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아멜리에 - 10주년 기념반
장 피에르 주네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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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멜리에는 몽마르뜨 근처에 사는, 예쁘지만 엉뚱한 아가씨이다. 

무뚝뚝한 아버지, 히스테릭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스킨십이 없었던 아버지가 의사로서 딸을 진찰할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아버지의 손길로 인해 심장이 심하게 뛰어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한 아버지가 학교에 보내지 않아서 

교사였던 어머니에게 집에서 배웠다. 또래 친구와 어울리지 못했고, 

그나마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훌쩍 자란 그녀는 한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어느 날 우연히 집에서 발견한 오래된 상자를 발견하고, 

그 상자의 주인을 찾아 50년대에 소년이었던, 그리고 그 당시 그 아파트에 살았던 

누군가를 찾아다니게 된다. 

결국 그에게 몰래 어린 시절의 보물 상자를 전하게 되고, 

분명히 수호천사가 보낸 것이라고 감격하는 이제는 노년에 접어든 그 소년을 보고, 

아멜리에는 다른 이에게도 행복을 전해주는 '행복 전도사'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카페를 배경으로 한 쌍의 남녀를 이어주기도 하고, 

뼈가 잘 부서지는 병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화가에게 바깥 세상과의 통로가 되어 주며, 

야멸차고 잔인한 가게 주인에게 종업원을 대신해서 귀여운 복수를 해 주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멜리에 못지 않을 만큼 엉뚱한 청년의 앨범을 주으면서  

그 청년의 뒤를 따라다니고 숨으며 짝사랑을 시작한다. 

 

이 프랑스 영화는 심각하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색감이 예쁘고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헛점이 있지만 다들 사랑스럽다.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사람들. 

 

늘 다른 이들의 행복을 바라던 전반부의 그녀와 

짝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후반부의 그녀의 연결고리는 

집에서만 생활하는 화가 아저씨의 충고였다.  

"물잔 든 소녀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요. 딴 곳에서 우연히 만나서 마음이 끌린 어떤 남자요."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하고 친해지려 노력하기보다는 멀리 있는 그 누군가를 상상하고 있다?" 

"네. 그녀는 남들의 불행에도 관심이 많죠." 

"그럼 자기 자신의 불행은 어떡하고? 그건 누가 해결하지?"

"넌 나와 달라. 네 뼈는 유리처럼 약하지 않아. 넌 너의 삶의 험한 파도를 헤쳐나갈수 있어. 지금 이 기회를 놓쳐버리면 결국 네 심장은 내 몰골처럼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져 버릴꺼야. 그러니까, 당장 가서 그를 붙잡아." 

 

마냥 순수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녀가 그를 놓칠까봐 울먹이는 장면, 

짝사랑하는 그 앞에서 물처럼 녹아내리는 장면, 

그가 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리저리 상상하다가 될대로 되버려~! 하는 장면, 

어떻게든 자기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의 앞에서 서성이지만 

정작 알아보자 도망쳐버리는 모습. 

 

짝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뒤늦게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Portable Groove 09의 Amelie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상큼한 노래처럼 이 영화도 산뜻하고 예쁘다.  

호기심 가득한 큰 눈의 오드리 토투, 

순수한 눈빛의 마티유 카소비츠. 

(마티유 카소비츠는 짝사랑 상대로 참 어울린다. 감성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이라서. 

알고 보니 '뮌헨'에 출연한 실력파 배우에,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유명 감독이라고. 

최근 모습을 보니 멋지게 나이가 들었더라. 젊은 시절의 감성, 열정을 간직한 채로 

관록이 더한 느낌?)  

 

용기 내어 세상으로 나가라고, 그리고 용기 낸 아멜리에게는 해피 엔딩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버렸기 때문인지. 

주저주저하다가 막상 용기를 냈을 때는 씁쓸한 결과가 많이 왔던 기억 때문인지. 

이런 영화를 보고도 '그래, 나도 용기를 내야지!'가 아니라 

한순간 위안에 그쳐버리고 마는 것은 지나친 자기 비하인지. 

