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분 정리의 힘 -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공간, 시간, 인맥 정리법
윤선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정리된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을 정리 정돈 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 것 같다. 이 책의 제목만 보고 덥썩 집어든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좀 놀랐던 사실은 나만 정리를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이었다는 사실이다.

 

책 커버의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면 '월급을 마약 같이 받으며 생활하던 직장인'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웃음이 나왔다. 월급받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장이다. 다 때려 치우고 싶다가도 월급을 생각하면 마치 마약으로 인해 고통을 잊는 것처럼, 정말 '뽕 맞은 것처럼' 힘든 일들을 잠시나마 희석시켜 가며 일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다만 이 사람이 대단한 것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10년 후 개인 사업자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단순하게 살아라'라는 책을 읽고 '정리' 관련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게 비교적 사회 생활 초기라는 점도 놀라웠다.

 

북커버 마지막에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과 회사 홈페이지등 관련 주소가 일목 요연하게 정리된 것을 보고, 어떤 창구로든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인상이 깊었다.

 

1. 미국에서 정리 컨설턴트는 공식적으로는 4200명이라고 한다. 지금은 더 늘었을지 줄었을지 모르지만 오래 전부터 보편화된 이유는 홈 오피스 규모가 전체 기업의 5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책과는 크게 상관없는 내용일지 모르지만 전체 기업의 절반이 일반 가정집에서 출발한다니, 미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예전부터 들어온 이야기가 새삼 실감이 났다. 그리고 우리 나라라면 어떨까, 당연히 어렵겠지, 그 이유는 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 오피스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예전에는 몰랐는데, 학생 때만 하더라도 출근하며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제일 멋있어 보였는데, 직장을 나와 개인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절실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마 본격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게 된 후 2년 조금 넘었을 무렵이 아닐까 싶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3년차가 고비라고 하지 않던가. 내 주변에서도 3년차때 가장 많이 힘들어하더라.

 

2. 저자가 '하루 15분'이라고 강조한 것은, 큰 맘 먹고 정리를 시작하다가는 결국 지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정리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샤워나 세수를 할 대 화장실의 일부분을 청소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따로 시간을 내워 청소하지 않아도 늘 깨끗한 화장실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도 마찬가지로, 저자는 매일 퇴근하면 물티슈 한 장으로 방 하나를 깨끗이 청소하는데, 스팀청소기만큼 깨끗하지는 않겠지만, 스팀청소기로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것보다는 물티슈로 날마다 청소하는 것이 훨씬 깨끗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응용하자면, 아침에 출근하게 되면 5분동안 먼저 책상을 닦는 습관부터 들이는 것이 좋다고. 내일부터 당장 응용해보아야겠다.

 

3. 작가는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했던 에피소드도 소개하는데, 방송에 등장한 '정리 못하는 여자'를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저장 강박(hoarding)이라고 한다. 갑자기, 선현경의 책이 떠올랐다. hoarder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하루에 하나씩 물건을 버리는 프로젝트를 책으로 꾸민 이야기. 아무래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수선한 잡동사니가 예술에 영감을 주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들에게는 비록 곧 버려야 될 물건일지라도, 그 물건에 얽힌 추억과 이런 저런 단상만으로도 책 한 권을 만들어낸 선현경처럼. 나 또한 정리가 절박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이지만, 막상 이 책에 등장하는 깨끗이 정리된 사진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인간미가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런 집에서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까? 조금 어수선해도 지금 내 방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 핑계인가?

 

4. 저자는 날마다 강의와 방송 촬영, 컨설팅 등으로 외부 활동이 많지만, 가지고 있는 양복은 계절마다 두 벌 뿐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오래, 깨끗하게 입기 위해서 소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아마도 매일매일 옷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이 일상의 행위 중 하나일 것이다. 나도 처음에 월급을 받으면서 이래저래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질렀는데, 개중에는 잘 입고 있는 것도 있지만, 몇 번 입지 않고 처박아둔 것도 상당히 많다. 화장품 샘플은 뭐, 말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고.

