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환하게 웃는 케이케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내가 여자임을 깨달았다.

 

케이케이는 며칠에 걸쳐서 이삿짐을 하나둘 나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이상한 이웃처럼 천천히, 하지만 막상 마지막 숨결을 내뿜는 순간에는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갑작스레 죽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열여덟 살이 늙어간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건 꿈을 꾸지 않는 것.

 

그게 누구든 그녀는 그들이 원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것들이었다. 더 아름다워지기를, 더 매력적이기를, 혹은 더 사랑스러워지기를.

 

그녀는 남자들은, 예를 들자면 그게 목소리든 행동이든, 혹은 아무런 뜻 없이 내뱉는 말투든, 자신이 풍기는 어떤 분위기 때문에 끌리면서도 그게 다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됐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현과 같은 남자와 결혼한다면, 고통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 세계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현 정도라면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남자애였고, 실제로 그녀 역시 현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현을 사랑하는 일에는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그렇게 부르는 게 정확한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옷 속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꼭 그만큼, 그네와 미끄럼틀로 녹이 스는 꼭 그만큼, 기압골이 이제 한반도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꼭 그만큼, 내 스물다섯의 나이도 흘러가고 있었다. 스물다섯의 고민이란 그 고민마저도 꼭 그만큼이라는 것.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꼭 그만큼이라는 것.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아요. 그랬어요. 십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년 이맘때는 어떨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다음 여름에도 햇살이 이렇게 뜨거울지, 어떤 노래가 유행할지, 다음에는 어느 나라의 이름을 가진 태풍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고. 그렇게요. 나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바라봤다. 호수 건너편, 메타세쿼이아가 서 있는 세계의 끝까지 갔다가 거기서 더 가지 못하고 시인과 여자친구는 다시 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무척 행복했고, 또 무척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거리에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남게 됐다. 다시 수만 년이 흐르고, 빙하기를 지나면서 여러 나무들이 멸절하는 동안에도, 어쩌면 한 그루의 나무는 살아남을지도 모르고, 그 나무는 한 연인의 사랑을 기억하는 나무일지도 모른다.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멈춰서 자기를 바라봐야 할 나이, 이젠 좀 솔직해져도 괜찮은 나이, 서른 살이 된다는 건 정말 그런 의미인 것일까?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먼 훗날의 누군가를, 혹은 나 자신을 지금의 내가 용서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경우는 어떨까? 먼 훗날의 나라면 지금의 나를 용서할 것인가?

 

<내겐 휴가가 필요해>

 

어이없게도 삶은 단 한번만 이뤄질 뿐이며,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은 말하고 있었다. 도서관에는 그처럼 많은 책이 있으니, 그중에는 단 한권이라도 자기 같은 인생도 이 세상에 필요했다고 말해주는 책이 있을 것 같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 당시 내 인생이란 '읽어도 그만, 읽지 않아도 그만'인 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남편은 내게 쓰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에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무서운 밤이었다. 나는 남편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밤에 남편이 내게 던진 질문은 두 가지 뿐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책을 왜 내가 써야만 하느냐, 자신을 사랑하느냐. 남편의 질문은 결국 남자란 동물은 대단히 부적절한 순간에 사랑을 확인하려 든다는 사실만을 내게 알려준채, 어떤 대꾸도 듣지 못했다.

 

나는 엄마 덕분에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고통. 엄마가 죽던 그 순간까지 나는 정신을 잃은 엄마의 손을 어루만지며 침이 마르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으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엄마의 고통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은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 날이었다. 당연하게도 엄마는 내게 수많은 기억을 남겨두고 갔다.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엄마를 바라볼 때, 그 기억들은 나를 웃게 만들기도 하고, 느닷없이 통곡하게 만들기도 했으나, 그때만 해도 아직 엄마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상실감 앞에서 기억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고통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슬픔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깊은 절망일수록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눈에는 금방 들어오게 마련이다.

 

곧 나는 삶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나만이 느꼈다고 생각했던 뭔가를 또다른 누군가도 봤으리라고 짐작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기이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인지 깨닫게 됐다.

