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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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 그림은 캐슬린 톨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표지화) 이라고 되어 있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캐슬린 톨키라는 미국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으로, 미국판 책표지에 쓰인 그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내용이 그냥 이 책의 그 내용이기는 한데, 매번 표지 그림 찾아보는 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읽기의 재미이기도 해서, 약간 아쉬웠다.

뭐랄까,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느낌?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의 표지 그림은 뭉크의 그 유명한 절규였는데, 이런 건 또 출판사의 재치구나 라며 슬며시 웃기도 했고.

인간 실격의 표지가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었는데, 만약 다자이 오사무 사진을 표지로 삼았다면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좀 아쉬웠을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이나 위대한 개츠비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배치한 것도 참 좋았고.

이 그림도 좋기는 한데 책의 내용을 곱씹어 보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판 표지 그림이니까. 미국에서 출판할 때 일부러 책의 내용을 반영하여 화가에게 부탁하여서 이 책을 위해 일부러 만든 표지 그림인데, 그렇기 떄문에 그림 만으로도 책의 주제를 다 던져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중남미 여성들이 부엌에서, 중남미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음식을 만드는 이야기.

 

이 책이 특별해진 이유는 성과 사랑과 음식을 연결했기 떄문이다. 음식의 이름으로 장이 구별되고, 특별한 행사 때마다 특별한 음식이 만들어지며, 그 음식을 매개로 사건이 일어난다.

결국 여주인공을 버티게 한 것은 남자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요리에 대한 열정이었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 표지 그림도 좋기는 한데, 이 책과 무관한 다른 그림을 한 번 고민해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퍼뜩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이 책의 내용을 기존에 나와 있는 그림으로 반영하기에는 힘들었겠지.

 

 

음식과 성을 연결하는 것은 이 책이 나오는 시기에는 독창적이었겠지만, 이제는 흔하디흔한 비유이자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는 정작 엄청 독특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의역된 제목인데,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소설의 제목마저도 영화의 제목에서 그대로 가져와버렸다고 한다.

잘한 의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최소한 절반 이상의 동기는 바로 제목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원제는 초콜릿라떼를 팔팔 끓인 물이라고 하는데, 책 내용은 팔팔 끓인 물이지 절대로 달콤 쌉싸름한 쪽이 아니다.

그야말로 미친 사랑이다. 이렇게라도 너의 곁에 있고 싶어. 우리의 사랑을 이렇게라도 완성하고 싶어. 하고 절절하게 외치는.

딴지 같지만 이 정도로 절절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수도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사랑도 사치였나, 아니 결국 먹을 것을 만드는 부엌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의식 중에 두려웠던 걸까, 결국 이 여자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이었나 요리였나.

 

아, 그리고 웨딩케이크 사건은... 아무래도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서 차용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옛 연인의 결혼식, 케이크를 먹고 구토하는 하객들... 아무래도 그 장면 맞는 것 같다.

명작은 명작이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오마주 되겠지.

 

 

p. 124~p. 125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 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 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p. 146

어머니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티타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티타의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고 오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티타는 이제야 '상추 이파리처럼 홀가분한'이라는 표현의 뜻을 이해할 것 같았다. 함께 자란 옆 상추와 갑자기 헤어진 상추의 느낌이 바로 이렇게 야릇한 느낌일 것 같았다. 함께 얘기는커녕 아무런 의사소통도 해 본 적 없고 그 안에 또 다른 수많은 이파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겉 이파리밖에 본 적 없는 옆 상추와 헤어졌다고 해서 고통스러워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논리적인 일일 것이다.