 

아무튼 상큼한 오드리 토투와 보고 있으면 설레게 하는 마티유 카소비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참 좋았다. 비록 내 현실과는 조금 달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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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7 - 일본 1 : 일본인 편 ㅣ 먼나라 이웃나라 7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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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연초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이 책을 읽었다. 가기 전에 일본과 관련된 책을 읽으려고 몇 권 빌렸는데 읽지도 않고 그냥 반납하고 말았다. 사실은 패키지 여행 중 하루를 빼서 자유 여행을 다니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 관광지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빌려서 가지고 간 건데 그냥 가이드가 따라다니는 옵션 여행을 했고 책은 다 읽지도 못한채 캐리어만 무겁게 만들고 나서 일본에서 다녀온 직후 반납하고 말았다.

 

이 책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일주일 쯤 지난 후에 빌린 책이다. 사실 내가 빌린 것은 아니고, 막내가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워낙 좋아해서 빌려온 것을 내가 보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현재 초등학생인 내 동생이 보고 있다니 이 시리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언제 보아도 어떤 개정판을 보아도 이 책은 한번 손에 들면 끝까지 읽어나가게 한다. 만화로 그려서인지 글을 읽을 때보다 내용이 더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림으로 연상되니까. 흔히 학습 만화가 어린이들 수준에서 그리고 있어서 어른들은 읽지 않지만, 이 책은 오히려 어른들이 더 많이 찾는 것 같다. 그만큼 내용이 충실하고 오히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라고 생각되는 전문적인 내용도 많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지만, 그래서 다른 점이 더욱 더 두드러지고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장점을 7개로 집어내었고, 다시 그 7개를 뒤집어 약점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이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고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게 당연하기에,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이 지금의 일본이 될 수 있었던 7개의 장점이 21세기에 들어서는 도리어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으로 연결시킨 것이 흥미로웠다. 단순히 일본의 이것은 좋고, 이것은 부럽고, 이것은 나쁘고, 이것은 배워야 하고, 이렇게 나열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청난 저축열이 세계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으나 쓰지 않고 저축하는 국민들의 습관이 현재의 국가 경제에는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매사에 완벽함을 추구하는 습성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으나 그로 인한 인건비 상승으로 경쟁력에서 되레 뒤처지고 말았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사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 한국인, 하면 생각나는 빨리빨리 문화는 새치기, 참을성 부족 등 부정적인 영향을 낳았으나 한편으로는 스마트폰, 초고속 인터넷 등의 좋은 점도 낳았을 테니까.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장점이 단점으로, 단점이 장점으로 전환되는 것도 한순간일 듯.

 

정관경 유착, 대기업 중심의 경제는 우리나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흥미로웠고 일본 특유의 친절함, 오타쿠 문화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었다. ‘와’로 설명되는 일본의 모든 것, 특히 그것이 오타쿠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정말 기발하고 꼼꼼한 설명이었다고 생각된다. ‘메이와쿠’를 끼치지 않으려는 ‘기쿠바리’에서 나온 ‘야사시’에서 비롯된 친절이 타인에 대한 배려, 준법, 자율 정신, 에티켓 아는 국민, 질서 존중이라는 선진국의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결론이 뭔가 모호했던 일본과 일본인들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거 같아 시원했다. 아마도 일본 영화 전차남에서 에르메스 그릇 세트로 고마움을 표현한 여주인공도, 이번 일본 여행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기기 결함으로 당황했던 동생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고 로비 컴퓨터를 독자적으로 쓰게 해주는 등의 노력으로 결국 사진을 전부 복원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호텔 지배인도 이해가 갔다. 일본 국민의 친절함이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믿음이 어떻든지 한번 왔다 가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기분 좋을 수밖에 없는 현실일 것이다.

 

당연하지만 요새 젊은 세대는 다르겠지. 이런 말은 책에도 나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도 바탕에 깔려있는 본질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서양화되었다 해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가족이나 부모님의 존재가 예전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아도 여전히 큰 산 같은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일본 드라마나 영화, 만화에서는 매우 다른 인간형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렇듯 그것은 절대다수를 반영한다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가 투영된 측면이 더 클 것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한유주처럼, 남녀를 불문하고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없는 것처럼.

