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 & 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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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위대한 심리학자 칼 융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라.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유명한 교육자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독창성이야말로 행복하고 충만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시키는 필수요소라고 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만든 신조어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거의 '독창성'의 반대 개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라이프스타일이란 쇼핑센터에서 사들이는 물건, 즉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공자에서 틀에 넣고 찍어낸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행복에 만족할 수 있을까?

 

직장 동료를 만나도, 친구를 만나도 어제와 똑같은 이야기,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만 주고받는다. LA 다저스의 4번 타자가 병살타를 친 이야기, 어느 유명 스타가 이혼한 이야기, 인기 드라마 주인공들의 패션에 대한 이야기... 그 속에 정작 '너'와 '나'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대화의 탈을 쓴 이 무수한 잡담은 각자가 짊어진 가방을 더 무겁게 할 뿐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마이클 아가일은 행복의 심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질적으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삶의 조건은 인간관계, 일, 여가,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세 분야에서 만족의 경지에 이르는 데 있어 절대적 혹은 상대적 부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융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 즉 30대 중반을 넘긴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삶을 종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었다. 그들이 병들게 된 것은 현존하는 종교들이 선사하는 깨우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을 되찾지 못한 환자들 가운데 온전히 치유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지닌 것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다. 일은 그 자체로도 즐거울 뿐 아니라 그것이 쌓여 점차 우리 존재를 완성하는 기쁨의 근원이 된다."

 

삶에 대한 메시지 하나라도 붙잡으려면 오히려 삶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삶은 오직 살아봐야만 풀 수 있는 수수꼐끼로 가득 차 있다. "삶이 무엇인지는 삶의 뒤편에서 봐야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삶은 반드시 앞을 향해 살아나가야 한다."라고 했던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사실 도구의 수명과 직업의 수명이 같아지는 현상은 늘 있어 왔다. 물레의 달인은 방직기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맷돌을 만들던 사람은 믹서가 발명되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만일 당신이 어느 특정한 도구로 경력을 쌓아왔다면 당신은 그 도구의 만수무강을 기도해야 할 것이다. 결국 도구가 아닌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다면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당신의 재능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현재 당신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건-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아니면 자기 집 지하 작업실이든-당신의 주인은 오직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유일한 고용주는 바로 당신 자신이며, 당신은 '나'라는 이름의 사업체다. 그리고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종합적인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병이나 깡통, 신문 따위를 재활용할 수 있는데, '나'라고 재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직업세계라는 이 변덕스런 바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을 재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즉, 가지고 있는 가방들을 다시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당신의 직업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만큼 안정적이라 할지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삶과 일을 다시 꾸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엇이든 숙달되는 순간부터 싫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중년을 어떻게 묘사하든 인생의 절반 무렵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짐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시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자문한다.

"지금쯤은 그래도 뭔가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그동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인생에는 미리 설치된 무대도 전환점도, 그리고 예측 가능한 중년의 위기 같은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개 예기치 않는 사고나 개인적인 경험, 경제 상황, 그리고 살고 있는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사람들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목적과 성공의 매 단계를 드나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삶의 한계와 가능성을 좀 더 요령껏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칼 융은 우리가 40대나 50대 혹은 그 이상이 되면 자신의 삶이 균형을 잃었다는 생각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느 특정 분야에만 시간을 쏟아 붓고 나머지 분야는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제 '미지의 자아'를 발견해야 할 떄가 된 것이다.

 

