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판타지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성기 옮김 / 문학의문학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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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 좀 자세한 묘사에 많이 놀랐다. 여자 작가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쓴 글을 본 적이 있었던가? 작가 소개를 보고 나서는 더 놀랐다. 나츠는 저자의 분신이라고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물론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논픽션이 아니다. 그러나 '즐거운 나의 집'에서 위녕의 엄마를 '공지영'이 아니라고 말하기가 힘든 것처럼, 이 소설은 작가의 자기 고백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만약 그렇다면 작가는 최소한 나츠처럼, 아니 아마도 그 이상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여자로서도, 작가로서도. 그렇다면 이 책은 스스로 고통을 견뎌낸 흔적이며 결과물이다. 일단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너무나 사랑했던 남자의 변심, 그로 인해 힘들어했던 나츠 또한 똑같이 변해버린 태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머리로는 자꾸 아니라고 해도 가슴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결국 끝까지 가서야, 끝을 보고 나서야, 차라리 안 보고 안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바닥까지 샅샅이 확인해야만 단념이 된다는 사실이 참 가슴 아프다.  

소설의 제목은 동명의 노래에서 따왔다고 한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노래... 남녀는 결국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두 개의 판타지를 그릴 수 밖에 없다고... 결국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두 다리를 땅에 대고 서야만 된다고... 역설적이지만 그래야만 남녀관계 또한 삐걱이지 않게 된다. 이 당연해 보이는 진실은 수많은 시행 착오를 거쳐야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니 절절히 느끼게 된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니까. 뇌와 심장의 차이 때문에 모든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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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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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든게 된 건, 사실 '김언수'를 '김연수'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었다. '김연수'의 한 소설에 반해서 이 작가의 책을 찾던 중 집어든 게 이 책이었다. '아, 내가 잘못 보았구나'하고 내려놓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게, 책 표지가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어떻게 죽여드릴까요?' 암살을 설계하는 자들이 있고, 그 설계를 실행에 옮기는 자들이 있다. 표지에 있는 한 남자의 지극히 긴 그림자. 이 모든 것이 나를 끌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동료 작가들의 경탄과, 독자들의 열광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당연하다. 특이하고 잔인한 소재를 냉정하게 풀어낸 서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묘사,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중심을 잃지 않는 구성, 은근히 뒷통수를 치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 변화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 마지막 래생의 선택은, 사실 이름만 보고도 결말은 충분히 짐작했지만 마지막까지 제발 아니기를 아니기를 하고 바라다가 맥이 탁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아마도 '인간다움'을 저 깊숙이서 갈구하고 있던 자가 나에게는 없는 줄 알았던, 적어도 이번 생에서는 포기하고 살아야 할 줄 알았던 그것이 나에게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안타깝다. 

책 소개를 보니 연재되는 동안 영화화가 된다면 어떤 배우가 연기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독자들간에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고 하는데 제대로 영화화가 된다면야 바로 영화표를 끊고 가서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만들어진다면, 영화에서는 '미사'의 이야기가 좀 더 자세하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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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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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정도로까지 평이 좋을지는 몰랐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 

문학의 영원불멸의 주제, 사랑. 늘 그 사랑을 탐구하고, 사랑에 집중하고, 사랑을 쓰는 작가가 기욤 뮈소이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서점에서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책상에서도, 가방 안에서도 쉽게 발견되어서 적어도 표지만큼은 익숙했다. 실제로 내가 읽은 책은 이 '종이 여자'뿐이지만. 

알랭 드 보통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나 '우리는 사랑일까'는 내가 간절히 원해서 읽었지만 왠지 기욤 뮈소의 책들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등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서도 왠지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기욤 뮈소의 책들도 다 읽고 난 후에 꼭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내가 다른 기욤 뮈소의 책을 더 읽은 후에 얻어야 할 것 같다. 접어두고, 일단 이 책에 대해서만 요약하자면, "자세한 묘사덕에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쉽게 그려지고 소설에 빠져들수 있게 하지만, 소설의 모든 것이 전에 이미 한 번 본 것"이라는 것이다.  

