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6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오형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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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제목이 왜 통이야? 생각할 수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알게 된다. 아, 이 작품의 주인공은 통이구나.

등장인물 소개에 나오는 사람들이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잠깐 나오다 말고, 심지어 수사하는 사람들도 계속 바뀐다. 만약 이 작품을 드라마나 연극, 영화로 만들면 보는 사람들이 오해하기 딱이다. 혹시 연기하는 배우가 사정으로 중도하차한건가? 이렇게.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죽 끌고 나가는 매력적인 탐정도 형사도 범인도 없고 오로지 통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등장한다. 중반쯤 읽다보면 알게 된다. 아, 범인은 누구로구나.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범인의 알리바이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가 관건이 된다.

아마 실제 사건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흔히들 말하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고 하는 상황. 노련하고 경험많은 수사관이라면 대체로 누가 범인이겠다는 판단은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는 일이 남는다.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죽 등장시키다가 마지막 장에서야 그들 중 이 사람이 범인이었어! 라고 이야기하는 다른 추리 소설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 소설이 살짝 지루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그렇지만 알리바이를 검증해 나가는 장면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는 마지막 꼭지에서 '현실적 미스터리소설' 이라는 평가는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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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신부의 동심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
G. K. 체스터튼 지음, 박용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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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십자가
"범인은 창조적인 예술가이나 탐정은 비평가에 지나지 않지"

비밀의 정원
"두 가지 빛깔의 열매가 여는 나무가 있는 정원에 가까이 가지 말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사나이가 죽은 악마의 정원에는 문 앞에도 서지 말라"

기묘한 발걸음 소리
창문은 폭풍이 일 것 같은 일몰 뒤의 잔광에 여전히 물들어 있었다. 그런 다음 사나이는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한 손으로 카운터를 짚고 훌쩍 곡예사처럼 가볍게 뛰어넘어 신부 앞에 버티고 서더니, 굉장히 큰 손으로 상대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얌전히 굴어," 하고 재빠른 말로 속삭였다. "겁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만일……."
"내가 겁을 주고 싶군." 브라운 신부는 북처럼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없이 많은 구더기와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마르코 복음 제8장)로 놀라게 해주고 싶어."
"예치소 계원 치고는 이상한 놈 다 보겠군" 하고 상대가 말했다.
"나는 신부요, 프랑보우 씨. 당신의 참회를 들을 준비는 되어 있소." 브라운 신부는 말했다.
상대는 잠시 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버티고 서 있더니, 조금 뒤 비틀거리는 것처럼 뒤로 물러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참으로 묘한데요" 신부는 말했다. "도둑이나 집 없는 떠돌이 부랑자가 회개를 하는데, 한편에서는 돈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옳지 못한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고 신께나 사람들에게나 죄값을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다 하고, 실례지만 당신은 내 영역을 약간 침해하고 있는 것 같소. 그가 뉘우쳤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 나이프와 포크를 보십시오. 당신네들은 참된 12 어부들이고, 여기 있는 것은 당신네들의 물고기 모양의 은식기입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나를 사람을 잡는 어부로 만들어 주셨소."
"당신은 그 사나이를 잡았습니까?"
대령이 얼굴을 찡그리고 물었다.
브라운 신부는 상대의 찡그린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소, 눈에 보이지 않는 갈고리와 긴 끈으로 잡았지요. 그 끈은 그가 세상 끝까지 방황하며 갈 수 있을 만큼 길게 해 두었지만, 힘주어 잡아당기면 그는 곧 돌아올 겁니다."

날아다니는 별
사람이란 선량한 생활이라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쁜 짓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이야기야. 악의 길은 오로지 떨어져내릴 뿐이지. 친절한 남자가 술꾼이 되면 순간 잔혹해진다네. 정직한 사나이라도 사람을 죽이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지.

보이지 않는 남자
말이라는 것은 모두 이렇게 쓰여지고 있소. 상대로부터 만족한 답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글자의 뜻으로 보면 엄밀하게 질문에 맞는 답이란 없는 법이오.