삶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행복을 찾아 움켜쥐는 것부터가 애초에 글러먹은 시도일 뿐이다. 행복은 붙잡자마자 시들기 때문이다. 사실 가방을 다시 꾸리는 작업도 그렇다. 그것은 당신이 계속해서 탐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베이스캠프 같다.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당신 안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17세기 철학자 베네딕트 스피노자는 중년에 가방을 다시 꾸리는 일에 열중했다. 그는 우선 흔히 사람들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즉, 부와 명예 그리고 오감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쏟았던 자신의 노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것들이 매력은 있지만 결코 진정한 행복은 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 커다란 발견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행복이나 불행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의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순간의 매력이나 일시적인 가치를 사랑한다면 행복 또한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좀 더 지속적인 가치를 사랑한다면 행복 또한 좀 더 오래갈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다시 꾸린 내 가방 속에는 철학 공부에 대한 열망에 다시 불을 비피는 것도 들어 있었다. 그 공부에 몰두하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다행스럽게도(또 놀랍게도)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래서 책을 마지막으로 손보고 있는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 일을그만두고 철학박사 학위를 따겠다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대학원과 그 안에 기다리고 있는 온갖 도전이 눈앞에 어렴풋이 떠오른다. 동급생들보다 거의 스무 살은 더 나이 먹었을 누군가의 모습이. 길을 잃을까 두렵지 않으냐고? 물론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 기회를 그냥 보내버리고 난 뒤 남은 생애 동안 내내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만약 학위를 딴다면 그 학위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은 모른다. 솔직히 첫 학기를 잘 통과할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다가올 변화에 가슴 떨리고 앞으로의 여행에 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을 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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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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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아마도 에브리맨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 한 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이 문장일 것이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마치 작은 돌멩이가 연못에 던지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돌멩이가 그리는 동심원이 커지는 느낌이다. 나는 정말 아마추어일 뿐인가, 적어도 내가 성공하고 싶은 분야에서 나는 영영 아마추어일 것인가, 평생 아마추어로 살 것인가.

 

 

랜디와 로니는 그의 가장 깊은 죄책감의 근원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자신의 행동을 그들에게 해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청년이었을 때는 여러 번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때는 둘다 너무 젊고 분노가 강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나이가 들고 분노가 강해 이해 못했다. 사실 이해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외려 그가 이해할 수 없었다-그들이 지금까지도 집요하고 또 진지하게 격분하면서 그를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그의 일을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엇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변함없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자세는 그럼 용서받을 만한 것인가? 아니면 그 결과가 덜 해로운가? 그는 이혼을 하여 가족을 깬 미국 남자 수백만 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다고 그가 그들의 어머니를 떄렸는가? 그들을 때렸는가? 그들의 어머니를 부양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그들을 부양하지 못했는가?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나한테 한 번이라도 돈을 구걸해야 했던 적이 있는가? 내가 한 번이라도 모질었던 적이 있는가?  할 수 있는 제안이라면 다 하지 않았던가? 무엇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가 할 수 없었던 일, 즉 그들의 어머니와 결혼한 채로 계속 사는 것 외에 달리 무슨 일을 했으면 그들이 나를 받아들여주었을까? 그들이 그것을 이해해주느냐 아니면 이해해주지 않느냐, 둘 중의 하나였다-그러나 그에게는(그리고 그들에게도) 슬픈 일이었지만, 그들은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또 그들이 잃은 그 가족을 그도 잃었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 자신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틀림없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똑같이 슬픈 일이었다. 그에게도 슬픔이 있었고, 가책이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방어하려고 푸가처럼 이어지는 질문들을 던지고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그런 슬픔과 가책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소리나는 책에서 읽힌 부분이다. 삶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회한이 담긴 부분이라는 DJ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 또한 이 구절을 읽었으나, 내가 느낀 감정은 좀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를 둘까지 낳고도 자신의 어머니와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하였으나 두 번째 결혼마저 깨고 스물 여섯 살이나 어린, 20대의 젊은 외국 모델과 바람을 피워 세 번째 결혼을 감행한 아버지에게 경멸 이외의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평생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는 생각이 들고, 단 한번도 이성이 감성을 누른 적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구절이야말로 자기 합리화, 내지는 죽은 날을 앞둔, 외롭고 쓸쓸한 지점이 바닥까지 내려가서야 그제서야 아들들에게 위로받고 싶어하는 이기심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직 내가 어린 탓일까. 가정 폭력도 하지 않았고, 이혼한 전처와 두 아들에 대한 부양 의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이 사람은 충분히 위로받아야 마땅한가. 살면서 나 자신을 영위하기도 힘든 세상, 아직 어려서 능력이 없는 누군가가 세상을 살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함없이 지원해주었다는 사실로도 그 사람은 동정받아야 할까. 나이를 먹으면 좀 더 잘 이해하게 될까.