 

어떤 이유로 설명하든, 동양의 작은 나라, 패전국가가 이만큼이나 대단한 나라가 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실제로 책만 읽었더라면, 생각보다는 별 거 아니네~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직접 여행을 다녀온 직후, 감흥이 식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기에 감탄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바라보는 시각보다, 직접 가서 겪으면 더 감탄할 수밖에 없는 나라인 것 같다. 중학교 때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놀랐을 정도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우리나라가 10여년 돈안 엄청난 성장을 했다는 뜻이겠지.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엄마는 일본도 대단하지만, 이 일본을 이만큼이나 따라잡은 우리나라도 대단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해서 유학은 디자인 학부로, 국내에 돌아와서는 당시만 해도 천대받던 만화에 뛰어들어 학습만화, 교양만화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고 현재도 해외 일러스트계에서는 인정을 받고 계시다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만화를 베끼는 아르바이트를 하셨다는데 취미를 특기로 살리고 그것을 본인의 전공과 결합하고 직업적인 발전을 삼은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았다. 나도 어릴 때부터 틈틈이 그림 그리는 재주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또 한편으로는 이분이 고등학교 때 만화 아르바이트를 하실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이런 모습을 상상하셨겠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들 중 ‘뻘짓’처럼 보이는 일들 중에서도 미래의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한편으로는 힘도 나고 안심도 된다.

 

오랜만에 다른 먼나라 이웃나라 책들도 읽어볼까. 개정판이 나왔다는데. 어릴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시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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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 손미나의 로드 무비 fiction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악마가 있소.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가 없지.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자기가 이번 생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허상만 좇게 된다니까. 어떤 일에 확신이 있을 때는 아가씨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서게 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소. 그 악마의 이름은 두려움이오.

 

수백 가지 우연 중에서 단 하나라도 살짝 어긋나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다.

 

이 소설은 아마도 손미나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현재 싱글인 그녀가 그리는 운명같은 사랑, 아직 정식 작가로 인정받지 않은 주인공. 너무나 소설 같은 소설, 정말 그런 얘기는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 할 수 밖에 없는 소설, 네 남녀의 이야기가 수십 년을 건너뛰어 파리를 배경으로 겹쳐지고 포개지는 결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플롯이고, 그렇게나 쉽게 사랑에 빠지는 이 ‘운명’적인 만남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잘 ‘빠진’ 소설이다. 매끈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이 소설 이전에 여러 편의 여행기와 번역서를 냈던 작가의 내공 때문인지 최소한 읽어가면서 불편하지는 않다.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는 관심도 갖지 않던 내가 우연히 얼마 전에 산 스마트폰을 통해 이런저런 앱을 알아보다가 이 책의 체험판을 읽고 즉시 도서관에 가서 찾아내어 읽은 책이다. 그만큼 사람의 시선을 끌고, 붙들어 놓는 데는 충분한 장점이 있다는 뜻일 게다.

 

논쟁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밥을 먹던 테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다고 해서 갑자기 같은 무리에 속한 것처럼 느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나. 소위 말하는 파리 상류층 젊은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 마르세유 출신의 무명 연극배우가 끼어 있으니 얼마나 재미난 눈요기 겸 안주가 되어주고 있던 것인가. 해 질 무렵 육지로 밀려드는 파도처럼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며 어지럽혔다. 일종의 환멸과 자괴감의 블랙홀 속으로 온몸이 깊이 빨려드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테오는 어떻게든 그 블랙홀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언젠가 아버지한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낚시를 할 때 말이다, 왠지 좀 잡기 어려운 놈이다 싶더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 오히려 그런 놈들은 큰 약점이 있기 마련이니까.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야.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놈들이야말로 결정적인 허점이 있지. 물론 웬만하면 누군가와 맞서 싸우는 일은 피하는 게 좋아. 하지만 살다 보면 대강 돌아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정면 돌파를 해야 하는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 중요한 건, 울화가 치미는 일일수록 부드럽게 접근해야 한번에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침착한 마음을 먹기 위해 애썼다.

