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농담거리
김병선 지음 / 웨일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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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이렇게 환상적인 곳일 줄이야. 지하철 화장실도 공짜, 길거리 와이파이도 공짜, 심지어 식당에서는 반찬이랑 물도 공짜. 거저 주는 것도 이렇게 많은데 돈벌이도 수두룩하다. 편의점, 배달, 막일 등 마음만 먹으면 당장 그 순간부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실업률은 가짜이다. 일자리는 널렸는데 알바와 일용직은 직업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뿐. 실제 일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스페인에 다녀와 봐야 진짜 실업 문제가 뭔지 안다. 벨렌은 인터넷으로는 물론 직접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일을 구했다. 그러다 가정부 일을 얻었을 때는 대기업에 취직한 것처럼 좋아했다. 그런 스페인에서 일할 수 있음의 소중함을 배웠기에 나는 어떤 일이든 감사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번 돈을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고 돈만 내면 왕처럼 대해주는 한국. 왜 이 좋은 곳을 버리고 타국에 갔을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시궁창인 줄 알았던 곳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달달한 곳에 사는 사람들 표정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거리에서는 빨리빨리 걷고 식당에서는 허겁지겁 먹더니 지하철에서는 잠들었다. 그들도 나처럼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해대는 탓에 바삐 움직여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것일까. 제아무리 여기가 천국이라도 그들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나쁜 생각에 사로잡혀 내 삶도 다시 지옥이 될 거야. 한국에 도착한 지 삼 일 만에 일을 시작했다.

끝까지 인생을 멋으로만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왜 월급이 일정한 직업을 선택하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걸 자랑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어느새 남들의 돈 자랑이 부러웠다. 힘들어 죽겠다는 직장인 친구의 한탄마저 부러웠다. 그들이 돈을 저금하는 동안 나는 경험을 모았는데 이자로 겁이 붙었다. 불안정한 현실이 무서웠다.
내가 도전이나 외치며 페루와 스페인을 오가는 동안 아빠는 짐을 나르며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아빠는 몇 푼 더 벌려고 짐을 무리하게 실었다가 차가 고속도로에서 전복되었는데도 내가 걱정할까 봐 연락하지 않았는데, 나는 돈이 부족할 때만 연락했다. 바로 옆 사람이 눈물 흘리는 건 신경도 안 쓰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웃기려 애쓰는 아들을 둔 아빠가 불쌍했다.
내가 세월을 낭비하는 동안 세월은 아빠에게 주름과 틀니를 선물했다. 임플란트는 해주지 못할 망정 적어도 짐은 되지 말아야 했다.

우리나라는 살기 편한 나라이다. 24시간 문을 여는 식당이 수두룩한 것도 모자라 산에서 회를 시켜 먹을 수 있고 바다에서 육회를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카페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고스란히 제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길거리에도 지하철에도 무료 와이파이가 빵빵하다.
이와 비교하면 스페인은 불편하다. 밤 10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길거리에는 소매치기가 돌아다닌다. 스크린 도어도 없는 지하철에 와이파이는커녕 데이터도 터지지 않는 구간이 많다. 10년 전 여행객으로 왔을 때 봤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유렵 국가가 와서 살아보니 후줄근하고 더러웠다.
한번은 무더운 날씨에 샤워를 하다 집 수도가 터졌는지 물이 나오지 않았다. 바로 수리공을 불렀는데 일주일 뒤에 나타나서 상태를 보더니 한다는 소리가 8월 한 달간 휴가를 가니 나중에 오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두 달 뒤에 와서 한 달 동안 수리했다. 냉수 목욕으로 여름을 이겨내려 수리를 맡겼는데 겨울 초입에 마무리를 한 것이다. 덕분에 수도세는 아껴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물 쓸 때와 똑같은 가격이 나왔다. 이를 문의하러 동사무소로 갔는데 직원이 뻔히 나를 앞에 놔두고서 옆에 있는 동료와 줄곧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꽤 흘러 참지 못하고 말을 끊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심기가 불편해진 직원님은 일주일 후에야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한국이었다면 클릭 한 번으로 하루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게 답답해서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달라지지 않는 환경에 기분 상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게되어서 그곳에 적응했다.
전기가 나가면 고치는 데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도서관에 가서 노트북과 핸드폰을 충전했다. 수도가 망가지면 수리하는 데 세 달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헬스장 샤워실을 이용했다. 그들이 만든 리듬에 들어가니 더 이상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가 한 달 만에 해결되면 기뻤다.
그 리듬에 1년을 살다 돌아온 한국은 급했다. 승객이 좌석에 앉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고, 버스가 채 정차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시킨 택배가 오늘 도착했고 가스 밸브가 고장 나기도 전에 검침을 했다. 모두 부지런하고 빨랐다. 이 리듬은 마치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어라 일을 시키는 것 같았고 또 누군가 편하기 위해 내가 죽어라 일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게 잘 사는 건가?
스페인에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낮잠을 자는 전통이 있다. 강렬한 여름의 태양을 피하기 위해 시작했다지만 겨울에도 그렇게 휴식을 취한다. 어쨌건 낮잠을 자며 에너지를 충전한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을 즐겼다.
내가 스페인에서 코미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많았기 때문이고, 무대가 많은 것은 무대를 찾는 관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객이 많이 올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삶을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여유를 한국에서는 기대도 할 수 없다. 빨리빨리 습관이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은 분명하나 삶을 즐기는 자세는 만들지 못한 듯 싶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투자 없이 자생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는 유튜브밖에 없는 것 같다.
스페인에서 살고 와보니 한국의 장점으로만 여겨지던 것이 단점으로 보였다. 페루에서 살다 왔을 때는 한국 사람들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이쯤 되면 누가 잘살고 누가 못사는 건지 헷갈린다.