 

위안이라고는 말했지만, 그건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순간들, 예컨대 엄마의 죽음과 같은 특정한 순간들을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체념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 탓에 누군가 내가 본 것과 같은 노을을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온 존재가 떨릴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리얼리티는 변해가는 것이므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표현양식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브레히트의 말을 거론하며, "무슨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 예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게 바로 내가 아는 리얼리티다"라고 썼다.

 

"봄나무가 아니라, 봄이 되기 직전의 나무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타는 것도 없으리라. 계절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렇게 헐벗은 나무들을 쳐다보게 만든다. 그러나 화신(花信)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꽃은 봄이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꽃이 모두 핀 봄나무는 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린다...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순간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 우리는 하늘을 봤고 우리는 별을 봤고 우리는 바다를 봤지. 하지만 결국에 우리가 보게 되는 건 자신이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너는 너만을 이해했을 뿐이야. 음식을 맛볼 때, 너는 차이를 맛보는 거지, 그 미각을 맛보는 게 아닐 수도 있어."

 

그는 리 선생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면 과연 그 첫문장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생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그로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달로 간 코미디언>

 

내가 소설가라는 사실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게 분명해지고 나서 채 십 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볼 때면 몸에 이상한 온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또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에 관한 정보를 얻어낼 때마다 그 온기는 조금씩 상승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녀 역시 나와 함께 있을 때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그 결과 얼굴이 붉어지면서 손끝과 발끝에 이르기까지 온몸이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온기가 지속되는 동안, 나는 1000m를 전력 질주해 숨이 가빠진 중학생이 입을 한껏 벌려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거침없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다. 우리 둘 사이에 온기가 남아 있는 동안 이 세상은 이해하지 못할 바가 하나도 없는, 참으로 무해한 공간이었다.

 

아직 벚나무에 벚꽃은 가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꽃들 모두 져버리라는 걸 아는 마음 같은 것도 세상에는 있지 않을까?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 되려 슬퍼지는 그런 마음 말이다. 함께 누워서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한참 들여다볼 때면 그런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알 것만 같았다. 모든 일이 지나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으로 행복했고 또 역설적으로 불행했다.

 

우리의 소원은 자고 싶은 만큼 충분히 늦잠을 자고, 얘기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얘기하고, 읽고 싶은 만큼 충분히 책을 읽고, 수영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수영하고, 취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취하고, 사랑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사랑하는 일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던데, 그 기간 동안 내게는 아무런 욕심도 없었다.

 

"우리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책 한 권을 오디오로 만들거나 점역하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주로 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책이나 베스트셀러만 우리는 접할 수 있으니까요...누군가 선생의 소설을 제게 읽어주지 않는 한, 저는 선생의 소설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요약이 불가능한 책들, 잘 안 팔리는 책들은 나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눈이 멀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책들을 읽을 수있으니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습니다."

 

"어떤 아줌마가 나한테 '어차피 앞도 안 보이는데 그냥 목도리로 얼굴을 다 감아버리지, 왜 목만 가리느냐'고 묻습디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어서 대답하기 전까지 당신이 내 앞에 있는지 없는지 나는 알 수 없어요. 청각적으로 봐서는 당신은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대답하면 '아, 거기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1981년 여름까지 살았던 시각적 세계에서 한번 죽은 뒤, 시각이 사라진 세계에 다시 태어난 셈입니다. 그건 마치 전생의 기억을 안고 사는 것과 비슷해요. 누군가 광화문 거리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제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광화문 거리는 1981년 여름까지의 광화문 거리죠. 안구를 적출한 뒤에는 전에 한번 가본 곳일수록 다시 가지 않으려는 성향이 생기는데, 그건 혹시라도 제 기억과 다른 부분을 발견할까 두려워서죠. 그건 아마도 성장을 두려워하는 일과 비슷할 테죠."