 

p. 208

티타는 밀이나 콩, 자주개자리의 씨앗은 자기 모습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바뀌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계속 싹을 틔운다고 생각했다. 이제 티타는 씨앗이나 곡물 들이 새 삶을 주기 위해 자기 몸을 터뜨려 가며 껍질을 벌려 물을 깊이 빨아들이는 게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씨앗이나 곡물 들은 자기 몸속에서 첫 번째 뿌리 끝이 삐죽 튀어나오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원래 모습이 망가져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새싹을 당당하게 세상에 보여 주었다. 티타는 자신도 그런 단순한 씨앗이었더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자기 몸속에서 뭐가 자라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얘기할 필요가 없고, 사회의 비난을 감수한 채 부른 배를 안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씨앗에게는 이런 고민이 없었다. 특히 무서워해야 할 어머니도 없었고, 도덕적으로 비난할 사람들도 없었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티타에게도 어머니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마 엘레나가 내린 저주가 언제 어느 때 저승에서 떨어질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티타는 이런 기분을 잘 알았다. 요리법에 나온 대로 따르지 않고 요리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럴 떄마다 티타는 마마 엘레나가 기필코 틀린 부분을 찾아내서 자기가 만든 음식을 칭찬하기는커녕 조리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호통을 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엌과...... 그리고 인생에서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법칙들을 깨고 싶은 유혹도 뿌리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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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봄날의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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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1. 미술 윤곽의 안을 검게 칠한 사람의 얼굴 그림. 18세기 말에, 프랑스의 재무상 실루엣이 극단적인 절약을 부르짖어 초상화도 검은색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다.

2. 복식 옷의 전체적인 외형. 우아한 실루엣의 드레스.

3. 영상 그림자 그림만으로 표현하는 영화 장면. 실루엣의 기법을 잘 살린 영화.

 

이 책의 제목은 생의 실루엣. 즉, 자세히는 보이지 않아도 윤곽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삶의 외형 등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생의 점묘화>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생>이 아니기 때문에 읽고 나면 글로 묘사되지 않은 생략된 모습은 이것이겠구나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곱씹어도 좋고, 그저 그 그림자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고. 여러모로 여운이 남는다.

 

이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 많다. 이렇게 살아가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건가하고 생각될 정도로 작가의 일화 하나하나는 그 시작부터 흥미롭다. 각자 재혼한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유일한 자식. 만약 어머니든 아버지든 첫 번째 결혼이 끝까지 이어졌다면 작가는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생각은 작가의 머리에 늘 하나의 화두로 남아있었을 것 같다. 만약 생의 어느 한 순간조차 살짝 어긋났더라면 나는 여기 존재할까.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한끗 차인 것인가 하고. 실제로 여기 실린 글들도 그 생과 사의 그 한끗 차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형

 

p.9~10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취직한 나는 2주간의 연수를 마치고 기획제작부라는 부서에 배치되었다. 디자이너와 카메라맨, 카피라이터가 있어 타 부서와는 다른 분위기였고, 사내에서도 그곳만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느낌을 풍겼다.

사흘째 되던 날 디자이너가 나를 부르더니 책상 위에 늘어놓은 사진 열 몇 장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어느 부동산 회사가 분양하는 맨션의 팸플릿에 넣을 사진을 고르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젊은 부부와 어린 딸이 높은 지대에서 아래쪽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 사진을 골랐다. 그러자 디자이너는 다들 이 사진이 좋다고 해서 곤란한 참이라며,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광고업계에서는 사람의 뒷모습을 쓰는 것이 일종의 터부라고 가르쳐줬다. 뒷모습은 어떤 식으로 써도 외롭거든, 하고.

나는 과연 그렇구나 생각하며, 뒷모습에는 아무래도 '떠나간다'는 인상이 늘 따라붙겠지 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어제부터인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끌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떄 반드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p.12~13

그러던 중 나는 내가 어머니의 뜻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다 느꼈다. 이제 관두자 결심하고 그 집 앞을 지나쳤을 때, 초로의 남자가 개를 데리고 나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애타게 기다리던 산책에 기뻐하는 개에게 질질 끌려 종종걸음으로 나를 앞질렀고, 사거리에서 산 쪽으로 꺾어 가버렸다.