내가 틀린 걸 수도 있었다. 남들 눈에 특별해 보이니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니까. 따지고 보면 서울대에 입학하고, 페루를 가고, <개콘>에 들어간 시기에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니까 대학에 간 거고, 대한민국 남자이니까 군대에 간 거고, 대학 졸업생이니까 먹고살 궁리를 한 거다. 그때그때 나타나는 관문을 넘을 줄만 알았지, 통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그렇게 살다 경험은 많지만 전문성은 없는, 질투는 많지만 자신은 없는 서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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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마음편한 인생선택 -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23가지 인생 선택과 결말
스즈키 노부유키 지음, 유가영 옮김 / 한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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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볍게만 읽으면 된다.
절대적으로 가볍게 읽을 것!
닛케이 비즈니스, 각 분야의 전문가... 이런 소개글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으면 오! 이럴 수도 있네? 하면서 볼 수 있지만 지나치게 각 잡고 볼 경우 시간과 돈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노동은 3개의 악을 제거한다.'
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악이란 지루함, 부도덕, 가난을 말합니다.

육아는 부모의 패자부활전이 아니다.

집단 행동은 마음을 마비시켜 편안하게 만든다. 집단 행동을 하는 것은 일상의 불안을 부정하는 데 무척 편리한 도구예요.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집단 구성원의 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그만큼 가치 있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기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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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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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토니오 크뢰거 안산환 옮김
마리오와 마술사 임홍배 옮김
타락 안산환 옮김
행복에의 의지 한성자 옮김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안삼환 옮김
어릿광대 한성자 옮김
트리스탄 임홍배 옮김
베니스에서의 죽음 박동자 옮김

작품 해설 / 안삼환
<길 잃은 시민> 토마스 만의 고뇌
작가 연보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여덟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옮긴 사람은 네 사람이 나눠 옮겼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아마도 처음부터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사람의 번역으로 한 책으로 묶어서 낼 계획은 아니었고,
단편을 묶어서 내는 편집 과정에서 모으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표지에는 토마스 만의 사진이 있다. 아마도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전부 작가의 모습이기에 작가의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다. 책에 나온 이 사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출처를 알기는 어려웠다.
모든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작가의 변형이라는 것은 쉽게 느꼈다.
태어난 후 줄곧 시민과 예술가, 아버지와 어머니, 북국과 남국 에서 끊임없이 갈등했을 것이다. 사실 모든 소설이 아마도 원과 화살표가 중심이 되는 그림으로도 도식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기 흥미로운 부분이 있고, 또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토니오 크뢰거로 시작해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끝났는데 마치 수미상관 같기도 했다.

