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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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유리 동물원 두 작품이 실려 있다.

읽게 된 계기는 작가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또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은 비비안 리.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의 여주인공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 책의 표지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한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얼굴이 정면으로 잡힌 부분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생전에도 유명세를 떨쳤던 작가인 것 같은데, 아마도 그가 살아 있던 시기를 좀 더 이해한다면 작품이 더 재미있어질 것 같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살고 있는 내가 그의 작품의 분위기에 젖어들기에는 어려웠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그 시공간의 뛰어넘는 재미가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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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0
이광수 지음, 정영훈 엮음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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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를 넣으면 천연두를 벗어난다. 아주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앓더라도 경하게 앓는다. 그러므로 근년에 와서는 누구든지 우두를 넣으며 그래서 별로 곰보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정신에도 마마가 있으니까 정신에도 천연두가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든지 질투라든지 실망, 낙담, 궤휼, 간사, 흉악, 음란, 행복, 기쁨, 성공 등 인생의 만반 현상은 다 일종 정신적 마마라. 소위 약은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의 괴로워하는 약을 차마 보지 못하여 아무쪼록 그네로 하여금 일생에 이 마마를 겪지 않도록 하려 하나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지 못할 것이다. 야매한 사람들이 마마에 귀신이 있는 줄로 믿는 것은 잘못이어니와 이 정신적 마마야말로 귀신이 있어서 지키는 부모 몰래 그네의 사랑하는 자녀의 정신 속에 숨어들어 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자녀에게 인생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방면을 감추려 함은 마치 공기 중에는 여러 가지 독귬이 있다 하여 자녀들을 방 안에 가두어 두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바깥 독균 많은 공기에 익지 못한 자녀의 내장은 독균이 들어가자마자 곧 열이 나고 설사가 나서 죽어 버린다. 그러나 평소에 바깥 공기에 익어서 내장에 독균을 대항할 만한 힘을 기르면 여간한 독균이 들어오더라도 무섭지를 아니하다. 한 번 우두로 앓은 사람은 천연두 균을 저항하는 힘이 있는 것과 같다.

선형은 지금껏 방 안에 갇혀 있었다. 그는 공기 중에 독균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우두도 넣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지금 질투라는 독균이 들어갔다. 사랑이라는 독균이 들어갔다. 그는 지금 어찌할 줄을 모른다. 그가 만일 종교나 문학에서 인생이라는 것을 대강 배워 사랑이 무엇이며 질투가 무엇인지를 알았던들 이 경우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언마는 선형은 처음 이렇게 무서운 병을 당하였다.

선형은 얼마 울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지금 지나간 자기의 심리를 돌아보고 깜짝 놀라며 진저리를 쳤다. 선형의 눈은 둥그래진다.

'내가 어찌 되었는가.' 하고 한참 숨을 멈춘다. 첫 번 지내 보는 그 아픈 경험이 마치 캄캄한 밤과 같은 무서움을 준다. '이게 무엇인가.' 하고 오싹오싹한 소름이 두어 번 전신으로 쪽쪽 지나간다. 그러다가 멀거니 차실을 돌라보면서

'퍽도 오래 있네'  

 

춘원 이광수의 문학적 성과는 비전문가인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의 친일행적 또한 동일하다. 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위해 발췌한 일부만 읽었던 적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의 지위를 획득한 무정이라는 소설을 다 읽었다. 엄청난 사람이구나, 아까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인연이 있었던 피천득의 수필 춘원이 생각났다. 피천득의 말처럼, 차라리 춘원 이광수가 변절하기 전 세상을 떠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춘원에 대하여는 정말인 것, 거짓말인 것, 충분히, 많이 너무 많이 글로 씌어지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왔다. 구태여 내 무얼 쓰랴마는, 마침 쓸 기회가 주어졌고 또 짧게나마 쓰고 싶은 생각이 난 것이다.