사는 장소, 보기 드문 성, 짐작되는 나이대, 호리호리한 체격에 큰 키....... 나의 아버지 다른 형이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급한 비탈길을 개에게 끌리듯 올라가던 그 사람은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것은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그 뒷모습에 대고 뭐라고 한마디 말을 걸고 싶은 급작스러운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큰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OO짱. 그리고 그 사람이 뒤돌아본 것과 동시에 뛰어서 달아났다.

내가 다시 그 집 앞에 설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성운

 

P.15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의 남서쪽 끝에 타스쿠얼간이라는 국경 마을이 있다. 실크로드의 톈산남로에서 옛 간다라 지방으로 가기 위해 파키스탄에 입국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마을을 거쳐야 한다. 그 반대 코스로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P.17

그런 내게 200미터 남짓한 길 양쪽으로 포플러 가로수와 창고나 가게가 한산하게 늘어서 있을 뿐, 사람도 거의 없이 들새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땅끝 마을은 어딘가 맑고 깨끗한 표정을 띠고 있어 안녕한 하룻밤을 제공해줄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P.18

나무와 점토와 돌로 세운 딱 한 채뿐인 호텔은 간소하긴 했으나 깔끔하게 청소한 흔적이 있었다. 구석구석 빈틈없이 청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이곳이 국경 마을에 있는 호텔이고, 여러 이웃 나라를 오가는 거친 상인들이 묵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넓이를 생각하면, 적은 종업원으로는 이게 최선이리라 이해했다.

 

P. 20~21

나의 일본어에 깜짝 놀란 남매는 손을 잡은 채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올려봤다. 남자애의 눈은 옅은 갈색이었고 여자의 눈은 희미한 푸른색이었으며, 입고 있는 옷은 허름했으나 결코 비굴하게 알랑거리지 않는 무언가를 그 눈 속에 감추고 있었다.

일을 마친 누나가 호텔 뒷문 쪽에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웃으며 손등으로 여동생의 눈물을 닦아줬고, 그 손으로 남동생의 등을 쓰다듬었다. 세 사람은 강아지들처럼 서로 장난치며 길 막다른 곳의 무너진 돌담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밤에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아 스웨터 세 장을 겹쳐 입고 창을 연 뒤, 몸을 살짝 내밀어 땅끝 마을을 뒤덮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미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었다.

세 사람이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돌담 건너 편, 길로부터는 상당히 낮게 꺼져 있는 일대에서 인가의 불빛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곳에 타지크족의 거주지가 있다는 것을 낮에는 몰랐다. 그것은 땅끝에서도 맨끝의 불빛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듯했다.

바람은 굽이치고 구름은 소용돌이를 그리며 거주지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별의 알갱이 같은 것 속으로 흘러들어가, 우주 어딘가의 성운으로 보였다.

 

 

 

 

유리 너머

p.33

그 작업을 하는 나를 S는 어항 건너편에서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어항의 굴곡진 유리 너머로 보인 것은 친아버지를 쏙 빼닮은 S의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나 S에게 엽서를 받았다. 개미는 건강해요, 고마워요,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짧은 문면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으며, S가 태어나기 얼마 전 취한 듯한 아버지가 혈통서가 안 딸려 있는 놈은 인간이 아니라는 거냐고 고함치듯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S는 고베 대학을 졸업하고 큰 건축회사에 취직했지만 서른다섯 살 때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죽었다. 약혼자가 있었다고 한다. S가 죽은 나이가 친아버지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 깨달았다.

 

*1995년 1월 17일 일본의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3의 대지진.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 지진 관측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

 

 

바람의 소용돌이

P.43

이부자리로 돌아온 나는 뭔가가 회전하며 교각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은 듯했지만, 그것은 아지강으로 나아가자 낌새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창고가 줄지어 서 있는 아지강 하류 100미터 정도의 벼랑 근처에서 가라앉은 숙선(宿船)으로부터 가족 넷의 유체가 떠올랐다. 당시 수상생활자의 거처였던 조그만 배를 숙선이라고 불렀다.

