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교습소 - [할인행사]
변영주 감독, 김민정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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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유명해진 이준기가 주인공 윤계상의 친구로 등장했던 영화.

 

(나름 비중있는 역이었다. 이 당시에도 여성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던 역으로 기억한다 ㅋ)

 

제목도 그렇고... 주연 배우들도 톱스타들은 아니어서 개봉할 때는 별 관심도 없었는데 인터넷에서 좋다는 평이 많이 올라와서 뒤늦게 보게 되었다.

 

의외로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19살과 20살... 그 경계에서 고민하는 모습들이 정말 진솔하게 다가왔고.. 이 당시 이런 저런 고딩 판타지 영화들이 득실댔던 때라 오히려 이 영화의 평범함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실 이 영화는 내가 고 3 겨울에 개봉했는데, 나는 1년 지난 후 재수 끝나고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수능이 끝난 고 3들의 생활에 포커스를 맞춰서인지 주인공들의 고민이나 감정 하나하나가 내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흥분하거나 소리지르지 않고.. 잔잔하게 그저 보여주는 영화라서 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던 영화.. 김민정이 연기하는 캐릭터도 너무 좋았고, 윤계상 연기도 처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멋졌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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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1disc) - 할인행사
이준익 감독, 감우성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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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의 장면 장면에 숨겨진 뜻...


영화 보기 전에.. 아니 보고 나서도 단순히 수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내가 무심코 지나갔던 장면들에 이런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이 영화를 세번, 네번 본다는 사람들이 이제 이해가 된다.


 


 


왕의 남자 엔딩에 대해서.


왕의 남자가 왜 비극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던데


4번째 사진에 보시면 장생과 공길의 엔딩장면이 보입니다.


그곳에서 장생은 눈이 먼 상태로 줄을 타는데, 유일하게 바람을 느끼고 중심을 잡아주는 생명줄...


즉 부채를 집어 던지고 하늘로 나르지요.... 눈치 채신분들도 많으신 것 같던데..


저 장면은 공길과 장생이 '자살' 하는 장면입니다.


저 뒤에 어찌될지는 불 보듯 뻔한... 그런거지요.


그럼에도 왜 엔딩이 저런거냐!! 하고 욕하시는 분들에게 고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저 장면 후 바닥에 떨어져서 머리가 깨지고 피범벅이 된 상태의 둘이 비춰지길 원하십니까?


반란군이 성안에 당도해서 연산을 잡아 부복시키고 녹수의 사형시키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춰지시길 바라십니까?


 


정말 적절한, 정말 최고의 장면에서 저는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둘의 자유로운 모습...그리고 그 안에 담긴 죽음..비극...이 모든걸 저 장면 하나에 너무나 잘 소화시켜 담아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아닐런지요.


뭐 사실 구지 자살이아니고 반란군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죽음" 이라는 것과 직접적인 연계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보니^^;


아무래도 "비극" 이라는 결말을 승화시키기위해 그 장면에서 멈췄다고..저는 생각합니다.


'그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죽냐?' 라고 하시던 분도 계시던데,


제가 말하는 '죽음' 은 육체적인 죽음만을 말하는게 아니에요.


장생이 던져버리는 부채..그건 즉, 광대로서의 삶, 그 삶의 마지막을 표현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저도 잘 몰랐는데 줄타는 사람들에게 부채란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저 장면후 놀이패의 모습이 비춰지지요?


거기에는 장생, 공길, 육갑, 칠득, 팔복이가 이렇게 즐거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갑니다.


그것이 '저승가는 길' 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요?


그 증거로 장생이 '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냐?'라고 하니 공길이 '아 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지!'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육갑이(육갑은 이미 활에맞아 죽었지요.) '아 "아~ 여기들 다 있어~" ...라고 합니다. 육갑, 공길, 장생이 함께 우리모두 여기있다고 대답하지만,


반대로 칠득은 " 나 여기 없는디..." 라고 합니다.


굉장히..소름끼쳤습니다.


(사실 대사는 확실히 기억나지않지만, 저 나름대로 추측해 봅니다^^;)


대부분이 회상하는 장면인가 보다 라고 하시던데....그럴 수 도있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걸 수도있지요.


반정군에 다 같이 죽고 난 후의 모습일 수도있고, 말 그대로 회상하는 장면일 수도 있구요^^


결말이 여러가지로 상상된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왕의남자는 충분히 '수작' 이라 불릴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산이 녹수의 치마폭에 들어가는게 어머니의 자궁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장면이라는 것을,


모성애를 갈구하는 연산의 목마름이라는 것을 아셨는지요?


연산이 왜 미치게 됬는지, 연산의 유년이 어떠했는지 자세히는 아시나요?


연산이 녹수를 만났을때 녹수는 서른대의 여인, 그것도 노비의 아내였다는 사실은요?


 


공길이 처음 연산에게 해준 인형놀이가 뜻하는 바는요?


그것이 연산에게는 공길이 처음에는 연인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소꿉친구처럼 다가왔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자신의 텅 비고 홀로 지냈던 유년시절을


위로해주는 행위라는 것은 알고있었는지요?


