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이 정도로까지 평이 좋을지는 몰랐다. 그래서 조금 놀랐다. 

문학의 영원불멸의 주제, 사랑. 늘 그 사랑을 탐구하고, 사랑에 집중하고, 사랑을 쓰는 작가가 기욤 뮈소이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서점에서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책상에서도, 가방 안에서도 쉽게 발견되어서 적어도 표지만큼은 익숙했다. 실제로 내가 읽은 책은 이 '종이 여자'뿐이지만. 

알랭 드 보통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나 '우리는 사랑일까'는 내가 간절히 원해서 읽었지만 왠지 기욤 뮈소의 책들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등 수많은 책들을 읽으면서도 왠지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기욤 뮈소의 책들도 다 읽고 난 후에 꼭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내가 다른 기욤 뮈소의 책을 더 읽은 후에 얻어야 할 것 같다. 접어두고, 일단 이 책에 대해서만 요약하자면, "자세한 묘사덕에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쉽게 그려지고 소설에 빠져들수 있게 하지만, 소설의 모든 것이 전에 이미 한 번 본 것"이라는 것이다.  

책 속의 만들어진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교감, 그것은 이미 수많은 소설에서 되풀이 되었다. 몇 년 전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히 이 소설보다는 훨씬 더 앞섰을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 소설에서도 이러한 설정이 등장하는데, 기욤 뮈소는 먼저 나온 이 소설의 참신함을 넘지 못했다는 것만 밝혀둔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이 역시 익숙한 피그말리온 신화의 변형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결말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상대에게 진짜 사랑을 느낀다는 설정이 진부하다는 것은 진부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진부할 정도이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사랑을 찾게 되는 해피엔딩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엔딩이며, 상대를 끊임없이 바꾸는, 소위 '나쁜 여자' 혹은 '나쁜 남자'에게 연민을 느끼며 내가 그이를 바꾸어보리라, 고 헌신했다가 헌신짝처럼 버림받고 나또한 상대의 컬렉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는 소설 초반의 설정 또한 계속 말하면 입 아프다. 

작가의 이름을 보건대 분명 프랑스나 벨기에 쪽의 혈통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묘사는 토종 아메리칸(이라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미국인)보다도 더 미국적이다. 그나마 내가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를 보아서 작가의 의도대로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졌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이건 뜬구름잡는 식이다. 왜 꼭 이 작가는 인물을 묘사할 때 할리우드 영화 배우, 인기 미드 출연자를 예로 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나마 내가 별 하나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한국에 대한 작가의 애정(!) 때문이었다. 초반에 한국의 '윤진'이가 작가에게 보낸 메일이야 그렇다쳐도, 꽤 중요한 인물이 한국인으로 나오는데 그의 설정이 매우 구체적이다. 글쎄, 한국에서 출간된 뮈소의 소설들이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걸까? 작가가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을 등장시킨 걸 보면 우리나라의 반응이 제일 뜨거웠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는 분명히 있다. 장점도 많다, 이 소설에는.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작가가 소설 내내 달려온 여정의 결말이 그 정도였다면, 결국 하고 싶어했을 말이 그 이야기라면 굳이 앞에 그런 설정들이 필요했을까? 다 읽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작가가 과연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청초하고 매력적이지만 다소 심심하고 백치미가 느껴지는 여자를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은 책 속의 책의 그녀, '종이 여자'와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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