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앗코짱 시리즈 2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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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코짱 2번째 이야기.
회사 안이 전쟁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미생에서 나왔던가?
1권의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같은 회사 안의 앗코와 미치코, 두번째이야기에서는 회사 안의 미치코와 사업을 시작한 앗코,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밤거리를 질주하는 여자 회사원과 옛 스승, 네번째 이야기는 옥상에 맥줏집이 생긴 사무실 이야기가 나온다.
2권의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또다른 회사에 다니는 아케미와 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앗코,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다시 만난 미치코와 또 다른 새 사업을 시작한 앗코,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도쿄에서 간사이 지방으로 내려간 여자 회사원, 네번째 이야기는 구직활동을 하는 졸업반 여대생의 이야기이다. 1,2권 전부 통틀어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네번째 이야기. 프리터가 양산된 일본 사회에서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길을 선택해나가는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아케미와 앗코짱의 대화. 이게 시리즈 1권보다 2권이 좀 더 좋았던 이유였다.

"말도 안돼요, 조명 따위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다니. 그럴 리 없어요.”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실제로 지금까지 파란 조명을 켜놓은 다른 노선에서도 투신 자살이 훨씬 줄었대. 파란 빛의 효과야. 그것도 이 세상의 진실 중 하나. 사람의 일생을 늘리는 것도 줄이는 것도 그런 별것 아닌, 한심하고, 사소하고, 없어도 아무도 곤란해 하지 않을 것들이지.”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아케미는 자신의 손에 든 스무디를 바라보았다.

“나도 알아. 일주일 가지고 인생은 바뀌지 않아. 아침을 잘 먹었다고 해봐야 그런 건 자기만족이고,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도 아니지.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미인이 되는 것도 아냐. 내가 강요한 것은 고작 채소 주스야. 눈의 피로와 스트레스에 좋은 식재료를 아무리 먹어도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이 건강해지려고 하는 의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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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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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
현실은 이렇게 간단하게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아서일까?
정직원에게도 쉽지 않은 회사가 정규직이 아닌 직원에게는 더 어렵고, 그에게 롤모델이자 멘토가 되어주는 직장 상사, 둘 다 회사를 떠나 회사 밖에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는 이미 훨씬 더 진중하게 미생에서 접했기 때문일까?
음식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일본 태생의 스토리들에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왔기 때문일까?
기대했던 정도는 아니었다.
앗코상의 외적인 모델이 되었을 와다 아키코를 찾아보니 재일한국인이었다. 그렇구나. 책을 읽을 때에는 훨씬 더 부드러운 이미지였는데. 이 책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선배 문화는 일본에서 우리 나라로 넘어 온 줄 알았는데.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 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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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4 : 1960~1961
라스 얀손 지음, 최제니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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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 얀손의 동생 라스 얀손이 쓴 무민 이야기는 한마디로
"더 친절하지만 덜 날카로운 무민" 이다.
첫 에피소드 램프 이야기만 보아도 지니에게 빈 소원인 진주 목걸이가 알고보니 남의 것을 훔친 것이었다는 이야기 다음부터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누나의 작품에서 보였던 기발하지만 다소 낯설었던 매력들이 다소 식상하지만 그만큼 친근한 매력들로 바뀐 것은 그의 성격적인 면이 작가로서의 활동과 생산물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누나보다 더 오래 무민 코믹 스트립을 연재할 수 있었는지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책 맨 뒤에 나와 있는 라스 얀손에 대한 소개글에서 그가 직접 한 말로 소개된 글이다. 스웨덴어로 쓴 자신의 글이 빨리 번역되지 않자 독학으로 영어를 배워 누나의 작품을 번역하고,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 어머니로부터 그림을 배워 온 집안을 무민 그림에 뒤덮이게 할 정도로 그림에 미쳐 있던 시간을 지나 마침내 무민 코믹 스트립 첫 연재를 시작한다.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때가 무르익기까지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기에 이만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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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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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대한 개츠비를 언제 처음 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2013년에 개봉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최소 2번 이상 읽은 것은 확실하다.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 영화도 봤는데 1970년대에 개봉한 영화이니 영화관에서 본 것은 아니고 DVD로 봤다. 그게 2009년인데 알라딘에 정보가 남아 있어서 알 수 있었다. 그때 쓴 리뷰에 보면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던 고전인데 그때는 주인공도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내용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리뷰를 쓸 당시에는 전부는 아니지만 약간은 이해가 된다고 썼다. 위대하다는 것은 반어적인 표현일지, 사랑 하나 밖에 몰랐던 순수했던 개츠비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는 표현일지 잘 모르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중학교 때에는 세계 명작이고 고전이라니까 읽었는데 당시에는 뭐 이런 내용이 있어?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서는 최소한 그의 순정에는 마음 아파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감은 했던 것이다. 확실히 개츠비의 사랑에는 20대의 마음에 어느 정도 불을 지를만한(?) 부분이 있으니까. 올해가 2019년이니 정확히 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개츠비를 접한 지 10년이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 2013년에 개봉한 디카프리오의 개츠비도 보았고. 그러고 보니 중학교에서 대학교로 진학하는 그 사이에 고등학교 때에도 개츠비를 한 번 이상은 분명히 읽었을 테니 최소한 나에게 개츠비는 5년 주기로 접하는 존재이고 10년 주기로 개츠비를 대하는 내 생각이 크게 바뀌는 것 같다.
