS(영국 보건의료체계) 병원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 무상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미국에는 종합병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는 보험이 없는 인구가 4000만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에 돈이 있는데도 공짜로 치료를 받으려고 카운티 병원에 가겠다면? 글쎄, 나는 다만 행운을 빌 뿐이다. 디모인의 카운티 병원에서 1년 동안 일해본 적이 있어서 아는데, 병원 이용자들이 주장하듯이 진짜로 궁핍한지 뒷조사만 담당하는 변호사와 수금 전문가들이 일개 중대나 되니 말이다.

 

미국 민영 보건의료가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치료의 질이 세계 최고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촌은 최고의 치료를 무제한으로 받으셨다.(삼촌의 건강이 회복된 것도 우연은 아니란 말씀.) 독립된 욕실이 딸린 삼촌의 1인실에는 리모콘 작동되는 텔레비전에 비디오와 전화기까지 따로 있고, 병원 전체에 카펫도 깔려 있으며 이국적인 종려나무와 흥겨운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영국에서는 정부 병원에 가면 유일한 카펫이나 컬러텔레비전은 간호사 대기실에 있었다. 그 전 해에 영국 NHS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한번은 야심한 밤을 틈타 간호사 라운지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나 몰래 들어가 보았다. 과연 어땠는가 하면 여왕의 응접실 같았다. 반질반질한 가구들에 반쯤 먹다 남은 밀크 트레이 초콜릿이 한 박스나 잇었다.

반면, 환자들은 전등갓도 없는 벌거벗은 전구 밑에서 추위에 떨며 소리가 웡웡 울리는 군대 막사 같은 병실에서 잠을 자고, 잰 발걸음으로 2주에 한 번씩 찾아와주시는 고귀하신 의사와 수련의들의 20초짜리 회진을 기다리며 낮이면 피스가 한 50개쯤 모자라는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 아, 물론 NHS가 왕년에 그랬다는 거다. 요즘의 NHS는 그렇게까지 찬란하지 못하거든.

 

엷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알려지지 않은 샛길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위스콘신을 건너는 건 끝도 없는 것만 같았지만 너무나 매혹적이고 평온하게 만드는 정경이어서 그래도 좋았다. 연중 그맘때에는, 특히 그날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묘하게 마음을 끄는 흔치 않은 기분이었다. 네시가 되자 벌써 일광이 사라져갔다. 다섯 시가 되자 해는 이미 구름 밖으로 떨어져 돼지저금통에 동전이 쏙 들어가듯 아득한 산 너머로 들어갔다. 페리빌이라는 곳에 닿자 갑자기 미시시피 강이 나를 맞았다. 그 광경에 숨이 멎는 듯했다. 강은 너무도 넓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평평하고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지는 해 속의 미시시피 강은 액상 스테인리스 스틸 같았다.

 

어머니를 알아본 것은 직진을 하는데 우회전 신호가 계속 깜박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대개 차고에서 차를 꺼내자마자 깜빡이를 켠 다음 거의 하루 종일 켜놓고 다니신다. 이런 점을 예전에는 지적했지만 어느 순간 어쩌면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운전자들에게 나는 운전에 완전히 자신 없는 운전자요, 알아서 피해 가쇼 하고 알려주는 셈이니까.

 

아침 10시 38분이었고 34일 전 집을 나선 후부터 1만 1011킬로미터를 달렸다. 나는 이 숫자에 동그라미를 친 다음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곤 집으로 활기차게 걸어 들어갔다. 어머니는 이미 안에 계셨다. 뒤쪽 창문을 통해 어머니가 부엌에서 흥얼거리며 장 본 물건을 정리하시는 게 보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나는 뒷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곤 저 가장 미국적인 네 단어를 말했다. "하이 맘, 아임 홈!(엄마! 저 왔어요!)"

 

II. 서부로 가다

 

20. 나는 네브래스카로 가는 길이었다. 이것은 할 수만 있다면 가급적 말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다. 네브래스카는 미국 여러 주 중에서도 제일 재미없는 주이기 때문이다. 네브래스카에 비하면 아이오와는 천국이다. 아이오와는 적어도 비옥하고 푸르며 산이 있지 않은가. 네브래스카는 약 19만 4250평방킬로미터에 걸친 메마른 황야와 같다. 주 한가운데는 플라트라는 강이 있는데 이 강은 1년에 몇 번은 폭이 3~5킬로미터 정도로 넓어진다. 사람들은 이 강이 상당히 장엄하다고 생각하지만, 깊이가 고작 6.5센티미터 정도다. 그러니까 휠체어를 타고도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얘기다 솟아오른 곳이나 내려앉은 곳이 없는 땅이다 보니 플라트 강은 식탁 위에 흐른 음료처럼 그냥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그리고 네브래스카 주에서 제일 흥미진진한 것은 이것뿐이다.

 

날씨에 관한 한 중서부는 두 극단을 한 몸에 간직한 곳이다. 겨울에는 바람이 면도날처럼 매섭다. 북극에서부터 훑어 내려온 바람은 살을 에는 추위가 된다. 바람은 울부짖는 소리로 회오리치며 집을 강타한다. 눈 더미와 뼈가 시릴 정도의 추위를 불러온다. 11월에서 3월까지는 심지어 실내에서도 20도 각도로 몸을 숙이고 다녀야 하며, 외출 전이면 차가 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눈 더미에서 차를 파내거나 마치 초강력 본드로 차 유리창에 붙여놓은 듯 떨어지지도 않은 얼음을 긁어내는 게 평생 일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봄이 온다. 눈은 녹고 외투를 안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고개가 해를 따라다니게 된다. 얼마쯤 그러다 보면 예고도 없이 봄은 가고 어느새 여름이다. 여름날은 또 신이 하늘의 거대한 발전소에서 레버를 당긴 것만 같다. 날씨는 이제 반대쪽 극단인 저 아래쪽에서 온 열대의 기운이 맹렬하게 돌진해 들어온다. 마치 뜨거운 담벼락 같다. 여섯 달 동안 숨 막히는 더위가 퍼붓는다. 얼굴에 흐르는 것은 땀이 아니라 기름이다. 온몸의 땀구멍이 쩍 갈라진다. 풀은 갈색으로 시든다. 개들은 곧 죽을 것처럼 헐떡인다. 시내를 걷다 보면 신발 바닥을 통해 아스팔트의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돌기 직전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가을이 오고, 그러면 2~4주 정도는 공기가 온화하고 자연은 다정하다. 그러면 또 겨울이 와서 같은 주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결심한다. "어른이 되면 바로 뜰 거야. 여기서 아주 머나먼 곳으로."

 

21. 이럴 줄 알았어야 했다. 나는 콜로라도는 산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캔자스를 떠나는 순간 눈 덮인 로키 산맥과 노란 미나리아재비가 한들거리는 고지대의 초원들 한가운데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신선한 셀러리처럼 파삭한.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완전히 평평하고 색도 우중충하니 갈색이고, 스윙크, 오드웨이, 맨자놀라 등 이름부터 후줄근한 작은 시골 마을들만 잔뜩 이어졌다.  