 

그래, 그는 세 번 이혼했다. 한때 헌신보다는 비행과 실수로 더 유명했던 연쇄 남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계속 혼자 감당해 나가야 할 터였다. 이제부터는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 자신이 고지식하다고 생각했던 이십대에도, 그리고 오십대에 들어설 떄까지도 그는 그가 괜찮게 생각하는 여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술학교에 들어갈 떄부터 그런 관심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오로지 그것만이 그의 운명인 듯했다. 그러다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예측하지 못했고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 한 세기의 사분의 삼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는데, 이제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생활방식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이제 생산적인 남성의 매력도 소유하지 못했고, 남성적인 기쁨이 싹트게 할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너무 강렬하게 갈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전에는 혼자 있을 때면 잠시, 사라진 구성요소들이 기적처럼 돌아와 그를 다시 거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주고 그의 지배를 재확인해줄 것이라고, 실수로 그에게서 잘려나간 권리가 회복되어 불과 몇 년 전에 중단되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야야 할 것 같았다.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햇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낸시의 어머니와 함께 만을 헤엄치던 남자는 자신이 가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꾼 적이 없는 곳에 이르렀다. 이제 망각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지금이 그 먼 미래였다.

 

소리나는 책에서 읽어 준 두번째 부분이다. 책 결말에 가까운 부분이며, 이 사람의 인생을 요약해 놓은 부분이다. 주인공은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에브리맨은 주인공 아버지가 운영했던 보석 가게 이름이지만, 여기에서는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모든 사람을 이야기한다. 읽으면서 마음이 싸하게 아파오기는 하지만, 아직 이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내 나이가 젊은 것 같다. 아마도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일 텐데, 이런 느낌 또한 지금 여든을 넘긴 작가가 꽤 오래 전부터 느껴왔을 것이고, 지금도 완벽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문장을 쓰면서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썼을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썼을까? 아니면 담담하게?

 

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노년이란 참 쓸쓸한 것 같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닥쳐 올 일들이지만, 어차피 후회를 할 것이라면, 최대한 그 후회는 줄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도록 사는 것이 좋지 않겠나. 내가 꼽은 이 책의 문장은 바로 이 것이다.

 

'네 손이 아직 따뜻할 때 주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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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걸린 사랑
케빈 리마 감독, 패트릭 뎀시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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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매 주 일요일 아침마다 봤던 디즈니 만화동산의 추억과

수많은 디즈니 비디오의 공주들에 대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

 

환상 속에서 그렇게나 우아하던 장면들이 왜 현실 세계에 오니까 우스워지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럽다.

 

에이미 아담스는 정말 동화 속 공주가 살아온 것 같고, 패트릭 뎀시는 약간 식상하긴 해도 냉소적인 뉴욕 훈남 역이 딱 맞는다. 제임스 마스던도 수잔 서랜든도 적역의 캐스팅이다.

 

아마 찍으면서 배우들도 많이 웃었을 것 같고, 즐거운 기분이 영화 안팎으로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두 시간 동안 행복하려면 한번쯤 볼 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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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미하엘라 비저 지음, 권세훈 옮김, 이르멜라 샤우츠 그림 / 지식채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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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 일단 등장하는 총 24가지의 직업을 빠르게 훑어 볼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실력있는 삽화가의 그림은 단 두 장에 걸쳐져 있지만 두 장 이상의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적으로도 흥미롭고, 당시 유럽 사회에 대해 자세히는 몰라도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2. 등장하는 직업의 목록.

이동변소꾼

만능식도락가

개미번데기수집상

유모

유랑가수

고래수염처리공

오줌세탁부

커피냄새탐지원

터키인시종, 궁정흑인, 섬인디언

숯쟁이

촛불관리인

석판인쇄공

넝마주이

대리석구슬제조공

'로사리오의 묵주'제조공ㆍ호박세공인

무면허의사

지하관우편배달부

말장수

모래장수

사형집행인

가마꾼

실루엣화가

순회설교자

양봉가

 

3. 수많은 직업들을 한 책에 담다 보니 깊이가 떨어지기도 한다. 작가가 직접 서문에 밝혔듯이 이 책은 어떤 직업이 어떤 일을 하고 솜씨가 어땠고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에 집중한다.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된 직업들은, 그 사회가 변화함으로써 필요가 없어지고, 결국 사라진다. 유럽의 넝마주이는 1450년경 금속활자의 발명과 함께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종이 원료로 이용되는 넝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생겨났고, 아마도 분리수거가 자리잡고, 종이의 원료가 다양해지며, 종이 이외의 다른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사라졌을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이동변소꾼 또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이었지만, 화장실이 발달하면서 사라졌을 것이다.