이즈레일 가우의 명예
"이것은 범죄 이야기가 아니오. 얼핏 보기에 색다르고 좀 비뚤어진 오로지 정직하기만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좋겠소. 우리의 상대는 자신의 몫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는, 이 지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남자일 것이오. 그 남자의 종교였던 미개인의 산 논리에 대한 연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이 이야기요.

예기치 못한 일
"당신도 이것을 색다르다고 했고 나도 색다르다고 했소. 그런데 두 사람은 정반대되는 말을 하고 있소. 현대인의 머리는 언제나 두 가지 다른 생각을 혼동하고 있소. 다시 말해서 이상한 일이라는 뜻으로의 신비로움과 복잡한 것이라는 뜻으로의 신비로움을 한데 섞은 것이지요. 거기에 현대인이 기적을 믿지 못하는 이유의 절반이 있소. 기적은 놀랍기는 하지만 단순하오. 기적이기 때문에 단순한 것이오. 기적은 자연이나 인간의 의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닥쳐오는 대신 신, 또는 악마에게서 직접 닥쳐오는 힘이오. 그러므로 당신이 이 사건을 이상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기적적이어서 옳지 못한 인도인이 작용케 한 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물론 이 사건이 영적 또는 악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오. 인간을 둘러싼 어떠한 영향력에 의해 괴상한 죄가 인간의 생활 속에 나타나는가는 다만 천국과 지옥만이 알고 있소.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로 본 내 이야기의 요점은 이러하오. 만약 이 사건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마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상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신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다시 말해서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오. 기적은 질적으로는 신비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일어나기는 단순하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매우 단순한 것과는 반대 형태로 일어났소."

살라딘 공작의 죄악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여기서 그림 뒤쪽에 있다는 겁니다."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래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 다른 장소라야만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어디든 다른 곳에서 진정한 가해자에게 징벌이 내리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잘못 짐작한 사람에게 그것이 내릴 것 같습니다."
공작은 까닭을 알 수 없는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그늘진 얼굴에 눈만이 야릇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부의 마음에는 새롭고 기민한 생각이 소리도 없이 폭발했다. 살라딘은 재치가 넘쳐흐르면서도 엉뚱한 데가 있는데, 거기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과연 공작은 ……온전한 제 정신일까?
"예상 밖의 사람, 예상 밖의 사람……." 신부는 언제까지나, 사교적인 감탄치고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브라운 신부는 이윽고 제3의 진리를 가까스로 깨달았다. 눈앞의 거울에, 소리가 나지 않는 문이 열려 있고 거기에 폴이 그 창백하고 감동 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비쳐 있었다.

신의 철퇴
"어떻게 그것을 모두 알았지요? 당신은 악마요?"
"인간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이 마음 속에 온갖 악마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 들어 보십시오."

아폴론의 눈
"저러한 이교적인 스토익(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은," 브라운 신부는 차분하게 말했다.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실패하지요. 요란한 굉음과 비명이 바깥 거리에까지 전해져도 아폴론의 예언자님은 꿈틀하지도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았소. 그것이 어떤 일인가는 알 수 없었지만, 카론이 그것을 미리 예기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당장 알 수 있었지요."

부러진 검
"현명한 사람은 어디에 나뭇잎을 감출 것인가? 숲 속일 것이다. 그러나 숲이 없을 경우에는 어찌하겠는가?"
프랑보우는 안타깝다는 듯이 소리쳤다.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나뭇잎을 감추기 위해 숲이 생기게 하겠지." 모호한 목소리로 신부가 말했다. "가공할 만한 죄악이지만 말이오."

