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년 이후 지금까지, 700여년의 시간 동안, 과학사의 수많은 실험 중 "대체 어떻게 저런 실험을?" "저 사람 미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 밖에 없는 111가지 ‘미친’ 실험에 대한 소개서이다. '과학'이라는 말 떄문에 읽기도 전에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이 책은 특별한 과학적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으며, 상당수는 심리학자들의 실험이 많고, 또 서프라이즈같은 프로그램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알려진 실험들도 많아서 전혀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스탠리 밀그램(1961 끝까지, 450볼트의 전기충격을 가한 까닭 1963 길바닥에 편지가 떨어져 있을떄 1967 정말,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두가 아는 사이?)이나 필립 잠바르도 (1969 누구에게나 파괴본능은 있다 1971 스탠퍼드의 감옥, 아부그라이브의 감옥)처럼 한번쯤 들어봤던 실험들도 있다.
외국 책을 보면 이렇게 대중을 위한 과학서가 참 많고, 그 중에 훌륭한 책도 참 많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고, 나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아쉬운 부분도 많다. 그 아쉽다는 것이, 저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나의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은 과학 교양서를 즐겨 읽지 않는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이 책의 원제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영어 단어 mad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미친다는 뜻으로 간단하지만, 우리말의 '미치다'도 사전을 찾아보면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보이는 정도가 지나치고 비정상적으로 열중하다'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다'로 미묘하게 다르며, 영어 단어로도 mad, crazy, insane, lunatic, frenzied, frantic 등등 다양하며 속어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이 모든 단어가 비슷한 의미를 뜻하겠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미치다'라는 표현만큼은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다양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최소한 영어 단어 mad는 단순히 정신이상자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좀 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여기에 실린 모든 실험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경악할 내용인 것은 확실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사에 일정한 정도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개중에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인용이 되며 영향을 주는 실험들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실험일수록 피실험자의 인권은 보장되지 않았으며, 그 시기는 20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는데, 아마도 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하였으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식은 그보다 더디게 확립되었을 것이고, 가장 과학이 발달하여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미국이 당시 세계 정세상 소련과 일본, 중국을 끊임없이 의식한 결과 지금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용인되기 힘들 정도의 실험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몇 가지 실험들>
1852 음탕한 얼굴근육
프랑스 의사 기욤 뱅자맹 아르망 뒤센 드 불로뉴는 1842년 36세의 나이에 프랑스 북부 영불해협 연안의 불로뉴쉬 르메르에서 파리로 이사한 후 확실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당시 센 강 좌안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는 병명이 명확하지 않은 마비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었다. 주로 간질병 환자, 경련 환자, 하반신마비 환자들을 진료한 그는 이들의 근육을 하나씩 전기로 자극해가며 신경성 질환에 관한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마비된 근육을 전기로 자극할 수 있다면, 이것은 조절메커니즘이 손상된 것, 즉, 뇌 속이나 뇌와의 연결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근육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 뒤센의 이름은 가장 유명한 근육위축 질병인 뒤센형 근이영양증Duchenne type muscular dystrophy으로 기억되고 있다. 뒤센이 연구한 근육은 모두 얼굴근육으로, 실험하는 동안 전기로 얼굴을 자극해 감정의 동요를 유발하려고 애썼고, 감정에 따라 활성화된 근육에 각 감정의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어, 슬픔의 근육(입꼬리내림근), 고통의 근육(눈썹주름근), 음탕의 근육(코근)등이다. 그리고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의 차이는 눈둘레근의 가쪽 부분에 있는데, 이 근육은 자연스러운 진짜 웃음의 경우에만 활성화된다고. 전극자극법에는 전기로 근육을 자극한 효과가 아주 잠깐 동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기에, 순간적인 현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술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뒤센은 오늘날 그저 역사적으로 흥미 있는 신경학자로 남는 데에 그쳤을 것이다.
1945 48주 동안의 길고 긴 굶주림
100명이 넘는 양심적 전시군복무 거부자들이 지원한 안셀 키스의 실험이 1945년 2월 12일에 시작되었다. 최종 선발된 36명은 하루 1500킬로칼로리 정도의 영양을 공급받으며 체중 감소, 탈모, 추위에 대한 민감도, 인체의 화학조성과 변동, 내장 기관 같은 육체적 변화와 지능, 주의력, 개성에 미치는 작용에 대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피실험자들은 어떤 지속적인 손상도 입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몸상태를 회복하기까지는 여러 달이 걸렸으며 실험기간동안 음식에 대한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 무감동, 사회적 소극성이 관찰되었다. 이것들은 오늘날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며 식이장애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1950 착하게 살아라, 그렇다고 얼간이 짓은 하지 말고!
존 내시의 최소최대정리와 관련된 실험의 이야기이다.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절도, 세금포탈, 무임승차,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까지, 세계는 온통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무런 해결점도 찾지 못했지만, 수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분양에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바탕을 둔 수백 편의 연구논문이 쏟아진 이후, 입증된 최고의 전략은 이것이다. 처음에는 '협조'할 것. 그리고 두 번째부터는 앞에서 상대방이 했던 그대로 '협조'와 '비협조'를 따라할 것. 이것은 다음과 같이 진화되었다. 상대방이 속이면 즉시 반격하고, 그 다음에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다시 협조할 것. 즉, 착하게 살되, 얼간이는 되지 말 것.
1955 거미들의 수난-3: 이젠 오줌물까지?
정신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지금까지 수수께끼다. 메스칼린이나 LSD같은 약물을 복용하면 건강한 사람도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은 징후를 보였다. 화학물질들이 단기간의 환각작용과 자아분열증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단지 변덕스러운 신체화학의 작용이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늘 그런 증상이 생긴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물학자 한스 페터 리더는 정신분열증 환자 열다섯 명의 오줌을 모아 거미에게 먹인 후 정상인의 오줌을 먹인 거미와의 거미줄을 비교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고.
1959 세 명의 예수 그리스도, 한곳에서 마주치다
1959년 7월 1일, 심리학자 밀턴 로키치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여기고 있었던 세 남자를 2년 동안 한 병원에서 침대를 나란히 놓고 잠을 자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세탁소에서 비슷한 일을 하게 했다. 정신의학사에서 가장 기괴한 실험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가장 모순되는 상황, 즉, 자기와 똑같은 정체성을 지닌 사람과 맞부딪힐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윤리적인 이유로 실행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스스로를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정신병 환자들이라면 가능하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이 진짜 그리스도라는 확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정체성 문제를 단호하게 해결하여 충돌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냥 평화롭게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여 살게 되었다.
1968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여덟 사람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에 심리학과 대학원생 한 명, 심리학자 세 명, 소아과의사, 정신과의사, 화가, 주부까지 총 8명이 같은 거짓 증상을 가지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가짜 환자 누구도 들키지 않았으며 평균 3주 후에는 모두 퇴원에 성공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연극을 알아챈 사람들은 다른 환자들이었다고 한다. 1973년 실험이 발표되고 비판과 성과가 이 실험의 결과에 함께 찾아왔다.
1984 박테리아야, 내게 위염을 일으켜다오!
서른세살의 베리마셜은 헬리코박터가 잔뜩 들어있는 죽을 마셨다. 대학 당국에 실험허가를 요청하지도 아내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자기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그실험은 결코 허락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위궤양의 원인이 스트레스가 아닌 세균이며, 헬리코박터가 위염과 위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공로로 200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 실험은 '코흐의 공리'가 실제로 적용된 아주 적합한 사례로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었으며 실험이재미있고 과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