 

4. 특히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지하관우편배달부. 지상이 아닌 지하를 통해 우편 뿐 아니라 일종의 택배도 하였던 것 같은데, 그럼 그 당시에 만들어진 지하관들은 전부 지금 어떻게 되었나, 하고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쉬운 게 이 책에서는 그런 것까지는 언급해주지 않는다. 이 정도는 굳이 도서관에서 사료를 뒤질 필요 없이, 현재 독일에 거주하는 작가가 쉽게 말해줄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아서이다. 한 가지 든 생각이,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모 프로그램에서 독일인이 자국의 특이한 물건들에 대해 소개한 것 중, 맥주 공장에서 파이프를 통해 경기장까지 맥주를 운반하여 사람들이 경기를 보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한다는 기억이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긴 파이프였나, 가장 오래된 파이프였나, 아무튼 가장 ~한 파이프였다는 것만 기억이 나는데 보면서 내내 저 파이프는 대체 언제 만든 것일까,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갔을까, 아무리 수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사람들에게 맥주를 먹이기 위해서 저런 파이프를 만든다는 것은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 하고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뒤늦게 아, 혹시 중세 때 우편배달을 위해 만들어진 지하관들이 현재 저렇게 쓰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방송에서도 얘기해주지 않아서 알 길은 없지만.

 

5. 이런 류의 책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참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요즘은 단순히 '재미'로만 넘기지 못하는 것 같다. 한때는 지구상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직업들. 사회가 급변하는 요즘 수많은 직업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성인이 된 지금은, 한편으로는 숙연한 느낌도 들고 한편으로는 아득한 느낌도 든다. 내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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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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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에 생성되어 현대에 들어와 사라진 6개의 직업과 근대 이전부터 존재해오다가 사라져간 직업 3개, 총 9개의 직업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작가의 이력이 참 특이하다. 인테리어 회사 직원, 술집 경영, 대학원 진학 후 시간 강사, 대학 연구소 연구교수, 다시 시간 강사. 대학원 시절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과외'는 한 번도 하지 않고 몸으로 때우는 아르바이트만 하였고, 5년 전부터 취미로 시작한 목공은 가끔 주문을 받고 가구를 팔 정도라니 여섯 번째 직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도 한국 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가 어쩌면 수많은 키워드 중 '직업'에 집중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문학은 당대의 사회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므로 문학 속에 등장하는, 그 문학이 쓰여질 시기만 하더라도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직업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 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로 대변되는 일명 '사라진 직업'들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세세한 일상과 다양한 시선을 공유하고, 근대 문화의 상징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통신, 영화, 젠더, 독서, 모성, 교통, 도시, 의학 등 각 분야의 문제들을 되짚으며 지금 여기 문화와 일상의 지형도가 된 역사를 탐사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확실히 여러 가지 그림, 사진 자료와 그 당시 나왔던 매일신보, 중외일보 등의 기사나 칼럼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당시의 일상을 눈에 보이듯이 서술한다. 잊고 있었던 것이, 이 당시만 떠올리면 일제 식민지와 독립 운동, 친일파 등 몇 가지의 키워드로만 제한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시대도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변화를 감지하며 꿈틀거리던 시대라는 것. 아마 후대의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의 직업에 대해 서술한다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고, 학창 시절 유망 직업과 그 직업을 위해 선택해야 할 대학의 전공 등등의 목록을 몇 번이고 보았던 기억도 났다.

 

1. 가진 재주라고는 남성들을 사로잡는 '미모'밖에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단점을 감추기 우해서 여학생의 이미지를 도용했다.

 

-> 본문에 등장하는 문장. 이게 무슨 뜻이냐면 당시에는 기생 사이에도 급수가 존재했으며, 이른바 가장 급수가 높았던 일패 기생과 삼패 기생의 서열에 혼란이 왔고, 여러 모로 재주가 부족하고 미모밖에 내세울 게 없었던 삼패 기생들은 자신들의 단점을 감추기 웨해 여학생의 이미지를 도용했다는 것. 채만식의 '태평천하'에 등장하는 어린 기생이 여학생 복장을 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는 내용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왜? 하고 넘어갔던 부분인데 이 책에서 이유를 확인하니 재미있었다.