 

5. 이 책에서 가장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인맥 정리'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시간, 돈, 공간이 아니라 인맥을 정리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일단 저자의 몇 가지 주장을 내 나름대로 요약해 보면, 명함은 150장만 정리하되 새로운 명한 한 장을 추가해야 한다면 무조건 한 장을 빼라는 것이다. 그래야 명함도 정리되고 인맥도 정리된다. 물론 평소에 그동안 소원한 이들에게 문자나 전화를 틈틈이 해야 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후 1500명의 사람들에게 세미나 무로 초청을 알렸으나 답장은 고작 5명 뿐이었다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맥을 SNS를 통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의 경험상 SNS는 무료로 활용하면서도 가장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마케팅 도구이며,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명히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으며,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요즘 시대에 SNS를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SNS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으며, 심한 경우에는 정신과 상담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더 이상 드문 이야기가 아닌 요즘이다. 나는, 그래도 제대로 된 관계는 직접 얼굴을 보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 생기는 것이라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 SNS가 바쁜 현대인들의 인맥 관리에 조미료 정도의 도움은 줄 지 몰라도, 밥을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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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자점 코안도르
후카가와 요시히로 감독, 아오이 유우 외 출연 / 디에스미디어 / 2012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가고시마에서 빵가게 집 딸로 태어난 나츠메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우미를 찾아 도쿄의 양과자점 코안도르로 오게 된다. 그러나 나츠메가 오기 전에 우미는 코안도르를 그만두었고, 남자친구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한 나츠메는 코안도르에서 일을 하며 남자친구를 찾기 시작한다.

 

언젠가 남자친구와 함께 빵가게를 운영할 계획도 있었던 나츠메는, 코안도르 사람들 앞에서 집안 일을 돕던 실력으로 케이크를 뚝딱 만들어내지만, 형편없다는 혹평을 받고, 직접 맛 본 코안도르의 케이크 맛에 반해 일을 가르쳐달라도 셰프에게 간청하게 된다.

 

빵을 만드는 실력은 날로 성장하고, 그 가운데 다른 양과자점으로 옮긴 남자친구와 재회하지만, 그는 이미 새로운 여자친구가 있고, 고향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으며 자신은 외국으로 유학을 갈 것이라고 한다.

 

충격을 받은 나츠메는 빵 만들기에 전념하고, 그 동안 몇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후, 불의의 사고로 은둔하고 있던 전설의 파티셰를 복귀시키고, 그의 도움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패턴이 늘 사랑받는 경우는 많다. 음식, 그것도 달콤한 디저트가 화면 가득 펼쳐지고, 자기도 모르고 있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20대 초반의 여성, 그리고 비록 실연의 아픔을 겪을지언정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결말,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뻔히 예측하게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머리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

 

보면서 내내 떠올렸던 영화가 리즈 위더스푼의 '금발이 너무해'였다. 여주인공이 새롭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 분야가 공교롭게도 배신한 남자친구의 꿈이 있는 그 곳이었으며, 남자친구가 그 꿈에 대한 야망을 위해 여자친구를 떠나게 된다는 것도 똑같다. 맹목적일 정도로 남자친구에게 직진하는 태도와, 그 후 비록 가슴 아프지만 냉정하게 돌아서고 자신의 일에 집중한 후 자신에게 냉소적이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과정까지, 참 많이 닮았다.

 

비슷한 영화를 보고 감동받는 사람이라면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츠메는 너무 직선적이라서 조금 거북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아직 어리고, 시골에서 상경해 지나치게 순수한 나머지 계산적이거나 이해타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넘어갈 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2% 아쉽다는 생각도 드는데, 마지막에 몇 년 후 나츠메가 프랑스의 어느 요리 학교에서 열심히 빵을 굽는 장면, 그리고 좀 더 성숙하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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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전야 : 초회 한정판 (32p 화보집)
홍지영, 김강우 외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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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혼을 1주일 앞둔 4쌍 남녀의 이야기이다.

 

7년의 연애 기간, 이미 설렘은 없어지고 오랜 연애 기간 끝에 자연스레 결혼을 앞둔 남녀.

한 순간의 실수로 생긴 아이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는 만나지 얼마 안 된 남녀.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났지만 그 사이의 과거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녀.

