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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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로도 마플 양도 할리 퀸 탐정도 베틀 총경도 등장하지 않는 소설.

창백한 말이 과연 무엇일까?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한 구절에서 따온 말로 여기서는 왠지 으스스하고 주술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쓰인다.

 

살면서 겪는 가장 이상한 일 중 하나가 어떤 이야기를 한번 듣고 나서 24시간 이내에 우연히 그것을 다시 듣거나 마주치는 일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문장인데 여기서의 '어떤 이야기'가 '창백한 말'로 술집의 이름이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화자인 마크 이스터브룩은 작가이다. 첼시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구단인 첼시의 연고지가 아닐까 싶다. 옥스퍼드 동문인 코리건은 과학자로 북서부 경시청에서 법의학자로 일하고 있다. 그를 통해 고먼 신부의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이스터브룩은 자신의 대모를 비롯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한국의 신내림이나 굿을 떠올리게 하는 으스스한 의식은, 결국 속임수일 뿐 확실한 살인 방법이 존재하며 아마도 그것은 약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혹시나? 혹시나? 하게 만든다. 마치 이스터브룩과 진저가 처음에는 확신을 가졌지만 나중에 마음이 약해졌던 것처럼.

 

크리스티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약사 자격증 또한 땄다고 한다. 당시에 간호사와 약사 자격증은 아마도 지금처럼 간호대학과 약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십 년 전이라서 아직 자격증이나 학제와 관련해 명확하게 성립된 부분이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전시 중이었기 때문에 진입장벽도 낮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쨌든, 크리스티의 작품 중 54편에서 독극물이 살인 수단으로 쓰였다. 이 책에서 쓰인 살인 병기는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탈륨이라고.

 

검색해보면 나오는 수많은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나란히 등장하는 단어는 중국. 탈륨은 무미, 무취하여 먹은 사람이 의식을 하지 못하며 소량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정도로 독성이 강해 만약 검출될 경우, 피해자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 같은데, 1984년 이후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어 일상생활에서는 접할 수도 없고, 일반인들이 구하기도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상대적으로 중국에서 탈륨 사고가 많이 일어났던 것 같고, 몇몇 사건을 보면 용의자가 유력한 집안의 자제인 경우 분명하지 못한 이유로 수사가 종결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역대 보았던 독극물 중 가장 위험한 것 같다. 

 

어쨌든, 이 소설은 과학적인 지식과 이른바 민간 신앙의 결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굿이나 무당과 같은 존재를 우리나라에서는 민간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아마도 유럽에서도 마녀와 같은 존재를 묶어서 지칭하는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정학히는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동서양 문화의 민간 신앙에서 비슷한 점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 창백한 말의 세 여인이 행하는 의식도 우리나라의 굿과 비슷한 느낌이고, 소설 중간에 쌍둥이 중 둘째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그것은 왠지 몇 년전에 방송되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덕만과 천명이 쌍둥이었고 그 중 덕만이 둘째였다는 것은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었겠지만, 쌍음(여자 쌍둥이)은 감춰야 할 만큼 좋은 일이 아니며 그 중 둘째인 덕만이 선덕여왕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취재 중에 이런 미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크리스티답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크리스티 전집을 읽어나가고 있는 도중에는 색다른 느낌으로 분위기 전환이 되었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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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속의 고양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엮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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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 흔치 않은 학원물이다. 귀족 여학교가 배경으로 푸아로는 소설이 시작되고 나서 한침 지나야 등장한다.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중동의 젊은 왕이 고국의 선진화를 추구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인해 개혁이 쉽지 않다. 위험을 감지한 왕은 유사시를 대비해 고가의 보석들을 왕의 개인 비행사이기도 한 절친한 친구에게 맡기고, 쿠데타가 일어날 무렵, 친구와 함께 비행기로 고국을 탈출한다.

