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스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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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는 장편과 단편에서 모두 번뜩이는 기지를 보여주는 작가이다. 이 책은 그런 크리스티의 중편을 모은 책들이다. 보통 한 권의 책에 10개가 넘는 이야기가 들어가는 단편집과는 달리, 이 책에는 네 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와는 달리 이야기가 바뀌기 때문에 계속 자극을 받는 느낌이 들고,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읽을 때보다 아쉬움이 덜하다. 물론 이 장점은 뒤집을 수도 있겠다. 이제 곧 집중할 만하면 이야기가 끝나버려 깊이가 덜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으며, 어쩄든 짧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읽으면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아마도 크리스티가 구상할 때 단편으로 풀기에는 이야기가 좀 많고, 장편으로 만들기에는 부족한 면이 느껴져서 이 정도 길이로 구상한 것 같다. 주어진 구성에서, 단서를 제대로 다 줄려면 단편으로는 길이가 부족할 것이지만 이걸 장편으로 만들 경우에는 결말에 대한 노출이 빨리 일어날 것 같은 염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어디까지나 취향 문제지만, 개인적으로 이 정도 길이의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단편 소설, 혹은 손에서 책을 놓기 어려울만큼 시간을 잊고 빠져들게 만드는 장편 소설이 내가 사랑하는 부류이다. 물론 중편 소설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또 베스트가 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소설들의 장점이자,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추리 소설들의 공식을 뒤집은 것이다. 어떻게 죽은 여인은 오른손으로 권총을 잡고 왼쪽 관자놀이를 쏠 수 있었는가? (『뮤스가의 살인』) 유령 소동과 사라진 일급 군사 기밀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미궁에 빠진 절도』) 남작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은 어떻게 엉뚱한 위치에 있는 거울을 박살낼 수 있었을까? (『죽은 자의 거울』) 삼각관계에 빠진 여인 밸런타인 챈트리의 미모는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 것인가? (『로도스 섬의 삼각형』) 와 같은 의문들은,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면서, 다른 추리 소설에서도 늘 비슷하게 등장하는 의문들이다. 곧 이 의문들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풀리게 되는데, 그 방식이 의문의 해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애초에 그 의문 자체가 사건의 핵심에 비껴 있었다는 데에서 쾌감이 있다.

 

자살처럼 꾸민 타살, 그러나 만약 자살을 타살처럼 꾸민 거라면? 애초에 기밀 따위가 사라진 적이 없었다면? 중요한 것은 왜 살인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면? 아름다운 여자가 삼각관계의 주연이 아니라 덜 아름다운 여자의 조연에 불과했다면? 이런 사건들을 통해 고정관념이 뒤집히는 과정도 신선하지만, 이 소설들의 푸아로의 태도도 흥미롭다. 푸아로는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행위를 덮어주기도 하고, 곤란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위해 모르는 척 눈감아주기도 하며, 범죄자의 처지를 생각하여 최대한 그의 비밀을 보호해 주며, 때로는 방관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소설에서 보았던 적극적인 해결사의 모습이 공통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설들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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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6 (완전판) - 3막의 비극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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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하드 커버를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가장 첫 페이지에는 다음의 글이 쓰여져 있다.

 

감독

찰스 카트라이트 경

 

조감독

새터스웨이트

허마이온 리튼 고어

 

의상

앰브로신 의상실

 

조명

에르퀼 푸아로

 

<3막의 비극>이라는 제목도 호기심을 끌지만, 본문 전에 등장하는 이 페이지야말로 시선을 붙들어놓는 최고의 떡밥(?)이 아닌가 싶다. 과연 무슨 내용일까? 푸아로가 맨 마지막에 등장하며, 이 연극에서 겨우 조명을 맡은 이유는 뭘까?

 

새터스웨이트는 익숙한 이름으로,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의 사실상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리스티의 수많은 탐정들 중 아마도 푸아로와 할리퀸은 같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양이다. 여기서는 할리퀸이 아니라 푸아로가 등장한다.