 

22. 아침에 TV 일기예보를 보니 "헐랭 전선" 때문에 로키 산맥에 눈이 많이 오겠다고 했다. 기상예보관은 이 소식이 반가운 듯했다.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기상도에는 서부 거의 전역에 걸쳐 불쾌함이 저주처럼 걸쳐 있는데도 말이다. 도로가 폐쇄될 것이며 폭설주의보가 발효될 거라 말하는 그의 입 꼬리가 고소하다는 듯 살짝 올라갔다. 텔레비전 기상예보관들은 왜 늘 그렇게 악의가 가득해 보일까? 이들은 진정성을 보이려고 노력해도 가면일 뿐이다. 그 표면 아래 어린 시절 곤충들의 날개를 잡아 뜯고, 지나가는 차에 깔리는 다른 아이를 보고 낄낄대던 사람이 숨어 있다는 걸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갑자기 나는 남쪽으로, 별다른 기상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뉴멕시코 주의 메마른 산지를 찾아 가기로 결심했다. 산타페의 작고 배타적인 칼리지에 다니는 조카딸이 있는데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다. 이 지저분한 뚱보 삼촌이 먼지 낀 싸구려 똥차를 대고 튀어나와 조카딸을 덥석 포옹하는 꼴을 캠퍼스의 모든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아이는 좋아할게 틀림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곧장 그리로 갔다.

 

이른 오후에 뉴멕시코로 들어선 게 이날의 절정이었지만, 콜로라도와 똑같이 별로 자극이 없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라디오를 켰다. 어디를 기점으로 해도 너무 먼 곳이라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 지직거리기만 했는데, 그나마 잡히는 방송은 몽땅 스페인어로 된 채널이었다. 축 늘어진 콧수염에 커다란 솜브레로(챙이 넓은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쓰고 "아이 아이 아이" 어쩌고 하며 어슬렁거리며 노래하는 가수들이 부르는 그런 노래 말이다. 왜 고등학교 선생들이 결혼 30주년 기념일에 마누라를 데려가는 좀 있어 보이려고 불 위에 음식을 내오는 그런 종류의 식당에서 늘 만나는 멕시코 밴드들 있잖은가. 서른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멕시코 음악을 즐기려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여남은 개나 되는 방송국에서 바로 그 음악을 빵빵 틀어대고 있었다. 각 노래가 끝난 다음에는 디제이가 나와 스페인어로 1, 2분 동안 지껄이는데, 그 소스라친 말투는 암만 들어도 어쩌다가 불알이 서랍에 낀 사내의 목소리다. 그 다음에는 잠시 광고가 나오는데, 이 광고남의 목소리는 디제이보다도 훨씬 더 다급하고 흥분되어 있다.(불알이 서랍에 끼는 사고를 그 순간에도 연속해서 겪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 다음엔 다른 노래가 이어진다. 아니, 내가 듣기론 같은 노래를 다시 트는 게 분명하다. 그게 바로 멕시코 음악가들의 불운이다. 그들은 아는 곡조가 단 하나뿐인 것 같다. 필시 그 떄문에 B급 레스토랑 말고 다른 곳에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성 프랜시스 성당(대단히 아름다웠다)과 총독 관저(아주 지루했다. 총독들에 대한 문서만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로레토 채플의 계단까지. 이 계단은 위층 성가대 좌석까지 이중 나선으로 된, 그러니까 두 번 꼬인 6.5미터 높이의 계단이다. 놀라운 것은 계단이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서 있다는 점이다. 꼭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인즉, 이 채플의 수녀들이 계단을 만들어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더니 이름 모를 목수가 나타나 여섯 달 동안 계단을 만든 다음, 돈도 받지 않고 처음 왔을 때 그랬듯이 어느 날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홀연히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수녀들은 100년 동안이나 이 이야기를 있는 대로 우려먹더니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어떤 민간 회사에 이 채플을 팔아버렸다고 한다. 이 회사는 이제 영리 목적으로 이 채플을 운영하며 입장료를 50센트씩 받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를 씁쓸하게 했을 뿐 아니라, 수녀들에 대한 나의 존경심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말해서(물론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언제나 위험한 말이다) 미국인들은 어딘가 돈이 숨어 있을 때만 과거를 숭상하며, 그렇다 해도 에어컨이라든가 무료 주차라든가 다른 필수적인 편의가 없는 생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를 그 자체로서 보존하는 일은 그다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서적 가치 따위를 고려할 여지는 없다. 누군가 수녀들에게 다가와 상당한 돈을 제시하며 계단을 팔라고 하면 그들은 "절대 안됩니다. 저 계단은 신성한 성소입니다. 예수님이 보낸 살짝 건장한 수수께끼의 특사가 지었지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묻는다. "얼마 줄 건데요?" 그리고 제안 받은 돈이 충분하면 그 돈으로 더 큰 부지에 에어컨과 주차 공간, 게임 룸이 있는 새 수도원을 짓는다. 수녀들이 이런 면에서 다른 미국인들보다 더 심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전형적인 미국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나는 그게 슬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뭐든 한 세대를 넘겨 살아남기 어려운 것도 무리가 아니다.

 

23. 그랜드캐니언을 무덤덤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랜드캐니언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어보았든, 사진을 보았든, 막상 가보면 숨이 턱 막힌다. 이런 규모의 어떤 것도 다룰 능력이 없는 당신의 정신은 그냥 닫혀 버리고, 세상에서 저토록 광대하고 저토록 아름다우며 고요한 것이 있다는 데 깊고 형용할 수 없는 경이만을 느끼며, 당신은 오랫동안 말도 숨도 잇지 못한 채 진공 상태가 된다.

 

글렌캐년 댐의 고장인 애리조나 주 페이지에서 나는 유타 주로 들어섰고, 풍경은 곧바로 개선되었다. 산들이 보랏빛 내지 붉은빛으로 바뀌로 사막에 홍조가 돌았다. 몇 킬로미터 더 가자, 산쑥이 뺵뺵해지고 산은 초록도 짙어지고 더 뾰족해졌다. 이상하게도 친숙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자동차 여행 가이드》을 찾아보니 할리우드 서부 영화들을 모두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100여개 이상의 영화와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모두 도로 저편의 케이냅 타운을 현지 촬영을 위한 본부로 썼다고 한다.

