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전
이시이 유야 감독, 오다기리 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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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은 나이에 평생 할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야.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잖아.

 

사회성이 떨어지는 주인공을 위로하며 하숙집 할머니가 한 말.

나에게 있어서 평생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아니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평생 할 일을 알고 있다고 확신했는데 그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생각보다 평생 할 일을 젊은 나이에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에게만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이 길 아니면 안 된다고 나 혼자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과연 남들은 어떤지?

 

사전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리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인지 몰랐다. 꼼꼼하고 성실한 주인공에게는 딱인 일이기도 하다.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도 어쩌면 이 일에 천직인 요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타인과 소통하는 데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면 이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테니까. 우스운 것이 이런 사람이 처음에는 영업부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전편집부원 중 한 사람이 퇴사하여 자리가 비지 않았더라면 그는 계속 적성에 맞지 않는 곳에 있었겠지. 이런 식으로 우연이 인연이 될 수도 있구나. 아내의 병간호로 인해 퇴사하게 되는 직원은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심야식당의 마스터였다!

 

소극적인 주인공이라서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제대로 표현도 하지 못한다. 미야자키 아오이는 발랄하고 순수한 느낌이었는데 여기서는 당차면서도 처연한 느낌? 웃는 얼굴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주인공답게 사랑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동요가 있었고, 사랑한다는 말을 한 주인공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사랑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내가 느끼고 있는 정의와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생각하다가

 

이루어지게 되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하고 마저 정의를 보게 되면, 뒤의 절반쯤은 수긍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대도해. 수많은 언어의 바다. 이 사전은 표준어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속어나 은어까지도 포함한다. '대박' '후지다' '멘붕' 등. 보면서 10년이 넘는 사전 편찬 기간동안 그런 속어나 은어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 될 것이며, 매번 교정을 하면서 동시에 속어나 은어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니 대체 이것이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어차피 사전이 나옴과 동시에 현재의 말을 포함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거야 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인데, 한편으로는 한 군데에 몰입하게 되면 끝장을 보고 마는 일본인들의 국민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15년만에 작업은 끝을 내고, 출판 기념회에서 마지메를 비롯한 편집부 사람들은 바로 다음날부터 개정판 작업에 들어가기로 한다. 하이볼 한 잔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심야식당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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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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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서른 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일 얘기로 미팅하는 자리에 엄마뻘인 여성이 있었다. 무슨 화제가 나와서 내가 그렇게 대답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식이 없는 인생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내 얼굴을 보며, 조금 화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꼭 낳고 싶어질 거예요."

반론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 상대는 나보다 나이를 훨씬 많이 먹었다. 과거를 돌아보고 발언하는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또다른 여성은 젊은 내게 이런 것을 가르쳐주었다. 일을 잘하는 멋진 사람으로 열두 살 정도 연상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인생에서 아무것도 후회하는 건 없는데, 그래도 있죠, 자식만큼은 낳았더라면 좋았을 걸 싶더라고."

그떄도 역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지금도 모르겠다. 숙연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것만 기억한다.

 

만약 엄마가 되었더라면  中

 

'여자라는 생물'에 대한 '고찰'이라고 하기에 이 책은 좀 가볍다. 그저 일기장에 끄적인 수준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틀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작가의 수준이 그 정도라고 폄하해야 할 부분은 절대 아니다. 이미 다른 에세이와 수많은 만화들에서 세심하게 여성들의 삶과 심리를 묘사해왔기에 그런 표현은 가혹한 것 같고, 다만, 이 작가의 특성상, 본인이 겪은 삶의 작은 떨림이나 기척을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경험의 부족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딸이자 연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의 이야기들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40대의 작가의 나이로서는 아직 아니지만, 어쨌든 상상으로든 누군가의 할머니로서의 이야기가 덧붙여졌다면, '여자라는 생물'은 좀 더 풍부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나 또한 꼭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자식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쪽이지만, 직업에 따라서는 분명히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경험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스다 미리의 본문 중에 나오는 저 일화의 두 선배 여성들은 단순히 삶에서의 공백을 느껴서인지는 모르지만, 마스다 미리와 같은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그 이전과는 다르게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도의 세심함을 가진 만화가이자 수필가라면, 분명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는 생활에 대해서는 더 수준 높은 생각을 보여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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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 [초특가판]
기타 (DVD)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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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고 죽는 건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고민하지 말아요. 언젠가 신께서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날이 곧 올 겁니다.

인생이 생각대로 안 풀려도 신께서 판결하실 거요.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이에요. 불행은 물에 던진 그물같아 끌어당기면 커지지만 막상 꺼내보면 아무 것도 없어요.

 

2. 감자 먹고 싶다. 소금 뿌려서. 먹은 지 오래 되었네.

 

3. 오드리 헵번은 특히 이 영화에서 눈이 부시다.

 

4. 볼거리가 많고 눈이 즐거운 영화. 제정 러시아의 화려한 모습, 전쟁 장면, 그 당시 풍습, 눈 덮인 풍경. 러시아 여행가고 싶다.

 

5. 톨스토이의 위대한 소설을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오드리 헵번의 영화를 선택했는데 역시 방대한 원작을 몇 시간만에 압축하는 것은 무리인 듯.

