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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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풍요로운 삶을 보는 것만으로도 거북했다. 뭄바이에서 살림과 나는 공짜로 배를 채우려고 부잣집 결혼식에 몰래 끼어들기는 했지만 그들의 넉넉한 삶을 시샘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대학생들이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쓰는 것을 보자 내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내 궁핍한 삶과 너무 달라서 온몸이 쑤시고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눈앞에 구미가 당기는 요리가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허기마저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내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기 전부터 원하면 뭐든지 돈으로 해결해왔기 때문에 어떤 욕망도 느낄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욕망 없는 삶이 지독히 가난한 삶보다 나은 것일까?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은 구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풍선을 터뜨리듯 사람을 쉽게 죽였는데.......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거침없이 총을 쏘아댑니다. 우리가 개미를 밟아 죽이듯이 그들은 사람을 죽입니다. 실제로는 총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풋내기 주인공도 저 멀리 악당 소굴에 있는 악당들을 단 번에 열 명씩이나 손쉽게 쏘아 죽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총을 장전해서 누군가의 얼굴을 겨누기는 그런대로 쉽습니다. 하지만 진짜 총알이 진짜 심장을 꿰뚫는다고 생각하면, 선홍빛 액체가 토마토 케첩이 아니라 피라고 생각하면 방아쇠를 당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를 그 지경까지 몰고 온 과거를 생각하며 분노를 끌어내려고 애썼습니다. 닐리마 쿠마리와 니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닐리마의 몸에서 본 까만 담뱃불 자국, 붉은 채찍 자국이 선명한 니타의 등, 시퍼렇게 멍든 얼굴, 검게 변한 눈두덩, 탈구된 턱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분노가 일기는커녕 슬펐습니다. 총구에서 총알이 나가기는커녕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나는 다른 데서 방아쇠를 당길 구실을 찾으려고도 해보았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겪었던 모욕과 경멸, 내가 그때까지 참아야만 했던 굴욕과 상처를 떠올렸습니다. 내게 자상한 아버지와도 같았던 티모시 신부의 피투성이로 변한 주검, 내가 만난 아이 중 가장 착했던 샹카르의 축 늘어진 몸뚱이도 떠올렸습니다.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겪었던 악랄한 사람들도 기억해내려 애썼습니다. 그런 감정을 순간적으로 압축시켜 방아쇠를 당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내 모든 불행을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뒤집어씌울 순 없었습니다. 그런 놈은 죽어도 괜찮다고 정당화시킬 만큼 분노를 끌어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내가 아무리 애써도 사람을 죽일 정도로 냉혈한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프렘 쿠마르 같은 망나니조차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조용히 총을 내렸습니다.




"아니……. 양쪽 모두 앞면이군요!"

"그렇습니다. 그게 내 행운의 동전입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이 운은 그 동전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나는 스미타에게 동전을 받아 하늘 높이 던졌다. 동전이 위로, 위로 올라가 푸른 하늘에서 반짝거렸다. 그리고 바다에 떨어져 깊이, 깊이 가라앉았다.

"왜 행운의 동전을 던져버렸나요?"

"이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행운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인도의 다양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청년은 매 순간 생존본능에 따라 살아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처절하게 몸부림치기도 했지만 청년은 정말 충실히 살았다. 시간을 죽이듯이 삶을 대충 살지 않았다.




청년의 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였다.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냄새를 동시에 지닌 이름이다. 소설 속의 한 인물이 말하듯이 인도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 이름에는 종교 간의 알력까지 담겨 있다. 어떤 종교나 관용을 말하지만 결코 관용적이지 못한 종교에 대한 냉소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기도 하다. 위선이다. 

 

 

                                                                                                                                

 

 

 

 

 

한편으로는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약 없이도 언제든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주인공의 생애는 감동적이다.  

 

현대 인도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의 삶과 그것을 퀴즈쇼와 연결시킨 구성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 몇 개의 단어, 한 마디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걸작이다. 정말 천재적이면서도 감동적이고 모든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찾아보니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경우처럼 소설을 제대로 영화화했다는 평이 많은데, 실제 인도의 모습을 활자를 통한 상상이 아니라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하다. 인도라는 나라가 너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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