토니오 크뢰거는 8개의 단편 중 가장 첫 소설이다. 그리고 8개 단편 중 제목에 등장한 것은 세 편이다. 그중 한 편이자 처음에 수록된 소설이다. 즉, 이건 작가 자신의 자서전과도 같은 책이다. 표지 사진 또한 작가의 얼굴 사진인 것은 그 때문이다. 사진에 대한 정보는 없으나 인터넷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진이다.

 

토니오 크뢰거
1 한스에 대한 동경(우리 동성 친구에 대한 흠모 있지 않나)
-2 잉에에 대한 첫사랑의 감정(자기혐오와 연민을 왔다갔다)
-3 아버지의 사망 그리고 어머니의 재혼, 재혼한 어머니는 이탈리아로 떠나고...
-4 화가 여자친구 리자베타(어머니쪽 남국의 피가 섞여 있는 그가 슬라브 여자친구는 그를 길잃은 시민이라고 한다)
-5 고향을 포함한 긴 여행(고향=잉에)
-6 고향집은 민중 도서관으로 바뀌고, 나는 도피중인 범법자로 오해받고... (집도 잃고 정체성도 잃은 시민인건가... 아니 더 이상 시민도 아닌 건가...)
-7. 덴마크로 향하는 배 위에서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은 바다를 보면서 치유되어 가고...
-8. 자기가 짝사랑했던 두 사람, 종족과 유형이 동일한 두 사람을 만나다.
-9. 예술의 세계 속으로 길을 잃은 시민, 훌륭한 가정 교육에 대한 향수를 지닌 보헤미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예술가

 

마리오와 마술사: 키 작은 프리데만 씨와 비슷한 결론. 다르다면 여기에서는 그 분노의 방향이 프리데만 씨보다 좀 더 정확하게 향했다는 것일까.

 

타락: 네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의학박사 젤텐의 이야기. 이상을 무너뜨리고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어내는 경험의 이야기

 

행복에의 의지: 끝내 최고의 행복을 보고 죽어버린 남자. 만약 그 행복을 평생 경험하지 못했다면 골골거리면서도 장수했을까?

 

키 작은 프리데만 씨: 이제 30년이 지났군. 아마 아직도 한 10년 남았겠지. 아니 20년이 남았는지도 모르지. 하느님만이 아실 거야. 다가오는 날들도 흘러간 세월이 그랬던 것처럼 고요하게 와서는 소리없이 흘러가겠지. 난 평화로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날들을 기다리고 있어.

 