 

2. 인력거꾼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운수 좋은 날'을 보더라도 인력거꾼에 대한 묘사가 생생한데, 당시에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고 생활이 힘들었던 그들이 참 안타까웠고, 전차와 버스 택시가 등장하면서 어쩔 수 없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마는 인력거를 보면서 뭐랄까, 거대한 사회적 흐름을 어찌할 수 없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그 마음을 아주 모를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천한 직업과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합을 결성하고 돈을 모아 학교를 설립했고, 그 학교의 운영이 힘들어지자 700여명의 기생들이 연주회를 열어 그 수익을 학교에 후원했다는 이야기는 뭉클하다. 인력거를 가장 많이 애용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는다는 동일한 아픔을 위로했다는 생각에.

 

3. 여차장에 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얼굴은 '어느 정도' 예뻐야 하며, 목소리도 고와야 했다. 매일 승차권을 펀치로 찍기 때문에 손아귀의 힘이 세야 했다. 하루 종일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받는 보수치고는 엄청난 박봉을 받았고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폭력'의 위험도 있었다. 당대부터 지금까지 최고 작가 중 한 명인 김동인이 오히려 여성들의 '허영심'을 문제 삼고 직종에 따라 차별하는 발언을 덧붙이거나 채만식이 에로 서비스를 조건으로 붙이자는 말을 대담에서 할 정도이니 당시에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다.

 

4. 이 책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을 꼽아보자면, 저자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일부 사실에 대해 지나치게 주관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조선 정부는 위새 개혁의 일환으로 우물과 개천을 정비하고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는 각종 세균에 의한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는 조선인의 신체, 곧 인종을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계몽 지식인들은 서구의 나라들이 '문명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엇던 것은 물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민중들에게 역설했다. (중략) 조상 대대로 매일 써온 물을 '더러운 물'이라고, '병을 옮기는 물'이라고 하다니. 당시 백성들로서는 황당하고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 아니었을까.(중략) 대소변을 거른 물, 버러지 가득한 물, 양잿물 섞인 물....... 그런 물들은 서구인의 관점에서는 더럽고 불겨란 물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런 물을 자연스럽게 사용해온 조선 사람들에게는 위생 개혁 자체가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왔다.(중략) '위생 규칙'을 어긴 사람은 경찰서에 끌려가 태형을 받거나 당시의 생활수준에 비해 가혹한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위생 사업이 이제 사람을 죽도록 고생시키는 흉물스런 죽음의 사업이 되었다. 한마디로 '위생'이 곧 '고생'이었다.

 

-> 설령, 위생에 대한 국가적 규제가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깨끗한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수많은 전염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나 인도와 같이 물이 깨끗하지 못한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이 되거나, 거꾸로 물만 깨끗해져도 상당수의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경우는 많다. 비록 동기가 어떤 것일지는 모르지만, 위생에 대한 강압은 분명히 다른 정책들에 비해서 가장 직접적으로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아파도 약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병원 한 번 가기 힘들었던 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5. 이 책의 프롤로그 요약: '소명' vs '교환가치'

기계 문명, IT 기술, 줄기세포, 제약 산업 등은 시간과 공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도전이다. 자연의 리듬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낳은 근대의 직업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또한 우리는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그 사회의 주된 욕망이 무엇인가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직업을 갖지 않고 평생을 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직업으로부터 즐거움을 찾는 경우가 많지 않다.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일본 오키나와. 그들의 장수 비결 중 하나는 '이키가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 그것이 꼭 직업일 필요는 없으며, 아무리 힘들어고 기꺼이 즐겁게 아침에 눈을 드는 이유. 그것이 또 살아가는 이유라는 것이다. 현대인은 직업과 이키가이의 괴리가 크다.

 

-> 작가는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이유가 오늘 출근하는 이유와 같기를 바란다고 했다. 유토피아 처럼, 바람직하지만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말처럼 들린다. 직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그것이 단순히 생계를 영위하는, 이른바 '교환가치'로서의 직업이 아니길. '소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즐거움'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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