또 공길이 두 번 한 인형놀이중, 처음한 인형놀이가 다리에서 공길의 뺨을 닦아주던


장생과 자신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은 알고있었는지요?


처선영감이 자살한 이유는 추측하시고 영화를 보셨는지요?


 


왜 연산이 장생의 신체중 '두 눈' 을 공길의 앞에서 지졌는지 아시나요?


장생이 '어느 잡놈이 그 놈 마음 훔쳐가는 것을 못보고..' 하며 연산에 대해 말할때,


공길이 장생에게 '야 이 잡놈아!!!' 하고 외치는 것은 들으셨는지요?


자신이 바로 그 잡놈이라고 하자 장생의 얼굴에 미소가 띈 것은 잡으셨는지요?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죠...


그럼 두 눈이 멀어 피눈물을 흘리던 장생의 심정은 헤아려 보셨나요..?


사랑하는 이를 제 눈에 담을 수 없는, 그 아픔. 그 한을 같이 느끼셨는지요...?


 


또, 장생이 줄을 끊으려고 할 때 공길이 왜 그다지도 '안돼,안돼!!' 하면서 울부짖었는지..


그 이유는 아셨는지요? .......그 줄은 '인연'...입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연줄' 정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 하네요.


공길과 장생의 인연..


그것을 장생은 끊으려고 했고, 공길은 울부 짖으며 '안돼!' 라고 소리쳤던거지요.


(광대에게 줄이 중요하니까 그런거 아냐? 라고 하셨던 분이 계셔서요...)


그리고 영화의 끝부분, 왜 그 넷이 마지막까지 함께 했는지는 예상하시는지요?


그 네명중 두명은 가장 높은 권력을 지닌 왕과 녹수이고


나머지 두명은 조선시대 가장 천한 신분인 광대 장생과 공길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오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그리고 말이죠. 엔딩크레딧에 올라오는 이름들 중 점쟁이역할 맡으신 분도 있으시던데 그 점쟁이 장면은 왜 편집당했지? 하고 의문 가져보신 분은 없으신가요;


 


마지막으로.


"왕의 남자" 에서.


"왕" 이란 연산이 아니라.....


장생임을.....장생이 바로 또 하나의 왕임을...아셨는지요?


 


'왕 상판 한번 보자!'


'이놈아, 내가 왕이다!'


 


... 공길에게의 '왕' 은 장생이고..


그래서 '왕의남자' 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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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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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풍요로운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거북했다. 뭄바이에서 살림과 나는 공짜로 배를 채우려고 부잣집 결혼식에 몰래 끼어들기는 했지만 그들의 넉넉한 삶을 시샘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대학생들이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쓰는 것을 보자 내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내 궁핍한 삶과 너무 달라서 온몸이 쑤시고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구미가 당기는 요리가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허기마저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내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기 전부터 원하면 뭐든지 돈으로 해결해왔기 때문에 어떤 욕망도 느낄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욕망 없는 삶이 지독히 가난한 삶보다 나은 것일까?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은 구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풍선을 터뜨리듯 사람을 쉽게 죽였는데.......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거침없이 총을 쏘아댑니다. 우리가 개미를 밟아 죽이듯이 그들은 사람을 죽입니다. 실제로는 총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풋내기 주인공도 저 멀리 악당 소굴에 있는 악당들을 단 번에 열 명씩이나 손쉽게 쏘아 죽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총을 장전해서 누군가의 얼굴을 겨누기는 그런대로 쉽습니다. 하지만 진짜 총알이 진짜 심장을 꿰뚫는다고 생각하면, 선홍빛 액체가 토마토 케첩이 아니라 피라고 생각하면 방아쇠를 당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를 그 지경까지 몰고 온 과거를 생각하며 분노를 끌어내려고 애썼습니다. 닐리마 쿠마리와 니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닐리마의 몸에서 본 까만 담뱃불 자국, 붉은 채찍 자국이 선명한 니타의 등, 시퍼렇게 멍든 얼굴, 검게 변한 눈두덩, 탈구된 턱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분노가 일기는커녕 슬펐습니다. 총구에서 총알이 나가기는커녕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나는 다른 데서 방아쇠를 당길 구실을 찾으려고도 해보았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겪었던 모욕과 경멸, 내가 그때까지 참아야만 했던 굴욕과 상처를 떠올렸습니다. 내게 자상한 아버지와도 같았던 티모시 신부의 피투성이로 변한 주검, 내가 만난 아이 중 가장 착했던 샹카르의 축 늘어진 몸뚱이도 떠올렸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겪었던 악랄한 사람들도 기억해내려 애썼습니다. 그런 감정을 순간적으로 압축시켜 방아쇠를 당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내 모든 불행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뒤집어씌울 순 없었습니다. 그런 놈은 죽어도 괜찮다고 정당화시킬 만큼 분노를 끌어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내가 아무리 애써도 사람을 죽일 정도로 냉혈한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프렘 쿠마르 같은 망나니조차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조용히 총을 내렸습니다.