어릿광대: 1. 나는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서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의 어느 한 사람을 선택해야만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을 관찰하면서 인생에 있어서 꿈에 젖어 감각적으로 사는 게 더 좋을까 아니면 행동과 권력이 더 멋진 삶을 가져다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 눈은 결국에는 어머니의 조용한 얼굴 위에 머물렸다.
2. 그런 긴장된 힘든 공연을 마친 후에 상기된 얼굴로 극단을 정리해서 보관하고 나면 행복한 노곤함이 가득 밀려와 나는 마치 위대한 예술가가 자기의 모든 능력을 바친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3.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즐기는 마음에서 나는 재치 있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모든 건조하고 상상력이 없는 주위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경멸하기 시작했다.
4. 저 아이의 재능은 일종의 어릿광대 기질이라고 하겠는데, 정말 서둘러서 덧붙이자면, 사실 내가 그런 걸 전적으로 낮게만 평가하는 건 아니오. 그애는 상인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지만 그런 점에서는 훌륭한 상인이 되는 데에 그런대로 맞는 편이라고 할 만하지요.
5. 무엇보다도 가장 매력 있는 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뛰어난 사람으로서 유쾌하게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를 돌아다닌다는 것으로 나는 그들의 답답한 한계성을 조롱하면서 동시에 그들 마음에 들고 싶은 기분도 있었기 때문에 세련된 상냥함으로 그들을 대하면서 기분 좋게 모호한 존경심을 즐겼다.
6. 그들 사이에서 자라났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점점 더 낯설고 놀랍다는 듯이 나를 관찰했으며 그들의 세계관은 너무 일방적이라서 나는 도저히 드들과 연대해서 살아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7. 당신은 반드시 연극배우나 음악가가 되셔야 합니다!
8. 고백하거니와 여러 시간 계속해서 알찬 내용을 줄 수 있는 책이 항상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또 아무런 성과 없이 피아노에 앉아서 공상의 나래를 펼 때도 있고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일도 있으며 세상 전체와 너 자신에 대한 저항할 수 없는 혐오감이 네 마음을 파고들 때도 있다. 불안이, 그 고약한 불안이 다시 너에게 엄습해오는 것이다.
9. 철학적인 나의 고독이 꽤 정도가 심하게 나를 역겹게 하며 결국 그건 행복에 대한 나의 견해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행복해질 것이라는 나의 의식과 확신에 일치되기는커녕 놀랍게도, 의심할 바 없이 행복은 완전히 불가능하게 돼버렸다. 행복하지 않다니, 불행하다니! 도대체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10. 그것은 동경, 종교적 정열, 승리, 신비한 평화 등이 혼합된 느낌으로서 끊임없이 그것을 새롭게 솟아나게 하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또 밖으로 내쫓아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났다. 그것은 느낀 것을 표현하고 알리고 보여주고 싶은, <그로부터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였다.......
내가 실제로 예술가가 된다면, 음향이나, 말이나 형상으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인간들에게 속하고 싶어하는 나의 약점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렇게 되면 자신 앞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박쥐나 부엉이처럼 어두운 곳에 쭈그리고 앉아서 <빛의 인간>을, 사랑스럽고 행복한 인간을 부러워하며 쳐다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들을 증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을 품은 사랑에 다름아닌 그런 증오로써, 그리고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을 수 없겠지!
11. 마차가 지나가는 동안 나는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말이 다시 뛰기 시작하면서 급히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나는 다시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내가 그때 느낀 것은 기쁨과 경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뭔가 이상하게 찌르는 듯한 고통이 호소해 왔다. 씁쓸하고 절박한 질투의 감정이었을까? 또는 사랑의 감정이었을까? 감히 끝까지 추적해 볼 엄두는 나지 않지만 혹시 자기 경멸의 감정은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불쌍한 거지가 머리에 떠오르는데 그 거지는 한 보석가게의 진열대 앞에서 비싼 보석이 반짝거리는 것을 응시하고 있다. 그 인간은 내면에 그 보석을 소유해 보겠다는 명백한 소망을 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소망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스꽝스러울 만큼 불가능한 것이라서 자기 스스로를 조롱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12. 비는 오지 않았고 하늘에는 몇 개의 별이 떠 있어서 사람들은 마차를 타지 않았다. 그 세 사람은 이야기하면서 느릿느릿 내 앞을 지나갔고 나는 두려운 듯 거리를 두고 찌르듯이 아픈 가슴으로 조롱받는 비참한 느낌에 짓눌려 괴로워하면서 그들을 뒤따라갔다.
13. 낯선 사람으로서, 권리가 없는 자로서,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내가 이 자리를 방해하고 있으며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불안감, 어쩔 줄 모르는 당황스러움, 증오, 비참함 등이 나에게 그 시선을 혼란스럽게 느끼게 했고 한마디로 말해서 음울하게 치켜올린 눈썹과 쉰 목소리로 짧게, 거의 거칠게 말을 꺼냄으로써 나는 나의 용감한 의도를 끝까지 완수했다.
14. 첫번째 행동, 첫번째 본능적인 행동으로서 나는 교활하게 이 일에서 통속적인 요소를 끌어내어 나의 비참한 구역질나는 처지를 <불행한 사랑>으로 멋대로 해석하려고 시도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오직 한 가지 불행이 있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호감을 상실하는 불행 말이다. 자기 자신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두려운 건 내가 계속해서 살고 먹고 자고 약간은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점차로 바보처럼 <불행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에 익숙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트리스탄
1. <아인프린트> 요양원
2. 새로운 환자 클뢰터얀 부인
3. 요양원에서 클뢰터얀 부부의 위치
4. 작가 슈피넬
5. 요양원에서 슈피넬의 위치
6. 클뢰터얀 부인과 슈피넬
7. 클뢰터얀 부인의 어린 시절
8. 눈썰매소풍과 클뢰터얀 부인의 연주
9. 클뢰터얀 씨의 방문
10. 슈피넬의 편지
11. 클뢰터얀 씨의 분노-어릿광대
12. 안톤 클뢰터얀 2세