 

24. 네바다는 범죄 및 성범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은 주이며, 폭력범죄율이 두 번째(간발의 차이로 뉴욕에 밀렸다), 고속도로 사고 치사율 1위, 임질 발생률 2위(영과으이 트로피는 알래스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외지 인구 유입 비율이 1위인(네바다 주 거주자의 80퍼센트가 다른 곳 태생이다) 주이다. 부패의 역사가 길고 조직범죄와 강력히 연계된 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네바다 주에서 제일 유명한 연예인은 웨인 뉴턴(라스베거스에서 주로 활동한 인기 가수)이다. 그러니 유타 경계선을 넘어 네바다로 들어설 때 내가 느낀 불안감을 독자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도박장이 몇 개인지는 모르지만 무지하게 많은 건 분명했다. 지금 이 도박장이 내가 새로 들어온 곳인지, 아니면 같은 도박장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는 건지 확실치 않을 떄가 많았다. 홀마다 같은 풍경이었다. 줄지어 앉은 사람들이 지루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돈을 잃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최면에 걸린 듯했다. 실로 엄청난 사기였다. 어떤 카지노는 연각 1억 달러의 이익을 낸다는데(이 정도면 규모가 꽤 큰 법인에 맞먹는 액수다) 문만 열어놓으면 그 돈이 벌리는 것이다. 카지노 경영에는 기술도, 지능도, 품위도 거의 필요가 없다. <뉴스위크>에서 읽자니 시내의 호스슈 카지노 사장은 글을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배운 적이 없단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걸 보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성공에 필요한 지적 수준이 어떤 건지 대충 알 수가 있다. 갑자기 이곳이 싫어졌다. 거기에 넘어가서 소음과 번쩍임에 혹해서 그토록 쉽게 생각 없이 30달러를 잃은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25. 캘리포니아로 가는 가족 여행은 10년 후의 미래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비까번쩍하고 현대적이었다. 쇼핑센터, 차를 탄 채 일을 볼 수 있는 은행, 맥도널드, 미니 골프장,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 등 아이오와에서는 아직 새로운 것들이 캘리포니아에선 이미 오래 전에 자리 잡았다. 지금 이곳에서 그런 것들은 그냥 더 오래되어 보였다. 미국의 타 지역들이 따라잡은 것이다. 1988년의 캘리포니아에는 아이오와에 없는 건 없었다. 스모그만 뺴고. 해변도 뺴고. 그리고 앞마당에서 자라는 오렌지만 뺴고. 차를 타고 통과할 수 있는 나무들만 빼고.

 

26. 아이다호 역시 거대한 주여서(남북으로 885킬로미터이고, 하단의 폭만 483킬로미터이다) 와이오밍과의 주 경계선 부근 아이다호폴스까지 운전하는 데 그날 남은 시간이 전부 소요되었다. 가는 길에 아르코라는 작은타운을 지나갔는데, 이곳은 1951년 12월 20일에 세계 최초로 원자력으로 전깃불을 밝힌 마을이다.

 

당시에는 나도 몰랐는데, 이곳의 저장 시설 한 곳에서 플루토늄이 누출되어, 땅속을 통해(아이다호 남부 주민 수천 명의 식수원인) 지하수로 흘러든 사실을 미국 정부가 최근에 인정했다. 플루토늄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치명적인 물질이다. 한 숟가락 분량의 플루토늄이 일개 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다. 일단 만들어진 플루토늄은 25만 년 동안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미 정부가 플루토늄을 안전하게 보관한 시간은 채 36년이 못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당신의 정부가 플루토늄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게 해야 할 설득력 있는 논거다. 

 

아침에는 서부 이야기를 담은 근사한 동화책의 삽화처럼 그림 같은 경치를 지나 와이오밍으로 차를 달렸다. 눈 덮인 산봉우리, 소나무 숲, 아늑한 농장들, 굽이치는 강물, 잘 어울리는 이름(백조 계곡이었다)의 산골짜기가 그림 같았다.

 

와이오밍은 미국에서 가장 맹렬하게 서부다운 주이다. 지금도 카우보이와 말, 드넓은 황야의 땅이며, '싸나이는 싸나이답게 살아야 하는'(내가 보기에는 픽업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눈치는 좀 형광등에 행동은 굼뜬) 곳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있고, 거의 모두가 총을 소지한 광경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바로 두어 주 전에, 샤이엔에 있는 주 의회에서는 모든 의원들이 의사당에 들어설 때 입구에 자신의 총을 맡기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와이오밍은 그런 곳이다.

 

27. 몬태나는 거대하고 텅 빈 주다. 네바다보다도 더 크고,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고 할 만한 곳이 없어 더 텅 비어 있다. 주도 헬레나의 인구라고 해야 고작 2만 4000이다. 몬태나 주 총 면적은 38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데 주 전체 인구는 80만이 안 된다. 그러나 끝없고, 텅 빈 대초원과 드높은 하늘 덕분에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몬태나는 빅 스카이 지방이라고 불리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언제나 하늘이란 고정되고 어디서나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의 하늘은 열 배나 더 큰 것 같다. 이 웅대한 흰 반구 아래 내 차 슈베트는 아주 작은 입자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하늘 아래서는 모든 것이 작아 보인다.

 

28. 사우스다코타를 가로질러 계속 달렸다. 얼마나 단조롭고 텅 빈 주인지, 누런 풀만이 끝업이 펼쳐진 초원을 달리면 얼마나 외딴곳 같은지, 얼마나 외톨이처럼 느껴지는지 독자는 아마 모를 것이다.

 

수폴스를 지나자마자 오후도 중반으로 접어들었을 떄에야 사우스다코타를 마침내 벗어나 미네소타로 들어갔다. 이곳은 이번 여행에서 내가 서른 여덟 번째 만나는 주이며 내가 갈 마지막 주이지만 잠시 남단을 훑었을 뿐이므로 별로 큰 의미는 없다. 3킬로미터만 가며 오른쪽으로 펼쳐진 들판 너머에 아이오와가 있다. 넘실대는 들판과 비옥한 검은 토양의 중서부에 다시 돌아오니 정말 좋았다. 텅 빈 서부에서 몇 주를 보내고 나니, 시골의 갑작스러운 노음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미네소타 주 워딩턴을 지나자 곧바로 아이오와에 들어섰다. 때마침 해사 기다렸다는 듯이 구름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황금빛이 금세 들판 위로 퍼지며 모든 것이 즉시 따스해지면서 봄 같아졌다. 농장들은 모두 정갈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타운들도 모두 깨끗하고 친절했다. 나는 풍광에 매혹되어 홀린 듯 계속 차를 몰았다. 별다른 것도 없이 넘실대는 들판이 전부였지만 모든 색채가 진하고 생생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붉은 축사들, 초콜릿 색 흙. 마치 모두 처음 보는 풍경 같았다. 아이오와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망연히 어제 경기의 박스 스코어에 눈길이 갔는데, 아는 팀 이름이 하나도 없어 은근히 놀랐다. 그때 이 선수들은 전부 내가 미국을 떠날 때 중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야구 경기의 본질은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며, 어느 선수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지 아는데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 외국인이었다.

여종업원이 와서 종이 매트를 깔고 나이프와 포크를 놓아주었다. "하이!" 그녀는 인사라기보다는 외침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그녀는 정말 마음을 쓰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생각에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아, 중서부 사람들은 얼마나 근사한지. 그녀는 나비테 안경에 벌집 머리를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대꾸했다.

여종업원은 의심스러운 듯한, 하지만 친절한 눈길로 나를 옆으로 쳐다보았다. "여기 사람 아니죠, 그렇죠?"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닙니다, 아쉽게도." 나는 살짝 생각에 잠긴 채 대답했다. "그런데 이곳이 너무 좋아서 가끔은 여기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대략 이것이 나의 여행이었다. 48개 주 가운데 남부 10개주를 제외하고 모두를 방문했고, 2만 2495킬로미터를 뛰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거의 다 보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많이 보았다. 감사한 일이 많았다. 총을 맞지도, 강도를 만나지도 않았다. 차가 고장 나지도 않았고, 여호와의 증인이 다가온 적도 없었다. 아직 68달러와 깨끗한 속옷도 한 벌 남았다. 이 정도면 여행에서 더 바랄 게 없다.

