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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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보게 되면 제목 때문에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의 이름은 앨리시어. 물론 책을 읽어나가면서 왜 앨리스라는 이름을 가져왔는지, 우리가 앨리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이 책에서 변주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책 속에서 작가가 깔아놓은 이야기 말고도, 나름의 이야기로 유추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은 떡밥이다. 주인공은 전혀 야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앨리시어라는 한 여장 부랑자로부터 시작된다. 왜 여자일까, 왜 부랑자일까,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이 소설은 작가가 오사카 여행 당시 한신 백화점 근처에서 여자 부랑자를 보고 나서 구상하였다고 한다. 작가라면 그 기괴한 모습을 보면 당연히 저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했을 것이고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봄직하다. 그것에 대한 설명으로, 작가는 가정폭력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왔다.

 

이 책의 주된 소재는 가정 폭력이다. 특이한 것은, 가정 폭력의 주체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정 폭력의 형태는 때리는 아버지, 매맞는 어머니 혹은 묵인하는 어머니일 것이다. 여기에서 앨리시어와 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머니이며, 아버지는 이를 묵인한다.

 

책은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은데, 그렇다고 가볍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리듬감이 있고, 특히나 대화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며,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삽화들(아버지가 예전에 머슴으로 모셨던, 지금은 음식점을 하고 있는 옛 주인집에 가는 장면 등), 그리고 앨리시어가 동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네꼬와 여우의 이야기 등)이 그 부분만 따로 뗴어 놓고 보아도 재미있다.

 

다만, 이야기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문스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앨리시어는 자신이 어머니보다 커지고, 힘도 세졌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머니에게 대들거나 폭력을 중지시키기 위한 어떤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전처 자식들과는 달리, 집을 떠나 버리겠다는 의지도 없으며, 여러가지 시도는 번번히 중간에 스러지고 만다. 동생의 죽음 이후, 어머니의 슬픔이 진짜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큰 뜻으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어머니마저도 끌어안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긍정까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시 어린 시절에 외조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했던 어머니의 일화를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 마지막에 가서야, 동생이 죽고 나서야, 앨리시어는 집을 떠나는데, 그 모습 또한 이리저리 떠돌며 여장을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보아도 단순히 현실의 도피이며, 가정폭력의 대물림에서 의지적으로 그 고리를 끊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에, 소설의 마지막은 희망이 아니라, 어쩌면 앨리시어 또한 그 대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황정은의 소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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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 대원DVD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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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1992년작. 붉은 돼지. 마법. 과거 비행사. 공중 도적. 현상금. 친구 아내. 라이벌. 격투. 사랑. 항공 활극. 여성 정비사. 마초. 이탈리아 공군. 냉소. 인간성 회복. 아드리아 해. 전우. 추억. 연정. 임시 정부. 왕당파. 용병. 불경기. 아지트. 구름 평원. 숙맥. 공중전. 육탄전. 낭만.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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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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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학습하는 13가지 생각도구
창조를 이끄는 13가지 생각도구가 있다. 읽다 보면 역시 천재는 다르구나 하고 오히려 자포자기(?)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런 13가지 도구들을 일상 생활에서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소설가 김중혁은 이 13가지 단계가 소설의 창작과정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4단계까지가 창작 전단계라면, 5단계부터 실제 창작 단계라는 것이다.
생각의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각종 기업의 추천도서이자, 자기 계발서의 대표 주자로 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업의 입장에서 사원들의 재능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창조자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그들의 산물을 읽어나가는 과정을 보기만 해도 참 흥미롭다. 굳이 이 책을 달달 외워서 나에게 적용해야 겠다는 의무감으로 책장을 열 필요까지는 없다고. 정작 이 책을 쓴 부부 작가는 책을 읽는 이들을 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기는 했지만, 거기에 휘둘리지 말고 그저 읽어나가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 물론, 이 책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자기 계발을 하겠다는 태도도 나쁘지는 않겠다.

 

이 책의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것이다. 통합교육의 중요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전문가가 아니라 전인이 되라는 것. 일과 취미를 조화시키는 창조적인 인물이 되라는 것.

 

워낙 사례가 많은 책이라, 읽으면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였다. 책의 구절, 그리고 읽으면서 참고했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 방송 내용. 그리고 나의 경험까지. 이런 식의 책읽기도 참 오랜만인데 나쁘지 않았다.