P.44

그때 아버지가 숙선이 떠내려가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 가족은 죽지 않았을까. 나는 바람과 함께 가루이자와의 숲 전체가 회오리치는 어둠 속에서 50년도 더 지난 일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죽이는 마권

p. 52

며칠 뒤, 친구로부터 우편물이 왔다. 봉투 속에는 '죽이는 마권'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갑에 넣었다. K 조교사와 만날 일이 있으면 보여주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경마장에 발길을 끊고 마권에서도 손을 씻은 무렵, 텔레비전 뉴스로 기묘한 사건 보도를 접했다. 세 남자가 호텔방에서 목을 매달고 죽었다 한다. 사업이 벽에 부딪혀 자살한 모양으로, 남자 하나는 전 더비 우승마의 오너고 나머지 둘은 그 친구인데 어째서 세 사람이 동반 자살하듯 거의 동시에 목을 매달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든 뉴스 프로그램에서 크게 다루었고, 개중에는 더비에서 승리한 뒤 경마장에서 찍은 기념사진 속의 아이짱과 그 오너와 K 조교사를 비추는 방송국도 있었다.

 

p.53~54

처자식 혹은 불륜 상대를 길동무로 삼은 게 아니라 어째서 남성 친구 둘이 죽음을 함께했을까. 거대한 수수께끼로서 각종 주간지성 억측 기사가 실렸고, 그 가운데는 상스러운 추리를 전개하는 글도 있었다.

사건은 이윽고 잊혀갔지만 평생에 단 한 번인 '죽이는 마권'은 이제 웃어넘길 일로는 끝나지 않게 되어, 나는 당장이라도 그 빗맞은 마권을 태워버리자 생각하면서도 어째서인지 버리기 힘든 무언가를 느끼고는 그 뒤로도 몇 년 동안이다 지갑 속에 감춰두고 있었다. K 조교사와 통화를 할 때는 있었으나 나는 마권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K 조교사도 아이짱의 마주 이야기는 일부러 피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다 2년쯤 전에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해 F씨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이는 마권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준 F씨도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제 적당한 때겠지. 지금 죽이는 마권을 태워버리지 않으면 나는 그 기회를 영원히 잃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 생각하고 F씨의 죽음을 알게 된 날 밤, 서재의 의자에 걸터앉아 라이터로 죽이는 마권에 불을 붙였다. 떠오른 것은 아이짱의 마주가 아니라 과묵한 F씨의 수수한 양복 차림이었다.

나는 세상에 슬며시 숨어 사는 골수 도박꾼의 정체가 도깨비불처럼 타올라 사라지기까지의 찰나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

 

 

소설의 등장인물들

 

P.59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난 해 여름에 내가 실크로드 6700킬로미터의 여행을 했다는 것은 앞에서 적었다. 그 약 40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숱하게 얻었지만, 아무리 무대를 바꾸고 입은 옷을 바꾸고 나이를 바꿔봤자 어떻게도 내 소설 속 등장 인물로 쓸 방도가 없는 이가 있다.

 

p.61~62

청년은 강한 바람을 타고 박히듯 날아드는 모래알로부터 얼굴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도 주저 없는 발걸음으로 고비탄 한 가운데로 계속 걸어갔고, 이윽고 검은 점이 되어 신기루 속으로 사라졌다.

신기루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고 나는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는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 고비탄을 곧장 가면 150킬로미터쯤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이어진다. 그 사이에는 마을은커녕 작은 집락集落조차 없다고 한다.

타클라마칸사막에는 더욱 아무것도 없다. "하늘에 나는 새 없고 땅에 달리는 짐승 없구나"*다.

그렇다면 저 청년은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간 것인가.

