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 까치글방 아르센 뤼팽 전집 20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1905년에서 1939년까지 30여 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한 작가의 방대한 상상력과 격동하는 시대의 산물을 읽고 정리하는 시간이 이제야 끝이 났다! 모두 23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아르센 뤼팽 전집의 모든 작품들을 이번에 처음 읽어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책 대여점에서, 우연히 들른 북카페에서 아르센 뤼팽의 모험담을 접할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기에 유명한 에피소드들은 당연히 그 내용은 알고 있었다. 다만 나온 출판사와 번역자가 제각각인데다가 어린이 대상의 편집본들은 상당수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 전집은 시간 순서대로 편집되어 있기에 상호 연결된 스토리를 통해 뤼팽이라는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한 명의 번역가가 투철한 직업 정신과 열렬한 팬심, 집요한 열정, 지치지 않는 근면성실함으로 그야말로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아르센 뤼팽 전집 최종편으로 소개하는 이번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는 프랑스에서조차 완전한 모습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명실 공히 뤼팽 시리즈 최후의 작품이다. 가니마르와 빅투아르가 오랜만에 재등장하고, 제 1권에서처럼 대서양 횡단 여객선상의 괴도의 모습이 공개되어, 전체 시리즈의 완성된 사이클이 제대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특히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작가의 새로운 시도가 배어 있다는 평을 들었으며, 그래서인지 이전과는 다른 아르센 뤼팽의 파격적인 모습이 군데군데 형상화되어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복원된 유일한 단행본을 펼쳐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뤼피니앵으로서 가슴 설레며 읽을 수 있는 문제작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소개하는 소희극(小喜劇)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은 모리스 르블랑이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작업한 희곡작품으로서, 무대에만 올려졌지 한번도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 또한 특별하다. 이 작품은 희극(喜劇)인 만큼, 뤼팽의 재기발랄한 유머가 전체 극을 압도하며 이끌어간다. 특히 코믹한 뤼팽의 매력에 반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두고두고 탐독할 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해설로는 뤼팽 전집을 마감하며 역자로서 느끼는 감회와 함께, 번역작업에 따른 흥미로운 기록들 그리고 그간 도움 받은 참고자료 목록을 제시한다.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1. 폴 시너

“......가령 나, 맥 앨러미가 말이오, 당장 오늘 밤 살해당할 걸 각오하고 어떤 수상쩍은 일에 끼어든다고 한번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당신이 신문 사회면을 담당하게 되어 있다면, 필경 당신은 지금 우리 사이의 이 대담을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시켜야 할 것이오. 거기에 아주 비장한 색채를 가해서 그걸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끔찍한 결말의 전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말이오. 그런 강렬한 느낌이 마지막 줄에 이르도록 점점 가중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자고로 언론인이나 소설가의 기술이란 사건을 어떻게 준비하고 연출하느냐, 특히 처음 도입부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나갈지 등등, 독자들을 어떻게 하면 그대로 몰입하게 만드는가에 있지요. 자, 그렇다면 과연 무슨 수로 몰입하게 하느냐? 그건 나도 말해줄 수 없다오. 전적으로 재능의 비밀에 관한 문제이니까. 만약, 그처럼 언어를 통해 사람의 주의력을 휘어잡는 비결이 당신한테 없다면, 옷이나 속옷을 만들되 결코 소설을 쓴다거나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오. 내 말 알겠고, 패트리셔 존스턴?”

“이 봉투 안에는 내가 당신을 위해 작성한 문서가 하나 들어 있소. 당신은 앞으로 여섯 달이 지난 후에만 그 내용을 개봉해 볼 수가 있어요. 즉 9월 5일, 당신은 문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뒤, 정확히 거기에 지시된 대로 따라야만 합니다. 지금부터 그 모든 것을 당신만 믿고 맡기는 거예요. 앞으로 이 봉투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든지, 아니면 아주 안전한 장소에다 보관해야만 하오. 아무도 알지 못하게 말이오! 아무도!......”