가장 안전하게 보석들을 보관하기 위해 고민하던 왕의 친구는 마침 중동에 딸과 함께 와 있던 누이의 짐 속에 누이도 모르게 보석을 숨기고, 이미 군부에서 비행기에 손을 써 놓은 것도 모른채 왕과 단둘이 비행기로 탈출하다 추락하여 사망한다. 자신의 짐 속에 보석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 영국으로 돌아간 누이는, 딸 제니퍼를 전세계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다니는 사립여학교에 입학시킨다. 최고의 명문이던 이 여학교에서 별안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살인 사건과는 별개의 이야기들에 관심이 갔다. 라마트라는 작지만 중동에서 가장 부자라는 이 나라는, 물론 허구이다. 나는 개혁을 원하는 젊은 왕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태국을 떠올렸다. 율 브리너와 데보라 커의 <왕과 나>, 그리고 주윤발과 조디 포스터의 <애나 앤드 킹>에서 다루었던 시암 왕국의 개혁적인 왕. 물론 그는 이 책의 알리 유스프처럼 살해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반대 세력으로부터 국가를 지켰고, 당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강대국의 식민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드물게 나라의 독립을 지켜냈다. 그러고 보면 사실 큰 공통점이 없기는 하다.

 

소설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밴시터트 선생의 이름이 엘리노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최근 개봉한 영화 <엘리노어 릭비>가 떠올랐다.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기도 한데 엘리노어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몇 십 년 전에 쓰여진 책에서 이렇게 동일한 이름을 발견하게 되다니. 우연치고는 신기하다.

 

에일린 리치라는 또 다른 선생이 말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최근에 보았던 영화 <위플래쉬>의 J.K. 시몬스가 연기했던 플렛처 교수가 떠오르기도 했고. 바로 이 부분이다.

 

"왜 가르치는 게 좋을까요? 스스로 좀 더 크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떄문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이유는 아니예요. 제 생각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낚시와 같아요. 어떤 물고기를 잡게 될지 알 수 없고, 심지어 과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죠. 중요한 건 학생들이 보여 주는 반응이 어떤가에 있다고 봐요. 그런 때가 오면 너무너무 흥미롭지요. 하지만 항상 반응이 오는 건 아니죠."

아마도 영화 속 플렛처에게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강압적인 지도법에 대한 지나친 자기 확신을 빼고 좀 더 모성애적인 면을 첨가한다면, 리치 선생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푸아로는 굉장히 매력적인 탐정이라, 그가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그가 부각되지 않으면 확실히 재미가 없다. 단, 이 소설만 빼고. 줄리아의 철두철미하면서도 과단성 있는 모습은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꼭 푸아로가 그랬던 것처럼. 사소하지만, 줄리아의 어머니 엡손 부인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웠다. 책 전체에서 직접 나타나는 부분이 많지 않지만, 딸이 어머니의 기질을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에는 무리가 없다. 짤막한 등장에도 아나톨리아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제시하고 그곳에서의 일화를 제시하여 인물의 특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잊지 않는 크리스티는 참 섬세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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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 150명의 지성에게 물었다
존 브록만 엮음, 최완규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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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브룩만이라는 이 책의 엮은이는, 엣지 재단의 창설자로, 매년 세계 석학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모아 해마다 출판하고 있다. 2010년의 올해의 질문은, "인터넷이 당신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가?"였고, 거기에 대한 답을 모아 엮은 책을 번역한 책이 이 책이다.

 

2. 이 책의 원제는 Is the internet changing the way you think? 이다. 즉, 책의 제목이 상당한 의역을 거쳤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터넷, 당신, 생각이다. 즉, 인터넷이라는 것이 당신 개인에게 있어서 어떻게 생각하는 방법을 바뀌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의역된 제목처럼 '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라고 질문했다면 거시적이며 일반적인 답변이 나왔을 것이다. 엣지 재단에서는 그 대신 질문을 받는 '당신'에 대상을 국한시킴으로써 포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고, 그 결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몰입의 즐거움>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 등 이 질문에 답한 지성들의 면면은 화려하며, 흥미롭다. 이들의 답변은 길게는 11쪽, 짧게는 단 4줄까지 길이와 내용, 다루는 범위의 넓이와 깊이도 다양하다. 반드시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을 필요는 없으며, 목차만 훑어보고 흥미있는 부분만 띄엄띄엄 읽어도 될 것 같다. 물론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어가면서 인상 깊은 부분은 다시 반복해서 읽는 편이 이 책의 내용을 머릿속에 박아넣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 아닌가? 세계적 지성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였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답변의 효용성, 혹은 미래 사회의 예측에 대한 정확성에 대해 굳이 탐구하듯이 읽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사회에 대한 진단도, 결국 시간이 흐르고 이 시간이 과거가 되어야만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니까.