“갑자기 다들 저를 쳐다보시니까 부담스럽네요. 티켓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구요.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졌어요. 저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쓸모없는 전단지. 입장권, 초대장, 그런 것들을 갖다 버리는걸요. 저라도 그 연극 티켓을 집에서 받아보았다면 아무 생각없이 버렸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정말로... 어쨌든 제가 참여했던 작품이 서민층 대중에겐 큰 호응을 받아서 전국 투어를 하게 됐으니 안 보신 분들은 다음에 파리에서 공연할 때 한번 오시면 되겠네요. 한 가지,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든 생각인데... 어차피 보보라는 건 처음부터 프랑스 상류층 젊은이들의 자기합리화 같은 걸 비웃으려고 미국 기자가 갖다 붙인 말 아닌가요? 부르주아인데 보헤미안처럼 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잖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느끼기에 진짜로 예술을 움직이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은 이런 자리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좌파라고 해서 무조건 행동하는 지식인인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볼 댄 두 분이 차이점보단 닮은 부분이 훨씬 더 많으신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하시죠.”

치욕감을 느꼈다고 해서 공격적인 자기방어를 하는 것은 마지막 자존심마저 내던지는 일이 될 것 같아 테오는 최대한 차분한 태도와 밝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실제로는 귀가 멍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머리카락이 모두 하늘로 쭈뼛 서는 것만 같았고 하마터면 포크가 미끄러져 나갈 정도로 손에 땀이 배었다. 그 속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런 굴욕적인 말을 듣고도 여유 있게 상황을 넘기는 젊은 배우를 보면서 적지 않게 놀라며 감동했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르크와 제롬이 머쓱해서 입을 다물며 논쟁을 접은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테오는 단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저녁식사를 마쳤는데 특히 콜린 극장 연출자인 베르나르는 언젠가 함께 일하고 싶다면서 그의 연락처까지 받아 챙겼다.

많은 기대를 안고 참석했던 전설의 ‘아리스토텔레스’ 모임.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고 의외로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뜨거운 불씨가 새로 피어올랐다. 내 언젠가는 당신들이 모두 만나고 싶어 하는 배우가 되어 있을 테니 두고 봐... 테오는 쟁쟁한 그날의 멤버들 속에 섞여 파티장을 나서며 스스로를 향한 다짐을 새롭게 했다.

 

이렇게까지나 이 부분을 길게 옮겨 적은 것은 너무나 환상적인 이 소설에서 이 부분이 가장 현실적이었고 또 묘사가 생생했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자면, 이 부분은 완벽한 창작이 아닌, 손미나 자신의 현실에 바탕을 둔 묘사가 아닐까. 분명히 인기 있는 아나운서였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소설로의 전업을 선언했을 때 비슷한 시선을 분명히 받았으리라. 그 사람들에게 소설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또한 이런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다가 아직까지도 그 현실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제일 공감이 갔다.

소설 속의 사랑은 나를 저릿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앞으로 손미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고 그 책들은 분명히 이 책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은 비록 미숙하지만 작가가 엄청나게 노력했을 게 분명한 이 책을, 잠시나마 나를 처음 들어본 ‘봄레미모자’라는 프랑스의 시골마을로 데려가게 한 이 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란 꽃이 뒤덮인 그 마을을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리라 하고 마음 먹게 한 이 책을 조금은 사랑하게 되었다. 아직 어설프고 증명되지 않고 내세울 것은 가능성, 그 뿐인,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희망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그 격려를 해 줄 사람이 나 자신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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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 손미나의 로드 무비 fiction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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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악마가 있소.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가 없지.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자기가 이번 생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허상만 좇게 된다니까. 어떤 일에 확신이 있을 때는 아가씨 마음속에 악마가 들어서게 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소. 그 악마의 이름은 두려움이오.

 

수백 가지 우연 중에서 단 하나라도 살짝 어긋나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다.

 

이 소설은 아마도 손미나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현재 싱글인 그녀가 그리는 운명같은 사랑, 아직 정식 작가로 인정받지 않은 주인공. 너무나 소설 같은 소설, 정말 그런 얘기는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 할 수 밖에 없는 소설, 네 남녀의 이야기가 수십 년을 건너뛰어 파리를 배경으로 겹쳐지고 포개지는 결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플롯이고, 그렇게나 쉽게 사랑에 빠지는 이 ‘운명’적인 만남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잘 ‘빠진’ 소설이다. 매끈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이 소설 이전에 여러 편의 여행기와 번역서를 냈던 작가의 내공 때문인지 최소한 읽어가면서 불편하지는 않다. 처음 이 소설이 나왔을 때는 관심도 갖지 않던 내가 우연히 얼마 전에 산 스마트폰을 통해 이런저런 앱을 알아보다가 이 책의 체험판을 읽고 즉시 도서관에 가서 찾아내어 읽은 책이다. 그만큼 사람의 시선을 끌고, 붙들어 놓는 데는 충분한 장점이 있다는 뜻일 게다.

