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서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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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니스의 비밀>로부터 4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과 <커튼>에서 동일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 두 소설간의 세월의 격차는 수십년이기 때문에, 푸아로와 헤이스팅스가 등장한다는 것만 빼면 두 소설 사이의 공통점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집주인이 바뀌어 있고 두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이 소설의 경우 <침니스의 비밀>로부터 단 4년이 경과하였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상당수가 겹친다. 먼저 나온 소설에서 조연이었던 이들이 이 소설에서는 주연이다. 다만 앞선 소설의 두 남녀 주인공에 대한 뒷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두 소설간에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굳이 전작을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이 소설을 쓴 이유는, 아마도 크리스티가 <침니스의 비밀>을 스스로 마음에 들어했기 떄문인 것 같다. 크리스티의 탐정들은 각각 머무르고 있는 세계가 확연히 다른데, <침니스의 비밀>도 그렇고 <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도 그렇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반영한 첩보물이다. 그러고보니 영화 007 시리즈의 시대도 아마 이 시기였던 것 같은데, 제임스 본드 또한 영국 첩보원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히어로물이 차지하는 딱 그만큼,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첩보물이 그런 위치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크리스티 또한 그 시류를 일부러 거부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사실 크리스티의 몇몇 첩보물들은 다른 추리 소설에 비해 다소 임팩트가 약한 편이다.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환기를 시켜주는 정도의 재미는 느낄 수 있지만, 소설 자체로만 보았을 때는 솔직히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침니스의 비밀> 한 번으로 그 설정은 끝내버리는 게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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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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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떠올렸던 작품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이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 감수성 예민한 소년이 인생의 쓸쓸함과 이별의 고통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우정을 나눈 대상의 죽음 등이 놀랄만큼 닮아 있기 떄문이다. 소설 속 소년들이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는 것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읽었던 책의 표지가 노란색이었다는 것과,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이것을 신기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책을 읽던 당시 내가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면, 책을 읽으면서 아,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활자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고 그러고나서야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이 슬픔이로구나, 하고 꺠달았다는 이야기이다. 즉, 어떤 대상을 대하든 그 대상에 대한 감정을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먼저 몸이 반응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경험이 아마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에서는 처음이었던 데다가, 그 이후에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 떄문이다.

 

<자기 앞의 생>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고, 마음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눈물까지는 나지 않았다. 억지로 내 감정을 명료하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글자를 읽어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벅차오르는 구절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울음이 나오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좀 아쉽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감정의 진폭을 겪지 않았을까, 하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랐던 그 당시의 내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유는 내가 읽었던 그 문장들에 직접적으로 슬프다거나, 아프다거나 하는 감정의 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픔을 느꼈다는 그 사실 자체에 내 스스로가 놀랐던 것 같다. <자기 앞의 생>도 마찬가지. 어린 화자의 눈으로 세상을 묘사하기에 그의 눈으로 본 세상은 더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곧이곧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시각이기에 더 큰 비극이 느껴지니까. 마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화자 옥희가 불완전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세상과 실제 세상과의 간극 때문에 남녀의 사랑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소설은 사실 소설 자체만큼이나 그 뒷이야기 떄문에 유명한 책인데, 바로 이 책의 지은이인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유명 작가 로맹 가리의 필명이며, 죽기 직전 로맹 가리가 직접 밝힐 때까지 프랑스 문단에서는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일생에 단 한 번 받을 수 있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 상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라는 두 이름으로 수상하였기 때문에 유일무이하게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프랑스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한 에밀 아자르를 찬양하는 평론가가 로맹 가리를 혹평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 문학에 몸을 담고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 보이는 것만큼 대단한 문학적 식견이 없거나, 로맹 가리가 대단한 천재였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 인물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작가라고 한다면, 로맹 가리는 자신의 소설 뿐 아니라, 마치 소설 속 인물처럼 또 다른 자신을 창조하여 그 인물이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살아 숨쉬게 했다는 점에서 최고의 예술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너무나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이 소설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다. 중간 중간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할까? 유태인으로서 홀로코스트까지 겪은 로자 아주머니, 아랍계인 주인공 모모,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 유태인 아이 모세, 그 둘의 정체성을 바꾸어 말하는 로자 아주머니, 모하메드와 모세라는, 각각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선지자의 이름 등. 특히 모모의 아버지와 로자 아주머니가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 전체는 정말 아름다우며, 주인공은 사랑스럽다. 특히 영화 더빙 장면에서 시간을 돌리고 싶어하는 모모의 그 장면은, 가슴이 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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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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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집은 정말 좋았다.