세 개의 흉기
"만일 내가 살인을 한다면 죽이는 상대는 낙천주의자일 거요" 하고 덧붙였다.
"어째서입니까?" 마튼은 재미있어 하며 큰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말씀은, 세상 사람은 명랑한 것을 싫어한다는 뜻인가요?"
"세상 사람은 너털웃음이라면 좋아하겠지요. 그러나 언제나 맥없이 떠오르는 미소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지 않을까요? 어쨌든 유머가 없는 쾌활함이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니까요."
선로 곁의 바람을 세게 맞는 둑 위를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걷고 있었다. 죽은 암스트롱의 집이 길다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는 지점까지 오자 갑자기 브라운 신부는 마음의 부담스러운 생각을 진실하게 들고 나온다기보다 떨쳐버리려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물론 술 그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내가 이따금 싫어도 느끼는 바로는 암스트롱 같은 사람은 슬픔을 맛보고 싶은 마음에 때때로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어졌던 것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흉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제 와 보니 모두 나타났소. 찔러 죽이는데 쓰인 칼이 있고, 목을 졸라 죽이는데 쓰인 밧줄이 있고, 쏘아 죽이는데 쓰인 권총이 있으니. 더구나 피해자는 정말은 창문으로 떨어져 목이 부러뜨려졌는데도 말이오! 이것은 정말 묘하오. 첫째 불경제적인 이야기요"라고 말하고 신부는 바닥을 들여다본 채 풀을 뜯어먹고 있는 말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길더 경감은 진지한 생각을 말하려고 입을 열려 했으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바닥의 그로테스크한 인물이 다시 줄기차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있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사실이 세 가지 있소. 첫째로 이 융단에 뚫린 구멍인데, 이것은 여섯 발의 총알자국이오. 대체 융단에 총을 쏘아대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 취한 남자일지라도, 자기 쪽을 보고 히죽거리는 적의 골통을 똑바로 노릴 거요. 설마 상대의 발 밑에 대고 싸움을 걸거나 상대의 슬리퍼를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다음에는 저 밧줄인데," 융단에 대해 처리한 신부는 짚었던 두 손을 들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무릎은 아직도 태연하게 땅에 댄 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있었다 해도 상대의 목에 감으려다가 결국은 다리에 감는 그런 일을 누가 하겠소? 아무튼 로이스는 그다지 취하지 않았었소. 흠뻑 취해 있었다면 지금쯤은 푹 골아떨어져 있을 것이오. 그리고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저 위스키 병이오. 여러분도 추측해보면 알 일이지만 술꾼이 위스키 병을 잡으려고 다투다 그것을 손에 넣었는데 일부러 방구석에 내팽개쳐 속에 든 술을 절반은 엎지르고 절반은 남겨두었다니…… 그런 어리석은 흉내를 낼 술꾼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오."

"아니오,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브라운 신부는 모자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오.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큰 실수라도 죄와 달라서 인생을 해치는 일은 없는 것이오. 그건 그렇다 치고 이것으로 두 분은 행복해질 수 있겠군요.

낡은 우산을 든 얼뜨기 신부탐정
이 매우 키가 작은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는 20년 가까운 옛날 시카고의 어떤 교도소에서 신자들을 위해 교도소 사목 신부로 있었던 일이 있다. 그는 웨섹스 주 코보울 교구의 신부이며 캠버웰의 성 프랜시스 자비엘회 성당에 속하기도 했으나 뒷날에는 런던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신부는 도일의 홈즈와 나란히 추리소설의 탐정 중 쌍벽을 이룰 만큼 유명한데, 브라운을 사립 탐정인 홈즈와 마찬가지로 다루어도 좋을지는 조금 염려스럽다. 신부는 과연 탐정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탐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일도 없거니와 탐정적 재능을 함부로 자랑하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내성적이며 조심스러운 성격을 발휘하고 있으며, 이따금 범죄나 사건에 부딪쳐 부득이하게 탐정적 역할을 다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즉 신부로서는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죄인을 단호하게 법의 재판에 맡기려고도 하지 않는 점에 가톨릭 신부의 면목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확실히 수수께끼가 있고 트릭도 참신하고 풍부하여 일단 정통파 추리소설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은 일종의 독특한 본격소설이다.

