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 린드그렌 탄생 110주년 기념 개정판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잉리드 방 니만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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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학원 출판사에서 나온 메르헨 전집에 있던 삐삐.
솔직히 어린 시절 읽은 삐삐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연히 삐삐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네이버 북의 오디오 북 소개란을 보고. EXID의 하니가 읽은 오디오북이 이벤트기간인지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다. 호기심에 눌러 보았는데 따뜻하면서도 다소 낮은 투의 목소리가 편안해서 순식간에 한 권을 귀로 읽을 수 있었다.
삐삐는 오히려 어른이 된 지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책없이 건강하고 명랑한 아이. 정작 그 시절에는 그게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 몰랐던 어른에게 옛날 책을 펴고 읽던 그 시절의 나 자신을 계속 떠올리게 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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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 ㅣ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20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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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05년에서 1939년까지 30여 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한 작가의 방대한 상상력과 격동하는 시대의 산물을 읽고 정리하는 시간이 이제야 끝이 났다! 모두 23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아르센 뤼팽 전집의 모든 작품들을 이번에 처음 읽어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책 대여점에서, 우연히 들른 북카페에서 아르센 뤼팽의 모험담을 접할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기에 유명한 에피소드들은 당연히 그 내용은 알고 있었다. 다만 나온 출판사와 번역자가 제각각인데다가 어린이 대상의 편집본들은 상당수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 전집은 시간 순서대로 편집되어 있기에 상호 연결된 스토리를 통해 뤼팽이라는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한 명의 번역가가 투철한 직업 정신과 열렬한 팬심, 집요한 열정, 지치지 않는 근면성실함으로 그야말로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아르센 뤼팽 전집 최종편으로 소개하는 이번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는 프랑스에서조차 완전한 모습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명실 공히 뤼팽 시리즈 최후의 작품이다. 가니마르와 빅투아르가 오랜만에 재등장하고, 제 1권에서처럼 대서양 횡단 여객선상의 괴도의 모습이 공개되어, 전체 시리즈의 완성된 사이클이 제대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특히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배어 있다는 평을 들었으며, 그래서인지 이전과는 다른 아르센 뤼팽의 파격적인 모습이 군데군데 형상화되어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복원된 유일한 단행본을 펼쳐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뤼피니앵으로서 가슴 설레며 읽을 수 있는 문제작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소개하는 소희극(小喜劇)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은 모리스 르블랑이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작업한 희곡작품으로서, 무대에만 올려졌지 한번도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 또한 특별하다. 이 작품은 희극(喜劇)인 만큼, 뤼팽의 재기발랄한 유머가 전체 극을 압도하며 이끌어간다. 특히 코믹한 뤼팽의 매력에 반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두고두고 탐독할 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해설로는 뤼팽 전집을 마감하며 역자로서 느끼는 감회와 함께, 번역작업에 따른 흥미로운 기록들 그리고 그간 도움 받은 참고자료 목록을 제시한다.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1. 폴 시너

“......가령 나, 맥 앨러미가 말이오, 당장 오늘 밤 살해당할 걸 각오하고 어떤 수상쩍은 일에 끼어든다고 한번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당신이 신문 사회면을 담당하게 되어 있다면, 필경 당신은 지금 우리 사이의 이 대담을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시켜야 할 것이오. 거기에 아주 비장한 색채를 가해서 그걸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끔찍한 결말의 전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말이오. 그런 강렬한 느낌이 마지막 줄에 이르도록 점점 가중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자고로 언론인이나 소설가의 기술이란 사건을 어떻게 준비하고 연출하느냐, 특히 처음 도입부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나갈지 등등, 독자들을 어떻게 하면 그대로 몰입하게 만드는가에 있지요. 자, 그렇다면 과연 무슨 수로 몰입하게 하느냐? 그건 나도 말해줄 수 없다오. 전적으로 재능의 비밀에 관한 문제이니까. 만약, 그처럼 언어를 통해 사람의 주의력을 휘어잡는 비결이 당신한테 없다면, 옷이나 속옷을 만들되 결코 소설을 쓴다거나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오. 내 말 알겠고, 패트리셔 존스턴?”

