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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2월
평점 :
“저게 정말로 돌아가고 있는 거요? 잘 모르겠는데.” 마틴이 말했다.
우리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런던 아이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마틴 말이 옳았다.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A Long Way Down
아래로 떨어지는 길이 참 멀기도 멀다. 얼마나 멀었으면 90일이나 걸렸단 말인가. 원제도, 번역된 제목도 둘 다 책의 내용을 잘 드러낸다. 다만 표지는 원서의 표지가 더 좋은 것 같다. 아마 그 표지를 그대로 가져오기에는, 우리 정서와 좀 맞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원제라면 모를까, 번역된 제목과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연결하면 ‘자살’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직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니까.
닉 혼비의 평소 스타일과 사뭇 다르다는 이유로 한번 주목을 받았고, 무거운 삶의 문제를 유머 있게, 그러나 진중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확실히 이 책은 전작들과는 많이 다르다. 직업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빈둥거리는 게 태반이며, 음악이나 스포츠 등 취미에 미쳐있다. 영어로는 마니아, 우리말로는 광, 일본어로는 오타쿠. 오타쿠에 제일 가깝다. 철들지 않은 남성들의 다소 찌질해보이기까지한 생각, 행동, 말. 그의 전작 ‘어바웃 어 보이’는 휴 그랜트 주연의 영화로, ‘피버 피치’는 영화 ‘날 미치게 하는 남자’로, ‘하이 피델리티’는 책으로 읽고 존 쿠삭 주연의 영화를 보려 계획 중이다.
아스널에 미친 영국 남자가 레드삭스에 미친 미국 남자로 변화한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확실히 재미가 떨어졌다. 역시 닉 혼비의 소설은 영국 작가의, 영국식 감성에 의한, 영국식 유머를 위한 소설이다. 함부로 할리우드에 이식을 해서는 안 된다. ‘어바웃 어 보이’처럼 영국 배우가 연기하는 영국 작품이었으면 평가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배우 ‘조니 뎁’에 의해서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고 표지에 설명이 되어 있었지만 여태까지 영화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무산된 것 같다. 여러 가지 실무적인 문제가 있었겠지만 미국식으로 각색되었다면 분명히 이 작품의 ‘맛’을 잃었을 것이다.
작품 속의 네 명, 다들 죽을 이유가 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사는 환경도 모두 다른 그들은 생애 동안 서로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절대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 그들이 바로 그 날, 아래로 뛰어내리고자 하는 때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일단 ‘자살’을 ‘유예’한다.
이 책은 읽기 전에 사실 결말을 다 알고 출발한다. 당연히 이들은 자살하는 것보다 그래도 사는 결정을 할 것이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은 우리나라에서만 맞는 말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그 결말에 어떻게 도달하느냐다.
뭔가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있지는 않다. 잠시 그래 보이기는 했지만, 결국 제자리다. 그렇지만 90일 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들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돌아가고 있는 런던 아이처럼. (런던을 다녀오고 나서 이 책을 읽은 것이 다행이다. 정말 몇 년 전 런던에 갔을 때 실제 런던 아이를 보고 “저거 고장 난 거 아니냐?”며 우리끼리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직접 보기 전에는 타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보자 저것을 타면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길 것이기에 타지 않았던 그 때가 떠올랐다. 그러자 마지막 이 구절이 확 와 닿았다.)
보고 있는 사람마저 지치게 할 정도로 더디게 가던 런던 아이. 하지만 분명히 시간에 맞추어, 더 서두르지도 않고 더 늦추지도 않고 자기는 자기에게 맞는 속도로 가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 “쟤 죽은 거 아냐? 살아 있기는 하냐?” 수군대도 분명히 움직이고 있다.
안 죽고 90일 살았다. 뭐, 그래도 살만하데? 그럼 또 90일 더 살아봐? 보는 이에 따라서는 좀 김빠질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 막다른 곳에서 최후의 생각을 단 한 순간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가장 공감이 가는 결말이다. 죽는 것 말고 해결 방법을 모르겠는데, 진짜 힘들어서 차라리 다 놓아버리면 편해질 것 같은데, 독하게 마음먹고 죽을 각오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이게 또 그대로면 얼마나 좌절하게 될 것인가. 아마 이들 네 명이 결국 말리지 못한 그 사람은 자살 시도가 처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그를 보고 나서야 네 명은 깨닫는다. 나는, 저렇게 할 수 없어. 저렇게 할... 용기가 없어. 마지막 보루로 알고 있었던 것이 사실 아무 형태도 없는 흙덩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그들은, 이제 진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그냥 사는 수밖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 온 경험(그것도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갔다가 자신의 의지로 되돌아 온),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살을 결심했지만, 누군가는 ‘뭐 저런 이유로 죽냐?’ 하는 반응을, 누군가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았을까?’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남들이 어찌 보는지 몰라도, 일단 죽기로 결심을 했으면 그에게는 분명 감당하기 힘든 생(生)의 무게다. 떨어지기 직전, 팽팽하던 양팔 저울의 추가 1g만이라도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순간, 삶과 죽음 사이에서 결론이 난다. 누군가는 저울에 올렸던 삶을 내려놓을 것이고, 누군가는 죽음 위에 올라탈 것이다. 그리고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마도 단 1g에 불과한 ‘무언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