영국 일류의 평론가이며 작가로서 이름을 날린 그는 1874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성 폴 학원에서 《트렌트 최후의 사건》을 쓴 E.C. 벤트리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다시 런던 대학 부속인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화가에 뜻을 두었으나 대성하지 못하고 그 대학에 재학 중이던 21살에 평론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수없이 많은 정기 간행물에 건필을 휘둘러 정치론, 수필, 시, 문학평론 등의 영역에 걸쳐 활약했다. 그의 문학평론가로서의 면목은 《브라우닝 전》 《디킨즈 론》 《스티븐슨 론》 등에서 볼 수 있어 세상 사람들의 호평을 얻었는데, 한편 1천 페이지로 엮어진 길고 짧은 시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자신은 시인으로서 가장 자신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추리소설적 작품으로는 1905년의 《기괴한 장사꾼 클럽》, 1908년의 《목요일의 사나이》가 있고 브라운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은 이 책 《브라운 신부의 동심(1911년)》을 비롯하여 《브라운 신부의 지혜》 《불신》 《비밀》 《추문》 등 5권의 51편이 있다. 그리고 1927년의 《시인과 광인들》, 1936년 세상을 떠난 해에 간행된 《폰드 씨의 역설》 등이 있다.
통렬한 풍자와 가톨리시즘의 인생관을 그 바탕에 둔 브라운 신부 이야기는 추리소설의 시조인 포의 작품과 나란히 가장 문학적이고도 추리소설의 특징을 고도로 발휘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문학가로서보다는 브라운 신부의 창조자로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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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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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다, 큰일이다, 허리를 삐끗 했다. 난 지금까지 허리 같은 거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아프지 않다는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아프지 않다는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였다. 지금 나는 나한테도 허리가 있었구나 하고 깊이 느끼고, 납작 엎드려서 계단 오를 때는 열네 살 아들의 등에 달라붙어 고려장 놀이를 한다. 그런데 축 늘어져 가슴이 두근두근 기쁜 건 망측한 어머니일까나.
그러나 아들은 주변에 사람들이 있을 때만 고려장을 해 주고, 관객이 없으면 "으응, 업어 줘"하고 말해도 못 들은 척한다. 그 정도면 그나마 괜찮은데, "좋겠어, 허리 삐끗해서, 모두 친절하게 대해 주고. 어떻게 하면 허리 삐끗할 수 있어? 나도 좀 해 보게" 하고 퉁퉁댄다. 그럴 때는 정말 허리를 꺾어 주고 싶다. 효도도 남이 볼 때만 하는 놈.
입원했더니 동생은 "언니 팔자 좋네, 나도 입원하고 싶어. 요즘 전혀 사건이 없네. 생활의 변화가 필요해"하며 내 침대로 올라와 낮잠을 자고 돌아갔다.
가을다워졌다.
우리 집 개 모모코가 강아지를 낳았다. 얼굴은 시바견이고 몸은 닥스훈트인 모모코는 그 짧은 다리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하는 표정 탓에, 모든 사람에게 줄곧 조롱당해 왔는데, 강아지를 낳은 것만으로 또다시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들조차 "모모코를 좋아할 개가 있을까"하고 비관적이었기 때문에, 배가 커진 기색도 보이지 않던 모모코가 비 오는 날 강아지를 낳은 것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두더지 같은 세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별안간 어머니의 눈초리가 된 모모코. 모모코를 보러 온 친구는 그 모습을 보더니 큰 입을 벌리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게 15년 전, 아들을 낳고 젖을 물리고 있는 나를 보고 손으로 입을 막고 킥킥거리던 옛 친구를 생각나게 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강아지를 데려갈 사람에게는 모모코 보이지 마."라고 다들 말해서, 나는 또다시 상처 입었다.
그 어미의 추함을 알면서도 강아지를 데려가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다섯 살 때 소꿉장난을 하기 위해 절의 스님이 정성들여 키운 국화꽃을 훔치러 갔다고 한다.
아이의 얼굴 크기만 한 꽃을 꺾어든 순간 스님에게 목덜미를 눌린 다섯 살의 어머니는 "쉬가 나와요."라고 외쳤고 스님이 놀라서 손을 놓은 틈에 도망쳤다고 한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 봐도 다섯 살 어머니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른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와 아들은 서른 살 차이가 나고 그 삼십 년의 역사가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나는 긴타로아메같이 그 삼십 년 중의 어디를 잘라도 아들에게는 한결같은 얼굴로 보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는 다섯 살 아들을 보는 것으로 다섯 살의 나를 한 번 더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열세 살의 아들을 통해서는 더 이상 열세 살의 삶을 살 수 없다. 그가 남자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들이 사십 대 여자인 어머니를 이해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리라. 나는 아들에게 몹시 거치적거리는 존재일 뿐.
