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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SE (2disc) - 할인행사
밀로스 포만 감독, 톰 헐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최소한 이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감독이 절대 음악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무후무한 음악의 천재인 모차르트에 대한 영화이기에, 오히려 영화는 어떤 면에서 보면 모차르트 메들리? 혹은 모차르트라는 메인 주제를 놓고 그의 음악이 서브 주제가 되어 이루어지는 뮤직비디오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분명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살리에리를 맡은 배우의 이름이 먼저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모차르트를 연기한 톰 헐스와 살리에리를 연기한 F. 머레이 에이브러햄 둘 다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에이브러햄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영화 외적인 에피소드를 떠나서, 영화만 놓고 볼 때도 이 영화의 축은 살리에리에게로 좀 더 쏠려 있습니다. 철저하게 살리에리의 시선으로 바라 본 모차르트에 대해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보다 살리에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서술이 더 길며, 영화 내내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의 심경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지만, 정작 살리에리에 대한 모차르트의 진심은 마지막에서야 살짝, 그것도 일부만 조금 보일 뿐입니다. 아무리 모차르트라 하더라도 음악가 이외의 한 남자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아들로, 연인으로 살아간 삶이 분명히 있었을 테고 거기에 대한 인간적 고민, 또 그 자신과는 떼어놓을 수 없을 음악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테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살리에리의 관점에서만 모차르트를 해석해냅니다. 어쩌면 적절한 영화적 선택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대체 누가 모차르트의 입장에서 그에게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평범한 우리들은 영화를 본 이상 살리에리를 동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건 살리에리를 맡은 배우의 연기가 더 나아서일지도 모르고요. 확실히 톰 헐스는 기괴한 면 못지않게 천재적인 면 또한 부각시켜야 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팔을 휘두르는 장면 같은 경우는 ‘아까까지 반쯤 정신 나가 보이던 애하고 동일인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완벽히 다른, 그야말로 ‘천재’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에이브러햄의 눈빛이 순간순간 달라지는 것처럼요. 정말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화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경이입니다.
누구나, 누구나, 한번쯤은 살리에리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에, 이른바 ‘열폭’하는 ‘찌질한’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에게서 볼 수 있기에 차라리 ‘그래, 나 질투해’라고 관객들이 쉽게 인정해버릴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보통 질투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난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 영화의 미덕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됨으로써 질투에 눈 먼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가련해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주는 것 말입니다. 최소한 이 영화에서 말년의 살리에리의 모습을 머릿속에 간직하는 한, 함부로 누군가 시기하는 것은 저절로 삼가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씁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충격적이라는 것은, 이미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몇 십 년 후’ 살리에리의 현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차르트가 죽어서까지, 질투에 눈멀어 그 지경이 되기까지도 모차르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살리에리에 공감이 갈 뻔 했다가 끝내 공감가지 못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모차르트 필생의 역작, 당대 모든 관습을 뛰어넘은, 혁명이라 부를 작품 ‘피가로의 결혼’ 초연시 모차르트의 후원자였던 왕은 하품을 합니다. 모차르트와 그의 작품에 압도되어 있던 살리에리는 그런 왕의 모습을 보고는 기뻐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당시에 왕이 세 번 하품을 하면 그 작품은 못 올리고, 한 번 하품을 하면 그냥 그저 그랬답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니 살리에리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이 싹 사라진 거죠. 왕이 하품을 했던 건 작품 여부에 상관없이 그냥 피곤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왕의 음악적 수준이 다소 부족했기 때문이겠죠. 모차르트가 당대의 ‘트렌드’에 따르지 않는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어찌 되었든 비록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만들 재주는 없어도 알아볼 재주는 있었던 살리에리가 왕이 지겨워하는 장면을 보자마자, ‘그래, 왕이 별로라고 하니까 모차르트 넌 이번엔 안 되겠다’며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니 다소 혼란이 옵니다. 이때까지 살리에리가 원하는 건 모차르트의 천재성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체 그가 진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술은 몰라도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높은 이들로부터의 인정? 당시 대중으로부터의 흠모? 100년을 앞서가는 천재성? 아니면 이 모든 것? 혹은 이 모든 것도 아닌 그냥 자타가 공인하는 ‘내가 최고다’, 이거? 대체 그가 음악을 하는 음악인으로서 추구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신을 찬양하고 싶다는 그의 초심이 질투에 눈 먼 그 순간부터 단순한 욕망으로 바뀌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노력하는 둔재가 천재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믿지 않습니다. 대체 천재를 어떻게 이깁니까? 더구나 세 살 때 피아노 치고, 다섯 살 때 작곡하고, 이런 애를 무슨 수로 이깁니까? 절대 아니죠. 천재는 말 그대로 천재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있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못 이기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는 말. 여기서 말하는 천재는 당연히 ‘노력을 게을리 하는’ 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고, 노력하는 사람은 재능이 전혀 없는데 맨 땅에 헤딩하듯 노력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모차르트는 음악을 즐겼고, 모차르트를 알고 난 후의 살리에리는 더 이상 음악을 즐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죠.
저는, 음... 천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열정적으로 즐기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신동인 모차르트는 못 되더라도 감히 에드워드 엘가는 꿈꿀 수 있지 않을지...
P.S. 에드워드 엘가. 처음에는 법률가를 꿈꿨지만 여의치 않았고, 음악가로도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으며 ‘사랑의 인사’, ‘위풍당당 행진곡’이 유명하죠. 첫 소절만 들으면 바로 ‘아~!’ 할 만큼 너무나 많이 들었던, 그러면서도 언제 들어도 반갑고 기분 좋아지는 작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