생각도구 1 - 관찰
수동적인 ‘보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찰’

다시 보기, 새롭게 보기

see나 look이 아니라 observe의 개념

여행을 할 떄는 사진을 찍지 말고 그림을 그리는 편이 대상을 더 잘 관찰하게 한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피카소에게 비둘기 발을 계속해서 그리게 했다.

영화 스모크에서 똑같은 대상을 계속해서 찍는다. 빠르게 훑어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보는 게 아니라고, 천천히 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관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헬로우 블랙잭이라는 일본만화에서, 의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주인공에게 선배 의사가 계속해서 심전도를 보고 잘못된 점을 잡아내라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은 집중해서 심전도를 며칠 동안 보지만 어떤 환자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결국 선배에게 모르겠다고 하는 주인공. 선배는 말한다. 그 심전도는 정상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같지만 몇 날 며칠 동안 단 하나의 정상 심전도를 집중해서 본 결과, 주인공은 다른 심전도를 보았을 때 어디가 이상이 있는지를 그 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 책에도 비슷한 일화들이 많이 나온다.


생각도구 2 - 형상화
imaging. 머리로 그릴 수 있는 능력.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미술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하루는 음악을 듣고 머릿속에 떠올리는 장면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그 클래식 음악은 지금도 멜로디가 생각난다. 제목은 얼마 전에 알았지만 잊어버렸는데. 나는 녹색이 떠올랐고, 잎사귀에 이슬이 맺혀 있는 숲 속, 아침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때 같이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모두 다른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똑같은 음악을 듣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랄 만한 나이였다. 더 커서 알게 될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윌리엄스는 이 작품을 쓸 때 한 여인과 그녀의 남편이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마치 그림처럼 머리에 떠올렸다고. 실제로 이 장면이 연극에서도, 영화에서도 등장한다고.


생각도구 3 - 추상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너무 추상적이야, 라는 말은 구체적이지 못하다라는 말과 등가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추상화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만 잡아내는 것. 한자어로 추상이란 상을 뽑아낸다는 뜻이다.

에드워드 E. 커밍스의 시. 이 단순한 시에 이렇게 수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니.

추상화는 중대하고 놀라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 사랑, 진실, 진리와 같은 개념들은 눈으로 볼 수 없고, 큰 범위의 개념들이다. 영화도, 소설도, 어떤 예술도 삶을 추상화하는 것이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리처드 파인만은 말했다. 현상은 복잡하고 법칙은 단순한데 무엇을 버릴 것인가?

생각도구 4 - 패턴인식
체스 고수들은 패턴인식의 귀재들. 치밀한 논리가 아니라 직관으로 패턴을 인식한다.

1부터 100까지 더하는 식에서 패턴을 발견한 가우스의 정리. 오성 이항복의 어린 시절, 쌀 한 말이 몇 톨인지 알기 위해 그가 생각해냈던 방법.

생각도구 5 - 패턴형성
가장 단순한 요소들의 결합이 복잡한 것을 생성한다. 

우주 안에 수억개의 화학 물질들은 전부 100개 미만의 기본 물질의 합성으로 이루어진다.

결합 요소의 복잡성이 아니라 결합 방식의 교묘함이나 의외성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패턴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나가수 첫 회에서 패턴이 꺠지자 시청자들의 반대가 극렬했던 경우가 있다. 우리가 눈을 뜨고 그 이후의 일과들이 정형화되어 있는데, 그것은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생각도구 6 - 유추 
헬렌 켈러가 보거나 듣지 못하는 세계를 이해했던 것은 유추가 탁월했기 때문
유추와 닮음은 다르다

표면적으로 닮은 것이 유사라면 내적 기능이나 속성의 연관성이 유추이다.

내 배가 남산만하다는 표현이 유사라면 내 마음이 호수라는 표현은 유추이다.
낙하하는 사과를 보고 지구와 사과의 관계에서, 지구와 달의 관계로까지 유추하여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멜더스의 인구론에서 진화론을 유츄해낸 다윈.
유추할 수 없다면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유추를 발견하고 인식하는 것이 지성의 핵심.


생각도구 7 - 몸으로 생각하기
헬렌 켈러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에게 도약이 뭐냐고 물었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허리에 손을 얹게 한 후 점프하였다.
몸으로 ‘느껴야’ 하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몸의 일부가 사라진 뒤에도 감각은 남아 있다. 환상통, 환상지.