요전에 심리학 책을 읽다가 '세상에 어른 따위는 없다. 단지 어른인 척하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접하고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자 아들이 "뭔데? 뭔데?" 하고 다가왔다.
나는 소리 내어 읽워 줬다.
아들은 "맞는 말이야. 뭐 뭐인 척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나쁜 사람이야"하고 말했다.
"예를 들면?" 하고 재촉했더니 "권력자. 그런 사람은 척하는 연기를 잘 할 뿐이야."라고 했다.
음, 제법 괜찮은데.
그러나 열세 살의 남자는 뭐 뭐인 척하는 것을 나보다 훨씬 더 잘한다.
공부하는 척하기, 들었으면서 못들은 척하기, 불쌍한 척해서 동정심 유발하기.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아이 따위는 없다. 아이인 척하는 어른이 있을 뿐이다. 아이인 척하며아이의 권력을 휘두르지 마라. 나도 어머니인 척하는 거 힘드니까 말이야.
나도 열세 살의 소녀였던 적이 있으니까 말이야.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의 곡』을 반납하지 않고 탐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눈을 치켜뜨고 화냈다.
어머니는 내가 연애에 흥미를 갖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이것은 딸을 가진 인류의 어머니 모두가 한결같이 갖고 있는 공포다.
아버지는 "눈이 찌부러진다"며 겁을 줬는데 그 말이 맞았다. 내 눈은 난시와 근시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장녀인 나는, 내 뒤로 줄줄이 태어난 여동생을 돌보거나, 강으로 기거쥐를 빨러 가거나, 강에서 물을 떠오거나 하는, 가난한 집 아이라면 누구라도 하는 일을 똑같이 해야 했다.
기저귀의 응가를 물에 흘려보낼 때만큼은 왠지 상쾌하니 속이 후련했다. 응가는 둥실둥실 뜨거나 가루로 녹아서 흘러갔다.
나는 그렇게 가난한 집 아이의 노동을 하고 있자면, 한시라도 빨리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책을 읽고 싶었다.
어머니는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게을러 빠져서"하고 소리쳤다.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는 그처럼 나태한 쾌락이었다.
그러나 뭐라 해도 책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책에 굶주렸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이 많은 집에는 새 책 살 돈이 모일 일이 없으므로, 나는 산길에서 근시와 난시를 입수한 후, 중학생이 되어서는 도서관에 틀어박였다. 중학생이 되자 아스팔트 길이 있는 중소 도시에 살면서 전철로 통학했고, 전철의 진동이 산길의 진동을 대신했다.
전철에서 책을 읽다 졸다 하면 꿈과 현실 사이로 활자가 흘러갔다. 일본 문학 전집도 세계 문학 전집도 연애 이야기로 가득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전집을 읽고 있으면, 모파상이든, 안나 카레니나든 부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독서를 '게을러빠진 거'가 아니라 학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될 만큼 세상이 편안해져 갔던 거다. 동생들도 자라서 기저귀 안에 응가를 하는 일도 없어졌고, 손을 안 잡아 줘도 혼자서 종종거리며 걸었고, 물은 길러가지 않아도 수도꼭지를 비틀면 물이 나오게 됐고, 밭에서 김을 매지 않아도 채소 가게에서 당근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나는 도서관을 내 집 삼아 들락거렸다. 나에게 특별한 지적 향상욕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달리 할 일이 없었고, 뜀박질 같은 거는 하기 싫었을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마음을 합하여 경기를 하는 것이 서툴렀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연애에 '가만히' 앉아서 포옥 몰입할 수 있는 것만큼 편한 것은 없다.
사실, 현실에서 연애를 거행하는 사람들은 책 같은 거 읽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확실하게 인생이란 것을 배운다.
책 속에서,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미지의 나라의 아가씨들과 메이지 시대의 꽁한 남자들이 나를 지나쳐 갔지만, 나는 그저 홀로, 나와 상대할 현실의 인간을 갖지 못한 채, 활자만을 눈 안에 쑤셔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가난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아이도 낳고, 분주해지기는 했지만, 분주해도 나태한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싶다. 책 같은 거 읽지 않아도 할 만한 일이 산처럼 많은데도 벌렁 드러누워 책을 읽고 싶다. 나태한 쾌락이 몸에 배어 버렸다.