 

4.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이기에 읽기에 어렵지 않다. 지루해지기 전에 금방 화자가 바뀌기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세계적 지성이 주는 무게감에 비해, 그리고 이 책의 물리적인 두께와 질문의 심오함에 비해, 그다지 책 자체는 임팩트가 없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는데 이 책의 핵심 주제, 즉, 인터넷이 어떻게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나, 라는 명제에 대해서 내가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인터넷이라는 것이 처음 생겨난 때는 몇십 년 전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급속도로 보급된 것이 1990년대 후반일텐데, 그렇다면 이미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터넷이란 용어가 더 이상 '신기한' 뭔가가 아니었고, 중학교 시절부터는 이미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인터넷 환경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 자신 그리고 내 또래들에게 있어서 인터넷은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사고 방식, 행동 모습 등을 바꾼 적이 없기 떄문이다. 머리가 굵어지고, 스스로의 판단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고를 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이전부터 나는 인터넷을 접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사회에 대해서 기억은 할 지언정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5. 만약, 스마트폰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나?를 주제로 삼는다면 어떨까? 내가 중학교 시절, 드물게 반에서 한 두 명 정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 상당수의 아이들이 휴대폰을 소유했으며,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스마트폰이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현재 30대인 전세계 사람들에게, 예를 들어 세계 유수 기관의 연구원들, 명문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들,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들, 촉망받는 음악가들 등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비록 그 깊이나 통찰력은 떨어질지라도 이 책보다는 더 나에게 흥미를 주었을 것이다. 사실, 인터넷이 어떻게 우리 삶을 바꾸었나?와 같은 명제는 나에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유럽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나? 와 다를 게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미래는, 어쩌면 말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오지 않을 시간일 수 있지만, 아마도 나에게는 멀지 않은 시간, 다가오고 있는 현재일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석학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에 있어서는 나와는 온도차가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답변이 개인의 경험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주관적이며, 짧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깊이있는 사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이들의 생각이 맞을 지도 의문스럽고, 설령 맞는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짤막짤막하게 진단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결국 어떻게든 큰 변화를 겪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 변화 앞에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진실일 텐데.

 

6. 나에게는 인터넷 이전 시절이 마치 TV 이전 시절, 라디오 이전 시절, 금속활자 이전 시절 처럼 똑같은 과거라면, 양쪽을 전부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그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어가면서 기존의 생활 양식을 어떤 방향으로든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의 막막함과 좌절감은, 짐작하기가 힘들다. 우리 아버지같은 경우 스마트폰을 좀 늦게 가지신 편인데, 한번은 젊은 직원들과 식사를 하다가 특정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게 몇년도에 일어난 사건이지~라고 이야기하니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던 한 직원이 바로 그 자리에서 검색해 보고는 아, 맞네요~ 대단하세요~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작 아버지는 그 상황에 놀랐다고. 아마도 격세지감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정확하게 암기를 한다는 것은 이제 그다지 장점이나 특기가 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의 말을 하셨던 것 같다. 소싯적에 암기, 특히 연도와 숫자에 관한 결벽에 가까울 정도의 정확성을 추구하시던 아버지꼐서는 그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 책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많은 작가들이, 뭔가를 쓸 때마다 컴퓨터를 켜 놓고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나온다. 나에게는 놀랄 것도 없는 이 당연한 사실이, 몇 십 년전부터 도서관과 필기한 노트를 뒤져가며 연구를 해 오던 세계적인 석학들에게는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만큼 놀라운 사실이리라.

 

7. 대략적으로 이 책의 대답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 인터넷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두번째,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이 인터넷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첫번째와는 화살표의 방향이 다를 것이다. 세번째, 대체 이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네번째, 잘 모르겠다.

 

8. 150명의 석학 중 내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70퍼센트 이상이 첫번째의 의견을 보인 것 같다. 여기서도 의견이 또 갈린다. 7과 구분하기 위하여, 1-1. 인터넷을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2. 인터넷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굳이 석학의 의견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 수준에서 알만한 것이 너무 많다. 정보의 접근성, 정치의 민주화, 불평등의 심화, 사생활 침해, 사유 능력의 상실, 비용의 절감, 급속화된 세계화, 판단력의 부재 등등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라면 한번쯤 다 접해보았을 말들이며, 그 중 몇가지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9. 어찌 보면 대동소이한 이야기들이다. 누가 무슨 주장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각 이야기들 간에 구별은 필요없어지고, 책의 절반쯤 오면 속도가 붙는다. 그 중에서도 물론, 빛나는 몇몇 조각글들이 있다. 과학사학자이자, 기계 속의 다윈Darwin among the machines의 저자인 조지 다이슨George Dyson의 글이 특히 그렇다. 알류트족Aleuts의 카약kayak과 틀링깃족Tlingit의 카누canoe의 비교. 절묘한 비유로 단 한 페이지에 압축적으로 주제가 들어간다. 어느 쪽이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는데, 아마도 저자 스스로 확실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것도 매력적이다. 다만, 저자의 심정만 정확히 세 문장으로 묘사했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는 밑줄긋기에 본문 전체가 다 들어갈 정도로 짧지만 단단한 글이다.