개츠비는 위대하지 않다, 그러니까 ‘위대한’은 반어적인 표현이다는 생각은 어쩌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접했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동인의 ‘감자’에 나오는 ‘복녀’, 전영택의 ‘화수분’ 때문에 굳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왠지 그때는 그런 반어적인 표현이 멋있어 보이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20대가 되고 난 후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그녀를 위해 불법행위도, 살인죄를 뒤집어쓰는 것도 감수했던 개츠비가 위대해 보였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랑을 해냈으니까. 수단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 사랑 자체는 숭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개츠비, 그는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받는 사람, 그 주변의 인물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개츠비가 중심이고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니까. 물론 그 시절에 내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 나는 정말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알았더라면 속을 끓이지 않아도 되었을 일에 지나치게 마음 아파했었다. 지금 개츠비를 읽으면 이제 다른 것들이 눈에 조금씩 들어온다. 자신의 한계 때문에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무능했던 닉의 탄식이,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가 자기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알고 나서 충격을 받은 톰이, 순간의 감정에 허우적대다가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자리를 잡으려고 발버둥쳤을 데이지가 조금은 어른거리며 보이는 것 같다.
개츠비는 정말로 데이지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결혼 전 자신을 숭배했던 남자가 남편의 외도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와중에 크게 성공해서 돌아와 자신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순간이 있다. 데이지는 분명히 톰을 사랑했었던 게 맞고 내 생각에는 아마도 결혼 이후 데이지가 정말로 톰을 사랑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한때 개츠비를 사랑한 적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건 이미 지나간 추억일 뿐 아무런 힘이 없다. 그 당시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톰과의 사이에서 결혼 생활을 하며 딸까지 낳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데이지에게는 더 선택하고 싶고 결정하고 싶은 사랑에 가까울까. 답은 비교적 명확하지 않은가.
데이지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개츠비를 뒤로 하고 안정적인 부를 누릴 수 있는 톰을 선택했다. 현재까지 결혼 생활은 안정적이었다. 톰의 외도 전까지는. 톰의 외도는 이 결혼 생활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부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사교계에서의 자신의 지위가 추락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불안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개츠비를 선택할 것도 고민했다. 개츠비는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또 어마어마한 부가 있으니까 지금의 위치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와의 사랑은 톰의 외도만큼이나 자신의 결혼 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데이지가 톰과 불륜 관계에 있던 머틀을 차로 치어죽이고, 개츠비가 그 죄를 뒤집어쓰고, 개츠비가 머틀과 불륜 관계였고 머틀을 죽인 당사자라고 잘못 알고 있는 윌슨이 개츠비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각각의 불륜의 상대자와 불륜 대상자의 배우자까지 전부 죽어버린 상황이다. 데이지와 톰의 결혼에 균열을 가했던 망치질은 사라졌다. 이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어쩌면 심각하게 지속되었을지도 모르는 수군거림과 추문이 나타날 가능성도 영영 땅에 묻혔다. 그러니까 톰과 데이지 사이에 이미 생긴 균열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더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모로 욕이 나오는 결말이다.