 

논쟁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밥을 먹던 테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다고 해서 갑자기 같은 무리에 속한 것처럼 느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나. 소위 말하는 파리 상류층 젊은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 마르세유 출신의 무명 연극배우가 끼어 있으니 얼마나 재미난 눈요기 겸 안주가 되어주고 있던 것인가. 해 질 무렵 육지로 밀려드는 파도처럼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며 어지럽혔다. 일종의 환멸과 자괴감의 블랙홀 속으로 온몸이 깊이 빨려드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테오는 어떻게든 그 블랙홀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언젠가 아버지한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낚시를 할 때 말이다, 왠지 좀 잡기 어려운 놈이다 싶더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 오히려 그런 놈들은 큰 약점이 있기 마련이니까.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야.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놈들이야말로 결정적인 허점이 있지. 물론 웬만하면 누군가와 맞서 싸우는 일은 피하는 게 좋아. 하지만 살다 보면 대강 돌아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정면 돌파를 해야 하는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 중요한 건, 울화가 치미는 일일수록 부드럽게 접근해야 한번에 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침착한 마음을 먹기 위해 애썼다.

“갑자기 다들 저를 쳐다보시니까 부담스럽네요. 티켓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구요.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졌어요. 저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쓸모없는 전단지. 입장권, 초대장, 그런 것들을 갖다 버리는걸요. 저라도 그 연극 티켓을 집에서 받아보았다면 아무 생각없이 버렸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정말로... 어쨌든 제가 참여했던 작품이 서민층 대중에겐 큰 호응을 받아서 전국 투어를 하게 됐으니 안 보신 분들은 다음에 파리에서 공연할 때 한번 오시면 되겠네요. 한 가지,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든 생각인데... 어차피 보보라는 건 처음부터 프랑스 상류층 젊은이들의 자기합리화 같은 걸 비웃으려고 미국 기자가 갖다 붙인 말 아닌가요? 부르주아인데 보헤미안처럼 산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잖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느끼기에 진짜로 예술을 움직이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은 이런 자리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좌파라고 해서 무조건 행동하는 지식인인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볼 댄 두 분이 차이점보단 닮은 부분이 훨씬 더 많으신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하시죠.”

치욕감을 느꼈다고 해서 공격적인 자기방어를 하는 것은 마지막 자존심마저 내던지는 일이 될 것 같아 테오는 최대한 차분한 태도와 밝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실제로는 귀가 멍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머리카락이 모두 하늘로 쭈뼛 서는 것만 같았고 하마터면 포크가 미끄러져 나갈 정도로 손에 땀이 배었다. 그 속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런 굴욕적인 말을 듣고도 여유 있게 상황을 넘기는 젊은 배우를 보면서 적지 않게 놀라며 감동했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마르크와 제롬이 머쓱해서 입을 다물며 논쟁을 접은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테오는 단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저녁식사를 마쳤는데 특히 콜린 극장 연출자인 베르나르는 언젠가 함께 일하고 싶다면서 그의 연락처까지 받아 챙겼다.

많은 기대를 안고 참석했던 전설의 ‘아리스토텔레스’ 모임. 뜻밖의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고 의외로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의 가슴에는 뜨거운 불씨가 새로 피어올랐다. 내 언젠가는 당신들이 모두 만나고 싶어 하는 배우가 되어 있을 테니 두고 봐... 테오는 쟁쟁한 그날의 멤버들 속에 섞여 파티장을 나서며 스스로를 향한 다짐을 새롭게 했다.

 

이렇게까지나 이 부분을 길게 옮겨 적은 것은 너무나 환상적인 이 소설에서 이 부분이 가장 현실적이었고 또 묘사가 생생했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자면, 이 부분은 완벽한 창작이 아닌, 손미나 자신의 현실에 바탕을 둔 묘사가 아닐까. 분명히 인기 있는 아나운서였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소설로의 전업을 선언했을 때 비슷한 시선을 분명히 받았으리라. 그 사람들에게 소설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또한 이런 경험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다가 아직까지도 그 현실을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제일 공감이 갔다.