 

10. 그 외에도 인터넷은 행태를 바꾼다 _ 시리언 섬너Seirian Sumner의 글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런던동물원, 동물학연구소 진화생물학 연구 교수인 그는 "change"에 초점을 딱 맞춘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전공이 진화생물학인만큼, 원시 사회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의 행태를 비교한 점도 좋았다. 독립 연구가이자 이론가인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의 단 5줄짜리 글도 좋았고. 그녀가 썼다는 개성의 탄생No Two Alike: Human Nature and Human individuality도 궁금해졌고. 프리폼프로덕션컴퍼니FreeFormProduction Company 설립자인 제시 딜런Jesse Dylan의 글도 흥미로웠다. 영화제작자이면서 의학 사이트 Lybba.org의 설립자인데 전혀 공통점이 없어보이는 두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예를 든 일화도 글쓴이의 이력을 닮았는데, 시신경 척수염의 진단 방법이 발견된 일화를 통해 서로 다른 분야의 상호작용의 긍정적인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지는 인터넷이 얼마나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 실감이 들었다.

카약 대 카누-조지 다이슨
북태평양에서는 작은 배를 만들 때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알류트족 등 카약을 선호하는 부족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땅에 살며 해변에서 주워 모은 나무 조각으로 골조를 세워 배를 만들었다. 틀링깃족 등 나무 속을 파낸 카누를 선호하는 부족은 우림지대에서 나무를 통째로 실어와 카누만 남을 때까지 구석구석 파내 배를 만들었다. 정반대의 방법을 사용했지만 알류트족과 틀링깃족의 성과는 비슷했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인터넷으로 봇물이 터진 정보의 홍수도 비슷한 문화적 분열을 초래했다. 우리는 과거 카약 제조에 익숙했다. 가능한 모든 정보 조각을 주워 모아 물에 뜰 수 있는 골조를 세웠다. 이제는 속을 파내는 카누 제조법을 배워야 한다. 불필요한 정보를 솎아내 그 안에 숨겨진 지식의 속살을 드러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족족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도록 훈련받은 나는 뼛속까지 카약 제조에 익숙하다. 새 기술을 배워야 하는 현실이 정말 싫다. 하지만 배우지 않으면 카누가 아닌 통나무에 올라타 노를 젓는 신세가 되리라.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열려 있는 채팅방이 사라진다고?"
"그럼 어떻게 새 친구를 사귀는데?"
"외국 나간 친구들이랑 어떻게 연락하는데?"
"사람을 진짜로 만나서 직접 물건을 사야 한다는 뜻이잖아!"

낯선 것에 대한 경계와 의심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인간의 습성이다. 자리를 빼앗겨 자원을 도둑맞지 않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전혀 낯선 사람까지 스스럼없이 보듬어주는 등 무분별한 행동을 부추긴다는 것도 인터넷의 특성이다. 며칠 전, `시리언Seirian`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인 페이스북 그룹에서 초청 메시지를 받았다. 이걸 뿌리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 내가 어딜 가서 열일곱 명이나 되는 시리언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겠는가. 마침내 여러 시리언이 참여하는 가상 네트워크에 연결된 노드가 될 기회가 온 것이다. 왜 가입했느냐고?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데다가, 현재 소셜 네트워크와 무관한 전혀 다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보면 어떨까,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더 친근한 인연을 만들수록 잠재적인 보상도 커지기 마련이다.