디모인으로 들어갔더니 디모인이 오후 햇살에 거대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주 의사당의 황금빛 돔 지붕이 반짝였다. 집집마다 마당엔 나무 그늘이 짙었다. 사람들은 잔디를 깎거나 자전거를 탔다. 햄버거와 휘발유를 찾아 주간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이방인들이 왜 아예 눌러앉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친절하고 점잖고 상냥한 뭔가가 있었다. 여기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아주 야릇한 기분이었지만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나는 거의 평온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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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 좋은 방
용윤선 지음 / 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I'll hold you in my heart.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울기 좋은 방>의 저자 용윤선의 블로그로 들어가니 이사오 사사키의 이 음악이 배경 음악이다. 저자가 쓴 책을 닮았다. 책은 저자를 닮았을 것이니, 저자는 저 음악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울고 싶은 때가 있다. 감정이 차곡 차곡 쌓여 있는데, 아직 흘러넘치지는 않아, 누군가 여기에 마중물 한 그릇만 부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혹은 풍선처럼 부푼 마음이 자꾸 늘어나기만 해서, 자꾸 긴장감만 고조되어 가고 얇아지는 고무풍선의 두께처럼 내 마음은 점점 연약해져 가는 것 같은데, 누군가 핀 하나로 톡 찔러서 이 바람을 전부 빼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렇다면 나는 푸쉬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편안히 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울기 좋은 방>이라는 제목을 보고 며칠 째 지지부진한 내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 나에게는 마중물이 필요해. 작은 핀이 필요해.

 

용윤선이라는 사람은 커피를 볶고 내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블로그를 훑어보니 카페를 경영하며 커피 수업도 하는 바리스타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것 같다. 기분 탓일까, 블로그에서도, 책에서도 커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재생지인가? 잘 모르겠지만 연한 회색의 책의 속지도, 신명조체같지만 정확히 알 바 없는 글씨체도, 너무 자주 나오지 않는 사진도, 전부 마음에 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적당히 바래져가며, 손때가 묻어가며, 낡아가는 책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런 책은 소장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점점 대체불가능해질 것 같다.

 

하나, 아침이 된다
:멕시코 Mexico Altura Orizaba
둘, 그 사람 손을 본다
:콜롬비아 Colombia Narino Supremo
셋, 고맙다고 말한다
:인디아 몬순 India Monsooned Malabar AA
넷, 버지니아 슬림
:과테말라 Guatemala Antigua SHB
다섯, 왜 또 그러니?
:브라질 이파네마 Brazil Ipanema Euro, Natural
여섯, 내 남자거든요
:에티오피아 시다모 Ethiopia Sidamo Guji, Natural
일곱, 읽지 못하였고 쓰지 못하였다
:파푸아뉴기니 Papua New Guinea Sigri AA
여덟, 우리는 內海로 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Ice Americano

 

아홉, 사과해라, 나를 사랑한 것을
:케냐 피베리 Kenya Peaberry

내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보니, 가정을 꾸리는 일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수월해질 것 같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앞이 보이지 않는 항해 같은 것이다. 어머니로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살았다.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것으로 어머니라는 자리의 몫 절반쯤은 해내는 것인 줄 알았다.

아이들이 커서 나에 대해서 "사랑 표현이라고는 하나 없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냉정한 엄마"라고 일축한다. 한번은 딸아이가 학교에서 심리 검사를 했는데 우울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찾아갔다.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검사를 하나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검사가 있었다면 우리 어머니도 학교에 가셨을 것 같다. 상담선생님이 내게 이런 조언을 하셨다. 딸아이에게 사과하라고. 그렇게 사랑한 것을 사과하라고.

집에 돌아와 내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생각해본다. 사랑이 죄라는 노랫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상담선생님 말씀은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데, 딸아이보다는 어머니가 원하는 방법으로만 사랑했으니 사과하라는 뜻이다. 나는 심리적 통찰력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다. 심리적 통찰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교육받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 부족한 사람이 어머니가 되어 귀한 생명을 우울하게 살게 했구나 하는 생각. 그런데 사람은 왜 부족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좋던데. 상대가 원하는 방법대로 사랑해야 하는 거구나.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법으로 사랑하며 살 수 없단 말인가. 사랑이 무엇일까, 다리를 뻗고 앉아서 날이 저물 때까지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가슴뼈가 부서지도록 주먹으로 쳐본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밥을 차려주고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준다. 딸아이는 케냐 피베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등을 돌려 앉아 책을 읽는다. 마치 하루종일 읽고 있었던 책처럼 능숙하게 중간부터 펼쳐 읽어 내려간다. 그러다가 이런 내 모습이 아이에게 상처였나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딸아이를 향해 돌아앉지 못한다.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며칠 후, 다시 케냐 피베리를 연하게 내려 딸아이를 불러 마주 앉는다. 그리고 나는 사과한다.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열, 형
:케냐 AA Kenya Nyeri AA
열하나,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
:코스타리카 타라주 Costarica Tarrazu
열둘, 오늘은 안 왔으면 좋겠네
:에티오피아 아리차 Ethiopia Aricha
열셋, 에스프레소 가르쳐줄래?
:에스프레소 Espresso


열넷, 킬리만자로에 가는 길이다
:탄자니아 AA Tanzania Kibo AA

삼 년을 만나고 이십 년을 만나고 아니 평생을 만나도 사람은 모른다. 그렇게 된 과정에는 말없이 떠난 사람이 있었고, 돌아왔지만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고,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다. 결국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믿지 못해 사람을 믿지 않는 모순의 자기애이기도 할 테지만 모른 채 사는 것이 상처를 덜 주고받는 생존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이제는 사람이 보이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 사람의 반짝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어와 턱을 괴고 웃는다. 다시는 가슴에 나무를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그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되고 바람을 일으킨다.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를 바라볼 수 있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열다섯, 잘 지내세요
:르완다 Rwanda Bourbon
열여섯, 커피하는 사람
:에티오피아 코케 Ethiopia Koke, Honey

열일곱, 횡단보도에서 만나다
:하우스 블렌드 House Blend

몇 년 후 나는 그와 결혼했다. 건축학과에 다닌다는 그 사람에게 "우리 학교에 건축학과가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그 사람과 나는 커피집에서 하우스 블렌드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메뉴의 가장 위에 있는 것, 1번을 주문한다. 지금도 그 사람은 그렇다. 그런 것부터 우리는 많이 달랐다.

그는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를 보다가 헌신은커녕 결혼해서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해 매 순간 고뇌에 빠져 있는 여자의 남편이 되었다.

"결혼하면 네가 어머니처럼 변할 줄 알았어. 너도 우리 어머니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지금까지 그 생각이 자신만의 착각이었음을, 착각은 착각한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마찬가지다. 나 역시 결혼하면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처럼 변할 줄 알았다. 아니 세상 모든 남자가 우리 아버지 같은 줄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이불을 정리해주고, 방을 닦아주고, 일찍 퇴근하여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갈치 살을 밥 위에 놓아주는....... 세상 모든 남자가 그런 줄 알았다. 조금 더 함께 살면 이십 년을 살게 될 것이다. 살아온 삶의 절반쯤을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은희라는 교육생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그렇게 오래 살면 지겹지 않으세요?"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시간은 지루한데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같아."

