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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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 그림은 캐슬린 톨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표지화) 이라고 되어 있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캐슬린 톨키라는 미국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으로, 미국판 책표지에 쓰인 그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내용이 그냥 이 책의 그 내용이기는 한데, 매번 표지 그림 찾아보는 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읽기의 재미이기도 해서, 약간 아쉬웠다.

뭐랄까,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느낌?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의 표지 그림은 뭉크의 그 유명한 절규였는데, 이런 건 또 출판사의 재치구나 라며 슬며시 웃기도 했고.

인간 실격의 표지가 에곤 쉴레의 자화상이었는데, 만약 다자이 오사무 사진을 표지로 삼았다면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좀 아쉬웠을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이나 위대한 개츠비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배치한 것도 참 좋았고.

이 그림도 좋기는 한데 책의 내용을 곱씹어 보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판 표지 그림이니까. 미국에서 출판할 때 일부러 책의 내용을 반영하여 화가에게 부탁하여서 이 책을 위해 일부러 만든 표지 그림인데, 그렇기 떄문에 그림 만으로도 책의 주제를 다 던져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중남미 여성들이 부엌에서, 중남미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통적인 음식을 만드는 이야기.

 

이 책이 특별해진 이유는 성과 사랑과 음식을 연결했기 떄문이다. 음식의 이름으로 장이 구별되고, 특별한 행사 때마다 특별한 음식이 만들어지며, 그 음식을 매개로 사건이 일어난다.

결국 여주인공을 버티게 한 것은 남자에 대한 사랑이었는지, 요리에 대한 열정이었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 표지 그림도 좋기는 한데, 이 책과 무관한 다른 그림을 한 번 고민해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퍼뜩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이 책의 내용을 기존에 나와 있는 그림으로 반영하기에는 힘들었겠지.

 

 

음식과 성을 연결하는 것은 이 책이 나오는 시기에는 독창적이었겠지만, 이제는 흔하디흔한 비유이자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는 정작 엄청 독특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의역된 제목인데,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소설의 제목마저도 영화의 제목에서 그대로 가져와버렸다고 한다.

잘한 의역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최소한 절반 이상의 동기는 바로 제목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원제는 초콜릿라떼를 팔팔 끓인 물이라고 하는데, 책 내용은 팔팔 끓인 물이지 절대로 달콤 쌉싸름한 쪽이 아니다.

그야말로 미친 사랑이다. 이렇게라도 너의 곁에 있고 싶어. 우리의 사랑을 이렇게라도 완성하고 싶어. 하고 절절하게 외치는.

딴지 같지만 이 정도로 절절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수도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사랑도 사치였나, 아니 결국 먹을 것을 만드는 부엌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의식 중에 두려웠던 걸까, 결국 이 여자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사랑이었나 요리였나.

 

, 그리고 웨딩케이크 사건은... 아무래도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서 차용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옛 연인의 결혼식, 케이크를 먹고 구토하는 하객들... 아무래도 그 장면 맞는 것 같다.

명작은 명작이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오마주 되겠지.

 

 

p. 124~p. 125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 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 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p. 146

어머니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티타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티타의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고 오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티타는 이제야 '상추 이파리처럼 홀가분한'이라는 표현의 뜻을 이해할 것 같았다. 함께 자란 옆 상추와 갑자기 헤어진 상추의 느낌이 바로 이렇게 야릇한 느낌일 것 같았다. 함께 얘기는커녕 아무런 의사소통도 해 본 적 없고 그 안에 또 다른 수많은 이파리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겉 이파리밖에 본 적 없는 옆 상추와 헤어졌다고 해서 고통스러워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논리적인 일일 것이다.

 

p. 208

티타는 밀이나 콩, 자주개자리의 씨앗은 자기 모습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바뀌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계속 싹을 틔운다고 생각했다. 이제 티타는 씨앗이나 곡물 들이 새 삶을 주기 위해 자기 몸을 터뜨려 가며 껍질을 벌려 물을 깊이 빨아들이는 게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씨앗이나 곡물 들은 자기 몸속에서 첫 번째 뿌리 끝이 삐죽 튀어나오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원래 모습이 망가져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새싹을 당당하게 세상에 보여 주었다. 티타는 자신도 그런 단순한 씨앗이었더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자기 몸속에서 뭐가 자라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얘기할 필요가 없고, 사회의 비난을 감수한 채 부른 배를 안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씨앗에게는 이런 고민이 없었다. 특히 무서워해야 할 어머니도 없었고, 도덕적으로 비난할 사람들도 없었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티타에게도 어머니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마 엘레나가 내린 저주가 언제 어느 때 저승에서 떨어질지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티타는 이런 기분을 잘 알았다. 요리법에 나온 대로 따르지 않고 요리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럴 떄마다 티타는 마마 엘레나가 기필코 틀린 부분을 찾아내서 자기가 만든 음식을 칭찬하기는커녕 조리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호통을 칠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부엌과...... 그리고 인생에서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법칙들을 깨고 싶은 유혹도 뿌리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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