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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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이 책의 표지에는 헤밍웨이의 노년기의 사진이 있다. 보통 작가의 얼굴이 표지에 있는 경우에는 누가 찍어주었는지 잘 모를 때가 많은데 유서프 카쉬의 사진이라고 한다. 유서프 카쉬는 인물사진의 거장으로 그의 인물사진은 인물사진의 교과서라 불린다고 한다. 찾아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인사들의 대표적인 사진들이 그의 사진이었다. 영국의 정치가 처칠,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화가 살바도르 달리하면 떠오르는 사진들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다. 헤밍웨이는 젊었을 때 모습을 보면 영화배우라고 할 정도로 잘생겼고 세월의 흐름을 받지 않아 이 표지에 나온 노년기의 얼굴과는 차이가 많다. 흑백 사진에서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에 검버섯이 흩어져 있고 희끗희끗한 앞머리는 땀에 절은 듯 약간 이마에 달라붙어 있고 수염은 코 밑부터 턱 밑에 이르기까지 무성하다. 그야말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 그 자신의 모습이다. 사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헤밍웨이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왕년에 잘나가던 어부 노인이 큰 고기를 잡고 돌아오는데 상어들이 고기를 전부 물어뜯어 살을 먹어버려 뼈만 남은 상태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워낙에 유명한 소설이라 이 작품의 의미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 인간과 자연을 긍정하고 진정한 연대의 가치를 역설한 수작’이 민음사의 뒤표지에 강조되어 있으며, 사실 이 큰 줄기에서 뻗어나가는 형태로 이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흥미 있는 부분은 노인에게 투영된 헤밍웨이의 모습이다. 칼의 노래에서 충무공에게 작가 김훈의 모습이 투영되었듯이, 작가가 개인적으로 힘들고 인생이 허무하고 비관주의에 빠져 있을 때 삶을 긍정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작가에게는 소설 쓰기가 아니었나 싶다. 헤밍웨이의 삶을 보면 굉장히 모순되면서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불화가 있었고, 네 명의 여성과 결혼생활을 했다. 권총 자살을 한 아버지처럼 똑같이 권총 자살을 했으나, 의사였던 아버지가 아니라 예술가였던 어머니의 길을 택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참석했으나 어머니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종군 기자로 평생을 돌아다녔고 미국인으로서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쿠바에 거주하였으며, 중간 중간 스페인과 아프리카에도 들렀으나 결국 미국에서 사망했다. 세 번의 이혼과 자살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는 천주교 신자로 죽었다. 이 소설을 쓸 때만 하더라도 삶을 긍정할 수 있었으나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 수상 후 더 이상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 것일까?
그에게는 어머니가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콤플렉스는 찔렸을 때 아픈 것이지만, 단순히 열등감이 아니라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의 사고의 흐름을 훼방 놓고 우리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고 화를 내게 하고 우리의 가슴을 찔러 목메게 하는 마음속의 어떤 것들의 군집이다. 무수히 많은 체험이 무수히 많은 콤플렉스를 만들어낸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조차 거부했을 정도로 심각했을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수많은 여성편력을 통해 모성을 추구하였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을 이혼 경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미국인으로서 가지지 못했으나 다른 어딘가에는 분명이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평생 세계를 떠돌았으나 결국 미국에 와서야 스스로 죽기를 결심한 그는 죽을 때 천주교 신자로 죽었다. 아마도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끝까지 놓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기도문 보다는 성모송이 외우기 쉽다며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한다. 사투 끝에 고기를 잡을 때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났던 상처와 똑같은 부위에 상처를 입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리스도처럼 돛대를 어깨에 메고 언덕을 오른다. 바다는 그에게 고기를 잡게 해 준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만든 냉정하고 무자비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런 바다를 노인은 무조건 원망하거나 무턱대고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콤플렉스란 이렇게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근원이자 동기가 되기도 할 정도로 크고 강한 에너지를 가진다. 평생 자신을 헤매게 만든 가슴 꽉 막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소설을 쓰며 스스로 찾은 것일까? 그럼 그의 자살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생각이 뱅뱅 도는 느낌이었다. 그도 이렇게 머리가 돌 것 같이 아파오면 쿠바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단골 술집에 가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언젠가는 쿠바로 여행을 가서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는 단골 술집에 앉아도 보고 그가 바라봤을 바다도 질릴 정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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