"아니……. 양쪽 모두 앞면이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내 행운의 동전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이 운은 그 동전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나는 스미타에게 동전을 받아 하늘 높이 던졌다. 동전이 위로, 위로 올라가 푸른 하늘에서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다에 떨어져 깊이, 깊이 가라앉았다.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인도의 다양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청년은 매 순간 생존본능에 따라 살아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청년은 정말 충실히 살았다. 시간을 죽이듯이 삶을 대충 살지 않았다.




청년의 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였다.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냄새를 동시에 지닌 이름이다. 소설 속의 한 인물이 말하듯이 인도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에는 종교 간의 알력까지 담겨 있다. 어떤 종교나 관용을 말하지만 결코 관용적이지 못한 종교에 대한 냉소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기도 하다. 위선이다. 

 

 

                                                                                                                                

 

 

 

 

 

한편으로는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약 없이도 언제든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주인공의 생애는 감동적이다.  

 

현대 인도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의 삶과 그것을 퀴즈쇼와 연결시킨 구성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 몇 개의 단어, 한 마디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걸작이다. 정말 천재적이면서도 감동적이고 모든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찾아보니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경우처럼 소설을 제대로 영화화했다는 평이 많은데, 실제 인도의 모습을 활자를 통한 상상이 아니라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하다. 인도라는 나라가 너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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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0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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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에는 대학생쯤 되면 연인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편견일 뿐이다. '대학생쯤 되면 연인이 있다'라는 편견에 등 떠밀린 어리석은 학생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신분을 번지르르 치장한 결과 누구에게나 연인이 생기는 괴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더 편견을 조장한다.

나또한 그 편견에 등 떠밀린 건 아닐까. 고고한 남자임을 내세우면서 실은 유행에 취해 사랑을 쫓아다닌 것은 아닐까. 사랑을 탐하는 아가씨는 귀엽기나 하지. 하지만 사랑, 사랑, 하며 눈을 희번덕거리는 남자들의 그 으스스함이란!

도대체 나는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눈에 못이 박힐 지경으로 바라본 뒤통수 외에 무엇 하나 아는 게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반했다고 하는가. 근거가 불분명하다. 그건 단지 내 마음의 공허에 그녀가 어쩌다 빨려 들어온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입학 이후 결코 올라간 적 없고 앞으로도 전혀 올라갈 기미가 없는 학업 성적, 취직 활동은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구실을 높이 내건 채 뒤로 미룰 뿐, 융통성도 없다. 재능도 없다. 저축한 돈도 없다. 완력도 없다. 근성도 없다. 카리스마도 없다. 사랑스러워 뺨을 갖다 대고 비비고 싶어지는 새끼 돼지 같은 귀염성도 없다. 이렇게 ‘없다, 없다의 행렬’이 이어져서는 도저히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너무나도 초조한 나머지 이부자리에서 기어 나와 한동안 두 평 남짓한 방안을 탁탁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돌아다니면서, 어디 귀중한 재능이 굴러다니지 않나 살폈다. 그러다 문득 1학년 때 ‘능력 있는 매는 발톱을 숨긴다’는 말을 믿고 ‘재능의 저금통’을 옷장 속에 숨겼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래, 그게 있었어! 오오, 그거야!”하고 나는 신이 났다. 옷장을 열자 그 안은 온통 웃자란 버섯투성이었다. 나는 “언제 이런 꼴이 됐지?”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미끈거리는 버섯을 밀어제쳤다. 그 속에서 꺼낸 ‘재능의 저금통’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마치 내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나는 저금통을 거꾸로 들고 미친 듯이 흔들어보았지만 나온 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거기에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꾸준히’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만 이부자리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읽어 본 청춘 소설 중 가장 공감이 많이 갔다. 스물, 스물 하나의 연애 감정을 이렇게 마음에 들게 표현해 내다니, 그 당시 나의 고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마냥 놀고 먹는 청춘이 아니라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 너무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내 자신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쓰러져 울음을 터뜨리는 과정에서는 나도 불쑥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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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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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책이다. 평도 좋았고 팔리기도 많이 팔렸고 선물하기도 무난하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그만큼 보편적이고 반면에 논란거리도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추천하는 글에서 이적이 말하듯 엄마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원죄가 있으니까. 

사실상 작가의 이야기로 봐도 무관할 '나'의 이야기를 '너'로 표현한 것은 누군가의 특정한 엄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신경숙의 엄마는 나의 엄마가 아니다. 나의 엄마의 엄마이다. 극 중 '너'로 표현된, 사실상 작가 자신일 신경숙이나, 엄마가 항상 미안해하는 형철이가 바로 나의 '엄마'에 가깝다. 무조건 희생적인 엄마의 모습이 낯선 것은 그 때문이다.  

아마도 요새의 엄마는 못 배우고 가진 것 없어서 자식 앞에서 눈물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학원에서부터 대학 전공까지, 나아가 결혼하고 그 이후까지 책임져 주는 엄마이다. 물론 애들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팽개치거나,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있는 법이다. 중간중간 내가 울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표현은 바뀔지라도, 외양은 변할지라도,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이 소설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고 싶다. 그리고 나의 엄마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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