소설 속의 사랑은 나를 저릿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앞으로 손미나는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고 그 책들은 분명히 이 책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은 비록 미숙하지만 작가가 엄청나게 노력했을 게 분명한 이 책을, 잠시나마 나를 처음 들어본 ‘봄레미모자’라는 프랑스의 시골마을로 데려가게 한 이 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란 꽃이 뒤덮인 그 마을을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리라 하고 마음 먹게 한 이 책을 조금은 사랑하게 되었다. 아직 어설프고 증명되지 않고 내세울 것은 가능성, 그 뿐인,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희망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그 격려를 해 줄 사람이 나 자신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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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별 다섯 개를 준 것은, 책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최근 들어 이렇게 나에게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이유다.

 

김영하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접한 김영하의 소설은 ‘오빠가 돌아왔다’였다. 가부장제의 파괴, 그 현실을 시종일관 냉소적으로, 하지만 궁극에는 일말의 따스함도 보여주었던 그 소설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땐 내가 대학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아무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등 김영하의 책(의 제목만)을 볼 때마다 한순간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늘 궁금하면서도 선뜻 읽지 못했던 것은 그 때문일지도. 일껏 가벼워 보이면서도 촐랑대면서도 늘 진지했고 때로는 섬뜩하기까지 했던 그의 소설에 대한 어디까지나 주관적일 내 감상 때문일 수도 있다.

 

퀴즈쇼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좀 있다가 나왔다. (표지만) 하도 많이 보아서 새로 나온 표지의 책을 보았을 때 딴 책인지 알았더랬다. 둘 중 굳이 옛날 버전을 택한 것은 작가의 말, 그리고 해설 때문이었다. 그만큼 김영하의 소설은 마냥 재미로만 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꽤 깊게 있었나보다, 몇 년 동안.

 

여기 한 젊은이가 있다. 스물일곱, 대학원을 졸업했다. 학점도 나쁘지 않고, 영어실력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취업 준비생이다. 고아에, 땡전 한 푼 없이 창도 없는 고시원 쪽방에 사는 그는 편의점 알바도 때려치운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인 그는 “토익점수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다.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독서량도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지만 그는 백수다. 실업자다.

 

미치겠다. 이거 바로 내 얘기 아닌가.

 

비록 나는 부모님도 계시고 부모님과 함께 부모님 집에서 살고 얘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책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건 전부 내가 늘 하던 이야기였다. ‘80년대에 태어나 컬러 TV와 프로야구를 벗 삼아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대학생 때는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2002년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걸 목격’한 나는,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되었고 타고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랐’기에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거의 슈퍼맨’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내가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닌’ 것이다.

 

그런데 이걸 활자로 읽으면서 왜 내 스스로 어이가 없어지는 것일까.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역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맘을 이렇게 알아주니 고마운 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왜 주인공이 찌질해 보이는 걸까. 그리고 그 찌질한 주인공에 나를 겹쳐서 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걸까.

 

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차라리 현실에 패배해 목을 맸던 ‘옆방녀’가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면 눈물이 났을지도. 그런데 ‘이러니 저러니 멋진 말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서 유유자적하’기를 원하고, 자존심 조금 상한다고 돈도 안 받고 편의점은 제 발로 나오고 그 자존심 때문에 ‘옆방녀’에게 돈을 꾸며 “그깟 사 만원” “고작 십 만원” 이런 소리를 뱉고 있다. 누가 봐도 쥐뿔도 없으면서 눈만 높아 누가 조금이라도 자길 무시하면 못 견디는 요즘 아이 아닌가. 왜 같은 세대인 나에게조차도 비호감으로 보이는 이런 인물을 내세워 김영하는 뭘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젊은 세대에 대한 연민? 감상? 비판? 조롱? 기성세대임에 틀림없을, 해설을 쓴 교수도, 역시 80년생 주인공보다 정확히 12년 먼저 태어난 김영하도 어쩔 수 없이 ‘기성세대의 눈으로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도 아니면, 올해로 스물일곱인 내가, 이미 서른을 넘긴 80년생에게 공감을 못해서인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까지 끝끝내 희망은 한 건더기도 건져낼 수 없었다. 아무리 국자를 휘저어봐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말간 물만 보일 뿐이다. 이제 서른셋이 되었을, 6년 전의 스물일곱 청년은 책 처음 시작에서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어쩌라고? 주인공 너도 안 변하고, 그렇다고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이 담긴 것도 아니고, 나는 요 몇 달 동안 요렇게 조렇게 방황했느니, 이게 뭐 어쩌라는 소리인지? 그러니까 너는 그냥 너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잖아. 만약 네가 이 사회 구조에 어떻게든 너를 끼워 맞췄다면, 너는 ‘인생에는 더 높은 차원의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느니 ‘그냥 좀 무의미한 일을 하고 싶’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시민으로 너의 처지에 안주하면 살았겠지.