“이 봉투 안에는 내가 당신을 위해 작성한 문서가 하나 들어 있소. 당신은 앞으로 여섯 달이 지난 후에만 그 내용을 개봉해 볼 수가 있어요. 즉 9월 5일, 당신은 문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뒤, 정확히 거기에 지시된 대로 따라야만 합니다. 지금부터 그 모든 것을 당신만 믿고 맡기는 거예요. 앞으로 이 봉투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든지, 아니면 아주 안전한 장소에다 보관해야만 하오. 아무도 알지 못하게 말이오! 아무도!......”

2. 11인의 회동

자고로 인생에서는 자기 눈을 감아야 무언가를 명확히 볼 수 있는 시기가 있는 법이다. 누구라도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간절히 필요로 하게 되는 고요한 안정을 바다는 어렵지 않게 가져다준다.

3. 오퇴유-롱샹 대공(大公) 오라스 벨몽

“결국 사건을 가만히 살펴보건대, 언뜻 뤼팽의 지휘하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적 움직임이 실은 그를 난관에 빠뜨리려는 수작인 듯하다 이겁니다. 맥 앨러미가 당신한테 ‘도덕적으로 만족스런 건수’ 운운했다고 했죠? 그 사람이나 프레데릭 필즈 같은 청교도가 보기에, 뤼팽 같은 범죄자를 공략해 가진 것을 몽땅 게워내게 함으로써, 결국엔 그의 엄청난 재산으로 자신들의 집단을 강대하게 배불리는 것만큼 도덕적으로 뿌듯하고 가치 있는 사업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감쪽같이 훔치든, 협박을 해서 빼앗든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 새로운 십자군의 행동강령이라고 할까, 신조라고 할까, 아무튼 일종의 모토라면 바로 ‘아르센 뤼팽에 대항하는 마피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여기서 ‘마피아[Maffia]’는 흔히 일컫는 범죄 조직 ‘마피아[Mafia]’에다 ‘f’를 하나 더 첨가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리스 르블랑은 실제 범죄조직에다 허구적인 요소를 살짝 첨가해, 자신의 소설 속에 무리 없이 끌어들인 셈이다. 실제로 소설 속의 마피아는 실제 범죄조직 마피아와 닮았으면서 또한 다른 모습이다/역주).”

4. 마피아

“조직이 바로 열한 명에 의해 결성되었다는 점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이득의 분배 시점에 맞춰 남은 인원이 모두 합해 네 명이나, 심지어 세 명에 불과하다면 막상 전리품은 그 서너 명만이 나눠 가지면 되는 겁니다. 바로 그 때문에 놈들은 자체적으로 인원수를 하나하나 제거해간 거구요. 이제 조만간 연속적인 숙청이 진행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최종 결산 단계에 가서는 단 한 명만 남게 될 겁니다. 결국 오는 9월 말쯤에는 아예 조직 자체가 해체되겠죠.”

5. 로돌프 공(公)

분명 누군가 집 안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건물 전체에 악령이 씐 듯한 분위기...... 권총을 부여잡고 잠복해 있거나, 되는 대로 흔적을 따라다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눈에는 아무도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바로 그 옆 방으로부터 옷 스치는 소리, 숨소리, 심지어 마루판이 삐걱대는 소리까지 서로 짜맞춘 듯 가세해, 분명 누군가 있긴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러면 또다시 득달같이 달려들어 문을 열어보는 오라스 벨몽...... 하지만 아무도 없기는 마찬가지...... 그림자도 소음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 가끔은 부랴부랴 내빼는 발소리가 어렴풋이 꼬리를 남길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러고 나서는 영락없는 적막이 깔렸고 말이다. 오라스 벨몽은 이처럼 악마적인 조작행위에 대해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확인을 해보면 언제나 비밀 출입구는 완전 봉쇄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도대체 이 놈들, 무슨 수로 여길 드나들고 있는 걸까? 이 집! 이 아르센 뤼팽의 집을 말이다!