 

"가장 어렵지만 필수적인 것은 삶이 괴로워도 사랑하는 것이다. 삶이 전부이기에 삶은 신이다, 생을 사랑하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대목이자 이 영화의 자막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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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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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中

 

이 에세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하루키는 '일상의 미학화'를 천성적으로 깨우치고 있는 사람 같다. 어제와 동일한 오늘, 내일과 동일한 자본주의 세계의 일상은 기본적으로 반복과 관습에 의해 유지된다.

일정한 규율이나 리듬으로 체질화된 이 삶의 궤도는 사회적인 제도가 부여한 것이든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이든 간에 타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형태를 우리에게 부과한다. 이런 세계에서의 삶이란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

대도시 아파트의 밤을 밝히는 텔레빈전이 놓여 있는 위치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베란다로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불빛의 위치가 전부 동일한 것을 보고 경악과 공포, 환멸과 공허에 사로잡히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웃집에서 사용하는 냉장고를, 세탁기를, 주방용 세트를, 심지어 콘돔 기구를 사용할 뿐이다. 제 아무리 독창적이고 고유한 삶을 살고 있다고 치부하더라고 그것은 환상일 따름이다.

하루키는 누구보다도 우리가 이러한 일상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루키라고 해서 왜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없겠는가.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으로 이어지는 잦은 여행은 이러한 욕망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그러한 욕망을 다스릴 줄 안다. 즉 삶의 궤도나 일상의 그물을 완전히 이탈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채워나갈 줄 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는 매일매일 진행되는 자신의 일상 자체를 천천히 즐기면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리듬에 약간의 변화를 가미하여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창조할 줄 아는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제목에 끌렸다. 그리고 이 제목에 딱 어울리는 하루키의 에세이들이면서 동시에 이 에세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저 추천의 말이 바로 내가 이 수필집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수필집을 많이도 냈고, 또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하루키의 글들 중, 여기에 실린 것들은 하루키가 비교적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읽은 글들에 비해서는 생기발랄하다는 느낌도 들고, 약간 정제되지 않는 날것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본인과 가족, 주변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지킬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몇 가지의 아이디어들은 낯이 익은 경우가 좀 있는데, 최근의 수필집에서 비슷한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좀 있었던 것 같다. 사인회를 하지 않는다거나 쌍둥이 여자와 데이트하고 싶다는 내용이나 랑게르한스섬에서 봄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부분들이다. 몇 십년에 걸친 하루키라는 사람의 인물의 변화, 혹은 불변을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1.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여러 번에 걸쳐 쓰는 형식을 처음 보았는데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지하철과 차표 분실 공포증', '지하철 표 간수의 묘책' '차표를 분실했을 때 손해를 줄이는 비결' 이렇게 세 편의 수필이 연이어 나온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지하철 표를 자주 잃어버리는 자신에 대해 소개하고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그 대책으로 귀에다가 표를 보관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었으며,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 방법을 중단하는 대신, 잃어버렸을 때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어디를 가든 한 구간 요금의 표만 사고 목적지에 도착해 초과 요금을 지불하기로 했다며 완결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마치 만화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느낌으로 굉장히 즐거웠다.

 

2. '나는 이사하기를 좋아한다' '전학생이 부러웠던 초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 형식인데, 이 것들은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좀 재미있었던 게, 어린 시절 단 2번 밖에, 그것도 1킬로미터의 거리에 불과한 전학만을 경험하게 된 저자가 성인이 되어 이웃과의 교제, 인간관계, 그 밖의 온갖 일상생활에서의 자질구레한 일을 한수간에 소멸시켜버리는 이사의 쾌감에 빠지게 되어 굉장히 자주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고 그래서인지 동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라온 친구 사이' 따위가 없어서 매우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내 터전이 자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싫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정말 나에게 딱 맞는 환경이 생긴다면 평생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살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치안이 잘 되어 있고, 조용하며, 동네에 맛집이 많고, 교통이 편리한 곳. 어디 없나?

 