책 속의 만들어진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교감, 그것은 이미 수많은 소설에서 되풀이 되었다. 몇 년 전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히 이 소설보다는 훨씬 더 앞섰을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 소설에서도 이러한 설정이 등장하는데, 기욤 뮈소는 먼저 나온 이 소설의 참신함을 넘지 못했다는 것만 밝혀둔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이 역시 익숙한 피그말리온 신화의 변형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결말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상대에게 진짜 사랑을 느낀다는 설정이 진부하다는 것은 진부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진부할 정도이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사랑을 찾게 되는 해피엔딩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이며, 상대를 끊임없이 바꾸는, 소위 '나쁜 여자' 혹은 '나쁜 남자'에게 연민을 느끼며 내가 그이를 바꾸어보리라, 고 헌신했다가 헌신짝처럼 버림받고 나또한 상대의 컬렉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는 소설 초반의 설정 또한 계속 말하면 입 아프다. 

작가의 이름을 보건대 분명 프랑스나 벨기에 쪽의 혈통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묘사는 토종 아메리칸(이라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미국인)보다도 더 미국적이다. 그나마 내가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를 보아서 작가의 의도대로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이건 뜬구름잡는 식이다. 왜 꼭 이 작가는 인물을 묘사할 때 할리우드 영화 배우, 인기 미드 출연자를 예로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나마 내가 별 하나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한국에 대한 작가의 애정(!) 때문이었다. 초반에 한국의 '윤진'이가 작가에게 보낸 메일이야 그렇다쳐도, 꽤 중요한 인물이 한국인으로 나오는데 그의 설정이 매우 구체적이다. 글쎄, 한국에서 출간된 뮈소의 소설들이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걸까? 작가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을 등장시킨 걸 보면 우리나라의 반응이 제일 뜨거웠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는 분명히 있다. 장점도 많다, 이 소설에는.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작가가 소설 내내 달려온 여정의 결말이 그 정도였다면, 결국 하고 싶어했을 말이 그 이야기라면 굳이 앞에 그런 설정들이 필요했을까? 다 읽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작가가 과연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청초하고 매력적이지만 다소 심심하고 백치미가 느껴지는 여자를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책 속의 책의 그녀, '종이 여자'와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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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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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기쁨 Parson's pleasure
목사로 위장한 골동품상인.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건가? 그동안 사기 아닌 사기를 벌인 행동에 대한 대가인가? 기쁨의 다음 순간.

손님 The visitor
유산으로 받은 숙부의 일기장에 등장하는 이야기. 사막에 있는 궁전에서 머물고, 그곳의 왕비와 공주 둘 다에게 마음을 뺏겨버린 카사노바. 지상 최고의 밤을 보냈다는 환희가 깨지는 순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의 방종에 대한, 수많은 여자들에게 입혔을 상처에 대한 대가인가?

맛 Taste
스코필드의 친구인 프랏은 이른바 와인의 달인. 마이크의 딸과 프랏의 집을 건 내기의 결과.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그 후 반전.

항해 거리 Dip in the pool
내기에 져 전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남자, 그의 계산된 행동. 그러나 어이없는 결말. 왜 그렇게 그녀를 쉽게 믿어버린 걸까? 양심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정작 온전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놓쳐버린.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Mrs Bixby and the colonel's coat
8년간 남편을 속여온 불륜의 상대와 작별하는 순간, 고가의 작별 선물을 남편 의심없이 가져오려던 방법을 연구하다가, 원. 역시 전당포 주인이었나? 아니 남편이었다.

남쪽 남자 Man from the south
이번에도 내기이다. 고급 차와 청년의 새끼 손가락. 라이터로 결판나는 마지막 순간, 뛰어들어오는 한 여자.

정복왕 에드워드 Edward the conqueror
리스트의 음악에 반응하는 고양이를 데려온다. 그는 정말 리스트의 환생이었나? 그렇게 되어버릴 것이라면 애초에 환생하지 말았을 것을.

하늘로 가는 길 The way up to heaven
딸네 집을 가는 것을 그토록 방해하던 남편, 꾸물대는 남편에 지친 부인의 최선의 선택.