6. 마피아노의 복수

과연 경찰 입장에서 그 모든 사안마다 좌절의 벽에 부닥쳤다는 고백을 순순히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이번 사건 전체는 물론이고, 그밖에 해결되지 않은 여타 사건들까지 싸잡아, 어차피 괴도(怪盜)로서의 지난 행적상 언제든 범죄행각으로 귀결되는 게 당연한 도당의 우두머리와 어느 음험한 마피아 사이의 알력 탓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설명방법 아니겠는가 말이다! 항상 유명세와 무사불패(無事不敗)의 전력이 공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도발처럼 여겨지는, 저 붙잡히는 법 없는 인물의 후광을 이용할 기막힌 기회라고나 할까? 역시 경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측간 곧 신속한 반격이 있을 거이며, 사태가 경찰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 결국 어느 진영에서건 조만간 공권력의 협조를 구해오리라 기대하면서, 경찰은 그 때 본격적으로 싸움에 개입해 모두를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일단 패트리셔와 오라스 벨몽은 적극적인 추적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치안국이 우선 ‘사태관망’을 유지했고, 혐의자들을 거짓 안전 속에 안주하게끔 놔두자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패트리셔와 오라스 벨몽 그리고 유모 할멈 빅투아르와 어린 로돌프는 무려 4주 동안 여기저기 그늘이 드리워진 광대한 메종-루즈의 아름다운 영지에서 평화로운 휴힉을 맛볼 수 있었다. 정원의 중앙 가로수 길은, 양쪽으로 아케이드처럼 다듬어져 궁륭을 이루는 보리수들 아래로, 석조화분 및 대리석 조각상들이 도열한 가운데 뻗어나가, 저 멀리 초록 빛 초원과 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앞에 두고 센 강에 인접해 있었다.

7.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어이쿠, 암호랑이 소리네! 사람들 얘기가, 며칠 전 이동 동물원에서 암호랑이 한 마리가 빠져나갔다는 거야. 그 놈이 글쎄 이 지방에서 ‘코르네유 성(城)의 처녀림’이라 흔히 부르는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는군. 사람들이 몰이 수색을 하는 와중에 호랑이가 상처를 입은 데다, 그 때문에 아주 사납고 위험해졌다고 했어. 만약 패트리셔가 그 호랑이와 맞닥뜨린다면......”

8. 새로운 전사(戰士)

암호랑이는 진짜 주의 깊게 그 모든 지시사항을 새겨듣는 분위기였다. 뿐만 아니라, 베슈 쪽으로는 한없이 아쉬운 눈길을 보냈는데, 마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그냥 두고 떠나는 심정인 듯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인이 맡긴 사명을 받드는 것에 우선 자부심을 느끼는지,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할 모양이었다. 녀석은 천천히 한 발 한 발 아이한테로 다가가 그 듬직한 등허리를 내주었다. 아이는 냉큼 그 위로 올라탔고, 호랑이 머리를 한두 차례 가볍게 토닥이고는, 목덜미를 팔로 감아 안으며 이렇게 외쳤다.
“가자!”

9. 금고

“모든 신분증을 차지하고, 그래서 결국 여기 이 금고들 속 수십억 달러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거머쥔 아르센 뤼팽이시란 말이다! 맥 앨러미와 필즈가 마피아 단체를 재건하고, 그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나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조직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나는 그들이 꾸미고 있는 이 일 깊숙이 잠입해 들어왔었다. 물론, 내 이익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켜내기 위함이었지. 나는 그들에게 내 거처와 부하들, 은신처들, 지하 아지트들, 비밀통로들, 은닉처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총망라해 안겨주었어. 결국에는, 내 전 재산을 은밀히 모아두고 있던 바로 이 금고들에 너희들 모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10. S.O.S

“이렇게 해서 150여 명의 경찰관들, 40명의 갱단, 그리고 그만한 숫자의 소총과 권총들은 아르센 뤼팽과 그 연인, 그리고 한 마리 사나운 고양이 앞에서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하나같이 엉터리들 아닌가! 그리도 많은 인원이...... 그렇게 막강한 경찰력이 말이야!......”