 

물론 대학 입학 후 이 젊은이가 7년간 어떻게 변화해 왔을지가 생략되어 있는 이 소설에서 이런 비판은 가혹할지도 모른다. 패기 넘치고 자신만만했던 스무 살이 패배주의로 압사된 것 같은 스물일곱이 되기에 7년이라는 세월은 충분하다. 그러나, 그래도, 올해 스물일곱이 된 나는 이런 소설은 더 읽고 싶지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에 공감한다는 것은 끔찍하다. 싫다. 거부하고 싶다. 몰라, 나도 몰랐던 나의 속물적이고 이면적인 모습을 책을 통해 주인공으로부터 발견하고 거북했을 수도 있고, 누가 뭐래도 난 진짜 노력하고 있다고, 얘처럼 이렇게 나약하게 자포자기하는 애의 푸념과 나의 호소를 한 범주에 묶지 말라는 애원일 수도 있고.

 

제일 짜증나는 건 자기 서재와 침실이 별개의 방으로 구분된, 미국 동부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개인 배를 몇 채 가지고 있으며 딸에게 승마용 말을 선물해 주는 아버지를 둘 정도의 여자아이가 너는 ‘부모가 없어도 지금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고 속삭이며 ‘서로의 영혼으로 떠나는 이런 모험마저 없다면 우리 인생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을까?’라는 문장을 쓴 너는 ‘속물이 아니라’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맑은 눈을 가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이런 플롯, 어디서 봤더라? 김영하 또래의 여성 작가가 쓴 일인칭 여자 주인공 시점에서 주인공 여자는 꼭 초반부에 이른바 속물적이고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남자와 헤어지고 이렇게도 몽상적이며 순수하고 영혼을 읽어주는 남자를 만나더라. 한결같이 그 남자는 부자에 나름의 아픔이 있으며 망설이는 여자 주인공에게 오히려 적극적이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기도 한다. 어쩜 남녀만 뒤바뀌었을 뿐 이 구도는 그대로이니. 아무리 젊고 그렇기에 사랑이 중하다지만 너네는 너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꼭 너네에게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너네는 혼자서 결심도 못하고 힘도 못 내니? 아니면 거꾸로 내가 그 구원자가 되어 줄 수는 없는 거야? 한심한 내가, 나보다 더 비루한 누군가에게 살고 싶어지고 살게 하는 무언가가 되어 줄 수는 없는 거야? 아님 이 정도로 나약한, 상처받기 쉬운 젊음을 김영하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뭔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걸까. 놓친 게 있는 걸까.

 

차라리 주인공이 부자 여자를 작정하고 잡을 작정으로 덤볐다면, 흔한 막장 드라마가 되었을지언정 오히려 속 시원하고 통쾌했을 거다. 일체의 물질적인 것, 거부하겠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도, 차라리 그 체제에 편입해버리겠다는 발악도, 고차원적인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넌 그냥 너가 싫은 거고, 그저 편한 게 좋은 거고, 차마 맞설 용기도 없는 거고, 그냥 너 자신을 그대로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거짓말처럼 짠 하고 나타나기를 바라는 거 아니니, 너보다 훨씬 더 우월한, 너를 거기에서 건져내 줄 수도 있고 같이 있는 동안은 최소한 품위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유희를 할 수 있는. 이건 대체 남자 신데렐라 콤플렉스니 아니면 온달 콤플렉스니. 아니면 도저히 있는 그대로 소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꼬인 거야? 정말 김영하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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