페이스북 시리언 친구들이 가상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집을 불쑥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렸다면 과연 내가 가입했을까? 역시 어림없는 소리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사적이며, 자칫 큰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어디 사는지도 아는데, 전기 코드 뽑듯 간단히 인연을 끊을 수도 없다). 선조들의 행태와는 다르게 우리는 온라인에서 사생활 침해를 용인하며, 인터넷의 성공은 그런 습성 변화에 기대고 있다. 연결성은 사생활 침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그 덕분에 정보 습득과 전송이 크게 향상된다. 페이스북 친구들도 처음에는 연결이 끊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출발했지만, 좀 더 고민해본 다음에는 인터넷이 어마어마한 자원이며 전통적인 정보 저장 및 전송 수단으로서 대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인터넷이 없으면 원하는 걸 어떻게 찾지?"
"정보에 아예 접근을 못하게 되잖아."
"실제로 쇼핑을 가고 도서관에 가야 한다는 거야?"
"너무 느려."
"삶이 작아지겠지."

인터넷은 지식 및 연결에 대한 갈망뿐 아니라 우리가 온라인에서 놀라울 정도로 헤프게 베푸는 온정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인터넷에서 과도한 애타심을 드러낸다.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조언하거나 다른 사람의 지식을 채워준답시고 익명으로 위키피디아에 기여하며 몇 시간씩 허비한다. 보답이 뒤따를 거라는 보장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은행 관련 정보든 음악적 성향이든) 개인 정보까지 내걸고 친구를 사귀고 낯선 사람을 믿는 것은 자연스럽게 경계심부터 내세우던 선조들의 행태에 배치되는 인터넷 사용자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우리가 페이스북을 통해 기꺼이 내주는 데이터는 전체주의 정권의 비밀경찰이 애를 써서 얻어내려는 천금 같은 정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의심(또는 인식)이 느슨해져 (무분별할 정도로) 애타심을 발휘해 우리의 자원을 나누어주고 그 대가로 더 큰 것을 얻곤 한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 인터넷 이전의 경험이 워낙 적어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사뭇 다른 유기체로 초고속 진화를 거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터넷이 꼭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으라는 법은 없지만, 행동을 변화시켜 사고 형성과 방향에 영향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프라인에서 우리는 은밀하고, 인색하며, 사생활을 강조하고, 의심이 많으며, 자기중심적일지 모른다. 온라인에서는 박애주의적이고, 온정을 베풀며, 상냥하고, 친근하며, 위험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 오프라인 세계라면 온라인 행태는 자연도태되고 말 것이다. 아무도 협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대뜸 친구를 맺자는 데 기꺼이 응하거나 온정을 베풀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행태는 온라인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양보하지 않으면 자원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우리의 인격마저 바뀌는 이유는 인터넷이 게으른 현실 도피를 위한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우스 한 번 움직이면 우리 행동의 결과가 현실이 아닌 듯한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인격이 얼마나 다른지는 당연히 저마다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온라인 삶은 말 그대로 무사태평한 환상의 세계일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의 환상 속 세계에서 무결점 아바타를 통해 대리 경험을 만끽하며 살지도 모른다. 오프라인 자아가 부대끼는 현실의 무료함과 고달픔에서 도피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행태 변화는 적응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궁극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적응해 도태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말이든 글이든) 의사소통 기술을 사용해 서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도록 남을 설득한다. 우리 선조들 역시 원시적인 구두 의사 소통 방식과 상형문자를 설득의 도구로 삼았다. 인터넷은 인류 의사소통 역사에서 세 번째 위대한 돌파구이며, 그런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려면 유연한 행동이 필수적이다.

결론을 내려보자. 인터넷은 접속할 때마다 내 행동을 바꾸어놓는다. 그런 과정에서 내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 과감하고, 장난스러우며, 충동적이고, 상호작용을 즐기는 온라인 인격체는 내가 오프라인 테두리를 벗어나 생각하도록 부추긴다. 나는 인터넷에 맞게 생각한다. 인터넷의 지식을 사용해 내 사고에 영감을 주고 기존 사고를 흔들어놓는다. 이 에세이가 그 생생한 증거다. 페이스북이 내 사고에 불을 지피고, 이 에세이의 밑거름이 되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에세이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딱 좋아`의 기쁨-주디스 리치 해리스
인터넷이 정보를 쏟아내는 본새는 케첩 병이 케첩을 쏟아내는 본새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너무 적다 싶더니 이젠 너무 많다.
그 중간쯤에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딱 좋아`의 순간이 있었다. 내게는 10년가량 지속되었다.
내 인생 최고의 시기였다.