2. 11인의 회동

자고로 인생에서는 자기 눈을 감아야 무언가를 명확히 볼 수 있는 시기가 있는 법이다. 누구라도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간절히 필요로 하게 되는 고요한 안정을 바다는 어렵지 않게 가져다준다.

3. 오퇴유-롱샹 대공(大公) 오라스 벨몽

“결국 사건을 가만히 살펴보건대, 언뜻 뤼팽의 지휘하에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적 움직임이 실은 그를 난관에 빠뜨리려는 수작인 듯하다 이겁니다. 맥 앨러미가 당신한테 ‘도덕적으로 만족스런 건수’ 운운했다고 했죠? 그 사람이나 프레데릭 필즈 같은 청교도가 보기에, 뤼팽 같은 범죄자를 공략해 가진 것을 몽땅 게워내게 함으로써, 결국엔 그의 엄청난 재산으로 자신들의 집단을 강대하게 배불리는 것만큼 도덕적으로 뿌듯하고 가치 있는 사업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감쪽같이 훔치든, 협박을 해서 빼앗든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 새로운 십자군의 행동강령이라고 할까, 신조라고 할까, 아무튼 일종의 모토라면 바로 ‘아르센 뤼팽에 대항하는 마피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여기서 ‘마피아[Maffia]’는 흔히 일컫는 범죄 조직 ‘마피아[Mafia]’에다 ‘f’를 하나 더 첨가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리스 르블랑은 실제 범죄조직에다 허구적인 요소를 살짝 첨가해, 자신의 소설 속에 무리 없이 끌어들인 셈이다. 실제로 소설 속의 마피아는 실제 범죄조직 마피아와 닮았으면서 또한 다른 모습이다/역주).”

4. 마피아

“조직이 바로 열한 명에 의해 결성되었다는 점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이득의 분배 시점에 맞춰 남은 인원이 모두 합해 네 명이나, 심지어 세 명에 불과하다면 막상 전리품은 그 서너 명만이 나눠 가지면 되는 겁니다. 바로 그 때문에 놈들은 자체적으로 인원수를 하나하나 제거해간 거구요. 이제 조만간 연속적인 숙청이 진행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최종 결산 단계에 가서는 단 한 명만 남게 될 겁니다. 결국 오는 9월 말쯤에는 아예 조직 자체가 해체되겠죠.”

5. 로돌프 공(公)

분명 누군가 집 안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건물 전체에 악령이 씐 듯한 분위기...... 권총을 부여잡고 잠복해 있거나, 되는 대로 흔적을 따라다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눈에는 아무도 붙잡히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바로 그 옆 방으로부터 옷 스치는 소리, 숨소리, 심지어 마루판이 삐걱대는 소리까지 서로 짜맞춘 듯 가세해, 분명 누군가 있긴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러면 또다시 득달같이 달려들어 문을 열어보는 오라스 벨몽...... 하지만 아무도 없기는 마찬가지...... 그림자도 소음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 가끔은 부랴부랴 내빼는 발소리가 어렴풋이 꼬리를 남길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러고 나서는 영락없는 적막이 깔렸고 말이다. 오라스 벨몽은 이처럼 악마적인 조작행위에 대해 점점 혼란스러워졌고,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확인을 해보면 언제나 비밀 출입구는 완전 봉쇄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도대체 이 놈들, 무슨 수로 여길 드나들고 있는 걸까? 이 집! 이 아르센 뤼팽의 집을 말이다!