 

그 사람과 나는 가끔 밤에 나가 술을 마시는데, 몇 년 전 가을의 일이었다. 아마 십육 년 정도 함께 살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너와 결혼한 것은 내 운명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

밤하늘에 큰 달이 침묵을 지키며 빛만 내보내고 있었다. 포기와 체념 같은 것이 맑은 소주와 뒤섞여서 목구멍으로 차갑게 흐르고 있었다. 나의 혈관으로 한 사람이 저릿하게 흐르고 있었다.

운명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려 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운명인가...... 탄식하던 적도 있다. 이제 헤아리지 않는다. 그만 헤아리겠다. 정해진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을 돌고 돌아 아주 멀리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도착지까지 가게 될 것이다. 만들어지는 것이 운명이라면...... 자신 없다.

 

그 사람은 여전히 어깨가 넓고 얼굴이 기다랗다. 머리카락만 회색이 되었다. 잘 웃던 눈이 나를 바라볼 때는 뱀눈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다 괜찮다.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면 헤어지는 일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거침없이 보여주고 살았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는 사랑하고 있었을 그 찰나가 바보처럼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 외에 보이는 것이 없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찰나였지만 그 찰나가 존재했었다는 기억으로 어떤 사람들의 관계는 지탱될 때가 있다.

손해와 이득이 아슬아슬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관계, 결국 하나일 텐데 둘로 보일 때가 많았다. 어쩌면 분명 둘인데 하나라고 우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에 몽상가이며 환상과 착란 혹은 착각에 잘 빠지는 기질을 갖고 있는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그 사람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갈 데도 없냐고 다그치면 생뚱맞은 얼굴로 어딜 가냐고 대답한다. 이제는 푸짐하게 나온 그의 배 위에 과민한 내 머리를 기대고 밤새 잠이 들곤 한다. 어쩌면 같은 맛으로 자리를 지키는 커피집의 하우스 블렌드 같은,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든든한 묵직함일지 모른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자는 그 사람의 큰 손을 가만히 잡아볼 때가 있다. 손톱 모양새를 물끄러미 본다. 소년의 손톱 모양과 같음을 발견한다. 이 손으로 내 손을 슬며시 잡고 길을 건너던 횡단보도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운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열여덟, 꿈
:카푸치노 Cappuccino
열아홉, 붉은 양파와 푸른 오이
:아침 커피 Morning Coffee
스물, 아침 산책
:에콰도르 Ecuador Loja SHB
스물하나, 차를 끓일까요?
:모카 Mocha
스물둘, 푸안루에서 버스를 타면
:샤커레토 Cafe Shakerrato
스물셋, 눈빛에도 표정이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 Indonesia Java
스물넷, 내가 못 살아
:도미니카 Dominica Santo Domingo
스물다섯, 사랑, 그 허망한 푸닥거리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Ethiopia Yirgacheffe
스물여섯, 타고나지 못했으면 노력을 해야죠
:운남성 云南省
스물일곱, 부디 그 말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스물여덟, 나는 코시체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예멘 Yemen Mocha Mattari
스물아홉, 힘들었어요?
:민트 커피 Mint Coffee
서른, 사랑하다가 끝까지 사랑하지 못한 이름
:아포가토 Affogato
서른하나, 아름답게 살기로 하였다
:룽고 Lungo

서른둘, 고백하지 마라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 Cuba Crystal Mountain

고백은 비겁한 것이다. 고백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모두 비밀이니 혼자만 알고 있어달라고 한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비밀이라면 죽어서도 당신이 갖고 가야지. 털어놓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가벼워지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폭로하고 싶어서 말해놓고선. 어디다가 감히 고백이라는 두 글자를 붙여 쓰는가.

내가 말을 잘 들어주게 생긴 모양인지 아니면 넉넉한 몸과 보름달 같은 얼굴이 후덕하게 보이는지, 종종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고백의 대부분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들이다. 즉 제3자의 이야기들이다. 그게 무슨 고백이냔 말이다. 고백은 당사자에게 직접 하는 것이다.

나도 고백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그런 순간이 내게도 오더라. 그 순간은 참으로 간절한데, 잘 생각해보면 오로지 나만 간절한 것이다. 그 간절한 고백이 혹여라도 이기적인 것일 때 고백한 자는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가 된다. 왜 간절한지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기 떄문에 간절한 것이다. 지금 간절한 이가 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고 도치해보면 평범한 일이 된다. 평범한 감정을 고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백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어서 괴롭다면 그 괴로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으로 답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눈의 깜박임, 손짓, 발짓, 숨소리, 머리카락...... 차라리 그런 아름다운 것들로 하는 것이며, 그것들이 모인 사람의 일생으로 오직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서른셋, 며칠 전에 말을 들었다
:파나마 게이샤 Panama Geisha
서른넷, 알지 못하는 형편
:아메리카노 Americano
서른다섯, 그 눈빛은 무엇입니까?
:에티오피아 미칠레 Ethiopia Michille
서른여섯, 기차가 타고 싶어서
:아이리시 커피 Irish Coffee
서른일곱, 죽어도 나는 못하겠다
:커피 루왁 Kopi Luwak
서른여덟, 동거
:도피오 Doppio
서른아홉, 굴라쉬 수프
:브랜디 커피 Brandy Coffee
마흔, 호수는 낙엽만 떨어져도 상처받죠
:우간다 Uganda Bugisu AA
마흔하나, 이제 살 곳을 정해야 한다
:페루 찬차마요 Peru Chanchamayo
마흔둘, 섬유유연제와 그 남자에 대한 기억
:하와이안 코나 Hawaiian Kona Extra Fancy
마흔셋, 당신
:네팔 굴미 Nepal Gulmi
마흔넷, 벌을 서고 싶어서
:도이창 Doi Chang
마흔다섯, 우리, 절에 갈래요?
:온두라스 Honduras Santa Barbara
마흔여섯, 걱정 마세요
:카페오레 Cafe au Lait
마흔일곱, 그 사람을 제게 주세요
:에티오피아 하라 Ethiopia Harrar Longberry
마흔여덟, 외로워서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페루 오가닉 Peru Organic
마흔아홉, 북쪽에 방이 있어 다행이다
:인도네시아 블루문 Indonesia Blue Moon
쉰, 오리 마을
:브라질 산토 안토니오 Brazil Santo Antonio
쉰하나, 당신이 잘 보이는 자리
:니카라과 Nicaragua, Honey
쉰둘, 지금을 쓰면 된다
:코스타리카 호르헤 Costarica Jorge
쉰셋, 적당했다
:파나마 보큐테 Panama Boquete

쉰넷, 등을 보며 살았다
:콜롬비아 마라고지페 Colombia Maragogype

길을 걸을 때마다, 두 분의 등을 기억했다. 굽어가는 등을 생각하면서 가던 길에서 멈추기도 했으며 좀더 걸아가보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아니 두 분께서 두려워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러나 그 길을 걸어들어가고 싶어 미쳐 돌아갈 때, 나는 아버지의 등을 생각했고 어머니의 등을 생각했다. 더 굽어질 등 때문이라도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나에게 당부했고, 그 당부가 결국 내 자신을 가두었으나 두 분의 등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으로 지금을 산다. 두 번 다시 두 분의 등이 나로 인해서 굽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고 싶다.