나의 독서는 그저 심심풀이다. 나는 따분함을 못 참는다. 하지만 타고난 게으름뱅이라서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마음이 분주한 쪽을 선택하고 만다.
심심풀이로 읽기 때문에 활자는 그저 배경 음악처럼 흘러갈 뿐, 교양으로도 지성으로도 남지 않는다. 오락이니까 그냥 시간을 떄우면 되는 거다. 내 안에 축적되어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일 같은 건 없다.
읽고 싶은 책만 골라 읽는 편식쟁이어서 씹어 삼키는 데 시간이 걸리는 책은 가까이 하지 않는다. 가까이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알기 쉬운 일본어를 써라, 이렇게 알 수 없는 말을 쓰다니 자기가 모르는 거 눙치기 위한 거 아니냐'하고 비아냥거리기 십상이고, 때떄로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 난해한 책을 찾아와서 '잠깐 잠깐 여기 이 부분을 내가 알기 쉽게 번역해 줄게'하고 난해한 말씀을 인정머리 없게 요약하고는 '인텔리는 역시 밥맛이야'하며 웃는 것으로 나 자신을 눙치고 기뻐하는 비열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달리 낙이 없다.
술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웃과 잘 사귀는 편도 아니고, PTA는 질색이다. 집을 꾸미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미식가입네 하고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귀찮다.
현실 생활을 덮치는 것들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쓰러뜨리지 못하는 아들은 나를 쓰러뜨리고, 그러면 나는 휘청휘청 잠자리에 쓰러져서, 활자를 계속 삼키며, 오로지, 현실로부터 도망친다. 기분이 좋을 때는, 활자로부터 심원한 철학을 쬐끔 빌려와서 잠시 심원한 기분이 되어 보다가도 다음 날에는, 웃기고 있네 하며 그야말로 변덕을 부린다.
독서는 그처럼 나에게 지성도 교양도 가져다주지 않지만 때때로 감동하거나 감탄하거나, 아름다운 마음씨가 되거나, 분노에 떨거나 하는 것을 몹시 싼 값으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만큼은 좋다. 나는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채고, 눈만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마음속에서 꺄아 꺄아 기뻐하고 싶은 거다.
꺄아 꺄아 기뻐할 수 있다면, 연애소설이든  『책의 잡지』든 헤밍웨이든 아무 차별도 구별도 두지 않는다.
눈물이 흐를 떄도 꺄아 꺄아 기뻐하고 있다. 도저히 동조할 수 없는 생각을 논하는 사람에게도 꺄아 꺄아 기뻐하면서 화를 낸다.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채로.
그러나 몇 년 전, 흠칫한 적이 있다. '다치'라는 야생마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일이다. 야생의 몽골말이 영국에서 고향인 몽골까지, 바다까지 건너서 오로지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실로 감동적이 이야기였다. 나는 쉽게 우는 사람이므로, 벌써 눈물범벅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몽골말이 되어 살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보다 정말로 몽골말이 되어 살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니 독서라는 게 참으로 공허하게 느껴졌다.