이 당시 미국은 대공황 직전 흥청망청하던 1920년대이다. 1920년대의 한복판에서 개츠비처럼 데이지처럼 사치를 즐겼던 작가는 후에 대공황이 올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그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 대한 한 조각의 슬픔을 이야기했고, 소설의 결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래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리라는 전진에 대한 희망을 당연하게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대의 걸작으로 남게 된 셈이다. 우리가 1920년대의 미국을 이야기할 때 아마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책은 바로 이 책일 것이다. 궁금해졌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기는 시간이 흐르면 결국 어떠했던 시간이라고 정의가 될 것인지. 개츠비의 몰락만큼이나,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한 깜짝 놀랄 만한 일로 마무리가 되고 또 다음 세대로 넘어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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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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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이 책의 표지에는 헤밍웨이의 노년기의 사진이 있다. 보통 작가의 얼굴이 표지에 있는 경우에는 누가 찍어주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은데 유서프 카쉬의 사진이라고 한다. 유서프 카쉬는 인물사진의 거장으로 그의 인물사진은 인물사진의 교과서라 불린다고 한다. 찾아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인사들의 대표적인 사진들이 그의 사진이었다. 영국의 정치가 처칠,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화가 살바도르 달리하면 떠오르는 사진들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헤밍웨이는 젊었을 때 모습을 보면 영화배우라고 할 정도로 잘생겼고 세월의 흐름을 받지 않아 이 표지에 나온 노년기의 얼굴과는 차이가 많다. 흑백 사진에서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에 검버섯이 흩어져 있고 희끗희끗한 앞머리는 땀에 절은 듯 약간 이마에 달라붙어 있고 수염은 코 밑부터 턱 밑에 이르기까지 무성하다. 그야말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 그 자신의 모습이다. 사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헤밍웨이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왕년에 잘나가던 어부 노인이 큰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데 상어들이 고기를 전부 물어뜯어 살을 먹어버려 뼈만 남은 상태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워낙에 유명한 소설이라 이 작품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 인간과 자연을 긍정하고 진정한 연대의 가치를 역설한 수작’이 민음사의 뒤표지에 강조되어 있으며, 사실 이 큰 줄기에서 뻗어나가는 형태로 이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부분은 노인에게 투영된 헤밍웨이의 모습이다. 칼의 노래에서 충무공에게 작가 김훈의 모습이 투영되었듯이, 작가가 개인적으로 힘들고 인생이 허무하고 비관주의에 빠져 있을 때 삶을 긍정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작가에게는 소설 쓰기가 아니었나 싶다. 헤밍웨이의 삶을 보면 굉장히 모순되면서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불화가 있었고, 네 명의 여성과 결혼생활을 했다. 권총 자살을 한 아버지처럼 똑같이 권총 자살을 했으나, 의사였던 아버지가 아니라 예술가였던 어머니의 길을 택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참석했으나 어머니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종군 기자로 평생을 돌아다녔고 미국인으로서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쿠바에 거주하였으며, 중간 중간 스페인과 아프리카에도 들렀으나 결국 미국에서 사망했다. 세 번의 이혼과 자살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는 천주교 신자로 죽었다. 이 소설을 쓸 때만 하더라도 삶을 긍정할 수 있었으나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 수상 후 더 이상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 것일까?
그에게는 어머니가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콤플렉스는 찔렸을 때 아픈 것이지만, 단순히 열등감이 아니라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사고의 흐름을 훼방 놓고 우리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고 화를 내게 하고 우리의 가슴을 찔러 목메게 하는 마음속의 어떤 것들의 군집이다. 무수히 많은 체험이 무수히 많은 콤플렉스를 만들어낸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조차 거부했을 정도로 심각했을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수많은 여성편력을 통해 모성을 추구하였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을 이혼 경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미국인으로서 가지지 못했으나 다른 어딘가에는 분명이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평생 세계를 떠돌았으나 결국 미국에 와서야 스스로 죽기를 결심한 그는 죽을 때 천주교 신자로 죽었다. 아마도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끝까지 놓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기도문 보다는 성모송이 외우기 쉽다며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한다. 사투 끝에 고기를 잡을 때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났던 상처와 똑같은 부위에 상처를 입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리스도처럼 돛대를 어깨에 메고 언덕을 오른다. 바다는 그에게 고기를 잡게 해 준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만든 냉정하고 무자비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런 바다를 노인은 무조건 원망하거나 무턱대고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콤플렉스란 이렇게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근원이자 동기가 되기도 할 정도로 크고 강한 에너지를 가진다. 평생 자신을 헤매게 만든 가슴 꽉 막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소설을 쓰며 스스로 찾은 것일까? 그럼 그의 자살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생각이 뱅뱅 도는 느낌이었다. 그도 이렇게 머리가 돌 것 같이 아파오면 쿠바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단골 술집에 가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쿠바로 여행을 가서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는 단골 술집에 앉아도 보고 그가 바라봤을 바다도 질릴 정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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