 

키가 작고 체격이 마른 노인, 귀족은 아니지만 환영받는 사교계 인사,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사고력을 가진 연극계의 후원자. 새터스웨이트는 이런 사람이다. 치우침이 없는 온화하고 명석한 사람이지만, 주인공을 하기에는 늘 부족한 사람. 할리퀸은 기꺼이 자신은 조연으로 빠지고 새터스웨이트를 늘 주연으로 끌어올렸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새터스웨이트의 활약이 돋보인다.

 

외양으로 봐서는 젊었을 때 큰 인기를 끌었을 사람은 아니다. 지금 노인이 된 그는 아내도 아이도 애인도 없다. 다만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좋아하며 연인들에게 관대하고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상 추리 소설에 딱 맞는 인물이기는 하다. 젊은 시절 내내 주인공의 동창생, 어릴 적 친구, 군대 동기 등의 역할만 주어졌을 사람,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조연이라도 될 수 있는 사람. 왠지 가슴 짠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연인 찰스 카트라이트 경은 어떤 사람일까?

 

 "저 친구는 무대보다 오히려 실생활에서 더 뛰어난 연기자랍니다. 찰스는 언제나 연기를 합니다. 자기도 어쩔 수가 없나 봐요. 그건 저 친구의 제2의 천성이니까요. 찰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히 방을 나가지 않습니다. 그는 '퇴장'을 하죠. 늘 멋진 대사를 읊고요. 찰스는 항상 새로운 역할을 맡고 싶어합니다. 2년 전에 그는 무대 생활을 청산했지요.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바닷가에서 조용히 시골 생활을 즐기고 싶다면서 말입니다. 그리곤 이리 내려와 이 집을 지었습니다. 찰스는 이걸 작은 시골 오두막집이라고 부르죠. 욕실이 세 개에다 온갖 현대식 시설들을 갖춘 이 집을요! 저 친구한테는 관객이 필요해요. 은최한 선장 두서넛, 늙은 아낙네들, 그리고 교구 목사....... 이 정도론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죠. 이런 '바다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나이' 역할 따위는 기껏해야 반년도 못 갈 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딜 가더라도 자신이 꼭 주인공이어야 하는 사람. 주목받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 요즘 말로 관심종자라고 할까. 이 책에서는 새터스웨이트와 정확하게 대비되는 사람이며, 사실 책 말미에 밝혀지는 그 결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 살인의 이유도, 목적도 전부 그 놈의 관심병 때문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멋대로인 사람, 있지 않은가. 젊은이가 자기 중심적인 것은 너그럽게 보아 넘겨줄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에게나 주변에게나 큰 비극이다. 너무나 연극적인 주인공들, 그리고 너무나 연극적인 살인 사건의 특성 떄문에 크리스티는 이 책에 <3막의 비극>이라는 제목을 붙인 모양이다. 어쩌면 먼저 제목을 떠올리고 나서 거기에 맞는 인물을 창조했을 수도 있고. 찰스 스트라이트 경은 정말로 연극에서만 볼 수 있는 인물이니까. 실제 연극배우이기도 하지만 삶에서도 배우였고.

 

첫번째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목사, 두번째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의사. 누가 보아도 이질적인 사람들로 서로간에 직업적인 공통점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연관성도 알기 어려우며, 원한 관계나 유산 상속과 같은 이유도 없다. 그야말로 실생활에서는 보기 힘든, 극에서나 종종 볼 수 있는 사건. 책 맨 마지막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지만, 또 곰곰히 생각해보면 <에지웨어 경의 죽음>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는 연극 배우가 주인공이거나 사건의 핵심적인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참 많다. 아마도 새터스웨이트가 연극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부분은 작가 스스로의 특성에서 뽑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면에서든, 작가가 창조한 인물은 창조주를 닮기 마련이니까.

 

주인공은 연극 배우, 삶에서도 연극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인물, 그에 반대되는 인물은 늘 조연에 머물렀던 사람, 실제같지 않은 사건,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는 곳곳에 제목과 딱 맞는 구절들을 촘촘히 적어 놓았다. 작가가 얼마나 성실하고 꼼꼼한지 알게 되면 참 흐뭇하다.

 

 에그는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세 사람 모두 에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에그는 푸아로의 도움을 원치 않는 게 틀림없었다.