11. 결혼

돈은 고스란히 되돌려줄 것이오.
실은 이 몸이
노르망디호(號)(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객선/역주)에
좌석을 좀 예약해야 하거든.
그대한테 빌린 돈은
거기 선상에서 하룻저녁 승객들의 시계와 지갑을 대상으로 멋들어진 마슐 쇼를
선보임으로써 단번에 상환될 것이니 염려 놓으시도록!
A. L.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희곡)

마르셀린: 누, 누구시죠?
뤼팽: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잠시 그대로 있어요...... 아무 생각 말고...... 차차 설명하리다...... (마르셀린,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오, 이런...... 두려워 말아요......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마르셀린: 하지만......
뤼팽: 소리 좀 죽여요, 제발...... 우리 소리가 새어나가면 곤란합니다......(다시 문 쪽으로 가 동향을 살피고 돌아온다.) 그럴 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어요. 내가 당신을 위해 이곳에 와서, 이렇게 당신 곁에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선 안 됩니다. (마땅한 설명방법을 깨달은 듯, 좀더 강하게 되풀이한다.) 그래요, 당신을 위해서 온 거요! 오늘 저녁, 당신은 발통-트레모르 댁 무도회에 왔었소...... 거기서 당신을 보았지...... 오, 실은 그게 처음은 아니었소...... 항상 당신을 따라다녔다오...... 시장에서도......
마르셀린(놀란 눈으로 듣고 있더니): 시장에는...... 간 적이 없는데......
뤼팽: 아, 내 말은...... 백화점에 말이오. 그리고 극장에서도 봤었지......
마르셀린: 극장엔 안 가는데......
뤼팽(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오, 제발 내 말 좀 끊지 말아주면 고맙겠소...... 10분밖에는 시간이 없단 말이오......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과 단둘이 얘기할 기회를 고대해왔는지 모르오!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외다! 그러다 마침내 오늘 저녁, 내 친구이기도 한 발통-트레모르 댁에서 무도회가 있었지...... 부인이 참 매력적이지...... 그녀 남편과 나는 같은 서클에서 거의 매일......
마르셀린: 그 여자 분은 과부인데......
뤼팽(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가 아니래나...... 그녀 남편이 죽은 이후로...... 아니지, 그 전에 나를 소개해주었으면 좋았을걸...... 난 항상 당신만 바라보고 있었거늘...... (여자한테 바싹 다가서며) 오, 아마도 당신은 나를 볼 수가 없었을 거요...... 항상 당신 시선이 닿지 않도록 숨어있다시피 했으니까...... 워낙 수줍은 성격이거든...... 그런 내가 과연 어떻게 당신한테 말이라도 먼저 걸 수가 있었겠소?...... 그러다 마침내 용단을 내린 거요...... 바로 이곳...... 무작정 이곳에 들이닥치기로 말이오...... 한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절도현장에 와 있게 된 겁니다...... 오늘 저녁...... 나는 단지 당신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잠깐 얘기만 나누고는...... 금세 가려고 했던 거요. 그래요, 잠깐 얘기만 나눈 뒤 가려고 했었소...... 그러니 누구와 마주치지 않아야 할 것 아니겠소?...... 지금이라도 난 그냥 이 출구로 나가렵니다...... 지금 당장 말이오...... 지금 당장...... 내 말 알겠죠?......