 

<해설>

세계는 붕괴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기 베를린장벽은 무너지고, 어느날 갑자기 세계무역센터는 잿더미가 되고, 어느 날 갑자기 전직 대통령은 뒷산 바위에서 몸을 던진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그 일 이전에 존재했던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우리 삶의 흐름을 단숨에 끊어놓는 이런 붕괴와 상실이 없다면 이 세상의 모든 소설은 목가(牧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은 본래 이런 붕괴와 상실을 이해해보려는 안간힘으로 씌어지는 법이다.

 

삶은 이야기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여자친구가 예전과 다름없이 내 곁에 있을 때까지는, 직업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까지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시력이 나에게 있을 때까지는, 삶이라는 이야기는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러나 세계가 붕괴하면 그 세계 위에서 진행되던 내 삶의 서사는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지고 만다. 세계의 붕괴 이후 주체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요컨대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서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세계는 붕괴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와 더불어 내 삶의 서사도 붕괴하기 일쑤다. 그때 주체는 무너지는 삶의 서사를 필사적으로 복구해야만 한다.

 

한 세계가 붕괴하면서 삶의 서사에 구멍이 뚫릴 때마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도리 없이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들어가 '삶을 쓰는' 일을 되풀이하겠지만 그 서사는 끝내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삶이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삶의 본질은 그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을 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되려는 경향이 있다...이 둘에게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어찌할 수 없는 벽이 있다...그 벽이 허물어지는 계기가 되는 것은 고통의 소통이다. 내가 케이케이를 잃은 것처럼 혜미는 세 살짜리 아들을 잃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 연결된다. 소통의 순간이다. 소통 이전의 언어들이 조금씩 미끄러진다면 소통 이후의 언어들은 통역 없이 이해된다.

 

과연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일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고, 또 과연 어떤 일이 한 사람한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 한 사람과 관련돼 있지 않은 그 어떤 일도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고 말이다. 다시 체호프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이 '세계'는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무수한 '나'들의 이야기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는 모두가 이야기들로 연결돼 있다고, 그래서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쪽 끝이 떨리는 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문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믿는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작가의 말>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별다른 계기 없이, 어떤 영향관계 안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작품들이다. 나의 바깥에서 불꽃이 타오를 때, 내 안에서도 불꽃이 타올랐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소설들을 쓰던 지난 2007년에서 2009년까지의 시간들이 내게는 불꽃이 타오르던 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당신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마도 전염된 각자의 불꽃들이 외롭게 타오르던 한 시기.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건 부정의 문장도, 무엇도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다. 우리의 얼굴이 서로 닮아간다는 걸 믿는다는, 역시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다.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이 미신 같은 이야기는 나를 매혹시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으로 프루스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본 일본 영화 '러브레터' 때문이었다. 중학교 남녀 주인공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로 도서 카드가 등장하고, 남자 주인공은 아무도 빌려가지 않아 도서 카드가 비어 있는 책을 대출하여 그(또는 그녀)의 이름을 대출자에 적는다. 그때 나온 책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중학교 편집부였던 나는, 나중에 문집 편집을 하면서 재직중이시던 선생님의 글을 실었는데 그 중 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는 내용으로 이 영화가 글에 등장했고, 영화를 보면서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한 선생님의 글이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을 어렵고 난해하고 산만한, 하지만 누구나 걸작으로 인정하는데 거부하지 않는 대표적인 고전의 대명사이고, 워낙 책을 좋아했던 나는 도서관에서 빌리려다 방대한 양에 기겁해서 건드리지도 못했다.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참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일단 이 책을 읽고 나면 망망대해의 길잡이를 확실히 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워낙 엄청나다 보니 내용을 만화로 옮긴 버전도 있는 것을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확인했다. 일단은 그것부터 시도해봐야 겠다.

 

보통은 정말 알면 알수록, 반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섬세한 묘사, 깊은 통찰력, 언뜻언뜻 돋보이는 세상에 대한 따스한 관조...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충분히 내던질 만하다는 것이다.' 이지만, 내가 읽은 보통의 책들은 절대 던질만한 책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견 냉정해 보이지만, 사물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 이만큼 관찰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기에 한번도 만나지 못한 작가가 그저 따뜻하고 친숙하게 느껴질 뿐이다. 앞으로 그가 어디까지 글을 쓸 수 있을지, 계속 기대된다.