 새터스웨이트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것은 찰스 카트라이트와 에그 리튼 고어, 두 사람만의 개인적인 게임이었다. 새터스웨이트는 무시해도 좋은 제3자라는 쌍방의 이해하에 참석이 허락된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에르퀼 푸아로는 달랐다. 그는 주역을 맡을 사람이었다. 어쩌면 찰스 경을 밀어 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에그의 계획은 완전히 무산된다.

 새터스웨이트는 에그가 얼마나 난처한 상황에 빠졌는지 공감하며 그녀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다른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여성적인 감성을 지닌 새터스웨이트만은 그녀의 딜레마를 이해할 수 있엇다. 에그는 자신의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분투 중이었다.

 과연 그녀는 뭐라고 대답할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과연 마음속 생각을 어떤 말로 표현할까?

 '꺼져요. 꺼지란 말이에요. 당신 때문에 모조리 엉망이 되어 버렸잖아. 난 당신이 필요 없다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에그 리튼 고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을 했다. 그녀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요. 도와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이런 부분도 있다.

 

 푸아로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나도 미흡했던 시절이 있지요. 이해가 느려서 시간을 끌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떄가 있긴 합니다만......."

 "하지만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새터스웨이트는 끈덕지게 물고 늘어졋다.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로 궁금했다.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벨기에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맙시다."

 

벨기에 출신의 이 빈틈없는 탐정의 젊은 시절이 참 궁금한데, 크리스티는 왜 이 탐정이 영국으로 오기 전 일들에 대해 한번도 쓰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내가 만약 작가라면 이런 흥미로운 인간을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에 대해 뿌듯해하면서 그의 전 생애를 망라한 전기를 썼을 것 같은데. 특히나 이 책에서 푸아로는 철저하게 '조명'의 역할에 머무르는데, 그것은 그가 자청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연극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면서, 관객을 집중시키는 조명처럼, 이 소설의 푸아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데이크리스 부인, 데이크리스 대위, 윌스 양, 서트클리프 양, 레이디 메리 리튼 고어, 리튼 고어 양, 올리버 맨더스."

 푸아로가 말했다.

 "그렇군요. 상당히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뭐가 의미심장하단 말입니까?"

 "이름을 적어 놓은 순서 말입니다."

 "그게 어디가 이상하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아무런 의미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뿐인데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는 겁니다. 명단이 데리크리스 부인으로 시작되는군요. 그걸로 보아 데이크리스 부인에게 가장 혐의를 두고 있는 모양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혐의가 안 가는 사람일 수도 있잖습니까?"

 "세 번째 가능성도 있지요. 가장 범인이기를 바라는 사람 말입니다."

 