나이 차이가 나는 우즈베키스탄 미녀와, 그녀와의 밤이 두려운 남자.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민해 볼, "이 결혼, 잘 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불안과

결혼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런 저런 사실들, 그동안 몰랐던 상대의 성격으로 인한 고민과 걱정을

현실적으로 잘 다룬 것 같다. 각 커플들의 사연이 전체적으로 사실적이라서 무리가 없고,

결혼이라는 공통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풀어가는 방법에서

각 커플, 커플 안의 각각의 개인들이 서로 다양하고, 또 그 이질성마저 실제에서도 사실이기에,

공감하면서 봤다.

 

어떤 커플이든지 남자 주인공이 굉장히 매력적이며(객관적인 실제 외모보다 더), 상대 여자를 많이 위해주고 배려해준다는 점에서 감독이 여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10점 만점짜리 영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5점짜리 영화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특정 사람들에게는 공감대가 크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현격히 적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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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당신에게 - 흔들리는 청춘에게 보내는 강금실의 인생성찰
강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 어려움을 이기려고 하거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몰두하는 그 무엇의 긍정적인 힘으로 상황을 극복하여 가는 편이 더 현명한 생활방법인 것 같다.

 

고등법원에 있던 시절, 남편의 구속과 어머니의 죽음, 돈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쓴 부분이다. 나는 이 정도로 똑똑한 사람은 뭔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합리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딱 맞는 해결책을 찾고 실행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과관계와 이치를 따지는 판사도 업무가 아닌 다른 일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 생각하여 답을 찾기보다 직접적인 답이 아닌 다른 것에 몰두하는 긍정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약간 생소했다.

 

세례를 받던 날, 나는 내가 무척 사랑받는 사람인 것이 느껴진다, 십자가를 짊어진 삶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했는데, 사실 지키기에 참 힘든 약속을 하였다. 세속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십자가를 내려놓고 제일 가벼워 보이는 것으로 골라가라고 했더니, 결국 자기 십자가를 다시 다 매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십자가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어떻게 가벼이 너끈하게 짊어지고 갈 것인가, 그 길에 대한 가르침이야말로 성경 말씀이 의미하는 것일 텐데, 받아들이고 실천 속에서 견뎌내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 삶의 성숙한 과정이라 하겠다.

 

세례를 받던 날, 무척 사랑받는 사람인 것이 느껴진다는 저 말은 세례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십자가의 고통, 어떻게 짊어질 것인가, 평생을 생각해야 할 화두이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 개혁과 같은 추상어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동떨어져 자기들끼리 어느 골방(바깥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창문을 닫아걸고 외면하는) 외진 곳에 따로 모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 숨쉬며 서로 만나서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이 일상의 모든 순간에, 모든 공간에 스며들어 체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은 민주주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독재정권 시절에야,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타는 목마름으로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하는 노랙 유행하였던 것이나, 우리나라가 민주국가임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요즘에 우리의 일상이 민주적이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약속을 잘 지키며 예의를 잊지 않는 것인지는, 각자가 계속 점검해 보고 고쳐 보아야 할 일이다.

 

 