 

1.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불행만큼 인간이 전념하는 대상이 또 있을까. 만약에 어떤 악의적인 창조주가 오로지 고통을 주기 위한 목적 하나만으로 우리를 지상에 놓아두었다면, 그 과제를 달성하려고 열성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위로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널리고도 또 널렸다. 우리 육체의 연약함, 사랑의 변덕스러움, 사회생활의 불성실, 우정의 손상, 습관의 둔화작용 등등. 이런 지속적인 고난 앞에서야, 우리가 더 큰 기대를 품고 기다릴 만한 사건은 오로지 우리의 사멸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2.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배려의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소설 속 등장인물(또한-기적적으로-읽다 보면 바로 우리 자신인)이 달콤 씁쓸한 추방이라는 똑같은 고통을 겪는 것을 목격하노라면, 그리고 결국에는 살아남는 것을 목격하노라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3.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이것은 인간의 경험이 생략 앞에 얼마나 취약한지, 즉 우리가 뭔가에 중요성을 부여할 떄마다 그 길잡이가 되는 보다 뚜렷한 푯말들이 얼마나 쉽게 벗겨져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4.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사람이 슬플 때에는, 자기 침대의 온기 속에 누워 있는 것이 좋다. 그 안에서 모든 노력과 분투를 포기하고, 심지어 머리를 이불 아래에 파묻은 채, 완전히 항복하고 울부짖음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다."

 

발목을 삠으로써 우리는 신체의 무게 분산에 관해서 금세 깨닫게 된다. 딸꾹질을 함으로써 우리는 이전까지 몰랐던 호흡기 계통의 여러 국면을 깨닫고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인에게 걷어차이는 것이야말로 감정적 의존성의 메커니즘에 대한 완벽한 입문이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말일세, 젊은 시절의 어느 시기엔가 자신이 말한 무언가가, 또는 자신이 살아간 어떤 방식의 불유쾌했던 경험을 그리하여 나중의 삶에 가서는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기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러했던 경험을 지니게 마련이라네. 하지만 이를 전부 후회해서는 안 되네, 왜냐하면 어리석거나 불건전한 시기를 모조리 지나서 궁극적인 단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자기가 정말로 현명한 사람이 되었는지 여부를-적어도 우리 중 누군가가 현명해질 수 있다면-그는 결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러나 우리가 축복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무지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이리라. 가령 자동차가 잘 움직인다면, 무슨 이득을 바라고 우리가 굳이 그 기계의 복잡한 내부 작동에 관해서 배워야 한단 말인가? 연인이 충실을 맹세한다면, 우리가 왜 굳이 인간의 배신행위의 역학에 관해 숙고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모든 만남을 존중해야 한다면, 왜 우리가 사회생활의 굴욕에 관해 조사해볼 의욕이 생긴단 말인가? 오로지 슬픔 속에 빠졌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어려운 진실에 직면하고자 하는 프루스트적인 자극을 지니게 된다.

 

이런 생각은 의사를 향한 프루스트의 의구심을 설명해준다. 프루스트의 지식 이론에 따르면, 의사는 뭔가 어색한 입장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체 작용의 이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면서도, 정작 그들의 지식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몸에 나타난 고통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몇 년간 의과대학에 다녔을 뿐이다.

 

이러한 입장에 놓인 의사들의 완고함이야말로 병을 달고 살던 프루스트를 괴롭힌 원인이었다. 그 당시의 의학 지식의 근거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고려해본다면 이런 완고함은 더욱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5.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내 말이 다른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를 바라는 것에는 그 나름의 유혹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물려받은 말버릇은 우리의 말이 권위 있는 것처럼, 지적인 것처럼, 세속적인 것처럼, 적절하게 감사하는 것처럼, 깊이 감동한 것처럼 들리도록 해준다.