그는 나에게 워즈워스의 <수선화>로 시작하여 수많은 영시를 가르쳐 주었고,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읽게 하였고, 나에게 인도주의 사상과 애국심도 불어넣었다.

춘원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다. 그는 남을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을 모략중상은 물론 하지 못하고, 남을 나쁘게 말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남의 좋은 점을 먼저 보며, 그는 남을 칭찬하는 기쁨을 즐기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가 비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게 여기게 태어났었다. 그래서 그는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하지 못하고 냉정해야 할 때 냉정하지 못했다. 그는 남과 불화하고는 자기가 괴로워서 못 살았다.

그는 정직하였다. 그를 가리켜 위선자라 말한 사람도 있으나, 그에게는 허위가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순진하였다. 누가 자기를 칭찬하면 대단히 좋아하였다. 소년 시대부터 그의 명성은 누구보다도 높았지만, 그는 교태가 없었다. 나는 3년 이상이나 한 집에 살면서도 거만하거나 텃세를 부리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자기의 지식이나 재주를 자인하면서도 덕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높은 인격에 비하면 재주라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였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작품은 <가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인공도 '가실'이었다. 그는 글을 수월하게 썼다. 구상하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신문소설 1회분 쓰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일이 드물었다. 써내려간 원고지를 고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의 원고는 누구의 것보다도 깨끗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읽기에도 그 흐름이 순탄하다.

그의 일생은 병의 불연속선이었다. 그러나 그는 낡아 빠지거나 시들지 않았었다. 마음이 평화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는 싱싱하고 윤택하고 '오월의 잉어' 같았다. 그를 대하는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어떤 계급의 사람이거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들 한없는  매력을 느꼈다.  그의 화제는 무궁무진하고 신선한 흥미가 있었다. 그와 같이 종교.철학.문학에 걸쳐 해박한 교양을 가진 분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는 신부나 승려가 될 사람이었다. 동경 유학 시절에 길가의 관상쟁이가 그를 보고, 출가할 상이나 눈썹이 탁해서 속세에 산다고 하였다. 그는 욕심이 적은 사람이었다. 30 이후로는 중류 이상의 생활을 하였으나, 살림살이는 부인이 하였고 자기는 그때 돈으로 매일 약2원의 용돈이 있으면 만족하였다. 한번은 내가 어떤 가을 석왕사로 갔더니 춘원이 혼자 와 계셨다. 그때 그에게는 가진 돈이 10전밖에는 없었다. 거리에 나왔다가 문득 오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산을 좋아하였다. 여생을 산에서 보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아깝게도 크나큰 과오를 범하였었다. 1937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을까.