메이요클리닉Mayo Clinic에서 시신경 척수염neuromyelitis optica(NMO, 데빅 병Devic`s disease 또는 데빅 증후군Devic`s syndrome이라고도 알려져 있다)이라는 희귀병에 관한 영화를 만들 때였다. 이 병의 진단 방법이 발견된 경위에 관해 들었다.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 전문가가 한 심포지엄에서 연설하는데, 암 연구 학자가 듣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우연 덕분에 진단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보아하니 절대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메이요클리닉을 세운 메이요 형제일 수도 있다)가 심포지엄을 다양한 분야의 연구 학자와 의사가 참석하는 행사로 만들어 그런 교류가 가능한 시스템을 수립한 덕분이다. 그런 사람과 아이디어가 합쳐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기에 진단법이라는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또 그 덕분에 희귀병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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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죽음이 오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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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존의 크리스티 소설과는 좀 다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동일하지만, 무대가 20세기의 영국이 아니라, 기원전 2000년 경, 이집트 테베의 나일 강 서쪽 강가이다. 물려줄 유산이 많은 아버지와 세 아들, 사별한 딸과 그를 흠모하는 아버지의 부하, 젊은 계모 등 흐름은 우리가 늘 보던 소설과 유사하게 흘러간다. 이 소설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것, 인간이 품는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진보하고, 문명이 발달하더라고 결국 대동소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굳이 이 소설의 배경을 이집트로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비슷한 내용이더라도 무대가 수천년 전 이국적인 공간으로 바뀌면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4계절이 아니라, 농경생활에서 더 유용하게 계산되는 3계절이라는 것도 새롭게 안 사실이었고, 죽은 사람의 묘를 관리하는 것이 단순히 자손이 아니라, 묘지기라는 별도의 직업이 있으며 죽은 사람의 재산을 기증받고 그 대가로 그 사람을 공양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직업적인 묘지기는 꽤 많은 재산을 소유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책 앞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크리스티의 친구였던 이집트 학자 스티븐 글랜빌의 요청에 의해 탄생했다.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을 써 보라는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이 소설은 1945년에 발표되었다. 크리스티가 1930년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과 재혼한 후 한동안 함께 이집트 등지를 여행했다고 손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경험들이 이후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나일 강의 죽음 같은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의 주요 무대였던 영국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며, 그 배경 탓에 떄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모호한 분위기를 쉽게 만들어낸다. 크리스티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미신 같은 것들은 예외없이 결말에서 전부 인간이 한 일이라고 밝혀지는데, 20세기 초반, 근현대의 영국 사람들이 애초에 그것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괴이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작품에서는, 역사와 신화, 민담과 전설의 구분히 모호했던 그 시대적 배경 떄문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맹목적인 믿음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은, 아마도 그녀의 재혼으로 인해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데, 당시 이집트 사회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떄문이다. 어쩌면 스티븐 글랜빌도 재혼한 남편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일 수도 있겠지.

 

무엇보다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8년간의 결혼 후 아이 한 명을 낳고 사별한 레니센브는, 딸 하나를 낳은 후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한 크리스티 자신의 분신이기도 할 것이다. 남은 일생을 혼자 살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인 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보면서 문득문득 아이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자신에게 구애하는 남자 앞에서 왠지 머뭇거리게 되는 과정들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아마도 크리스티 자전적인 부분이 들어가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순수하고 사람을 잘 믿는 레니센브는 헤이스팅스의 변형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를 늘 걱정하는 호리는 푸아로, 할머니 에사는 마플 양이 변신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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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람도 마찬가지야. 장식 문을 만들지. 속이려고.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을 깨닫는 순간 자만과 허풍과 압도적인 권위로 장식된 근사한 문을 만들지.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정말로 그 존재를 믿는단다. 사람, 모든 사람은 그 문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하지만 레니센브, 그 문 뒤에는 벌거벗은 바위뿐이야....... 그래서 현실이 찾아와 진실의 깃털로 건드리면, 참된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카이트의 경우 온순함과 복종심은 그녀가 바라는 모든 걸 가져다줬어. 남편과 아이들. 아둔함은 그녀에게 손쉬운 삶을 선사했지. 하지만 위험이라는 형태로 현실이 찾아와 겁을 주자 본모습이 드러난 거야. 그녀는 변하지 않았단다, 레니센브. 그 힘과 그 무자비함은 늘 거기 있었어."