6. 마피아노의 복수

과연 경찰 입장에서 그 모든 사안마다 좌절의 벽에 부닥쳤다는 고백을 순순히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이번 사건 전체는 물론이고, 그밖에 해결되지 않은 여타 사건들까지 싸잡아, 어차피 괴도(怪盜)로서의 지난 행적상 언제든 범죄행각으로 귀결되는 게 당연한 도당의 우두머리와 어느 음험한 마피아 사이의 알력 탓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설명방법 아니겠는가 말이다! 항상 유명세와 무사불패(無事不敗)의 전력이 공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도발처럼 여겨지는, 저 붙잡히는 법 없는 인물의 후광을 이용할 기막힌 기회라고나 할까? 역시 경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측간 곧 신속한 반격이 있을 거이며, 사태가 경찰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 결국 어느 진영에서건 조만간 공권력의 협조를 구해오리라 기대하면서, 경찰은 그 때 본격적으로 싸움에 개입해 모두를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일단 패트리셔와 오라스 벨몽은 적극적인 추적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치안국이 우선 ‘사태관망’을 유지했고, 혐의자들을 거짓 안전 속에 안주하게끔 놔두자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패트리셔와 오라스 벨몽 그리고 유모 할멈 빅투아르와 어린 로돌프는 무려 4주 동안 여기저기 그늘이 드리워진 광대한 메종-루즈의 아름다운 영지에서 평화로운 휴힉을 맛볼 수 있었다. 정원의 중앙 가로수 길은, 양쪽으로 아케이드처럼 다듬어져 궁륭을 이루는 보리수들 아래로, 석조화분 및 대리석 조각상들이 도열한 가운데 뻗어나가, 저 멀리 초록 빛 초원과 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앞에 두고 센 강에 인접해 있었다.

7.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어이쿠, 암호랑이 소리네! 사람들 얘기가, 며칠 전 이동 동물원에서 암호랑이 한 마리가 빠져나갔다는 거야. 그 놈이 글쎄 이 지방에서 ‘코르네유 성(城)의 처녀림’이라 흔히 부르는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는군. 사람들이 몰이 수색을 하는 와중에 호랑이가 상처를 입은 데다, 그 때문에 아주 사납고 위험해졌다고 했어. 만약 패트리셔가 그 호랑이와 맞닥뜨린다면......”

8. 새로운 전사(戰士)

암호랑이는 진짜 주의 깊게 그 모든 지시사항을 새겨듣는 분위기였다. 뿐만 아니라, 베슈 쪽으로는 한없이 아쉬운 눈길을 보냈는데, 마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그냥 두고 떠나는 심정인 듯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인이 맡긴 사명을 받드는 것에 우선 자부심을 느끼는지,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할 모양이었다. 녀석은 천천히 한 발 한 발 아이한테로 다가가 그 듬직한 등허리를 내주었다. 아이는 냉큼 그 위로 올라탔고, 호랑이 머리를 한두 차례 가볍게 토닥이고는, 목덜미를 팔로 감아 안으며 이렇게 외쳤다.
“가자!”

9. 금고

“모든 신분증을 차지하고, 그래서 결국 여기 이 금고들 속 수십억 달러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거머쥔 아르센 뤼팽이시란 말이다! 맥 앨러미와 필즈가 마피아 단체를 재건하고, 그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나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조직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나는 그들이 꾸미고 있는 이 일 깊숙이 잠입해 들어왔었다. 물론, 내 이익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켜내기 위함이었지. 나는 그들에게 내 거처와 부하들, 은신처들, 지하 아지트들, 비밀통로들, 은닉처들에 관한 모든 정보를 총망라해 안겨주었어. 결국에는, 내 전 재산을 은밀히 모아두고 있던 바로 이 금고들에 너희들 모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10. S.O.S

“이렇게 해서 150여 명의 경찰관들, 40명의 갱단, 그리고 그만한 숫자의 소총과 권총들은 아르센 뤼팽과 그 연인, 그리고 한 마리 사나운 고양이 앞에서 줄행랑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하나같이 엉터리들 아닌가! 그리도 많은 인원이...... 그렇게 막강한 경찰력이 말이야!......”

11. 결혼

돈은 고스란히 되돌려줄 것이오.
실은 이 몸이
노르망디호(號)(당시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객선/역주)에
좌석을 좀 예약해야 하거든.
그대한테 빌린 돈은
거기 선상에서 하룻저녁 승객들의 시계와 지갑을 대상으로 멋들어진 마슐 쇼를
선보임으로써 단번에 상환될 것이니 염려 놓으시도록!
A. L.