그런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때쯤, 나를 생각하느라 아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부모란 자식이 허물어뜨려도 일어설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살고 싶었던 방향대로 살았어도 어쩌면 괜찮았을 것이라는 것을 자식을 낳고 한참 후에 알았다.


쉰다섯, 혼자 먹어보기
:에티오피아 코체르 Ethiopia Kochere
쉰여섯, 일어서는 중이에요
:케냐 키아와무루루 Kenya Kiawamururu AA
쉰일곱, 이 냄새일 거예요
:인디아 아티칸 India Attikan
쉰여덟, 호텔
:얼그레이 라테 마키아토 Earl Grey Latte Macchiato
쉰아홉, 바람언덕 가는 길
:블랙커피 Black Coffee
예순, 무조건
:가요 마운틴 Gayo Mountain
예순하나, 나를 보고 웃지 않는
:예멘 모카 Yemen Mocha Sanani
예순둘, 목적이 없다
:인디아 아라쿠 India Araku
예순셋, 살고 싶은 사람
:에티오피아 코체르 피베리 Ethiopia Kochere Peaberry

 

예순넷, 가방 들어주는 사람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Papua New Guinea Marawaka Blue Mountain

사람들이 말한다. 커피가 다 같은 맛이지 커피를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는 것은 커피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작정한 후부터라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거나 공감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커피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도 비슷한 생각에 빠질 떄가 있다. 얼마 전에 상담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소개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상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상담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분석하는 일이 사람에 대한 이해나 위로보다는 심리학이나 그와 연계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밥벌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구경꾼이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암묵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듯하기에 내게 물어오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며, 당신이 상담을 해주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깊고 기나긴 숙고 없이 한마디의 말이나 단편적 기록으로 피상담자와 그 주변에 대해 그렇게 단언해서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진정한 상담이란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지 그게 당신 연구를 위한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상담가가 아니라 사기꾼이다. 상담을 해준다는 행위를 자각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아니면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싶어 상담가가 되었는가?"

그런 말을 하면서 그 말은 결국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치는 사람에게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게 물었다. 이토록 폭력적인 나의 말은 그를 며칠 밤잠 못 이루게 할 거싱고 결국 그를 위한 약이 되기도 할 것인데, 이 사람에게 왜 나는 넘치고 있는가. 대강 적당히 바라보다 헤어지면 될 것을.

 

그 사람은 웃고 있었지만 붉은 얼굴은 터질 듯하였다. 그 사람은 큰 손짓을 하면서 목소리 높여 밝고 명랑하게 내게 질문한 것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 나는 성인이고 중간에 나와 그 사람을 소개해준 선량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지인도 있었다. 신발을 신는 곳까지 나와서 나에게 인사해주었다. 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내가 신발을 신는 동안 그 사람은 내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신발을 다 신은 후에야 내 가방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두 손을 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싫었다. 당신이 내 가방을 그렇게 들고 있으면, 갑자기 진정성 있는 상담가로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이 조금 편할 뿐이겠지.......


예순다섯, 북창동
:세상의 모든 커피 All the coffee in the world
예순여섯, 과메기 브런치
:더치커피 Dutch Coffee
예순일곱, 거닐다
:브룬디 Burundi Mpanga
예순여덟, 끝까지 감싸안겠다
:에티오피아 첼바 Ethiopia Chelba
예순아홉, 사랑은 왜 이렇게 어렵니?
:인도네시아 토라자 Indonesia Toraja
일흔, 오음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 Guatemala Huehuetenango
일흔하나, 밀양
:에티오피아 이디도 Ethiopia Idido
일흔둘, 사이
:라테 그리고 모카 Cafe Latte and Cafe Mocha
일흔셋, 當身, 사로잡히다
:카페 콘파냐 Cafe Con Panna
일흔넷, 그냥 한번 살아보겠다
:핫 코코아 Hot Cocoa
일흔다섯, 하노이 보드카
:베트남 핀 드립 Vietnam Pin Drip
일흔여섯, 커피값은 제가 낼 테니
:파나마 게이샤 줄리엣 Panama Geisha Juliette

 

나중에 저 모든 커피를 마셔가며 각각의 해당하는 본문을 읽으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보았다.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올까? 오겠지.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 책을 읽어가는 내내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정체 모를 공허함은 채워졌으니.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예순 넷에서 멈칫했다. 위선보다 위악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 챕터의 일화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사람 참 피곤하구나,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도 들었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예민함은 글쓴이가 가져야 할 필수 요소 중의 하나일지언정, 그 칼날이 타인을 향해 있는 사람은 그냥 인간으로서 맞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소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몸에 차오르는 독기를 매번 발산해야 하는 것인지, 그 독기를 글쓰는 데에만 발휘하면 모를까 일상 생활에서까지 분출하는 것을, 글쓴이의 과거 어린 시절과 사생활을 바탕으로 이해해줘야 하는 것인지, 너무 유아적인 태도 아닌가? 나에게는 이런 이런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랬나보다, 하고 결론내리는 것은? 글 전체를 보면 저자는 한 때, 혹은 지금까지도 시인을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좁은 내 소견으로는 시인이란, 다른 사람의 아픔마저 끌어안고 대신 울어주고 껴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독자로서 나는, 스스로의 아픔을 유치하게 남에게 발산하며 거기에 대해 자신의 사생활로 합리화하는 사람의 시는 보고 싶지 않다. 해당 부분을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부분을 본 순간 이 사람 글은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는 시가 필요하지, 누군가의 감정 표출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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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8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1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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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책 제목을 보고 나면 묘한 희망이 샘솟게 된다. 표지를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이 글귀. 본문 중 한 부분이며 편집자들로 하여금 책 제목에 영감을 주게 만든 본문의 한 부분을 책 바로 앞에 실어놓았다. 토닥 토닥, 위로를 해 주는 느낌이다.

 

얼마 전 <놀러와>에 출연한 그룹 백두산과 부활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나의 전설들은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모텔을 운영하며 카운터에 앉아서 기타를 연습하는 베이시스트와 각종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며 음악 활동을 하는 드러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하긴, 요즘 누가 헤비메탈 음악을 듣나. 불러주는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포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한 다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인생은 어떤 것을 포기하는가의 문제다. 선택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포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로 선택하고, 결국 돈을 많이 벌게 된 사람이 어떤 걸 포기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기분 좋게 포기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인생이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돈과 성공과 권력을 포기하고(글쎄, 포기하지 않았어도 거머쥐긴 힘들었겠지만) 시간을 선택했다. 바쁘게 사는 대신 한가한 삶을 선택했다. 즐겁게 포기할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 기타도 칠 수 있으니 부러울 게 없다.

