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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 시작하기 전 작가의 말에 있는 구절이다. “내게도 팬이라는 게 있다면 이 소설은 그 팬들을 위한 특별판 소설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이 게 처음이기 때문에 나는 그의 팬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의 팬이 될 것 같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선영아, 사랑해 라는 모 인터넷 포털 업체의 광고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마도 작가는 거기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 광고, 분명히 한 지 꽤 되었을 것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무서운 데가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문구를 만들어낸 여성 CEO도, 김연수도, 이 책의 세 남녀도 전부 비슷한 나이 대이다. 한때는 386세대, 이제는 486인가?
대한민국 40대라면 아마 이 책을 읽으며 눈물 한 방울 찔끔,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이후 세대이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흥미롭게, 또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이 소설을 읽었다. 운동권, 사회의식으로 대학시절 연대되었던 그들이 결혼하고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부분들, 특히 대학 동기들끼리 술을 마시며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다 결국 지저분하게 끝나버린 집들이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들 세대의 키워드가 ‘민주화’라면, 우리 세대는? 단연 ‘스펙’이다.
얼마 전 한 신문기사에 수백 개의 댓글이 순식간에 달렸던 적이 있다. ‘20대 백수’를 다룬 기사였는데 기사의 내용은 평범했지만 댓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회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스펙 쌓기와 소비에만 열중하는 20대와 대학만 졸업하면 학점 상관없이 취직 가능해 아무 경쟁 없이 회사 들어와 놓고 실력도 없는 40대의 대결구도, 혹은 단군이래 제일 치열한 경쟁 속에 아마 제일 똑똑하고 유사 이래 외국어도 가장 잘하는 세대이지만 취업 안 되어 좌절할 수밖에 없는 20대와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끝내 민주화를 만들어낸 40대의 대결구도가 볼만했다.
이 책은 연애소설이 아니라 사랑소설이다. 진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 떠올랐다. 한 여자를 둘러싼 과거의 남자와 현재의 남자. 무엇보다 영화의 엄태웅과 소설의 진우가 겹쳐졌다. 진우에 비하면, 뭐 엄태웅은 양반이지만, 결국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나의 감정에 충실했다가 여자를 놓쳤다는 것은 똑같다. 책이든 영화든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면 늘 여자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보게 되는데, 두 작품 모두 다 열렬히 공감하면서 보았다. 21세기에 들어선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신데렐라 판타지 러브가 우세한 대중 문화에 지쳤나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에 가슴 시리고 나도 모르게 풋 웃다가 조금 짠해진다.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사랑학 개론인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세상의 다른 모든 일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잘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일만은 모험을 겁내지 않는 젊은이들의 전공 분야다. 젊은이들은 아직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혼자서 빠져 나올 때 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 그리하여 사랑이 되풀이 될수록 그 관계 속으로 밀어 넣을 만한 게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쯤이면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헷갈리지 않게 되는데, 그건 이제 불타는 사랑이란 자신보다 더 어린 사람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나이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랑가’를 부르며 바지 지퍼를 내리거나 브래지어 호크를 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어야만 상대방이 수많은 양반 자제 중에서 자신을 알아볼 게 아닌가?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아, 미치고 환장하겠네. 누렁소나 황소나. 좋아하는 게 사랑하는 거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
“야, 꿩 다르고 닭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냐?”
“그러면 좋다, 선영아. 결혼은 닭하고 하고 나하고는 연애하자. 그럼 되잖아, 어때?”
“너도 소설가라고 결혼이 미친 짓인 줄 아니?”
“사랑이라는 건 서로 아끼고 위하는 거야. 사랑이란 한 번 사랑했다는 기억만으로도 영원할 수 있는 거야. 하지만 슬프게도 너한테는 그런 기억이 없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말을 쓰면 안돼.”
‘사랑’에 집중하는 작가 기욤 뮈소의 작품을 읽을 때의 미진한 느낌이 이 소설에는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김연수가 한수 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