생각도구 8 - 감정이입
감정이입의 본질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역사가들은 타인의 눈으로 보기 위해 ‘시대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사냥감처럼 생각하라
대나무를 그리려면 먼저 내 안에서 그것이 자라나게 하라
가장 완벽한 이해는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광자라면 우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고 생각했고,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이 원자라고 가정하였다.

생각도구 9 - 차원적 사고
3차원 물체를 2차원 평면에 그리는 원근법의 발명

지도는 3차원을 2차원으로 치환한 대표적 예이다.

생각도구 10 - 모형 만들기
modeling. 모형으로 만들어 전체를 축약

모형은 본질을 구현한다
완성된 그림의 모형이 된 쇠라의 스케치
전염병 확산을 막은 공중위생 모형
모형의 수학화로 순수한 모형을 얻을 수 있다
세계를 이해하려면 모형을 만들라

생각도구 11 - 놀이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일 가지고 놀기

일이 정말 하기 싫을 때, 그 일에서 나름의 놀이적 요소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동진이 인터뷰집을 펴낼 때, 모든 질문을 상대 영화 감독이 만든 영화의 대사로 시작한 것은 수많은 양의 글을 쓸 때 스스로 지치지 않게 하려고 나름의 재미를 부여한 것.

플레밍의 페니실린, 흔들리는 접시를 보고 전자궤도를 연구한 리처드 파인먼
콜더의 서커스 놀이와 움직이는 조각
현실을 가지고 놀았던 루이스 캐럴과 모리츠 에셔
젓가락 행진곡은 어떻게 탄생했나
창조적인 통찰은 놀이에서 나온다

생각도구 12 - 변형
라에톨리 발자국의 발견과 해석

아프리카 탄자니아 사막에서 인류 조상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사고의 변형에서 출발한 스트로브 발명
변형적 사고가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한다
언어로 표현된 문제는 방정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미시건 주립대학에서 행한 ‘음악적’ 소변분석
바흐의 다성음악을 이미지로 변형한 파울 클레
 
생각도구 13 - 통합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세계를 생각하라.

감각과 의식이 교차하는 ‘우주적 동시성’의 세계
파란색은 첼로, 검은색은 베이스
생각의 본질은 감각의 지평을 넓히는 것
듣지 못하는 연주자 이블린 글레니의 공감각적 사고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라
느끼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로
‘모든 것’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

실제로 생각과 감정, 느낌 사이의 연관성은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음(생각)과 몸(존재 혹은 감각)의 분리를 말한 철학자(데카르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갑작스러운 사고나 뇌졸중, 종양으로 정서적 감응구조가 총체적으로 바뀐 신경질환자들은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다마지오에게 있어서 몸과 마음, 감정과 지력은 불가분의 것이었다. 우리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과학자들은 느낌으로 논리적 개념에 이른다. 그리고 모든 학문분야에서 창조적 사고와 표현은 직관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신경해부학자 산티아고 라몬이카할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 연구가 자연사와 관련된 대상을 다루는 것이라면 관찰에는 스케치가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 어떤 것을 묘사하는 일은 주의력을 훈련시키고 강화시키며 현상 전체를 보게 만든다." 해부학자 프랜시스 세이모어 헤이든도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는 당시의 화가들이 필수적으로 해부학을 공부했던 것처럼 자신이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에게 미술을 공부하도록 시켰다. 그래야만 관찰능력과 손기술이 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의 얼굴에 나타나는 질병의 상태를 얼마나 빨리 눈으로 파악하고 그것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느냐, 또 그러기 위해 손을 얼마나 잘 훈련시키느냐는 정밀하고 안전하게 집도하는 능력과 직결된다"라고 썼다.