 

삶이란 클리셰적인 삶보다도 더욱 낯선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검은방울새는 종종 그 부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뭔가를 해야 마땅하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플루플루, 미주 또는 불쌍한 작은 늑대라고 부르는 데에는 뭔가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6.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

 

모든 우정에 명백히 요구되는 어느 정도의 불성실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정이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에서 습관적으로 상충되는 두 가지 계획-애정을 지키기 위한 계획과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표현하기 위한 계획-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프루스트는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은.......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어쩌면 그런 우정을 비웃는 사람들이야말로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지니고 그 유대에 접근하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하기를 회피하는데, 그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 주제야말로 너무 중요한 까닭에 대화라는 우연적이고 쏜살같고 궁극적으로 피상적인 매체의 손아귀에 놓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질문에 답변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 우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훈계하는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관해 배우는 영역으로 바라보는 데에 대해서 아무런 분개도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다른 사람의 감수성을 음미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결과로 인한 거짓된 친절-가령 나이 들어가는 전직 고급 창부의 외모에 관한 장밋빛 해석, 의도는 좋았지만 범속한 시집에 관한 너그러운 서평-의 필요를 어느 정도까지는 받아들인다. 진실과 애정 모두를 호전적으로 추구하는 대신, 그들은 양립 불가능한 것을 식별하고, 그들의 계획을 나누었으며,가령 국화와 소설 간에, 로르 헤이먼과 오데트 드 크레시 간에, 실제로 보낸 편지와 결국 감춰두었지만, 그래도 쓸 필요는 있었던 또다른 편지 간에 현명한 구분을 가했다.

 

7. 눈을 뜨는 방법...

 

위대한 화가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바로 그들 본인의 눈이 시각적 경험의 국면들에 대한 유별난 수용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뭔가를 다시 한 번 바라봄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행복이야말로 프루스트의 치료 개념에서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불만이 각자의 삶에 본래적으로 결여되었던 뭔가의 결과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각자의 삶을 적절하게 바라보기에 실패한 결과의 가능성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인지를 밝혀준다.

 

8. 사랑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

 

만약 연인과의 오랜 연애가 너무 잦은 권태를 낳는다면, 즉 우리가 상대방을 너무 잘 안다는 느낌이 든다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짜 문제는 우리가 상대방을 충분히 잘 알지는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관계에서는 처음의 신선함이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를 스스로의 무지 속에 남겨놓는 반면, 차후에 벌어지는 연인의 확고하고 물리적인 현존과 연애의 일상은 마치 우리가 진정한 그리고 단조로운 친숙성을 성취했다고 오판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사실 물리적 현존이 길러낸 거짓된 친숙함에 불과하며, 결국 홍수로 인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기 전까지만 해도 노아가 무려 600년 동안이나 이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느꼈음직한 거짓된 친숙함에 불과한 것이다.

 

한 사람의 매력보다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발언이 사랑의 이유가 되는 경우가 더 잦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니요, 오늘 저녁은 한가하지가 않네요."

 

비록 어떤 사람이 갖가지 특징들로 가득 찰 수는 있지만, 유혹자가 이런 특징에 전심으로 집중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며, 이 자극은 저녁식사 제안에 대한 거절에서 그 완벽한 형태를 발견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저항하는, 누구도 곧바로 소유할 수는 없는, 심지어 처음에는 과연 누군가가 소유하게 될지 아닐지 여부조차도 알 수 없는 여성이야말로 유일하게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프루스트가 보기에, 질투의 주입은 관계가 습관에 의해서 망가지는 상황에서 구출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9. 책을 내려놓는 방법...

 

평생을 문학에 바친 사람으로서 프루스트는 책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의, 또는 오히려 물신주의적으로 경건한 태도를 취하는 것의 위험에 관한 독특한 자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일면 마땅한 존경을 바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문학 제작의 정신을 조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쓴 책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유익만이 아니라 나아가 그 한계의 음미에도 근거를 두어야만 한다.