해설 : 괴도신사의 재림을 자축하며

물론 아르센 뤼팽이라는 인물에게는 그림자도 있고 빛도 있으며, 그 중간의 어스름한 그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아르센 뤼팽의 정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열정과 다채로운 해학(諧謔)의 무지개빛 파노라마에 있다. 치열하고 대범할지언정 무겁고 어두운 것은 결코 뤼팽적(lupinien)이라고 볼 수 없다. 뤼팽은 어디까지나 벨 에포크 시대의 산물이며, 벨 에포크는 아직 세계대전을 경험해보지 못해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유럽 어디서나 우글대던 시절이었다. 뤼팽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꽃 피어난 분위기, 그 속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뤼팽 이미지를 외면하고 굳이 닌자들의 고향인 일본식 도둑의 어두운 이미지를 좇아가는 일부 경우들을 대할 때, 솔직히 안타깝다는 마음뿐이었다. 그것을 결코 취향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기에, 취향보다는 불완전한 일본판 중역에 의한 그릇된 ‘습득’의 결과로 보였기에, 명실상부한 아르센 뤼팽 전집 번역작업은 그 잘못된 ‘습득’의 퇴적층을 갈아엎을 ‘발견’의 쟁기질이 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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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계절 ㅣ 범우문고 10
전혜린 지음 / 범우사 / 199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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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전혜린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천재, 광기, 시대를 앞서간 여인 등등 몇몇의 키워드로만 알고 있었고 정작 전혜린의 글을 제대로 정독하지도 않은 채 본인의 문학적 업적 자체보다 시대적 아이콘으로 더 평가받는 인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2004년 교육방송에서 1950년대 명동의 문인들 이야기를 다룬 명동 백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전부 다 챙겨보지는 못했다. 짤막짤막한 화면 속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배우 이재은이 연기한 전혜린이 절망하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당시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는 문인으로서의 참담함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 자의식의 과잉으로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아마도 배우의 연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극본 때문일 수도 있고, 연출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흔치 않은 경험 때문인지 그 장면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쩌면 그 장면 때문에 전혜린에 대한 내 인상은 그 이후로도 한참 굳어져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단어 하나만 넣어서 검색하면 마치 가지가 좍 펼쳐지듯이 연관성 있는 글들이 줄줄이 딸려 오는데, 전혜린에 대한 어떤 글을 접하고 난 후 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게 맞지, 광기와 사생활로 회자 되는 것이 아니라’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러고 보니 정작 내가 전혜린의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면서 나는 곧바로 전혜린을 검색해 나온 책들 중 번역한 책을 제외한 책들을 주문했다. ‘자신의 문학 세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번역을 하였는데 어째서 이리 칭송되는지 모르겠어. 직접 자기 이야기를 쓴 책을 읽어봐야 진짜 엄청난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결론내리며 말이다.

전혜린의 글에서 나는 ‘슈바빙’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아하, 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 이미 까마득한 오래 전에 나는 절친한 친구와 유럽 배낭 여행을 했었다. 그때 우리의 일정에는 뮌헨이 포함되어 있었고, 여행 책자에서 뮌헨의 주요 명소로 우리나라의 대학로에 해당한다는 ‘슈바빙’이 있었다. 그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기대에 벅차 슈바빙에 도착한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대학생들의 유럽 여행은 최대한 많은 곳을 보되 경비를 아끼기 위해 ‘런던 인 파리 아웃’, 또는 ‘파리 인 런던 아웃’ 두 가지 루트였는데, 뮌헨은 이 루트에서 중간쯤 되는 위치이다. 이미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도시 전체가 그야말로 문화유산인 로마나 바티칸 등등을 앞뒤로 보고 나면 뮌헨 슈바빙은 처음 봤을 때는 시시하게 느껴지고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남지 않은 곳이 되었다. 대체 이 곳이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학로와 비슷한 것인지 어떤 경로로 유럽 여행 가이드북에 실려 있었는지 한동안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0년대 후반보다 훨씬 이전에 출판된 이 책을 읽은 당대의 젊은이들은 전혜린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가보지 못한 독일 거리에 대한 동경과 함께 닿을 수 없는 이상에 대한 동경을 함께 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감히 가보지 못할 것 같은 슈바빙에 대한 상상은 닿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는 이상에 대한 추구와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한다. 청년들에게 전혜린의 작품과 인생이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훨씬 뛰어넘어 그 청년들은 나이가 먹었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쩌면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작가가 되거나,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왜 슈바빙이 그 책에 들어가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글을 읽어나가며 청소년기 독자층에 어필할 정도로 감각적인 전혜린의 문장력은 알겠으나 어딘지 모르게 겉멋이 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평범해져서는 안된다 라는 문장에서 나와 있듯이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늘 생각하고 누구보다 여자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실체가 없는 지적 허영심에 매몰되어버렸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그 시대에 비교할 수 없는 지원과 지적 경험을 누리면서도 책상물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춘기 소녀 감성에 갖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 글을 읽어나가고 있을 때, 딸에 대한 글을 읽으며 여태 책을 읽은 느낌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경험이 들었다.