문화를 우리가 걸쳐 입는 옷에 견준다면 수용시설에 클래식 음악이란 안 어울리고 사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재소자들에게 굳이 맞는 음악인지는 좀 더 꼼꼼히 따져볼 필요도 있겠으나, 문화는 덧입는 옷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삶의 바식이다. 여유가 있어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있는 수준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나를 표현하는가 하는 양식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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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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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이 세상에 '아이디어 창고'나 '소설의 보고'나 '베스트셀러가 묻힌 보물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허공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소설가를 찾아오는 듯하다. 전에는 아무 상광도 없던 두 가지 일이 합쳐지면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곧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뜻이었다. 일단 자기가 할 이야기의 내용을 알고 그것을 올바르게-어쨌든 자기 능력껏 올바르게-써놓으면 그때부터는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비판도 그들의 몫이다.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일 먼저 떠오른 낱말이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낱말을 써야 한다.'여기서 머뭇거리면서 이리저리 궁리하기 시작하면 곧 다른 낱말이 생각나겠지만-다른 낱말은 얼마든지 있으니까-그것은 처음 떠오른 낱말만큼 훌륭하지도 않겠거니와 여러분이 정말 말하려는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할 것이다.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 '부사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능동태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힘찬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전에도 글을 써보았다면 간단히 '그가 말했다'라고만 써놓아도 독자들은 그가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빠르게, 느리게, 즐겁게, 혹은 슬프게-다 알아차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쉬운 책에는 짧은 문단도 많고-그 중에는 한두 단어의 대화문으로 끝나는 문단도 더러 있고-하얀 공간도 많다. 그런 책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연하고 가볍다. 반면에 어려운 책은 수많은 생각과 서술과 묘사를 담고 있어 얼른 보기에도 견고하다. '꽉 찬' 느낌이 든다. 이렇게 문단이란 그 내용에 못지않게 생김새도 중요하다. 문단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도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웬의 속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연습을 중단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보위 씨가 정해준 시간 동안만 연습을 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나흘은 방과 후 30분씩, 그리고 주말에는 한 시간씩이었다. 오웬은 음계와 음표들을 모두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지만-기억력이나 폐활량이나 눈과 손의 협력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니까-그 단계를 뛰어넘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스스로 놀라면서 황홀경에 빠져 연주하는 모습은 끝내 한 번도 볼 수 없엇다. 그러다가 연습 시간만 끝나면 곧바로 색소폰을 케이스에 집어넣었고, 다음 레슨이나 연습 시간이 될 때까지는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 아들이 색소폰으로 진짜 공연을 하는 날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재능은 연습이라는 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에게서 어떤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몰두하게 마련이다. 여러분이 정말 독서와 창작을 좋아하고 또한 적성에도 맞는다면, 내가 권하는 정력적인 독서 및 창작 계획도-날마다 4~6시간-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간혹 나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이 있을 때(터무니없는 발상이지만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나는 두 가지가 있다고 대답한다.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 이만하면 괜찮은 대답이다. 질문을 적당히 물리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진실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건강한 신체를 가졌고 또한 나에게든 누구에게든 엄살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자신 만만한 여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지금껏 일을 계속할 수 있엇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뒤집어도 역시 옳다고 믿는다. 즉 글을 쓰면서 그 속에서 기쁨을 느꼈기에 건강과 가정 생활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야기의 내용이 독자 자신의 삶과 신념 체계를 반영하고 있을 때 독자는 이야기에 더욱더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무슨 도박꾼처럼 시장성을 계산하여 이같은 인과 관계를 계획적으로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쓰되 그 속에 생명을 불어넣고, 삶이나 우정이나 인간 관계나 성이나 일 등에 대하여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섞어넣어 독특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일이 중요하다. 가령 존 그리샴의 도피 소설<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The Firm>를 살펴보자. 이 이야기는 어느 젊은 변호사가 턱없이 좋은 조건으로 어떤 일을 맡았는데 아니나다를까, 마피아를 돕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아슬아슬하고 흡인력 있고 빠르게 진행되는 이 소설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독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젊은 변호사가 직면한 도덕적 딜레마였던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리샴은 한 번도 마피아를 도와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그리고 이렇게 순수한 허구야말로 소설가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그리샴도 한때는 젊은 변호사였다. 그는 그 시절에 겪었던 투쟁들을 하나도 잊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업 세계에서 변호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경제적 함정과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몸소 적진을 정찰하고 돌아와서 상세한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자기가 잘 아는 진실을 말했다. 단지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는 이 책으로 그 많은 돈을 벌어들일 자격이 충분했다. 여러분도 자기가 잘 아는 것들을 통하여 독특한 작가가 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마침내 Z지점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 서술(narration), 독자에게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묘사(description),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말을 통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대화(dialogue)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플롯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대답은-적어도 내 대답은-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플롯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첫째,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설령 합리적인 예방책이나 신중한 계획 등을 포함시키더라도) 플롯 따위는 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둘째, 플롯은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작가가 할 일은 그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 (그리고 물론 그것을 받아적는) 것뿐이다.

 

내가 소설을 쓰면서 등장 인물의 모습을 반드시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은 많지 않았다. 용모나 체격이나 옷차림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굳이 여드름이나 스커트에 대해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고등학교 때 멍청이 두어 명을 만났던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았던 멍청이의 모습을 묘사해버린다면 여러분이 보았던 멍청이의 모습은 끼여들 자리가 없어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원하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유대감이 다소 허물어진다.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나야 한다.