 

베니스에서의 죽음
1. 망원경에서 현미경으로 줌인하듯 구스타프 아셴바하를 들여다보는 시작
2. 구스타프 아셴바하의 일대기
3. 베니스로 떠나는 구스타프 아셴바하는 베니스를 떠나려다 다시 머무르고...
4. 리도에서의 체류. 리도는 베니스 본섬 동쪽에 위치한 휴양 섬이자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 작가도 리도 섬의 그랜드 호텔 데 뱅에서 머무르던 중 소설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도 이 호텔에서 촬영되었다고.
해변의 타치오, 마치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고보니 영화의 배경도 이탈리아.
5. 전염병의 기운 그리고 베니스에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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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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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달라 보였다. 수염이 사라졌고 눈가에 주름이 늘고 다크 서클이 있었다. 손에는 파인트 잔을 들고 있었는데 짙은 색 맥주가 조금 남아 있었다. 여전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의사처럼 생겼다. 다만 몇 시즌이 방영된 후의 얼굴이었다.

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운동장에서 노는 것보다 도서관에 있는 게 좋았죠. 사소한 것 같지만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 말을 늘 명심해야 해.

분명 스파이로 활동할 때 가장 큰 고충은 이런 점일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잘못 투자한 돈과 같다.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훔치는 기분이 든다.

유명해진다는 게 이런 걸까? 숭배와 공격이 뒤섞인, 영원히 달콤 쌉쌀한 칵테일 같은 걸까? 선로가 급격히 바뀔 때 그토록 많은 유명인사가 탈선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건 키스해주는 동시에 뺨을 때리는 격이었다.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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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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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고 있던 하루키의 한 단면을 본 느낌이다. 가족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 작가도 있고, 잘 이야기하는 작가도 있고, 특정 가족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면서 어떤 가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작가도 있고. 사생활에 대해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구나 싶으면서도 또 어떤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무는 작가도 있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궁금하다. 왜 분명히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이 시점에서야 이야기를 했을까.

 

적어도 나에게는 관조적으로 느껴졌던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과는 이 책은 많이 다르다. 아마 독자 개개인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루키의 수필 중에서 가장 여운이 남았다.

 

 

 

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며 트라우마를-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거쇼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이 같은 갈등의 구체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이글에서는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한다.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상당히 길고 그리고 처절한 얘기가 될 테니까. 결론만 말하면, 내가 젊었을 때 결혼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완전히 소원해지고 말았다. 특히 내가 직업작가가 된 후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생겨 관계는 더욱 비틀렸고, 끝내는 절연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이십 년 이상 전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대화도 연락도 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나와 아버지는 성장한 시대도 환경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고, 세계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당연한 일이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관계의 재편성을 시도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접점을 찾기 위해 시간과 품을 들이기보다는, 아무튼 눈앞에 있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힘과 의식을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 젊었고, 해야 할 일이 많았고, 내가 지향하는 목표가 아주 명확하게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혈연의 굴레보다는 그쪽이 내게는 한층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물론, 내가 지켜야 하는 나의 조촐한 가정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나의 핏줄을 더듬는 식으로 아버지와 관계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듣게 되었다.

 

이렇게 개인적인 문장이 일반 독자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태생이 추상적, 관념적으로 사색하는 것에 서툴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환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그걸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나자신이 투명해지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손을 허공으로 내밀면, 그 너머가아른하게 비쳐 보일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 만약 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만약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당연히 나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내가 쓴 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가로서 이렇게 살아있는 나의 삶 자체가, 실체가 없는 덧없는 환상처럼 여겨진다. 나라는 개체가 지닌 의미가, 점차 모호해진다. 손바닥이 비쳐 보인다 한들 이상할게 없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나는 지금도 때로 슈쿠가와 집의 마당에 서있던 높은 소나무를 생각한다. 그 가지 위에서 백골이 되어가면서도, 사라지지 못한 기억처럼 아직도 거기에 단단히 매달려 있을지 모르는 새끼 고양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저 먼 아래,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가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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