세상을 버리고 죽으러 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얼굴은 모래알을 피해 숙이고 있었지만 발걸음에는 의기양양한 구석이 있었다.

이 얼굴조차 보이지 않던 청년을,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의 어디에도 두지 못했다.

싸구려 연립주택의 복도에 둘 수도 없다. 혼잡한 도시를 걷게 할 수도 없다. 술집 카운터에 걸터앉힐 수도 없다. 고시엔구장의 외야석에 앉힐 수도 없다.

그를 본 뒤로 15년 정도가 지났지만, 이글거리는 열기와 거센 바람 따위 개의치 않고, 이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작은 모래 회오리들 사이를 계속 걸어가 사라진 그 청년에게 빙의할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중국 동진의 고승 법현이 쓴 기행문 『불국기』에 나오는 문장으로, 인도를 향해 떠난 그가 고비에서 타클라마칸에 이르기까지의 사막을 묘사한 이 부분이 명문으로 유명하다.

 

 

책의 추억

p. 67

고작 세 권이지만, 그 책들을 읽을 때 나는 내 인생에서 그리 자주 마주할 것 같지 않은 혹독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덴 아라비아』는 영락한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던 무렵 읽었고, 『불만의 겨울』은 그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와 내가 추심꾼이라고 불리는 남자들로부터 달아나 오사카와 나라의 현 경계에 있는 마을에서 숨어 지내던 시기에 읽었으며, 『쿤룬의 옥』은 작가가 되려는 꿈을 버리고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해야만 하는 지경으로 내몰렸을 때 읽었다.

그래서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반사적으로 이 세 권의 책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최근 이 세 권을 구하고 싶어 출판사에 문의했다. 『아덴 아라비아』말고는 절판되어 있었다.

친한 편집자가 『아덴 아라비아』를 구해서 보내줬지만, 『불만의 겨울』과 『쿤룬의 옥』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헌책방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찾을 수 있게지만 내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공황장애가 가져다 준

 

 

공황장애가 가져다 준 것

 

p.87

스물 다섯 살 때 발작이 덮쳐온 뒤 9년이 지나서야, 우울증도 아니고 강박관념증도 아니고 조현병도 아닌 전형적인 불안신경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미치지 않아요. 이 발작으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천재는 대부분 이 병을 앓고 있답니다. 발작이 너무 심하면 이 약을 드세요. 금세 편해질 겁니다. 속이 거북하면 소화제를 먹죠?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정신과 의사는 온화한 미소로 말하며 신경안정제를 줬다. 천재 운운은 나를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을 터다.

그 약이 나의 상비약이 된 지도 벌써 30년이다. 복용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말하자면 거의 부적 같은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얻은 수많은 보물에 대해 말하자면, 이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마음의 힘이라는 것의 대단함을 몸소 깨달았다는 점도 덧붙여둔다.

 

세계, 시간, 거리

 

p. 97

그 가운데 지구에서 몇십만 광년 떨어진 성운인데 크기는 우리가 사는 지구가 포함된 은하계의 50배인 것이 있었다.

성운은 빨강과 주황과 보라의 띠 모양 빛으로 물결쳤는데, 그 중심부에는 관管처럼 생긴, 빛이라고도 물체라고도 할 수 없는 돌기가 있었고, 그 끝에는 푸르고 둥근 씨앗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말하자면 바로 지금 태어나고 있는 새로운 별의 아기라고 한다.

아기라 해도 크기는 태양의 약 200배, 온도는 400배라고 내레이터는 설명했다.

그것은 내가 몇 개월쯤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과 같았다. 성운 속에 난소 같은 형태가 있었고, 자궁관과 비슷한 관 모양의 돌기가 있었으며, 난자를 꼭 빼닮은, 아직 별이 되지 않은 별이 그곳에서 태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연대

 

P.107

우리 가족끼리만 갈 수는 없다. 150명 가까이 되는 동포들도 데려간다. 요코타 씨는 그렇게 말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될까 말까 한 청년이 말이다.