피부 Skin
천재 화가가 등에 새긴 그림. 늘그막에 인생 피겠구나하는 순간, 그림은 시장에 나타났는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Lamb to the slaughter
임신 6개월의 경찰 아내. 살인 무기의 뒤처리와 대처까지 완벽했던 그녀.

맛, 항해 거리, 남쪽 남자에는 내기가 등장한다.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정복왕 에드워드, 하늘로 가는 길,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에서는 부부간의 속고 속이는, 밀고 밀쳐지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목사의 기쁨과 손님에서는 내가 제일 잘난 줄 알고 있었을 두 남자의 어이없이 당하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놀라운 행동, 내기가 주는 긴장감, 소수의 등장인물에 의한 전개 등 이 책 열편의 이야기들은 꽤 많은 공통점이 있다.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 한 명에게서 쏟아져 나온 이야기이기에 분위기나 전개 스타일이 닮은 것은 당연하지만, 소재나 주인공의 스타일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이 식상하지 않은 것은, 정말 생각도 못했던 반전, 그것 때문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떤 욕망, 혹은 과도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그 어리석음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결말 때문에 열 편의 모든 소설들은 열 개의 쾌감을 준다. 어떤 면에서는 기대 이상, 어떤 면에서는 기대 이하의 감상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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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 죽은 자의 증언 모중석 스릴러 클럽 11
캐시 라익스 지음, 강대은 옮김 / 비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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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오로지 동명의 미국 드라마 때문이었다. 열렬한 인기를 얻고 있는 "BONES"는 한때 나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고, 그 고민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싸인" 때문에 끊기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일단, 드라마로 인해 원작을 찾게 된 이들을 위한 팁 하나, 소설과 드라마는 매우 다르다. 한 편으로는 그 점에 실망할 수도 있고, 소수이지만 더 좋아할 이도 있겠다. 30대 초반이고, 미혼의, 아름답고, 능력있는,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서툴어서, 때로는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도 배려심 없는 사람으로도 보이지만 실제로는 표현할 줄 몰랐지 마음은 따뜻한 사람. (그러고 보니 요새 유행하는 이른바 '차도녀'다!) 40대 중반에 이혼 경험이 있고, 대학에 다니는 딸이 있으며 알콜 중독으로 치료받은 적도 있고 딱히 옷맵시에 신경쓴다고 말할 수 없지만 오지랖이 넓고 다소 감정에 휘둘리는 면도 있는 인물. 어느 쪽에 시각적으로 눈이 더 갈지는 뻔하다. 영상화되면서 어쩔 수 없는 각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쪽 다 설득력이 있고 스릴러 물의 여주인공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살인 사건을, 그것도 쉽게 잡히지 않는, 부검이 필요한 끔찍한 범위까지 다루지만 그것을 법의학이라는 분야에서 냉정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는 곧 깨질 것처럼 불안불안하기는 해도 최대한 차분하고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것은 드라마도 책도 똑같다. 다만 드라마가 어쩔 수 없이(?) 말랑말랑한 부분을 작품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포함시키는 반면 책에서는 말미에 떡밥(?) 한 번 던지고 끝난다. 이 부분도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스타 법의학자가 쓴 소설이기 때문에 (아마도 주인공 브레넌은 성격도, 외모도, 일하는 방식도 자신의 모습이겠지.) 현실적이며 깊이가 있다. 군더더기나 과장이 없다. 흔히 '겉만 반지르르한, 흉내내는' 전문가 소설은 아니다. 브레넌도, 저자도 그야말로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에 모자람이 없는 이들이다. 클라이막스, 반전, 급박한 전개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다른 스릴러 소설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결말이 아니라,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하는 쪽이다. 역시 이 부분도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놀라운 점은, 전문적인 부분을 제외한 문학적인 부분에서도 이 소설은 수준급이라는 점이다. 굳이 수상 목록을 나열하지 않아도 저자의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질투심이 들 정도이다. 평생을 뼈만 보고 살았을 법의학자가 이런 문학적 소양은 언제 어떻게 키웠단 말인지. 나에게는 드물게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는 소설이다. 여러 모로 이 소설을 뛰어넘었을 것 같은 예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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