 

독서가 우리에게 자극인 한에서는, 즉 그 마법의 열쇠가 어떻게 해야 들어갈지 몰랐던 우리 내부 깊은 곳에 있는 거처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한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독서의 역할은 유익하다. 반면 우리에게 정신의 독자적인 삶을 일깨우는 대신에, 독서가 그 삶의 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을 때에는 위험하기도 하다. 즉 진실이 이제 더는 어떤 이상, 즉 오로지 우리 생각의 친밀한 과정이며 우리 마음의 노력에 의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어떤 이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인 어떤 것으로, 책장 사이사이에 배치된 어떤 것으로, 가령 다른 사람이 완벽하게 마련해둔 꿀처럼, 그저 도서관의 책장으로 손을 뻗어 정신과 육체의 완벽한 휴식 속에서 수동적으로 견본을 뽑아내는 수고만 감당하면 그만인 것으로 나타날 때가 그렇다.

 

우리는 밀레가 자신의 '봄'에서 보여준 그 들판을 직접 가서 보고 싶어하며, M. 클로드 모네가 우리를 지베르니로, 센 강의 강둑으로 그리고 그가 아침 안개 사이로 보여 준 탓에 우리 눈에는 거의 분간이 가지 않는 강굽이로 데려 가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사실은 무엇인가 하면, 단순히 관계의 우연 또는 가족 관계로 인해서...... 밀레나 클로드 모네는 그 근처를 지나거나, 인근에 서 있을 기회를 얻었고, 그리하여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 길을, 그 정원을, 그 들판을, 그 강굽이를 그리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이 세계의 나머지와 비교했을 때, 그런 장소가 유독 뭔가 다르게, 그리고 뭔가 더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그곳이 일찍이 천재들에게 부여했던 어떤 인상이-마치 파악하기 어려운 반영처럼-그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인상이란, 어쩌면 그 화가가 그릴 수도 있었을 다른 풍경 모두의 유순하고도 무관심한 표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독특하면서도 제멋대로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루스트에게 바치는 진정한 경의는 그의 눈으로 우리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지, 우리의 눈으로 그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 테니까.

 

이런 사실을 잊게 되면 우리는 의외로 서글픔을 느낄 수 있다. 흥미라는 것이 특정한 위대한 예술가가 그것을 발견한 바로 그 장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느낄 때, 천 가지에 달하는 경험의 풍경과 장소는 충분히 받을 수 있었던 관심을 그만 박탈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네는 오로지 지상의 몇 가지 구역만을 바라보았을 뿐이며, 프루스트의 소설은 제아무리 길어야 인간 경험의 일부밖에는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의 주의력의 일반적 교훈을 배우는 대신, 우리는 단순히 그 시선이 지목하는 대상만을 추구할 수 있으며 그런 와중에 예슬가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이 세계의 다른 부분을 공정하게 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프루스트에 대한 우상숭배자로서, 우리는 프루스트가 결코 먹어본 적이 없는 디저트에, 그가 결코 묘사한 적이 없는 드레스에, 그가 언급한 적이 없는 사랑의 미묘한 차이에, 그가 방문하지 않은 도시에 바칠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며, 대신 우리의 존재와 예술적 진실 및 흥미의 영역 간의 간극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고통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프루스트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경의는 일찍이 그가 러스킨에게 내린 것과 똑같은 평결을 그에게도 내리는 것이리라. 즉 그의 모든 자질 때문에, 그의 작품에 너무 오랜 시간을 소비한 사람들에게는 결국 그의 작품이 어리석고, 광적이고, 속박되고, 거짓되고, 우스꽝스럽다고 증명되리라는 것이다.

 

독서를훈련으로 만든다는 것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일이다. 독서는 정신생활의 문턱에 놓여 있다. 독서는 우리를 정신생활에 소개해준다. 그러나 독서 자체가 정신생활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충분히 내던질 만하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의 기술' 이라는 책이 있다. 아마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누구나 겪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똑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고 공감만 하게 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또 얼마 전에도 여행을 다녀온 나로서는 매번 여행을 갈망하고 다녀올 때마다 만족하지만 똑부러지게 나의 감정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대지 못해 약간 막연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 감정의 정체를, 이유를...

 

어쩌면, 보통은 피곤한 삶을 자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활을 영위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범위보다 훨씬 넘칠 정도의 섬세함, 예민함... 그냥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단순한 삶이 어쩌면 가장 행복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굳이 내 감정의 이유를 똑똑히 알아야만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누군가가 좋을 때, 누군가를 사랑할 때, 특별한 이유를 대지 못 할 때 오히려 더 그 마음이 순수한 것처럼...