 

이 부분이 참 좋았다. 흔히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저 돈을 벌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포기했다고 친구 관계를 희생했을 것이라고 독하다고 이야기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배고픔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정된 생활을 포기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그 둘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은 신선했다. 보통 어느 한 쪽의 편을 들면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일갈하거나,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한심하다고 평가하며 인생의 어느 한 요소에만 특별히 집중하기 마련인데, 사실 인생이란 수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느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진리이며,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므로 과도한 비판도 주제 넘는 칭찬도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 <즐거운 인생>과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생각났다.

 

일본의 동화작가 고미 타로의 책 『어른들(은, 이, 의) 문제야』에는 나처럼 산만한 사람들에 대한 글이 나온다. "저는 마음이란 산란해지기 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란해지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를 좋아하는데, 특히 그 글자의 생긴 모양이 시선을 모읍니다. 권權이나 군軍같은 글자는 획들이 모두 확실하게 붙어 있지만 심心은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산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이며, 깜짝 놀라고, 두근거리고, 용기 없이 우물쭈물하는 등의 인간적인 감정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몇십 년 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썼던 누명을 벗어버린 느낌이었다. 산만해도 괜찮다고, 산만한 게 나쁜 건 아니라고, 고미 타로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도 읽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들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잡생각'이라는 단어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잡생각하지 말라고, 공부에 집중할 때 잡생각하지 말라고. 부모님 말씀 덕에 나는 잡생각을 죄악시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덕에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가서 취직해서 밥 먹고 산다. 하지만 간혹, 그 어린 시절에 한없이 뻗어나갔던 잡생각을 가지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가지 탓에 뿌리마저 뒤흔들린 어른이 되었을까. 비록 지금은 뿌리가 튼튼한 어른이 되었다만, 한번쯤 바람에 가지들이 휘둘리고 엉키는 경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이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전부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 사람의 주장이 위험하다고 여겨진 적도 있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책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발명가 김씨'라는, 김중혁이 직접 그린 만화와 함께 이런 저런 발명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코너가 있는데, "안전벨트를 꼭 매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나의 목숨을 걱정해주는 걸까요? 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할까요? 가끔 안전벨트가 그려진 옷을 입어보고 싶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분명히 작가는 웃자고 쓴 말인지 확실히 알겠음에도 불구하고 죽자고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의 편식에 대해 옹호하면서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너무 나갔다 싶기도 하고. 다 큰 어른이 편식하는 것보다 오히려 어렸을 때 편식하는 것은 더 치명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공부를 잘하라는 주문도 아니고 반장을 하라는 주문도 아니고 그저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는 그 주문, 어머니의 그 주문을 그냥 감사하게 받으면 안 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부분들 때문에 이 책 전체의 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김중혁의 산문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따스하며, 발랄하고, 살짝 살짝 발칙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 좋다.

 

마지막으로 책 전체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마지막 부분. 이 부분은 일러스트가 압권이다. 책을 펼지면 두 페이지에 걸쳐 새까만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는 배경으로 본문은 흰색으로 인쇄되어 있는데, 괜히 뭉클해진다.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친구들과 저렇게 놀면 참 재미있겠다 싶다가도 텐트에서 자는 모습을 보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곤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늘 "밥은 밖에서 먹어도 잠은 집에 들어와서 자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제가 밖에서 좀 많이 잤죠. 어머니), 지금은 그 말의 깊은 뜻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는 어찌나 예민하신지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텐트에 누워 있으니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얘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자라."

그러고 싶었으나 그러긴 힘들었다.

텐트에 누워 있으니 우주에 나 혼자뿐이라는 기분이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모든 문명이 사라지고 역사가 없어지고 미래는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민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호들갑을 떠는 것이겠지만, 외로웠다.

스톡홀름의 한 호텔에 누워 있던 때가 떠올랐다. 아마 스톡홀름 시내에서 가장 싼 호텔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방에는 창문도 없었다. 고시원 정도의 크기였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있으니 내가 이곳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잇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모두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창피한 얘기지만, 그때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글쎄, 누가 죽인대?)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글쎄, 누가 돌아가지 못하게 한대?) 가족들도 만나고 떡볶이도 먹고 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아주 작은 호텔, 그중에서도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의 코딱지만 한 침대에 누워서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순간을 나는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이 캠핑을 떠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나처럼 유치한 마음이야 먹지 않겠지만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간섭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다음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하는 의지를 되새긴 후 돌아오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내가 스톡홀름의 작은 호텔방에서 외로워했던 것처럼 지금 이시간 서울의 어딘가 작은 쪽방에서도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모두들 외로워하며 버티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서울은, 도시는, 야생보다 더욱 무서운 곳일지도 모른다. 자,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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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주홍색 연구 | 네 사람의 서명, 셜록 홈즈 탄생 150주년 기념판 ㅣ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현대문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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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석 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 앞의 네 권이 단편을 수록하였고, 이 책에서는 『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 두 장편이 수록되어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연속으로 장편을 두 편 연재한 후 단편을 연재했다. 이 두 소설은 현재 일어난 사건이 알고 보니 과거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까지 드리워진다'(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의미였던)는 구성이다. 물론, 셜록 홈즈의 활약상을 전부 읽었음이 분명한 크리스티가 선배 작가에게 영향을 받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었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확실히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다소 거친 면이 많다.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이 매끈한 도자기라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자기랄까. 결혼으로 인해 콤비 관계가 종료되는 설정도 푸아로와 헤이스팅스의 관계와 동일하지만, 이후 푸아로가 다른 조력자와 함께 활동하거나, 헤이스팅스가 푸아로와 동행할 때마다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에 반해서, 왓슨의 결혼 이후에도 종종 홈즈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이 설명 없이 그려져 있어, 후대의 학자들은 왓슨이 사별했다거나, 별거했다거나, 이혼했다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는 형편이다. 또 베이커 221B에 살고 있는 홈즈가 그의 행동 반경을 영국 밖으로 확장시키지 않는 반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속 푸아로는 영국은 물론이고 온 유럽과 아시아까지 돌아다니는 탐정이다. 셜록 홈즈는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소설 자체의 오류는 눈감아주기에는 많은 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셜록 홈즈 소설들의 장점을 잘 문질러 더 빛나게 했고, 단점은 영리하게 제거하였다. 주석 달린 홈즈 시리즈는 분명히 재미있었지만, 크리스티 소설 속 완벽한 세계가 가끔 그립기도 했다.