 

선량한 사람들의 연대, 이것이 지금만큼 요구되는 시대는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방향을 향해 구체적으로 움직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인종이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와는 상관없이 인간 하나하나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고작 두 달이기는 했지만, 내가 건축 철물점 '이즈마상회'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요코타 규지 씨의 수기나 손으로 만든 작은 배낭을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소멸하지 않고

 

P. 123~124

약력을 읽어보니 후쿠이현의 와카사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교토 창호 명인의 제자로 들어갔고, 쉰 살 때 독립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요컨대 스승 아래에서 37년 동안 수행을 쌓았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진집을 빌려서 이따금 책장을 넘기며 명인의 세계를 접했는데, 그러던 중 이 사람이 오랜 수행으로 얻은 것은 죽음과 함께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호장의 세계뿐만이 아니다. 그들 장인의 직종은 여러 방면에 걸쳐 있으며, 학문이나 운동이나 예술 분야에서도 고도의 기량과 출중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노력과 부단한 수련 없이는 체현이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그 사람이 이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면 무無로 돌아가는가.

계승자에게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할 수는 있어도, 전수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계승자의 소유가 되므로 전수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독자적인 개성과는 별개다. '장로'의 죽음으로 '장로'만의 재능과 기술도 사라져버리는 걸까.......

 

 

터널 연립주택

P. 175

아마도 나는 터널 연립주택에 맡겨진 고작 1년 사이에, 사람들에게는 타인이 짐작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남자는 이제부터 문을 잠그고 열쇠를 입구의 우편함에 넣어달라고 내게 부탁하더니 10엔짜리 동전을 다섯 개 줬다.

"왜 직접 못 잠가요?"

"힘들어서 말이다. 몸이 안 움직이거든."

"내가 밖에서 문을 잠그면 아저씨는 못 나가잖아요."

"괜찮아. 됐으니까 밖에서 문을 잠가줘."

여하튼 50엔이나 받았다. 나는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밖에 달린 자물쇠를 채우고 고모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건의 전후

p.199

초등학교 3학년 때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은, 거무스름한 수영 팬티를 명치까지 끌어올리고 좌우 집게손가락을 양쪽 귀에 꽂은 채 강물 속에서 상체를 내놓은 순간의 것이다.

 

오타니 씨가 그 사진을 찍고 1분인가 2분 뒤, 여자애는 강 한가운데에서 깊은 곳에 발을 헛디뎠던가 하여 빠져 죽을 뻔했다. 오타니 씨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나는 사진을 볼 때마다 한순간의 전후라는 것을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날 조짐을, 한 장의 사진 어딘가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귤 산에서 본 바다

p.207

-나한테는 마음씨 곱고 귀여운 여동생이 있었는데 열여덟 살 때 죽어버렸다. 만약 그 애가 살아 있었다면 너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 애가 죽었기 때문에 네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거지. 이상한 일 아니냐. 이 집 툇마루에서 너와 장기를 두고 있으면 이상하군, 이상해, 이 세상은 이상해, 하는 생각이 든다. 너와 나는 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깊은 것으로 이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작고 비쩍 마른 네가 귀여워서 견딜 수 없다.-

 

p.209~210

그런 쓰다가 사물들과의 헤어짐은 갑자기 찾아왔다. 우리 가족이 도야마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횅에 처했기 때문이다.

몇 년 뒤, 고향으로 돌아갔던 쓰다 아저씨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가 왔지만 아버지는 계속된 사업 실패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난요의 미쇼초로 가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가벼운 뇌경색으로 누워 지내게 된 해에 쓰다 아주머니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는 마흔네 살이 되어 있었다.

편지는 미쇼초의 귤 산 상속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에게도 몇 분의 일 정도의 상속권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생일 때 죽었지만 아버지와 쓰다가의 장녀는 이혼이 아니라 사별한 것이니 내게도 상속권이 있다고 한다.