 

"네, 아마 두려울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돼요. 집안사람들 모두 부들부들 떨면서 사원으로 달려가 부적을 사고, 해 질 녘에는 이 길을 걷지 않는 게 좋다고 떠들어요. 하지만 사티피가 비틀거리다 추락한 건 마술이 아니었어요. 두려움이었어요. 그녀가 저지른 사악한 짓으로 얻게 된 두려움 말이에요. 젊고 강하고, 삶을 즐기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건 나쁜 짓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사악한 짓을 한 적이 없고, 설령 노프레트가 절 미워했다 해도 그녀의 증오가 저를 해칠 수는 없어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리고 어쩄건 늘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그러니 저는 두려움을 극복하겠어요."

 

"그녀의 말이 거짓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게 아닐까? 그녀가 진심으로 널 도와주면서 자기가 떠벌리는 사랑이란 걸 보여 준 적이 있니? 상처 주고 화를 불어일으킬 말만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면서 가족간의 불화를 조장했잖아?"

 

"카이트는 지나치게 아둔한 여자야. 하지만 나는 늘 아둔한 여자를 의심했단다. 그들은 위험한 존재야. 오로지 자기 주변의 일만 보고 한 번에 하나만 알지. 카이트는 자기 자신과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 아빠인 소베크만 존재하는 작은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왔어. 야흐모세만 제거하면 제 자식들이 부자가 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문득 들었을 수도 있지. 소베크는 늘 임호테프의 눈에 마뜩찮았어. 경솔하고, 통제를 못 견디고, 순종을 모르지. 야흐모세는 임호테프가 의지하는 아들이었어. 하지만 야흐모세가 사라지면 임호테프는 소베크에게 의지해야 돼. 아마 카이트는 그렇게 단순한 생각을 했을 게다."

 

"전에 네가 노프레트의 등장이 악을 몰고 왔다고 말한 적이 있어. 그건 사실이 아니야. 악은 이미 가족들 마음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노프레트의 등장은 그걸 은밀한 곳에서 밖으로 끌어낸 것뿐이지. 그녀의 존재가 장막을 거둔 거야. 카이트의 온화한 모성은 자기 자신과 자식을 위한 무자비한 이기심으로 변했어. 소베크는 더 이상 쾌할하고 매력적인 젊은이가 아니라, 허풍 떠는 방탕한 약골이었고. 이파이는 매력적인 개구쟁이 소년에서 교활하고 이기적인 놈으로 변했지. 헤네트의 가식적인 헌신을 통해 그 독기가 명백히 드러나기 시작한 거야. 사티피는 악녀이면서 동시에 겁쟁이의 모습을 보였어. 임호테프 자신은 말 많고 거만한 폭군으로 퇴보했고......"

 

"성장이라는 것 때문인지도 몰라. 점점 더 다정하고 현명하고 훌륭해지지 않으면, 그 성장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사악한 마음을 품게 되지. 혹은 공간도 시야도 없이 삶이 너무 폐쇄적이거나 너무 침잠해서 그럴지도 몰라. 아니면 전염성 병충해처럼 차례차례 병에 걸리거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기질로 보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었어. 하지만 야흐모세는 항상 소심하고, 쉽게 굴복하고, 반항할 만한 용기가 부족했지. 그는 임호테프를 사랑했기에 그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일했지만, 임호테프는 착한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멍청한 느림보라고 생각했어. 아들을 무시했지. 사티피 역시 불한당처럼 온갖 조롱으로 야흐모세를 괴롭혔어. 감춰져 있던 한 맺힌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어. 온순해 보일수록 내면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야흐모세가 마침내 아버지의 동업자로 인정받아 근면과 성실에 대한 보상을 거두는 꿈에 부풀었을 떄, 마침 노프레트가 나타난 거야. 마지막 불꽃을 점화한 것은 노프레트, 어쩌면 노프레트의 미모였겠지. 그녀는 세 형제의 남성적 자존심을 건드렸어. 소베크를 바보라고 조롱해 아픈 곳을 찔렀고, 이파이를 남자 자격도 없는 건방진 꼬마로 취급해 성질을 돋웠고, 야흐모세를 남자도 아니라며 멸시했지. 사티피의 혀가 마침내 야흐모세의 인내심을 무너뜨린 건 노프레트가 온 뒤 부터였어. 자기가 남편보다 더 남자답다는 조롱과 모욕 떄문에, 결국 그의 자제력이 무너진거야. 그는 이 길에서 노프레트와 마주치자 인내심을 잃고 그녀를 던져 버렸어."

