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0
이광수 지음, 정영훈 엮음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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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를 넣으면 천연두를 벗어난다. 아주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앓더라도 경하게 앓는다. 그러므로 근년에 와서는 누구든지 우두를 넣으며 그래서 별로 곰보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정신에도 마마가 있으니까 정신에도 천연두가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든지 질투라든지 실망, 낙담, 궤휼, 간사, 흉악, 음란, 행복, 기쁨, 성공 등 인생의 만반 현상은 다 일종 정신적 마마라. 소위 약은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의 괴로워하는 약을 차마 보지 못하여 아무쪼록 그네로 하여금 일생에 이 마마를 겪지 않도록 하려 하나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지 못할 것이다. 야매한 사람들이 마마에 귀신이 있는 줄로 믿는 것은 잘못이어니와 이 정신적 마마야말로 귀신이 있어서 지키는 부모 몰래 그네의 사랑하는 자녀의 정신 속에 숨어들어 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자녀에게 인생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방면을 감추려 함은 마치 공기 중에는 여러 가지 독귬이 있다 하여 자녀들을 방 안에 가두어 두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바깥 독균 많은 공기에 익지 못한 자녀의 내장은 독균이 들어가자마자 곧 열이 나고 설사가 나서 죽어 버린다. 그러나 평소에 바깥 공기에 익어서 내장에 독균을 대항할 만한 힘을 기르면 여간한 독균이 들어오더라도 무섭지를 아니하다. 한 번 우두로 앓은 사람은 천연두 균을 저항하는 힘이 있는 것과 같다.

선형은 지금껏 방 안에 갇혀 있었다. 그는 공기 중에 독균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우두도 넣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지금 질투라는 독균이 들어갔다. 사랑이라는 독균이 들어갔다. 그는 지금 어찌할 줄을 모른다. 그가 만일 종교나 문학에서 인생이라는 것을 대강 배워 사랑이 무엇이며 질투가 무엇인지를 알았던들 이 경우에 있어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언마는 선형은 처음 이렇게 무서운 병을 당하였다.

선형은 얼마 울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지금 지나간 자기의 심리를 돌아보고 깜짝 놀라며 진저리를 쳤다. 선형의 눈은 둥그래진다.

'내가 어찌 되었는가.' 하고 한참 숨을 멈춘다. 첫 번 지내 보는 그 아픈 경험이 마치 캄캄한 밤과 같은 무서움을 준다. '이게 무엇인가.' 하고 오싹오싹한 소름이 두어 번 전신으로 쪽쪽 지나간다. 그러다가 멀거니 차실을 돌라보면서

'퍽도 오래 있네'  

 

춘원 이광수의 문학적 성과는 비전문가인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의 친일행적 또한 동일하다. 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위해 발췌한 일부만 읽었던 적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소설의 지위를 획득한 무정이라는 소설을 다 읽었다. 엄청난 사람이구나, 아까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인연이 있었던 피천득의 수필 춘원이 생각났다. 피천득의 말처럼, 차라리 춘원 이광수가 변절하기 전 세상을 떠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춘원에 대하여는 정말인 것, 거짓말인 것, 충분히, 많이 너무 많이 글로 씌어지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왔다. 구태여 내 무얼 쓰랴마는, 마침 쓸 기회가 주어졌고 또 짧게나마 쓰고 싶은 생각이 난 것이다.

그는 나에게 워즈워스의 <수선화>로 시작하여 수많은 영시를 가르쳐 주었고,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읽게 하였고, 나에게 인도주의 사상과 애국심도 불어넣었다.

춘원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다. 그는 남을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을 모략중상은 물론 하지 못하고, 남을 나쁘게 말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남의 좋은 점을 먼저 보며, 그는 남을 칭찬하는 기쁨을 즐기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가 비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게 여기게 태어났었다. 그래서 그는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하지 못하고 냉정해야 할 때 냉정하지 못했다. 그는 남과 불화하고는 자기가 괴로워서 못 살았다.

그는 정직하였다. 그를 가리켜 위선자라 말한 사람도 있으나, 그에게는 허위가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순진하였다. 누가 자기를 칭찬하면 대단히 좋아하였다. 소년 시대부터 그의 명성은 누구보다도 높았지만, 그는 교태가 없었다. 나는 3년 이상이나 한 집에 살면서도 거만하거나 텃세를 부리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자기의 지식이나 재주를 자인하면서도 덕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높은 인격에 비하면 재주라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였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자기 작품은 <가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인공도 '가실'이었다. 그는 글을 수월하게 썼다. 구상하는 시간도 있었겠지만, 신문소설 1회분 쓰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일이 드물었다. 써내려간 원고지를 고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의 원고는 누구의 것보다도 깨끗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읽기에도 그 흐름이 순탄하다.

그의 일생은 병의 불연속선이었다. 그러나 그는 낡아 빠지거나 시들지 않았었다. 마음이 평화로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는 싱싱하고 윤택하고 '오월의 잉어' 같았다. 그를 대하는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어떤 계급의 사람이거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들 한없는  매력을 느꼈다.  그의 화제는 무궁무진하고 신선한 흥미가 있었다. 그와 같이 종교.철학.문학에 걸쳐 해박한 교양을 가진 분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는 신부나 승려가 될 사람이었다. 동경 유학 시절에 길가의 관상쟁이가 그를 보고, 출가할 상이나 눈썹이 탁해서 속세에 산다고 하였다. 그는 욕심이 적은 사람이었다. 30 이후로는 중류 이상의 생활을 하였으나, 살림살이는 부인이 하였고 자기는 그때 돈으로 매일 약2원의 용돈이 있으면 만족하였다. 한번은 내가 어떤 가을 석왕사로 갔더니 춘원이 혼자 와 계셨다. 그때 그에게는 가진 돈이 10전밖에는 없었다. 거리에 나왔다가 문득 오고 싶어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산을 좋아하였다. 여생을 산에서 보내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아깝게도 크나큰 과오를 범하였었다. 1937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더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을까.

 지금 와서 그런 말은 해서 무엇하리. 그의 인간미, 그의 문학적 업적만을 길이 찬양하기로 하자. 그가 나에게 준 많은 편지들을 나는 잃어버렸다. 지금 기억되는 대목 중에 하나는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할 것이나, 기쁜 일이 있더라도 기뻐할 것이 없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항상 마음이 광풍제월 같고 행운유수와 같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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