아르센 뤼팽의 어떤 모험(희곡)

마르셀린: 누, 누구시죠?
뤼팽: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잠시 그대로 있어요...... 아무 생각 말고...... 차차 설명하리다...... (마르셀린,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오, 이런...... 두려워 말아요......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마르셀린: 하지만......
뤼팽: 소리 좀 죽여요, 제발...... 우리 소리가 새어나가면 곤란합니다......(다시 문 쪽으로 가 동향을 살피고 돌아온다.) 그럴 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어요. 내가 당신을 위해 이곳에 와서, 이렇게 당신 곁에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선 안 됩니다. (마땅한 설명방법을 깨달은 듯, 좀더 강하게 되풀이한다.) 그래요, 당신을 위해서 온 거요! 오늘 저녁, 당신은 발통-트레모르 댁 무도회에 왔었소...... 거기서 당신을 보았지...... 오, 실은 그게 처음은 아니었소...... 항상 당신을 따라다녔다오...... 시장에서도......
마르셀린(놀란 눈으로 듣고 있더니): 시장에는...... 간 적이 없는데......
뤼팽: 아, 내 말은...... 백화점에 말이오. 그리고 극장에서도 봤었지......
마르셀린: 극장엔 안 가는데......
뤼팽(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오, 제발 내 말 좀 끊지 말아주면 고맙겠소...... 10분밖에는 시간이 없단 말이오......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과 단둘이 얘기할 기회를 고대해왔는지 모르오!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외다! 그러다 마침내 오늘 저녁, 내 친구이기도 한 발통-트레모르 댁에서 무도회가 있었지...... 부인이 참 매력적이지...... 그녀 남편과 나는 같은 서클에서 거의 매일......
마르셀린: 그 여자 분은 과부인데......
뤼팽(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가 아니래나...... 그녀 남편이 죽은 이후로...... 아니지, 그 전에 나를 소개해주었으면 좋았을걸...... 난 항상 당신만 바라보고 있었거늘...... (여자한테 바싹 다가서며) 오, 아마도 당신은 나를 볼 수가 없었을 거요...... 항상 당신 시선이 닿지 않도록 숨어있다시피 했으니까...... 워낙 수줍은 성격이거든...... 그런 내가 과연 어떻게 당신한테 말이라도 먼저 걸 수가 있었겠소?...... 그러다 마침내 용단을 내린 거요...... 바로 이곳...... 무작정 이곳에 들이닥치기로 말이오...... 한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절도현장에 와 있게 된 겁니다...... 오늘 저녁...... 나는 단지 당신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잠깐 얘기만 나누고는...... 금세 가려고 했던 거요. 그래요, 잠깐 얘기만 나눈 뒤 가려고 했었소...... 그러니 누구와 마주치지 않아야 할 것 아니겠소?...... 지금이라도 난 그냥 이 출구로 나가렵니다...... 지금 당장 말이오...... 지금 당장...... 내 말 알겠죠?......


해설 : 괴도신사의 재림을 자축하며

물론 아르센 뤼팽이라는 인물에게는 그림자도 있고 빛도 있으며, 그 중간의 어스름한 그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아르센 뤼팽의 정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열정과 다채로운 해학(諧謔)의 무지개빛 파노라마에 있다. 치열하고 대범할지언정 무겁고 어두운 것은 결코 뤼팽적(lupinien)이라고 볼 수 없다. 뤼팽은 어디까지나 벨 에포크 시대의 산물이며, 벨 에포크는 아직 세계대전을 경험해보지 못해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유럽 어디서나 우글대던 시절이었다. 뤼팽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꽃 피어난 분위기, 그 속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뤼팽 이미지를 외면하고 굳이 닌자들의 고향인 일본식 도둑의 어두운 이미지를 좇아가는 일부 경우들을 대할 때, 솔직히 안타깝다는 마음뿐이었다. 그것을 결코 취향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기에, 취향보다는 불완전한 일본판 중역에 의한 그릇된 ‘습득’의 결과로 보였기에, 명실상부한 아르센 뤼팽 전집 번역작업은 그 잘못된 ‘습득’의 퇴적층을 갈아엎을 ‘발견’의 쟁기질이 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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