 

시는 소설과 다르게 이런 저런 해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구구절절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왜 좋고를 설명하게 되면 애초에 시라는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짧은 글로 세상을 담아내는 것이 시의 묘미인데, 그것을 길게 설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좋지만, 왜 좋은지 스스로 분석하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가장 좋았던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가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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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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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화자는 희곡 작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사실상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화자의 고모로, 1만명 정도의 아이를 출산시킨 산부인과 의사이다. 실력있는 의사로 인정받던 그녀는 70년대 이후에 추진된 국가 정책인 '계획생육'을 전방에서 주도하며 2000여명의 아이를 낙태시킨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강한 신념으로 수십년간 그 일을 해 온 고모는 말년에 와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 소설의 형식은 작가인 화자가, 일본의 작가에게 편지를 띄우는, 일종의 서간체적인 소설이다. 작가가 첫머리에도 밝혔듯이, 실제로 작가의 고모는 산부인과 의사였으며,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작가 모옌의 고모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쓸 것을 권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소설은 자서전적인 소설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증언 문학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계획생육'이라는 것은 일종의 한가정 한자녀 정책.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정책은 폭발하는 인구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인구의 수를 조절하는 정책이다. 여기까지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정도. 그러나 이 책에서 나온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며 잔인하다. 도시의 경우는 무조건 한 자녀, 농촌의 경우는 첫 아이가 딸인 경우에 한해서 8년 경과 후 둘째가 허용된다는 것.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하면 어마어마한 세금을 내야 하는데, 사실상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금액이므로 결국 강제로 낙태를 하게 된다. 당시 중국, 특히 농민들은 자녀의 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정관 수술을 비롯한 그 어떤 피임법도 거부하며 몰래 몰래 아이를 가지고 나으려고 하며, 화자의 고모는 악착같이 임산부들을 추적하고 찾아내어 기필코 수술대에 올리고야 만다.

 

이 책은 수많은 비극과 비극이 겹쳐 있는 느낌이다. '계획생육'의 내용 자체가 비극이며, 그것도 중국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비극이다. 몇 달만 있으며 자기 힘으로 숨을 쉬고 밥을 먹게 될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것도 비극이다. 화자인 자신의 조카가 태어날 때 직접 받은 것이 고모이며, 그 조카의 부인의 낙태 수술을 집도하다가 태아와 산모 모두 잃게 되는 것 또한 동일한 인물인 고모라는 것도 비극이다. 그 고모의 수제자였던 조수가 조카의 후처가 되며,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도 비극이고, 미모와 지성 등 모든 것을 다 갖추었던 고모 또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도 비극이다. 젊은 시절 사랑하던 사람은 타이완으로 넘어 갔고, 문화대혁명 시절 고초를 겪었으며, 늦게서야 결혼을 하게 되고 평생 아이가 없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극이다.

 

소설을 보면서 이 사람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인간이란 원래 모순적인 존재이며,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비극에 가깝고, 그것을 가장 잘 느끼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이해하려고 해도 이 소설 속 중국의 모습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와 너무나 이질적이라 답답하기도 하다. 어떻게든 아들을 낳아 대를 잇기 위해 공공연히 대리모를 들이는 현실이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맹목적인 신념이 말도 안 되게 굳건한 한 인간을 독자로서 보고 있는 것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측면에서는 분명히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야만적으로 보여 갑갑했다.