딸 정화가 어른이 된 후에 어느 피곤하고 삶에 실망을 느낀 저녁 때 이 글을 펴 보기를 원하면서 쓴다며 육아일기는 시작된다. 출생을 촉진하기 위한 주사, 출산 시 어떤 말도 비교가 안 되는 창백한 느낌이었다는 산고, 첫눈에 반한 딸과의 만남, 작가에게 주어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딸이라는 찬탄...... 놀랍게도 전혜린은 ‘자기에 대해 성실하게 살아야 하듯 어린 아이에게도 성실할 것, 아이를 물건으로가 아니라 정신으로 알 것, 아이를 수단으로가 아니라 목적으로 알 것’ 이라고 이야기하고 ‘정화가 가엾은 사람에게 울고 동정할 줄 알고 감동할 줄 아는 영혼의 소유자인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고 적었다. 이렇게까지 절절하게 딸에 대한 애정을 기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생을 택하지도 살지도 않았으므로 결국 남의 생(아이들의 또는 남편의 생) 속에서 그 보상을 찾고자’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아무런 생활도 갖지 않은 어머니가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그리고 환면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며, ‘가장 풍부한 개인적 생활을 가진 여자만이 아이로부터 가장 적은 요구를 한다’는 대목에 있어서는 감탄이 나왔다. ‘자기를 초월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의의를 찾고 실증하고 있는 여인이 가장 겸손한 어머니’이며 ‘여자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생활에 있어서 한 역할을 담당하려는 최근의 일반적인 경향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직업과 어린 아이의 양육을 양립시킬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사회의 설비나 그 밖의 노력과 연구가 등한시되어 있기 때문’이고 ‘직장을 가진 어머니’가 늘어날수록 그에 대한 선처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읽으며 현재의 나도 정신적인 자극을 받는데 당대의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까지도 공감 가능한 지극히 개인적인 그녀의 존재론적 문제의식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면서 정말 오래 살았다면 천재만이 가지는 날카로움, 광기, 번뜩이는 감수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단어와 문장을 넘어서서 남들에게 기억될 정도의 자기업적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다시 책 앞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진정이고 작가 자신이다. 과대평가된 작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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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 전혜린 에세이 2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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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다 다소 산만하기는 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가 완전한 수필을 모은 글인 반면,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는 편지와 일기를 모은 글이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수필이 아니라 나만 보는 일기, 나와 상대 둘 사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룬 편지는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다보니 독자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전혜린의 글과 인생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미있는 책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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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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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들이 사냥 후 가죽을 모아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책임자의 옷을 보니 군인인 것은 알겠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고용된 사냥꾼. 직업 군인들의 집합이 아니기에 부대는 아닌데 그렇다고 해도 아예 민간인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무리. 아마도 미국의 초기 중에서도 초기, 그러니까 나라의 꼴을 갖추기도 전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아직은 체계가 잡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인디언들이 이들을 습격하며 이들은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가까스로 도망친 이들이 가죽의 일부만을 가지고 배에 올랐지만 훨씬 많은 사람은 인디언의 손에 죽고 그보다 더 많은 가죽의 대부분은 뺏기고 만다. 백전노장의 인디언 추장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있다. 그는 백인에게 딸을 빼앗긴 상태이다. 투생이라는 자가 이끄는 또 다른 백인 무리를 만나 자신들이 가져온 가죽을 그들의 말과 총으로 바꾼 뒤 딸을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겨우 목숨을 건져 배를 타고 강을 가고 있는 이들 중에는 대위가 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글래스라는 이름의 사냥꾼이 있고, 톰 하디가 연기하는 피츠제랄드라는 이름의 사냥꾼이 있다. 글래스는 인디언의 습격을 피해 배를 버리고 육지로 가자고 주장하고 피츠제랄드는 배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자고 맞선다. 일단 가죽을 가지고 가기에는 짐이 많아서 강 주변에 숨겨두고 배를 불태우려 했으나 배를 처리하러 보낸 두 명이 그대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 버린다.