나는 당시의 상속에 관한 법률을 잘 모르지만, 쓰다 아주머니는 쓰다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귤 산을 팔아서 그 돈을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노후의 생활비로 충당하고 싶다고 썼다. 요컨대 나의 상속권을 포기해 주지 않겠냐는 의뢰였다.

나는 곧장 함께 들어 있던 서류에 서명 날인하여 보냈다. 법률이야 어떻든 간에 나한테 쓰다가의 귤 산을 판 돈을 받을 권리 같은 건 없다.

그 쓰다 아주머니도 돌아가시고 2, 3년이 지난 무렵, 나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예전에는 쓰다가의 소유였던 귤 산에 올랐다. 이렇게 큰 산이었나 놀라며 진주 양식용 뗏목이 가지런히 떠 있는 아름다운 미쇼만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 소네자키 경찰서에서 쓰다 아저씨가 후배 경찰들에게 어린 나를 소개하던 순간의 말이 문득 되살아났다.

"내 자식 같은 애니까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그것과 겹치듯이 툇마루에서 아저씨가 했던 말도 가슴에 북받쳤다. 쓰다 아저씨의 말 속에는 천만 마디를 써도 표현하지 못할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가까스로 깨달았다.

난요의 햇빛을 받고 빙빙 도는 갈매기를 눈 아래로 바라보며, 나는 생명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생각했다. 생명보다 이상한 것이 달리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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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세계문학 : 1984 ㅣ 만화세계문학 (독서논술 만화 필독선) 30
조지 오웰 지음, 이기선 옮김, 버라이어티 아트워크스 그림, 정완섭 해설 / 신원문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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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끼치고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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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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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가 아니라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이다.

아마도 책의 내용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 제목을 의역한 것으로 보인다.


스탈린을 조롱하는 편지 때문에 수용소로 보내졌고, 이 생활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이다.

이후 소련 사회를 비판한 책들을 계속 썼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다.

추후 소련에서 추방당하고 무국적 상태로 있다가 소련 붕괴 후 러시아로 귀국한다.

이후 옐친을 지지하다가 비판으로 돌아섰고, 죽을 떄까지 푸틴을 강력하게 지지했기에 장례식도 푸틴에 의해 국가장으로 치뤄졌다고.


현재 세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참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된다. 사망 당시 89세였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하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뭐라고 이야기했을지 궁금하다. 

왠지 푸틴을 지지했을 것 같은 이 예감은 뭘까. 단순히 생전에 푸틴을 지지했다는 것 말고도 그의 여러가지 행적을 보면 아마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찬성하고, 나토와 유럽연합을 비판했을 것 같다.


솔제니친의 대부분의 사진은 이 표지처럼 턱수염이 수북하다. 하지만 딱 이 표지에 나온 사진은 찾지 못했다.

깎지 않은 무성한 턱수염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진만 봐서는 금방 수용소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평생 수용소에서 있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수용소에서 나와서도 그의 삶은 거대한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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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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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페터 한트케 세트가 있다고 한다.

소망 없는 불행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관객모독


관객모독은 읽었고,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도 이번에 읽었으니 다음 차례는 소망 없는 불행이다.


이 책은 제목이 참 인상적이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얼마나 불안할까.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도 불안한데.

이 책의 제목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전을 결정짓는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간 홍명보가 환히 웃으며 뛰어오는 장면이다.

만약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스페인 골키퍼의 얼굴을 먼저 떠올렸으리라.