 지금 와서 그런 말은 해서 무엇하리. 그의 인간미, 그의 문학적 업적만을 길이 찬양하기로 하자. 그가 나에게 준 많은 편지들을 나는 잃어버렸다. 지금 기억되는 대목 중에 하나는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할 것이나, 기쁜 일이 있더라도 기뻐할 것이 없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항상 마음이 광풍제월 같고 행운유수와 같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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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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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십 년이라는 세월 저편에서 그를 찾느라 여념이 없는 그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아니면 스토너 밸리가 굽어보이는 곳에 잠시 멈춰서서, 그녀가 오렌지를 함께 먹으려고 멈췄던 곳이 여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남자든 여자든 그녀의 진정성에 필적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 곁에 머물렀더라면, 그는 자신의 삶에 좀더 집중하며 의욕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클래식 음악은 전혀 그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는 에니스머 사중주단이 저명하며 여전히 클래식 음악계의 존경받는 스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연주회에도 가지 않았고,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박스를 사지도, 아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싶지도, 사진에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고 싶지도, 그녀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자세한 소식들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었다. 단춧구멍에 꽂은 민들레, 벨벳 머리끈, 어깨에 둘러멘 캔버스 가방, 시원시원하고 꾸밈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골격이 튼튼한 아름다운 얼굴을.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그 여자를 자신이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리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언 매큐언의 소설 중 제일 좋은 소설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자 최고의 마무리였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동명의 영화에 나오는 시얼샤 로넌을 정말 좋아하고,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가가 직접 썼다고 하기에 영화를 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설의 감동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금이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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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ㅣ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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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조용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간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시간이자, 필요한 무엇이든 창고에 그득하게 채워 넣는 시간이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모아 가까이에 두면 마음이 놓였는데, 온기와 생각 그리고 중요하고 가치 있고 심지어 친숙하기까지 한 나만의 것을 깊은 구덩이 안에 묻어 놓고 내 손으로 지킬 수 있었다.
이제 추위와 폭풍우와 어둠이 몰려들어도 문제없었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닫혔고 빈틈없는 이가 온기와 고독 속에서 만족스러워하고 있었으니 추위와 폭풍우와 어둠이 벽을 더듬으며 입구를 찾아 헤매더라도 찾을 수가 없을 터였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할지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포기할 방법은 없었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배를 좋아하는 이들한테는 어떤 연대감이 들어. 무민파파만 해도 그래. 어느 좋은 날 배를 몰고 훌쩍 떠나 버리잖아. 완전히 자유롭게 말이야. 가끔, 그러니까 아주 가끔은 나랑 무민파파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아주 조금이지만, 아무튼."

 

스너프킨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불현듯 무민 가족이 그리워졌다.

'무민 가족도 성가시게 굴었어.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했지. 어디에서나 함께 있었고. 하지만 무민 가족과는 함께 있어도 혼자라고 느낄 수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스너프킨은 놀랍고도 궁금해졌다.

'그렇게 긴 여름을 같이 지내 왔으면서도 무민 가족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눈치채지 못했지?'

 

이 책의 본문 시작 전에는 어머니께, 라고 씌어 있었다.

이 책과 쌍을 이루는 무민파파와 바다, 바로 앞 권의 본문 시작 전에는 아버지께, 라고 씌어 있다.

위험한 여름, 무민의 겨울처럼 짝을 이루는 책이다.

앞 권인 무민파파와 바다가 무민 골짜기를 떠난 무민 가족들의 이야기라면, 뒷 권인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무민 골짜기에 남아 있는 무민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책의 소개를 읽어보면 이 무렵 작가는 부모와 관련하여 상실의 일이 있었던 것 같고, 그로 인해 무민 연작 소설의 마무리를 이런 형식으로 지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런 배경 지식 없이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늦가을에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읽고 있자니, 지나치게 몰입되어서인지 마음이 쓸쓸하고 호젓하다. 어쩌면 지금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몰입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무민 연작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9월이었다. 지금은 11월. 3개월 동안 8권을 천천히 읽은 셈이다. 올 가을의 독서는 또 이렇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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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파파와 바다 ㅣ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7
토베 얀손 지음, 허서윤.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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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겠지만, 계속 소풍을 가 있을 수는 없잖아요. 언젠가는 끝나야죠. 그러다 갑자기 월요일 같아지고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이 진짜라고 믿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 겁이 나요......"

 

맞다. 즐거운 시간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 지나고 나면 정말 그 시간이 존재했을까, 아련하고 그리워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무민 연작 소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마치 아껴 놓은 과자를 하나하나 까먹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제 과자는 다 먹어 간다.

 

처음 무민을 읽기 시작했을 떄만하더라도 꽤 더웠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날이 추워지고 한 해가 저물어간다. 이 한 해도 이렇게 가는구나, 그렇지만 그저 시간이 흐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무민 가족이 성숙해졌듯이, 나도 일 년 동안 조금은 더 여물어졌겠지. 그리고 나에게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내가 만들어 갈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것도 아쉬움을 소거하는 것도 돌이켜보면 새로운 책을 접하고 맛보고 음미하는 때와 늘 연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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