육지를 따라 목적지인 요새로 향하는 일행은 이제 퍽 줄어들었다. 일행들이 쉬는 동안 주변을 탐색하던 글래스는 곰의 습격을 받고 겨우 곰을 죽이게 되나 치명상을 입게 된다. 말도 할 수 없고 걸을 수도 없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곰에게 물어뜯긴 글래스. 위기 상황에서도 빠른 판단과 타고난 감각으로 여러 사람을 구했던 사냥꾼은 한순간에 일행 전체의 짐으로 전락한다. 겨울이 되어가며 날은 추워지고 아직 요새까지의 길은 멀었는데 글래스는 숨만 쉬었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이다. 무리를 이끌던 대위는 더 이상 글래스 때문에 늦어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글래스를 죽이고 다른 일행을 살리려고 했으나 글래스의 아들 호크의 애원으로 마음을 바꾼다. 사례비를 걸고 글래스가 죽을 때까지 지켜줄 3명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은 요새로 먼저 떠나기로 한 것이다. 글래스가 죽으면 잘 묻어주라는 명령도 함께 남기고 말이다. 이에 글래스와 인디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아들 호크와 호크의 절친 브리저, 보상금을 노린 피츠제럴드 3명이 글래스를 돌보기 위해 남는다.

호크와 브리저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잠시 떠난 사이 피츠제럴드는 글래스에게 이대로라면 모두 죽을 테니 편안하게 죽는 것을 원하고 싶다면 눈을 깜빡이라고 한다. 한참 눈을 뜨고 있던 글래스가 눈을 감자 피츠제럴드는 글래스를 죽이려 하지만, 막 도착하여 그 과정을 보게 된 호크가 피츠제럴드에게 달려들며 브리저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를 지르자 피츠제럴드는 호크를 찔러 죽이고 호크의 시체를 멀리 끌고 가 버린다. 이 모습을 글래스는 전부 다 보고 있지만 어떤 말도 약간의 움직임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한참 후 도착한 브리저는 호크의 안부를 묻지만 피츠제럴드는 모르는 척을 하고, 다음날 아침 멀리서 수많은 인디언이 다가온다며 자고 있던 브리저를 깨우고 빨리 도망치자고 한다. 브리저는 글래스를 놔두고 갈 수는 없다고 버티지만 피츠제럴드는 어차피 글래스는 죽을 것이라며 구덩이에 글래스를 던지고 흙을 덮어버린다. 브리저는 죄책감에 자신의 물통을 글래스의 몸 위에 던져두고 피츠제럴드와 함께 도망간다.