이 책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전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꾼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침 오전 새참을 먹고 있던 현장감독이 그를 힐끗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그것을 해고 표시로 이해하고 공사장을 떠났다.그는 길에서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옆으로 지나가는 차는 택시가 아니었다. 사실 블로흐가 택시를 부르려고 팔을 높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났다. 블로흐는 고개를 돌렸다. 택시 한 대가 뒤에 서더니, 그에게 빨리 타라고 했다. 블로흐는 몸을 돌려 차를 타고 나시마르크트로 가자고 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골키퍼인 셈이다. 아마도 유럽 작가가 쓴 소설이니까 주인공이 축구 선수였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나 일본 작가였으면 야구 선수였을 수도 있다.

시작에서부터 순간순간의 '삑사리'가 느껴진다. 이 골키퍼 출신 조립공은 앞으로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야말로 이런 '삑사리'를 경험하게 된다. 독자도 자연스레 같이 느끼게 된다.


표지 그림은 에드바르 뭉크의 1893년 작품 절규인데, 그야말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감,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망연자실, 말문이 막힐 정도의 막막함이 흘러 나오는 그림의 정서가 소설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게 된다.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 차게 됩니다."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골키퍼에게는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키커가 맹렬히 달려왔다. 환한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골키퍼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페널티 키커는 그의 두 손을 향해 공을 찼다.


이 책은 뒤의 작품 해설이 아주 훌륭한데, 일부를 여기에 옮기고자 한다.


공사장에서 눈짓 한 번으로 일꾼을 해고한다? 독자가 볼 떄 이것은 석연치 않은 일이다. 서류로 통지된 것도, 말로 전달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현장감독이 힐끗 쳐다본 것을 주인공이 해고 표시로 지레짐작하고 공사장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중략)

블로흐가 정식 직원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고 추측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해고라는 표현이 어디에도 없는데 주인공이 스스로 그렇게 믿고 떠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독자가 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블로흐라는 이 화상이 왜 다른 일꾼들보다 늦게 공사장에 출근했느냐 하는 것일 테고, 혹 주인공은 정해진 시간에 순응하는 힘을 이미 상실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블로흐가 노동자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해고를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공사장 밖으로 나오자, 주변이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화창한 10월 어느 날이었다. 노점 판매대에서 따끈한 소시지를 시켜 먹은 후 그 사이를 지나 극장 쪽으로 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되도록 많은 걸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극장 안으로 들어와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8쪽) 왜 주면 모든 것이 그를 불안하게 했으며, 극장 안으로 들어와서야 안심이 되었을까?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주인공으로서는 당연한 심리 상태가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어지는 사생활 묘사를 보면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지만 아무에게도 연결되지 않고, 길가에 서 있는 순경에게 인사를 해 보지만 순경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8쪽) 공원 주변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처에게 전화를 걸어 연결이 되지만 그녀는 블로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는 공원 커피 숍에 들어가 맥주를 한 잔 주문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가져오지 않자 그냥 나온다.(16쪽)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는 블로흐가 해고 이전부터도 이미 친구들과 소통이 단절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또 해고 이전에 결혼을 했었는데 지금은 헤어져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저런 작은 일상 생활, 즉 길거리에서 경찰과 인사를 나누는 일이라든가 공원 커피숍에서의 맥주 주문 등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주인공은 사생활에서도 이미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주변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과 소통이 단절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또 해고 이전에 결혼을 했었는데 지금은 헤어져서 혼자 살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저런 작은 일상 생활, 즉 길거리에서 경찰과 인사를 나누는 일이라든가 공원 커피숍에서의 맥주 주문 등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주인공은 사생활에서도 이미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주변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중략)

지난 19세기 문학의 주인공들은 이미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를 탄식하고, 신의 죽음과 인간성 상실을 못내 서러워하며, 분노에 찬 반항도 해 보고 영웅의 객기 같은 것도 부렸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블로흐의 모습을 보면,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철 지난 유행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블로흐에게는 그가 일하는 곳에 늦게 출근한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는 대화를 주고받을 짧은 순간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대화란 주체가 하는 행위이지 도구에게는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그저 눈짓 한번으로 달랑 목이 떨어져 쫒겨난다. 그런 시대에 그와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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