페치카에 등을 밀어붙인, 콧물의 안데르센 아버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안데르센을 읽어 주는 것 말고는 달리 재주가 없었던 혼란기의 일본 남자.
현실에는 없는 아름다운 세계의 문을 열고, 붉은 수수밥의 확보는 아내에게 맡긴 인간.
당신의 처는 아름답게 빛나며 러시아인과 빈틈없이 싸워서, 붉은 수수도 구하고 콩깻묵도 손에 넣으며 살아왔다.
마치 몽골말 같지 아니한가.

나는 자잘하게 그림이랑 글자를 조합해서 인쇄물을 만들고 그 대가를 받아서 먹고 산다. 내가 만든 책을 누가 사 줄지 전혀 짐작도 못한다.
책방에 가면 실로 엄청난 양의 책들이 있고, 내 책은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아동물 코너만 해도 나날이 새로운 책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출간된 지 몇 십 년이 넘는 롱셀러가 줄을 서고, 외국 그림책도 썩을 정도로 쌓여 있다. 이것들을 헤치고 또 헤쳐 나가며 밥을 먹고 살아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마치 10킬로그램들이 쌀 봉지를 쏟아 놓은 거나 마찬가지인 속에서, 어떻게들 내가 생산한 한 알의 쌀을 골라내 주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두려워서 그림책 코너에 못 간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은 비상시가 되면 불필요한 일이다.
그것 없이도 인간은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그것으로 O십 년이나 밥 먹고 살 수 있었다니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라기 보다 거의 매일 웃으며 지낸다. 때론 울기도 한다. 당연히 내일도 밥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저금 같은 건 한 푼도 없다. 아니 있다. 슈퍼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은 1엔짜리 동전을 유리병에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치마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어"같은 겁나는 생각을 한다.
식은땀이 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나이를 먹는다는 건 뭐랄까, 한없이 유년으로 돌아가는 거다. 나도 자란 어릴 적 경험이 차차 거대해져서 이빨을 드러내는 거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는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거려 줬다. 마당 끝에 만들어 놓은 유리 공예 작업장의 오렌지색 끈적거리는 불꽃, 그리고 유리로 만들어 놓은 친구의 작품이 내가 몰랐던 세월을 나에게 가르쳐 줬다. 나의 10년 또한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이처럼 돌연 모습을 나타내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나의 아들과 동갑인 친구 아들이 10년의 공백을 등 뒤로 하고 당당히 나타났다.
친구 남편이 돌아왔다.
"야아, 나이 먹는구나, 늙었네."하며 그는 웃었다.
유리의 불 상태를 살피면서 식사를 했다. 아들은 젓가락을 왼손에 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섯 살 때 그 아이가 왼손잡이였지 하고 기억을 떠올렸다. 열다섯 살이 된 그의 왼손잡이는 이제 인격의 일부로서 자리가 잡혀 있었다. 나는 넋을 잃고 왼손으로 별빙어를 집어 올리는 그를 바라보았따.
"요코 씨 담배가 지나쳐, 끊지 그래." 친구가 말했다.
"참, 거기 바구니 안에 담배가 싫어지는 엿이 있었는데." 친구 남편은 창가의 바구니를 찾았다.
"아하하하, 녹아서 전부 들러붙었어."
"아하하, 그거 일 년 전 거예요."
"일 년이나 지났군."
부부는 녹아서 들러붙은 엿을 보고 같이 웃었다. 나는 가슴으로 따뜻한 바다가 흘러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엿이 녹은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행복.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되는 게 아니라, 스물네 살의 자만에 찬 젊은 시절부터 이미 서서히 할머니가 되기 시작하는 거다. 아니 다섯 살 여자아이도 보고 있으면 팔십 먹은 그 아이의 영락한 말로가 비쳐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사람이 아닌 다른 할머니는 될 수 없다는 거다.
나는 나인 채로 할머니가 되는 거다.
어려서는 부모의 안색을 살피고(꽤나 말을 안 듣는 아이였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상대의 기분에 맞추고(별로 맞추지 않았지만), 애 낳고는 머리 가꿀 새도 없이 어머니 노릇을 하고(그랬다고 아이가 수재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여하튼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맞추려고 노력해 왔다. 몇 십 년이다. 이제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아이가 성인이 되면, 평생에 딱 한 번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