비록 오늘날 과학자나 의사들에게 드로잉을 가르치는 강의는 과거에 비하면 드물어졌지만 내과의사인 에드먼드 펠레그리노의 말에 따르면 그 유용성만큼은 아직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상의의 기술은 그의 필수적인 진단기구인 눈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임상의와 화가는 둘 다 특별한 시각적 감지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 다 본다. 그러나 보긴 보되,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것을 봐야 한다. 화가인 파울 클레는 `미술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임상의 역시 눈앞에 드러난 증상의 표층을 뚫고 들어가, 그 아래에서 무슨 질병이 환자를 괴롭히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에 의하면 "지속적인, 그러나 무의식적인 감각의 흐름이 우리 몸의 동작부위에서 나온다"라고 한다. 이 감각의 흐름이란 우리가 `제6감` 혹은 `비밀의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우리는 자신의 근육을 살피고, 위치나 긴장상태, 움직임을 끊임없이 재조정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숨어 있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그 과정은 색스의 말처럼 대개는 숨어 있다. 우리가 생소한 기능, 이를테면 자전거 타기나 야구하기, 망치나 드라이버 다루기, 새 악기 연주하기, 스웨터 드기, 유리 불기 같은 일을 처음 배울 때는 대단히 의식적이된다. 이런 기능에 숙달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의식적으로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러다 자전거 타기나 피아노 치기 같은 동작이 완전히 몸에 익으면 점차 의식하지 않고도 그 일들을 할 수 있다. 공을 어떻게 맞힐까를 궁리하지 않고도 테니스를 즐길 수 있으며, 손가락을 어디에 어떻게 대야 하는지 기억해낼 필요도 없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

시인으로 잘 알려진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의사이기도 했는데,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환자들의 복잡다단한 마음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게 누구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로부터 떨어져나왔을 때, 나는 잠에서 다시 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많은 의학교육자들은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환자가 되어 보는` 능력의 유무는 뛰어난 임상의와 그렇지 않은 의사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감정이입이야말로 자신이 도움을 주는 관계를 움직여나가는데 있어서 중심이 되는 기술이다"라고 펜실베이니아 주립의대 교수인 E.A. 바스티안은 말한다. 감정이입을 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생소한 검사나 절차 앞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크나큰 동정심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할 때 환자들이 기꺼이 낯선 자신들에게 증상과 비밀을 털어놓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야만 듣고 싶지 않는 진단결과거나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는 절차에도 협력하려 하고, 숨기고 싶은 몸과 마음을 기꺼이 열어보인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정신과 의사 로버트 코울즈는 하버드 의대생들에게 조지 엘리어트의 <미들마치>나 워커 퍼시의 <영화광>을 읽어볼 것을 적극 권유한다. 교과서와는 달리 이 소설들은 의사들이 봉착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심장의학자인 에모리 의대 교수 존 스톤은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추천하는데, 이 소설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보르헤스의 <죽지 않는 사람들>을 생체공학적인 장기이식과 인공사지가 불러일으키는 심리적인 효과에 대한 고찰을 다룬 소설로 본다. 스톤은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젊은 의사들이 적절한 감수성을 갖도록 해주고,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단어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며, 심지어는 자신이 환자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해줄 수도 있다."

이는 3차원 물체를 2차원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 이런 표식들은 많은 직업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다. 고고학자나 법의학자들은 발자국이나 기타 흔적을 가지고 그 주인의 크니, 무게, 신장 등을 재구성해야 한다. 군대의 정보분석가들은 정찰기나 정탐위성이 촬영한 2차원 사진을 가지고 3차원적 추리를 해야 한다. 내과의사들은 X-레이 사진이나 CATcomputerized axial tomography, MRI를 판독해야 하는데, 그들은 움직임 없는 환자들 몸의 조각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환치해 놓고 해석해야 한다. 요즘 의학계 문헌들을 보면 근시교정에서 안면성형에 이르는 기술들을 놓고 3차원, 4차원, 5차원, 심지어는 6차원으로 분석하는 논문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음향기록장치sonogram나 양전자방사 단층촬영술PET은 인체나 인체의 기능을 공간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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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1 (완전판) - 파커 파인 사건집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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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는 대표적인 두 명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작가이다. 벨기에 국적의 자신만만한 작가 에르퀼 푸아로,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미혼의 할머니인 마플 양.

 