 

 

주홍색 연구

『주홍색 연구』는 1887년판 《비턴의 크리스마스 연감》에 다른 희곡 작품 두 편, C. J. 해밀턴의 「네 잎 클로버」와 R. 앙드레의 「화약밥」(화약밥은 전시 징병된 신병을 뜻하는 말-옮긴이)과 함께 발표되었다. 『주홍색 연구』단행본은 1888년 7월 워드, 록앤드 컴퍼니에서 처음 발행했다. 미국 초판은 1890년 J. B. 리핀콧 컴퍼니에서 발행했다. 워드, 록 앤드 보든 출판사(당초 출판사의 후신)에서 발행한 1893년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발행인 주석'이 추가되었다. "셜록 홈즈 씨가 대중에게 처음 소개되고, 그의 추리 방법이 묘사된 『주홍색 연구』가 그랬듯이, 코난 도일의 은사이자 셜록 홈즈의 모델인 의사 조지프 벨이 최근 《북맨》에 기고한 글 또한 《북맨》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자못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우리 발행인들은 생각했다. 환자를 다루는 의사 조지프 벨의 '직관력'은, 그의 제자였던 의사 코난 도일이 《스트랜드 매거진》에서 우리에게 말했듯이, "그저 경이로운" 것이었다. 아래 코난 도일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알 만하군요.' 벨 선생님이 말했다. '당신은 술 때문에 아픈 겁니다. 코트 안주머니에 술병을 갖고 다닐 정도니 말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제화공시군.'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몸을 돌리고, 그 남자의 바지 무릎 안쪽이 닳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제화공이 무릎에 끼고 가죽을 두드리는 무릎돌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 것으로, 그건 제화공들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징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내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모습-뚜렷한 이목구비, 매부리코,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운 눈-은 줄곧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 채 앉아서(그는 손재주가 아주 뛰어났다), 앞에 선 사람을 관찰하곤 했다. 학생들에게는 정말 훌륭한 친구처럼 아주 자상하고 정성스러웠다. 내가 학위를 받고 아프리카로 떠난 뒤에도, 은사의 탁월한 개성과 남다른 솜씨에 대한 깊은 인상을 한시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어느 날 갑자기 의학을 저버리고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덕분에 의사 코난 도일은 "의학을 저버리고 글을 쓰게" 되었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셜록 홈즈 씨는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어, 거의 공인이 되기에 이르렀으니, 의사 도일이 초기에 받은 교육과 훈련의 몇 가지 특징을 언급한 글, 곧 의사 도일이 면밀한 관찰을 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 의사 조지프 벨의 다음 글이 많은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읽히기를 우리 발행인들은 바라 마지않는다. 의사 도일과 벨에게 감사드리며, 그 글의 게재를 허락해준 《북맨》의 편집자와 사주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린다."(의사 벨의 글은 이번 이야기 말미의 부록에 실려 있다.)


  머리말

오늘날 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셜로키언들도 『주홍색 연구』(1888)를 매혹적인 창세기로 여기게 되었다. 이 글에서 셜록 홈즈가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베이커 스트리트에 살기 전의 왓슨을 잠깐 엿본 후, 셜록 홈즈의 '보즈웰'인 존 H. 왓슨 박사가 병원 실험실에서 홈즈를 처음 만나는 중요한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발견했어! 내가 발견했어!" 이것이 홈즈의 첫말인데, 과연 홈즈다운 적절한 말이다). 두 사람은 하숙집을 같이 쓰기로 한다. 왓슨은 홈즈가 세계 유일의 자문탐정이라는 이색적인 작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곧이어 왓슨은 복수와 살인이라는 어두운 세계의 이야기에 휘말리게 된다. 홈즈의 뛰어난 탐정 활동에 대한 왓슨의 이야기는 '회상'을 중심으로, 익명의 작가가 1인칭 시점으로 쓴 것이다. 여기서는 브리검 영의 지도 아래 있던 유타 주의 모르몬교도들이 등장한다. 모르몬교도와 미국 서부의 역사에 대해 흡인력 있게 생생히 기록하고 있지만, 그래도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의 왜곡된 견해가 드러나 있다.

왓슨을 처음 만났을 때 27세였던 청년 홈즈에 대한 이번 묘사와 다른 정전의 일반적인 묘사를 비교해보면, 세월이 오래 흘렀어도 홈즈라는 인물이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밀을 잘 털어놓지 않는 무거운 입, 보헤미안 기질, 경찰을 낮잡아 보는 태도 등이 이번 이야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한 홈즈의 마약 사용에 대해서는 암시만 하고 있지만, 다른 여러 악덕과 미덕을 여기서 일찌감치 독자에게 두루 선보이고 있다. 『주홍색 연구』초기 출판본은 저자에게 거의 돈이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단편 시리즈를 발표해서 대성공을 거둘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제1부 전 육군 군의관 존 H. 왓슨 박사의 회고록 재판
    제1장 셜록 홈즈 씨
    제2장 추리의 과학
    제3장 로리스턴 가든 사건
    제4장 존 랜스의 증언
    제5장 광고를 보고 찾아온 손님
    제6장 토비아스 그레그슨 형사의 솜씨
    제7장 어둠 속의 빛

  제2부 성도들의 나라
    제1장 알칼리 대평원에서
    제2장 유타의 꽃
    제3장 존 페리어, 선지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제4장 목숨을 건 탈주
    제5장 복수의 천사
    제6장 의사 존 H. 왓슨의 회상 계속
    제7장 결론

  부록 「셜록 홈즈 씨」―의사 조지프 벨의 에세이


네 사람의 서명

『네 사람의 서명』은 1890년 2월 「네 사람의 서명, 그리고 숄토가의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리핀코츠 매거진》에 실렸다. 『네 사람의 서명』으로 출간된 것은 1890년 10월 영국의 스펜서 블래킷 출판사에 의해서였다. 미국판과 영국판 책들 중에는 저작권을 허가받은 책도 있고 해적판도 허다했다. 원본은 특정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서 손에 넣기 쉽지 않았던 터라 텍스트 변용 사례가 무수히 많았다. 뉴트와 릴리언 윌리엄스의 『주석 달린 '주석 달린 책'』은 주석이 소설의 가치를 전혀 떨어드리지 않는 대단히 유익한 서적이다.


  머리말

『주홍색 연구』의 신입 탐정 홈즈는 이제 잊어라. 『네 사람의 서명』(1890)에서 홈즈의 자신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수수께끼 같은 과거의 일로 고통 받던 미모의 의뢰인 메리 모스턴 양의 사건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고 깊이 빠져든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탐정 이야기인 『네 사람의 서명』에서 홈즈는 거의 모든 장면에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한편 왓슨은 나름대로 인생의 장밋빛 순간을 맞이하여 홈즈와 함께하던 생활을 끝내게 되고, 베이커 스트리트에 홀로 남겨진 홈즈는 마약에 빠진다. 『주홍색 연구』사건이 해결된 지 7년, 홈즈는 그사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경험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을 밑거름으로 하여 그가 해결하고자 한 이번 사건의 발단은 인도 폭동이라는 역사적 항쟁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험은 기묘한 난쟁이와 의족을 한 사나이, 믿음직한 개, 템스 강 아래로의 숨막히는 추격전 등 영화와 같은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하다. 『네 사람의 서명』결말 부분에서 범인이 털어놓는 살인과 강도, 배신과 복수의 뒷이야기에서는 영국 식민정책의 속국이었던 인도의 모습과 식민정책이 빅토리아 시대에 미친 영향이 잘 요약되어 있다.

  제1장 추리의 과학
  제2장 사건 진술
  제3장 해결책 모색
  제4장 대머리 남자의 이야기
  제5장 폰디체리 저택의 비극
  제6장 셜록 홈즈의 현장 조사
  제7장 통에 얽힌 일화
  제8장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
  제9장 끊어진 고리
  제10장 원주민의 최후
  제11장 아그라 보물 상자의 비밀
  제12장 조너선 스몰의 이상한 이야기

  부록 『네 사람의 서명』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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