 

보통처럼 마음의 정체, 감동의 이유를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면 뭔가 불편해지는 사람, 에게는 딱인 책이지만 어쩌면 이 책으로 인해 더 상념이 많아질 수도 있겠다. 보통의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감탄할 정도의 통찰력과 함께 책을 덮고 난 후에는 내 삶에 대한 사색을 뒤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기대에 대하여...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화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계절은 사람이 늙는 것처럼 서서히 쇠퇴해갔다. 하루하루의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어느새 겨울은 가혹한 현실로 자리를 잡았다.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 장치 앞에서 아프고 싶어 하며, 또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매혹적인 사람이 이국적인 땅에 가게 되면 자신의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매력에 그 사람이 있는 장소가 주는 매력이 보태진다.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사랑할 때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는 빠져 있는 가치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도 따라갈 것이다.

 

호기심에 대하여...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듦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숭고함에 대하여...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우리는 사막에 있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우리 자신의 결함을 보고 스스로 작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굴욕은 인간 세계에서는 항상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의 의지가 도전받고 우리의 소망이 좌절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숭고한 장소는 일상생활이 보통 가혹하게 가르치는 교훈을 웅장한 용어로 되풀이한다. 우주는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 우리는 연약하고, 한시적이고, 우리 의지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우리 자신보다 더 큰 필연성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것.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가 어떤 장소를 규정할 만한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냈다면, 우리는 그 풍경을 여행할 때 그 위대한 화가가 그곳에서 본 것을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가보았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던 곳 또는 무관심하게 지나친 곳들 가운데 어떤 곳들이 가끔 눈에 번쩍 띄면서 우리를 압도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곳들은 서툴게나마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질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곳은 예쁘지도 않고, 안내 책자에서 아름다운 곳을 설명할 때 흔히 꼽는 분명한 특징 같은 것도 없다. 우리가 여기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 장소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러스킨은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대한 관심을 통해 다섯 가지 중심적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름다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타고난 경향이 있다. 셋째,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 [앞서 보았듯이, 기념품이나 양탄자를 산다거나, 자기 이름을 기둥에 새긴다거나,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포함하여].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 [심리적이고 시각적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대하여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 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자,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데생을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것을 가르치려 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두 사람이 클레어 시장에 걸어 들어간다고 해 봅시다. 둘 가운데 하나는 반대편으로 나왔을 때도 들어갔을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버터 파는 여자의 바구니 가장자리에 파슬리 한 조각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의 이미지들을 간직하고 나왔습니다. 그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그 이미지들을 자신의 일에 반영시킬 것입니다."

 

옮긴이의 글...

 

세상에는 비싼 돈 들여 아까운 시간을 쪼개 여행을 하면서 '왜 나는 여행을 하는가'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며칠만 못 봐도 조바심을 내면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 질문이 삶을 더 윤택하게 해주는지 피곤하게 만드는지는 독자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총각네 야채가게 - 맨손으로 세상을 움켜쥔 싱싱한 총각들 이야기
김영한.이영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 나온지가 오래되었구나. 벌써 구판 절판되고 새로 출판사를 바뀌어 나왔다는 것을 보면 나온지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하였으니까.

 

청년실업, 이태백, 경기침체, 자영업자 몰락... 답답한 뉴스만 나오는 시대에 비록 판타지스럽더라도 드문 확률이더라도 이런 실화를 접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도 기운이 난다.

 

감동스럽고 그러면서도 활기찬 책.

 

우리 집 근처의 총각네 야채가게를 볼 때마다 이 책과 저자의 도전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영석 사장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광대의 노래
백성민 지음 / 세미콜론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따뜻한 고봉밥에 뜨끈한 미역국 올려진 밥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군더더기 없고, 담백하고, 힘차고,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에 파묻혀 자랐고 커서는 웹툰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이 책은 뚝딱 읽으면서도 또 계속 곱씹어 읽게 되고 질리지 않는 그런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