 "당신은 데이크리스 부인이나 그의 남편이 범인이길 바라고 있지만 속으로는 젊은 맨더스 군이 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자잘한 단서들이 있었지요. 당신은 맨더스가 멜포트 애비에 오게 된 사고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당신은 찰스 경과 리튼 고어 양과 함께 배빙턴 부인을 만나러 가지도 않았지요. 왜 그랬을까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생각을 조사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레이디 메리를 찾아갔습니다. 그게 누구일까요? 이 지역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올리버 맨더스밖에 없지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당신이 명단의 제일 마지막에 그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는 겁니다.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가장 확신하는 사람은 레이디 메리와 마드무아젤 에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의 이름을 이 두 사람 다음에 적어 두었지요.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다크호스이며, 당신은 그 사실을 자기 혼자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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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서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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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니스의 비밀>로부터 4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과 <커튼>에서 동일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 두 소설간의 세월의 격차는 수십년이기 때문에, 푸아로와 헤이스팅스가 등장한다는 것만 빼면 두 소설 사이의 공통점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집주인이 바뀌어 있고 두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이 소설의 경우 <침니스의 비밀>로부터 단 4년이 경과하였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상당수가 겹친다. 먼저 나온 소설에서 조연이었던 이들이 이 소설에서는 주연이다. 다만 앞선 소설의 두 남녀 주인공에 대한 뒷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두 소설간에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굳이 전작을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이 소설을 쓴 이유는, 아마도 크리스티가 <침니스의 비밀>을 스스로 마음에 들어했기 떄문인 것 같다. 크리스티의 탐정들은 각각 머무르고 있는 세계가 확연히 다른데, <침니스의 비밀>도 그렇고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도 그렇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반영한 첩보물이다. 그러고보니 영화 007 시리즈의 시대도 아마 이 시기였던 것 같은데, 제임스 본드 또한 영국 첩보원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히어로물이 차지하는 딱 그만큼,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첩보물이 그런 위치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크리스티 또한 그 시류를 일부러 거부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사실 크리스티의 몇몇 첩보물들은 다른 추리 소설에 비해 다소 임팩트가 약한 편이다.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환기를 시켜주는 정도의 재미는 느낄 수 있지만, 소설 자체로만 보았을 때는 솔직히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침니스의 비밀> 한 번으로 그 설정은 끝내버리는 게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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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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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떠올렸던 작품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이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 인생의 쓸쓸함과 이별의 고통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우정을 나눈 대상의 죽음 등이 놀랄만큼 닮아 있기 떄문이다. 소설 속 소년들이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는 것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읽었던 책의 표지가 노란색이었다는 것과,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이것을 신기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책을 읽던 당시 내가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면, 책을 읽으면서 아,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활자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고 그러고나서야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이 슬픔이로구나, 하고 꺠달았다는 이야기이다. 즉, 어떤 대상을 대하든 그 대상에 대한 감정을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먼저 몸이 반응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경험이 아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에서는 처음이었던 데다가, 그 이후에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 떄문이다.

 

<자기 앞의 생>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고, 마음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눈물까지는 나지 않았다. 억지로 내 감정을 명료하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글자를 읽어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오르는 구절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울음이 나오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좀 아쉽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감정의 진폭을 겪지 않았을까, 하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던 그 당시의 내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유는 내가 읽었던 그 문장들에 직접적으로 슬프다거나, 아프다거나 하는 감정의 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픔을 느꼈다는 그 사실 자체에 내 스스로가 놀랐던 것 같다. <자기 앞의 생>도 마찬가지. 어린 화자의 눈으로 세상을 묘사하기에 그의 눈으로 본 세상은 더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곧이곧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시각이기에 더 큰 비극이 느껴지니까. 마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화자 옥희가 불완전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세상과 실제 세상과의 간극 때문에 남녀의 사랑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소설은 사실 소설 자체만큼이나 그 뒷이야기 떄문에 유명한 책인데, 바로 이 책의 지은이인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유명 작가 로맹 가리의 필명이며, 죽기 직전 로맹 가리가 직접 밝힐 때까지 프랑스 문단에서는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일생에 단 한 번 받을 수 있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 상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라는 두 이름으로 수상하였기 때문에 유일무이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프랑스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한 에밀 아자르를 찬양하는 평론가가 로맹 가리를 혹평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 문학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보이는 것만큼 대단한 문학적 식견이 없거나, 로맹 가리가 대단한 천재였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인물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작가라고 한다면, 로맹 가리는 자신의 소설 뿐 아니라, 마치 소설 속 인물처럼 또 다른 자신을 창조하여 그 인물이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살아 숨쉬게 했다는 점에서 최고의 예술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너무나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이 소설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다. 중간 중간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할까? 유태인으로서 홀로코스트까지 겪은 로자 아주머니, 아랍계인 주인공 모모,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유태인 아이 모세, 그 둘의 정체성을 바꾸어 말하는 로자 아주머니, 모하메드와 모세라는, 각각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선지자의 이름 등. 특히 모모의 아버지와 로자 아주머니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 전체는 정말 아름다우며, 주인공은 사랑스럽다. 특히 영화 더빙 장면에서 시간을 돌리고 싶어하는 모모의 그 장면은, 가슴이 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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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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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집은 정말 좋았다.

 

시는 소설과 다르게 이런 저런 해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구구절절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왜 좋고를 설명하게 되면 애초에 시라는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짧은 글로 세상을 담아내는 것이 시의 묘미인데, 그것을 길게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좋지만, 왜 좋은지 스스로 분석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가장 좋았던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가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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