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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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조용히 겨울을 향해 가는 시간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시간이자, 필요한 무엇이든 창고에 그득하게 채워 넣는 시간이었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모아 가까이에 두면 마음이 놓였는데, 온기와 생각 그리고 중요하고 가치 있고 심지어 친숙하기까지 한 나만의 것을 깊은 구덩이 안에 묻어 놓고 내 손으로 지킬 수 있었다.
이제 추위와 폭풍우와 어둠이 몰려들어도 문제없었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닫혔고 빈틈없는 이가 온기와 고독 속에서 만족스러워하고 있었으니 추위와 폭풍우와 어둠이 벽을 더듬으며 입구를 찾아 헤매더라도 찾을 수가 없을 터였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할지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포기할 방법은 없었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배를 좋아하는 이들한테는 어떤 연대감이 들어. 무민파파만 해도 그래. 어느 좋은 날 배를 몰고 훌쩍 떠나 버리잖아. 완전히 자유롭게 말이야. 가끔, 그러니까 아주 가끔은 나랑 무민파파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아주 조금이지만, 아무튼."

 

스너프킨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불현듯 무민 가족이 그리워졌다.

'무민 가족도 성가시게 굴었어.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했지. 어디에서나 함께 있었고. 하지만 무민 가족과는 함께 있어도 혼자라고 느낄 수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스너프킨은 놀랍고도 궁금해졌다.

'그렇게 긴 여름을 같이 지내 왔으면서도 무민 가족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눈치채지 못했지?'

 

이 책의 본문 시작 전에는 어머니께, 라고 씌어 있었다.

이 책과 쌍을 이루는 무민파파와 바다, 바로 앞 권의 본문 시작 전에는 아버지께, 라고 씌어 있다.

위험한 여름, 무민의 겨울처럼 짝을 이루는 책이다.

앞 권인 무민파파와 바다가 무민 골짜기를 떠난 무민 가족들의 이야기라면, 뒷 권인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무민 골짜기에 남아 있는 무민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책의 소개를 읽어보면 이 무렵 작가는 부모와 관련하여 상실의 일이 있었던 것 같고, 그로 인해 무민 연작 소설의 마무리를 이런 형식으로 지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런 배경 지식 없이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늦가을에 늦가을 무민 골짜기를 읽고 있자니, 지나치게 몰입되어서인지 마음이 쓸쓸하고 호젓하다. 어쩌면 지금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몰입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무민 연작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9월이었다. 지금은 11월. 3개월 동안 8권을 천천히 읽은 셈이다. 올 가을의 독서는 또 이렇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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