 

대화문을 잘 쓰는 작가들은 대개 남들과 어울리면서 말하고 듣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특히 듣기가 중요한데,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억양이나 리듬이나 사투리나 속어 따위를 주워들어야 하는 것이다. 소설의 다른 요소들이 모두 그렇듯이, 좋은 대화문의 비결도 진실이다. 등장 인물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솔직하게 쓸 때 여러분은 상당량의 비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헨리 제임스 또는 제인 오스틴처럼 사교계의 멋쟁이나 말쑥한 대학생들에 대해서만 쓰는 작가였다면 욕설이나 상소리를 쓸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쓴 책이 학교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어느 독시란 기독교인에게서 내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곳에서는 내가 벌어들인 수백만 달러의 돈으로도 물 한 잔조차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친절한 편지를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점잖은 사람들 속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나는 미국의 중하류 계층에서 자라났고, 따라서 내가 가장 솔직하고 자신있게 묘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부류의 사람들이다. 말은 (추하든 아름답든) 성격의 지표다. 그리도 때로는 답답한 방 안에 불어드는 한 가닥 신선한 바람이 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소설 속에 나오는 말이 점잖으냐 상스러우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들리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작품이 진실하게 들리기를 바란다면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입을 다물고 남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이다.

 

<미저리>에서 폴 셸던을 감금하는 애니 윌크스는 우리가 보기에는 정신병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보기에는 지극히 멀쩡하고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자의 몸으로 '지독한 말썽꾸러기'들이 우글거리는 이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나므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영웅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몹시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나는 (이를테면 '그날 애니는 마음이 울적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라든지 '그날 애니는 유난히 즐거어 보였다'처럼) 직접적인 표현은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말을 굳이 해야 한다면 나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지저분한 머리를 하고 혼자 묵묵히 앉아 마치 강박감에 사로잡힌 듯 케이크와 사탕을 정신없이 집어먹는 여자를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것, 그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애니가 조울증 때문에 울적해진 상태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 그것이 성공적인 작품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잠시나마 애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들 수 있다면-그녀의 광기를 이해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나는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일체감마저 느낄 수 있는 등장 인물을 창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애니 윌크스는 그만큼 현시에 가까운 인물이 되고, 따라서 더욱 무시무시해진다.

 

'주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것들은 다만 나의 삶과 생각에서 비롯되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비롯되고, 또한 남편으로, 아버지로, 작가로, 또 연인으로 살아온 나의 역할에서 비롯된 관심사들일 뿐이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될 때, 그리하여 한 손을 베개 밑에 넣고 어둠 속을 들여다볼 때 나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문제들일 뿐이다. 처음부터 이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 규칙에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같은 우화 소설 뿐이다(나는 <동물 농장>의 경우에도 스토리의 아이디어가 먼저 떠올랐던 게 아닐가 짐작하고 있다.). 

 

배경 스토리에 관하여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a)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b) 대개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내용은 넣어야겠지만 자기 도취에 빠져 따분한 내용까지 마구 포함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창작 교실이나 세미나는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책도 그렇고, 글쓰기에 대한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교훈들은 스스로 찾아 익혀야 한다. 이런 교훈을 얻는 것은 서재문을 닫고 있을 떄가 거의 대부분이다. 물론 창작 교실에서의 토론도 지적인 자극을 주고 흥미진진할 떄가 많지만, 글쓰기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하고 곁길로 빠지는 일도 많다는 게 문제다.

 

'당신은 돈 때문에 일합니까?' 대답은 '아니오'다. 지금도 그렇고 전에도 그랬다. 물론 소설을 써서 꽤 많은 돈을 모은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옮겨놓은 낱말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 줄 모르고 할 수 있다. 글쓰기라는 것이 신념에 따른 행동일 때도 몇 번 있었다. 그것은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었다. 이 책의 후반부도 그러 정신으로 썼다. 우리가 어렸을 때 쓰던 표현을 빌리자면 창자를 쥐어짜면서 썼다. 창작이 곧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창작이 삶을 되찾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지막 판단을 내린 사람은 (내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흔히 그랬듯이) 내가 아니라 태비였다. 나도 가끔은 그녀에게 그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왜냐하면 결혼 생활의 혜택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여 머뭇거릴 때 거뜬히 판가름을 내준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이 부분이 가장 쓸모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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