이 책에서는 새로운 탐정이 등장한다. 파커 파인. 35년 동안 정부 기관에서 통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던 그는 은퇴 후 리치먼드 가 17번지에 개인 사무실을 연다.  뚱뚱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덩치가 있고, 딱 품위 있을 만큼 머리가 벗겨졌으며, 두터운 안경 너머로 자그마한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믿음직한 분위기가 절로 풍겨 오는 탐정이다. 글쎄, 이 사람을 탐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애매할 수도 있다. 잘생긴 청년과 데이트하는 장면을 남편에게 보여주어서 젊은 여성에게 쏠린 관심을 부인에게로 돌리게 한다거나(중년 부인) 권태로 몸서리치는 소령에게 추리 소설가 올리버 부인이 만들어낸 플롯으로 모험을 선사한다거나 (불만스러운 군인) 하기 때문이다. Are you happy? If not, consult Mr. Parker Pyne, 17 Richmond Street 라는 개인 광고의 내용을 볼 수 있듯이, 그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물론, 모든 사건이 이렇게 순순히 흘러가지는 않는다. 마치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를 연상시키는 사건에서 의뢰인의 실체를 꿰뚫어보기도 하며 (괴로워하는 여인)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붙잡기 위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척 연기했던 남자가 아내가 돌아온 후, 정말로 그 여자에게 빠져버린 웃지 못할 일 (불행한 남편)이 생기기도 한다. 때때로 의뢰인을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은 위험한 경우도 있는데,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던 회사원에게 국경을 건너 소중한 물건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기는데 (회사원), 물론 이 경우 회사원은 전달하고자 하는 물건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의뢰인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좀 더 짜릿한 모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 위한 파커 파인의 배려이다.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의뢰인 뿐만이 아니다. 파커 파인 또한 법적 대응을 각오하면서도 은행에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미망인을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 농부 아낙네로 살게 하기도 (부유한 미망인) 한다. 사건의 해결은 사무실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이스탄불로 가는 배 안에서 압지에 남아 있는 문구로 불안해진 아내가 파인 파커에게 의뢰하고, 파인 파커는 사실상 남편이 만들어낸 소동극을 해결하며 남편에게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원하는 것을 다 가졌습니까?) 한다. 사막을 가로질러 바그다드로 가던 도중, 의문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바그다드의 문) 바그다드를 떠나 페르시아로 향하는 과정에서 <푸아로의 크리스마스>나 마플 양이 해결했던 사건 중 하나인 <동행>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시라즈의 집) 해결하기도 한다. 암만을 지나고 페트라에 도달하고 나서 발생한 진주 귀걸이 도난 사건 (값비싼 진주)과 나일 강을 타고 흐르는 배 위에서 벌어진 사건 (나일강 살인 사건)도 여행 중에 그가 해결한 사건이다. 유명세 때문에 휴가조차도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하는 이 탐정, 그리스에 갈 때는 가명으로 여행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사칭하는 것을 보고 사기당할 위험에 빠진 모자 (델포이의 신탁)에게 도움을 준다.

 

중년 부인
불만스러운 군인
괴로워하는 여인
불행한 남편
회사원
부유한 미망인
원하는 것을 다 가졌습니까?
바그다드의 문
사라즈의 집
값비싼 진주
나일 강 살인 사건
델포이의 신탁

 

파커 파인이 등장하는 단편은 총 14편이라고 하는데, 그 중 12편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다른 두 편이 어떤 이야기일지 참 궁금한데, 아마도 이어지는 황금가지의 다른 시리즈에서 찾아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러고보니 파커 파인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소설가 올리버 부인은 <창백한 말>에서도 등장했다. 그 소설에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지는 않아도 큰 힌트를 주게 되는데,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이 없어서 궁금했다. 이 책의 설명으로는 46권이나 되는 소설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핀란드, 일본,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성공한 여류 작가이다. 그야말로 크리스티 자신의 분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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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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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절필한 것이 정말 아까운 작가.

계속해서 소설을 썼더라면 아마 칠순이 된 지금쯤에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보면, 아마도 김승옥이 창작 생활을 지속했더라면 이미 한국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김승옥의 단편들은 내 또래라면 모를 수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교과서, 수능 기출 문제, 수많은 참고서와 모의고사에 등장했던 그의 이름을 사춘기 시절 수백번은 접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좋은지도 잘 모르고 공부했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약 10년 만에 다시 접하게 된 그의 글은 여기에 실린 단편이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좋았다.

 

사실 이번에 갑자기 이 단편집을 읽게 된 것은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덕분이었는데, 실린 단편은 꽤 많지만 이미 절반 정도는 고등학교 시절 접했던 작품들이어서 전부 다 읽어나가는데 부담은 없었다. 원래 알고 있던 절반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읽었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었고, 이번에 처음 접한 나머지 반에 대해서는 처음 만났을 때의 신비함이 있었다. 방송을 들으면서 작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와 소설을 둘러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유명한 광고처럼, 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했던 바로 그 광고처럼, 표현이 짧고 지식이 부족해 이 소설들이 왜 좋은지 설명할 방법이 나에게는 없다. 참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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