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농담거리
김병선 지음 / 웨일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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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이렇게 환상적인 곳일 줄이야. 지하철 화장실도 공짜, 길거리 와이파이도 공짜, 심지어 식당에서는 반찬이랑 물도 공짜. 거저 주는 것도 이렇게 많은데 돈벌이도 수두룩하다. 편의점, 배달, 막일 등 마음만 먹으면 당장 그 순간부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실업률은 가짜이다. 일자리는 널렸는데 알바와 일용직은 직업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뿐. 실제 일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스페인에 다녀와 봐야 진짜 실업 문제가 뭔지 안다. 벨렌은 인터넷으로는 물론 직접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일을 구했다. 그러다 가정부 일을 얻었을 때는 대기업에 취직한 것처럼 좋아했다. 그런 스페인에서 일할 수 있음의 소중함을 배웠기에 나는 어떤 일이든 감사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번 돈을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고 돈만 내면 왕처럼 대해주는 한국. 왜 이 좋은 곳을 버리고 타국에 갔을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시궁창인 줄 알았던 곳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달달한 곳에 사는 사람들 표정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거리에서는 빨리빨리 걷고 식당에서는 허겁지겁 먹더니 지하철에서는 잠들었다. 그들도 나처럼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해대는 탓에 바삐 움직여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것일까. 제아무리 여기가 천국이라도 그들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나쁜 생각에 사로잡혀 내 삶도 다시 지옥이 될 거야. 한국에 도착한 지 삼 일 만에 일을 시작했다.

끝까지 인생을 멋으로만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왜 월급이 일정한 직업을 선택하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걸 자랑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어느새 남들의 돈 자랑이 부러웠다. 힘들어 죽겠다는 직장인 친구의 한탄마저 부러웠다. 그들이 돈을 저금하는 동안 나는 경험을 모았는데 이자로 겁이 붙었다. 불안정한 현실이 무서웠다.
내가 도전이나 외치며 페루와 스페인을 오가는 동안 아빠는 짐을 나르며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아빠는 몇 푼 더 벌려고 짐을 무리하게 실었다가 차가 고속도로에서 전복되었는데도 내가 걱정할까 봐 연락하지 않았는데, 나는 돈이 부족할 때만 연락했다. 바로 옆 사람이 눈물 흘리는 건 신경도 안 쓰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웃기려 애쓰는 아들을 둔 아빠가 불쌍했다.
내가 세월을 낭비하는 동안 세월은 아빠에게 주름과 틀니를 선물했다. 임플란트는 해주지 못할 망정 적어도 짐은 되지 말아야 했다.

우리나라는 살기 편한 나라이다. 24시간 문을 여는 식당이 수두룩한 것도 모자라 산에서 회를 시켜 먹을 수 있고 바다에서 육회를 시켜 먹을 수도 있다. 카페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고스란히 제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길거리에도 지하철에도 무료 와이파이가 빵빵하다.
이와 비교하면 스페인은 불편하다. 밤 10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길거리에는 소매치기가 돌아다닌다. 스크린 도어도 없는 지하철에 와이파이는커녕 데이터도 터지지 않는 구간이 많다. 10년 전 여행객으로 왔을 때 봤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유렵 국가가 와서 살아보니 후줄근하고 더러웠다.
한번은 무더운 날씨에 샤워를 하다 집 수도가 터졌는지 물이 나오지 않았다. 바로 수리공을 불렀는데 일주일 뒤에 나타나서 상태를 보더니 한다는 소리가 8월 한 달간 휴가를 가니 나중에 오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두 달 뒤에 와서 한 달 동안 수리했다. 냉수 목욕으로 여름을 이겨내려 수리를 맡겼는데 겨울 초입에 마무리를 한 것이다. 덕분에 수도세는 아껴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물 쓸 때와 똑같은 가격이 나왔다. 이를 문의하러 동사무소로 갔는데 직원이 뻔히 나를 앞에 놔두고서 옆에 있는 동료와 줄곧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꽤 흘러 참지 못하고 말을 끊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심기가 불편해진 직원님은 일주일 후에야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한국이었다면 클릭 한 번으로 하루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게 답답해서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달라지지 않는 환경에 기분 상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게되어서 그곳에 적응했다.
전기가 나가면 고치는 데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도서관에 가서 노트북과 핸드폰을 충전했다. 수도가 망가지면 수리하는 데 세 달이 걸릴 것이라 생각하고 헬스장 샤워실을 이용했다. 그들이 만든 리듬에 들어가니 더 이상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가 한 달 만에 해결되면 기뻤다.
그 리듬에 1년을 살다 돌아온 한국은 급했다. 승객이 좌석에 앉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고, 버스가 채 정차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시킨 택배가 오늘 도착했고 가스 밸브가 고장 나기도 전에 검침을 했다. 모두 부지런하고 빨랐다. 이 리듬은 마치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어라 일을 시키는 것 같았고 또 누군가 편하기 위해 내가 죽어라 일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게 잘 사는 건가?
스페인에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낮잠을 자는 전통이 있다. 강렬한 여름의 태양을 피하기 위해 시작했다지만 겨울에도 그렇게 휴식을 취한다. 어쨌건 낮잠을 자며 에너지를 충전한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을 즐겼다.
내가 스페인에서 코미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많았기 때문이고, 무대가 많은 것은 무대를 찾는 관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객이 많이 올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삶을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여유를 한국에서는 기대도 할 수 없다. 빨리빨리 습관이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은 분명하나 삶을 즐기는 자세는 만들지 못한 듯 싶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투자 없이 자생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는 유튜브밖에 없는 것 같다.
스페인에서 살고 와보니 한국의 장점으로만 여겨지던 것이 단점으로 보였다. 페루에서 살다 왔을 때는 한국 사람들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이쯤 되면 누가 잘살고 누가 못사는 건지 헷갈린다.

내가 틀린 걸 수도 있었다. 남들 눈에 특별해 보이니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니까. 따지고 보면 서울대에 입학하고, 페루를 가고, <개콘>에 들어간 시기에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니까 대학에 간 거고, 대한민국 남자이니까 군대에 간 거고, 대학 졸업생이니까 먹고살 궁리를 한 거다. 그때그때 나타나는 관문을 넘을 줄만 알았지, 통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그렇게 살다 경험은 많지만 전문성은 없는, 질투는 많지만 자신은 없는 서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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