3. '지금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한때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현재의 폐쇄된 사회 상황이 무척 걱정이 된다. 옆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생운동이 절정에 이른 시절 대학생이었던 저자는 혈기왕성한 세대였고, 대학 시절 결혼한 아내와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에 부모님께 빌린 약간의 돈으로 재즈 카페를 운영했던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마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것 같다. 저자 스스로 돈은 벌어야 하지만, 취직은 하기 싫었던 그 때 스스로 장사를 시작했고, 그 시절 틈틈이 쓰기 시작한 글로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의 선택 조차 현재 일본 젊은이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고, 작가는 내심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안의 문장을 보면. 어디 일본 뿐일까. 이 수필을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과 한국은 참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4.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제목을 처음 볼 때부터 이 책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여러 가지 일들로 불안하고 걱정해하고 있는 가운데, 사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고민들은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보았자 진전이 없으니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기운을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알겠는데 제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세대에 대한 메시지나 제안이나 불만 같은 것은 특별히 없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나이를 먹어주기 바란다. 나도 그런 식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남들과 같은 정도의 중년이 되었으니까 말이다'라는 부분에서는 안도감도 들었다. 비록 순간의 위안에 불과하더라도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나이를 먹다 보면 중년의 하루키를 목표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5. '작가는 소설을 쓴다-그것이 일이다-비평가는 그것에 대해 비평을 쓴다-그것도 일이다-그리고 하루가 끝난다. 여러 입장에 있는 인간이 각자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식사를 하고(혹은 혼자 식사를 하고) 잠을 잔다. 그것이 세계라는 것이다.' 비평이나 비평가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냉정하게도 보이고 어떻게 보면 자기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드는데 오랜 시간 동안 하루키가 최고의 작가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마라톤을 비롯한 체력 관리, 규칙적이면서도 단순한 생활, 그리고 이렇게 비판에 주눅들지 않는 자세인 것 같다.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명백히 헛다리를 짚은 것도 있고, 노골적인 개인 공격을 한 것도 있으며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썼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비평도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모든 사정을 다 감안하더라도 작가가 비평을 비평하거나, 그것에 대해서 어떤 변명 비슷한 것을 늘어놓거나 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인상깊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뒤에서 또 등장하는데, 서비스하는 쪽에서는 커피 한 잔 내는 것조차 참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뜨거워도 식어도 맛이 없으며, 중간 온도를 맞춰도 크림을 넣으면 또 온도가 변한다. 게다가 좋아하는 데도 개인차가 있다고. 어떤 손님은 커피가 뜨거워 맛을 모르겠다고, 어떤 손님은 식었으니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말대꾸를 하는 대신 사과하고 즉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프로라고 쓰고 있다. 지금은 더 이상 커피를 서비스하고 있지는 않지만, 커피 한 잔에도 갖가지 반응이 있는데 소설을 받아들이는 것도 가지가지일 것이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등단 후 독자들에 의한, 비평가들에 의한, 이런 저런 반응 때문에 한동안은 고민했을 것이고 나름대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6.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손에 넣고 있다는 건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면 자꾸 화가 난다.' 체질적으로 살이 찌기 때문에 세심하게 몸무게 관리를 하는 상황에서 쓴 글이다. 누군가는 하루키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의 하루키라는 작가가 있기까지는 물론 작가 자신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노력한다고 전부 하루키와 같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노력을 아무리 하더라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이 노력해서 손에 넣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이 더 힘들지 않을까?

 

7. '뜨거운 커피 위에 흰 크림이 푸짐하게 얹혀 있고 럼주의 향기가 탁하고 코를 찌른다. 그리고 크림과 커피와 럼주의 향기가 일체가 되어서 구수하게 누른 듯한 냄새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문장 읽기만 해도 당장 오스트리아나 독일로 날아가서 작가가 설명한 '럼주가 들어간 커피'를 먹고 싶어진다.

 

8.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는 것, 산뜻한 면 냄새가 나는 흰 러닝셔츠를 머리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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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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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많은 사람들이 빠져 들 수밖에 없는 매력은 무엇일까?

 

옮긴이의 말처럼, 추리 소설의 세 가지 요소 <Who done it?, How done it?, Why done it?> 중에서 <Why> 쪽으로 무게 중심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뜻밖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가 싶더니 다시금 놀라운 반전과 반전으로 거듭 독자를 내리치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이 소설의 소재로 쓰인 청소년 범죄와 고령화 사회 같은 현대 일본사회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전부 때문에 히가시고 게이고에게 빠진 것 같다. 살인 사건,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소설의 경우 현실성의 결여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읽으면서 소름이 끼칠 때까 많은 게, 살인 자체의 잔혹성보다도 그 이면의 사람들의 심리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무섭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경우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늘어나는 청소년 범죄, 오냐오냐 자식을 키우는 모습, 일본은 말할 것도 없겠고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등장인물과 장소를 대한민국의 어느 중산층으로 바꿔놓아도 이질감이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세 가족이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바로 그 가가 형사 가족, 가가의 사촌인 마쓰미야 가족, 그리고 범인 나오미의 가족. 가가 형사의 말대로 이 세상에 '평범한' 가정이라는 건 없는지도 모른다. 가가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준 상처를 평생 곱씹었고, 마쓰미야는 사생아로 친아버지의 성조차 물려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외삼촌의 든든한 후원과 사랑을 받았고, 외삼촌인 가가의 아버지는 여동생의 가족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며 아들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어느 정도는 보상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나오미의 가족이야말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사소한 문제들을 대충 얼버무리고 뒤로 미루면서 곪고 곪아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역작으로 꼽히는 '악의'에서도 그렇고, 이 작품에서도 그렇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일정한 것 같다. "아버지랑 엄마가 나쁜 새끼야."라고 말하는 나오미와 뚜렷한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른 '악의'의 노노구치가 겹쳐지고, 어린 시절의 노노구치의 일화는 늙은 어머니를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나오미의 부모와 할머니를 함부로 대했던 나오미를 전혀 나무라지 않았던 일들과 연결된다.

 

사소한 벌어짐이 나중에는 얼마나 큰 틈을 만들게 되는가. '붉은 손가락'의 이야기는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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