시간이 지난 후 글래스는 믿을 수 없는 의지로 호크의 시체까지 기어가고, 아들의 시체에서 목걸이를 빼서 걸고 모피와 물통과 도구들을 챙긴 채 기어서 숲속을 지나간다. 죽은 동물의 뼈에 붙은 살점을 뜯어먹고 강가에서 물을 마시며 몸을 회복해가던 중 자신을 뒤쫓아 인디언들의 습격을 피해 강물에 뛰어들어 도망간다. 겨우겨우 연명해가던 중 우연히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이는 인디언을 만나 고기를 얻어 먹는다. 서로 경계하던 그들은 이야기를 하다가 가족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유대감을 쌓는다. 동행하던 중 글래스의 몸이 약해져 더 갈 수 없어지자 인디언은 천막을 만들어주고 모피와 고기를 남겨두고 나서 떠난다. 환상 속에서 생전 인디언 아내가 불러주던 노랫소리, 뿌리를 단단히 내린 나무로 변해 있는 아들을 보던 글래스가 몸이 회복되어 인디언의 뒤를 쫒던 중, 목이 매달려 죽어 있는 인디언을 발견하게 된다. 인디언은 또 다른 무리인 투생 일행에게 잡혔던 것. 글래스는 몸을 숨겼다가 저녁이 되어 그 무리에 접근하고 그들이 데리고 있던 인디언 여성과 함께 말을 타고 도망간다. 요새를 향해 가던 글래스는 또다시 인디언의 습격을 받게 되고 말과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지나 나무에 걸려 겨우 살게 된다.

인디언 때문에 숨기도 불을 피우기도 어려운 상태의 글래스는 절벽으로 떨어질 때 죽은 말의 배를 갈라 그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가 다시 요새를 향해 떠난다. 부하들과 함께 숲속을 수색하던 대위와 만나게 된 글래스. 대위는 피츠제럴드를 체포하려고 하나 이미 피츠제럴드는 대위가 보관하던 금고까지 털어 도망가 버린 후다. 화가 난 대위는 피츠제럴드를 잡기 위해 떠나고, 대위의 만류에도 글래스는 대위와 함께 피츠제럴드를 잡으러 함께 떠난다. 피츠제럴드의 기습에 대위가 죽고, 글래스는 대위의 시체를 말 위에 올려놓고 자신은 다른 말 위에 탄 채로 지나가는데......... 숨어 있던 피츠제럴드가 글래스를 쏴서 말 위에서 떨어뜨린다. 안도와 기쁨으로 글래스의 시체로 다가가던 피츠제럴드는 숨이 탁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데 총에 맞은 것은 대위의 시체였고 대위의 시체로 위장해 있던 것이 글래스. 도망가는 피츠제럴드에게 일격을 가한 글래스에게 다시 피츠제럴드가 달려들고......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받으며 겨우 글래스가 간발의 차로 피츠제럴드를 제압했을 때 인디언 무리가 다시 나타난다. 글래스는 피츠제럴드를 강물에 떠나 보내어 인디언들의 손에 죽게 하고, 자신 또한 인디언들의 처분을 가만히 기다린다. 인디언들은 그를 바라보며 유유히 지나가는데, 글래스가 구조했던 인디언 여성이 말 위에 앉아 있다. 바로 그녀가 인디언 추장의 딸이었던 것.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걸어가는 글래스의 눈앞에 죽은 아내가 미소를 짓고 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글래스의 얼굴에서 영화는 끝난다.


그야말로 이 영화는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디카프리오의 고생의 향연이다. 특히나 곰에게 물어뜯기는 장면, 인디언에게 쫓기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정말 단 1mg의 간도 되어 있지 않은 퍽퍽한 생고기를 먹는 느낌이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만 늘어놓고 보면 극한에서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한 남자의 삶이 전부이다. 그 외에 어떠한 이야기도 없다고 볼 수도 있는데 사실 이렇게 요약하면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전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이다. 정말 놀랍게도 이 영화는 곰에 물리고도 생존해 돌아온 남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런 영화는 사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지루해질 수도 있다. 보는 내내 온 몸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이유는 연출과 촬영 등의 공이 엄청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쪽 분야에 문외한이 나조차도 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중간 중간 나무라는 키워드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줄거리는 마치 꼬아지거나 굽어진 부분이 없는, 가지가 다 잘려진 굵은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뿌리로 튼튼히 버티되, 다른 나무와 접붙이지도 풍성한 곁가지고 없는 그저 직진하는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주인공 휴 글래스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이다. 여러 번의 재수 끝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아마 그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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