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스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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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는 장편과 단편에서 모두 번뜩이는 기지를 보여주는 작가이다. 이 책은 그런 크리스티의 중편을 모은 책들이다. 보통 한 권의 책에 10개가 넘는 이야기가 들어가는 단편집과는 달리, 이 책에는 네 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와는 달리 이야기가 바뀌기 때문에 계속 자극을 받는 느낌이 들고,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읽을 때보다 아쉬움이 덜하다. 물론 이 장점은 뒤집을 수도 있겠다. 이제 곧 집중할 만하면 이야기가 끝나버려 깊이가 덜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으며, 어쩄든 짧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읽으면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아마도 크리스티가 구상할 때 단편으로 풀기에는 이야기가 좀 많고, 장편으로 만들기에는 부족한 면이 느껴져서 이 정도 길이로 구상한 것 같다. 주어진 구성에서, 단서를 제대로 다 줄려면 단편으로는 길이가 부족할 것이지만 이걸 장편으로 만들 경우에는 결말에 대한 노출이 빨리 일어날 것 같은 염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어디까지나 취향 문제지만, 개인적으로 이 정도 길이의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지만 여운이 남는 단편 소설, 혹은 손에서 책을 놓기 어려울만큼 시간을 잊고 빠져들게 만드는 장편 소설이 내가 사랑하는 부류이다. 물론 중편 소설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또 베스트가 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소설들의 장점이자,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추리 소설들의 공식을 뒤집은 것이다. 어떻게 죽은 여인은 오른손으로 권총을 잡고 왼쪽 관자놀이를 쏠 수 있었는가? (『뮤스가의 살인』) 유령 소동과 사라진 일급 군사 기밀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미궁에 빠진 절도』) 남작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은 어떻게 엉뚱한 위치에 있는 거울을 박살낼 수 있었을까? (『죽은 자의 거울』) 삼각관계에 빠진 여인 밸런타인 챈트리의 미모는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 것인가? (『로도스 섬의 삼각형』) 와 같은 의문들은,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면서, 다른 추리 소설에서도 늘 비슷하게 등장하는 의문들이다. 곧 이 의문들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풀리게 되는데, 그 방식이 의문의 해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애초에 그 의문 자체가 사건의 핵심에 비껴 있었다는 데에서 쾌감이 있다.

 

자살처럼 꾸민 타살, 그러나 만약 자살을 타살처럼 꾸민 거라면? 애초에 기밀 따위가 사라진 적이 없었다면? 중요한 것은 왜 살인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면? 아름다운 여자가 삼각관계의 주연이 아니라 덜 아름다운 여자의 조연에 불과했다면? 이런 사건들을 통해 고정관념이 뒤집히는 과정도 신선하지만, 이 소설들의 푸아로의 태도도 흥미롭다. 푸아로는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행위를 덮어주기도 하고, 곤란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위해 모르는 척 눈감아주기도 하며, 범죄자의 처지를 생각하여 최대한 그의 비밀을 보호해 주며, 때로는 방관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소설에서 보았던 적극적인 해결사의 모습이 공통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설들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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