내 그림에 대한 주문도 없어졌을 테니 서툰 그림이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내 맘대로 그리고, 마음 내키면 SF 소설도 쓸 거다. SF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해서 어려울 것 같으면, 살인물이라도 써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차례차례 등장시켜 닥치는 대로 산산조각을 내 주는 거다. 나이 먹으면 먹을 것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게 된다고 하니, 하루가 걸리더라도 감자죽을 만들어 후우 후우 먹겠다. 돈이 없을 게 분명하니, 미식은 몸에 좋지 않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면서. 입이 험한 것은 나의 숙달된 무기니까 험한 입으로 "저 할망구 예쁜 데가 없어"하고 젊은 녀석들이 나를 싫어하게 만들 거다. 이런 것을 일러 깊은 배려심이라고 하는 거다. 내가 죽으면 '아,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줬으면 좋았을 걸'하고 주위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그 전에 노망이 들면 어떠한 결의도 계획도 물거품, 유효하지 않다. 그래서 딱 하나 내가 지금부터 유념할 것은, 물욕을 갖지 않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남기는 것은 그것이 아주 적은 돈이든, 사소한 일용품이든 처리하기가 성가시다. 내가 죽으면 동시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작은 종잇조각 하나, 팬티 하나 남기지 않고 '슈욱 하고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진다면 조옿겠다'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림책 만드는 일이 좋으므로 앞으로 죽을 떄까지 몇 권쯤 더 만들고 싶다. 과감 무쌍하고 뻔뻔스럽게도, 아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넘어서고야 말리라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야심을 불태우다가 잠 못 드는 밤도 있다. 나와 나의 재능에 절망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생활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말이다. 범인凡人이란 그런 거다.
고양이가 뒷다리의 털이 훌러덩 벗겨진 채 힘없이 돌아왔다. 11년이나 살면서 처음으로 싸움에 진 고양이는 초라한 꼴로 살금살금 들어와 방구석에서 붉게 부어오른 뒷다리를 핥았다.

의사는 비정한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상처 부위를 가위로 자르며 "싸움에 약한 고양이는요, 뒷다리를 당해요."라고 했다.
"지금까지 싸워서 진 적 없어요. 벌써 11년이나 살았어요. 나이 탓일 거예요." 고양이의 세월 11년, 시즌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갓난 아기가 밤에 울어 대는 것 같은 으스스한 소리를 내고, 고작 암컷 한 마리 때문에 털을 곤두세우고, 고작 암컷 한 마리 때문에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우며 살아온 고양이다. 평소에는 고양이를 걷어차고 돌아다니는 나지만, 남이 내 고양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면 화가 난다.

이렇게 범인의 삶은 계속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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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4
엘러리 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엘러리 퀸은 사실 두 명의 작가의 이름이다. 동갑내기 사촌형제가 함께 쓴 탐정 소설의 주인공 탐정의 이름이자, 또 필명이다.
이들은 하나의 가명도 모자라 버나비 로스라는 다른 가명으로 추리 소설을 썼는데, 이른바 비극 시리즈로, 여기 나오는 탐정은 엘러리 퀸이 아니라 전직 배우인 드루리 레인이다.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
총 네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것은 역시 Y의 비극이다.
범인의 존재는... 후에 나온 수많은 소설에 분명히 영향을 줬을 것이다.

뛰어난 배우이지만 청각 상실로 은퇴한 탐정 레인이 아주 매력적이어서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크리스티의 소설 뒤틀린 집이 이 소설보다 한참 뒤에 나왔는데 표절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크리스티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너무나 같은 소설을 쓰고 있던 엘러리 퀸은 먼저 나온 이 소설을 보고 경악하며 다 태워버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어쨌든 작품들은 전부 명작이고, 작가들은 전부 천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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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동서 미스터리 북스에서 이 책은 품절이 되어 있으며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저작권 문제일 것 같은데, 홈즈 등 이보다 전에 나왔던 소설들이 이미 저작권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낼 수 있는 반면에, 크리스티의 소설은 아직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크리스티 전집을 완독했는데 그 당시 크리스티 재단으로부터 유일하게 저작권을 인정받았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정확하지는 않다.
대다수 독자들이 크리스티의 작품에서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 경우가 많다.
어떤 독자들은 추리 소설 중에서 이 작품을 으뜸으로 꼽는 경우도 물론 있고.
워낙에 짜임새가 촘촘하고 작가가 강박적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노래의 내용과 인물의 상황이 딱딱 들어맞는다.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화하기 참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놀라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1987년 KBS 2TV에서 밤 10시 10분에 방영하던 일요추리극장에서 3부작으로 방영되었다고 한다.

인종 차별 문제로 흑인에서 인디언, 다시 병정으로 영미권에서는 변형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웅이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제웅이 뭔가 해서 찾아봤더니 사극에서 많이 나오는 지푸라기 인형이구나...

아쉽게도 3부작 중에서 방송국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3편 뿐이라고.
3부작 전부는 아니고 짧은 장면만 잠깐 보았는데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엄청나다. 전체를 다 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든 작품도 이렇게 임팩트가 있다니 이 원작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또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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