 

"하지만 일단 마음이 악을 받아들이면, 악은 옥수수 밭의 양귀비처럼 만개하는 법이야. 어쩌면 야흐모세는 평생 폭력을 선망하면서도 그걸 얻지 못했을 수도 있어. 그는 나약하고 순종적인 자신을 경멸했지. 아마 노프레트를 살해하고 나서 엄청난 힘을 느꼈을 거야. 우선 사티피에게서 그걸 꺠달았지. 자신을 위협하고 모욕하던 사티피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온순해졌으니까. 그러자 그토록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 묻혀 있던 모든 불만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어. 지난번에 이 길 위에서 고개를 쳐든 뱀처럼. 소베크와 이파이는 야흐모세보다 한 놈은 더 잘 생기고, 다른 한 놈은 더 똑똑했어. 따라서 제거 대상이었지. 야흐모세가 집안의 통치자가 되어 아버지의 유일한 위안이자 의지가 돼야 하니까. 사티피의 죽음은 살인의 즐거움을 증폭시켰어. 그 뒤로 더욱 강해진 것이지. 이후부터 그의 탐욕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 그떄부터 철저히 악에 사로잡힌 거야."

 

그날 배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던 카메니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잘생기고, 강건하고, 쾌활한 그를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피의 맥동과 가락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 그를 사랑한다. 카메니라면 크하이가 그녀의 인생에서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

'함께 살면 행복할 거야. 그래, 우린 행복할 거야. 함께 살고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튼튼하고 예쁜 아이들을 키울 거야. 바쁘게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고, 나일 강에서 배를 타는 즐거운 날도 있겠지. 크하이와 함께했던 그런 삶이 다시 시작될 거야. 그 이상 뭘 더 바라겠어? 그 이상 뭘 더 원하겠어?'

 

호리와 함께하는 삶이 어떨지 짐작할 수 없엇다. 비록 다정하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헤아릴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아름다움과 풍요의 순간들은 함께 나누겠지만 일상의 삶은 어떨까?

 

"네 인생을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어, 레니센브. 네인생이니까. 결정은 너만이 할 수 있는 거란다."

그녀는 아무런 도움도, 카메니처럼 금세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말도 듣지 못한다는 것을 꺠달았다. 호리가 손마 잡아줬더라면....... 하지만 그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자 두 가지 선택이 가장 간단한 말로 확연하게 떠올랐다. 쉬운 삶과 어려운 삶. 그녀는 몸을 돌려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가, 이미 익숙한 평범하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가고픈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예전에 크하이와 함께 누렸던 삶. 그곳은 안전했다. 늙어죽는 것 말고는 두려울 것 하나 없이, 일상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삶.......

죽음. 그녀는 삶에 대한 생각들로부터 빙 돌아 다시 죽음에 이르렀다. 크하이는 죽었다. 카메니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그의 얼굴 또한 크하이의 얼굴처럼 그녀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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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비를 타고 - [초특가판]
스탠리 도넌 외 감독, 데비 레이놀즈 외 출연 / 영상프라자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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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비'가 들어갔기에, 영화 속에서 비가 내리는 장면이 많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단 한 장면, 그 장면이 바로 영화의 포스터 대표 이미지로 나오는 사진의 바로 그 장면이다. 비가 내리는 장면은 바로 그 장면 단 하나지만, 그 장면이 이 영화 전체를 대표할 정도이기에 다 만들어진 영화에 이 제목을 붙였으리라.

 

원제는Singin' in the Rain.

우리 말로 번역되면서 사랑은 비를 타고,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원제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전혀 없기는 하지만, 그 유명한 비를 맞고 노래부르는 장면이 바로 사랑을 확인한 직후였다는 점에서 더 멋스럽게 느껴진다.

 

요즘은 간단한 단어인데도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 원제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그런 풍토가 약간 성의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남녀 주인공이 굉장히 매력있고 춤과 노래가 흥겨워서 즐겁게 보게 된다. 남자 주인공 진 켈리, 그의 친구 도날드 오코너, 신예 여배우 역의 데비 레이놀즈, 얄미운 톱 여배우 진 하겐까지 전부 다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뮤지컬과 같은 노래부르며 춤추는 수많은 장면들은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생이 참 지루해지는 때,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삶이 참 괜찮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최근의 <아티스트>에 여러모로 영향을 준 것 같은데, 둘 다 좋지만, 좀 더 가볍고 청량감 있는 영화가 이 영화다. 물론, 후대에까지 길이 남을 영화도, 아마 이 쪽일 것이다. 고전이 왜 고전이고, 명작이 왜 명작인지 알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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