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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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고 김수환 추기경이다.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학문적인 이유로, 그분이 선종하셨을 때 명동성당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수많은 신자들로 인해서 명동을 빙 둘러서 사람들의 줄은 끊이지 않았고, 한 명에게 허용된 시간은 단 3초 정도였다. 너무나 짧았기에 애도를 표현할 시간도 스스로 감정에 젖을 시간도 부족했지만, 이미 의학적으로 사망한 그 분을 뵈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느꼈던 생각은, 생전에 그 분이 아닌 것 같다는 것. 물론 내가 생전에 그 분을 실제로 뵌 적은 없고, 늘 화면으로만 보았지만, 어쨌든 내가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 모습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 때는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아 있는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달라지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관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매장하기 전 1시간 정도 어머니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경험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얼굴에 약간 화장도 한 상태이고 머리에 웨이브도 넣었다고 적고 있는데, 본문에 나오지만 장의사들의 경우 유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 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보면서 '다르다'고 느꼈다면, 시신을 돌보았던 분들의 작은 배려 덕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뗼레야 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분이 자신의 각막을 기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당시 뉴스로도 크게 보도가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죽기 전 장기 기증을 기피하는 우리 나라의 정서상, 단시간이었지만 그 덕택으로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늘었다는 기사도 있었고, 주치의의 인터뷰도 있었다. 각막 이식을 하려면 상피 세포가 2000개 이상이어야 가능한데, 워낙 고인이 고령이라서 혹시나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추기경의 소중한 뜻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했는데 다행이 2008개가 나와서 수술이 가능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그 이후에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 케냐로 의료 봉사를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원제는 Stiff. 사후 경직 상태를 의미한다. 죽고 난 후, 남아 있는 우리의 신체에 대한 글이다. 한글판 제목은 인체재활용. 평생 인체를 활용하며 살다가, 사망 후 덩그러니 남아 있는 인체 전체, 혹은 일부가 어떻게 다시 활용되는지 여러 케이스를 보여준다. 의과대학이나 병원에 기증되는 경우도 있고, 뇌사자의 경우 장기 이식을 통해 다른 이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 과거의 엽기적인 사례들부터, 현재의 숭고한 사례까지 훑어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불쾌감을 표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맨 마지막, 저자가 자신이 죽고 난 후 시신을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증할 계획을 세운 장면에 다다르면, 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으며,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고, 그 결과 이 결론을 내렸구나 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절대로 명시하지는 않았고, 돌려서 암시하지도 않았지만, 작가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 김수환 추기경도 그 면에서는 똑같지 않았을까 싶다. 추기경이 스스로의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 저자는 저서로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 역시 사후 행동으로 자신의 글을 실천할 것이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왔다. 미국에서 나온지 12년이 흘렀다. 아마도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업데이트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총, 균, 쇠>와 같은 책처럼, 증보판을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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