 

작가 모옌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장이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의 원작 소설의 작가라고 한다. 본명은 관모예로, 필명 모옌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 작가의 작품세계가 어떨지 짐작이 간다. 중국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이야기하지만, 체제 순응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의 화자는 작가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이 소설의 화자는 우유부단하면서 겁도 많고, 그러면서 실속은 챙기고 싶어하며 물욕도 있는, 나약하고 줏대없는 모습을 보여서 화가 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어떤 중국 사람들은 모옌을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갖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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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완전판) - 에지웨어 경의 죽음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노지양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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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타 애덤스라는 탁월한 재능의 여배우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제인 윌킨슨을 한 연극에서 모방하였다. 그 연극은 푸아로와 헤이스팅스, 그리고 당사자인 제인 윌킨슨도 관람했다. 연극이 끝난 후 제인 윌킨슨 일행, 푸아로와 헤이스팅스, 칼로타 애덤스는 사보이 호텔에서 각각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고 제인 윌킨슨은 이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한다. 이 날 제인은 푸아로에게 이혼을 원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하고, 푸아로를 만난 에지웨어 경은 이미 6개월 전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이혼할 의향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푸아로를 다시 만난 제인은 그런 편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단순히 사고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상황. 얼마 후 에지웨어 경이 자택에서 살해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별거 중이던 아내 제인. 얼굴이 알려진 이 여배우가 남편의 저택으로 사건 당일 들어가는 것이 저택에 있던 이들에 의해 목격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시간에 한 파티에 참석 중이었으며, 열 네 명의 목격자로 인해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급하게 칼로타의 집을 찾아낸 푸아로. 그러나 그녀는 이미 사망한 상태. 

 

푸아로와 헤이스팅스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매우 독특하다. 인기 여배우가 등장하는 세계를 다루어서인지 다소 비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소설에도 심리적이 요소가 매우 비중있게 등장한다.

 

앨리스 베넷은 어떤 것도 허락해 줄 성 싶었다. 대부분의 조심스럽고 의심 많은 여성들은 한번 믿기 시작하면 무조건적으로 믿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 손 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푸아로가 제안하는 것이라면 무엇이건 찬성했을 터였다.

 

이런 부분은 읽으면서 감탄이 났다. 인간의 심리 상태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가 모순되는 행동을 보일 때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절묘하다. 또 이런 부분도 있다.

 

제럴딘이 자기 아버리를 죽였을 거라고 한 제인 윌킨슨의 경솔한 말은 내게는 당치 않은 망언처럼 느껴졌다. 아마 두뇌가 텅 빈 사람이나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한 바를 푸아로에게 전했다.

"두뇌, 두뇌라. 자네는 그 단어가 뭘 의미한다고 믿는 거지? 만약 자네 의견대로라면 제인 윌킨슨은 토끼 정도의 두뇌를 갖고 있는 사람이겠군. 멸시의 표현이지. 하지마 토끼를 한번 생각해보게. 토끼는 열심히 번식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안 그런가? 어쩌면 생존 본능은 고매한 정신보다 더 우수한 걸지도 몰라. 우리 사랑스러운 에지웨어 부인은 역사나 지리나 고전에 대해서는 완전히 까막눈이지. 상 두트(아마) 노자라고 하면 무슨 북경 강아지가 아닌가 할 테고, 몰리에르는 메종 드 쿠튀에(재단사)이름 인 줄 알거야. 하지만 옷에 관해서라든지, 또 부와 명성을 한 번에 거머쥘 수 있는 결혼이라든지,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방면에 있어서라면 그녀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지. 에지웨어 경의 살해범에 대한 철학자의 고견은 내게는 아무 필요도 없어. 그리고 철학자의 고나점에서 보통 살인의 동기는 절대 다수의 절대 선을 위한 것이라고 볼 테니 판단이 어려워. 사실 자기네 철학자 중에는 살인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그 속성을 몰라. 하지만 에지웨어 부인의 지나가는 한 마디가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어. 그녀의 관점은 철저히 유물론적인 데다 인간 본성의 사악한 측면을 알고 있는 데서 비롯된 거야."

 

이 부분은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미심쩍인 부분들이 한번에 해소되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살인에 대해서, 고차원적으로 앞뒤 맥락을 따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좀 더 단순한 차원에서 봐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이 부분은 이어지는 사건의 결말의 복선으로 작용한다.

 

이 소설이 기존의 크리스티 소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살인자의 캐릭터일 것이다. 크리스티의 소설 중 이런 살인자는 <비뚤어진 집>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평생 동안 범죄에 대해서, 또 그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크리스티는 연구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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